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오늘은 여기서 끝이라는 소영훈의 말이 들려왔다.손등이 타들어 가는 것 같은 고통도 한결 가라앉았다.임유진은 긴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두 눈을 떴다. 시선 바로 앞에 강현수의 팔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이 보였다.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손이 여전히 그의 팔 위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미안해요!”임유진을 손을 빠르게 거두어들이며 사과했다.“괜찮아요. 내가 잡으라고 했잖아요.”강현수는 아무렇지 않게 팔을 거두어들였다.“다음 주에 다시 오세요.”소영훈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에게 말했다.“3시간 동안 물에 닿지 않지 않도록 조심하고 무거운 물건도 들지 마세요.”“네, 수고하셨습니다.”밖으로 나온 뒤 강현수가 그녀에게 말했다.“데려다줄게요.”“음... 그냥 버스 타고 갈게요.”임유진이 뒤돌아 떠나려고 하자 강현수는 다급히 그녀의 팔을 잡았다.“그냥 데려다주려는 것뿐이에요. 나 받아달라고 안 할 테니까 너무 나 피할 필요 없어요.”“그게 아니라 이 이상 신세 지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임유진은 그의 팔을 밀어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밀어낸 순간 그가 팔을 움찔하고 떨었다.방금 세게 밀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그녀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강현수의 팔 쪽을 바라보았다.오늘 그는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손목 좀 더 윗부분에 언뜻 빨간색이 보였다.임유진은 뭔가 떠오른 듯 그의 셔츠 소매를 위로 확 걷어 올렸다. 그러자 자잘한 상처가 그대로 드러났다.그의 팔에는 할퀸 자국도 있었고 손톱이 깊게 파고든 자국도 있었다. 그리고 상처마다 피가 조금씩 흘러나왔다.임유진은 아까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그를 꽉 잡았던 게 생각이 났다. 그리고 기억은 안 나지만 할퀸 적도 있었던 것 같았다.“미... 미안해요.”“아까도 말했지만 먼저 잡으라고 한 건 나였어요. 그러니까 그런 미안한 표정 짓지 않아도 돼요.”강현수는 태연한 얼굴로 셔츠 소매를 내려 상처를 가렸다.“껍질 좀 까졌다고 안 죽어요.”그가 괜
임유진은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눈매가 살짝 휘어진 채 까만 눈동자로 올곧게 쳐다보는 그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찡하며 코가 시큰해졌다.‘현수’와 함께 있는 느낌이 들어서 이런 걸까? 아니면 그의 말 때문에 감동이라도 받은 걸까?전에는 고통스러운 일도 힘든 일도 오로지 혼자만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 남자는 옆에서 그 고통을 분담해주겠다고 한다.“나한테 너무 잘해주지 마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에 시간 낭비하지 말라는 뜻이에요.”그가 이렇게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마음이 점점 더 무거워진다.“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시간 낭비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할 문제예요.”강현수는 단호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그리고 나는 내 행동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임유진은 순간 누군가가 심장을 두드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강현수의 차량이 천천히 임유진의 집 앞에 멈춰 섰다.임유진이 차에서 내린 후 그는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더 이상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야 비로소 시선을 내려 자신의 오른팔에 있는 밴드를 바라보았다.“유진아...”강현수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가 붙여준 밴드 위에 천천히 입을 맞췄다.그의 마음을 이렇게도 뒤흔드는 여자는 임유진이 처음이다.그는 그녀가 주는 상처 또한 소중해 마지않았다.“언젠가 나도 사랑해줄 거지?”강현수는 혼자만의 공간 속에서 애절한 고백을 조용히 읊조렸다.그에게 있어 여자란 언제든지, 그가 원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 누군가에게 구애라는 걸 굳이 하지 않아도 달라붙는 여자들이 태반이라 이토록 애가 닳는 기분은 처음이었다.임유진이라는 여자가 주는 사랑 속에서 그녀와 평생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은 날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강렬해지고 있다.한참을 멈춰있던 차량은 드디어 천천히 앞으로 미끄러졌다.강현수는 시동을 건 후 사이드미러를 통해 어딘가를 싸늘하게 바라보았다.강현수의 차가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되어 있
