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유진이가 오늘 남자친구까지 데려왔는데 우리가 어딜 감히 괴롭히겠어요. 지금 얘 남자친구를 깍듯이 모셔도 모자랄 판이라고요.”셋째 이모가 비아냥거렸다.한편 외할머니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남자친구? 우리 유진이 남자친구 생겼어? 어서 이 할미한테도 보여줘야지!”“네, 지금 바로 데려올게요.”임유진이 말하면서 밖으로 나갔다.셋째 이모는 언짢은 듯이 말했다.“엄마, 아직 기뻐하긴 일러요. 유진의 남자친구는 기생오라비처럼 생겨서 사기꾼일지도 모른다고요!”어찌 됐든 셋째 이모는 조카딸 유진이가 훌륭한 남자친구를 찾아서 제 딸보다 더 잘나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됐다! 유진이는 신중해서 남들 한두 마디에 쉽게 넘어갈 애가 아니야. 사기꾼인지 아닌지는 내가 알아서 판단해!”외할머니가 말했다.셋째 이모는 입술을 비죽거렸다. 임유진이 강지혁을 데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오자 외할머니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이분이 바로 유진의 남자친구야?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임유진이 막 소개하려 할 때 강지혁이 선뜻 입을 열었다.“강지혁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지혁이라고 불러주세요 할머니.”강지혁은 웃어른을 향한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이 모습에 임유진은 흠칫 놀랐다. 평상시에 그가 이런 말투로 누군가와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극히 드물었으니까.“그래, 반가워 지혁아.”외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우리 유진이는 착한 아이야. 다만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앞으로 잘 좀 부탁할게.”“네, 할머니. 유진이는 제 평생 하나뿐인 여자입니다. 유진이 말곤 절대 다른 사람 선택하지 않아요.”강지혁이 진지하게 대답했다.임유진은 얼굴이 빨개지고 강지혁의 옷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너무 직설적으로 말하지 말라고 눈치를 줬다.그런데 외할머니의 이어진 말이 더 직설적이었다.“그럼 우리 유진이랑 결혼할 생각이야?”외할머니는 이 질문을 건넬 때 탁한 두 눈이 갑자기 예리해졌다. 마치 강지혁을 훤히 꿰뚫어 볼 것처럼 말이다.“네.
강지혁은 허리 숙여 그녀에게 바짝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일러?”“...”임유진은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외할머니는 한숨을 내쉬곤 외손녀의 손을 잡아당겼다.“이르긴 뭐가 일러. 이 할미는 하루빨리 우리 유진이 시집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단 말이야.”임유진은 흠칫 놀랐다. 할머니가 손을 어루만진 순간 그녀는 할머니가 전보다 훨씬 야위고 뼈밖에 안 남아 손이 앙상해진 걸 발견했다.뼈 위에 얇은 가죽을 한 층 씌운 것처럼 살결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외할머니는 그녀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늙으셨다.임유진은 가슴이 찡하고 속상한 표정이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났다.“어머, 왜 또 속상한 표정이야?”외할머니가 그녀의 손등을 가볍게 쓰다듬었다.“네가 지금 잘 지내고 또 이렇게 옆에서 챙겨주는 사람도 있으니 이 할미는 한시름 놓인단다. 이젠 저세상으로 가도 네 어미 볼 낯이 있겠구나.”“할머니, 그런 말 하지 말아요!”임유진이 재빨리 말을 가로챘다. 그녀는 외할머니가 이렇게 떠나는 게 너무 두려웠다. 인제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은 외할머니뿐이니까!“그래, 그래, 안 말할게. 몇 년은 더 살아야지. 그래야 우리 유진이 결혼하고 애 낳는 모습도 볼 수 있지.”외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임유진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할머니께 드리려고 사 온 다과 세트를 꺼내 공손히 권했다.세 사람은 얘기를 더 나눴고 외할머니는 강지혁의 집안 상황을 물었다. 강지혁에겐 할아버지 한 분만 계시고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그가 어릴 때 매정하게 그를 버렸다.“지혁이랑 우리 유진의 경력이 꽤 비슷하네. 얘도 엄마가 돌아가고 내 옆에서 한동안 지냈었어.”외할머니는 말씀하시다가 문득 뭔가 떠오른 듯싶었다.“나 여기 유진의 어릴 때 사진도 있는데 한 번 볼래?”“네.”강지혁이 바로 대답했다.임유진은 쑥스러운 듯이 할머니께 응석을 부렸다.“할머니!”“어서 그 앨범 꺼내와.”외할머니가 임유진에게 분부했다.강지혁과 외할머니의 따가운
