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알고 싶어요?”임유진이 불만 가득한 눈으로 이경빈을 노려보았다.“언니가 윤이한테 왜 친구랑 싸웠냐고 물었고 윤이가 유치원 친구들이 엄마를 범죄자라고, 나쁜 사람이라고 해서 싸웠다고 답했어요. 윤이가 왜 그 사실을 알게 됐는지는 이경빈 씨 약혼녀이신 공수진 씨 때문이고요. 전에 유치원에 찾아와서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다 있는 데서 아주 대놓고 언니를 범죄자 취급했거든요.”그 말에 이경빈의 얼굴이 굳더니 복잡한 눈으로 통곡하고 있는 탁유미를 바라보았다.“이경빈 씨, 하나 물어보죠. 유미 언니 사건 정말 제대로 조사한 거 맞아요? 이경빈 씨는 감옥살이해 본 적이 없어 그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인지 잘 모르나 본데 이경빈 씨가 가볍게 내뱉은 그 증언으로 언니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인생의 오점을 남겼어요.”임유진은 이경빈의 대답은 애초부터 들을 생각조차 없었는지 자기 할 말만 하고 탁유미 쪽으로 걸어가 두 사람을 위로했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탁유미의 눈물이 드디어 서서히 멈췄다.“언니, 윤이 인공와우는 걱정하지 마세요. 의사 선생님께 얘기해서 겉에 보이는 장치만 새것으로 바꾸기로 혁이랑 얘기했어요. 재수술받을 필요 없어요.”“그럴 필요 없습니다. 내 아들의 일이니 내가 알아서 합니다.”임유진의 말에 이경빈이 앞으로 나서며 단호하게 얘기했다.이에 탁유미는 조금 놀라고 임유진은 미간을 찌푸렸다.이경빈이 괘씸했지만 친아버지가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는데 가족도 아닌 사람이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탁유미는 울고 난 후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임유진을 보며 말했다.“윤이 찾아줘서 고마워요. 인공와우 문제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여기서 이경빈을 거절하면 또 큰소리가 나올 것 같아 임유진과 강지혁의 호의를 거절했다.임유진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이제 집으로 가요. 데려다줄게요.”하지만 그 말 뒤에 이경빈이 또다시 나섰다.“그것도 내가 알아서 합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그는 말을 마
“그런데 이제는 그런 감정도 쓸모가 없어졌네. 결국에는 다른 여자랑 결혼하니까. 게다가 그때 직접 자기 입으로 언니를 감옥에 보내기도 했고. 언젠가 후회하며 잘못했다고 빌어도 언니는 아마 받아주지 않을 거야. 다 망가트려 놓고 사과해봤자 가소롭기만 할 테니까.”임유진은 탁유미가 이경빈 같은 남자를 사랑했다는 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아이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양육권이라니, 뻔뻔하기 그지없는 남자가 아닐 수 없었다.강지혁은 찬 바람이 쌩쌩 부는 임유진의 말에 몸이 굳어버렸다.“만약 이경빈이 정말 잘못했다고, 무릎까지 꿇고 진심으로 용서를 빌어도, 그래도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너는?”“모르겠어. 나는 언니가 아니잖아.”임유진의 말에 강지혁이 계속해서 물었다.“만약... 네가 그 상황에 처해 있다면?”“만약 나라면 용서 안 하겠지. 세상에는 용서해줄 수 있는 잘못과 그렇지 못하는 잘못이 있어. 물론 시간이 흐르면 그 감정이 옅어지겠지만 그때는 용서보다는 더 이상 그 사람의 모든 것에 관심이 없어질지도 몰라. 꼭 타인처럼 분노도 뭣도 느끼지 못하는 거지.”강지혁은 순간 심장이 무언가에 꽉 눌린 것처럼 답답하고 먹먹해졌다.“우리도 이만 가자.”임유진이 말을 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함께 따라와야 할 사람의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이에 고개를 돌려보자 강지혁이 제 자리에 가만히 멈춰 서 있었다.“혁아? 왜 그래?”그 말에 강지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옅게 웃었다.“아무것도 아니야. 가자.”집으로 돌아가는 길, 강지혁은 먼저 말을 거는 법 없이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중간중간 임유진이 뭐라 물어도 짧게 대답하고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그렇게 조금 불편한 분위기 속에 차량이 드디어 강씨 저택 앞에 멈춰 섰다.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리려는데 갑자기 두 인영이 차량 앞으로 뛰어들었다.물론 차량에 접근하기도 전에 경비원에 의해 막혀버렸지만 말이다.두 사람은 차량을 향해
