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강지혁과 같은 사람도 위험해지면 그렇게 위험한 상황에서 그녀가 무릎을 꿇든 말든 중요한 게 아니었다.두 다리가 부러지도록 꿇는다 해도 그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한지영의 침묵에 강지혁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그 시각 임유진은 차 안의 공기가 침묵 속에서 무거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____임유진은 이튿날 한지영을 찾으러 갔다. 두 사람은 한지영의 집 근처의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한지영의 짙은 다크서클을 보고 임유진은 그녀가 어젯밤 잠을 설쳤음을 알 수 있었다.“어제 집에 간 다음은 어땠어?”임유진이 물었다.“말도 마. 엄마 아빠 협상금까지 준비하고 있다가 내가 들어오니까 엄청 뭐라 하더라고. 등짝 나갈 뻔했어.”한지영이 말했다.“왜? 백연신과 있었던 일 말씀 안 드린 거야?”“음, 되게 오래 못 만난 친구가 농담했는데 내가 너한테 말한다는 걸 깜빡했네. 그래서 이런 사달이 났네.”한지영이 말했다. 그녀는 자기 부모님에게 사실대로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때 외국에서 남자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면 어젯밤 잔소리 폭격으로 끝나지 않고 아빠한테 몽둥이세례를 받아야 할 판이었다.“백연신이랑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제 왜 너를 그렇게 끌고 간 거래?”임유진이 제일 궁금했던 부분을 물었다.임유진은 어제 백연신을 보고 나서야 그 남자가 전에 한지영이랑 같이 밥 먹을 때 유리창으로 보고 있던 남자라는 걸 알아챘다.그러면 그때 백연신이 보고 있던 게 한지영이라는 말이다.한지영의 얼굴이 약간 빨개지더니 말 못 할 사정이 있어 보였다.“말하기 그러면...”“아, 말하기 불편한 건 아니야.”한지영이 이렇게 말하더니 그해에 있었던 일을 대략 임유진에게 털어놓았다.“... 그러다 네 전화를 받고 귀국했거든. 나는 그 사람이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 자라기도 했고 그런 부분에서 개방적이라고 생각해서 별로 신경 쓰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음, 나를 나
“만약에 정리가 잘 안되면 나한테 얘기해. 내가...”임유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지영이 끊어버렸다.“유진아, 어제 이미 너무 큰 도움을 줬어. 만약 네가 아니라면 강지혁이 나 구해주려고 하지도 않았을 거야. 백연신 씨와의 일은 내가 저지른 거야. 정 안되면 화풀이 한번 하라고 하지 뭐.”한지영이 큰 문제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임유진은 계속 걱정이 되었다. 진짜 이렇게 간단한 문제가 맞나 싶었다.“아, 걱정하지 마. 내가 백연신 씨한테 말도 없이 떠난 건 맞지만 불을 지른 것도 아니고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뭐 철천지원수도 아니고 그냥... 하루밤 보낸 것뿐인데 너무 심하게 나오진 않을 거야.”한지영이 친구를 위로하며 말했다.게다가 임유진은 지금 강지혁만으로도 꽤 난처한 상황인데 자기 일 때문에 더 걱정하는 건 싫었다.“근데 진짜 무슨 어려운 일 생기면 꼭 말해줘야 해!”임유진이 말을 이어갔다.“지금의 나로서는 너를 도와줄 능력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강지혁한테 빌면 도와줄 수도 있거든.”임유진은 강지혁에게 빈다고 할 때 목소리가 티 나게 우울하고 난처해 보였다.한지영은 어제 임유진이 자신을 찾기 위해서 강지혁한테 부탁한 것을 알고 있었다. 강지혁한테 빌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한지영도 모를 리가 없었다.임유진에게 강지혁은 악몽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 지독한 고통은 전부 강지혁으로부터 시작되었다.하지만 임유진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한지영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알겠어.”한지영이 이렇게 대답한 것도 그저 친구가 더 이상 걱정하지 말았으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랬다. 백연신과의 일은 한지영이 알아서 처리할 생각이었다.둘은 조금 더 대화를 나누다가 임유진의 면접 시간이 다가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배달 면접 보러 간다고?”한지영이 물었다.“응.”임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며칠 전에 이력서 보냈는데 오늘 면접 보러 오라고 전화가 왔더라고.”“화이팅해! 성공을 빌게!”한지영이 말했다.임유진이 가고 한지영은 버스를