“그래? 참 다행이야, 서로 달라서.”강지혁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딴 여자가 임유진의 얼굴을 하는 것은 원치 않으니까.그래도 어릴 때 서로 닮은 것은... 나름대로 좋은 일이었다.강지혁이 시선을 아래로 떨구자 긴 속눈썹이 짙은 눈동자를 가렸다. 순간 눈가에 스친 생각과 계략도 그대로 가려졌다......강지혁과 임유진은 남아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 무렵이 되자 외할아버지 노준태가 돌아왔는데 임유진한테도 쌀쌀맞으니 강지혁에겐 더 싸늘할 따름이었다.임유진은 외할아버지의 태도에 이미 적응했지만 강지혁까지 그렇게 대하니 못내 걱정스러웠다.강지혁의 신분에 누군가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리는 없으니까.한편 강지혁은 그녀에게 미소 지으며 마치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걱정하지 말라고 눈빛으로 암시했다.이에 임유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밥 먹을 때 외할머니는 매우 즐거워하시며 입맛도 평소보다 좋아지셨다.다만 옆에서 밥 먹던 배여진이 참지 못하고 비난 조로 말을 내뱉었다.“아 참, 할아버지 모르셨죠? 유진이가 이젠 환경위생과에서 나와 배달 일을 하고 있대요. 배달이 좀 힘들긴 해도 부지런히 일하면 돈도 많이 벌 수 있을걸요.”“배달이 자랑이야?!”노준태가 시큰둥하게 말했다.“수년간 공부하더니 결국 배달 일을 해? 낯부끄러운 줄도 모르고.”임유진은 사색이 되었고 외할머니가 그녀를 위해 앞장서줬다.“이 영감탱이가 못하는 말이 없어! 유진이는 지금 자력갱생하고 있어요. 남의 것을 훔치고 뺏은 것도 아닌데 뭐가 낯부끄러워요?!”“진작 이럴 거면 그땐 뭣 하러 오랜 시간 공부했어! 차라리 여진이처럼 일찌감치 나와서 돈이나 벌지.”노준태가 쏘아붙였고 배여진이 한마디 덧붙였다.“유진아, 난 네가 좀 더 분발해서 가족들 체면을 세워줄 줄 알았는데 법을 배운 사람이 음주운전이라는 치명적인 범죄를 저지를 거라곤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앞으론 더는 그러지 마. 저번에 감방 다녀온 일로 우리 집안이 마을에서 체면이 다 깎였단 말이야.”외할머니의
“그래, 그래. 우리 유진이가 제일 효도하네.”외할머니는 웃으며 대답했다.효도? 임유진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만약 진짜 효도한다면 외할머니를 집으로 모셔가서 직접 보살펴줘야 한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강지혁의 집에서 지내기에 할머니를 모시고 가서 보살펴주려면 사전에 강지혁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할머니만 괜찮으시다면 유진이더러 할머니를 S 시로 모시고 가서 보살펴드리게 할게요.”이때 불쑥 강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임유진은 화들짝 놀란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거라곤 예상치도 못한 듯싶었다.외할머니도 흠칫 놀라더니 웃으며 대답했다.“성의만 받을게. 난 여기서 지내는 거에 이미 적응됐어. 게다가 아들, 딸도 있는데 외손녀가 보살펴주면 사람들이 뭐라 해. 나중에 몸이 좀 나아지면 그때 다시 너희들 보러 S 시로 갈게.”외할머니는 고개 돌려 임유진에게도 말했다.“이만 가보거라. 늦기 전에 S 시에 도착해야지.”임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다음에 또 뵈러 올게요.”외할머니와 작별인사를 마친 후 임유진과 강지혁은 차를 타고 시동을 걸어 서서히 외할머니 집에서 멀어져갔다. 임유진은 백미러로 줄곧 제자리에 서 계시는 할머니를 바라봤다. 할머니는 차가 멀어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두 사람을 배웅했다. 임유진은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오늘 외할머니를 뵈러 왔지만 할머니는 예전보다 확연히 늙은 모습이었다. 큰 병을 앓고 난 후 비록 다 회복했지만 할머니의 몸은 전보다 많이 못 해졌다.노인들은 원기를 회복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한 듯싶다.“외할머니 걱정되면 내가 방법을 생각해볼게. 사람 시켜서 할머니를 S 시로 모셔올 수도 있어.”강지혁의 목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졌다.임유진은 묵묵히 고개를 내저었다.“아니야. 외할머니는 집에 머물면서 잘 쉬면 몸이 빨리 나아지실 거야.”삼촌, 이모들이 얼마나 효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체면은 꼭 지켜야 한다.마을 사람들과 거의 다 알고 지내는 사이인데 삼촌, 이모들이 외
