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는 잠시 생각하더니 강유리의 말에 대답했다.“그리 많지는 않아요. 고정철이 그 사람을 보물로 여기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어요. 자기가 지니고 있는 인맥과 우세로 여러 기능을 모두 주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잘난 인물이 무슨 무술관이고 그 안에 온통 능력자들로 가득 차 있다고 그랬어요.”“도가네 무술관.”“그럼, 인맥이 좋은 건 확실하네요. 근데 언제 적 일이에요? 왜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어요?”이에 강유리는 다시 입을 열어 대답했다.“전에 가끔 너한테 한 선배가 좀 미쳤다고 했었잖아. 나한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적대시 한다고 했던 그 선배.”그러자 릴리는 문득 깨달은 듯이 소리쳤다.“대박! 그 사람이었어요? 그 후로 도희한테 들은 적이 있는데, 설경구 사숙이 지위가 높고 하여 그의 제자는 무술관에서 모두 지위가 엄청 높다고 들었어요. 근데 후에 무슨 일을 저질렀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그렇게 건방지게 나갈 수 있었던 거예요?”강유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무엇인가를 더 묻고 싶었지만, 뒤에서 차가운 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을 저질렀다는 거야?”조금 전에 사진을 본다고 스피커 폰을 켜고 있었던 사실을 강유리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하여 두 사람이 하는 대화 내용을 똑똑히 들었다.게다가 스피커를 열고 있던 상황이라 강유리는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개를 돌려 육시준을 뚫어지게 째려보며 강유리는 불만이 가득했다.육시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다가와 강유리의 고개를 어루만지며 위로하는 척했다.그러고 나서 손에 들고 있던 휴대 전화를 빼앗아 물었다.“자세히 말해 봐.”“……”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파렴치한 인간이 있을 수 있는가 싶었다.대화 내용을 엿들은 것으로 모자라서 휴대 전화까지 빼앗아 가다니……강유리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빼앗으려 했지만, 육시준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고 품속으로 끌어당겼다.그럼에도 강유리는 빼앗아 오려고 했지만, 수화기 너머 소리가 들려왔다.“자세한 건 저도 잘
칠흑 같은 밤이 찾아왔음에도 도주원과 가주는 여전히 무술관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자리 잡고 쉬기로 했다.무술관에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머무는 것도 기억이 아득할 정도로 오랜만이었다.신입생들은 저마다 마음속으로 격동하며 가주가 이번 심사를 중요시 여기고 있다는것을 알았다.하지만 신입생을 위함이 아니라 강유리를 위해서 두 사람이 여태껏 머물고 있음을 선배들은 똑똑히 알고 있다.그들은 본래 자기가 힘들게 훈련한 제자들을 강유리가 중간에서 손쉽게 빼앗아 가는 줄 알았는데, 늦은 시간이 되자 대부분 사람이 비밀리에 지시를 얻게 되었다.그것은 바로 갖은 방법을 도모하여 강유리가 제자를 거두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이 일은 도가네 무술관 선배들에게 있어서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강유리는 마침 오후에 신입생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는 대상이 되었고 “불 난 집에 부채질”만 하면 되는 격이다.그뿐만 아니라 강유리에 대해 더 깊게 “소개”를 해주면 된다.예를 들면, 강유리는 거의 무술관에 오지 않는다는 것.예를 들면, 모두가 들은 강유리의 독설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한 다는 것.신입생들에 대해서 이미 인정을 봐준 것이며 주변 친인들을 상대할 때는 눈에 뵈는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예를 들면, 강유리의 남편은 무서운 질투쟁이라 이성 제자를 거두게끔 하지 않으리라는 것.만약 이성 제자와 강유리가 가깝게 어깨를 나란히 할 시에는 육씨 가문의 블랙 리스트에 오르게 되리라는 것 등등...그렇게 밤새 소문은 부풀어 퍼져갔으며, 신입생들 가운데서는 일종의 신비로운 호흡이 맞춰지게 되었다.[생명을 소중히 여기려면 강유리로부터 멀어져야 함.]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정작 강유리는 본인은 완전히 모르고 있었다.이튿날 오전은 여전히 심사를 진행하여야 하며 밤이 되어서야 합격자는 입문 심사를 볼 수 있었다.올해 입문 스케일은 입이 떡하니 벌어질 정도이다.도주원과 도씨 가문 가주도 자리를 빛내주며 지금 지도사들 가운데 앉았다.자리에 앉을 때, 도주원은 가주를
