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마주쳤어. 그리고 내가 발을 삐끗하여 넘어질 뻔했는데 무심코 현수 씨 손을 잡고 나중엔 두통이 발작했어...”임유진은 사건 경과를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가 또 오해하면 안 되니까.“그럼 현수한테 했던 말도 전부 헛소리야?”그가 되물었다.임유진은 숨이 멎을 것 같고 목소리가 목구멍에 꽉 막혀 나오질 않았다.헛소리? 그건 절대 헛소리가 아니다. 그녀의 꿈속에서 소녀가 소년에게 했던 말이다.하지만 지금 이 문제를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속이고 싶진 않지만 진실을 찾기 전까지 말을 많이 하면 강지혁의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왜? 대답하기 어려워?”그녀의 침묵에 강지혁이 미간을 살짝 구기며 짙은 눈길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난 그때 이미 머리가 너무 아파 정신이 흐리멍덩해졌어. 무슨 말을 했던지 기억도 안 나.”이 말은 진심이다.다른 말은 그녀가 진실을 알아낸 후에 다시 강지혁에게 정확한 해답을 줄 수 있다.“그래?”강지혁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는 계속 임유진의 손목에 난 붉은 자국을 어루만졌다.“하지만 방금 왜 그렇게 현수 손을 꽉 잡은 거야?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면서도 손을 놓지 않았어.”“무심코 잡았을 뿐이야. 그때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거든. 내 마지막 동아줄이라고 생각하고 꽉 붙잡고 있었어...”그녀가 황급히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해명하면 할수록 강지혁의 낯빛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강현수가 언제 너의 마지막 동아줄이 되었지?”‘동아줄’이란 세 글자에 강지혁은 불안감에 휩싸였다.그리고 또다시 그녀가 강현수의 손을 꽉 잡고 있던 장면이 눈앞에 떠올랐다.순간 그는 저 자신이 소외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애초에 그녀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그녀는 강현수의 옆에서 잘 지내고 있었을 텐데.전에 강현수와 있었던 일을 다 잊었지만, 어릴 때 그에게 한 맹세도 다 잊었지만 몸이 기억하고 본능적으로 강현수를 꽉 붙잡았다!“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내 말은...”임유진은 횡설수설하며 자신의 단어 사용이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임유진은 줄곧 머리를 강지혁의 품에 파묻었다.강지혁은 그녀를 안고 침실에 도착해 조심스럽게 침대에 내려주었다.임유진이 몸부림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혁아, 내 말 좀 들어봐.”“그래, 말해. 들어줄게.”그는 넌지시 대답하며 넥타이를 풀고 그녀를 뚫어지라 쳐다봤다.임유진은 입술을 꼭 깨물고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졌다.‘안 돼, 정신 차려!’속으로 끊임없이 되뇌며 반드시 이 일을 똑바로 설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아까 날 구해준 마지막 동아줄이라고 한 건 단어 사용이 잘못됐어. 난 사실 그때 상황이 매우 긴박했고 그래서 그만... 그만 손을 잡은 거야...”그녀는 뒤로 갈수록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한편 강지혁은 이미 웃옷을 다 벗고 튼실한 가슴 근육을 드러냈다...그는 임유진의 앞으로 다가가 몸을 기울이고 그녀를 침대에 눕힌 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단어 사용이 잘못됐든 상황이 긴급했든 이 세상에서 네 목숨을 구해줄 마지막 동아줄은 오직 나야!”임유진은 멍하니 넋 놓았다. 그는 마치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알았어?”그가 얼굴을 더 가까이 들이밀자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볼에 닿았다.“응... 알았어.”임유진은 저도 모르게 그에게 대답했다.강지혁은 옅은 미소를 지었는데 그토록 요염할 수가 없다. 그는 이어서 임유진의 빨간 손목을 들어 올렸다.“앞으론 이 손으로 두 번 다시 강현수 잡지 마. 알았지?”그녀는 멍하니 넋 놓은 채 강지혁의 말을 들었다.“유진아, 넌 내 여자야. 네가 딴 남자의 손을 그렇게 꽉 잡고 있는 거 나 진짜 감당하기 힘들어.”손가락의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꽉 잡고 있던 그녀였다.“지금 이거... 질투야?”임유진이 나지막이 물었다.강지혁은 입꼬리를 씩 올리고 그녀의 손을 제 입술에 갖다 댔다. 그는 붉은 흉터 자국에 부드럽게 입맞춤하며 대답했다.“맞아, 나 질투 났어.”그는 지금 미친 듯이 질투하고 있다.두려움 속에서 이 질투가 점점 더 거세지고
