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서 곤히 자는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백연신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진짜 그녀를 찾아냈다! 그녀는 더 이상 그의 기억 속에만 있는 사람이 아닌 실제로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났다.“오늘 나랑 약속한 거야. 후회는 용납 못 해.”그의 목소리가 조용한 방안에 유유히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그의 말에 대답하고 있었다.____임유진은 면접을 보고 강 씨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녀에게 오늘 면접은 사실 간단했다. 상대방은 그저 그녀의 건강검진 결과를 요구했고 기본적인 문제만 물어봤다.하지만 왜 법대를 읽은 우등생이 배달일을 하냐고 묻자 준비한 문제이긴 해도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냥 간단하게 차 사고로 옥살이하게 되어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그러자 상대방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돌아가서 결과를 기다리라고 했다.이번 면접도 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걸 임유진은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 문제는 영원히 에둘러 갈 수 없는 문제였다.S시에서 배달 기사를 뽑는 크고 작은 회사는 열몇 개 정도였다. 임유진은 회사마다 다 이력서를 넣었지만, 붙을 수 있는 회사가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피곤함이 느껴졌다.그냥... 사는 것 자체가 피곤했다.출소 후 일어난 일들만 해도 그녀를 힘들게 했다.저녁 식사를 하던 중 강지혁이 갑자기 물었다.“누나 오늘 알바 알아보러 갔어?”임유진은 놀라서 젓가락을 놓칠 뻔했다.“왜? 그렇게 놀랄 일인가?”강지혁이 웃으며 말했다.“오늘 어떤 사장이 나한테 전화 와서 누나 알바 면접 보러 갔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묻더라고.”임유진은 침묵을 지켰다. 면접을 보던 면접관은 차 사고로 죽은 피해자가 누군지 구체적으로 묻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도 모를 거라 생각했다.조사까지 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사장님이 직접 강지혁한테 전화까지 하다니, 막막한 현실이 또다시 그녀에게 혹독한 매질을 한 것이었다.“말해봐. 내가 어떻게 의견
임유진은 충격받은 얼굴이었다.“뭐라고?”“누나, 못 알아듣겠어?”강지혁은 참을성 있게 한 번 더 말을 반복했다.“내 말은, 그 회사가 마음에 안 들면 제명한다고.”그는 아주 평범한 일을 얘기하는 것처럼 평온한 표정이었다.‘하지만... 제명이라고?’임유진의 동공이 떨렸다.‘내가 이해한 것이 맞을까?’그 기업은 배달 업계의 루키였다. 비록 유명한 회사들보다는 좀 못했지만 요즘 형세가 꽤 좋았고 심지어 최근에는 자금조달을 성공적으로 마쳐 벤처 산업에 3,400억을 투자했다고 한다.그런 회사를 제명하고 싶다고 해서 제명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하지만 강지혁이 그런 말을 했다면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할 수 있었다.“단순히 내가 싫어한다는 이유로?”임유진은 멍한 얼굴로 강지혁에게 물었다.강지혁은 싱긋 웃었다.“나도 누나를 배신한 사람은 별로야. 사람을 배신하는 방법으로 이득을 보려는 임원은 내가 손을 쓰지 않더라도 회사에서 큰일을 해내지 못할 거야. 그렇다면 일찌감치 없애버리는 게 낫지.”임유진은 순간 많은 말들이 목구멍에 턱 걸렸다.강지혁은 웃으면서 말했지만, 사실 그는 한 회사의 생사존망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다. 이러한 결과를 알았더라면 그 사람은 절대 전화를 걸지 않았을 것이다.“참, 누나 왜 밥을 안 먹어? 얼른 먹어.”그는 말하면서 그녀의 그릇에 또 음식을 집어줬다.아주 다정하고 세심하게 말이다.하지만 그녀는 이 모든 것이 가짜라는 걸 알았다. 다른 이들은 절대 강지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조금 전까지는 아껴주다가 다음 순간에는 지옥으로 밀어버릴지도 몰랐다.임유진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기계적으로 그릇 안의 음식을 먹었다. 아주 맛있는 요리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정말 내가 일자리 소개 안 해줘도 돼? 어떤 직업을 원하든 나한테 말만 하면 돼. 원래 업계에서 일하고 싶어도 되고.”강지혁이 말했다.“아니... 괜찮아. 내가 알아서 찾을게.”임유진이 대답했다.다음 순
