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간이나 기다렸는데도 연락이 전혀 안 된다는 것은 명백한 복수다. 이건 그가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알 수 있었다.평범한 교통사고였다면 고성그룹이 친히 나섰는데도 해결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밤새 연락이 안 되는 바람에 그는 날이 밝을 때까지 교통안전 동영상을 보고 안전교육을 받고 있어야 했다. 이튿날 아침, 그의 안색은 초췌하고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진하게 나 있었고 턱에는 시퍼런 수염도 나 있었다. 만신창이가 되어 일전의 도도하고 우아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제야 상대방은 전혀 다치지 않았고 너그럽게 배상요구도 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는 속에 천불이 나고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었다. "자기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거야? 그럼 내가 낭비한 시간은 어떻게 배상할 건데!"경찰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이해 안 된다는 표정으로 그를 힐끔 보았다. "그럼 지금 당신 뜻은 상대가 배상을 요구해야 한다는 뜻인가요? "고한빈은 잠시 말문이 막히고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 "내가 미쳤습니까, 굳이 그년한테 배상하게!"이 불만으로 가득 차 높아진 목소리, 격해진 감정 기복, 그리고 초라한 모습에 경찰은 고한빈의 정신상태를 조금 의심했다. 경찰은 몇 초 동안 침묵하고 고개를 돌려 뒤에 있던 보조에게 물었다. "검사보고는 봤어? 음주 운전이나 마약 복용 같은 건 아니지?""둘 다 아닙니다. 어제 확인했습니다.""... "경찰은 말없이 뒤 돌아서 갔다.보조도 그 뒤를 따랐다.고한빈 혼자 경찰서 문 앞에 덩그러니 남아 아침햇살을 맞이했다. 경찰서를 드나드는 직원들은 바삐 드나드느라 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그는 축 처진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이를 갈며 이름을 불렀다. "강유리! "... 강유리는 긴장이 풀렸는지 단잠을 잤다. 그녀는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옆자리는 비어있었다. 왔다가 간 것인지 아니면 아예 돌아오지 않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저녁노을이 커튼 사이를 비집고 깨
그가 잠시 멈칫하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래서 깼어요?"낮에 그가 별로 자지 않은 건 사실이다. 강유리의 말대로 지금 가까스로 우세일 때 먼저 수를 써야 했다. 외국 쪽 일은 작은이모께 맡겼지만 국내에 있는 고성그룹 사람들 역시 가만 둘 수는 없다. 그는 육경서더러 유강그룹에게 소식을 전하라고 시켰다. 여한영씨에게 트렌드와의 콜라보를 추진시키라고 말이다.그리고 LK그룹과의 중간 규모 사업들까지 고정철의 기업과 연관이 생겼다.고정남이 고정철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제 고정남은 그를 낱낱이 조사하려 들것이다. 이제 갓 고정철의 개인사업을 발견했는데 육시준과 연관이 있다는 것까지 발견했으니 고정남이 더 이상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그가 손을 쓰기만 시작한다면 고정철은 한동안 쉴 틈이 없을 것이다... "깨지는 않았는데요, 당신 정말 내로남불인 건 아세요!"강유리가 소파에 기대며 압도하는 분위기로 육시준 쪽으로 몸을 기댔다. 육시준은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눈썹만 찡긋했다. "왜 그렇게 말하죠? ""저한테는 무슨 방법이 생각나면 제멋대로 하지 말고 당신과 상의하라고 해놓고 당신은 그러지 않았잖아요!"강유리가 고개를 홱 돌리고 그에게 따졌다. 굳이 묻지 않아도 육시준이 뭘 했는지 알 수 있다. 그가 릴리와 하려고 했던 계획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둘 사이를 더욱 이간질 하는 것이다. 육시준이 간곡히 말했다. "당신도 저와 같은 생각일 거라고 생각했어요."강유리는 불만의 기색이 역력했다. "그 둘은 다르죠! 제가 동의할 걸 알아도 저한테 말했어야죠."육시준은 더 이상 변명하지 않았다."응, 다은번엔 꼭 여보한테 미리 보고할게요.""... "사실 이런 대답을 바란 건 아니다. 그저 이 사람이 자기 일로 이렇게 수고하는 게 조금 마음 아팠을 뿐이다. "다음은 없어요. 오늘은 저녁밥 먹고 바로 자러 가요!"육시준은 잠시 생각하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렇게 급해요? ""당연하죠!"원래는 하루를 꼬박 새웠는데