강지혁은 허리 숙여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자상하게 하이힐을 벗겨주고 손으로 그녀의 발을 빼냈다.“유진아, 이 세상에서 날 지배하는 사람은 오직 너야!”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그는 고개 숙여 그녀의 발등에 키스했다...임유진은 숨을 깊게 몰아쉬었다. 그는 마치 인생을 걸고 그녀에게 맹세하는 것만 같았다. 목숨까지도 그녀에게 바칠 수 있을 것 같았다.발등이 순식간에 뜨거워 났는데 그건 강지혁의 키스 때문이었다.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목이 타들어 갈 것 같았다. 이때 강지혁이 고개 들어 그윽한 눈길로 그녀를 다정하게 바라봤다.임유진은 알고 있을까? 강지혁은 그녀에게 모든 걸 줄 수 있다. 그녀가 강지혁을 배신하지 않는 한!그녀를 너무 사랑해서 저 자신이 다 변해버렸다. 한 여자를 사랑하면 이토록 불안하고 두려움에 휩싸이는 걸까?자신의 가장 완벽한 모습을 오직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고 은밀하고 매혹적인 모습도 오직 그녀에게만 선사하고 싶다.그녀만 원한다면 뭐든 다 할 수 있다.“유진아, 나 버리지 마.”강지혁이 말을 내뱉었다.눈부시게 완벽한 이 남자를, 너무 매혹적이라 시선을 뗄 수조차 없는 이 남자를 어떻게 버릴 수가 있을까? 그의 옅은 미소에도 함정에 빠지듯 푹 빠져버릴 것만 같은데 말이다.“혁아...”그녀는 강지혁을 지배하고 싶지 않다. 서로가 함께하며 더 나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싶을 뿐이다!...다음날 임유진은 장난감을 사서 윤이 식당으로 갔다.아이는 그녀를 보자 예쁜 눈망울로 활짝 웃으며 앳된 목소리로 말했다.“이모, 너무 보고 싶었어요.”윤이는 이젠 발음에 전혀 문제없이 유창하게 말한다. 심지어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나은 편이다.아이는 태생이 총명하여 모든 걸 듣게 된 이후로 스펀지처럼 언어에 관한 지식을 쏙쏙 흡수하고 전에 몰랐던 지식도 탐구하고 있었다.“미안해, 이모가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 이제야 윤이 보러 왔어.”임유진이 장난감을 건네자 아이는 더 신나서 고맙다고 인사하더니 그녀의 볼에 선뜻 뽀뽀했다.임유진
"이경빈 씨 때문이에요?"사건을 뒤집으려면 어쩔 수 없이 이경빈과 마주쳐야 한다."나는 안돼요. 윤이의 존재를 알리면 안 되니까요. 만에 하나 그 사람이 윤이를 뺏으려고 하면 나는... 미쳐버리고 말 거예요."탁유미의 눈빛이 세차게 흔들렸다."유진 씨, 윤이는 내 목숨과도 같은 아이예요!"윤이를 향한 그녀의 마음을 임유진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아이 엄마가 되어 본 적은 없지만, 자신이 탁유미의 상황에 처하게 되면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고 아이를 지킬 수만 있다면 결백 따위는 뭐가 돼도 좋을 것이다."사실은 어제 이경빈 씨를 마주쳤어요."임유진의 말에 탁유미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전시회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윤이를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만나고 싶다고도 했고요."탁유미의 몸이 떨려왔다.윤이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그녀와의 아이는 질색했던 그가 지금은 윤이를 보고 싶어한다라...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잘 들어. 너는 내 아이를 가질 자격이 없어. 만약 네가 정말 임신을 한다고 해도 배 속의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는 일은 없을 거야!"이경빈은 잘생긴 얼굴로 싸늘하기 그지없는 말을 내뱉었고 그의 한마디는 칼이 되어 탁유미의 자존심과 사랑을 난도질해버렸다."그럼 유진 씨는..."하얗게 질린 얼굴로 탁유미가 긴장한 듯 입을 열었다."당연히 안된다고 했어요. 윤이 가족들이 방해받고 싶지 않아 한다고 연락처도 안 줬어요."탁유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 언니, 이번 전시회 3일 정도 열려요. 그러면 이경빈 씨도 당분간 S 시에 머무르게 되겠죠. 그러니까 요 며칠 외출은 최대한 삼가고 조심해요."임유진이 신신당부했다."알겠어요."저번에 이경빈이 S 시에 왔을 때는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지만, 과연 이번에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까?그때 탁유미 엄마가 윤이를 데리고 돌아왔고 탁유미는 아직 어린 아들의 얼굴을 보면서 말로 이룰 수 없는 불안함을 느꼈다.왠지 불길한 일들이 그들을 덮칠 것