‘여긴... 어디지?’한지영은 당황했다. 이내 머릿속에 예전 광경이 떠오른 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내가... 또 술을 마셨어. 그것도 취할 정도로!’“일어났어?”들려오는 목소리에 한지영은 몸이 굳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역시나 백연신이 침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소파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일... 일어났어요...”한지영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침대에서 빠르게 일어났다. 멀쩡히 옷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아마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한지영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었다.“내가 취해서 뭔 짓 하지는 않았죠?”“한 일이 하도 많아서 어떤 걸 가리키는지 모르겠네.”백연신이 나른하게 물었고 한지영은 입이 떡 벌어졌다.‘많은 일... 내, 내가 무슨 짓을 했는데?’하필 이번에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예전과는 달리 깨어난 뒤에 뭘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내... 내가 무슨 짓을 했는데요?”한지영은 갑자기 침이 고여 침을 꿀꺽 삼키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백연신은 무엇 때문인지 얼굴을 붉혔다.한지영은 그의 붉어진 뺨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백연신의 그런 모습은 어쩐지 그녀가 기억하는 과거의 그와 닮아있었다.“설마... 내가 뭔가를 강요하지는 않았죠?”한지영은 생각 없이 말했다. 이내 백연신은 얼굴이 더 빨개지더니 쑥스러운 듯이 고개를 홱 돌렸다.한지영은 자신을 때려죽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세상에! 설마 내가 또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고?’깨어난 뒤에 옷을 멀쩡히 입고 있다고 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건 아닌 듯했다.“그... 내가 어떻게 강요했는데요?”한지영은 뭐든 똑똑히 알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어봤고 혹시라도 자신이 뭔가 만회할 가능성이 있는지 알아볼 생각이었다.“됐어!”백연신은 괜히 짜증스레 대꾸했다. 그는 가까스로 평정심을 되찾은 건 지 조금 전처럼 얼굴이 빨갛지 않았다.조금 전 한지영이 질문할 때 그의 머릿속에는 그가
“알겠어요. 사귀어요.”한지영은 수긍한 듯 대답했다. 어차피 복수 당해야 하지만 적어도 마음의 준비는 할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그러면... 음, 휴대전화 좀 돌려줘요.”그녀는 자신이 그와 함께 별장에 온 목적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돌려받는 거란 걸 잊지 않았다.백연신은 한지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테이블 위에 놓였던 휴대전화를 그녀에게 던져줬다.“아!”그녀는 놀란 듯 소리를 지르며 아슬아슬하게 휴대전화를 받았다. 그 휴대전화는 그녀가 큰마음 먹고 무려 200만 원을 써서 산 것이다. 만약 바닥에 떨어뜨린다면 마음이 아플 것이다. 그리고 혹시 액정이라도 깨진다면 적어도 40만 원은 들 것이다.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혹시라도 정말 액정이 깨진다면 백연신에게 배상해 달라고 할 용기도 없었다.한지영은 휴대전화를 켜고 시간을 확인했다. 이미 9시가 넘는 시간이었고 휴대전화에 부재중 전화가 여러 개 있었다. 모두 부모님에게서 걸려 온 전화라 그녀는 이내 다시 전화를 걸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측에서 전화를 받았다. 이내 안에서 아버지의 화가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저녁에 집에 와서 밥 안 먹으면 미리 연락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연락해도 받지 않고 뭐 하자는 거야? 아니면 어제처럼 경찰서에 가서 신고라도 했으면 좋겠어?”한지영은 진땀을 뺐다.“저... 저 갑자기 일이 생겨서요. 지금 당장 갈게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재빨리 전화를 끊었고 어느샌가 곁으로 온 백연신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큰 목청이라면 조금 전 혼났던 것도 전부 다 들었을 것이다.“그, 다른 일 없으면 난 먼저 가볼게요.”한지영이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바래다줄게.”백연신의 말에 한지영은 재빨리 말했다.“아뇨, 아뇨. 택시 타고 가면 돼요. 그리고... 나 어제 그 주차장에 가서 차 끌고 가야 해요.”그런데 백연신이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잡고 강압적으로 말했다.“내가 바래다줄게. 지금부터 우리는 사귀는 사이니까.”“...”‘그래, 뭐. 데려다준다니
