한지영은 연관 기사를 싹 다 주변 지인, 친구들에게 보내며 다 함께 계정에 올리자고 부추겼다. 백연신에게도 카톡으로 기사를 보내며 문자까지 남겼다.[인스타 계정에 올려줘요. 댓글도 남겨주고요. 댓글은 15자 이상으로요.]커다란 회의실에서 그룹 임원 층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이상한 표정을 짓는 대표님을 물끄러미 쳐다봤다.백연신은 아주 많은 첫 경험을 한지영 덕분에 해보는 듯싶다.예를 들어 처음 그리 쉽게 한 여자에게 모든 경계를 풀고 먼저 다가가서 친해지는 것, 심지어 그녀의 한마디 말에 이 진심도 쉽게 바칠 수 있는 것.그리고 지금도 처음으로 카톡으로 이렇게 이상한 가십거리 기사를 받았고 인스타 계정에까지 올리라고 한다.그의 인스타에 과연 어떤 사람들이 팔로우하는지 한지영은 생각이나 해봤을까?다만 그는 평소에 한지영에게 수없이 들어왔다. 진세령과 임유진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고 한지영은 진세령을 어느 정도로 미워하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진씨 일가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도 별로 두렵진 않아. 백연신이 지금 이 자리에 앉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렸는데 그까짓 진씨 일가가 뭐라고.그런데 정작... 실눈을 뜨고 카톡으로 한지영에게 이런 식으로 질문했다.[내가 왜 널 도와줘야 하는데?]잠시 후 그녀의 답장이 도착했다.[연신 씨는 내 남자친구니까요!]부탁한다는 이모티콘까지 첨부했다.백연신은 순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이 여자는 가끔 그를 화나서 발을 동동 구르게 하다가도 또 가끔은 이토록 귀엽게 애교를 부린다니까.그녀와 함께 있을 때만이 진짜 긴장이 풀리고 심신이 안정되며 더는 속고 속이는 무언의 경쟁을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음모에 가득 찬 이 속세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바로 이 때문에 백연신은 줄곧 그녀를 잊지 못했고 사처에 수소문하며 드디어 찾아냈다. 전에 분명 복수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좀처럼 그녀에게 앙심을 품을 수가 없었다.심지어 연인이라는 명의로 그녀를 옆에 꼭 묶어두고 싶었다.그런데 그녀는 아직도 그가 언제 복
퇴근 후 백연신이 한지영을 픽업하러 왔다. 차 안에서 그녀는 여전히 가십거리 기사와 댓글로 분주히 보내며 기필코 그 기사를 실검에 올릴 작정이었다.한편으로 ‘전투’를 시행하면서 그에게 말했다.“진씨 일가 진짜 너무 비겁해요. 끈질기게 실검 기사 내리는 거 봐요. 그냥 뒀더라면 지금쯤 아마 실검 1위에 올랐을 거라고요.”“1위 했으면 좋겠어?”백연신이 물었다.“당연하죠. 내가 지금 뭣 때문에 바삐 돌아치는데.”그녀는 구시렁댔지만 손동작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기사 하나 실검에 올리는 것뿐인데 뭐가 그렇게 바빠?”백연신이 말했다.“이렇게라도 안 하면 아예 가망이 없다고요.”한지영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실검을 돈 주고 살 수 있다는 거 너 설마 모르는 건 아니지?”그의 말을 들은 순간 한지영은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몸을 움찔거리더니 머리를 번쩍 쳐들고 고양이처럼 두 눈을 반짝였다.왜 그걸 깜빡했지? 이 남자는 딴 건 몰라도 돈은 끝내주게 많잖아! 실검 하나 사는 건 식은 죽 먹기일 텐데!돈을 위해, 실검을 위해, 계속 진세령을 짓밟기 위해 한지영은 불쑥 요염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연신 씨가 날 위해 실검 사주실래요?”“내가 왜? 오늘 낮에 이미 네 부탁 받고 인스타에 기사도 올렸는데.”백연신이 넌지시 말했다.한지영은 잠시 고민하더니 동의한다는 듯이 더 물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실검 사주실래요?”그녀는 겸허하게 그의 뜻을 물었다.“지금 네가 뭘 해야 내가 실검을 살만한 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그가 되물었다.“나 두들겨 패게요?”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그는 복수하기 위해 그녀를 만나주는 거니까 이참에 화끈하게 얻어맞는 것도 좋을 듯싶었다.백연신은 두 눈을 희번덕거렸다. 이 녀석의 머리엔 대체 뭐가 들어있는 걸까? 옆에 남겨두고 연애도 하고 있는데 정말 전혀 눈치 못 챘다고?백연신은 핸들을 돌리고 길옆에 급정거했다.“탁.”그는 문득 안전펠트를 풀고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입술에 터프하게 키스했다.한지영은
