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수에게 있어 2억이라는 돈은 보잘것없는 돈일지도 모르지만 한지영에게는 목숨값이다.임유진은 휴대폰을 꺼내 강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이에 임유진은 재일 병원으로 달려가 강현수의 병실로 향했다. 하지만 병실 안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간호사에게 물어보니 강현수는 오늘 오후 퇴원 수속하고 나갔다고 한다.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어디로 가면 강현수를 만날 수 있지?그때 임유진의 머릿속으로 전에 강현수가 자신은 평소 본가가 아닌 개인별장에서 지낸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이 떠올랐다.그리고 강현수의 개인별장은 이미 인터넷에 공개된 적이 있다.가십거리를 즐기는 사람들이 강현수의 집을 끈질기게 추적해서 자랑하듯 인터넷에 올린 탓에 말이다.물론 집 주소를 안다고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집은 아니었다. 최첨단 보안 시스템과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었으니까.임유진은 택시를 잡은 후 바로 강현수의 집 주소를 얘기했다.그러자 택시 기사가 그녀를 만류했다.“그거 강현수 집 주소죠? 혹시 아가씨도 강현수 그 남자 눈에 들어보겠다고 지금 이러는 거예요? 아서요. 내가 아가씨 같은 사람을 처음 보는 게 아니거든. 거기로 가봤자 경비원에게 바로 막혀버리고 말 거예요.”“출발해주세요.”임유진의 단호한 태도에 기사를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결국 차에 시동을 걸었다.가는 길, 기사는 운전하면서 전에 강현수의 별장으로 가달라고 했던 여자들을 많이 태워봤다며 그 여자들 모두 경비원 쪽에서 막혀 들어가지 못했다고 얘기해주었다. 그리고 담을 넘어 들어가려던 사람들은 바로 경찰서에 연행되었다고도 했다.“왜 이렇게 다들 비이성적으로 구는지 모르겠네. 부자랑 결혼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 현실적으로 가능한 꿈을 꿔야지. 강현수가 아무리 여자친구를 많이 사귀었다고 해도 그 눈에 일반인이 차겠냐고, 쯧쯧.”기사는 임유진이 강현수와 어떻게 해보려는 여자 중 한 명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한편 임유진은 머릿속이 온통 한지영이라 기사의 말 따위
그때 임유진 쪽으로 승용차 한 대가 가까이 다가왔다.차에서 내린 배여진은 문 앞에 서 있는 임유진을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가가 물었다.“유진아, 네가 여기는 어쩐 일이야?”임유진은 숨을 한번 깊게 들이켜고 배여진을 향해 말했다.“현수 씨를 만나고 싶어. 친구가... 지금 중환자실에 있어. 현수 씨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서 그러는데 언니가 나 데리고 현수 씨 만나게 해주면 안 될까?”곽동현의 사건으로 배여진이 이 부탁을 들어줄 일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부탁할 수밖에 없다.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배여진은 그 말을 듣더니 금세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어떡하지? 네 부탁, 들어주지 못할 것 같아. 현수 씨가 지금 너 때문에 화가 엄청 많이 났거든. 그런데 내가 널 데리고 들어가면 그때는 나한테 화를 낼지도 모르잖아. 나 이해하지? 미안해.”배여진은 말을 마친 후 곧바로 다시 차에 올라탔다.그리고 그녀를 태운 차는 천천히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배여진은 차창 너머로 보이는 고통에 일그러진 임유진의 얼굴을 보고는 입꼬리를 활짝 올렸다.‘내가 미쳤니? 너를 안으로 들여보내게?’배여진은 임유진과 강현수의 사이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틀어지기를 바라고 있다.임유진은 별장 안으로 들어가는 배여진의 차를 쓸쓸한 얼굴로 바라보았다.차량이 완전히 안으로 진입하자 문이 또다시 서서히 닫혔다.이렇게 된 이상 이곳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 강현수가 별장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임유진은 곁에 있는 경비원을 향해 말했다.“저 이대로 돌아갈 생각 없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담장을 넘는다거나 무리하게 들어가려고 하지는 않을 거예요. 제가 지금 서 있는 이 도로는 강현수 씨의 소유가 아니니 제가 밤새 이곳에 서 있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을 거예요.”그 말에 경비원이 움찔하더니 다시 원래 서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그는 아까 임유진이 배여진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어쩌면 임유진이 정말 강현수와 아는 사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별장 거실.