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럼에도 한지영이 이렇게 눈치를 보는 건 얼마 전 임유진에게서 강지혁과 완전히 끝났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임유진이 힘들다고 내색한 적은 없지만 한지영은 지금 이 상황에 결혼한다고 말하는 것이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3개월 뒤에 결혼한다고?!”임유진은 한지영의 입에서 이런 빅 뉴스가 나올 줄을 상상도 못 했다.“응, 연신 씨가 3개월 안에 집안 문제를 다 해결하겠대. 그래서 다 해결하고 하면 바로 결혼하재.”한지영도 처음에는 너무 빠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3개월 뒤에 정말 결혼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심지어 이제는 백연신의 아내가 되는 순간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지영아, 축하해!”임유진은 활짝 웃으며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네 결혼식인데 당연히 내가 들러리 서줘야지! 너 그 말 안 했으면 오히려 나 섭섭할 뻔했어!”“유진아, 괜히 나 때문에 무리할 필요 없어. 정말이야... 네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임유진은 한지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지영아, 난 정말 괜찮아. 내가 강지혁 일 때문에 속상해할까 봐 걱정됐던 거지? 네 마음 다 알아. 하지만 난 정말 괜찮고 네 결혼 소식이 진심으로 기뻐! 그러니까 괜히 마음 쓰지 않아도 돼. 나 네 들러리 무조건 할 거니까!”한지영은 자신이 걱정했던 점을 임유진이 다 알고 있다는 것에 괜히 뭉클해졌다.“나는 네가 연신 씨랑 잘돼서 정말 기뻐. 아마 너희 부모님 다음으로 네 행복을 바라는 사람이 나일 거야. 나는 어쩌면 이번 생은 웨딩드레스를 입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너는 꼭 입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는 네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평생을 약속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어!”임유진의 말이 한지영은 괜히 울컥해져 임유진을 꼭 끌어안고 말했다.“너만 일방적으로 축하해줄 생각 하지 마. 나도 네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거 꼭 축하해 줄 거니까!”임유진은 한지영의 말에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웃으며 답했다.“알
한지영은 전에 와봤던 터라 익숙하게 임유진을 데리고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법당으로 향했다.해당 법당에는 지금 참배하는 사람이 있었던 터라 임유진과 한지영은 밖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순서를 기다렸다.그리고 드디어 참배를 마친 사람이 나오고 이제 그녀들도 순서대로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그때 등 뒤에서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그거 들었어요? 강지혁도 지금 여기 있대요.”“강지혁이라면 그 강씨 가문의 강지혁 말하는 거예요?”“네. 아까 절 입구에 왜 그렇게 사람이 많나 신기해서 물어보니까 그게 다 강지혁 때문에 그렇게 삼엄하게 경비가 선거래요.”아주머니들의 대화에 임유진은 멈칫했다.그 저택에서 떠난 뒤로 그녀는 강지혁이라는 이름이 더 이상 그녀의 생활 반경 안에서는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외의 장소에서 그의 이름을 듣게 되었고 심지어 그와 지금 한 절 안에 있게 되었다.한지영도 그 대화를 듣고는 어색한 얼굴로 임유진을 바라보았다.“유진아, 아니면... 오늘은 이대로 돌아가고 다음에 다시 올래?”“그럴 필요 없어. 난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임유진은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강지혁이 여기 있다고 내가 굳이 자리를 피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렇게 따지면 나는 아예 S 시를 떠나는 게 맞으니까. 살다가 언젠가는 이렇게 만나게 될 줄 알고 있었어. 난 정말 괜찮으니까 이만 들어가자. 우리 차례야.”임유진은 한지영의 손을 끌고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두 사람은 법당 안으로 들어간 후 먼저 촛불을 켜고 그 불로 향을 켰다. 그러고는 좌복을 가지고 와 무릎을 뚫고 부처님을 향해 참배를 올렸다. 그러고는 각기 오른쪽과 왼쪽으로 돌아 마찬가지로 참배를 올렸다.임유진은 아까 강지혁 때문에 잠깐 심란해졌던 마음이 참배함으로써 많이 가라앉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법당 안의 조용하고 영험한 분위기와 향냄새로 진정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임유진은 절을 하며 부처님께 한지영의 행복과 탁유미와 윤이가 헤어지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빌었다
