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어떻게... 왔어요?”임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강현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야 그가 조금 야위었다는 것을 눈치챘다.게다가 그의 오른손에는 아직 붕대가 감겨 있었다.임유진은 문득 그날 강지혁이 그의 손가락을 부러트렸던 것이 생각났다.“손가락은 좀 어때요?”“괜찮아요. 큰 상처도 아니었어요.”강현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그보다 유진 씨 찾기까지 애먹었어요. 어제 선생님이 이곳으로 데려와 지지 않았더라면 아마 계속 막막했을 거예요.”그는 걱정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강지혁이 이곳으로 데려와 유진 씨를 난감하게 만들지는 않았어요?”“네, 그러지는 않았어요.”임유진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이곳에서 보냈던 나날을 회상하는 건지 그녀의 표정에 미세한 변화가 일었다.강현수는 그 모습을 보고는 또다시 초조함과 불안함이 들끓었다. 그럴 일 없다고,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상황이 어느새 현실이 되었을까 봐 두려운 모양이었다.“여기서 나가요.”강현수는 왼손을 내밀어 임유진의 손을 덥석 잡았다.“이 저택 주위에 시큐리티 시스템이 깔려있어요. 해킹하는 데 성공해 지금은 보안이 잠시 해제한 상태지만 곧 다시 회복될 거예요. 그래서 지금 빨리 떠나야 해요.”그 말에 임유진이 멈칫했다.“이곳을 떠난다고요?”강현수가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왜요. 설마 떠나기 싫어요?”임유진의 머릿속에 순간 어제 강지혁이 무릎을 꿇은 채 발등에 입술을 맞추며 맹세하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임유진은 그때 분명히 흔들렸고 설렜다. 강지혁 때문에 설렜다.그녀를 지독하게 상처를 준 남자지만 그래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줄곧 저도 모르게 어쩌면 이번에는 그와 함께하면 행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강지혁은 그녀를 믿겠다고 했고 그녀를 사랑하겠다고 했으며 다시는 상처 주지 않을 거라고 했다.그러니 어쩌면 이번은 다를 수 있지 않을까?임유진의 망설임이 강현수의 눈에도 훤히 보였다.강현수는 심장이 철렁해 나며 마
임유진이 이상함을 느끼기도 전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내 허락 없이는 누구도 여기를 못 떠나.”임유진은 그 말을 듣고 순간 몸이 경직되어버렸다.이건 강지혁의 목소리였다.고개를 들어보자 불과 5m도 안 되는 거리에 강지혁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로는 검은색 양복 차림의 남자들이 무섭게 줄지어 있었다.꼭 이런 상황이 생길 줄 알고 여기서 줄곧 대기하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하, 나 지금 완전히 네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 거지?”강현수는 차가운 눈길로 강지혁을 노려보았다.“선생님을 일부러 여기로 부른 거야? 날 끌어들이려고?”만약 소영훈이 아니었다면 강현수는 애초에 여기를 찾아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강지혁은 그 말을 무시하고 강현수의 뒤에 있는 임유진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내가 내 모든 걸 준다고 했는데도 강현수와 함께 떠나는 걸 선택한 거야?”임유진은 강지혁이 이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다.지금 그의 얼굴은 싸늘하지 그지없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다정함이 흘러넘치던 두 눈이 지금은 무섭게 변해 있었다.“내가 떠날 생각이 없었다고 하면 믿을 거야?”임유진의 질문에 강지혁이 코웃음을 쳤다.“강현수랑 같이 이 저택에서 나와 놓고, 그리고...”강지혁은 임유진과 강현수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두 사람이 잡고 있는 손으로 시선을 내렸다.“둘이 이러고 있는데 나더러 그 말을 믿으라고?”임유진의 심장이 철렁했다. 쓸쓸하고 아릿한 느낌이 온몸에 퍼졌다.“내 말 못 믿어?”“이 상황에서 내가 널 어떻게 믿어야 하는데?”강지혁이 되물었다.그리고 이번에는 임유진이 코웃음을 쳤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쩌면 강지혁과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건 착각에 불과했다.“내가 하는 말은 전부 다 믿겠다며. 멋대로 의심하고 멋대로 추측하지 않겠다며?”임유진은 입안이 썼다.그의 말이 아직도 이렇게 선명하게 귓가에서 맴돌고 있는데 정작 그 말을 내뱉은 강지혁은 지금 그녀를 믿지 않