무대 위의 신입생에 대해 강유리는 낯이 익었다.‘그 어리석은 친구 아니야?’“저 친구는 민 선배 사람인데, 내가 빼앗아 오는 건 좀 아니지 않을까?”표정이 한껏 엄숙해진 강유리는 머뭇거리기 시작했다.이에 육시준이 대답했다.“저 친구가 널 선택할 수도 있잖아.”그러자 강유리는 웃음을 터뜨렸다.“무슨 이상한 사람도 아니고 나한테 그렇게 모욕을 당하고 나서도 다시 올......”“사숙, 외람되지만, 가능하다면 다시 한번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순간 장내는 쥐 죽은 고요해지면서 모두 귀신이라도 보는 듯이 무대 위에 서 있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물론, 강유리로 그중에 포함되어 있다.그 말에 편안하게 앉아 있던 강유리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곧게 펴고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키며 망연자실했다.“저를 선택한다고 했습니까?”무대 위에 소년은 얼굴이 살짝 붉어지며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그래도 되겠습니까?”“......”그래도 되기는 하지만......강유리는 고개를 돌려 민경훈을 바라보았다.민경훈 또한 그녀와 마찬가지로 동공에 흔들렸으며 마치 이런 의외의 상황을 생각지 못한 모습이었다.민경훈의 방향을 따라 시선을 이어가 보니 도씨 가문 가주와 도주원도 놀라워 마지 못하며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이었다.특히 도씨 가문 가주는 죽일 듯이 무대 위를 노려보며 그들의 계획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애송이”를 죽일 것만 같았다.그뿐만 아니라 도씨 가문 가주는 거의 협박하는 듯한 목소리로 일깨워주었다.“사제관계는 딱 이번 한 번으로 결정되며 번복할 수 없습니다. 확실합니까?”이에 홍석천은 강유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확신에 찬 소리로 대답했다.“네! 확실합니다!”도씨 가문 가주는 무엇인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이때 강유리가 일어서서 입을 열었다.“좋습니다.”그녀는 성큼성큼 무대 위로 올라가 홍석천의 맞은편에 섰다.무척이나 나른해 보이는 자태임에도 불구하고 강대한 압박감이 미친 듯이 밀려
환호 소리, 휘파바람 소리, 흥분에 마지 못하는 이들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일어나기 시작했다.그들은 무대 위에 합격한 홍석천보다 더욱 격동해 보였다.최종 결과에 홍석천은 소리 없이 숨을 내쉬며 한시름 놓게 되었다.그러다가 온몸에 힘이 쫙 빠지면서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그 공격 수단은 밤새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해 낸 것이다.강유리를 공격함에 있어서 이러한 방법이 최선이라며 한 8할 정도 자신이 이길 수 있다며 실천에 옮기기도 했었다.하지만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마음이 놓이지는 않았다.만일이라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고 실력이 두터워 보이는 강유리가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공격을 막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그럼, 홍석천이 도전에 성공한 건데, 스승을 선택할 수......”“잠깐만!”이때 무겁고 위엄이 가득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소리에 따라 다들 시선을 돌렸는데, 그 주인공은 가장 중심에 앉아 있고 무게가 넘치는 재판 중의 한 명인 도씨 가문 가주였다.그는 엄숙한 얼굴로 무겁게 소리를 내었다.“강유리가 봐준 것으로 보입니다. 하여 이번 판은 무효로 합니다.”장내는 또다시 쥐 죽은 듯이 고요해지며 망연하게 그만 바라보고 있다.가주는 평소 소리를 내어 제자를 지적하는 경우가 그리 없었다.게다가 소리에 위엄에 넘쳐 도씨 가문에서 도주원을 제외하고는 가장 위엄이 넘친다고 할 수 있다.그가 봐준 것이라고 했다면 그건 정말로 봐준 것으로 간주된다.근데 강유리가 홍석천을 봐준 게 맞을까?다들 의문이 들긴 했지만, 감히 입을 열고 제기할 용기는 없었다.그저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계속 들을 수밖에 없었다.온몸에 긴장이 풀렸던 홍석천은 가주의 발언에 다시 긴장해하며 가주를 봤다가 믿어지지 않는 듯한 얼굴로 강유리를 보았다.놀라움, 의심, 그리고 마지막으로 격동하는 심정까지 들기 시작했다.“사숙도 저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싶은 것입니까?”만약 그렇지 않으면 강유리가 자기를 봐준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강유리를 바라보는 홍석천의 두 눈은 어느새 기대에서 숭배로 변했다.