그런데 왜? 지금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과 그 속에 담긴 감정은 이토록 그윽한 걸까?심지어 그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사랑한다고? 말도 안 돼!백연신은 마땅히 그녀를 죽을 만큼 증오해야 한다! 그해 그녀는 백연신과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예 잠수타버렸다!“난...”한지영은 입술을 꼭 깨물고 미처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백연신은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진세령 연예계에서 매장당한 기사 실검 1위로 올려... 아 참, 잠깐만.”그는 문득 고개 돌려 한지영에게 물었다.“실검에 며칠 동안 걸어둘까?”“네?”한지영은 두 눈을 깜빡거리며 미처 반응하지 못하다가 무심코 대답했다.“3일이요.”“3일 동안 걸어둬.”백연신은 전화기 너머의 상대에게 분부한 후 통화를 마치고 휴대폰을 다시 넣었다.“이제 소원 성취했지?”한지영은 다시 두 눈을 깜빡거렸다. 이렇게 해결됐다고?!그녀가 반나절이나 애써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한 번의 키스로, 한 통의 전화로 바로 오케이 됐다고?그녀는 문득 자신의 키스가 나름대로 값지게 느껴졌다. 다만 백연신이 실검 1위에 이 기사를 올리는 비용이 과연 얼마나 들었을까?...기사를 내릴 수가 없다! 진세령은 가족의 도움을 빌려도, 자신이 동용할 수 있는 모든 인맥을 끄집어내도 연예계에서 매장당한 기사를 실검 1위에서 내릴 수가 없다!누구야?! 대체 누구 짓이야?!강지혁?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가 있는 걸까? 연예계에 그녀를 질투하는 사람이 많으니 이 기회에 나락으로 떨어트리려는 사람도 많겠지.“아직도 누구 짓인지 조사해내지 못했어?”진세령이 전화에 대고 매니저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상대의 정체가 너무 신비로워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어.”매니저가 말했다.“네 기사를 세 날 동안 실검 1위에 올린다는 것밖에 몰라.”“뭐라고?!”진세령은 믿을 수가 없었다. 한 시간도 버틸 수 없는데 사흘이라니? 이게 말이 돼?!“돈은 얼마든지 상관
“언니가 말했어. 강지혁 같은 남자는 절대 한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강지혁은 여자를 믿지 않아. 이 세상에서 오직 저 자신만 믿을 거야. 강지혁은 바로 그런 사람이거든!”임유진이 그의 경계를 전부 내려놓는다면 모를까,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면... 진세령의 눈빛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강지혁은 미친놈이다. 애초에 진애령은 그에게 흠뻑 빠져있었다. 강지혁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기어코 그와 결혼하려고 애를 썼다.그런데 언니가 사망한 후 강지혁은 언니를 위해 눈물 한 방울도 안 흘렸다.이젠 임유진이 처참한 대가를 치를 때가 되었다.임유진 때문에 진세령은 이 신세가 되었으니. 그녀가 강지혁에게 버림받는 날까지 기다렸다가 또 한 번 그녀에게 죽음의 고통을 맛보여줄 것이다!...소씨 일가에서 많은 인맥을 동원하고 돈도 적잖게 썼지만 진세령의 연예계 매장 기사는 실검 1위에서 내려올 기미가 없었다. 족히 3일 동안 굳건히 1위를 차지했다.진씨 일가와 소씨 일가에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이 기사를 실검 1위에 올려놓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진세령은 이제 철저히 망신을 당했다.한지영은 매일 실검 1위를 보며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고 백연신에게도 칭찬을 남발했다. 심지어 실검 1위 기사를 캡처해 사진으로 인화하여 기념하기도 했다.그 모습에 백연신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아 참, 유진아. 모레면 네 생일인데 강지혁 씨 집에서 보내?”한지영이 전화해서 물었다.전에 임유진은 올해 생일이 마침 외할머니의 49재 다음날이라 성대하게 지내고 싶지 않다고 했다.“맞아. 그때 가서 연신 씨랑 같이 와. 물론, 연신 씨가 시간이 된다면.”임유진이 초대했다.“알았어. 잠깐만, 지금 바로 물어볼게.”한지영은 머리 들어 코앞에 서 있는 백연신에게 물었다.“유진이 모레 생일이에요. 나랑 함께 가줄 시간 돼요?”“응, 돼.”백연신이 대답했다. 임유진은 한지영의 베프이다. 그녀가 초대했으니 백연신
