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도에게 맞은 성한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줄행랑을 쳤다.“노망났어요? 또 때리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지금껏 집에서 온실의 화초처럼 자란 성한일은 성학주에게도 맞아 본 적이 없다.강학도도 종래로 성한일을 신경 쓰지 않아 이렇게 응석받이로 자라 버릇이 없는 것이다.어른이 돼서 맞고 있으니 당연히 가만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강학도에게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때리자 성한일은 한 방에 회초리를 빼앗아 와 도려 때리려고 했다.그때 어디선가 갑자기 문기준이 불쑥 뛰쳐나와 아주 정확하게 성한일의 손목을 잡고 뒤로 젖히며 검은색 구두로 정강이를 공격했다.눈 깜짝할 사이에 이 모든 것이 일어났다.성한일은 땅에 무릎을 꿇게 되었고 손도 뒤로 젖히게 되었으며 머리는 그대로 땅에 조아리게 되었다.“아!”성한일은 미치듯이 울부짖으며 아프다고 호소하고 곧이어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왕소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 이 미친놈은 어디서 튀어 나온 거야! 당장 우리 아들 놔! 신고할 거야!”“그래. 신고해. 경찰한테 살인범의 아들이 함부로 주택 침입해서 주먹까지 휘두르고 있다고 말할 거야. 이번에 들어가면 아마 나오기 힘들지도 몰라.”강유리는 계단에 서서 난간에 기댄 채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강미영은 노여움이 가득 찬 강학도를 부축하여 자리에 도로 앉았다.그리고 강유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살인범의 아들?’왕소영은 강유리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려다보면서 호통쳤다.“강유리! 네 친 동생이야! 좋은 마음에 새해 인사하러 왔는데,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당장 저 미친놈보고 우리 아들 풀라고 해.”“닥쳐! 우리 강씨 가문 사람한테 네가 함부로 소리쳐도 된다고 생각해?”강미영은 그런 왕소영을 크게 호통쳤다.“……”차가운 목소리에 왕소영은 그만 참지 못하고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순간 이 가문 사람들을 찾아오지 말았어야 했다며 후회하기도 했다.강유리는
"퍽!"먼지털이가 그의 입을 정확히 때렸다.문기준이 차가운 표정으로 마치 그가 손 쓰지 않은 것처럼 말했다."어른 앞에서 말 조심해야지."성한일이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먼지털이가 그의 얼굴을 찔렀다.위협적이기도 하고 모욕적이었다.성한일이 있는 힘껏 이빨을 깨물더니 모든 불만을 삼켰다."준비됐어? 이젠 할 줄 알지? 절 제대로 해.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말하고."강유리가 담담히 말했다."돈을 참 쉽게 번단 말야."아마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거나, 아니면 강유리의 마지막 말이 작용을 일으켰는지 성한일은 이빨을 깨문채 절을 올렸다.그리고 돈을 받더니 바로 일어나서 걸어 나갔다.왕소영이 난처해졌다.그녀는 자기의 귀한 아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가는 것을 두 눈 뜨고 바라봐야 했다.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음... 우리 애도 절을 했고, 그럼 나도 가볼게."그녀에게 이미 나이를 먹을만큼 먹고 고개를 숙여 절을 올린다는 것은 너무 부끄러운 일이었다.그녀가 성씨 가문에 시집을 와서부터 걱정 하나 없이 이제까지 살았다.언제 한번 이런 모욕을 당해봤겠는가?그녀는 말을 내뱉고 바로 일어나 도망가려고 했다.두 보디가드가 앞으로 두 발자국 내딛으며 마치 벽처럼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뭐하는 짓이야?""왜 모른척 해? 이왕 온 김에 절도 안하고 간다고? 육씨 가문을 맘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줄 알았어?"강유리가 차갑게 말했다.왕소영이 낯빛이 어둡게 변하더니 말했다."강유리! 네가 시집갈때 우리 신영이 힘을 빌려야 한다는 걸 잊지마!"왕소영의 말을 들은 송미영이 자상한 얼굴이 어두워졌다.절을 안 받으면 그만이였다.근데 이런 말을 들으니 왕소영을 가만두기 싫어졌다."쓸데없는 소리 말고! 만약 오늘 절을 안한다면, 다음번에 다시 여기에 오기 힘들 겁니다."강미영이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그리고 JL빌라는 육씨 가문의 산업으로 알고 있는데요?""협박하시는 겁니까? LK부동산은 제 사위 껍니다. 당신들이 뭘 알