지금 자기를 위해 나서주고 있음을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하여 몇 초 동안 입술을 오므리더니 진솔하게 강유리에게 사과하기 시작했다.“사숙, 죄송합니다. 제가 그러면 안 되는데, 음험하게 뒤에서……”“사숙이라니요, 사부님으로 부르세요.”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행여나 함부로 입을 놀릴까 봐 두려웠다.“음험한 술수로 공격하지 않았다면 이번 심사를 넘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대의 심리적 약점을 잡아 공격하는 것도 실력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이에 홍석천은 두 눈이 밝아지면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그럼, 저를 제자로 받아들여 주시는 겁니까?”그러자 강유리는 활짝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물론입니다.”말하자마자 그녀는 이미 얼굴색이 자줏빛이 된 도씨 가문 가주를 바라보지 않고 도주원에게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제 말이 맞죠? 할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해 나서주셔야 합니다. 어린애한테 너무 까다롭게 그러지 말라고 사부님 좀 말려주세요.”“게다가 딱 제 제자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친구인데, 만약 이대로 거절하면 우리 무술관에서 인재를 잃은 것과 마찬가지잖아요.”“……”도주원과 도씨 가문 가주가 한 편이라는 것은 세 살짜리 어린이도 아는 일이다.그러나 강유리가 이렇게 말함으로써 도주원을 자기편으로 끌어당긴 셈이다.그뿐만 아니라 강유리의 말에는 여전히 일리가 있다.홍석천은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인재가 확실하며 이대로 문전박대한다면 아쉬운 일임이 틀림없다.그러나 도주원은 생각을 굽히지 않으며 홍석천에게 물었다.“내 기억으로는 넌 민경훈이 눈여겨 본 사람이다. 그런데도 정말로 너를 선택한 민경훈을 버리고 강유리를 선택할 것이냐?”그 질문을 강유리가 가로채며 대답했다.“당연하죠! 이미 저를 선택하겠다고……”“네가 아니라 쟤한테 물었다. 대답하게 가만히 있거라.”도주원은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이에 강유리는 입을 꾹
입문하고 제자를 거두는 건 사제 사이의 상호 선택이다.그러나 이곳은 도씨 가문이라 선택권은 선배한테 주어져있다.입문 절차에서 이러한 규칙이 있는데, 그건 바로 입문이 끝나고 나서 자기가 눈여겨 보고 있던 제자가 다른 사람을 사부로 모시게 되었다면, 그 사부에게 도전장을 내밀 수 있다.이긴 사람은 직접 제자를 데리고 가며 제자에게는 더 이상 그 어떠한 선택권도 주어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여러 해 동안 무술과 내부는 평온하기 그지없었고 제자를 빼앗는 광경은 거의 일어난 적이 없어 이 규칙 또한 다들 서서히 잊고 있었다.강유리가 처음에 말한 강제로 빼앗아 오는 것도 이 규칙을 이용하려는 것이었다.그러나 누군가가 자신의 제자를 빼앗으려고 올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지금 가장 당황한 이는 홍석천이다. 고한빈이 이런 수단으로 “복수”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만약 이대로 고한빈이 이겨 그의 제자로 들어간다면, 그럼, 정말로 끝장이다.그는 애절한 눈빛으로 강유리를 바라보았고 강유리는 그런 그를 힐끗보고 나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내려가서 좀만 앉아 있어. 네 사부의 진정한 실력이 어떠한지 제대로 보여주마.”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내려가는 도중에 홍석천은 계속 고개를 돌리면서 강유리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걱정이 역력했다.강유리가 아무리 천부적인 재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이제 겨우 20살을 갓 넘은 나이로 보인다.하지만 고한빈은 이미 30살을 넘어 보이고 선배라고 하는 걸 보면 강유리보다 먼저 입문한 것이 틀림없다.하여 두 사람의 대결에서 최종 승자가 누구인지 쉽게 말할 수 없다.무대 위의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그는 저도 모르게 육시준 쪽을 바라보았다.육시준은 지금 차갑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시종일관 변함없는 쌀쌀한 표정을 하고 있다.주위의 기압이 한껏 줄어들기라도 한 듯이 그는 이러한 결과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그로 인해 본래 두근거리던 심장이 육시준이 자아내고 있는 분위기로 하여 더욱 두근거렸다.무대 위에서