“못할 건 없지.”강현수는 물러서지 않았다.S 시의 꼭대기에 있는 두 남자가 지금 서로를 원수 보듯 노려보고 있다.“만약 유진 씨가 이곳에서 떠나기를 원하면 나는 오늘 무슨 수를 써서든 이곳에서 유진 씨를 데리고 떠날 거야.”강현수가 말했다.“이번에는 아예 손을 부러트려야겠네.”강지혁은 말을 마치고는 강현수에게 주먹을 휘둘렀다.강현수는 이런 상황이 생길 줄 이미 예상했기에 가볍게 옆으로 피했다. 두 남자는 서로 주먹을 휘두르며 싸우기 시작했다.언뜻 비등해 보였지만 강현수는 오른손에 상처를 입고 있어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했다.강지혁은 강현수를 빠르게 제압하더니 그의 왼손을 잡고 금방이라도 부러트릴 것처럼 뒤로 꺾었다.하지만 그때 임유진이 다가와 강지혁의 손을 꽉 잡았다.“그만해! 강지혁, 그만해!”강지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만약 내가 기어이 오늘 이 손을 부러트려야겠다면?”“사람 손 하나 부러트리는 게 너한테는 그렇게 쉬운 일이야?”임유진이 물었다.그녀는 순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손을 이렇게 만들어놨던 진세령과 소민준이 떠올랐다.그들의 한낱 가벼운 행동이 그녀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강현수를 지켜주고 싶어?”강지혁이 물었다.“그래.”임유진은 단호하게 대답했다.강현수는 이미 자신 때문에 손가락을 다쳤다. 그러니 또다시 자신 때문에 그를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강현수에게는 더 이상 빚지고 싶지 않았다.강지혁은 임유진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그렇게도 강현수가 신경 쓰여?”임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만약 강현수가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강현수는 어릴 적 함께 생사의 고비를 넘겼던,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던 친구니까.물론 결과적으로 임유진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기억이 돌아왔음에도 그가 계속 착각하게 내버려 두었다.하지만 지난번 그 절벽에서 다시 강현수와 만났을 때, 강현수는 그녀를 구해줬다. 만약 그때 그대로 떨어졌다면 어쩌면 지금쯤 영원히 눈을 감
“꼭 약속 지킬 거니까 너도 날 잊으면 안 돼, 알겠지?”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돌았다.하지만 임유진은 그 약속한 게 무색하게 너무나도 쉽게 그를 잊어버렸고 그와의 약속을 져버렸다.털썩.임유진은 강지혁에게 무릎을 꿇었다.그녀의 돌발 행동에 두 남자 모두 깜짝 놀랐다.“너...!”강지혁의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강현수 때문에 무릎을 꿇어? 네가 이러면 내가 강현수를 봐줄 것 같아?!”“강현수 씨 때문이 아니야.”임유진은 깊게 숨을 한번 들이켰다. 그녀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줄곧 마음속을 헤집었던 혼란이 점차 옅어져 갔다.“너랑 나 사이의 일에 다른 사람을 끼워 넣지 마. 날 사랑한다고 했지? 하지만 나는 네 사랑이 감당이 안 돼. 그러니까 강지혁... 이제 그만 날 놓아줘.”“널... 놓아달라고?”강지혁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이제까지 중에서 제일 어둡게 변했다.그는 그녀가 무릎을 꿇는 게 그녀를 놓아달라는 이유가 아닌 차라리 강현수 때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건지 알아?”강지혁은 강현수를 풀어주고 고개를 돌려 임유진을 내려다보았다.“알아.”임유진의 짤막한 두 글자에 강지혁은 순간 누군가가 총이라도 맞은 것만 같았다.그녀에게 모든 걸 다 주겠다고 했는데, 발등에 맹세까지 하며 충성을 바치겠다고 했는데 임유진은 지금 무릎을 꿇고 자신을 놓아달라고 말하고 있다.“임유진, 너한테 나는 대체 뭐였어? 대체 뭐였냐고!”강지혁은 그녀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야수가 울부짖듯 원망과 분노가 가득 섞인 채로 그녀에게 소리를 질렀다.그녀는 어떻게 이렇게도 쉽게 놓아달라고 할 수 있는 거지? 또 어떻게 이렇게도 쉽게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거지?임유진은 고개를 들어 아무런 감정 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너랑 나는 애초부터 만나면 안 되는 사람이었어. 너는 그때 나를 구해주지 말았어야 했고 나도 너를 집에