기다리다 못한 강미영이 짜증나서 보디가드더러 내보내라고 말하려던 참이었다.털썩!왕소영이 불쌍하게 땅에 무릎을 꿇었다.강미영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왕소영이 벌개진 얼굴로 강학도에게 절을 하며 또박또박 말했다."아버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강학도가 그녀를 차갑게 보더니 돈을 주었다."이젠 날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 거라."왕소영이 부들부들 떨며 돈을 받았다.고개를 돌려 강미영의 두 눈을 보며 비꼬았다."절 할까요? 제가 절을 하면 받을 수나 있겠어요?"같은 연배의 사람끼리 절을 하는 법은 없었다.그러나 강미영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왜 못 받습니까?"강미영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절을 해보시죠.제가 유리 엄마를 대신해서 받으면 되니까."강미영이 차갑게 웃었다."이런 건 당신이 당연히 해야 하지 않나요? 원래 매년마다 가서 찾아봬야 되는 겁니다. 첩이 들어와서 정실에게 절을 하고 차를 올려야 우리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자격이 되는 거 아니겠어요?"강미영의 말을 들은 왕소영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강유리도 조금 얼떨떨했다.죽은 사람을 대신해서 절을 받는다는 게 조금 이상하게 들렸다.그리고 이럴 수도 있단 말인가?왕소영이 강미영의 눈치를 봤다.그러나 농담하는 것 같지 않았다.다시 강학도를 보니, 그는 그저 딸의 말을 듣고 멈칫하더니 굳이 행동을 제지하려고 하지 않았다.왕소영의 눈이 흔들리며 어쩌할바를 몰랐다.왕소영이 화나서 표정 관리가 안 되였다.그러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그녀는 결국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절을 했다.강미영은 어두운 얼굴로 절을 하는 왕소영을 보며 속으로 강민영에게 묵념했다.‘언니, 나 때문에 죽었으니, 내가 언니 대신에 이 년의 늦은 사과를 받을게...’왕소영이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육시준이 밖에서 돌아왔다.그는 조깅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로 운동복차림이었다.이른 시간에 강유리가 일어난 것을 본 그가 조금 놀라했다.교차로에서 인기척을 느낀 그가 눈썹을 찡그렸다."성씨 가
강미영은 짐작할 수 있었다.그녀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말해! 그 사람 찾아서 묻기전에 말해!"강유리가 말을 하려고 하는 순간,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문을 열자 누군가 재빨리 들어오더니 저기압인 상태로 입을 열어 물었다."고씨 가문에서 널 시집보낸다니? 무슨 뜻이야? 내가 죽지도 않았는데?"바론 공작이 송씨 가문의 형제와 대화가 잘 통했다.대화하면서 민감한 주제가 나왔었다.예를 들면 강유리의 결혼식에 그가 돌아오는지 여부 같은 것 말이다.만약 돌아온다면 왜 고씨 가문이 강유리를 시집보낸단 말인가?후에 그가 후회가 남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바론은 그 말을 들었을때, 번개가 자기의 머리에 내리꽂히는 것을 느꼈다.강유리가 억울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자기가 억울한 것은 느꼈다.왜?강유리는 머리가 지끈해났다.아직 이것도 해결 못 했는데, 또 하나가 터져버렸다.차라리 잘 됐어.두 명이 같이 물어보면, 같이 대답해주면 되는 것이다.강유리가 조심스럽게 바론의 옷자락을 당기며 말했다. "지금 이 얘기하려고 했었는데 마침 잘 오셨어요. 우선 들어오시면 제가 처음부터 말씀드릴게요."바론이 그 작은 손을 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들어와서 외투를 소파에 휙 뿌리더니 다른 쪽에 앉았다.마치 청문회에 앉아있는 듯했다.강유리가 심호흡을 하며 늘어난 한 사람에 맞춰 말을 다시 정리했다."결혼식의 일은 성신영이 생각해낸 겁니다. 의도는 안 봐도 뻔하죠. 고정남이 어떤 사람인지 이미 아실거라고 믿습니다. 그 사람은 육경원을 통해서 육씨 가문과 협력하기 위해서, 또한 어른의 입장에서 유리를 시집보내려고 하는 거고요."육시준이 간단하게 요점만 말했다.잠시 멈칫하더니 뒤이어 말했다."저와 유리는 이미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성신영이 같은 날에 하려고 기를 썼습니다.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꼴이죠."그는 강유리한테 세계에서 제일 크고 화려한 결혼식을 올려줄 수 있다고 약속할 수 있다.고씨 가문의 사생아따위가 강유리와 같이 거론될 자격조차 없는 것이다.강