이렇게 된 이상 꿈과 두통이 무슨 이유 때문이지 꼭 알아내야만 한다!임유진은 예약을 마친 후 통화를 마쳤다.같은 시각, 고이준이 대표사무실로 들어와 강지혁에게 보고했다."대표님, 방금 임유진 씨가 안은영이라는 의사에게 연락을 넣었고 내일모레로 예약을 잡았다고 합니다."강지혁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더니 펜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사인을 마치고 답했다."알겠으니까 나가 봐."고이준이 결재 서류를 들고 사무실을 나갔고 문을 닫는 순간 안쪽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강지혁은 결재하던 그 모습 그대로 의자에 앉아있었지만, 손은 멈췄다. 손에 들린 펜은 반으로 접혀 있었고 잘생긴 얼굴에는 어둠이 내려앉았다.기어이 잃어버렸던 기억을 찾으려는 건가? 강현수와의 그 추억을? 대체 왜? 임유진은 강지혁과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하고 싶다고 했으면서 왜 아직도 다른 남자와의 기억을 되찾으려는 거지?!아니면 강지혁이 아무리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의 발밑에 납작 엎드려도 임유진 마음속 강현수는 지워낼 수 없는 건가?..."너 무거워. 그래서 힘들어."여자아이가 불만을 표시했다."미... 미안해..."남자아이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는 자신이 설마 어느 날 여자아이의 등에 업히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발이 아파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고 한시라도 빨리 산을 벗어나지 않으면 나쁜 사람들에게 또 끌려갈 수도 있다.게다가 나쁜 사람은 둘째치고 여기서 조금만 더 시간을 지체하면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이 상황에서 에너지는 빠르게 고갈되어 정말 죽을 수도 있었다.여자아이는 아까 자신이 빠르게 내려가서 경찰을 불러오겠다고 제안했었지만, 남자아이는 무서웠다. 혼자 낯선 이곳에 남겨지는 것도 무서웠고 그녀가 돌아오지 않을까 봐 더더욱 무서웠다.이 모든 걸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여자아이는 그의 얼굴에서 두려움을 눈치채고 이렇게 말했다."역시 같이 내려가자!"같이... 이 얼마나 가슴 뛰는 단어인가.
하지만 강현수는 배여진을 만났음에도 이 치마와 원피스들을 그녀에게 선물하지 않았다. 그리고 은팔찌 또한 배여진에게 주지 않았다.마치 이 모든 걸 그녀에게 주게 되면 다년간의 그리움이 이대로 끝나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대체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요 며칠, 그의 머릿속을 지배한 건 전시회 당일 임유진이 두통을 호소하며 했던 말들이었다.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었다고?그녀가 세게 잡은 바람에 생겼던 손자국도 어느새 옅어갔다. 하지만 꽉 잡았던 그 감각만큼은 여전히 뼛속 깊이 새겨져 있었다."임유진, 대체 뭐가 진실인지 말을 해줘..."강현수는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옷들을 와락 끌어안았다. 마치 오래 기다렸던 연인을 끌어안듯이......"헉!"임유진이 잠에서 깨보니 눈앞은 깜깜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다.또 그 꿈이다. 꿈속에서 여자아이는 남자아이를 업은 채 계속 산 아래로 내려갔고 임유진은 이제 그 소녀가 느꼈던 힘든 상황까지 그대로 느껴졌다.아무리 힘들어도 소녀는 끝끝내 소년을 버리지 않았다.요즘 꿈을 꾸는 빈도가 점점 더 많아졌고 꿈속 장면들은 영화를 멈추고 재생하는 것처럼 매번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정말 그녀가 잃었던 기억인 건가?그러다 문득 임유진은 뭔가 이상한 느낌에 스탠드를 켜고 옆자리를 확인했다.옆에 있어야 할 강지혁이 없었다!임유진이 깜짝 놀라 시계를 보니 지금은 새벽 3시였다. 이 시간에 대체 어디를 간 걸까?그녀는 몸을 일으켜 강지혁의 원래 침실과 서재를 돌았다. 그러다 아래층까지 내려가 봤지만, 여전히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게다가 핸드폰까지 두고 간 탓에 연락도 할 수가 없었다.이 시간에 대체 어딜...그러다 임유진은 문득 별채를 떠올렸다. 그날도 늦은 시간이었고... 설마 또 거기로 간 건가?그녀가 황급히 뛰어가 보니 역시 예상대로 별채의 불은 켜져 있었다.‘역시 여기 있었나?’임유진은 계단을 올라 문을 열었고 그녀를 마주한 건 거실에 걸려 있는 그 흑백 사진이었다.이 사람