임정호의 웃음이 어색하게 굳어버렸다.“그때는 내가 잠시 머리가 어떻게 됐었나 봐. 부녀 사이에 연을 끊는다는 게 어디 말이 되는 소리니?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할까?”임정호가 뻔뻔하게도 강씨 저택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정말 뭐라고 하는 건지.”임유진이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연을 다시 잇는 게 목적이면 더 할 말 없으니 이만 돌아가세요. 우리가 한 가족이 되는 일은 영원히 없을 테니까.”아무리 피가 이어졌다고 한들 남보다 못한 인간을 아빠로 다시 받아들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그 말에 임정호의 안색이 확 변하더니 이윽고 웃음을 완전히 지워버렸다.임유진은 그걸 보고는 강지혁에게 말했다.“가자, 혁아.”물론 이대로 임유진을 보내줄 임정호가 아니었기에 그는 그대로 임유진에게 다가와 손을 잡으려고 했다.하지만 경비원이 그보다 더 빠르게 다가와 임유진의 앞을 막아섰다.그때 옆에서 줄곧 보기만 하던 방미령이 다급하게 말했다.“유진아, 우리를 다시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싫으면 그렇게 해. 하지만 이제껏 함께 산 정을 생각해서 네 동생이라도 풀어줘. 유라는 배여진 걔한테 가스라이팅 당해서 그런 짓을 한 것뿐이야. 너 지금 강지혁 씨랑 결혼까지 했는데 만약 너한테 감옥살이하게 될 동생이 있다고 기사라도 나면 너도 곤란하지 않겠니?”그 말에 임유진이 미간을 찌푸렸다.임유라? 감옥? 게다가 배여진까지?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그녀의 의혹을 눈치챈 강지혁이 입을 열었다.“네가 전에 촬영장 대기실에서 배여진의 전남편을 만난 것도 배여진과 임유라가 함께 꾸민 짓이고 곽동현이 억울하게 음해당한 것도 그 둘이 함께 작당 모의한 거야.”그 말에 임유진이 입을 떡 벌렸다.일이 그렇게 복잡하게 이어졌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배여진은 임유라가 오로지 너를 상대하기 위해 그런다고 생각해 손을 잡았는데 실상은 자기도 당할 뻔했어. 배여진의 생일 파티 때 스크린에 흘러나왔던 영상, 그거 임유라가 차에 카메라를 설치해 얻을 수 있었던
“그러면 번거로워지잖니. 네 남편한테 경찰서 쪽에 연락 한번 돌리면 끝날 일을 뭘 변호사까지 불러. 안 그래?”방미령이 다시 웃으며 말했다.“나는 날 해하려고 했던 사람을 도와주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자꾸 네 동생 네 동생 하는데 우리 엄마가 살아생전에 낳은 자식은 나 하나뿐이에요. 나한테 동생 같은 건 없어요.”임유진의 말에 방미령이 못 참고 삿대질했다.“너 그게 무슨 말본새야? 너 혹시 지금 우리한테 복수하는 거니? 네가 그때 감옥살이했을 때 우리가 너 도와주지 않은 거 복수하는 거냐고. 그때는 우리 모두 다 힘들었어. 너만 힘들었던 게 아니라고. 그리고 네가 감옥살이했다고 네 동생까지 감옥살이해야겠니? 그래야 네 속이 시원하겠어?”그 말에 임유진이 차갑게 웃었다.“감옥살이라뇨. 아직 감옥으로 들어간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억울했을 때는 가만히 있더니 임유라는 감옥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초조해 나시나 봐요? 어떻게 뻔뻔하게 나한테 복수니 뭐니 하는 말을 할 수가 있죠? 그리고 임유라가 정말 잘못했으면 그에 마땅한 벌을 받아야죠.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예요.”“내가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그때 너 감옥 들어갔을 때 네가 건드린 건 진씨 가문과 강씨 가문...”방미령은 강지혁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은 걸 보더니 뒷말을 도로 삼켜버렸다.강지혁의 눈빛은 꼭 이대로 그녀를 찢어 죽일 것 같았다.그는 방미령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차갑지 그지없는 목소리로 물었다.“어디 계속해보지 그래?”방미령은 강지혁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눌려 몸을 덜덜 떨었다.“임유라를 법의 테두리 안에 맡긴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만약 앞으로 또다시 유진이 찾아오면 그때는 그렇게 아끼는 딸과 함께 감옥으로 보내주지.”강지혁이 무섭게 경고하고 뒤로 돌았다.그리고 다시 임유진 곁으로 가려는데 임정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솔직히... 솔직히 강 대표님도 그때는 유진이한테 죄가 있다고 생각했잖아요. 유진이가 형을 살게 됐을 때도 쟤가 억울해하는 거 믿어주