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에 강현수는 흔들리는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도 끝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임유진의 전화를 받고 어떤 태도로, 어떤 목소리로 그녀와 얘기를 나눠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전화를 이렇게 많이 거는 건 곽동현 때문인 걸까?결국에는 또다시 그를 봐달라는 소리를 하려고?그때 막 별장 안으로 들어온 배여진이 강현수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끊임없이 울려대는 휴대폰의 발신자를 보고는 모르는 척 물었다.“유진이네요? 전화 안 받아요? 아... 뭐 지금 전화하는 걸 보면 백 퍼센트 곽동현 그 남자 일 때문일 테지만요. 방금 별장으로 들어오는 입구에서 유진이를 만났어요. 현수 씨를 만나야 한다고, 꼭 할 말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휴, 난 유진이가 그 남자 때문에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배여진은 일부러 임유진이 이곳으로 찾아온 이유가 곽동현 때문이라는 식으로 말을 했다.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강현수의 표정이 삽시에 어두워지더니 그대로 휴대폰을 꺼버렸다.배여진은 그 모습을 보고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정말, 안 받아도 되겠어요? 어쩌면 지금도 별장 밖에서...”“그만. 안으로 들일지 말지는 내가 결정할 문제야.”강현수가 차가운 목소리로 얘기했다.그는 임유진이 이러는 것이 곽동현 때문이라고 확신했다.곽동현이 그렇게도 마음이 쓰이나? 그 별 볼 일 없는 남자가?강현수는 지금 곽동현을 질투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질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임유진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별장 밖에 서 있었다.그 뒤로 몇 번이나 더 전화를 걸어봤지만 역시 기계음 소리만 들려올 뿐 강현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임유진은 쓰게 웃으며 별장을 바라보았다.바람이 일자 가녀린 그녀의 몸이 그대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보다 못한 경비원이 이만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렸지만 임유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계속 기다리겠다고 했다.피로감이 쌓이고 머리가 점점 더 멍해져 왔다.임유진은 이대로 다 포기하고 그대로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했다.임유진이 지금 이러고 있는 건 곽동현 때문이었다.얼굴이 초췌한 것도,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것도 전부 다 곽동현 때문이었다.“출발해.”강현수는 기사에게 지시를 내리고는 시트에 기댄 채 서서히 눈을 감았다.그 말에 기사가 차창을 내려 밖에 있는 경비원을 향해 말했다.“대표님께서 저 여자를 만나고 싶지 않으시다고 하시니 지금 당장 끌어내 주세요.”그 말에 임유진의 동공이 흔들리더니 큰소리로 외쳤다.“현수야, 부탁이야!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그래! 사실은 내 친구...!”그때 차창이 다시 올라가고 경비원이 다가와 임유진의 팔을 잡아당겼다.방해물이 사라지자 차량은 서서히 다시 시동을 켜고 앞으로 나아갔다.임유진은 차량이 떠나는 것을 보더니 있는 힘껏 경비원을 밀쳐버리고 차량 뒤를 쫓기 시작했다.하지만 아무리 미친 듯이 뛰어봐도 달리는 차를 앞지를 수는 없었고 계속 거리만 벌어질 뿐이었다.배여진은 차 안에서 열심히 쫓아오는 임유진의 모습을 보며 몰래 미소를 지었다.‘임유진, 이건 네가 자초한 거야. 그러게 애초에 기억이 돌아왔으면 빨리 말을 했었어야지. 강현수를 버린 건 너야! 너는 이제 더 이상 강현수를 가지지 못해. 강현수는 내 거야!’...임유진은 자신이 얼마나 많이 달렸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그렇게 있는 힘껏 달렸다.하지만 야속하게도 강현수의 차량은 끝끝내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주체할 수 없는 무력감과 절망감이 그녀를 휘감았다.또 누가 있지?한지영을 구해줄 사람이 또 누가 있지?임유진은 도로에 주저앉아 공허해진 눈으로 땅을 바라보았다.또 누가... 또 누가 한지영을 구해줄 수 있지?그녀는 한지영만 구할 수 있다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었다.그때, 임유진의 머릿속으로 강지혁의 얼굴이 떠올랐다.순간 축 늘어졌던 그녀의 몸에 다시 에너지가 돌기 시작하며 절망으로 가득했던 두 눈에도 희망의 빛이 어렸다.강지혁이 있었다.강지혁이 자신을 혐오하고 경멸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한지영을 위