고한빈은 멈칫거렸으나 이윽고 웃으며 말했다.“이런 독특한 디자인의 암기를 제가 어떻게 가지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알다시피 가주께서 예뻐해 주시고 새로운 도씨 가문의 상속자도 유리 후배와 사이가 깊지 않습니까.”이에 강유리는 두말하지 않고 앞으로 다가가 그의 손에 있는 물건을 보려고 했다.그러자 고한빈은 안색이 살짝 변하면서 다소 낭패하게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재판은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음을 알아차리고 무의식적으로 다가가 강유리를 보호하려고 했다.“유리야……”“먼저 암기를 사용한 건 저 사람입니다. 저는 스스로 보호한 것뿐입니다.”강유리는 조금 전 행위에 대해 설명하려고 했다.재판은 연세가 좀 있으시고 도씨 가문의 어르신이라 강유리를 편애하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다.하지만 조금 전 강유리가 암기를 사용한 것을 그도 똑똑히 보았다.하여 순간 침묵하더니 가주 쪽을 보고 허락을 받고 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일단 시합을 중단하겠습니다. 암기에 대해서 차후에 자세하게 조사할 것을 약속드립니다.”“조사하긴 뭘 더 조사합니까? 이보다 더 자세한 것이 뭐가 또 있습니까?”고한빈은 이런 대답에 대해 불만이 가득했다.말하면서 그는 다친 손을 높이 들고 덧붙였다.“그럼, 이 은침을 제가 스스로 찌른 것이라는 말씀입니까?”그러자 육시준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조금 전 상황으로 봐서는 유리가 세 번 만에 당신을 이길 수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 유리가 무슨 이유로 암기를 사용하겠습니까?”그 말에 고한빈은 콧방귀를 뀌었다.“본래 독한 사람이고 나한테 불만을 품고 있던 사람인데, 이유가 더 필요하겠습니까?”오가는 대화를 들으며 강유리는 차갑게 바라보기만 했을 뿐, 이상하리만큼 반박하지 않았다.“일단 치료부터 받고 봅시다. 다친 이상 더는 지체할 수 없습니다.”재판은 공적으로 의사를 밝히며 그 어떠한 감정도 곁들이지 않았다.고한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얼굴이 더욱 하얘졌다.조교의 도움으로 일어서기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도씨 가문은 독을 이용하는 데 능하며 그 기술은 무척이나 강하여 현대 의료 수준으로도 알아내기 어려울 정도이다.이 방면에 관해서는 반드시 동문의 독술 의사를 찾아야 한다.의사를 기다리는 중에 도씨 가문 가주는 직접 앞으로 나서서 한 번 훑어보고 나더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강유리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육시준은 침대 위에 누워있는 고한빈을 한 번 보고는 발을 들어 잇달아 떠났다.두 걸음 정도 내디디더니 갑자기 멈춰서고는 고개를 돌려 홍석천을 바라보았다.“같이 가요.”홍석천은 저도 모르게 자기를 강유리와 같은 편으로 그려 넣었다.그러나 지금은 이 곳에 남아 상황을 살피니 고한빈의 상태가 어떠한지 보고 싶었지만, 순간 생각이 바뀌면서 가만히 보고 있어도 달려질 것이 없으니 차라리 강유리를 도와 한 마디라도 더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을 내렸다.하여 그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육시준의 뒤를 따라 떠났다.한편, 서재 안에서.두 사람은 들어서자마자 화를 참고 있는 가주의 목소리가 들렸다.“너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네가 조사하고 있는 일은 고한빈과 무관하다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무관하다고! 근데 왜 그렇게 고집 부리며 적대시 하는 거야?”가주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이에 강유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사부님도 제가 고한빈을 일부러 겨냥한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도씨 가문 가주는 협박하는 빛이 가득한 도주원의 눈길을 마주하고 나서 결국 화를 삼켜내고 의자에 털썩 앉아 언성을 살짝 낮추고 말했다.“그럼, 왜 암기를 사용했는지 설명해 봐. 그것도 독이 묻은 은침으로 말이다.”그는 조금 전 강유리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그리 독하게 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 은침 끝에는 정말로 독이 묻어 있었다.홍석천은 이제 막 서재로 발을 들여놓고 한쪽에 서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나서 순간 안색이 확 변했다.‘정말로 독이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