왠지 고정철이 계획에 초를 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괜히 계획이 틀어지고 피동적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오후에 깨자마자 강유리는 고성그룹의 두 형제에게 손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슨 상황인지도 잘 모르겠고, 무얼 하든 어차피 영향도 없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했다. 고성그룹의 진흙탕 싸움에 강유리는 진작에 훼방을 놓고 싶었다.하지만 깨고 나서 보니 자기가 하고 싶어 한 일을 육시준이 이미 한발 앞서 했다는 걸 알았다. 왠지 모를 안도감이 넘쳐났다. 역시 육시준은 그녀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신경 쓰고 있는 일들을 전부 기억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관심받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기분은 연애보다도 사람을 중독시킨다... 그를 밀고 있던 손이 저도 모르게 육시준의 어깨를 감았다. 서재의 엘리베이터부터 이층의 드레스 룸까지 강유리의 잠옷은 이미 못 볼 정도로 벗겨졌다. 강유리는 몇 번이나 잠깐 멈추고 안방에 가서 계속하자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번진 불길이 어떻게 멈출 수가 있겠는가? 모든 것이 끝났을 때는 이미 야심한 밤중이었다. 강유리는 녹초가 되어 옆에 누워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몽롱한 불빛 때문에 평소에는 뚜렷하던 윤곽이 조금은 흐릿하게 보였다. 강유리는 그의 품에 안겨 익숙한 냄새를 맡고, 힘찬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며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 잠들기 전, 강유리는 잊고 있던 게 생각났는지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유강엔터에서 새로 따낸 저작권이 하나 있는데, 이 일에 대해서 네티즌들의 반응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대부분 사람은 불만은 토로하고 있었고, 소수의 사람은 작가와 배우들에게 기대를 표하고 있다. 현장 분위기도 원래는 평화로웠지만 최근에는 들려온 소식 때문에 조금 시끄러워졌다. 트렌드가 투자를 하려고 한다는 소식이었다... 일단 트렌드가 업계에서 명성이 어떤지는 상관없다고 치자, 하지만 트렌드의 대주주가 고정철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일전에 트렌드는 성홍
추예진은 방금 추스른 화가 다시 강유리의 반응에 끓어올랐다. "그래도 고성그룹 사람이잖아! 나한테 넌 그저...""이모, 우리가 처음 같이 일했던 게 소씨 아저씨의 소개 덕분이었지?"강유리가 그의 말을 끊고 맑은 눈동자로 그를 주시했다. "그 후로도 투자자들을 꽤 소개해 줬지만 별로 관심이 없었다며. 사람들이 이모 눈이 너무 높다고 하는 건 맞는 말이야. 그때 당시 무명 배우였던 내 어디가 맘에 들었 던거야?""..."추예진이 멈칫하고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언제 적 일을 말하는 거야. 네가 지금 감정적으로 굴어도 소용없어. 그들과 협업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그녀는 단호한 태도로 화제를 자연스럽게 일로 바꿨다. 하지만 강유리도 오늘만큼은 일 얘기를 하려고 추예진을 부른 게 아니다. "내 어머니가 이모 후배라서 날 이렇게 챙겨주는 거야? 할아버지도 그래. 분명 날 찾으셨으면서 나를 사부님께 맡기시고. 이것도 내 어머니가 할아버지 제자여서겠지. 촌수를 어지럽히면 안 되니까..."강유리는 조곤조곤 혼잣말로 분석하는 것처럼 말했다. 추예진의 우아하고 차분한 포커페이스에 금이 갔다. 하지만 그녀는 빨리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리고 마음에 안 드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뭔 말이 하고 싶은 거야?"강유리는 어떤 미세한 표정도 놓치고 싶지 않은 듯 추예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내 능력으로는 확실히 이런 정보들을 알아낼 수 없어. 하지만 육시준은 할 수 있지."추예진의 미간이 더 찌푸려졌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말했다. "그 자식은 정말 너한테 숨기는 게 없구나."강유리의 눈의 반짝였다. "인정하는 거야?"추예진은 더 이상 숨길 수 없어지자, 뒤로 기대앉고는 될 대로 되라는 듯 말했다. "육시준이 이미 다 알아냈는데 내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뭐가 달라지니?"강유리가 말했다. "그 사람이 알아낸 건 내 어머니가 할아버지 제자라는 사실뿐인데."추예진은 넋이 나갔다. "???"그리고 몇 초 후에 웃으며 말