“타.”그는 얇은 입술로 이 한 글자를 내뱉었다.한지영의 얼굴에서 망설임이 느껴졌다. 핸드폰값도 꽤 나가긴 했지만, 그 값에 비기면 자유가 더 소중했다. 한지영은 어제처럼 방에 몇 시간 갇혀 있긴 싫었다.어제 임유진과 강지혁이 그녀를 데리고 나오지만 않았으면 언제 그 집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모른다.“괜찮아요. 핸드폰 바꾸고 싶었는데 그 핸드폰은 안 돌려줘도 돼요.”한지영이 멋쩍게 말했다.“그럼, 전화에 있는 사진도, 여러 사이트에 등록된 계정도 필요 없다는 거지? 맞다, 일부는 회사 자료인 것 같던데.”백연신이 담담하게 말했다.“뭐 가져가기 싫다면 좋을 대로 해.”이건 그냥 협박이었다.‘핸드폰에는 분명 비밀번호가 걸려 있을 텐데 백연신이 내 핸드폰 잠금을 푼 건가? 그리고 핸드폰에 있던 사진과 자료를 다 봤겠지? 그럼... 내 각종 소셜 앱 계정의 비밀번호도 푼 건가?’한지영이 이를 갈았다.“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한지영이 화를 내며 말했다.“그래서 탈 거야 말 거야?”백연신은 대답은 하지 않고 다시 캐물었다.그녀는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목구멍이 막힌 듯 삼키지도 뱉지도 못했다. 그해의 그는 친절하고 귀엽기만 했는데 몇 년 사이에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지금 한지영은 그저 머리를 숙인 채 고분고분 뒤쪽 차 문을 열고 백연신의 옆에 앉았다. 차에 타보니 백연신이 가지고 노는 건 한지영의 핸드폰이었다.“내 핸드폰!”한지영이 소리를 지르며 자기도 모르게 핸드폰을 가져오려고 했다.하지만 핸드폰에 손이 닿기도 전에 백연신은 한지영의 팔을 잡았다. “몇 년간 잘 지냈나 본데?”그가 유유히 말하며 그녀의 사진첩을 꾹 눌렀다. 사진첩에는 그녀가 웃고 있는 사진들이 있었다. 어떤 건 여행 사진, 어떤 건 일상 사진,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사진도 있었다... 그 사진으로만 보면 그녀의 생활이 행복해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그런데 문제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기쁠 때 사진을 찍지, 슬플 때 사진을 찍는
‘뭐지? 지금 핸드폰을 돌려주는 게 아닌가?’한지영은 눈을 끔뻑였다.“돈 줄까요?”이 말을 한 한지영도 자기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연신이 어떤 사람인데 그녀의 푼돈이 필요할 리가 없었다.아니나 다를까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러고는 마치 바보를 보는 것처럼 그녀를 쳐다봤다.“그럼 뭘 원하는데요?”그녀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한지영은 백연신이 핸드폰을 빌미로 3년간 참았던 화를 그녀에게 푸는 거로 생각했다.뭐 어차피 화풀이만 하면 된다.“3년간 연애는 했어?”백연신이 물었다.한지영이 고개를 흔들었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럼 좋아하는 사람은 있었어?”백연신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그건... 좀 많은 것 같은데. 좋아하는 연예인까지 합치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텐데.’하지만 지금 백연신의 아무런 표정이 없는 얼굴을 보고 한지영은 본능적으로 머리를 흔들었다.“그러고 보니 그때 나한테 그런 적 있었지. 나 같은 남자친구가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고.”그가 아랑곳하지 않으며 물었다.한지영은 하마터면 침에 사레가 들릴 뻔했다. 그건 그냥 철없을 때 한 말일 뿐이었다. 임유진의 말로는 백연신이 백선 그룹 회장이자 백씨 집안의 수장이라고 했는데 한지영이 넘볼만한 사람은 아니었다.“허허, 아니에요. 난 그냥 일반인 남자친구면 돼요. 난 행복에 대한 요구가 높지 않거든요.”한지영이 뻘쭘한 듯 입꼬리를 움직이며 말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백연신은 그런 그녀를 힐끔 보더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머리를 숙인 채 계속 그녀의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웹 브라우저를 열어 열람 기록을 살펴봤다.한지영은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저번 주에 소설을 봤던 것 같은데, 제발 들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하지만 그녀의 작은 바람은 결국 무너졌다. 그는 이미 한 주 전의 열람 기록까지 뒤졌고 임의로 클릭해 들어가 보기
