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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1화

여전히 쌀쌀맞은 태도에 고이준은 바로 입을 다물고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제는 정말 확실히 내려놓으시려는 거네.’

하지만 그렇게 결론을 내리려던 찰나 강지혁이 서류를 훑어보며 고이준을 향해 말했다.

“4억은 왜 빌리려고 하는 건지 한번 알아봐.”

“네, 알겠습니다.”

고이준은 그 말에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커다란 사무실에 혼자 남게 된 강지혁은 손에 든 서류를 내려놓고 창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건물 앞에 있는 여자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이 각도로는 사람들이 그저 한낱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강지혁은 어느 점이 임유진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임유진이라는 여자의 일에는 더 이상 상관하지 말라고 그렇게 되뇌어봐도 몸은 뇌의 통제를 벗어난 듯 제멋대로 움직였다.

지금도 그저 창백했던 그녀의 얼굴을 떠올릴 뿐인데도 걱정이 멋대로 일었다.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대체 왜 이렇게 걱정되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임유진이 이곳으로 찾아온 건 강현수가 돈을 빌려주지 않아서이다.

강현수에게 거절당해 어쩔 수 없이 찾아온 것뿐이다.

강지혁은 자조하듯 웃으며 이마를 짚었다.

차선책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 강지혁이 언제부터 차선책으로 전락했던가.

만약 강지혁이 4억을 빌려주지 못할 만한 사람이었다면 임유진은 애초에 찾아오지도 않았을 테고 아까처럼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차선책조차도 아니었을 테고 말이다.

지금도 강지혁은 임유진의 생각만 하고 있다. 임유진이라는 여자는 마치 그의 일부가 되기라도 한 듯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았던 유약한 몸, 간절히 부탁하던 얼굴, 그 모든 것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욱신거렸다.

강지혁은 서서히 밀려드는 고통에 주먹을 쥐고 심장이 뛰는 쪽을 세게 두드렸다.

최악의 모습으로 헤어져 놓고도 아직도 신경이 쓰이는 건 대체 왜지?

강지혁의 검은색 눈동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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