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어요... 유진 씨한테 아무 말 안 할게요.”탁유미는 잠시 머뭇거렸다.“비록 지금 유진 씨가 강지혁 씨 여자친구란 걸 알게 됐지만 저는 애초에 유진 씨를 이용할 마음 같은 건 없었어요. 앞으로도 당연히 없을 거고요. 유진 씨를 채용한 이유는 저처럼 감방 생활도 했고 측은지심이 들어서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었어요.”강지혁의 눈가에 스친 싸늘함이 조금은 가셨다.“유미 씨랑 이경빈 씨 사이의 일은 간섭하지 않을게요. 저는 그저 유진이가 이곳에서 시름 놓고 일하기만 바랄 뿐이에요. 유진이한테 무슨 일 생기면 언제든지 저한테 연락 주세요.”말을 마친 강지혁은 자신의 전화번호를 탁유미에게 알려줬다.탁유미는 냉큼 받아적었다. S 시에서 강지혁의 번호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탁유미는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의 번호를 얻게 됐다.강지혁은 그녀와 이경빈의 일을 간섭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녀의 행방도 이경빈에게 알리지 않겠다는 뜻이겠지.탁유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강지혁은 줄곧 가게에 있었고 임유진과 함께 가게에서 저녁까지 먹었다.하루일과를 마친 후 식당 동료들은 임유진에게 기가 막힐 정도로 잘생긴 남자친구가 있다는 걸 다 알게 됐다.동료들은 강지혁의 정체를 미처 몰랐다. 임유진이 그들 앞에서 ‘혁아’라고만 불렀으니까.동료들은 임유진이 돈 많은 남자친구를 만나서 부잣집 사모님이 될 운명이라고 장난치듯 수다를 떨었다.이에 임유진은 담담하게 웃을 뿐이었다.만약 동료들이 그가 강지혁이란 걸 알게 돼도 계속 농담할 수 있을까? 아니면 임유진과 강지혁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단정 지어 버릴까?강지혁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임유진에게 말했다.“누나네 가게 사장님 참 괜찮은 분이야.”“맞아, 유미 언니는 참 좋은 분이야.”임유진도 대답하다가 문득 뭔가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아참, 내일 윤이 수술 날이라 유미 언니랑 언니네 어머님이 병원 가서 윤이 병간호해야 해. 그럼 며칠 동안 가게 문 닫을 거라 나 출근 안 해도 돼.
요 며칠 강지혁은 계속 임유진의 방에서 그녀와 한 침대에 누워 잔다. 둘이 잠자리를 나누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저 어느새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진 듯 보였다.물론 임유진은 처음에 잘 때 불을 켜야 하는 버릇 때문에 거절하기도 했었다."계속 불을 켜야 해서 너 제대로 못 잘까 봐 그래. 그냥 네 방으로 가는 게 어때?""나는 누나랑 자면 불을 켜고 자도 괜찮아."강지혁의 괜찮다는 말에 임유진도 더는 뭐라고 할 수 없었다."잘 거야?"벌써 침대에 누운 강지혁은 임유진이 자신 쪽으로 걸어오는 걸 보더니 물었다."응."임유진은 살짝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서 말했다. 그녀가 이불을 걷고 침대에 눕기도 전에 강지혁의 팔은 벌써 그녀의 허리를 감싸 꽉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마치 아이가 애교부리듯 얼굴을 그녀의 몸에 파묻었다.평소와는 다른, 조금은 아이 같은 강지혁이 모습이 임유진은 싫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더 좋아했다."참, 오늘 강현수 씨가 한 말 무슨 뜻이야?"임유진은 갑자기 그 장면이 떠올랐는지 물었다."무슨 말?"강지혁이 되물었다. 그는 지금 그녀를 안고 있는 이 순간에 더 집중하고 싶은 듯 보였다. 그는 이대로 임유진을 계속 끌어안은 채 그녀의 향기에 파묻히고 싶었다."아직 너와 등지고 싶지 않다고 했던 말 말이야."임유진은 강지혁과 강현수가 사이가 좋은 거로 알고 있다. 하지만 오늘 했던 그 말은 마치 두 사람이 곧 등질 수도 있는 사이처럼 들렸다.만약 강지혁과 강현수가 정말 적이 되어버린다면 아마 S 시의 금융권과 연예계를 포함한 모든 업계에서 한차례의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말 그대로야."강지혁이 답했다."하지만 뭔가 이유가 있어야 하잖아."임유진은 호기심 가득해서 물었다."혹시 강현수 씨가 네 비즈니스를 뺏으려고 했어?""아니, 누나를 뺏으려고 했어."강지혁의 말에 임유진은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강지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밤하늘처럼 까만 눈동자로 그녀와