임원진들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하나같이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그렇게 피를 말리는 10분이 흐르고 강지혁은 드디어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임원진들을 향해 냉랭하게 말을 내뱉었다.“계속하지.”임원진들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토론을 이어갔다. 그들은 행여 그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말을 고르고 또 골랐다.고이준은 어두운 강지혁의 얼굴색을 바라보며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강지혁이 메시지로 무엇을 받았는지 옆에서 전부 다 봤던 터라 골치가 아팠다.‘대체 강현수와 임유진이 함께 있는 사진은 왜 보낸 거야! 그렇게도 눈치가 없나?’게다가 차라리 평범한 사진이었다면 말도 안 하겠지만 경호원들은 강현수와 임유진이 찰싹 달라붙어 있는 사진들만 골라서 보냈다.특히 임유진이 강현수의 팔을 잡고 밴드를 붙여주는 사진과 두 사람이 서로의 두 눈을 지그시 바라보는 사진은 구도와 주변 풍경도 완벽해 정말 영화 한 장면이 따로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고이준은 앞으로 임유진의 경호원은 눈치가 있고 사진도 예쁘게 찍지 않는 사람들로 골라야겠다고 생각했다.그리고 지금은 강지혁이 제발 화내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유진아, 네 생각이 맞았어. 그 양아치들을 누가 고용한 게 맞았다고!”한지영은 임유진에게 전화를 걸어 백연신이 알아낸 정보를 알려주었다.임유진은 그녀의 말에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것들 고용한 사람이 누군지 한번 맞춰봐.”한지영은 일부러 뜸을 들였다.“이경빈 쪽이 아니면 공수진 쪽일 텐데... 내 생각에는 공수진 쪽일 가능성이 크다고 봐.”이경빈이 탁유미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건 맞지만 고작 이런 식으로 복수할 사람 같지는 않았다.그라면 조금 더 확실하고 더 지독하게 탁유미를 괴롭혔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공수진이 더 유력했다.“너... 너 어떻게 알았어?”한지영은 생각지도 못한 정답에 말까지 더듬었다.“이건 이경빈보다는 공수진이 할 법한 짓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야.”임유
한창 바삐 일하고 있던 탁유미는 임유진을 발견하더니 활짝 웃었다.“유진 씨, 어떻게 왔어요?”“저녁에는 일도 없고 언니 얼굴 보려고요. 요즘은 좀 어때요? 지난번처럼 행패 부리는 사람들 없어요?”그 말에 탁유미의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그러자 임유진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또 누가 왔어요?”“그 뒤로 또 찾아와서 바로 경찰에 신고했어요. 요 며칠은 경찰분들이 이 근처를 순찰해주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탁유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양아치 몇 명이 포장마차 쪽으로 다가오더니 흉악한 얼굴로 손님들을 쫓아냈다. 그러고는 떡볶이 1인분을 시키더니 한사람이 한 테이블을 차지해버렸다.총 네 테이블 정도밖에 없는 것을 그들이 다 차지하고 있어 다른 손님들은 다가올 수조차 없었다.가끔 혼자 온 손님이 합석 제안을 해도 쌍욕을 늘어놓으며 쫓아내기 일쑤였다.그 모습을 본 임유진이 미간을 찌푸렸다.“이제는 저렇게 장사를 방해하고 있어요?”탁유미는 쓰게 웃으며 답했다.“네... 지금은 가끔 오는 포장 손님들밖에 못 받아요. 일부러 행패를 부리는 것도 아니라서 경찰분들도 어떻게 할 수가 없대요. 아니면 장소를 아예 바꿔보려고요.”이제는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그리고 이런 상황을 만든 사람은 공수진이 분명했다.이 일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이제는 공수진을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다만 그녀는 S 시에 거주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해성시로 찾아간다고 해도 만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다음날, 임유진은 출근해서도 줄곧 탁유미의 일만 생각했다.그러다 점심시간이 되고 동료들 몇 명이 모여 오늘 밤 있을 연예계 자선 파티에 참석하는 연예인들에 관해 얘기하는 것이 들려왔다.임유진도 얼마 전 그런 기사가 올라온 것을 얼핏 본 적이 있었다. 다만 연예계 쪽 일이라 그녀와는 큰 접점이 없었기에 금방 다시 스크롤을 내리고 말았다.그때 동료 중 한 명이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이번 파티에 이강 그룹 대표랑 그 약혼녀도 함께 참석한다고 한