한편 이제 막 법당에서 나온 강지혁은 ‘유진’이라는 이름을 듣고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시선을 돌려 임유진과 한지영 쪽을 바라보았다.강지혁 옆에 서 있던 고이준도 한지영의 외침을 들었기에 마찬가지로 임유진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시선을 돌려 강지혁의 표정을 살폈다.강지혁은 바닥에 넘어진 임유진을 보고는 그저 퉁명스러운 표정만 지었다.“가자.”그러고는 짧은 두 글자와 함께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임유진이 넘어진 곳은 마침 입구 바로 옆이었던 터라 강지혁이 이곳을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임유진의 곁을 지나쳐야만 했다.그 시각 임유진의 곁을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은 전부 다 마지막 법당으로 향했고 그 덕에 지금 밖은 매우 조용했다.임유진은 자기 쪽으로 향하는 발걸음 소리를 듣고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그러자 강지혁이 점점 자신과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임유진은 고개를 든 채 그렇게 강지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아까 법당에서 그가 나왔을 때는 스치듯이 봤던 게 전부였지만 지금은 바로 코앞에서 똑똑히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그는 여전히 잘생겼고 여전히 사람을 홀리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의 얼굴에서는 더 이상 임유진에게만 보여주던 다정함과 애절함이 보이지 않았고 그녀가 저택을 떠났을 당시 보였던 절망스러운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강지혁은 임유진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마치 그의 예쁜 눈에 임유진이라는 여자는 이제 들어올 수 없다는 듯이, 이제 임유진이라는 존재는 완전히 잊었다는 듯이 말이다.임유진은 강지혁이 바로 옆까지 다가왔을 때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하지만 강지혁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에게 시선 한번 주지 않고 그렇게 옆을 스쳐 지나갔다.“유진아, 너 괜찮아?”한지영은 서둘러 임유진을 일으켜 세웠다.“응, 괜찮아.”임유진은 고개를 저으며 허리를 숙인 채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그러면서 계단을 내려가는 강지혁의 뒷모습을 또 한 번 바라보았다.사람들 위에 군림해
임유진은 참배를 올린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꼭 감은 채 꽤 오랫동안 합장했다.그녀는 부처님을 향해 강지혁을 향한 이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게, 강지혁에게 설렜던 이 마음에 고요함이 찾아올 수 있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가끔은 사랑하지 않는 것 또한 축복이었다.한편, 산 아래로 내려온 강지혁은 차량 뒷좌석에 타고는 시트에 등을 기댄 채 눈을 지그시 감았다.운전석에 앉아 있던 고이준은 룸미러로 그런 강지혁의 눈치를 보면서 손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아까 강지혁은 완전히 임유진을 내려놓은 것 같았다.물론 겉보기에는 말이다.하지만 과연 정말 그럴까?고이준은 강지혁과 임유진의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쭉 옆에서 지켜봐 왔던 사람이기에 강지혁이 임유진을 얼마나 아꼈는지, 임유진이 강지혁의 마음속에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아마 강지혁은 임유진이 죽으라고 하면 죽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그런데 그런 사람을 고작 이 며칠 사이에 완전히 내려놓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강지혁이 태연해 보이면 보일수록 고이준은 옆에서 점점 더 불안해져 갔다.“이한이 얘기했던 파티, 오늘이라고 했었나?”강지혁이 눈을 계속 감은 채로 물었다.고이준은 그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했다.“네, 오늘 저녁 8시, 골드 클럽이라고 하셨습니다.”골드 클럽은 S 시에서 꽤 이름 있는 클럽이고 재벌 2, 3세들이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를 찾기 위해 자주 가는 곳이다. 그리고 그들은 가끔 이한처럼 그곳에서 파티를 주최하기도 했다.“저녁에 갈 거니까 이한한테 전화해둬.”강지혁의 말에 고이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강지혁은 평소 시끄러운 곳은 딱 질색이라 클럽은 가지 않는 편이었다.‘하지만 오늘은 왜... 설마 아까 임유진 씨와 만난 것 때문에...?’고이준은 한참을 넋을 잃고 강지혁을 바라보다 이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알겠다고 대답했다.만약 오늘 파티에 강지혁이 온다는 소문이 퍼지면 평소 그를 노리던 여자들이 대거 출몰하게 될
