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도 분명 잘생기고 그녀에게 엄청 잘해주는데 왜 연예인 덕질하는 열정을 그에게 퍼붓진 못하는 걸까? 휴대폰에 그의 사진을 찾아보려 해도 그림자조차 없다.“방금 고주원 본 거야?”그는 한지영의 휴대폰을 뒤져보다가 그녀가 임유진과 채팅하는 걸 발견했는데 화보는 바로 임유진이 보내준 사진이었다. 그리고 채팅창에 한지영이 쓴 글을 보니... 색마가 따로 없었다!백연신은 볼수록 울화가 치밀었다. 대체 누가 남자친구인지 제대로 한번 알려줘야 할 듯싶다!“맞아요.”한지영이 솔직하게 대답했다.“유진이는 운이 좋아서 강지혁 씨가 고주원 영화 시사회에 데리고 갔대요. 고주원을 직접 봤고 이 화보들도 전부 고주원이 선물해줬대요.”“고작 영화배우의 화보일 뿐인데 무슨 쓸모가 있다고.”백연신이 투덜대자 한지영은 기분이 확 언짢아졌다. 그녀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쏘아붙였다.“어머? 지금 영화배우 무시하는 거예요?”백연신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지고 한없이 짙은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왜? 걔 편이라도 들게?”차갑고 싸늘한 목소리에서 위압감이 흘러넘쳤고 가슴이 움찔거린 한지영은 바로 머리를 숙였다. 덕질이 아무리 좋아도 일단 제 목숨은 지켜야 하니까!“그게... 나도 그냥 한번 해본 말이잖아요.”그녀가 주눅 들어서 대답했다.“그래?”백연신은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어디 한번 말해봐. 대체 고주원을 얼마만큼 좋아하는 거지?”“그냥 그래요.”한지영이 바보가 아닌 이상 솔직하게 제 마음을 털어놓을 리가 있을까? 게다가 그녀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어디 한두 명도 아니고 말이다.“그럼 난? 난 얼마만큼 좋아해?”백연신이 되물었다.한지영은 허리를 곧게 펴고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난 인제 연신 씨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매일 연신 씨 못 볼 때마다 보고 싶고 그래요.”이런 거짓말쟁이!백연신이 속으로 구시렁댔다. 그녀의 표정만 봐도 지금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으니까. 그가 백씨 일가의 오너가 되기 전에도 그에
한지영은 하마터면 음식 먹다가 사레들릴 뻔했다. 겨우 입안의 음식을 다 넘기고 머리 들어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한없이 짙은 그의 눈빛이 그녀를 훤히 꿰뚫어 볼 것만 같았다.“그건...”한지영은 입술을 꼭 깨물고 힘겹게 변명을 둘러댔다.“연신 씨가 가끔 너무 차갑게 느껴지고... 또 마치... 마치 아름다운 장미 같아서 가시 박힌 장미는 감상만 할 뿐 만지면 가시에 찔리잖아요. 그래서... 저기 그러니까... 연신 씨랑 스킨쉽 하는 것도 망설여진 거예요.”그녀는 말하면서 마음이 가차 없이 찔렸다. 그 당시 그와 뜨거운 관계를 나눴더니 정작 그녀에게 어떤 결말이 차려졌던가. 이젠 흑심을 품었다 해도 두 번 다시 그럴 엄두가 안 난다!‘퉤! 흑심이라니. 난 그저 앞으로 더이상 연신 씨랑 귀찮게 엮이고 싶지 않을 뿐이야.’“근데 너 예전엔 날 전혀 안 피했잖아. 피하긴커녕 네가 먼저 덮쳤으면서.”백연신이 쓴웃음을 지었다.한지영은 숨이 확 막혔다. 그해 실수가 지금의 결과를 가져올 걸 미리 알았더라면 때려죽여도 술에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땐 내가 취해서 인사불성이었잖아요. 연신 씨도 내 주량 알면서. 나 술 마시면 바로 취하고 일단 취하기만 하면 말이나 행동 모두 절제할 수 없다는 거 잘 알면서 왜 그래요. 그때 그 일은 술김에 그런 거지 절대 본심이 아니었다고요...”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졌다. 그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해서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다가 마지막엔 침에 사레들릴 지경이었다.“하긴, 진심이었다면 다음 날 말 없이 떠나가지도 않았겠지.”백연신이 말했다.“...”한지영은 순간 또 한 번 폭격을 당한 것만 같았다.백연신은 종업원을 불러와 와인 한 병을 주문한 후 바로 병을 따서 그녀에게 한 잔 부었다.한지영은 두 눈을 깜빡이며 와인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 사람이 설마...“마셔.”백연신이 담담하게 말했다.“나 금방 취해요.”한지영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나 취하면 또 어떻게