어떻게 그렇게도 쉽게 죽어버릴 수가 있는 거지? 왜 자신만 바라보는 아들이 있다는 생각은 못 하는 거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떠나보낸 강지혁이 어떻게 살아갈지는 한 번도 걱정이 안 됐던 건가?강선우라는 남자는 한 번도 강지혁의 처지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듯싶었다. 어린 강지혁에게 필요했던 건 아버지의 품과 사랑이었을 텐데...어머니도 잃고 아버지마저 잃은 강지혁이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할아버지와 어떻게 지냈을지 눈에 훤했다.이 큰 저택에서 사랑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오직 아이의 절절함만 있었을 것이다.임유진은 천천히 거실을 지나 옆 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그녀가 그때 봤던 것과 마찬가지로 강선우의 위패가 놓여 있었고 그 앞에는 그녀가 찾아 헤매던 남자가 꿈쩍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곧게 뻗은 그의 몸에 은은한 불빛이 내려앉으니 마치 강지혁만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임유진은 갑자기 코가 시큰거리고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대체 왜 이 순간 자신과 강지혁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가장 친밀한 관계여야 할 두 사람인데 말이다."혁아!"그녀의 목소리가 정적을 깨고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그러자 등지고 있던 몸이 흠칫하더니 천천히 뒤를 돌았고 까맣고 공허한 눈동자가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그와 눈이 마주친 임유진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강지혁과 처음 만났을 때 봤었던 그 눈빛이었다.마치 아무것도 필요 없고 심지어 저 자신도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그런 표정이었다."혁아!"그녀의 외침에는 초조함과 불안함이 섞여 있었다.강지혁은 차츰차츰 이성을 되찾았고 서서히 빛바랜 눈빛에서 다정하고 따뜻한 눈빛으로 돌아왔다.평소의 강지혁이다."여긴 왜 왔어?""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대체 이 늦은 시간에 여기는 왜 온 거야?"오늘은 특별한 날도 뭐도 아니었다.임유진은 그에게 다가오더니 손으로 그의 얼굴을 매만졌다. 지금은 7월이고 에어컨도
약해진 그로 인해 임유진의 불안도 더 커져만 갔다."갑자기 그런 말은 왜 하는 거야?""대답해. 넌 영원히 날 배신할 일 없어, 그렇지?"잔뜩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에는 애절함이 묻어있었다.임유진은 그의 말에 가슴이 아려왔다.대체 천하의 강지혁이 왜 이렇게도 절절하게 그녀를 향해 배신에 관해 묻는 걸까?!임유진의 시선이 그를 스쳐 지나가 강선우의 위패에 멈췄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당해 죽음을 택한 남자.그의 아버지는 그의 어머니에게 배신을 당했고 강지혁은 그의 아버지에게 배신을 당해 홀로 이 세상에 남겨졌다.강지혁의 눈빛은 아직도 그녀를 바라보며 답을 요구했다.뭐든지 다 가졌을 것만 같던 남자가 이토록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는 걸 그 누가 알았을까.임유진은 이 순간 그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그에게 확신을 주고 싶었다."난 절대 널 배신하지 않을 거야."그녀는 시선을 다시 강지혁에게로 돌려 그의 눈을 마주치며 더없이 단호한 말투로 얘기해주었다."맹세할 수 있어?""맹세해."임유진의 답이 떨어지자마자 강지혁은 천천히 볼을 그녀의 손바닥에 비비적거렸다. 따뜻한 체온이 차갑게 얼어붙은 그의 마음을 녹여주는 것 같았다.오늘 밤 강지혁이 이곳 위패 앞에 섰을 때 얼마나 비참한 기분이었는지 임유진은 모를 것이다.그는 몇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일이 마치 어제 일처럼 또렷했다."혁아, 너는 나처럼 누군가를 깊게 사랑하지 마. 사랑하면 할수록 상처받는 건 너일 테니까."강선우는 그렇게 당부했지만, 강지혁은 이미 누군가를 사랑해 버리고 말았다.다만 임유진은 그의 어머니가 아니고 그 역시 강선우가 아니기에 같은 결말을 맞이할 일은 없을 것이다."방금 했던 말 꼭 기억해."강지혁은 그녀의 손에 가볍게 키스했다."유진아, 네가 날 배신하면 나는 정말 못 견딜 거야."만약 그 어느 날, 임유진이 그를 배신하는 날이 오게 되면 강지혁은 아마 그녀도 같이 망가트려 버릴지도 모르겠다....다음날, 임유진이 잠에서 깨보니 강지혁은 옆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