“어차피 금방 돌아올 거라서 너까지 번거로울 필요는 없는데, 거기까지 가는 거 귀찮지 않아?”임유진이 물었다.“안 귀찮아. 네 외할머니잖아.”강지혁의 단호한 목소리에 임유진은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 나며 동시에 코가 시큰거려 그대로 그를 꽉 껴안았다.사랑받는다는 건 아마 이런 기분일 듯싶었다.강지혁은 품에 안긴 임유진을 보며 예쁘게 웃더니 머리카락을 어루만져주었다.“생일 때 빌고 싶은 소원 같은 건 있어?”소원이라...출소하고 난 뒤 그녀가 가장 원했던 건 사건을 뒤집고 결백을 찾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소원을 이뤘으니 지금 그녀에게 가장 큰 소원이라고 하면 아마...“내 소원 들어주려고?”임유진이 고개를 들고 그의 눈을 마주친 채 물었다.“응, 네가 원하는 거면 내가 무슨 짓을 해서든 다 들어줄 거야.”“그럼 나 생일 때, 그때 말해줄게.”그녀의 소원은 그가 무리할 필요도 없고 엄청나게 큰 노력을 들일 필요도 없다. 임유진이 원하는 건 그저 강지혁이 그녀를 온전히 믿는 것이다. 그녀가 이토록 깊게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고 불안해하는 모습과 약해진 모습을 더는 보이지 않길 바라는 것이다.강지혁이 아파하면 그녀 역시 마음이 아프니까.“알았어. 그럼 생일 때 얘기해 줘. 뭐든 들어줄 테니.”같은 시각.이경빈은 지금 호텔 로열 스위트 룸 창문 앞에 서서 불빛이 반짝이는 거리를 바라보며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나 당분간 S 시에 머무르다 갈 거야.”“왜요? 협력 건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요?”공수진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으면서도 이경빈의 목소리가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다.“그런 건 아니고 다른 볼 일이 생겼어.”이경빈이 더는 캐묻지 말라는 듯이 말하자 공수진도 곧장 화제를 바꿨다.“참, 부모님이 우리 언제 결혼하냐고 계속 재촉해요. 아빠가 결혼 날짜는 10월로 정하는 게 좋다고 하던데 경빈 씨는 어때요?”결혼?이경빈은 이 화제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 미간을 찌푸렸다.공수진은 그가 선택한 사람이니 결혼을 하게 되
‘이곳 어딘가에 탁유미 그 여자가 있는 거겠지?’몇 년간 그녀는 마치 풀지 못한 저주처럼 이경빈의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이긴 건 분명 그일 텐데 왜 그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은 걸까? 이경빈은 매번 그녀가 떠오를 때마다 누가 심장을 둔기로 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이런 감정을 잠재우려면 탁유미를 찾아내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철저하게 그녀를 자신의 마음속에서 지워버려야 한다!...다음날, 강씨 저택 기사는 임유진을 태우고 마을로 향했다.얼마 후,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차에서 내려 외할머니댁으로 들어갔다.오늘은 임유진 외할머니의 49재로 노씨 집안은 평소 안면이 있던 스님을 집에 모셨고 친척들과 이웃 주민들은 벌써 도착해 있었다.임유진은 앞으로 다가가 흑백사진 속 외할머니 얼굴을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어머니 다음으로 그녀를 보살펴주고 아껴주던 사람이 바로 외할머니였다.3살에서 9살이 되기까지 외할머니는 그녀에게 부모나 다름없었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외할머니, 제가 이제 크면 돈을 엄청 많이 벌어서 할머니 호강시켜 줄게요!”어릴 적 임유진은 항상 외할머니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하지만 호강시켜드리기도 전에 외할머니는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돼버렸고 그녀의 곁을 떠나버렸다.눈을 감기 전 그녀의 외할머니는 간호사에게 부탁해 임유진에게 전화를 넣어달라고 했다. 아마 자신이 떠난 후 혼자 남게 될 임유진이 눈에 밟혔을 것이다.‘할머니, 혹시라도 내 걱정은 하지 마세요.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혁이가 옆에서 날 지켜주고 사랑해줄 거예요.’임유진은 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전한 후 예의를 갖춰 절을 올렸다.그녀의 첫째 삼촌과 둘째 삼촌은 임유진이 절을 올린 후 그녀의 손을 잡으며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자신들의 조카 남자친구가 강지혁이라고 안 뒤부터 그들은 더는 그녀를 건드릴 엄두가 안 났다.또한, 일전 자신들의 조카를 마을에 있는 바보에게 시집보내려고 했던 사실도 있었기에 행여 강지혁이
