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충분히 더 세게 끌어안을 수 있음에도 그는 행여 그녀가 부서지기라도 할까 봐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미안해요...”그녀의 귓가에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대로... 이대로 조금만 더 안고 있어도 될까?”그는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애절하게 물었다.그 모습이 너무나도 간절해 보여 이 남자가 강현수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였다. 이제껏 여자에게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임유진은 심장이 무언가에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해 와 그저 그의 품에 안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등 뒤로는 그의 조심스러운 손길이 느껴졌고 코끝에는 그의 향기가 맴돌며 귓가에는 불규칙적으로 뛰는 그의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길고도 짧았던 포옹이 드디어 끝이 났다.“미안해요.”이것으로 그는 오늘 벌써 두 번이나 사과했다.“유진 씨를 내 상상 속의 사람과 착각하는 바람에...”“괜찮아요.”임유진은 강현수가 말하는 그 사람이 누군지 잘 알고 있다.“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그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다음부터는 유진 씨를 다른 사람과 착각하는 일 없을 거예요. 유진 씨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그냥 임유진이니까요.”그리고 그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다.임유진은 올곧게 마주 오는 그의 까만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았다.맑은 눈에 비친 자신을 보고 있자니 그의 세상에 온통 자신이라는 존재밖에 없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임유진은 강현수와 함께 파티장 안으로 들어섰다. 연예인과 셀럽들이 많이 참석한 파티였지만 기자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초대된 사람들이 아니기에 파티장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사진만 찍을 수밖에 없었다.강현수가 직접 에스코트해서 들어가는 바람에 사람들의 시선은 금세 임유진에게로 집중되었다. 특히 연예계 관계자들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강현수의 곁에 있는 여자들은 언제나 그렇듯 늘 화제의 중심이었다.임유진은 주위를
“나는... 하하, 오늘 여기 연예인들이 많이 온다길래 연신 씨한테 부탁해서 같이 왔어.”한지영은 조금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부터 그녀는 이곳에 오기 위해 백연신에게 적극적으로 키스도 하고 애교도 부렸다. 그러다 그와 실컷 침대 위에서 뒹굴고 나서야 드디어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물론 이곳으로 오기 전 백연신은 그녀에게 세 가지 약속할 것을 요구했다.첫 번째는 남자 연예인들을 보면서 침 흘리지 않기, 두 번째는 백연신 없이 직접 사인받으러 가지 않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같이 사진찍기 금지였다.세 가지 모두 이제껏 해왔던 것들이며 하고 싶었던 것들이었지만 이곳으로 오기 위해 결국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야 말았다.원래는 연예인들 얼굴이나 실컷 보고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뜻밖에도 임유진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강현수와 함께 있는 모습을 말이다.한지영은 티 안 나게 강현수를 아래위로 훑었다.덕질하는 사람으로서 강현수를 모를 리가 없었다.수많은 연예인의 뒤에는 모두 강현수가 있고 그의 한마디면 시골 촌구석에 있는 사람도 유명해질 수 있다.그는 능력도 능력이지만 덕질하는 팬들 사이에서는 그의 얼굴에 홀린 사람들이 대다수였다.“너야말로, 여기는 웬일이야? 그것도 옆에 저분이랑 같이...?”“누구 좀 만나려고 강현수 씨한테 부탁했어.”임유진은 다급하게 설명했다.“누구 만나려고?”한지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임유진은 덕질도 하지 않으니 연예인 사인을 받으러 왔을 리는 없었다.“공수진 씨랑 이경빈 씨.”‘유미 언니 때문에 온 거구나...’한지영은 바로 눈치채고는 임유진을 옆으로 당겨 물었다.“유미 언니한테 또 무슨 일 있었던 거야?”“양아치들이 그 뒤로도 계속 찾아와서 언니 장사 못 하게 방해하고 있어. 만약 언니한테 안정적인 수입이 없으면 양육권 갖고 오는 데 있어서 많이 불리할 거야.”