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유미가 말했다.“미안해요. 윤이가 평소에는 이렇지 않은데 유진 씨랑 친해지고 싶나 봐요.”“괜찮아요. 저도 윤이 좋아요.”임유진은 말하면서 윤이를 안아 올렸다.윤이는 그제야 발버둥 치지 않고 고분고분하더니 임유진에게 안긴 후, 그녀를 보며 씩 웃었다.약간 주눅들고 조심스러운 웃음이라 임유진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윤아, 안녕?”임유진은 인사를 건네고 손을 들어 녀석의 머리를 만졌다.다만 아이는 그녀의 목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었고,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옆에 있던 탁유미는 아들과 임유진의 모습을 보고 눈 밑에는 어둠이 스쳤다.‘윤이가 유진 씨를 그 사람으로 착각했나? 그래서 오늘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나? 아쉽게도... 그 사람은 영원히 만날 수 없단다, 윤아.’“언니, 나중에 수화 좀 가르쳐줄 수 있어요? 윤이와 간단한 교류를 하고 싶어요.”임유진은 탁유미를 보며 말했다.탁유미는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네, 물론이죠.”임유진은 아이와 잠시 놀았지만, 수화를 할 수 없었기에 서로 대화가 원활하지 않아 탁유미가 옆에서 도와야 했다.점심때가 되자 임유진은 배달을 시작했다.틈틈이 축전지차를 연습해 보았더니 큰 문제는 없었다. 축전지차는 자전거처럼 일단 배우기만 하면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타도 곧 손에 익을 수 있었다.하지만 배달할 때 임유진은 최대한 속도를 조절하며 적응하려고 노력했다.식당은 점심 타임에 배달이 많고, 오후 1시 30분이 지나면 배달 주문량이 줄어들었다.임유진은 오후 2시가 조금 넘었을 때 겨우 시간이 비어서 점심을 먹었다.“힘들어요?”탁유미가 물었다.“괜찮아요.”임유진은 웃으며 대답했다. 현재의 그녀는 돈을 벌어야 했기에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가끔 너무 바쁘면 밥 먹는 시간이 많이 늦어지곤 해요.”사실 탁유미도 임유진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비어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참, 윤이 몇 살이에요? 유치원 안 가요?”임유진은 옆에서 과일을 먹고 있는
게다가 탁유미는 카운터도 책임지고, 음식도 나르고 테이블도 정리하며 뭐든 조금씩 거들었다. 장사가 바빠지면 전혀 짬이 나지 않았다.능력의 한계일 뿐, 탁유미는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 있었다.3시가 넘었을 때, 가게에는 또 주문이 들어왔다. 파인애플 빵과 밀크티를 주문했다.하지만 임유진이 배달 장소를 보았을 때 멍해졌다.“왜요? 뭔 문제라도 있어요?”탁유미는 음식을 준비하고 임유진에게 건네면서, 그녀가 배달장소 용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아니에요.”임유진은 대답하고 파인애플 빵과 밀크티를 받았다.방금 그 주소는 바로 임유진이 전에 일했던 로펌이었다. 지금 배달을 하러 가면 당연히 옛 동료들을 만날 것이다.로펌에서 잘 나가던 임유진은 곧 낭패한 꼴을 보이게 될 것이다.임유진은 마음속으로 씁쓸했지만, 이 업종을 종사하기로 한 이상 피할 수 없었다.인생은 길고, 아는 사람을 만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감옥에 갔다 왔다고 해서, 초라하다고 해서 그들을 만날 수 없는 건 아니었다.‘괜찮아. 익숙해지면 돼!’임유진은 마음속으로 자신을 위로하며 음식을 축전지차에 싣고 떠났다.로펌에 가까워질수록, 그녀에게 익숙한 도로가 펼쳐졌다. 임유진은 로펌 입구에 도착해 고개를 들어 현대식 빌딩을 바라보았다.그녀가 처음 이 빌딩에 왔을 때, 얼마나 의기양양했는가. 심지어 경험을 쌓고 독립하여 자신의 로펌을 설립할 계획도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임유진은 배달 음식을 들고 익숙한 층 버튼을 눌렀다.로펌의 유리문 앞에서 임유진은 배달을 주문한 전화번호를 눌렀고, 대학을 갓 졸업한 듯한 젊은 여자가 걸어 나왔다. 아마도 새로 온 신입일 것이다.“감사합니다.”젊은 여자는 물건을 넘겨받고 말했다.바로 이때, 로펌의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임유진을 알아보고 말했다. “어머, 유진 씨 아니세요? 근데...”그녀는 젊은 여자가 들고 있는 배달 음식을 보며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음식 배달하는 거예요?”