발그스름한 두 볼과 반쯤 감은 두 눈, 머리는 그의 어깨에 기대고 차 안에 온통 짙은 술 냄새를 풍겼다.그녀는 취했지만 백연신은 정신이 아주 맑았다.가끔은 그도 한지영처럼 쉽게 취하고 많은 생각을 제쳐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문득 백연신의 몸이 굳었다. 한지영이 작은 손으로 그의 가슴을 꼼지락대기 시작했다.이 여자는 술에 취해서도 얌전히 있는 법이 없다.“한지영, 너 지금 뭐 하는 거야?”백연신이 묻다가 저 자신이 우스웠다. 술에 취한 여자에게 물어봤자 뭔 소용일까? 그녀는 인사불성이 되어 있는데 말이다.그런데 이때 한지영이 대답했다.“뭐하긴요. 연신 씨 만지고 있죠...”다 알고 있다니, 백연신은 쓴웃음을 지었다.“술 깨면 또 후회할 텐데?”말은 그렇게 하지만 가슴을 만지작거리는 그녀의 손을 내려놓기 싫었다.한지영은 그런 그를 신경 쓰지 않은 채 계속 꼼지락대며 뭐라 중얼거렸는데 잠시 후 고개를 살짝 들어 애써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연신아... 나 비밀 하나 알려줄게.”백연신은 미간을 살짝 구겼다. 비밀이라니? 술에 취한 여자가 무슨 비밀을 얘기한다고...“너... 가까이 좀 와봐. 비밀은 귀에 대고 속삭이는 거야...”그녀가 계속 중얼대며 미간을 구겼다. 둘 사이의 거리가 멀어 기분이 언짢은 듯싶었다.백연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그녀를 쳐다본 후 몸을 기울이고 그녀의 입가에 귀를 바짝 갖다 댔다. 술기운과 그녀의 체취가 어우러졌는데 이상하게도 향기로운 냄새가 났다.백연신은 술 냄새가 밴 여자를 제일 싫어하고 역겨워하는데 한지영은 예외였다.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한지영의 입술이 무심결에 그의 귓가에 닿았다. 순간 백연신은 몸을 움찔거리며 그녀가 겨우 내뱉는 말에 집중했다.“사실 난... 네 몸매가 고주원보다 훨씬 좋아... 걔는... 너랑 비교가 안 돼.”쿵쾅쿵쾅!백연신의 심장이 제멋대로 요동쳤다. 귓가에 울려 퍼지는 건 그녀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그의 심장 소리도 있었다.“그리고 있잖아 연신아... 나 너 좋
‘잠깐! 뭐라고? 내가 술을 마셔?!’한지영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눈을 떠보았는데 방안의 천장이 훤히 보였다. 그녀는 어젯밤 기억을 조금씩 되새겼다.어젠 백연신과 함께 야식을 먹었고 와인을 꽤 많이 마셨고... 그렇게 술에 취한 듯싶었다.그 뒤론...머릿속 기억들이 퍼즐처럼 하나씩 맞춰졌는데 백연신 차에 탔고 차 안에서 그를 만지작댔던 기억이 났다!그 뒤론... 백연신에게 뭐라 말한 것 같은데 그 부분은 아무리 애써도 생각나지 않았다!한지영은 결국 포기하고 생각을 접었다.부디 백연신을 욕하는 내용만 아니기를, 속 좁은 백연신이 또 그녀에게 복수하려고 애를 쓸 테니까.한지영은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섰는데 부모님과 정면으로 마주쳤다.“너는 여자애가 돼서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셔? 어제 연신이가 너 데려왔으니 망정이지 그 만취 상태로 나쁜 사람이라도 마주쳤으면 어쩔 뻔했어!”그녀의 엄마가 딸을 보자마자 한없이 나무랐다.“연신이가 적게 마시라는데 기어코 과음했다며. 여자애가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셔? 아이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참!”그녀의 아빠도 잔소리 행렬에 가담했다.한지영은 쉴 새 없이 머리를 끄덕이며 잘못을 반성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론 백연신만 원망했다. 어제 그녀에게 술을 권한 건 바로 부모님이 말하는 백연신이니까.아쉽게도 백연신은 이미 그녀의 부모님께 잘 보여서 무한대로 믿으신다! 매번 백연신이 그녀 집으로 찾아올 때마다 부모님이 하도 열정적으로 반겨주셔서 누가 친자식인지 의심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한지영은 이후에 백연신과 이별하면 부모님이 받을 충격이 얼마나 클지 가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겨우 화장실로 도망친 그녀는 거울 속 제모습을 들여다봤는데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피부가 좋은 편이지만 이목구비가 고만고만하여 봐줄 만한 외모일 뿐 절세미인은 아니었다.어려서부터 연애란 걸 못 해봤고 백연신과는 조금은 수상한 연애를 하고 있지만 나름대로 첫 연애였다.이후에 또 연애하게 된다면 그땐 아마