"하지만 어차피 강현수가 누나를 아무리 좋아하고 뺏겠다고 선포한들 절대 못 뺏을 거야, 그치? 누나는 날 좋아하니까. 사랑한다고 해도 그건 나일 테니까, 안 그래?"강지혁의 음성이 그녀의 귀를 간지럽혔다. 그는 말을 마치고 천천히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강지혁은 임유진을 그 누구에게도 내 줄 생각이 없다. 그녀는 강지혁의 것이어야 하니까....다음 날 아침, 임유진이 잠에서 일어나보니 강지혁은 벌써 출근하고 없었다. 그녀는 아침 식사를 마친 후 강지혁의 도시락을 쌀 준비를 했다.맛있는 도시락을 싸기 위한 도시락통, 갖가지 식자재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셰프까지 있었다. 임유진이 요리하다 도움이 필요하면 옆에서 도와주라고 강지혁에게 명 받았을 것이 분명했다.그래서 그런가? 도시락의 완성 상황을 보더니 임유진은 오늘 자신의 음식 솜씨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임유진은 도시락을 들고 GH 그룹에 도착했다. 강씨 집안 운전기사가 그녀를 데려다주는 바람에 경비원들은 모두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이제는 GH 그룹의 많은 직원이 이 미스터리한 배달원 아가씨가 보통 여자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녀의 스쿠터가 단기간 안에 차량으로 바뀔 줄은 몰랐다.그리고 몇 명의 눈썰미 좋은 경비원들은 임유진이 타고 온 차량이 강지혁의 차라는 걸 알아챈 듯싶었다. 운전기사도 강지혁의 운전기사였으니까 말이다.회사 대표의 운전기사가 직접 운전해줬으니 이제 그녀가 강지혁과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임유진은 이곳으로의 잦은 배달로 경비원들과도 친해졌기에 지나가면서 인사도 먼저 건넸다."안녕하세요.""네... 네... 안녕하세요..."경비원들은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이었다.임유진은 도시락을 들고 그 누구의 방해도 없이 강지혁이 있는 곳까지 올라왔다. 이제 해당 층에 있는 모든 직원이 임유진의 존재를 알고 있고 자신들의 대표와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음, 대표님 안에
정확히 다 알아들을 수 있었기에 더 민망한 상황이 되어버렸다.강지혁이 입을 열었다."그 여자 맞아.""오, Hyuk, 대체 그 여자와 무슨 사이야? 연인인 거야?"아마 여기 있는 직원이었으면 절대 해당 외국인처럼 대놓고 물어보지 못했을 것이다.그때 강지혁이 영어로 한마디 더 보탰다."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야."그 말에 임유진은 누군가가 자신의 심장을 꽉 부여잡은 것처럼 심장박동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회의가 끝나고 강지혁은 임유진의 곁으로 다가왔다."왜 그래? 얼굴이 빨간데?""아, 아무것도 아니야."임유진이 빨개진 얼굴로 시선을 피하자 강지혁은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이리저리 보더니 물었다."혹시 아까 저 사람들이 했던 얘기 때문에 그래?"임유진은 침묵으로 긍정했다."조만간 기회가 되면 소개해 줄게."강지혁이 말했다."응?!"임유진이 놀란 듯 묻자 강지혁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왜, 싫어?"임유진은 강지혁과 눈이 마주치고는 보이지 않는 압박감 같은 것을 느꼈다. 마치 여기서 ‘싫어’ 라고 대답하면 그 말이 도화선이 되어 강지혁이 뭔가 할 것만 같았다.임유진은 잠깐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우리가 연인이 된 지 얼마 안 됐기도 했고, 아까 저 사람들은 해외 지사 임원진들 아니야? 그런데 벌써 소개하는 건 좀... 빠르지 않나?""빠르다고?"강지혁은 미소를 짓더니 그녀의 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난 오히려 늦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누나가 빠르다고 생각되면 누나가 괜찮을 때 소개해 줄게."임유진은 그제야 안심한 듯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저기... 이제 식사 해야 하니까 이 손 좀 치워줄래?"임유진은 아직도 자신의 볼을 감싸고 있는 강지혁을 보며 민망한 듯 말했다."말랑말랑한 게 기분이 좋아서 놓고 싶지 않아."강지혁은 그녀의 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이것도 중독될 것 같아."임유진은 이걸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좀 혼란스러웠다.강지혁은 그렇게 한참을 더 만지작거리다 아쉬운