임유진의 목소리에 강지혁은 그제야 이성이 돌아온 듯 손힘을 살짝 풀었다.분노에 잠식됐던 두 눈도 서서히 다시 원래 모습대로 돌아왔다.“혁아, 이거 놔. 난 이 사람이 뭐라고 하든 신경 안 써. 그러니까 너도 신경 쓰지 마. 이런 인간 때문에 네 손을 더럽힐 필요 없어!”임유진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정말... 신경 안 써?”강지혁의 말에 임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신경 안 써.”그 말에 강지혁은 그제야 완전히 힘을 풀었다.임정호는 죽다 살아난 후 완전히 겁에 질려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리고 방미령도 몸을 덜덜 떤 채로 임정호의 뒤로 가 숨었다.임유진은 그런 그들을 싸늘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임유라 일로 내가 당신들에게 도움을 줄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때 일로 복수할 마음도 없고요. 당신들은 그럴 가치조차 없는 사람들이니까. 다시는 가족이라고 찾아오지 마세요. 나한테 가족은 혁이뿐이에요.”그녀는 말을 마친 후 강지혁의 손을 잡고 저택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임정호와 방미령은 임유진이 떠나는 걸 보고도 그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강지혁은 임유진의 발걸음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집으로 향했다.머릿속에는 온통 그녀가 했던 ‘나한테 가족은 혁이뿐이에요’라는 말뿐이었다.이제껏 수많은 사랑의 속삭임 중에서 이 말이 가장 심장을 울리는 말이었다.임유진은 거실까지 들어와서야 발걸음을 멈추고 강지혁을 바라보았다.“그런 사람들 때문에 화낼 필요 없어. 그럴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그러지 마.”강지혁이 임유진을 빤히 바라보았다.그녀는 모를 것이다. 아까 임정호의 입에서 그 말이 튀어나왔을 때 그가 순간 얼마나 불안하고 또 초조했는지.게다가 아까 병원에서 만약 자신이 탁유미였다면 용서 안 했을 거라는 말 때문에 더더욱 심장이 쿵쿵 뛰었다.사실 임정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강지혁과 그들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맞으니까.임유진이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게 됐을 때 그 역시 그들처럼 아무
그 생각만 하면 강지혁은 핏기가 가시고 손부터 떨렸다.그건 어디까지나 가정이고 눈앞에 임유진이 버젓이 살아있는데도 심장이 쿵쿵 뛰며 도저히 진정할 수가 없었다.“응, 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해. 진애령 씨 일을 안타깝게 됐지만 지금은 그 사고의 진실이 모두 밝혀졌으니 조금이라도 마음 편히 잠들겠지.”강지혁은 그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진실이 무엇인지 임유진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그리고 강지혁은 그런 그녀에게 진실을 얘기해줄 용기가 없었다.정의감 넘치는 그녀가 이제껏 진실이 뭔지 알면서 그녀를 속여온 남자를 쉽게 용서해줄 리가 없었다.“너 왜 그래? 왜 그런 눈을 하고 있어?”임유진이 이상해하며 물었다.“꼭 잘못을 저지른 애가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아.”그 말에 강지혁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만약 내가 정말 잘못을 저질렀다면...?”그러자 임유진이 웃었다.“솔직하게 털어놓고 상대가 용서해주기를 바라야지.”“솔직하게 얘기하면 뭐든 용서받을 수 있어?”“그건 솔직해져 봐야 알겠지?”임유진이 장난 섞인 말투로 답했다.솔직히 그녀는 강지혁이 뭔가 잘못을 저질렀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한들 강지혁이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혁아, 혹시 무슨 고민 있어? 그런 거면 나한테 얘기해 봐. 우리 부부잖아. 서로의 허물도 감싸줄 수 있는 게 바로 부부야.”“나는 왜 너와 조금 더 빨리 만나지 못한 걸까?”강지혁이 입을 열었다.“너를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너를 더 빨리 사랑했을 거고 그러면 네가 그런 고통을 겪지 않게 해줬을 거야.”“지금도 늦지 않았어.”임유진은 강지혁의 볼을 매만지던 손을 떼어내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강지혁은 머릿결도 좋았다.“늦지 않았다고?”“응. 하나도 늦지 않았어.”강지혁도 모든 게 다 늦지 않은 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다 그녀를 지키는 데 쓰고 싶었고 그녀가 더 이상 아무런 상처도