연예계 바닥은 조금만 이상한 낌새를 맡아도 말도 안 되게 부풀려서 외부에 퍼뜨리는 법이다.요즘 그녀와 강현수가 오랫동안 공개석상에 함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제작팀에서 소문이 파다한데 다들 그녀가 버림받은 거라고 추측하는 눈치이다.하여 임유라는 빨리 강현수와 함께 공개석상에 모습을 내비쳐서 이 소문들을 잠재워야 한다.하지만... 강현수의 모습조차 볼 수 없으니 애가 탈 지경이다.“장 비서님, 한 번만 더 얘기해줄 순 없나요? 나 진짜 일 있어서 꼭 만나야 해요.”임유라가 자세를 낮추고 비서에게 부탁했다.“정말 죄송합니다. 대표님께서 만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비서는 그녀에게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았다.임유라는 상대의 눈빛에 담긴 야유와 깔보는 듯한 경멸의 뜻까지 느낄 수 있었다.장 비서는 그녀가 강현수에게 버림받고 너덜너덜해질 걸 이미 예상이라도 했을까?! 임유라는 속으로 별생각이 다 들었고 여기 계속 남아있어봤자 본인 자존심도 못 챙긴다는 걸 잘 알고 있다.그녀는 마지못해 일단 자리를 떠났다. 로비 주차장 근처에 차 댈 곳을 찾아놓고 주차한 후 여기서 강현수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예정이다.오늘 그녀는 제작팀에 일부러 하루 휴가 내고 강현수를 만나러 왔다.한편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아주 잠깐 사이에 강현수의 차가 바로 나타났고 그녀는 재빨리 뒤따라갔다.강현수는 20분 동안 질주하더니 전혀 멈출 기미가 없이 아예 고속도로를 향해 달렸다.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임유라는 의아해하며 그를 따라 한 시간 남짓 달렸고 끝내 작은 산 부근에서 차를 세웠다.강현수에게 들킬까 봐 그녀는 조금 멀리 주차했다.지금 도착한 이 마을은 임유진의 외할머니가 살던 마을이라 임유라도 어릴 때 아빠 따라 두 번 와봤다.강현수가 왜 여기에... 임유라는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강현수는 저 멀리 작은 산 앞에서 꿈쩍 않고 서 있었다.저 산... 무슨 특별한 점이라도 있나? 임유라는 살금살금 다가가더니 불쑥 걸음을 멈추고 온몸이 돌
저 사람은... 강현수?!그는 흰 셔츠에 베이지색 긴바지를 착장하여 살짝 캐쥬얼한 분위기를 냈다. 검은 머리는 살짝 헝클어졌고 건장한 체구와 정교한 이목구비가 차가운 달빛에 드리워 은은하게 빛났다.그는 평소와 조금 달라 보였는데 짙은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평소의 차분한 분위기와는 달리 좀 더 아련해 보였다.임유진은 그 눈빛이 조금 불편했고 그녀를 훤히 꿰뚫어 보는 것만 같았다.강현수는 그녀에게 한 걸음씩 다가왔는데 순간 그의 몸에서 술 냄새가 확 퍼졌다.“술 마셨어요?”그녀가 물었다.“네, 조금요.”강현수는 가볍게 웃으며 그녀를 더 그윽하게 바라봤다.임유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너무 늦은 시각이라 난 이만 돌아가야 해요, 안녕히 계세요.”그녀는 말하면서 자리를 떠나려 했다.다만 걸음을 내딛자마자 강현수가 덥석 그녀를 잡아당겨 품에 끌어안았다.임유진은 한없이 넓은 품에 안겨 독한 술 냄새를 맡았다. 방금 서 있을 때보다 더 강렬하게 코를 찔렀다.‘이건 절대 조금 마신 게 아니야! 대체 얼마나 마신 거지?!’“이거 놔요!”임유진이 소리쳤지만 그는 여전히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말해. 대체 어떻게 해야 널 찾을 수 있어?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찾았는데 왜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거야? 못 찾겠다고, 도저히 못 찾겠단 말이야...”임유진은 몸이 움찔거렸다. 강현수는 지금 그녀를 딴사람으로 잘못 알고 있는 걸까? 그녀에게 하는 말 같지는 않은데...“강현수 씨, 일단 이거 놔요. 많이 취하셨어요.”임유진이 몸부림쳤지만 그가 너무 꽉 끌어안아서 꼼짝할 수 없었다.이럴 때 보면 남자와 여자는 힘에서 확연한 차이가 난다.“취해? 진짜 취했으면 좋겠어. 내가 얼마나 취하고 싶은지 알아?”강현수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청량한 그의 목소리에 아픔이 살짝 담겨 있었다.“날 누구로 착각했는진 모르겠지만 일단 이거 좀 놔요. 안 놓으면...”“안 놓으면 뭐?”그가 고개 숙여 그녀에게 얼굴을 들이댔다. 둘의 콧등이 거의 닿