“공수진 그 여자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아니지. 이건 악질이야 아주.”한지영은 눈을 부릅뜨며 화를 냈다.“아니면 내가 연신 씨한테 언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 아이돌 대부분이 KS 그룹 산하의 엔터 기업 소속이었다.한지영은 백연신이 세상에서 제일 멋있고 제일 잘생겼으며 다른 남자는 다 필요 없고 백연신만 있으면 된다고 하면서 막상 남자 아이돌들의 영상을 볼 때는 1초라도 놓칠까 봐 시선을 떼지 못했다.홧김에 영상을 보지 못하게도 해봤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는 한껏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취미를 이렇게 박탈당하면 자신은 정말 슬플 거라며 우는 척을 해댄다. 그러면 그는 마음이 약해져 한숨을 내쉬며 다시 휴대폰을 돌려주곤 한다.백연신은 지난날을 회상할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백 대표님이 엔터 쪽에 관심을 두고 있었을 줄은 몰랐네요.”강현수의 말에 백연신은 어색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어쩌다 보니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런데 여자 아이돌에 비해 남자 아이돌이 확연히 많더군요. 여자 아이돌 쪽은 크게 관심이 없는 걸까요?”한지영은 여자 아이돌에게는 관심이 없으니 이참에 남자가 아닌 여자 아이돌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강현수는 정말 관심이 있는 듯 보이는 그를 보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혹시 눈여겨보는 여자 아이돌 연습생이라도 있는 겁니까?”백연신이 대답하기도 전에 한지영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아이돌 연습생이라뇨? 연신 씨 여자 아이돌한테 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왜 그동안 얘기 안 했어요?”백연신은 눈을 질끈 감고는 최대한 화를 가라앉히고 말했다.“오늘 꼭 보고 싶다던 배우 있지 않았어? 아까 저기 보이던데, 이만 갈까?”“진짜요? 얼른 가요.”한지영은 눈이 초롱초롱해져서는 임유진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후 바로 백연신과 함께 자리를 벗어났다.이 파티에 오게 된 목적이 바로 연예인 구경하는 것이니 시간을 지체할 생각이 없었다.임유진은 강현수의 옆으로 걸어갔다.“현수 씨, 혹시 바쁜 일 있으면 먼저 가도 돼요. 나 신경 쓸 필요 없어요. 그리고 아까부터 현수 씨와 얘기하고 싶어 하는 분들도 많아 보이는데...”“바쁜 일 없어요. 그리고 이곳
보라색 드레스에 단아한 메이크업을 한 임유진은 그녀가 봐도 너무나도 아름다웠다.반면 배여진은 거의 매일 피부과도 다니고 오늘은 실력 좋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스타일리스트에게 메이크업도 받고 스타일링도 받았지만 샵에서 나올 때 사람들에게서 촌스러움을 가리려 애쓴다는 평만 들었다.아무리 돈으로 메꾸려고 해봐도 절대 메꿀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듯이 주위 사람들은 그녀에게 무척이나 매정했다.두 사람은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어릴 때는 얼굴이 비슷하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고 심지어는 길거리를 나가면 쌍둥이가 아닌가 하는 오해도 자주 받았었다.게다가 닮지 않았으면 어릴 때 사진으로 강현수를 속일 수도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두 사람은 점점 닮은 구석이 사라져갔고 임유진은 계속 예뻐진 것에 반해 배여진은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얼굴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임유진처럼 눈이 크지도, 코가 오뚝하지도, 피부가 맑고 희지도 않았다.배여진은 혼자만의 비교에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왜, 내가 현수 씨랑 여기 있으면 안 돼?”임유진은 배여진에게 되물었다.배여진은 지금 마치 임유진에게 제 물건을 빼앗기기라도 한 것처럼 굴었다.그 ‘물건’이 정말 제 것이라도 되는 양 아주 뻔뻔하기 그지없다.배여진은 조금 차가워진 강현수의 얼굴을 보고는 그제야 아차 싶었다.기억을 되찾은 이상 임유진은 언제든지 그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다. 물론 그런 상황에 대비해 어떻게 반박할지, 어떻게 해야 임유진의 말을 믿지 않게 할 수 있을지 이미 전부 다 준비를 해두었다. 그러나 변수는 언제나 있고 강현수는 임유진을 사랑하고 있으니 최대한 들키지 않는 것이 좋았다.배여진은 재빨리 표정을 바꿔 임유진을 향해 나긋나긋하게 말했다.“그럴 리가. 나는... 나는 그냥 현수 씨가 오늘 중요한 미팅이 있다고 시간이 없다고 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조금 놀랐을 뿐이야.”그 말에 임유진은 강현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는 그녀가 파티에 같이 가달라고 했을 때 아무런