한지영의 얼굴이 빨갛던 데로부터 하얘졌다.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더니 한마디 새어 나왔다.“미안해요.”이 말을 한 것도 그녀였고 지키지 못한 것도 그녀였다.“많이 미안해해야 되는 건 맞지.”백연신이 대답했다.차 안은 침묵이 맴돌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차가 멈춰 섰고 한지영은 백연신을 따라 차에서 내렸다. 그제야 이곳은 어제 그녀가 왔던 별장이라는 걸 깨달았다.어젯밤 못 나오게 하던 상황이 떠올라 한지영은 발걸음을 멈췄다.“왜? 못 들어가겠어?”백연신이 머리를 돌려 한지영을 바라봤다. 한지영은 입을 삐쭉거리더니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할 말 있으며 밖에서 해도 되지 않을까 해서요.”백연신이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한지영, 너를 잡아두려면 방법은 많아. 근데 이번만큼은 내가 약속할게. 강지혁이 와서 널 다시 데려가려고 해도 그렇게 쉽지는 않을 거야.”한지영이 멈칫하며 망설이더니 이를 악물었다. 무서워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만약 진짜 한지영한테 무슨 짓을 한다고 해도 지금의 그녀로서는 막을 힘이 없었다.하지만 한지영은 마음을 다잡은 듯 발걸음을 내디뎠고 그렇게 앞으로 몇 발 다가섰다.백연신이 담담하게 웃더니 따라서 앞으로 걸어갔다.별장에 들어서자, 백연신이 긴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앉아.”그러자 한지영은 초등학생이라도 된 것처럼 고분고분 가서 앉았다. 백연신은 카운터 쪽으로 걸어가 술을 조제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지개색의 칵테일이 만들어졌다. 그는 술잔을 들고 그녀 앞으로 걸어왔다.“마셔. 그때 이 술 좋아하는 것 같던데.”그때 일을 꺼내면 그녀는 마음이 켕겼다. 한지영은 그때 이 술이 과일주처럼 생겨서 그렇게 독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결국은 취해서 그런 짓을 한 것이었다.그러지만 않았어도 한지영과 백연신은 지금처럼 난처한 사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아니에요. 목마르지는 않아요.”그녀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백연신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이렇게 힘들게 만든 술인데 안 마신
“마... 맛있어요.”한지영은 혀가 꼬여왔다. 입안에는 온통 칵테일 냄새였다.원래는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셔야 하는 술을 그녀는 이렇게 한꺼번에 털어 넣었다.“백연신 씨, 어떻게 해야 그때의 화가 풀릴 것 같아요? 말해 봐요!”술을 마셔서 그런지 담도 많이 커졌고 목소리도 덩달아 커졌다.백연신의 까만 눈동자가 어두워지는 게 보였다.“나한테 빚진 게 무엇이면 그걸 지금 갚으면 돼.”한지영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빚진 게 뭐면 뭘 갚으면 된다고요?”“그래.”백연신이 대답했다.한지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흔들었다. 아까 마신 술기운이 올라와서 그런지 조금 어지러운 느낌이었다.역시 이 술은 그때와 같이 뒤끝이 셌다.하지만 지금은 뒤끝이 세서 그런지 아니면 한지영이 대담해진 건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되었다.예를 들면 그녀는 지금 외투의 지퍼를 당겨 외투를 벗고 있다.백연신은 실눈을 뜨고 한지영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다. 그녀를 보는 그의 눈빛이 살짝 반짝였다.한지영은 외투를 벗더니 안에 입은 스웨터를 벗었고 스웨터를 벗더니 그 안에 입은 흰 티까지 벗기 시작했다.“왜? 내가 널 보고 싶어 할 줄 알고?”백연신이 차갑게 말했다.“그러게요. 원망하면 원망했지, 보고 싶지는 않겠네요... 그럼 다른 사람으로 바꾸면 되잖아요. 어차피 내가 빚진 것만... 끅, 돌려주면 된 거 아닌가.”한지영이 눈을 끔뻑이더니 대답했다. 혀가 말을 듣지 않아 말할 때마다 혀가 꼬여왔다.백연신의 표정이 점점 구겨지더니 그녀에게 다가가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왜, 누가 이런 짓을 하든 다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거야?”“그냥... 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하면 되죠. 아니면... 어떻게 갚으라는 거예요? 근데... 약속은 지켜요... 우... 우리 부모님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엄마 아빠는 그저 하루하루를 착실하게 살아가는 시민일 뿐이에요... 평생 나쁜 짓 한 적도 없고...