강지혁은 임유진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이렇게 그녀를 보고 있으면 평소 항상 팽팽한 긴장감 속에 있던 마음이 드디어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를 찾게 된 것처럼 말이다.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의 겉모습을 보고 그가 화려한 생활만 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겠지만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돈과 권력을 많이 거머쥘수록 더욱더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것이 강지혁의 인생이다.지금 강씨 가문이 S 시에서 군림하고 있다고는 하나 조금이라도 책잡히는 일이 생기면 지금까지 구축해온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항상 매사 신중해야 하고 뭔가를 결정할 때 몇 수 앞을 내다보고 행동해야 한다.그러니 이런 그에게 편안함이란 사치와도 같았고 지금 이런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임유진밖에 없을 것이다.차가 휴게소에 도착한 후 강지혁은 물을 사러 갔고 임유진은 시선을 옆으로 돌려 운전석의 운전대를 바라봤다.그녀는 처음 운전대를 잡았을 때의 두근거리는 기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운전면허 학원도 그녀가 첫 월급으로 지급한 것이다.그때의 임유진은 운전면허를 딴 바로 1년 뒤에 끔찍한 악몽이 자신에게 찾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운전대를 잡아본 게 대체 얼마 만이지?임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운전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윽고 손가락이 운전대를 만졌을 때 그녀는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녀의 머릿속에는 당시 교통사고의 장면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때 그녀는 재빨리 운전대를 돌려 상대방의 차를 피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고 그녀는 돌진해 오는 차에 부딪혀 그대로 기절했다.얼마나 기절해 있었을까? 한 몇십 초 아니면 1분... 2분...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머리를 매만져 보니 손에는 피가 흥건했고 어렵게 차 밖으로 나왔을 때 돌진해 온 차량에 불이 나고 있었다그녀는 기어서라도 눈앞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어떻게든 끄고 싶었지만 불은 이미 차량을 덮친 상태였다...임유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
강지혁은 생수병을 임유진에게 주려고 조수석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하얗게 질린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다급하게 물었다."왜 그래? 어디 아파?""아니, 난... 난 그냥..."임유진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한마디도 할 수 없었고 그 모습에 강지혁은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녀의 이마에는 땀이 흥건했고 한 손은 아직도 운전대를 꽉 잡고 있었으며 몸은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 차 있어 공황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그냥 뭐?"강지혁은 생수병을 옆에 놓은 후 운전대를 잡은 그녀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고는 천천히 그녀의 손을 운전대에서 멀리 떼어냈다."내가 옆에 있어.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말고 나 좀 봐."강지혁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맴돌았고 그녀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심호흡을 길게 두 번 하고서야 비로소 떨리는 몸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임유진은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다 지난 일이고 이제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라고 되뇌며 천천히 눈을 떠 강지혁을 바라보았다."괜찮아. 그냥 사고 당시 기억이 떠올라서 그래.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운이 좋았어."임유진의 말대로 그녀는 정말 운이 좋았다. 만약 그녀가 조금이라도 운이 나빴더라면 절대 그 사고에서 멀쩡히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이게 바로 어떻게든 살길은 있다는 것일까? 하늘은 그녀에게 시련을 내려주고서도 그녀의 목숨은 앗아가지 않았다.그녀가 간신히 진정됐을 때, 강지혁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쥐더니 자신의 품에 꽉 끌어안고는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파묻은 채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이에 임유진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혁아, 왜 그래?"임유진에 이어 이제는 강지혁까지 이상증세를 보이고 있다. 아까 임유진이 사고 당시 얘기를 꺼내며 운이 좋았다고 했을 때 강지혁의 머릿속에는 사고 당시 자료들이 스쳐 지나갔다.자료에서는 임유진이 탄 차가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고 만약 충돌 위치가 조금만 더 옆으로 빗나갔더라면 그녀가 타고 있던 차도 불길에 휩싸였을 것이라고