하지만 강지혁은 임유진의 팔을 잡더니 강한 힘으로 끌어당겨 자신의 품에 넣었다.임유진은 무의식적으로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의 두 손은 더욱 힘을 주어 더 꽉 껴안았다.“잘 자라는 인사가 너무 성의 없잖아!”강지혁은 임유진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말했다.임유진은 몸이 약간 떨렸다. 남자의 호흡 소리가 자신의 귓가에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고, 마치 온몸이 그의 숨결에 휩싸인 것 같았다.“이거... 놔.”임유진은 말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첫 출근이 어땠는지 좀 말해줄래?”“그냥 음식 배달이지 뭐. 손님이 주문하면 갖다주고.”임유진은 심장박동이 점점 빨라지고, 혈액의 흐름도 훨씬 빨라지는 것 같았다.“그래? 그럼, 밥은 잘 챙겨 먹었어?”그의 목소리는 또다시 임유진의 귓전에 울렸다.“응, 사장님이랑 같이 먹었어. 하루 두 끼는 챙겨주시거든.”얼굴이 너무 뜨거워 타오를 것 같은 이상한 느낌에 임유진은 크게 당황했다. 강지혁이 빨리 그녀를 놓아주기를 원하고 있었다.하지만 강지혁은 놓아주기는커녕 오히려 얼굴을 그녀 앞에 갖다 댔다.“긴장하고 있어?”강지혁이 불쑥 물었다.“아... 아니.”임유진은 단박에 부인했다.“하지만 누나 얼굴이 너무 빨개.”그는 미소를 짓더니 허리를 굽히고 임유진의 볼에 가볍게 키스했다.“나 때문에 얼굴이 빨개진 거야?”“아.... 아니라고.”그녀의 몸이 뻣뻣해지더니 말까지 더듬었다.“거짓말.”임시혁은 가볍게 꾸짖었지만, 사랑스러움이 묻어 있었다.임유진은 입술을 깨물고 그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그의 가슴에 닿은 손은 힘을 쓸 수 없었다.두려워서일까? 강지혁을 밀어낸 후과를 과연 그녀는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순간, 임유진도 자기 마음을 잘 알지 못했고 머릿속이 복잡했다.한참 후에야 강지혁은 그녀를 풀어주었고, 그녀의 입술을 가볍게 만지며 웃었다.“잘자, 누나...”임유진은 황급히 도망갔다.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자신의 볼을
새벽, 임유진이 침대에서 깊이 잠들었을 때, 두 방 사이의 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한 줄기의 긴 그림자가 들어섰다.평소 차갑던 눈동자에는 침대 위의 여자를 바라보며 애틋함이 가득했다.“잘자, 누나.”그의 목소리에는 사랑과 갈증이 가득했다....임유진이 다음날 출근했을 때, 점심에 가게에는 무려 30인분이나 되는 단체 주문이 들어왔다.평소 임유진은 한 번에 7~8인분의 음식을 배달하는데, 단번에 30인분이라니. 거의 식당 점심 풀타임에 달하는 양에 가까웠다.탁유미는 서둘러 배달 음식을 준비한 다음 이유진을 보고 말했다.“이따가 수고해 줘요.”“그럼 다른 주문들은 어떡하죠?”임유진이 이걸 배달하면, 다른 작은 주문들은 배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괜찮아요. 이따가 저희 어머니한테 윤이를 재우고 카운터를 봐달라고 하고, 내가 직접 배달하면 돼요. 어차피 차가 한 대 더 있어요.”탁유미가 말했다. 그녀에게 이 주문은 오늘의 큰 매출이었다. 완성하면 십여만 원을 벌 수 있으니, 그녀는 아주 기뻤다.임유진은 배달 주소를 받은 후 침묵했다... 바로 GH 그룹이었다.하지만 주문서에 적힌 이름과 휴대폰은 강지혁이 아닌 모르는 사람이었다.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우연의 일치일 것이다.탁유미가 포장을 마치고, 임유진은 음식을 싣고 GH 그룹으로 향했다.30인분을 배달하는 것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한꺼번에 30인분을 들 수 없었기 때문에 차를 밑에 세운 다음 몇 번에 나눠서 올릴 생각이었다.하지만 그녀가 차를 멈추었을 때, 경비원이 다가와 물었다.“혹시 임유진 씨인가요?”“네, 맞는데요.”임유진은 경비원이 바로 자신의 이름을 부를 줄 몰라 멍했다.“이 배달 음식을 카트에 올려놓으면 편하실 거예요.”경비원은 말하면서 또 다른 경비원 두 명을 불렀다.두 경비원은 이동식 스테인리스 스틸 카트를 밀고 임유진의 옆에 다가와 자연스럽게 30인분의 음식을 카트에 옮겼다.임유진은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다. 경비원들은 분명 그녀가 배달하