정보를 캐내고 있던 강유리는 이 정도로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캐물었다. "설사숙님이 평범하다며?""..."추예진은 잠시 침묵하고 숨기던 사실을 모두 들켜버린 현실을 받아들인 듯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유리야, 윗사람들의 일에 굳이 말려들 필요가 있을까? 네 어머니의 한은 내가 꼭 풀어줄 거야. 그리고 이 사실들은 알맞은 시간에 누군가가 전부 너에게 말해줄 거고."강유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했다. "도씨가문과 상관이 없다면 고성그룹이겠네."제일 처음에 사람들은 다 내가 고정남의 사생아인 줄 알았잖아?그리고 강유리 자신도 이렇게 생각했다. 고정철이 성홍주와 협력하며 그녀를 방해하고 있는 것도 그녀가 고성그룹에 들어가 고한빈의 몫을 뺏지 못하게 하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강유리한테 쓴 방법을 강민영에게도 썼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고한빈은 도씨가문에 인맥이 있다. 몇 명을 설득해서 강민영을 해치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이다. 그러니까, 내 어머니는 작은이모 대신 죽었다는 거네...하지만 이것도 말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할아버지와 사부님 모두 그 사람과 고한빈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하셨다. 게다가 그 사람이 정말 어머니를 해치려 한 거라면 성홍주가 체포될 때 고성그룹의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왜 몰래 외국으로 도주하고 Y국 황실과 얽혔지? "고성그룹."추예진이 말에 뜸을 들였다. "내 입장은 변하지 않아. 고성그룹과의 콜라보 나는 절대 못 해."강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추예진을 쳐다봤다.왠지 이모가 자꾸 화살을 고성그룹으로 돌리는 느낌이다. 이러면 이럴수록 이 일이 간단하지 않다는 걸 증명한다. "고정철과 협업할 생각 없어요. 그 사람이 이익을 얻고 싶다고 해도 그럴 능력이 있어야 얻죠."강유리는 덤덤하게 말했다. "..."강유리는 추예진과 헤어진 후 차를 몰고 또 다른 목적지로 갔다. 구원브랜드의 서울본부. 가게 내에는 정적이 흘렀
일전에 브랜드 측은 세마의 홍보 기획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혼식에 공개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강유리의 결혼식은 그저 들러리일 뿐이란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성그룹 아가씨밀어 버렸다... 강유리는 담당자의 의도는 몰랐고 그저 단순히 드레스에 시선이 꽂혔다. "실물이 훨씬 예쁘네요. 개량한 스타일도 독특하고요.""사모님은 연예인 못지않게 예쁘셔서 이렇게 화려한 옷도 소화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사모님이 가지신 아우라와의 들러리 말이다. 하지만 그는 육회장의 결혼식인데 들러리를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상사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문자를 보낸 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강유리의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는 초조했다. 자신의 망설임이 육회장의 노여움을 샀는줄 알았다. 어떻게 만회할지 고민하던 참에 두 사람이 가게로 왔다. 그래서 오늘 직접 접대하려고 일전의 예약까지 전부 아주 찰떡이네요.""..."당당자가 말하며 강유리를 드레스룸으로 모셨다. 드레스룸은 2층이다. 2층은 옷이 개수가 훨씬 적었다. 몇 벌 밖에 눈에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그 몇 벌 들은 아래층에 있는 드레스들보다 훨씬 빛났다. 담당 직원의 말로는 전부 강유리를 위해 준비한 드레스라고 한다. 강유리는 의아했다. "이렇게 많이요?"담당자가 설명했다. "큰 사모님이 5벌 준비하셨고 저희 브랜드 측에서 5벌을 준비해서 총 10벌입니다.""모두들... 신경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많은 드레스를 오늘 다 갈아입는 건 힘들 것 같은데요."담당자가 성심을 다해 그저 소장해도 되니 브랜드 측의 성의를 거절하지 말아 달라고 제안했다. 강유리는 더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를 따라 옷을 바꾸러 들어갔다. 개량했어도 여전히 입기가 번거로웠다. 담당자가 스타일리스트 두 명과 강유리를 도왔다. 그리고 최고의 효과를 내기 위해 머리도 올리고 액세서리도 착용했다. 강유리는 거울 속의 자신이