그와 눈이 마주친 임유진은 흠칫 몸을 떨었다. 강현수가 마치 낯선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순간 뭐라고 정의하기 힘든 쓸쓸함이 그녀의 몸을 감쌌다.어릴 적 힘든 순간을 같이 했던 남자아이가 모르는 사람 보듯 해서 이러는 걸까? 하지만... 이 모든 건 그녀의 선택이다.며칠 전, 그녀는 어릴 적 강현수를 구한 사람이 자신이 맞다고 해도 강지혁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강지혁이 불안해하는 걸, 사랑하는 남자가 약해지는 모습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기에 기억 속 너머의 진실이 어떠하든 그녀는 이미 외면하기로 했다.‘그래, 이게 맞아.’임유진은 쓰게 웃고는 고개를 숙였다.한편, 강현수 옆에 있던 배여진은 적개심 가득한 눈빛으로 임유진을 힐끗 보고는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강현수를 쳐다봤다.임유진을 본 그가 또 어떤 이상한 행동을 할지 몰랐으니까. 전시회장에서처럼 또 임유진의 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불상사라도 벌어지면 그녀는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될 것이다.그녀의 친척들과 이웃 주민들은 배여진이 강현수의 여자친구가 되리라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상태이니까.다행히 강현수는 싸늘한 눈빛으로 임유진을 한번 바라본 후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았고 이에 배여진은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강현수가 진실을 알게 해서는 안 된다. 이대로 어릴 적 그를 구한 사람이 자신이라고 계속 밀어붙여야만 한다!외할머니에게 절을 한 후 배여진은 임유진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유진아, 강지혁 씨는? 같이 안 왔어?”“오후에 온대.”대답을 마친 임유진은 눈앞에 있는 자신의 사촌 언니를 빤히 바라봤다.배여진이 대체 뭐라고 했길래 강현수가 어릴 적 자신을 구한 사람이 배여진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었던 걸까? 그녀가 들려준 어린 시절 두 아이가 처했던 상황 때문에?임유진의 기억이 아직 돌아온 건 아니지만 어린 시절 자신이 정말 강현수와 있었던 일을 배여진에게 말해줬다고는 해도 그렇게 디테일한 부분까지 전부 다 얘기해 주지 않았
임유진이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어릴 적 강현수 씨 구해준 거. 정말 언니 맞아?”그러자 배여진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그게 아니면 현수 씨가 내가 뭐라고 이렇게 잘해주겠어?”“하지만 내 기억 속 언니는 산을 타고 노는 걸 싫어했던 것 같은데. 언니보다는 내가 더 잘 갔지.”그 말에 배여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너... 그 말 무슨 뜻이야? 내가 산속에 가서 노는 걸 좋아하든 아니든 그게 현수 씨를 구한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난 그날 우연히 산으로 간 것뿐이고 마침 현수 씨를 구하게 된 거야.”“마침? 우연히?”임유진은 정처 없이 흔들리는 배여진의 눈동자로 그녀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걸 거의 확신했다. 떳떳하다면 이렇게 흔들릴 이유가 없을 테니까.강현수를 구한 건 배여진이 아니다.“야, 너 뭐 하자는 거야?”배여진은 당황함을 감추려 일부러 화를 냈다.“네가 뭔데 자꾸 나랑 현수 씨 일에 끼어들려고 그래? 넌 네 일이나 잘해!”그러고는 씩씩거리며 자리를 떠났다.임유진은 천천히 시선을 내려 자신의 양손을 바라봤다. 만약 꿈속에서 봤던 그 장면이 정말 어릴 적 강현수를 구했던 장면이라면, 절벽 아래 있던 강현수를 힘껏 위로 끌어올린 것도 다리가 풀린 강현수를 일으켜 업고 산 아래까지 내려온 것도 전부 자신의 두 손이 한 일인 게 된다.‘그럼 강현수가 몸에 지니고 다녔던 그 은팔찌도 내 건가...?’어릴 적 그녀에게는 한 쌍의 은팔찌 있었는데 한쪽은 어쩌다 잃어버렸고 남은 한쪽은 어른이 된 후 외할머니가 대신 보관해주었다.하지만... 외할머니의 유품 중 은팔찌 같은 건 없었다.물론 오래전 물건이고 값이 나가는 것도 아니라 외할머니가 실수로 버렸을 수도 있다.임유진은 외할머니댁을 나와 어릴 적 살던 이 집을 바라보며 앞으로 다시는 이곳으로 발을 들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강씨 저택 기사는 임유진이 나온 걸 보고 그녀에게 다음 목적지에 대해 물었다.“외할머니 보러 산소에 갈 거예요.”그때 마침 임유진의 눈에 배여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