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영은 짐작할 수 있었다.그녀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말해! 그 사람 찾아서 묻기전에 말해!"강유리가 말을 하려고 하는 순간,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문을 열자 누군가 재빨리 들어오더니 저기압인 상태로 입을 열어 물었다."고씨 가문에서 널 시집보낸다니? 무슨 뜻이야? 내가 죽지도 않았는데?"바론 공작이 송씨 가문의 형제와 대화가 잘 통했다.대화하면서 민감한 주제가 나왔었다.예를 들면 강유리의 결혼식에 그가 돌아오는지 여부 같은 것 말이다.만약 돌아온다면 왜 고씨 가문이 강유리를 시집보낸단 말인가?후에 그가 후회가 남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바론은 그 말을 들었을때, 번개가 자기의 머리에 내리꽂히는 것을 느꼈다.강유리가 억울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자기가 억울한 것은 느꼈다.왜?강유리는 머리가 지끈해났다.아직 이것도 해결 못 했는데, 또 하나가 터져버렸다.차라리 잘 됐어.두 명이 같이 물어보면, 같이 대답해주면 되는 것이다.강유리가 조심스럽게 바론의 옷자락을 당기며 말했다. "지금 이 얘기하려고 했었는데 마침 잘 오셨어요. 우선 들어오시면 제가 처음부터 말씀드릴게요."바론이 그 작은 손을 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들어와서 외투를 소파에 휙 뿌리더니 다른 쪽에 앉았다.마치 청문회에 앉아있는 듯했다.강유리가 심호흡을 하며 늘어난 한 사람에 맞춰 말을 다시 정리했다."결혼식의 일은 성신영이 생각해낸 겁니다. 의도는 안 봐도 뻔하죠. 고정남이 어떤 사람인지 이미 아실거라고 믿습니다. 그 사람은 육경원을 통해서 육씨 가문과 협력하기 위해서, 또한 어른의 입장에서 유리를 시집보내려고 하는 거고요."육시준이 간단하게 요점만 말했다.잠시 멈칫하더니 뒤이어 말했다."저와 유리는 이미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성신영이 같은 날에 하려고 기를 썼습니다.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꼴이죠."그는 강유리한테 세계에서 제일 크고 화려한 결혼식을 올려줄 수 있다고 약속할 수 있다.고씨 가문의 사생아따위가 강유리와 같이 거론될 자격조차 없는 것이다.강
강유리는 초청 인원 명단을 확정하는 게 아주 먼 일이라고 생각했다.사실은 그녀의 손을 거치지 않았을 뿐이다.모든 초청 인원은 송미연이 이미 준비를 마쳤다.그리고 이미 그녀는 강씨 가문쪽의 강학도와 말을 다 마친 상황이었다.강학도는 처음부터 강미영 쪽은 확정 지을 수 없다고 말했었다.확정 지을 수 없는 원인 중 하나는 바론이 사람을 요청하고 싶어하기 때문이었다."초청 인원 명단은 어제 저녁에 사돈과 이미 대화해서 확정 지었어. 너희는 걱정 안해도 돼. 도대체 뭘 말하려고 하는 거지? 궁금한데?"바론의 갈색 눈동자가 의문으로 가득찼다.강유리가 아직 홍성주의 일을 말해도 될지 망설이고 있을때 육시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아마도 고씨 가문의 일때문이 것 같습니다."바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관심이 없어진 것 같았다.몇 초의 정적이 돌며 그는 마치 뭔가를 곱씹는 듯 했다.육시준이 방금 고씨 가문을 말할때 고정남이 어떤 사람인지 모두를 알거라고 믿는다고 했다.그리고 고정남이 어른의 입장에서 강유리를 시집 보내려고 했다고 했다.육시준은 마치 이 모든 것에 대해 놀라지 않는 듯 했다.강유리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성신영은 강유리의 자리를 차지하고 고씨 가문의 인정을 받은 일도 그도 알고 있었다.이것때문에 고정남은 이유를 일부러 찾아서 강유리를 시집보내려는 것 같아 그는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마치 누군가가 그보다 더 정정당당하게 그가 해야할 일을 하는 느낌이었다."너희 둘, 고씨 가문의 일을 알게 된 거야?"그는 망설이다가 물었다.육시준이 반문했다."어느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바론이 여우같은 그를 흘깃 보더니 그와 말하고 싶지 않아했다.고개를 돌려 갈색 눈동자가 강유리를 바라보며 육시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넌 그 사람이 널 시집보냈으면 좋겠니?""전 아버지가 절 시집보냈으면 좋겠어요."강유리가 담담히 말하면서 그의 마음속의 있는 물음을 해소시켜줬다.그의 눈동자가 갑자기 밝아지더니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내리고 고고한 자