차 문이 열리고 강지혁이 뒷좌석에서 내렸다.강지혁은 차에서 내린 후 임유진을 보고는 멈칫하며 발걸음을 멈췄다.“부탁이 있어...”임유진이 힘겹게 말을 건넸다.어젯밤부터 지금까지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던 터라 목이 너무나도 말랐다.“나한테?”강지혁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기억력이 안 좋은 거야 아니면 내 말이 말 같지 않은 거야? 내가 어제 분명히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런데 하루도 못 넘기고 또 찾아왔네?”임유진은 강지혁과의 거리를 좁히고는 그의 팔을 두 손으로 꽉 잡았다.“내 얼굴 꼴도 보기 싫은 거 알아. 아는데 제발 부탁이야... 4억만 빌려주면 안 될까? 갚을게! 이자까지 다 해서 꼭 갚을게! 나 정말 그 돈이 너무 필요해...”“4억?”그녀의 말에 강지혁이 미간을 찌푸렸다.생각지도 못한 부탁에 그의 입에서는 더욱더 신랄한 조롱이 쏟아져 나왔다.“강현수라면 4억 정도는 금방 줄 수 있을 텐데? 왜, 강현수가 못 주겠대? 그래서 나한테 부탁하러 온 거야?”임유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가뜩이나 밤을 새운 것 때문에 안색이 좋지 않은데 그의 말을 듣자 더더욱 얼굴이 창백해졌다.임유진은 뭐라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가 결국에는 다시 입을 닫았다.“내 말이 맞나 보네.”강지혁은 말을 하면서 임유진에게 잡힌 팔을 서서히 뺐다.“그런데 너는 뭘 믿고 나한테 찾아온 거야? 내가 너한테 순순히 돈을 빌려줄 것 같았어? 우리가 그런 사이는 아니지 않나?”강지혁의 팔이 완전히 그녀의 손에서 빠졌다.“임유진, 무릎까지 꿇으며 나한테 널 놓아달라고 했던 건 너야. 그날 너는 내 감정을 아무것도 아닌 쓰레기로 만들었어. 그리고 어제도 나한테 딱 잘라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고. 그랬으면, 그렇게 말을 했으면 미안해서라도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았어야지.”강지혁은 말을 마친 후 아무런 미련도 없이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리고 임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강지혁의
여전히 쌀쌀맞은 태도에 고이준은 바로 입을 다물고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이제는 정말 확실히 내려놓으시려는 거네.’하지만 그렇게 결론을 내리려던 찰나 강지혁이 서류를 훑어보며 고이준을 향해 말했다.“4억은 왜 빌리려고 하는 건지 한번 알아봐.”“네, 알겠습니다.”고이준은 그 말에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커다란 사무실에 혼자 남게 된 강지혁은 손에 든 서류를 내려놓고 창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건물 앞에 있는 여자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이 각도로는 사람들이 그저 한낱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강지혁은 어느 점이 임유진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임유진이라는 여자의 일에는 더 이상 상관하지 말라고 그렇게 되뇌어봐도 몸은 뇌의 통제를 벗어난 듯 제멋대로 움직였다.지금도 그저 창백했던 그녀의 얼굴을 떠올릴 뿐인데도 걱정이 멋대로 일었다.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대체 왜 이렇게 걱정되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임유진이 이곳으로 찾아온 건 강현수가 돈을 빌려주지 않아서이다.강현수에게 거절당해 어쩔 수 없이 찾아온 것뿐이다.강지혁은 자조하듯 웃으며 이마를 짚었다.차선책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그 강지혁이 언제부터 차선책으로 전락했던가.만약 강지혁이 4억을 빌려주지 못할 만한 사람이었다면 임유진은 애초에 찾아오지도 않았을 테고 아까처럼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차선책조차도 아니었을 테고 말이다.지금도 강지혁은 임유진의 생각만 하고 있다. 임유진이라는 여자는 마치 그의 일부가 되기라도 한 듯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았던 유약한 몸, 간절히 부탁하던 얼굴, 그 모든 것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욱신거렸다.강지혁은 서서히 밀려드는 고통에 주먹을 쥐고 심장이 뛰는 쪽을 세게 두드렸다.최악의 모습으로 헤어져 놓고도 아직도 신경이 쓰이는 건 대체 왜지?강지혁의 검은색 눈동자가