강유리는 초청 인원 명단을 확정하는 게 아주 먼 일이라고 생각했다.사실은 그녀의 손을 거치지 않았을 뿐이다.모든 초청 인원은 송미연이 이미 준비를 마쳤다.그리고 이미 그녀는 강씨 가문쪽의 강학도와 말을 다 마친 상황이었다.강학도는 처음부터 강미영 쪽은 확정 지을 수 없다고 말했었다.확정 지을 수 없는 원인 중 하나는 바론이 사람을 요청하고 싶어하기 때문이었다."초청 인원 명단은 어제 저녁에 사돈과 이미 대화해서 확정 지었어. 너희는 걱정 안해도 돼. 도대체 뭘 말하려고 하는 거지? 궁금한데?"바론의 갈색 눈동자가 의문으로 가득찼다.강유리가 아직 홍성주의 일을 말해도 될지 망설이고 있을때 육시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아마도 고씨 가문의 일때문이 것 같습니다."바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관심이 없어진 것 같았다.몇 초의 정적이 돌며 그는 마치 뭔가를 곱씹는 듯 했다.육시준이 방금 고씨 가문을 말할때 고정남이 어떤 사람인지 모두를 알거라고 믿는다고 했다.그리고 고정남이 어른의 입장에서 강유리를 시집 보내려고 했다고 했다.육시준은 마치 이 모든 것에 대해 놀라지 않는 듯 했다.강유리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성신영은 강유리의 자리를 차지하고 고씨 가문의 인정을 받은 일도 그도 알고 있었다.이것때문에 고정남은 이유를 일부러 찾아서 강유리를 시집보내려는 것 같아 그는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마치 누군가가 그보다 더 정정당당하게 그가 해야할 일을 하는 느낌이었다."너희 둘, 고씨 가문의 일을 알게 된 거야?"그는 망설이다가 물었다.육시준이 반문했다."어느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바론이 여우같은 그를 흘깃 보더니 그와 말하고 싶지 않아했다.고개를 돌려 갈색 눈동자가 강유리를 바라보며 육시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넌 그 사람이 널 시집보냈으면 좋겠니?""전 아버지가 절 시집보냈으면 좋겠어요."강유리가 담담히 말하면서 그의 마음속의 있는 물음을 해소시켜줬다.그의 눈동자가 갑자기 밝아지더니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내리고 고고한 자
그녀는 꽃처럼 웃으며 눈 웃음을 짓는데 그 순간 천년설마저 녹이는 화사함이었다.그녀와 오랫동안 지냈지만 바론은 처음으로 그녀가 이렇게 기쁘게 웃는 것을 보고는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다.강유리는 아버지의 눈길을 느꼈는지 입을 가리고 말했다."왜요? 너무 크게 웃어서 황실 공주의 예절에 어긋나나요?""넌 영원히 내 마음속의 공주야!""..."차갑고 엄격한 아버지가 이렇게 갑자기 솔직해지자 강유리는 조금 적응이 안 됐다.그녀뿐만 아니라 계단쪽에 서있던 릴리마저 놀랐다."아버지, 언니가 공주면, 저는요?"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바론이 정신을 차렸다.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더니 겨우 진정했다."너희 모두가 공주지.""안 돼요. 공주는 한 명뿐이에요. 두 명이 모두 공주면 유일한 게 아니잖아요! 빨리 말해봐요. 제일 좋아하는 딸이 누군지 말해봐요!"릴리가 잠옷을 입고 내려오더니 기대하는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점수를 따려고 그렇게 쳐다보는 게 아니었다.그녀는 원래부터 아버지가 언니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둘은 만나기만 하면 싸우고 화목하게 지내지 않았다.그녀는 아버지한테 언니는 사실 그를 아주 존경한다고 말해줬지만 그는 믿지 않았다.그녀도 언니에게 아버지는 언니를 걱정한다고 말했지만 언니도 믿지 않았다.릴리가 중간에서 많이 힘들었다.겨우 그녀가 놀릴 거리를 손에 넣었다.오늘 인정 안하면 누구도 이 설을 잘 보내려고 하지 말라 이거다!"그래서 옷도 제대로 안 입고 내려온 거야? 형부도 있는데 뭐하는 거야! 빨리 올라가서 옷 갈아입어!"한순간에 모드가 변하더니 차갑고 엄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릴리가 풀이 죽어 계단을 올라갔다."남자는 진짜 입과 마음이 따로 노는 동물이야! 나한테는 왜 화내는데? 내가 사실을 말해서?"강유리가 육시준을 보며 눈짓을 했다.우리도 갈까?육시준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어나며 말했다."아버님, 저도 유리 데리고 옷 갈아입으러 갈게요. 어른 앞에서 너무 옷차림에 신경을 안 썼어요.""괜찮은데