“피고 임유진, 음주 운전으로 피해자 진애령을 사망에 이르게 하였으므로 징역 3년에 처한다!”“유진아, 미안한데, 그 일 때문에 우리 부모님이 널 반대하셔. 탓하고 싶으면 그 사고를 저지른 널 탓해. 그러게 왜 하필이면 진애령을 쳐 죽이냐고.”“진애령은 진화 그룹 큰딸이자 강지혁의 약혼녀였어. 너 강지혁 몰라? S시에 있는 그 누구도 감히 그를 건드릴 수 없어. 그런데 왜 하필이면……, 우리 그만하자. 우리 집안까지 화를 입게 할 수는 없어.”“임유진 씨, 죄송하지만 당신은 이미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으므로 아무리 좋은 경력을 갖고 있더라도 채용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그 사건과 연루된 지라, 자격증이 있다고 할지라도…… 어려울 겁니다. 죄송합니다.”“네가 무슨 낯짝으로 집에 기어들어 와? 그 일로 우리 집안이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지 알기나 해? 네 동생은 여주인공으로 데뷔할 수 있었는데, 너 하나 때문에 무산됐다고! 넌 네 여동생의 앞길을 망쳤어. 당장 이 집에서 나가! 난 너 같은 범죄자를 딸로 둔 적 없어!”……유진은 꽁꽁 얼어붙은 손을 비볐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1월의 밤이었다.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그녀의 살과 뼈를 파고들었다.노란 형광색의 환경미화원 복장을 입고 있는 유진의 청초한 얼굴은 찬바람을 맞아 어느새 붉게 물들었다. 예쁘고 맑은 두 눈 아래에 오뚝한 코와 빨간 입술, 긴 머리를 대충 질끈 묶어 올린 그녀의 모습은 온갖 풍파를 겪은 여성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그녀의 얼굴만 보면 아마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 정도로 볼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젊음의 활기 대신 사회의 모든 풍파를 겪은 듯한 체념과 무기력함이 담겨 있었다.유진은 3년의 옥살이로 거칠거칠해진 자기 손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본래 새하얗고 보드라웠던 그녀의 손은 온데간데없었다.손에 감각이 돌아온 그녀는 계속해서 빗자루를 들고 길을 쓸다가 돌연 그녀의 시선은 길 건너편의 검은 실루엣에 멈췄다.이른 아침, 그녀가 이 거리를 청소할 때
“혹시 갈 곳이 없으면 저랑 같이 갈래요?”임유진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유진은 자기가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충동적으로 낯선 남자를 집에 데려오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어쩌면 이 남자가 아무런 공격성이 없어 보여서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이 남자가 감옥에 있을 때의 자신과 너무 닮아서일 수도 있다.그도 아마 그녀와 똑같이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 살아보려 발버둥 치고 있는 그녀에 반해, 그는 세상에 아무런 미련도 없는 것 같았다.“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괜찮으시다면 바닥에서 주무시겠어요? 이불 깔아 드릴게요.”유진은 침묵을 유지하는 상대에게 새 수건과 새 칫솔을 꺼내 건네주었다.“욕실은 저쪽이에요. 남자 옷이 없어서……, 최대한 옷이 젖지 않게 조심하세요.”남자가 욕실에 들어가자 유진은 바닥에 이부자리를 깔고 여분의 이불을 꺼냈다.그녀가 살고 있는 그리 집은 크지 않은 원룸이다. 기껏해야 5평 남짓한 크기에 따로 주방도 없이 달랑 화장실 하나 있는 게 다였다. 때문에 평소에 요리를 해 먹을 때면 구비해 둔 인덕션을 사용하곤 했다.남자가 욕실에서 나왔을 때, 여전히 같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머리는 물에 젖어있었다.유진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의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수건 하나를 꺼내 들고 몸을 일으켰다.“허리 좀 숙여 봐요.”남자는 허리를 숙이는 대신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물기를 닦아드리려고요. 머리가 너무 축축하잖아요, 안 말리면 감기 걸리기 십상이에요. 다른 뜻은 없어요.”여전히 유진을 빤히 쳐다보던 남자는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지금 나 걱정하는 거예요?”서늘한 목소리였지만 이상하리만치 듣기 좋았다.“네.”유진은 눈을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제가 당신을 데려온 이상 걱정하는 건 당연하잖아요.”속눈썹이 살짝 떨리던 그는 이내 천천히 몸을 숙였다.그제야 유진은 수건을 그의 머리에 덮고 담담히 물기를 털어주었다.“이름이 뭐예요?”오랜 침묵 끝에 그의 입에서