그녀는 꽃처럼 웃으며 눈 웃음을 짓는데 그 순간 천년설마저 녹이는 화사함이었다.그녀와 오랫동안 지냈지만 바론은 처음으로 그녀가 이렇게 기쁘게 웃는 것을 보고는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다.강유리는 아버지의 눈길을 느꼈는지 입을 가리고 말했다."왜요? 너무 크게 웃어서 황실 공주의 예절에 어긋나나요?""넌 영원히 내 마음속의 공주야!""..."차갑고 엄격한 아버지가 이렇게 갑자기 솔직해지자 강유리는 조금 적응이 안 됐다.그녀뿐만 아니라 계단쪽에 서있던 릴리마저 놀랐다."아버지, 언니가 공주면, 저는요?"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바론이 정신을 차렸다.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더니 겨우 진정했다."너희 모두가 공주지.""안 돼요. 공주는 한 명뿐이에요. 두 명이 모두 공주면 유일한 게 아니잖아요! 빨리 말해봐요. 제일 좋아하는 딸이 누군지 말해봐요!"릴리가 잠옷을 입고 내려오더니 기대하는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점수를 따려고 그렇게 쳐다보는 게 아니었다.그녀는 원래부터 아버지가 언니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둘은 만나기만 하면 싸우고 화목하게 지내지 않았다.그녀는 아버지한테 언니는 사실 그를 아주 존경한다고 말해줬지만 그는 믿지 않았다.그녀도 언니에게 아버지는 언니를 걱정한다고 말했지만 언니도 믿지 않았다.릴리가 중간에서 많이 힘들었다.겨우 그녀가 놀릴 거리를 손에 넣었다.오늘 인정 안하면 누구도 이 설을 잘 보내려고 하지 말라 이거다!"그래서 옷도 제대로 안 입고 내려온 거야? 형부도 있는데 뭐하는 거야! 빨리 올라가서 옷 갈아입어!"한순간에 모드가 변하더니 차갑고 엄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릴리가 풀이 죽어 계단을 올라갔다."남자는 진짜 입과 마음이 따로 노는 동물이야! 나한테는 왜 화내는데? 내가 사실을 말해서?"강유리가 육시준을 보며 눈짓을 했다.우리도 갈까?육시준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어나며 말했다."아버님, 저도 유리 데리고 옷 갈아입으러 갈게요. 어른 앞에서 너무 옷차림에 신경을 안 썼어요.""괜찮은데
옷에 시선이 떨어진 육시준은 손이 가는 대로 외투를 집어 강유리에게 건네주었다.“좋은 일도 아니고 얘기하기 싫을 수도 있잖아.”이에 강유리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럴 수도 있겠다. 내가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긴 하지만 친 아버지는 아니잖아.”그러자 육시준은 멈칫거리더니 강유리의 두 눈을 바라보며 몇 초 동안 망설였다.“그래도 그런 말 자주 하지는 마. 서운하실 수도 있어.”어찌 됐든 강유리에 대한 육시준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진심이다.게다가 육시준은 강유리 아버지의 처지를 직접 본 적이 있어 더더욱 이해할 수 있었다.강유리는 옷을 건네받으며 말했다.“그래그래, 네 말이 맞아. 인제 함부로 얘기해서도 안 돼. 지금 그럭저럭 사이가 좋거든.”육시준은 눈썹을 들썩이며 물었다.“전에는 사이가 좋지 않았나 봐?”그러자 강유리는 입을 삐죽거리며 대답했다.“좋지 않다고 할 수도 없어.”강유리는 예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아버지에 대한 자기의 인상도 꺼냈다.한 마디로 두 사람은 그다지 가깝지 않고 늘 몇 마디 말에 의견이 맞지 않아 어색해 진다고 했다.이에 육시준은 의외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그날 밤에 했던 말을 다시 반복했다.“두 사람 성격 많이 비슷해.”강유리는 제자리 서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으며 손에 들고 있는 옷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조금 전 육시준이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한편, 고정남은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이튿날 걸려 오는 전화를 받고 급히 물었다.“어떻게 됐어? 알아 냈어?”그러자 수화기 너머 무척이나 난감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대표님, 그 차에 관한 정보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은 어젯밤 모든 감시 카메라를 피해 다녔습니다. 죄송하지만, 우리 쪽에서 알아낸 건 하나도 없습니다.”“병신! 병신들! 서울 전체에 감시 카메라 없는 곳이 어디 있어? 어떻게 하나도 걸리지 않고 다 피해 다녀?”고정남은 분노한 나머지 욕설을 퍼부었다.“고 대표님, 죄송