한편, 임유진은 카트를 밀고 빌딩 안으로 들어섰고, 프런트 직원은 이름을 묻더니 방문 등록 절차까지 생략하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었다.이 모든 상황에 임유진은 점점 자신의 추측을 확신하게 되었다. 배달 주소에 적힌 주소에 도착하자 늘씬하고 커리어룩을 입은 여성이 다가왔다.“임유진 씨죠? 배달은 제가 시켰어요. 여기 두고 가시면 돼요. 이건 대표님 사무실로 갖다주세요.”임유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의 추측이 거의 확실시되는 순간이었다.대표 사무실... 강지혁은 GH 그룹의 대표이다. 그러니 이 음식을 강지혁의 사무실로 갖다주라는 것이다.임유진은 배달 음식 두 봉지를 들고 강지혁의 사무실로 향했다. 어두운 통나무 문 앞에 서서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에야 노크했다.“들어와요.”안에서 소리가 들려왔고, 임유진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강지혁은 사무실 책상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서류를 보고 있었다.“주문한 배달 음식 찻상에 올려놓겠습니다.”임유진은 입술을 오므리고 말했다.강지혁은 고개를 들어 그녀가 올려놓은 찻상의 음식을 보았다.“벌써 가려고?”그는 말하면서 몸을 일으켜 책상을 돌아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다시 가게 가서 배달해야 해.”“점심은 먹었어?”강지혁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임유진은 눈을 깜박이며 잠시 반응하지 못했다.“안 먹었나 보네. 나랑 같이 먹자. 누나가 일하는 집 식당 맛이 어떤지 궁금했어.”강지혁은 말하면서 그녀의 손을 끌어당기고, 두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누르며 소파에 앉혔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일어서려고 했지만, 어깨에 눌린 힘 때문에 전혀 일어날 수 없었다.“너...”그녀는 고개를 들고 강지혁을 쳐다보았다.“왜? 나랑 밥 먹기 싫어?”강지혁은 활짝 웃으며 물었다.“나 진짜 가봐야 해.”“그래?”그의 눈동자는 점점 어두워졌다.“그렇다면, 배달 음식 전부 환불할 거야.”임유진은 순간 눈앞에 있는 사람은 강지혁이라는 것이 생각났다.강지혁과 같은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거절을 쉽게 받아들일
임유진은 도시락을 받아 들고 고개를 숙이고 허겁지겁 먹었다. 빨리 다 먹고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빨리 가고 싶어서 허겁지겁 먹는 거야?”강지혁의 목소리는 사무실에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콜록...”임유진은 사레에 걸려 하마터면 입에 있는 음식을 내뿜을 뻔했다. 손을 가리고 계속 기침을 했고 급기야 얼굴이 빨개졌다.겨우 기침을 그쳤지만, 입을 가리고 있던 손에 사레가 들린 쌀알이 묻어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휴지로 손바닥을 닦으려고 했다.다만, 그녀가 휴지를 집기도 전에, 강지혁은 그녀의 손을 끌어당겼다.임유진은 손목을 비틀었지만 빠져나올 수 없었다.“더러워. 내가 닦을게.”“더럽다고?”강지혁은 가볍게 웃었다.“하나도 안 더러운데?”강지혁은 말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그녀의 손바닥에 대고는 쌀알들을 하나하나 핥았다.임유진은 순간 온몸이 굳었다.“됐네.”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서운함까지 묻어났다.임유진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고, 손안의 쌀알이 이미 강지혁에 의해 핥아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강지혁은 여전히 그녀의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름다운 눈동자로 그윽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누나 손바닥에 있는 밥 너무 맛있다. 좀 더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강지혁의 말에는 마치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았고, 그의 눈빛에는 욕망이 가득했다.임유진은 눈을 늘어뜨리고 그의 시선을 피했다. 강지혁의 눈은 마력이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다행히 강지혁은 임유진의 손을 계속 잡고 있지 않았다. 강지혁의 손가락에 힘이 풀리는 순간, 임유진의 손도 마침내 자유를 얻었다.임유진은 식사를 이어갔다.잠시 후, 그녀의 귓가에는 강지혁의 목소리가 들렸다.“누나랑 같이 밥 먹고 있으니까, 꼭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네.”임유진은 순간 움찔했다.옛날, 꿈만 같던 그 ‘옛날’, 어쩌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강지혁’에 관한 모든 것도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묻혀 있었다....임유진이 식당으로