하지만 임유진은 아니었다.그녀에게는 그와 만난 것이, 그와 함께했던 순간들이 그저 단순히 일어나서는 안 될 ‘착오’에 불과했다.모든 걸 다 내줄 정도로 사랑한 여자가 지금은 무릎을 꿇고 놓아달라고 하고 있다.세상에 이것보다 더 잔인한 일이 또 있을까?“그래. 놓아줄게.”강지혁의 입에서 해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이 순간부터 너랑 나는 철저하게 모르는 남인 거야.”두 사람은 이제 연인도 아니고, 누나 동생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그런 사이다.두 사람은 결국 얼마나 길게 뻗어도 결코 만날 수 없는 그런 평행선 같은 사이었다....강현수는 임유진을 데리고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집 안은 먼지가 조금 쌓인 것 외에 큰 변화는 없었다.“강지혁한테 무릎까지 꿇을 필요는 없었어요.”강현수가 말했다.“그렇게 하지 않아도 그 상황을 벗어나게 할 수 있었어요.”임유진은 쓰게 웃었다.어제 강지혁은 그녀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오늘은 도리어 그녀가 강지혁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물론 두 사람이 원하는 건 정반대였다.한 사람이 원하는 건 사랑이었고 다른 한 사람이 원하는 건 자유였으니까.“오늘 고마웠어요. 하지만...”임유진은 복잡한 얼굴로 그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다행히 강지혁은 강현수의 왼손을 부러트리지 않았다.만약 정말 부러트렸으면 임유진은 강현수를 향한 죄책감이 더 커졌을 것이다.“나 때문에 이럴 필요까지는 없었어요.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현수 씨를...”“좋아하지 않는다고요?”강현수가 대신 대답했다.“물론 오늘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내일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하지만 1년 뒤에도, 2년 뒤에도, 심지어 10년, 20년 뒤에도 그럴까요?”임유진은 흠칫했다.“나는 유진 씨를 기다릴 수 있어요. 유진 씨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이상 나는 계속 이렇게 기다릴 거예요.”“만약 내 마음이 평생 바뀌지 않는다면요?”임유진의 질문에 강현수는 미소를 지었다.“그럼 평생 서로 독신으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강현수가 떠난 후 임유진은 그제야 자신의 휴대폰이 아직 강지혁에게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저택에 갇혔을 때 강지혁은 제일 먼저 그녀의 휴대폰부터 가져갔고 그 뒤로 임유진은 휴대폰을 볼 수가 없었다.휴대폰 때문에 다시 강지혁을 찾을 수는 없으니 내일 새로운 휴대폰을 사고 유심도 바꿔야 했다.하지만 새로운 휴대폰으로 바꾸게 되면 그만큼 돈이 들었다.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임유진은 강현수가 다시 온 건가 싶어 별다른 생각 없이 문을 열었다.그러나 거기에는 강현수가 아닌 고이준이 서 있었다.“임유진 씨 휴대폰입니다. 대표님께서 돌려주시라고 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고이준은 임유진에게 휴대폰을 건네주었다.그리고 임유진이 휴대폰을 건네받은 다음 고이준은 별다른 말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임유진은 문을 닫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휴대폰 전원을 켜보니 아직 배터리가 조금 남아있었다. 그리고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와 있었다.제일 많게는 한지영이었고 일부는 로펌에서 온 것이었다.임유진은 무사하다는 걸 알리기 위해 한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지영은 드디어 걸려온 임유진의 전화에 흥분해서 물었다.“너 나왔어? 괜찮은 거야? 강지혁은 대체 널 어디로 데려갔던 건데? 너한테 이상한 짓은 안 했고? 너 지금 어디야?!”쏟아지는 질문에 임유진은 그녀의 걱정이 느껴져 미소를 지었다.“응, 나 괜찮아. 그리고 강지혁은 앞으로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야.”“그게 무슨 뜻이야?”한지영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강지혁이랑 나랑 이제 더는 볼 일 없다고.”“너...”임유진의 목소리는 분명 평온하기 그지없었지만 한지영은 왠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만 같았다.“너 정말 괜찮은 거야...?”“응, 정말 괜찮아. 나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고 얘기해주려고 전화 한 거야. 앞으로 이런 일 없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나 배터리가 된 것 같아. 그럼 이만 끊을게.”임유진은 전화를 끊은 후 휴대폰을 다시 확인했다.