강현수는 임유진이 이렇게 먼저 찾아올 줄은 몰랐다. 줄곧 그와는 선을 그으려고 했었던 그녀였으니까.그리고 찾아온 목적을 듣고는 더더욱 고개를 갸웃했다.“오늘 저녁에 있을 자선 파티에 참석하고 싶다고요?”“네, 안 될까요?”“안될 건 없죠. 그런데 갑자기 파티에 가겠다고 이렇게 부탁하는 이유는 들어보고 싶은데요? 연예인 보려고 가는 건 아닐 테고.”오늘 있을 파티에는 연예인들이 대거 참석하기에 덕질이 취미인 재벌 2, 3세들이 팬심으로 많이 참석할 예정이다.물론 임유진이 연예인 덕질을 하겠다고 해도 도와줄 수 있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인을 받아온다든지 그 연예인과 같이 밥을 먹는다든지 그에게 있어 그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이경빈 씨와 공수진 씨를 만나고 싶어요. 두 사람이 이 파티에 참석한다고 들었거든요.”“그 두 사람을요?”강현수가 의문 섞인 얼굴로 물었다.“그 두 사람이 파티에 참석하는 건 맞지만 유진 씨가 왜...”“친한 언니랑 관련된 개인적인 일이라...”임유진은 구체적으로 얘기해주지는 않았다.“알겠어요. 더 묻지는 않을게요. 음... 지금 시간이 조금 타이트하긴 한데 아마 괜찮을 거예요.”강현수의 말에 그녀는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그러다 반 시간 뒤 그제야 시간이 타이트하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강현수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벤을 준비시키더니 S 시의 제일 유명한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샘을 불러 임유진의 메이크업을 맡겼다.“꾸미지 않고 이대로 파티에 참석하면 더 눈에 띄게 될 거예요.”임유진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이러한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편한 복장이 아닌 예쁘게 꾸며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보통은 파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샵을 돌아야 했지만 지금은 시간이 늦어 파티장으로 가는 길 차 안에서 메이크업을 받을 수밖에 없다.“날 부려먹는 데는 선수야 아주. 내가 스타일리스트 동생까지 데려오느라고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그건 그렇고 이쪽은 현수 새 여자친
“정말 현수를 거절했어요?”샘은 신기한 동물을 보듯 그녀를 바라보았다.강현수가 바로 앞에 있던 터라 임유진은 이 상황이 어색하고 무척이나 민망해졌다.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르고 있던 찰나 샘은 다시 손을 빠르게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현수를 마다하는 여자는 처음 봐요. 우와, 신기해.”“어째 기분 좋아 보인다?”강현수는 팔짱을 낀 채 샘을 흘겨보았다.“한 번도 본 적 없는 상황이니까 그렇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다 똑같은 반응일걸?”베테랑은 베테랑인 건지 샘은 강현수와 얘기를 하면서도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메이크업을 완성해 나갔다.차량이 파티장 입구에 도착했을 때 임유진의 메이크업과 스타일링도 전부 마무리가 되었다.“드레스는 네가 준비하는 거 맞지?”샘은 메이크업 도구를 정리하며 물었다.강현수는 줄곧 옆에 있던 큰 쇼핑백을 꺼내 들어 임유진에게 건넸다.“우리는 먼저 내릴 테니까 이거로 갈아입어요. 사이즈는 아마 맞을 겁니다.”그는 말을 마친 후 사람들을 데리고 벤에서 내렸다.혼자 남겨진 임유진은 쇼핑백 안에 들어있던 선물 상자를 천천히 열었다. 그리고 안에 들어있는 드레스를 보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강현수가 준비해둔 드레스는 보라색 드레스로 밑단에는 레이스와 수정으로 된 나비들과 꽃들이 예쁘게 수 놓여있었다.이 드레스는... 어릴 때 그가 그녀에게 얘기해줬던 것과 똑같았다.강현수는 그때 꽃무늬가 있는 보라색 원피스를 그녀에게 선물해주겠다고 했었다.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그는 그 여자아이가 임유진이라는 것도 모르면서 결국에는 그녀에게 드레스를 선물로 주었다.임유진은 그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며 그가 선물해준 드레스를 조심스럽게 입었다.옷을 다 갈아입은 임유진이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강현수는 넋을 잃고야 말았다.이 드레스는 언젠가 어릴 때의 그 여자아이를 만나면 주려고 했던 드레스였다. 하지만 그는 배여진을 만나고 나서도 그녀에게 그 많은 옷을 선물해주지 않았다.이대로 주