임유진은 입술을 오므리며 대답했다.“네, 원해요.”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혁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좋아요.”이건 그녀가 처음 보는 남자의 미소였다. 매우 옅고 희미한 미소였지만 매우 아름다웠다.……출근해야 하는 유진은 그에게 5천원을 건네며 밥을 챙겨 먹으라고 했다.혁이 유진의 집에서 나오자 이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서는 그를 보고 공손히 인사했다.“대표님.”“가자.”강지혁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검은색 벤츠에 올라탄 지혁은 손에 쥐고 있던 5천 원짜리 지폐를 한참이나 바라봤다.‘오랜만에 용돈을 받아보네. 그것도 5천원을.’그는 생각할수록 웃음이 새어 나왔다.“강 대표님, 어제 대표님과 같이 있던 여성분은 환경위생과의 계약직 직원입니다. 한 달 전부터 이곳에서 월세로 지내고 계시고, 2달 전에 출소하신 걸로 확인됩니다.”오랫동안 지혁의 개인 비서였던 고이준이 차에 오르기 바쁘게 보고하기 시작했다.“감옥?”“네. 이름은 임유진, 3년 전 음주 운전으로 진애령 씨를 죽인 장본인이자 소민준의 전 여자친구입니다. 그때 그 일로 3년 동안 징역을 살았고 변호사 자격까지 취소당했습니다.”이준은 지혁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지혁은 매년 이맘때면 남루한 차림으로 노숙자인 양 거리에 앉아있곤 했다.이는 지혁의 이상한 취미이자 꺼내면 안 될 금기에도 가깝다. 누구도 감히 묻지 못하는 금기.심지어 그의 곁에서 오랜 세월 함께 해온 이준마저 자기의 대표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몰랐다. 이건 어느 순간부터 그의 루틴이자 꼭 치러야 할 의식이었다. 이미 모두가 우러러보는 선망의 대상일지 언정 매년 이 행동은 반복됐다.추운 겨울밤, 지혁은 홀로 거리에 머물렀다.이준이 할 수 있는 일은 멀지 않은 곳에 차를 세우고 하루 종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밤 11시 35분만 되면 다시 그가 알던 강 대표님으로 돌아올 지혁을.하지만 모든 일에 예외가 있듯이, 어젯밤은 이변이 일어났다. 낯선 여자가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건 것이었다. 게다가
임유라의 낯빛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리고 옆에서 듣고 있던 임정호는 망설임도 없이 임유진의 뺨을 때렸다.“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니? 네가 사고로 사람을 죽여 감옥에 간 거로 우리 집 체면이 얼마나 깎였는지 알아? 네 인생 망쳤다고 동생 앞날도 망칠 셈이야?”임정호의 눈에는 유진에 대한 원망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가 유진 덕에 서씨 집안과 인연을 맺게 되었을 때 친구들과 친척들 사이에서 많은 부러움과 질투를 샀지만, 그 일이 있고 나서 그 부러움은 모두 비아냥으로 변했고 우쭐대던 그도 체면이 완전히 깎여버렸다.유진의 한쪽 뺨은 이미 붉게 부어올랐지만, 눈빛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차분했다.“어머니 제사 때문에 왔는데, 보아하니 이곳에서 제사를 지낼 필요는 없는 것 같네요. 앞으로 이 집에 다시는 발 들일 일 없을 겁니다.”말을 마친 유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집을 나섰다. 이 ‘집’에는 이제 그녀의 자리가 없었다.……유진이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왔을 때, 방 안은 캄캄했다. 불을 켠 뒤 그녀를 맞이하는 건 그저 쓸쓸한 적막감뿐이었다.5평 남짓한 방은 아무도 없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혁이 씨는 간 건가? 결국 또 혼자구나.’유진은 문득 공허함을 느꼈다.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문을 닫으려고 몸을 살짝 돌렸을 때, 자신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그림자에 멍해졌다.‘혁이 씨잖아!’그는 여전히 어제와 똑같은 남루한 옷차림으로 봉투 하나를 들고 있었다. 두꺼운 앞머리가 얼굴을 반 정도 가려 얼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유진은 그 앞머리에 가려진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고 있다.‘이런 사람이…… 정말 노숙자라고?’그녀는 아무런 친분도 없고 어떤 사람인지조차 모르는 그를 받아들인 것이 얼마나 충동적이고 위험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충동을 억누를 수 없었다.어쩌면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었을지도 모른다.“나 왔어요.”차갑고 무심한 목소리였지만 그녀에겐 그저 듣기 좋은 빗소리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