반 시간 안에 이렇게나 많은 정보를 입수한 건 대단한 일이었다.강지혁은 보고를 전부 다 전해 듣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어젯밤 줄곧 강현수의 별장 앞에 서 있었다고?“대표님, 임유진 씨의 체력으로 볼 때 어젯밤부터 계속 서 있어서 곧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것으로 보입니다.”고이준이 참지 못하고 임유진의 상태에 관해 얘기하자 강지혁이 고개를 돌려 다시 창밖을 보더니 몇 초 후 천천히 굳게 닫혔던 입을 열었다.“데리고 올라와.”“네, 알겠습니다.”고이준은 그의 지시에 서둘러 대표이사실을 나섰다.강지혁은 역시 아직 임유진이라는 여자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고이준이 로비로 내려왔을 때 임유진의 몸은 이미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의지력이 아니었으면 아마 진작 쓰러졌을 것이다.“임유진 씨, 이쪽으로 따라오시죠. 대표님께서 올라오라고 하십니다.”고이준은 눈앞에 있는 만신창이가 된 여자를 보며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강지혁이 그녀를 이렇게 부른 건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거나 다름없었다.그 대가가 무엇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말이다.“네, 고마워요.”임유진은 침으로 바싹 마른 입술을 한번 핥고는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옆에서 듣기에는 곧 쓰러질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임유진이 고이준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 몇몇 직원들이 자리에 멈춰선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의 정체가 뭔지 추측하고 있는듯했다.그도 그럴 것이 아까 임유진이 밖에 서 있을 때부터 그녀에게는 이미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으니까.고이준은 임유진을 데리고 대표이사실 앞에 도착한 후 가볍게 노크를 했다. 그러고는 문을 열고 임유진에게 얘기했다.“들어가시죠.”임유진은 고개를 끄덕인 후 가볍게 두 손을 말아쥐었다.몇 번이나 온 적 있는 곳이지만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긴장되었다.대표이사실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고이준이 밖에서 문을 닫았다.임유진은 창가 쪽에 몸에 기댄 채 서 있는 남자를 보며 침을 한번 꼴깍 삼켰다.그녀는 지금 무척
“응.”임유진은 강지혁이 돈을 빌리려는 이유를 알고 있는 것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친구 사랑 한번 대단하네. 한지영 때문에 강현수의 별장 앞에서 밤새 서 있은 거로도 모자라 이제는 나한테까지 찾아와서 또 한참을 서 있고.”강지혁의 비아냥거리는 말에 임유진의 몸이 움찔 떨렸다.하지만 그녀는 이내 용기라도 내려는 듯 두 손을 더 꽉 말아쥐었다.임유진은 강지혁이 어떤 말을 해도 참아낼 생각이었다. 이 정도도 참아내지 못하면 한지영을 구해줄 수 없을 테니까.“뻔뻔하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나한테는 그 돈이 정말 필요해. 지영이를 살리려면 어쩔 수가 없어. 돈을 빌려주면 네가 시키는 건 뭐든 할게. 약속해!”임유진은 한지영을 구할 수만 했다면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었다.제일 절망적이었을 때 앞길을 포기하고 손을 내밀어준 한지영을 이대로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임유진의 말에 강지혁이 가볍게 웃으며 입꼬리를 올렸다.“네가 뭘 해줄 수 있는데? 왜, 내가 전처럼 또 내 옆에 있어 달라는 멍청한 소리를 할 것 같아? 아니면 너한테 하룻밤 상대라도 돼달라고 할 것 같아? 4억의 대가로? 임유진, 너는 아직도 내가 너 없으면 안 되는 등신으로 보여?”강지혁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임유진의 가슴을 무겁게 내리쳤다. 얼마나 세게 내리치는지 가슴에 통증까지 일었다.하지만 그녀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그의 말대로 지금의 그녀는 아무런 가치도 없었으니까. 그와 동등하게 설 자격조차 없었으니까.임유진은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그를 향해 물었다.“그러면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줘. 어떻게야 돈을 빌려줄 수 있는지 네가 얘기해줘.”지금의 그녀는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만약 강지혁이 정말 돈을 빌려주지 않을 생각이었으면 고이준을 시켜 날 여기로 부르지 않았을 거야.’강지혁은 임유진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그렇게 임유진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는 싸늘한 눈을 하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때 네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네 발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