옷에 시선이 떨어진 육시준은 손이 가는 대로 외투를 집어 강유리에게 건네주었다.“좋은 일도 아니고 얘기하기 싫을 수도 있잖아.”이에 강유리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럴 수도 있겠다. 내가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긴 하지만 친 아버지는 아니잖아.”그러자 육시준은 멈칫거리더니 강유리의 두 눈을 바라보며 몇 초 동안 망설였다.“그래도 그런 말 자주 하지는 마. 서운하실 수도 있어.”어찌 됐든 강유리에 대한 육시준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진심이다.게다가 육시준은 강유리 아버지의 처지를 직접 본 적이 있어 더더욱 이해할 수 있었다.강유리는 옷을 건네받으며 말했다.“그래그래, 네 말이 맞아. 인제 함부로 얘기해서도 안 돼. 지금 그럭저럭 사이가 좋거든.”육시준은 눈썹을 들썩이며 물었다.“전에는 사이가 좋지 않았나 봐?”그러자 강유리는 입을 삐죽거리며 대답했다.“좋지 않다고 할 수도 없어.”강유리는 예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아버지에 대한 자기의 인상도 꺼냈다.한 마디로 두 사람은 그다지 가깝지 않고 늘 몇 마디 말에 의견이 맞지 않아 어색해 진다고 했다.이에 육시준은 의외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그날 밤에 했던 말을 다시 반복했다.“두 사람 성격 많이 비슷해.”강유리는 제자리 서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으며 손에 들고 있는 옷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조금 전 육시준이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한편, 고정남은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이튿날 걸려 오는 전화를 받고 급히 물었다.“어떻게 됐어? 알아 냈어?”그러자 수화기 너머 무척이나 난감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대표님, 그 차에 관한 정보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은 어젯밤 모든 감시 카메라를 피해 다녔습니다. 죄송하지만, 우리 쪽에서 알아낸 건 하나도 없습니다.”“병신! 병신들! 서울 전체에 감시 카메라 없는 곳이 어디 있어? 어떻게 하나도 걸리지 않고 다 피해 다녀?”고정남은 분노한 나머지 욕설을 퍼부었다.“고 대표님, 죄송
순간 애교 섞인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당황해 마지 못한 목소리만 울렸다.“아버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고정남은 무거운 소리로 타일러 주었다.“다른 뜻은 없다. 강씨 가문에서 너를 키워주셨잖아. 결혼하고 나서 첫 새해를 맞이하는데, 당연히 그 댁 어르신부터 찾아봬야지 않겠냐. 내일 내가 직접 데리러 갈 테니 그렇게 알고 있거라.”“......”이에 성신영은 말 문이 막혔다.강미영은 강학도 따라 서재로 들어간 뒤로 이틀 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강유리가 옆에서 뭐라고 하던 뒤늦게 반응하며 대답하곤 했다.바론 공작은 정신이 다른 곳으로 가 있는 강미영을 바라보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새해 이튿날 오후의 햇살은 더없이 푸근했다.육시준은 강학도와 정원에서 바둑을 두고 있으며 릴리는 강유리를 붙잡고 2층 베란다에서 웨딩 사진을 보고 있다.웨딩 사진을 보면서 릴리는 역시 멋진 신랑을 찾아야 한다면 연신 감탄했다.그리고 강미영은 소파에 앉아 손에 잡지 한 권을 들고 있는데, 10여 분이 지나도록 한 페이지도 넘기지 않았다.바론 공작은 본래 정원으로 가서 바둑 구경을 하려고 했으나, 거실을 지날 때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강미영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그 페이지가 그렇게 재미있어?”“......”묵직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강미영은 화들짝 놀라며 어깨까지 떨었다.그러더니 순간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숙여 잡지를 보았다.“그럭저럭 괜찮네. 당신 딸 디자인 실력도 점점 느는 것 같아. 특히 신부 머리 장식품 세트에는 재기가 어려 있어.”“지난번에도 예쁘다고 했었어.”바론 공작의 목소리에는 그 어떠한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그러자 강미영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그때는 머리 장식품만 봤었잖아. 참, 이거 좀 봐봐. 구원의 웨딩드레스인데, 레드브라이드하고 어울릴 것 같지 않아? 요즘 두 회사에서 합작하고 있다던데, 아마 이 웨딩드레스가 그들의 첫 번째 작품인 것 같아......”“미영아, 여러 해 동안 합작해 오면서 난 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