금사빠인 한지영은 오늘은 이 아이돌을 좋아하고 내일엔 다른 아이돌을 좋아하는, 마음이 갈대 같은 팬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 모두에게 진심이었다.한 아이돌을 좋아하면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그에게 충실한 팬이었다. 심지어 돈을 써서 그의 콘서트와 팬 사인회에도 갔었다.가끔 그들이 팬 미팅을 열면 거기에도 갔었다.물론 그중 대부분은 임유진에게 일이 생기기 전의 일이었다. 임유진이 그런 일을 겪은 뒤 한지영은 아이돌을 향한 열정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출근할 때를 제외하고 그녀는 임유진을 도와 사건을 조사하는데 온 신경을 쏟아부었다.그래서 콘서트에서, 팬 사인회에서, 팬 미팅에서 찍었던 영상들은 그녀에게 아름다운 추억이었다.그런데 그런 추억들을 전부 삭제해 버리다니.“내가 팬 사인회에서 찍었던 영상들은요?”한지영은 새된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돌려 운전하는 백연신을 노려보았다.“삭제했어.”백연신은 아주 솔직하게 대답했다.“그걸... 삭제했다고요?”한지영은 기절할 것만 같았다. 만약 그가 휴대전화를 돌려주지 않았더라면, 휴대전화 속의 것들 역시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지영에게 휴대전화를 돌려주긴 했지만, 그녀의 소중한 영상들은 다 삭제해 버렸다.“응. 아주 철저히 삭제했어. 네가 전문적으로 휴대전화를 수리해 주는 곳에 찾아간다고 해도 영상은 복구하지 못할 거야.”백연신이 계속해 말했다.한지영은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그거 다 내 추억이라고요!”“추억?”백연신은 차갑게 코웃음 치더니 갑자기 핸들을 돌려 차를 갓길에 세웠다. 그는 안전벨트를 풀고 그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내가 그 영상들을 봤을 때 무슨 생각을 한 줄 알아?”“무슨 생각을 했는데요?”갑자기 가까워진 그의 잘생긴 얼굴에 한지영은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니 세월마저 그를 비껴간 듯했다.백연신은 그녀보다 두 살 더 많았지만, 그의 얼굴은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한 듯 앳되고 젊어 보였다.‘뭐야, 나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한지영은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렇게 백연신과 사귀게 된다니. 예전에는 어떤 방식으로 백연신에게 복수 당할지 꽤 많이 생각해 보았지만, 이런 건 예상 밖이었다.한지영은 누군가와 사귄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백연신에게 맞출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정 안 되면 드라마를 참고할 생각이었다.그러나 문제는, 백연신이 바라는 것이 한지영이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는 점이다.‘내가 백연신을 사랑하게 되면 그때 가서 날 차버릴 생각인 걸까?’한지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정 안 되면 그와 몇 달 사귀고 난 뒤에 그를 사랑하게 된 척 연기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백연신이 그녀를 차버린다면 아주 슬픈 척하면서 이 일을 끝내버릴 생각이었다.거기까지 생각한 한지영은 참지 못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누군가와 사귀는 것인데 이런 방식으로 전개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하지만 한지영이 상상했던 것처럼 그녀의 집안을 풍비박산 내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이래서 남자는 괜히 건드리면 안 된다니까. 특히 먹고 버리는 건 더 안 돼. 이렇게 대가를 치러야 하니까.’한지영의 부모님은 한지영이 저녁을 집에서 먹지 않을 생각이었으면서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녀를 추궁하고 있었다.한지영은 눈을 흘겼다. 그녀의 부모님들은 그들의 집이 하마터면 풍비박산 날 뻔했다는 걸 몰랐다. 한지영은 자기 몸으로 집안을 지킨 셈이었다.“시간관념이 이렇게 없어서야 되겠어? 나 김 선생님이랑 약속도 잡았어. 다음 주에 너 선봐야 해.”한지영의 어머니가 말했다.한지영은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그녀는 이제 막 백연신과 사귀기 시작했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선을 보라고 한다.‘게다가 김 선생님이라니...’그녀는 남들 이어주는 걸 아주 좋아하는 걸로 동네에 소문이 났다. 그리고 그중 몇 쌍은 성공적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한지영의 어머니는 그녀와 꽤 가깝게 지내며 그녀가 좋은 상대를 소개해 주길 바랐다.“엄마... 제