휴대폰은 강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다시 헤어지게 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난번은 강지혁이 헤어지길 원했고 이번에는 임유진이 헤어짐을 원했다는 것이다.두 사람은 어쩌면 처음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었을 지도 모른다.“이제는 정말 너를 잊을 때가 된 거야.”임유진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다음날.한지영은 퇴근하자마자 임유진을 찾아갈 생각으로 서둘러 가방과 외투를 챙겼다.어제 임유진에게서 무사하다는 연락을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한지영이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에 타려고 하던 그때, 누군가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한지영 씨죠?”말을 걸어온 사람은 웬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였다. 그 여자는 가을 신상 컬렉션을 몸에 두른 채 시선을 조금 아래로 하고 한지영을 내려보았다.“누구세요?”“고유정이에요. 백연신 씨 결혼 상대이기도 하고요. 연신 씨랑 만나신다면서요? 그래서 얼굴이나 볼까 하고 왔어요.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분명히 의견을 묻고 있었지만 말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한지영은 정략결혼이라는 말에 눈썹을 치켜세웠다.‘결혼? 연신 씨한테 그런 말 못 들었는데? 흠... 뭐가 됐든 지금 이 상황은 그러니까 연적이 날 찾아온 거네? 잠깐, 이 여자를 연적이라고 할 수나 있나?’한지영은 머릿속은 지금 많은 생각들로 넘쳐났고 한순간에 그녀에게 무시당한 고유정은 미간을 찌푸렸다.앞으로의 계획이 아니었으면 고유정은 이런 곳에서 한지영에게 시간을 쏟지도 않았을 것이다.‘이렇게 평범한 여자가 뭐가 좋다고, 쯧.’“이봐요. 얘기할 수 있냐고요.”고유정이 짜증 섞인 말투로 물었다.“좋아요. 근처에 자주 가는 카페가 있는데 거기로 가요. 아, 커피값은 그쪽이 계산하세요.”한지영은 이런 여자와 얘기하는 것에 굳이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볼 일이 있어 찾아온 건 고유정 쪽이니 말이다.그리고 고유정은 한지영이 커피 한잔 마시는 것에도 돈을 아까워하는, 별 볼 일 없는 여자라고 생각해 더욱더 그녀를 얕잡아 보았다.“앞
한지영은 눈을 깜빡이더니 휴대폰을 들어 해진 그룹을 검색하기 시작했다.이에 고유정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해진 그룹을 모른다고? 진심으로?’고유정은 이런 상황이 전개될 거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해진 그룹이라고 얘기하면 당연히 화들짝 놀라며 그녀의 눈치를 볼 줄 알았는데 한지영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대놓고 검색까지 해댔다.한지영은 인터넷으로 해진 그룹에 관해 한번 쓱 훑어보더니 휴대폰을 다시 내려놓고 웃음을 지었다.“고유정 씨가 누군지 이제 잘 알겠네요. 방금 조만간 연신 씨랑 약혼식을 올릴 거라고 했나요? 그렇다는 건 아직 약혼을 한 건 아니라는 소리네요? 그리고 백씨 가문에서 점 찍어둔 연신 씨 미래 와이프라는 건 백씨 가문의 뜻이지 연신 씨 뜻은 아니라는 소리고요. 그러니까 종합해 보면 고유정 씨는 연신 씨랑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는 뜻이 되네요?”한지영은 백연신에게 미리 정해진 짝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분명 아직 확인된 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녀는 아주 당연하게 백연신을 믿고 있었다.어쩌면 이런 게 사랑의 힘일지도 모르겠다.고유정은 틀린 거 하나 없는 한지영의 말에 이를 바득바득 갈며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다.확실히 한지영의 말처럼 결혼은 단지 고씨 가문과 백씨 가문의 어른들 사이에서 얘기가 오고 간 것일 뿐 백연신은 이에 동의한 적이 없다.“참, 제 소개를 안 했죠?”한지영은 목을 가다듬고는 어깨를 쭉 편 채 고유정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안녕하세요. 저는 한지영이에요. 연신 씨의 공식 여자친구죠! 아까 공식 여자친구인 저한테 조용히 사라지라고 했었나요? 아무것도 아닌 그쪽이 그런 말 하는 거, 솔직히 웃긴 거 아시죠?”고유정은 당돌한 자기소개에 코웃음을 치고는 한지영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됐고, 액수 불러요. 얼마면 연신 씨 옆에서 떨어질래요?”그 말에 한지영의 두 눈이 반짝였다.드라마 속에서나 봤던 장면을 자신이 직접 겪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드라마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