전화기 너머로 탁유미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진 씨, 우리 윤이 수술 성공적으로 끝났어요. 의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두 날 정도 적응하고 나면 소리를 듣는 훈련을 시작할 수 있대요.""너무 잘됐네요."임유진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네, 그럼 이따 오후에 윤이 보러 갈게요."임유진은 윤이가 있는 병원과 병실을 전해 들은 후 통화를 마쳤다."그 귀가 안 들린다는 아이 말하는 거야?""응,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대. 이따 어차피 할 것도 없으니까 병원에 가보려고."임유진이 웃으며 말했다."같이 가.""응? 같이?"강지혁의 말에 임유진이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물었다."하지만... 너 회사는 어쩌고?""비서한테 오후 일정을 뒤로 미루라고 하면 돼. 어차피 오늘은 급한 일도 없어."강지혁은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지만, 임유진은 이런 큰 규모의 회사에서 대표인 그에게 ‘급하지 않은 일’따위는 없다는 걸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왜, 나랑 같이 가는 게 싫어?"임유진의 반응에 강지혁이 되물었다."아니, 그건 아니고."솔직히 말하면 강지혁이 같이 가겠다고 했을 때 뜻밖이긴 했지만 조금 설렜다."그럼 같이 가는 거로 결정 난 거지?"임유진이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그렇게 어느 정도 배가 불러올 때쯤 강지혁이 입을 열었다."누나, 앞으로도 이렇게 나를 위한 요리를 자주 해주면 안 돼?"그러자 임유진이 고개를 들었고 강지혁의 까만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강지혁은 씩 웃더니 손을 들어 그녀의 입가에 묻은 밥풀을 떼주었다. 임유진은 민망함에 얼굴이 또 핑크색으로 물들었다."응?"강지혁은 되물으며 그녀의 답변을 기다렸다."나 셰프님처럼 맛있게는 못해.""상관없어. 난 누나가 만든 음식이 좋은 거니까."임유진은 강지혁이 아무리 음식에 까다롭지 않다고 해도 집에 있는 셰프님의 요리를 놔두고 왜 굳이 자신이 만든 ‘일반 음식’을, 그것도 자주 먹고 싶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냥 기분 좋아지라고
임유진은 강지혁의 마음속에 자신이 정말 그렇게나 소중할까 싶기도 했다. 두 사람이 알고 지낸 지 이제 고작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까지 깊어질 수 있나?하지만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임유진에게 강지혁이 이런 정성을 들여가며 거짓말할 이유는 또 없다."누나, 응?"강지혁은 또다시 거절하지 못하게 만드는 목소리로 그녀의 대답을 바라고 있었다."그... 그럼 시간 날 때 많이 해줄게."임유진은 지금 전례 없이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는 걸 느꼈다."그래."강지혁은 그제야 만족한 듯 옅게 웃었다.임유진은 얼른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탁자 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막 도시락통 덮개를 덮으려고 할 때 그녀는 ‘아!’하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을 웅크렸다."왜 그래?"강지혁이 다급하게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손톱이 좀 부러진 것뿐이야. 이따 집에 가서 손톱깎이로 자르면 돼."임유진은 평소 정기적으로 손톱을 깔끔하게 자르곤 했지만 요즘 많이 바쁜 탓에 신경을 못 썼더니 평소보다 손톱이 자라있었다."어디 봐봐."강지혁은 그녀의 손을 잡아 자세히 들여다봤다."이 손가락 맞아?"그는 임유진의 검지를 가리키며 물었다. 손톱 겉 부분이 조금 부러지긴 했지만 자른 후 조금 다듬기만 하면 된다."응.""잠깐만."강지혁은 바로 핸드폰을 들어 여비서에게 연락했다."혹시 손톱깎이 있어?"임유진은 그 말에 경악하고 말았다.그리고 똑같이 경악한 사람이 또 한 명 있었으니, 바로 전화를 받은 여비서였다. 그녀는 설마 회사 대표가 자신에게 손톱깎이 유무에 관해 물어볼 줄은 몰랐다.여비서는 심히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손톱깎이를 들고 대표이사실로 들어왔다."대표님, 여기 요구하신 손톱깎이입니다."여비서는 공손하게 그에게 손톱깎이를 건네주었다."그래, 이제 나가 봐."여비서는 조용히 대표이사실 문을 열었고 막 닫으려 할 때 안쪽에서 한없이 다정한 강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움직이지 마."비서는