그 모습을 본 탁유미가 물었다."왜 이렇게 적게 먹어요? 음식이 입에 안 맞아요?"소규모 가게에서는 손님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 주방장이 대충 요리를 만들어서 직원들끼리 같이 식사를 한다."아니요. 오늘 아침을 좀 많이 먹었나 봐요."그러다 임유진은 옆에 앉아있는 윤이를 보더니 말했다."그럼 맛있게 식사하세요. 저는 윤이 과일 먹이고 있을게요."그렇게 임유진은 사과 한 알을 가져와 껍질을 벗기고 먹기 좋게 썬 후 윤이 입에 넣어주었다. 윤이는 음식을 받아먹는 아기 새처럼 임유진이 주는 족족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맛있게 먹었다.과일을 다 먹은 윤이는 졸음이 밀려오는지 하품을 하고는 임유진을 향해 양팔을 벌리며 안아달라는 자세를 취했다. 그에 임유진은 너무 자연스럽게 아이를 품에 안고 재우기 시작했다.윤이는 임유진이 흥얼거리는 자장가 소리가 들릴 리가 없는데도 자그마한 손으로 그녀의 입술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마치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윤이는 임유진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곤히 잠든 아이를 보며 임유진은 이처럼 사랑스러운 아이가 아무런 소리도 안 들리는 세상에 갇혀버렸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파져 왔다.그녀는 윤이가 인공와우를 착용한 후 더는 그 어떤 불편함 없이 세상을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이제 방으로 데려가서 재울게요."탁유미의 엄마가 임유진에게로 다가오더니 조심스럽게 윤이를 안아 들었다. 가게의 뒤편에는 작은 집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탁유미와 그녀의 엄마 그리고 윤이까지 이렇게 세 명이 모여 살았다.탁유미는 임유진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유진 씨는 꼭 좋은 엄마가 될 거예요."좋은 엄마라... 임유진은 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탁유미를 향해 그저 옅게 웃어 보였다.임유진에게 엄마가 될 기회 같은 건 이제 없다. 그녀가 교도소에 있을 때 다른 죄수에 의해 자궁 쪽을 가격당하게 된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의사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평생 임신을 못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가령 임신이 됐다고
"다들 유진 씨 엄청 보고 싶어 했는데, 이제는 자주 얼굴 볼 수 있겠네요?"정한나는 임유진의 팔을 슬쩍 당기며 말을 이었다."여기까지 왔는데 얼굴이라도 비추고 가지 그래요?"정한나의 속이 훤히 보이는 말에 임유진은 잠시 고민하다 어차피 이대로 가도 웃음거리가 될 것이 분명했기에 그럴 바에는 정면돌파 하기로 했다."그럼 그럴까요?"임유진의 당당한 태도에 정한나는 자신이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었던지 살짝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사무실로 안내했다.사무실로 임유진을 데리고 들어간 정한나는 손뼉을 치며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여러분, 유진 씨가 저희 보러 왔어요."그 말에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 시선이 모두 임유진을 향했다. 임유진이 주위를 둘러보니 옛 동료들도 많았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선배님, 이 분도 전에 여기서 근무하셨어요? 지금은 어느 로펌에서 근무하세요?"젊은 신임 변호사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고 악의 없는 이 질문이야말로 정한나가 원하는 거였다. 정한나는 안타까운 얼굴을 하며 그녀에 대해 구구절절 얘기하기 시작했다."유진 씨는 당시 우리 로펌 신입 중에서 제일 실력 좋은 변호사였어요. 그때는 유진 씨가 얼마 안 가 분명히 에이스 변호사로 활약하며 곧 대형 로펌으로 이직할 거라고 다들 믿어 의심치 않았었죠.""그럼 지금은 어떤 로펌을 택하신 거예요?""그게..."정한나는 그 뒤론 입을 꾹 다물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임유진을 바라보았다. 마치 네 입으로 너의 처지를 얘기해 보라는 듯했다. 차라리 정한나가 대놓고 조롱이라도 했으면 임유진은 그녀를 상대하기 더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저 지금 윤이 식당에서 배달 일 하고 있어요. 저희 가게 맛있으니까 많이 찾아주세요."임유진은 전혀 주눅들지 않은 채 당당한 얼굴을 하고 여유롭게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자신이 원했던 임유진의 초라한 모습이 보이지 않자 정한나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그러고 보니 유진 씨, 전에 한 번 우연히 마주쳤을 때 옆에 있던 남자가 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