육시준이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봤다. "그 사람들이 챙겨줬든 아니든 당신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강유리가 멈칫하고 발랄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알죠."육시준이 물었다. "그럼 뭐가 걱정이에요?"사실 가게에 도착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강유리는 쭉 정신이 딴 데 팔려있었다. 비록 감추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육시준의 눈은 속이지 못했다. 강유리가 한숨을 쉬고는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저를 챙겨주시기는 하지만 아무도 저한테 진실을 알려주지 않아요. 도씨가문,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도 당신이 어머니와 도가의 관계를 알아내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들은 이 사실마저 저한테 숨겼을 거예요.""윗사람들의 원한 관계는 원래 복잡하니까요. 당신을 위해서 숨기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강유리는 그의 말이 왠지 수상했다. 알아보겠다는 것도 아니고, 추측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들의 편을 들다니. 이건 예전에는 없었던 반응이다... 강유리는 추궁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여보, 혹시 저한테 숨기는 게 있나요?"육시준이 태연하게 말했다. "제가 알아낸 건 전부 당신한테 알려줬어요."강유리가 눈썹을 찡긋했다. 이 말의 허점을 찾아낸 것이다. "그러니까, 알아낸 게 아니지만 알고 있었던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는 거네요."육시준이 대답했다. "그저 심증일 뿐이에요. 어떤 일은 당사자가 말해야 하는 거예요. 게다가 지금 저희한테 제일 중요한 건 기분 좋게 결혼식을 준비하는 게 아닐까요? 당신 생각에는요?"공작과 작은이모의 진정한 관계, 그리고 그와 강씨가문의 진정한 관계는 아무도 모른다.하지만 알아낼 수 없는 것도 아니다.단지 육시준은 지금이 적당한 타이밍이 아니라 그렇게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다.강유리는 육시준의 그윽하고 차분한 눈동자와 시선을 맞췄다. 그의 걱정과 배려가 뭔지 알 것 같았다. "당신 말에도 일리가 있어요."어차피 알아야 할 일들은 언제든 밝혀지기 마
강유리는 메시지속의 '아버님' 세 글자를 보고 눈빛이 흔들렸다. 뭔가 생각난 것 같았다. 대화창을 닫고 웹페이지를 열려는데 비서가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사장님, 고 회장님이 잠시 뵙고 싶어 하십니다. 저희가 말려도 듣지를 않으세요."이 말과 함께 소란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다 비켜! 강유리, 너 당장 나와. 지금 이 상황에 감히 내 전화를 끊어!""???"내가 꼭 전화를 받아야 할 때도 있나? 별 희한한 일이네. 강유리는 손을 저어 그를 막으려는 경호원들을 내보냈다. 고정남은 겉모습이 왠지 초라했다. 평소의 세련된 사업가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어지고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네 작은이모에 관한 보도 사실이냐?""..."일전에 작은이모가 뉴스에 파격적인 소식이 있을 테니 믿지 말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그러니 그 소식이 뭐든 그건 가짜일 것이다. 하지만 고정남이 이토록 흥분한 모습을 보니 강유리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궁금해났다. 강유리는 그를 무시하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그러고는 핸드폰으로 슬그머니 국제뉴스 홈페이지를 열어봤다. #Y국 황실과 로열패밀리들 사이에서 원인 모를 병 돌아. 현재 제일 위독한 사람은 윌리엄 왕자, 그의 모친 왕비, 그리고 캐번디시 부인이다. 의사도 속수무책, 생명에 위협...#뉴스에는 그들의 초췌한 사진 몇 장이 있었다. 모자이크 처리를 해서 작은이모의 모습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윌리엄왕자는 달랐다. 그의 얼굴색은 창백했고 몸은 빼빼 말라있었다.마치 금방이라도 숨을 거둘 것만 같았다. 그의 모습만으로도 작은 이모의 상황을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고정남은 강미연의 신분을 알고 난 이후로 쭉 캐번디시 가족에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소식이 들려오다니 그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지 않았다는 기쁨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생명이 위급하다는 소식이라니... "무슨 말이라도 해보거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흥분한 목소리에 강유리는 정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