임유진은 웃는 듯 마는듯한 얼굴로 배여진을 바라보았다. 임유진은 배여진이 미안해하고 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대기실 일은 분명히 배여진의 짓일 거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으니까.물론 조사 결과는 경찰들의 말을 들어봐야 알겠지만 말이다.강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임유진을 향해 말했다.“나도 전화 받자마자 바로 왔어요. 유진 씨,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그 남자한테 약을 먹인 사람이 누군지 또 누가 대기실 문을 잠갔는지 범인이 밝혀지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임유진은 고개를 들어 강현수를 바라보았다.강현수는 임유진이 배여진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이 얘기를 전한다는 건 임유진에게 그 범인이 배여진이어도 예외 없이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고 알려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배여진은 옆에서 그 말을 듣고는 질투가 차올라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임유진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건데? 다쳤다고 해도 손목이 세게 잡힌 것뿐이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다들 안으로 들어오세요.”그때 경찰이 세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경찰의 안내에 따라 조사실로 들어가 보니 거기에는 장이경의 가족들이 와 있었다. 장이경 역시 이 사건의 피해자이기에 경찰들이 부른 것이다.장이경의 가족으로 온 사람들은 그의 부모님이었고 이 장씨 부부는 한때 배여진의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였던 사람들이었다.장씨 부부는 배여진이 들어온 순간부터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한때 며느리였던 배여진은 지금 비싼 목걸이와 반지를 차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데 그에 반해 그들의 아들은 지금 볼품없는 꼴로 병상에 누워있다.너무나도 달라진 두 사람의 처지에 장씨 부부는 속상한 마음을 숨기려 서로의 손을 꽉 잡았다.그들은 마을 사람들에게서 배여진이 연예계 쪽을 꽉 잡고 있는 강현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배여진이 머지않아 강현수와 결혼해 부잣집 사모님이 된다는
배여진은 그 말에 안심했다.4시 12분에 그녀는 한창 메이크업을 받고 있었으니까. 그 모습을 본 사람 또한 많았었기에 알리바이는 문제없었다.“CCTV를 건드린 사람은요?”강현수가 물었다.“그건 현장을 더 조사해봐야 알 수 있을 겁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조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릅니다. 당시 대기실 근처에 있었던 사람들을 일일이 조사해 이상한 점은 없었는지 물어봐야 하니까요.”경찰은 질문에 대답하고는 바로 장이경의 이야기로 넘어갔다.장이경의 말로는 그날 배여진을 찾으러 간 것이 맞고 배여진이 대기실에서 잠깐 기다려 달라고 한 것도 맞다고 했다. 그리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10분 정도 뒤에 갑자기 몸이 이상해졌고 그 뒤로는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고 했다.병원 쪽에서는 장이경의 혈액에서 성적흥분을 하게 만드는 약 성분이 검출됐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약은 요즘 인터넷만 이용하면 어디서든, 누구든 살 수 있었기에 구매자를 찾아내는 것이 상당히 어려워지게 된다.“저희도 조사는 계속하겠지만 단시간 안에 범인을 색출하는 것은 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경찰의 말에 배여진은 한시름 놓았다. 단시간 안에 알아내지 못하면 이런 사건은 결국 흐지부지되기 일쑤니까.경찰서에서 나온 후 배여진은 임유진을 향해 말했다.“유진아, 너무 걱정하지 마. 범인은 꼭 잡힐 거야. 정말 어떤 파렴치한 인간이 이런 짓을 했는지! 잡히면 내가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응, 나도 범인은 꼭 잡힐 거라고 생각해.”임유진은 배여진에게 의미심장한 눈길을 보내고는 이곳을 떠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그러자 강현수가 그녀를 따라 걸으며 말했다.“데려다줄게요.”“아니요. 나는 버스 탈 거라서. 그럼 이만.”임유진은 강현수가 자신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에 최대한 그와 거리를 뒀다.배여진은 그녀의 말에 피식 웃더니 강현수 옆으로 다가와 다정하게 말했다.“현수 씨, 우리도 이제 가요.”하지만 강현수는 배여진의 말은 무시한 채 임유진의 뒷모습만 바라보