이대로 충분히 더 세게 끌어안을 수 있음에도 그는 행여 그녀가 부서지기라도 할까 봐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미안해요...”그녀의 귓가에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대로... 이대로 조금만 더 안고 있어도 될까?”그는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애절하게 물었다.그 모습이 너무나도 간절해 보여 이 남자가 강현수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였다. 이제껏 여자에게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임유진은 심장이 무언가에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해 와 그저 그의 품에 안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등 뒤로는 그의 조심스러운 손길이 느껴졌고 코끝에는 그의 향기가 맴돌며 귓가에는 불규칙적으로 뛰는 그의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길고도 짧았던 포옹이 드디어 끝이 났다.“미안해요.”이것으로 그는 오늘 벌써 두 번이나 사과했다.“유진 씨를 내 상상 속의 사람과 착각하는 바람에...”“괜찮아요.”임유진은 강현수가 말하는 그 사람이 누군지 잘 알고 있다.“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그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다음부터는 유진 씨를 다른 사람과 착각하는 일 없을 거예요. 유진 씨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그냥 임유진이니까요.”그리고 그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다.임유진은 올곧게 마주 오는 그의 까만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았다.맑은 눈에 비친 자신을 보고 있자니 그의 세상에 온통 자신이라는 존재밖에 없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임유진은 강현수와 함께 파티장 안으로 들어섰다. 연예인과 셀럽들이 많이 참석한 파티였지만 기자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초대된 사람들이 아니기에 파티장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사진만 찍을 수밖에 없었다.강현수가 직접 에스코트해서 들어가는 바람에 사람들의 시선은 금세 임유진에게로 집중되었다. 특히 연예계 관계자들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강현수의 곁에 있는 여자들은 언제나 그렇듯 늘 화제의 중심이었다.임유진은 주위를
“나는... 하하, 오늘 여기 연예인들이 많이 온다길래 연신 씨한테 부탁해서 같이 왔어.”한지영은 조금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부터 그녀는 이곳에 오기 위해 백연신에게 적극적으로 키스도 하고 애교도 부렸다. 그러다 그와 실컷 침대 위에서 뒹굴고 나서야 드디어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물론 이곳으로 오기 전 백연신은 그녀에게 세 가지 약속할 것을 요구했다.첫 번째는 남자 연예인들을 보면서 침 흘리지 않기, 두 번째는 백연신 없이 직접 사인받으러 가지 않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같이 사진찍기 금지였다.세 가지 모두 이제껏 해왔던 것들이며 하고 싶었던 것들이었지만 이곳으로 오기 위해 결국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야 말았다.원래는 연예인들 얼굴이나 실컷 보고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뜻밖에도 임유진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강현수와 함께 있는 모습을 말이다.한지영은 티 안 나게 강현수를 아래위로 훑었다.덕질하는 사람으로서 강현수를 모를 리가 없었다.수많은 연예인의 뒤에는 모두 강현수가 있고 그의 한마디면 시골 촌구석에 있는 사람도 유명해질 수 있다.그는 능력도 능력이지만 덕질하는 팬들 사이에서는 그의 얼굴에 홀린 사람들이 대다수였다.“너야말로, 여기는 웬일이야? 그것도 옆에 저분이랑 같이...?”“누구 좀 만나려고 강현수 씨한테 부탁했어.”임유진은 다급하게 설명했다.“누구 만나려고?”한지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임유진은 덕질도 하지 않으니 연예인 사인을 받으러 왔을 리는 없었다.“공수진 씨랑 이경빈 씨.”‘유미 언니 때문에 온 거구나...’한지영은 바로 눈치채고는 임유진을 옆으로 당겨 물었다.“유미 언니한테 또 무슨 일 있었던 거야?”“양아치들이 그 뒤로도 계속 찾아와서 언니 장사 못 하게 방해하고 있어. 만약 언니한테 안정적인 수입이 없으면 양육권 갖고 오는 데 있어서 많이 불리할 거야.”“공수진 그 여자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아니지. 이건 악질이야 아주.”한지영은 눈을 부릅뜨며 화를 냈다.“아니면 내가 연신 씨한테 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