백연신이 그녀에게 숨겨진 자식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을 때 그녀는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숨겨둔 자식이면 어때요? 당신이 당신인 건 변하지 않아요. 당신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숨겨둔 자식인지 아닌지로 결정되는 게 아니에요.”“내 출생의 비밀이 떳떳하지 못하다고는 생각 안 해?”그때 그녀가 어떻게 대답했었지? 그녀가 진지하게 대답했다.“난 그냥 당신 부모님이 결혼에 대해서 너무 경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아이가 생겼으면 결혼해야지. 결혼 못하는 상황이면 처음부터 거리를 두든가 안전조치를 잘하든가 해야죠. 그런 말도 있잖아요.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는 만남은 다 변태들이나 하는 짓이라고.”백연신 앞에서 그의 부모님을 이렇게 말하는 건 그녀가 처음이었다.하지만 어떤 때는 결혼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게 너무 많은 다른 목적이 있어서라는 걸,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이익의 교환이 있는지 그녀는 알고 있을까?결혼은 그저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여자를 선택하는 것뿐이다.“그럼 만약에 누군가랑 사귄다면 결혼을 전제로 만날 거야?”“당연하죠.”그녀가 말을 이어갔다.“만약 훗날 결혼한다면 꼭 서로 많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평생 사랑하면서 살 거예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사랑은 가족 간의 정으로 변하겠지만 그러면 어때요? 서로 배신하지만 않는다면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같이 있을 수 있는데...”한지영은 그에게 훗날 그녀가 바라는 사랑과 결혼을 설명했다. 백연신도 듣다보니 기대가 생기기 시작했다. 자신도 그런 사랑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백연신은 자신의 결혼에 대해 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결혼한다면 아마도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여자와 하거나 아니면 영원히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이다.근데 그때만큼은 그녀의 말에 심장이 떨려왔다.만약 이 여자와 결혼한다면... 그도 기꺼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는 그날도 기대하기 시작했다.“나 좋아해?”다시 현재로
눈앞에서 곤히 자는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백연신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진짜 그녀를 찾아냈다! 그녀는 더 이상 그의 기억 속에만 있는 사람이 아닌 실제로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났다.“오늘 나랑 약속한 거야. 후회는 용납 못 해.”그의 목소리가 조용한 방안에 유유히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그의 말에 대답하고 있었다.____임유진은 면접을 보고 강 씨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녀에게 오늘 면접은 사실 간단했다. 상대방은 그저 그녀의 건강검진 결과를 요구했고 기본적인 문제만 물어봤다.하지만 왜 법대를 읽은 우등생이 배달일을 하냐고 묻자 준비한 문제이긴 해도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냥 간단하게 차 사고로 옥살이하게 되어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그러자 상대방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돌아가서 결과를 기다리라고 했다.이번 면접도 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걸 임유진은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 문제는 영원히 에둘러 갈 수 없는 문제였다.S시에서 배달 기사를 뽑는 크고 작은 회사는 열몇 개 정도였다. 임유진은 회사마다 다 이력서를 넣었지만, 붙을 수 있는 회사가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피곤함이 느껴졌다.그냥... 사는 것 자체가 피곤했다.출소 후 일어난 일들만 해도 그녀를 힘들게 했다.저녁 식사를 하던 중 강지혁이 갑자기 물었다.“누나 오늘 알바 알아보러 갔어?”임유진은 놀라서 젓가락을 놓칠 뻔했다.“왜? 그렇게 놀랄 일인가?”강지혁이 웃으며 말했다.“오늘 어떤 사장이 나한테 전화 와서 누나 알바 면접 보러 갔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묻더라고.”임유진은 침묵을 지켰다. 면접을 보던 면접관은 차 사고로 죽은 피해자가 누군지 구체적으로 묻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도 모를 거라 생각했다.조사까지 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사장님이 직접 강지혁한테 전화까지 하다니, 막막한 현실이 또다시 그녀에게 혹독한 매질을 한 것이었다.“말해봐. 내가 어떻게 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