“하마터면 놓칠 뻔했네요.”청량한 목소리가 임유진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이에 고개를 홱 돌려보니 강현수가 바로 뒤에 서 있었다.“왜... 여기 있어요?”“유진 씨 집까지 데려다주려고요. 내 차에 앉는 건 싫은 것 같으니 이렇게 내가 유진 씨 따라 버스에 탈 수밖에 없겠죠?”강현수의 말에 임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설마 강현수가 자신을 따라 버스에 오를 줄을 몰랐다.“젊은이, 돈 내야지.”그때 버스 기사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강현수는 그 말에 지갑을 꺼내더니 당당하게 수표를 꺼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요금통을 향해 손을 뻗었다.“잠깐만요!”하지만 그때 임유진이 그의 팔을 덥석 잡았다.“설마 수표 넣으려는 건 아니죠?”“맞는데요?”강현수의 말에 임유진은 한숨을 한번 내쉬더니 아까 지갑에 넣어뒀던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내가 찍어줄 테니까 돈은 넣어둬요.”그러고는 다시 한번 카드를 찍고 버스 중간으로 걸어갔다.출퇴근 시간이 아니라 붐빌 정도는 아니었지만 자리는 이미 사람들이 다 앉고 없었다.결국 임유진은 적당한 곳에서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강현수는 그녀 바로 옆에 섰다.“버스 타니 옛날 생각나고 좋네요.”강현수가 웃으며 말했다.“앞으로는 집까지 데려다주지 않아도 돼요.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거 익숙하거든요.”“데려다주는 사람이 나라서 불편한 건 아니고?”강현수는 임유진의 두 눈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이에 임유진은 찔리는 게 있는 듯 서둘러 그의 눈을 피했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러는 거 시간 낭비에요.”그 말에 강현수의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그는 한참을 임유진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더는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이러는 거예요. 전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거든요.”강현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혹시 내가 계속 다가가는 게 두려워요? 나를 어느 순간 받아주게 될까 봐, 그래서 자꾸 시간 낭비라고 하는 거예요?”“그게 무슨...!”임유진은 그의 말에 발끈하고는 이내 한숨
임유진은 강현수의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렇게 분위기는 갑자기 어색해졌고 두 사람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그때, 임유진의 앞에 있던 승객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차량이 천천히 멈췄다.“앉아요. 아니면 계속 나랑 같이 서서 가던가.”강현수가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이에 임유진은 잠깐 망설이다가 결국 자리에 앉았다.1인석이었기에 앉을 수 있는 건 임유진뿐이었고 강현수는 계속 서 있어야만 했다.임유진은 그걸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 명이 앉게 되면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게 될 테고 그러면 강현수와의 묘한 분위기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하지만 그것도 잠시, 임유진은 또다시 난감한 상황에 처해졌다.강현수가 그녀가 앉은 자리 바로 옆으로 다가와 허리를 살짝 숙이고는 손잡이가 아닌 임유진과 그 앞 의자의 등받이를 잡았기 때문이다.임유진은 지금 그에게 완전히 갇혀버린 꼴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이에 민망해진 임유진은 최대한 강현수의 존재를 무시하려고 고개를 푹 숙였다.하지만 집까지 아직 10개 정거장이나 지나야 하고 시간상으로는 대략 40분 가까이 지나야 했다.그래서 언제까지고 고개를 숙일 수 없었던 그녀는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기로 했고 자는 척을 시도했다.그리고 강현수는 고개를 숙여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질끈 감은 눈과 앙증맞은 코, 그리고 정갈하게 어깨까지 떨어진 검은색 머리카락, 그 모든 것이 강현수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대체 언제부터 임유진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걸까? 또 언제부터 그녀에게 이토록 속수무책으로 빠져버린 걸까?처음에는 아마 외모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단기간에 한 사람의 내면까지 파악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외모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그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그 역시 뭐였다고 확실하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그녀의 정의감? 아니면 단호함? 어쩌면 그런 명확한 이유 없이 그저 임유진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