또 한 번 면접을 본 회사에서 돌아왔을 때 임유진은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그녀는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어떤 회사에서는 배달 기사는 기본 월급이 없다고 했는데도 그녀는 기회만 있으면 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거절당했다.임유진은 점심때가 거의 되자 길가의 작은 가게로 들어가 4,000원짜리 칼국수를 주문했다. 그것은 그 가게에서 가장 싼 메뉴였다.가게 안에는 구식 TV가 놓여 있었고 TV 안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뉴스는 어제의 뉴스를 재방송하는 것이었지만 임유진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뉴스를 들었다. 그러다 익숙한 회사의 이름이 들리자, 그녀는 고개를 홱 들었다.그것은 임유진이 처음 배달 기사 면접을 봤던 그 회사였다. 그리고 그 회사의 대표가 강지혁에게 연락해서 그녀의 면접에 관해 얘기했었다.당시 강지혁은 그 회사를 제명할 거라고 했다.그런데 지금 그 회사는 자금줄이 끊겼고, 투자하기로 했던 자금도 갑자기 취소되어 어제부터 그 회사의 민간 자금 조달에 참여한 시민들이 회사의 입구를 막고 돈을 내놓으라고 시위하고 있다고 한다.뉴스에서 기자가 찍은 화면은 아주 혼란스러웠다.임유진은 그 장면을 보고 내심 놀랐다.‘설마 강지혁이 한 짓인가? 겨울 며칠 사이에 전도유망하던 기업을 이렇게 만들 수 있다고?’정말 그런 거라면 강지혁의 수완이 상당하다는 걸 의미했다.‘하지만 강지혁이 한 짓이 아니라면... 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칼국수를 먹으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뭔가 종아리를 잡는 게 느껴져 고개를 숙여 보니 3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입은 옷은 조금 더러웠지만 생김새가 아주 예쁘장했다. 정교한 이목구비에 하얗고 보드라운 피부, 그리고 앳된 아이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통통한 젖살은 한 번 꼬집어 보고 싶을 정도로 탐스러웠다. 아이는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로 임유진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임유진은 그 아이를 이상하게 바라보다가 주위를 둘러보았
“아뇨, 전혀요. 아드님이 아주 귀여운데요.”임유진이 말했다.“그런데 이 칼국수를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았어요. 칼국수를 아주 뚫어져라 쳐다보던데요.”“진짜 먹으라고 주면 오히려 안 먹을 수도 있어요. 얘는 그냥 남들 따라 하는 걸 좋아해서 그래요.”여자는 말하면서 남자아이 앞에서 두 손을 움직였다.임유진은 당황했지만 이내 깨달았다. 여자는 수어를 하고 있었다.“이 아이...”임유진은 저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여자가 대답했다.“듣질 못해요. 수어는 조금 할 줄 알아서 간단한 수어로 얘기하면 알아들을 수 있어요.”여자는 말하면서 계속해 입으로 천천히 말했다.“이모한테 사과해야지.”그녀는 말하는 동시에 수어를 했다.곧이어 임유진은 남자아이가 사과하듯 자신을 향해 허리를 숙이는 걸 보았다.임유진은 참지 못하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나 어린데 듣지 못하다니. 이 아이에게는 이 세상의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여자는 아이를 안고 떠났고 임유진은 계속해 칼국수를 먹었다. 그러나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칼국수를 다 먹고 가게를 떠나려는데, 임유진은 곁눈질로 가게 입구에 직원을 구한다는 글을 보았다.그리고 거기에는 가게의 배달을 맡을 배달부를 찾는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임유진은 곧바로 몸을 돌리더니 계산대로 향하여 사장에게 물었다.“혹시 배달부 필요하세요?”“네.”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그... 저 면접 볼 수 있을까요?”임유진이 물었다.사장은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임유진을 바라보았다.“아가씨가 배달부를 한다고요?”“안 되나요?”“아뇨. 젊어 보여서요. 이 나이대 여자들은 배달부처럼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잖아요.”사장이 말했다.“저에겐 일자리가 있는 것만으로 다행인걸요. 전...”임유진은 잠깐 망설이다가 솔직히 얘기했다.“전 전과가 있어요. 교통사고로 사람을 숨지게 해서 일자리를 찾는 게 아주 어려워요. 가능하다면 정말 이 일을 하고 싶어요.”임유진이 전과가 있다고 했을 때 사장의 눈동자가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