강씨 저택으로 돌아온 후, 강지혁은 사용인에게 따뜻하게 데워진 한약과 사탕 그리고 초콜릿을 가져오라고 했다.임유진은 한약을 희망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분명히 쓴데도 전혀 쓰게 느껴지지 않았다. 운이 좋으면 자신의 아이를 가질 수 있으니까.강지혁은 초콜릿을 까더니 임유진에게 건네주었고 그녀는 당연하게 입을 벌려 그의 손에 든 초콜릿을 받아먹었다. 그러다 실수로 그의 손가락을 깨물어 버리고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미안해."임유진이 얼른 말했다,강지혁은 그녀에게 깨물린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로 가져가고는 물었다."많이 달아?"그의 목소리는 마치 여름밤의 산들바람처럼 그녀의 마음을 간지럽혔다.임유진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는 강지혁이 물어보는 게 초콜릿임을 알면서도 마치 그의 손가락이 다냐고 물어보는 것처럼 느껴졌다.입안에 있는 초콜릿은 그녀의 구강 온도에 서서히 녹아들었지만, 그녀는 초콜릿을 음미할 겨를이 없었다."달아?"그의 계속되는 질문에 임유진은 심장이 뛰는 걸 느끼며 그의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보이지 않는 힘이 그녀를 끌어당기듯 시선을 돌리 수가 없었다.강지혁의 눈빛, 표정, 그리고 손짓 하나하나까지 마치 당연히 이끌릴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녀를 그렇게 끌어당겼다."달아."임유진이 간신히 두 글자를 내뱉자 강지혁은 예쁘게 웃더니 천천히 허리를 숙이고는 예쁜 얼굴을 그녀의 눈앞에 갖다 댔다."누나, 나 사랑해주면 안 돼?"강지혁은 이토록 누군가의 사랑은 바란 적은 임유진이 처음이고 그는 그녀가 자신을 사랑해야만 이 갈증이 해소될 것 같았다.사랑해 달라고? 임유진은 아직도 그의 얼굴에 취해 정신이 몽롱해서는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었다.임유진이 강지혁을 좋아하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사랑? 만약 사랑한다고 하면 그녀는 과연 그를 어느 정도로 깊이 사랑할 수 있을까?그녀가 막 입을 벌려 얘기를 하려고 할 때 강지혁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덮쳐왔고 임유진은 그제야 입안 가득 퍼진 초콜릿 향을 느낄 수 있었다.정말 달아.
강지혁은 마치 소중한 것을 다루듯 그녀의 얼굴을 매만졌고 천천히 입술을 열고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나 좀 사랑해줘. 응?"마치 구걸하듯 그녀의 사랑을 바라는 그의 모습에 임유진은 저도 모르게 입술이 바짝 타는 것을 느끼며 혀로 입술을 살짝 핥았다. 그러고는 마치 그의 숨결에 잠식된 사람처럼 사고가 멈춰버린 채 몽롱한 얼굴을 했다.청초한 얼굴, 검은 눈동자, 앙증맞은 코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눈빛, 강지혁은 마치 덫에 걸린 사람처럼 평생 그녀에게 벗어날 수 없음을 느꼈다.한때 그는 여자의 사랑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 생각은 임유진을 만나고 나서 싹 다 사라져버렸고 그녀를 갖고 싶고 그녀의 사랑을 갖고 싶다는 생각만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그녀와 마주할 때면 그는 자존심과 지금까지 옳다고 생각해왔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있었고 온전히 새로운 감정에 자신을 맡기고 싶었다.강지혁의 입술이 다시 그녀의 입술을 포개왔고 그는 부드러운 키스로 그녀를 녹이기 시작했다.그때 임유진이 정신을 차리고는 빨개진 얼굴로 강지혁의 가슴팍을 밀어버렸다."나... 나..."버벅대며 말하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명백한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임유진은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얼굴에 서린 두려움을 본 강지혁은 눈빛이 점차 맑아지더니 곧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임유진은 지금 겁을 먹었다. 아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가 혹은 아직은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강지혁은 그녀를 하루빨리 갖고 싶다는 마음에 급하게 몰아붙여 미처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미안해..."강지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임유진이 너무나도 갖고 싶지만 결코 이런 식은 아니었다. 그는 그녀가 진심으로 원할 때, 그때 관계를 맺고 싶었다.강지혁은 서서히 몸을 일으킨 후 웃음을 자아내려고 노력하며 그녀를 향해 말했다."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누나가 싫으면 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