대체 강지혁은 뭘 그렇게 불안해하고 있는 걸까?속마음까지 다 털어놓고 다시 시작하기로 했는데 뭐가 그리도 불안한 걸까?키스가 끝난 후 강지혁의 두 눈이 임유진을 빤히 바라보았다.“유진아.”그의 목소리에 임유진은 심장이 떨리는 느낌이 들었다.강지혁은 마치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을 끌어안듯 그녀를 품에 꽉 끌어안았다.그리고 임유진은 그런 그의 품에 안긴 채 조금 거센 그의 심장박동 소리를 느꼈다.어쩐지 그를 향한 마음을 인정하고 입 밖으로 내뱉은 뒤로 강지혁을 향한 사랑의 감정이 점점 더 커져 가는 것 같았다.임유진은 두 손을 그의 허리에 두른 채 그가 속삭이는 말을 들었다.“예전 일은 다 잊겠다고 약속해. 그리고 나랑 다시 시작해.”“나는 우리가 진작 다시 시작한 줄로 알고 있었는데?”임유진이 웃으며 말했다.“약속해.”강지혁이 고집스럽게 말했다.“그래, 알았어. 예전 일은 다 잊을게. 힘들었던 일, 슬펐던 일, 화났던 일까지 전부 다 잊어버릴게.”임유진의 대답에 강지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가 태어나면 바로 결혼식부터 올릴 거야. 네가 내 와이프인 거 전 세계 사람들한테 알리고 싶어.”그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오로지 임유진을 사랑하고 지켜주며 그녀의 고통을 지워주는 데에 쓸 생각이다.그리고 그녀와 백발의 주름 가득한 노인이 될 때까지 줄곧 함께할 생각이다....윤이의 새로운 인공와우가 완성됐다.이틀 사이에 완성된 것을 보니 이경빈이 신경을 많이 쓴 게 틀림없어 보였다.윤이는 다시 들을 수 있게 돼 기분이 좋은지 활짝 웃으며 이경빈에게 예의를 갖춰 말했다.“아빠, 고마워요!”그러고는 옆에 있는 탁유미에게 와락 안겼다.“엄마, 미안해요. 다음에는 절대 이런 일 없게 할게요.”기기 값이 비싸 탁유미가 그간 힘들게 돈을 모으고 있었다는 걸 윤이도 알고 있다. 그러다 운이 좋게 임유진의 도움으로 인공와우를 착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말이다.그리고 지금 착용하고 있는 이 기기는 그간 줄곧 없는 줄로만 알
탁유미는 부드럽게 웃으며 윤이의 얼굴을 매만졌다.이경빈은 두 눈에 서로밖에 없는 듯한 탁유미와 윤이를 넋을 잃은 채 바라보았다.한 번도 탁유미가 엄마가 되면 어떤 모습일까 같은 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의도치 않게 지금 그 모습을 봐버렸다.순간 이경빈의 머릿속으로 전에 탁유미가 웃으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경빈이 너는 되게 엄격한 아빠가 될 것 같아.”“그럼 너는?”“나는 아마... 다정한 엄마겠지?”“다정한 엄마는 아이에게 휘둘리기 십상이야.”“나는 엄격하지 않아도 아이를 잘 키울 자신 있어. 나는 분명히 좋은 엄마가 될 거야.”윤이의 교육이 제대로 잘 된 건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윤이의 눈에 탁유미는 좋은 엄마인 것은 분명했다.그때 한창 얘기하던 탁유미의 미간이 찡그려지더니 윤이를 향해 다급하게 말했다.“엄마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아빠랑 얘기하고 있어.”그러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복도 끝쪽에 있는 화장실로 걸어갔다.가는 길, 그녀는 손을 들어 오른쪽 갈비뼈 아래를 꾹 짓눌렀다.이경빈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눈썹을 꿈틀거렸다.화장실로 들어온 탁유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오른손으로 갈비뼈 쪽을 더 꽉 짓눌렀다. 그러고는 고통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사실 이 통증은 몇 개월 전부터 시작되었지만 몇 분 뒤면 금방 괜찮아지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 통증이 더더욱 심해졌다.5분 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통증이 멎고 탁유미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단지 5분뿐이었지만 그녀는 마치 모든 에너지를 다 쏟은 것처럼 얼굴이 창백해지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탁유미는 요즘 일 때문에 힘들어서 그렇다며 세수를 한 뒤 화장실에서 나왔다.“너 어디 아파?”화장실에서 나오자 이경빈이 물었다.“아니.”탁유미는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이제 그만 가볼게. 새 기기 고마워.”이경빈은 그 말에 입술을 한번 깨물고 말했다.“데려다줄게.”“괜찮아. 나는...”“데려다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