이 눈물은 그녀도 전에...순간 그녀는 바늘로 콕콕 찌르듯이 머리가 아파 났다.“그거 알아? 난 네가 너무 보고 싶어, 너무너무 보고 싶어.”강현수가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그녀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고 입술이 곧 그녀 입술에 닿을 것만 같았다.찰싹!청아한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임유진의 오른손 손바닥이 뜨거운 열기와 함께 저릿해졌다. 그녀는 방금 너무 심하게 강현수의 뺨을 내리쳤다.강현수는 머리가 한쪽 옆으로 기울어졌고 주변 공기마저 차갑게 얼어붙었다.둘 사이에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그는 한참 후에야 서서히 고개 돌려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좀전의 아련한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전보다 훨씬 맑은 눈빛이었다.그녀를 구속했던 두 손도 천천히 놓아주고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걸음을 휘청거리며 근처의 차에 올라탔다.임유진은 그제야 손을 들어 고통스러운 듯 머리를 감싸 안았다.방금 강현수가 눈물 흘리는 모습에 왜 머리가 이토록 아픈 걸까? 마치 무언가에 자극받은 것처럼 마음속 깊숙이 괴로움이 솟구쳤다.‘왜, 대체 왜 이렇게 괴로운 거야? 내 몸이 본능적으로 강현수가 우는 걸 못 견디겠다고 말해주는 것 같잖아.’임유진도 이 느낌을 대체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그 시각 멀지않은 음침한 모퉁이에서 임유라가 이를 악물고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임유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오늘 그녀는 줄곧 강현수를 따라다녔는데 그는 마을에선 바보같이 멍하니 몇 시간이나 서서 산을 바라봤고 그녀도 다리가 저리도록 뒤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이어서 강현수는 마을의 식당에 가서 술을 마셨다. 한잔, 두잔, 마치 취하려고 작정한 듯이 술을 퍼마셨는데 그녀는 그런 강현수의 모습을 처음 봤다.그때까지도 임유라는 내심 흐뭇했다. 오늘 밤 강현수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면 그녀에게 좋은 기회가 차려질 거라고 김칫국부터 마셨다.기회를 봐서 그에게 다가가면 오늘 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게 될지도 모른다.그런데 강현수는 결국 이리로, 임유진을 찾아왔다.심지어
임유진은 문득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이렇게 묵묵히 강지혁을 바라보는 것도 안구 정화되는 흐뭇한 일이었다. 두 사람이 지금처럼 지낼 거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일할 때의 강지혁은 고도로 집중하여 빨리 수중의 서류를 훑어보는 동시에 펜으로 끊임없이 체크하며 빠른 속도로 검토한다. 게다가 노트북 너머의 임원에게 후속 업무를 분부하는 것도 잊지 않고 일사천리로 해결한다.그런 강지혁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임유진은 문득 감개무량해졌다. 전에 누군가가 남자는 일할 때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했는데 지금 보니 정말 그런 듯싶다.모두가 알다시피 강지혁은 상업계의 빅 보스이다. 강씨 일가는 백 년을 대물림받은 재벌가이지만 그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보스는 아니다. 막강한 집안 세력을 보유한 건 사실이지만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나락으로 떨어질 테니까.강씨 일가가 현재까지도 승승장구하고 있고 강지혁 본인의 지위도 끄떡없는 건 전부 그가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이다.임유진은 그의 옆모습을 그윽하게 바라봤다. 그녀의 각도에서 보면 강지혁의 날카로운 콧날과 선명한 얼굴 윤곽, 섹시한 입술과 날렵한 턱선이 유난히 매력적이었다.강지혁은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는데 긴 속눈썹이 드리워져 예쁜 음영을 주었다.그의 눈은 유달리 예뻤다. 그 두 눈으로 그녀를 바라볼 땐 영롱한 빛이 반짝이고 마치 애틋한 감정이 한가득 쌓여있는 것처럼 자꾸만 더 보고 싶게 만든다.“눈이 참 예뻐.”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이 말이 스쳐 지나갔다!화들짝 놀란 임유진은 머리가 또다시 지끈거렸다. 이건 그녀가 누구한테 해줬던 말일까?문득 그녀의 머릿속에 강현수의 흐느끼던 얼굴이 뜬금없이 나타났다.‘헐, 내가 왜 강현수를 생각하고 있지!’그녀는 힘껏 머리를 내저으며 강현수의 얼굴을 애써 지우려 했다.“왜 그래? 머리를 왜 그렇게 흔드는 건데?”이때 강지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임유진이 고개를 번쩍 들자 강지혁이 어느새 그녀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