그렇게 몇 분이나 흘렀을까, 임유진의 지시 아래 강지혁은 드디어 그녀의 부러진 손톱을 예쁘게 자를 수 있었다. 임유진은 차라리 자기가 하는 게 더 빠를 것 같다며 약간의 피로감을 느꼈다.하지만 그에 반해 강지혁은 이것마저도 중독이 된 사람처럼 그녀의 다른 손가락을 펴보더니 씩 웃으며 전부 자르기 시작했다.그는 그녀의 다른 손톱까지 다 자르고 나서도 뭔가 아쉬운 듯 말을 꺼냈다."혹시 또 손톱이 자라게 되면 내가 해줄 테니까 누나는 손대지 마.""..."임유진은 강지혁의 모습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아직 점심이라 윤이를 보러 가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강지혁은 다시 책상 앞으로 가서 회사 일을 처리했고 임유진은 핸드폰을 꺼내 이것저것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그때, 인기 검색어 하나가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클릭해보니 거기에는 임유라에 관한 기사가 올라와 있었는데 임유라가 사랑과 커리어를 동시에 획득한 인생 승자라는 내용이었다.임유라는 곧 S 시에서 열리게 될 GF파티에 강현수의 파트너로 동행한다고 쓰여있었고 파티에 참석하는 인사들은 모두 S 시에서 알아주는 거물들이었다. 그로 인해 임유라는 다른 사람들 입방아에 한창 오르내리고 있는 강현수와의 결별설을 일축할 수 있게 됐다.기사에는 임유라가 브랜드 모델이 됐을 때 찍었던 사진 그리고 유명 잡지 표지모델이 됐을 때 사진들도 함께 첨부되었다.임유라는 지금 확실히 잘나가고 있었다. 다만... 그녀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강현수가 남자친구로서 지원해 줬기에 가능했다는 걸 임유진은 잘 알고 있었다.강현수와 헤어지고 나면 분명히 임유라는 더 이상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고 아마 헤어짐조차도 유쾌하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강현수는 귀찮게 달라붙는 걸 질색하는 사람이었고 그가 들러붙는 전 여자친구들에게 얼마나 무정한 사람이었는지 임유진은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봤었다.그럼 임유라는 강현수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임유진은 임유라를 걱정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실소했다
대체... 얼마나 잔 거야!"깼어? 좀 더 잘래?"강지혁의 목소리에 임유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나 왜 안 깨웠어? 깨우지...""너무 잘 자길래 그대로 좀 더 자게 뒀어."강지혁이 답했다."윤이 보러 가기로 약속했는데..."임유진은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보고 다행히 3시밖에 안 된 걸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시간은 충분할 거야. 지금 가자."강지혁은 몸을 일으켜 옆에 걸려있던 외투를 입고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임유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뭔가 생각났는지 자신의 머리를 매만졌다. 역시 잠을 잔 탓에 머리는 이미 헝클어져 있었고 그녀는 머리끈을 풀고는 빠르게 다시 묶었다. 이 모든 행동이 고작 6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고 강지혁은 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원래도 그렇게 빨리 했었어?""아니, 전에는 시간이 좀 오래 걸리긴 했는데 감옥 생활을 하다..."임유진은 거기까지 말하고 말을 멈췄다. 그녀의 감옥 생활이 두 사람에게는 좋은 추억은 아니었으니까."미안해."강지혁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아, 아니야... 네가 날 감방에 일부러 넣은 것도 아닌데."임유진은 무거워진 분위기를 다시 살려보려고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감옥 생활이 힘들긴 했지만, 그 대신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됐어. 어떤 사람이 진정한 내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가면을 쓰고 나한테 접근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됐거든." 그게 아니었더라면 임유진은 지금까지도 독선적인 사랑과 혈육의 정에 바보처럼 허우적대고 있었을 것이다.강지혁은 조금 어두워진 얼굴로 임유진을 향해 물었다."누나는 그 가면 쓰고 접근하는 사람이 나일까 봐 두렵지는 않아?"그러자 임유진이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는 피식하고 웃었다."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나한테 네가 가면을 쓰고 접근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뭔데?""그러게, 누나 말이 맞네."강지혁은 옅게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가자."임유진은 자신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