순간 애교 섞인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당황해 마지 못한 목소리만 울렸다.“아버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고정남은 무거운 소리로 타일러 주었다.“다른 뜻은 없다. 강씨 가문에서 너를 키워주셨잖아. 결혼하고 나서 첫 새해를 맞이하는데, 당연히 그 댁 어르신부터 찾아봬야지 않겠냐. 내일 내가 직접 데리러 갈 테니 그렇게 알고 있거라.”“......”이에 성신영은 말 문이 막혔다.강미영은 강학도 따라 서재로 들어간 뒤로 이틀 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강유리가 옆에서 뭐라고 하던 뒤늦게 반응하며 대답하곤 했다.바론 공작은 정신이 다른 곳으로 가 있는 강미영을 바라보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새해 이튿날 오후의 햇살은 더없이 푸근했다.육시준은 강학도와 정원에서 바둑을 두고 있으며 릴리는 강유리를 붙잡고 2층 베란다에서 웨딩 사진을 보고 있다.웨딩 사진을 보면서 릴리는 역시 멋진 신랑을 찾아야 한다면 연신 감탄했다.그리고 강미영은 소파에 앉아 손에 잡지 한 권을 들고 있는데, 10여 분이 지나도록 한 페이지도 넘기지 않았다.바론 공작은 본래 정원으로 가서 바둑 구경을 하려고 했으나, 거실을 지날 때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강미영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그 페이지가 그렇게 재미있어?”“......”묵직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강미영은 화들짝 놀라며 어깨까지 떨었다.그러더니 순간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숙여 잡지를 보았다.“그럭저럭 괜찮네. 당신 딸 디자인 실력도 점점 느는 것 같아. 특히 신부 머리 장식품 세트에는 재기가 어려 있어.”“지난번에도 예쁘다고 했었어.”바론 공작의 목소리에는 그 어떠한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그러자 강미영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그때는 머리 장식품만 봤었잖아. 참, 이거 좀 봐봐. 구원의 웨딩드레스인데, 레드브라이드하고 어울릴 것 같지 않아? 요즘 두 회사에서 합작하고 있다던데, 아마 이 웨딩드레스가 그들의 첫 번째 작품인 것 같아......”“미영아, 여러 해 동안 합작해 오면서 난 너처럼
바론 공작이 걱정해하는 모습을 보고 강미영은 한숨을 살짝 내쉬며 덧붙였다.“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일들이고 이미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어.”서울로 돌아오고 강유리의 결혼식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기로 했을 때부터 강미영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단지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뿐이고 하물며 잘못한 것도 없는 강미영이라 두려울 것도 없었다.그전까지 숨으면서 지낸 것은 전반적인 정세에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안 돼. 내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어.”바론 공작은 갑자기 나지막이 말하고 난 뒤, 자리에서 일어서서 밖으로 걸어갔다.“......”이에 강미영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준비? 뭘 준비한다는 거지?’바론 공작은 고씨 가문 사람들을 싫어하고 가식적인 그 인간쓰레기를 만나서 본때를 보여줄 것이라며 수도 없이 상상했었다.하지만 단 한번도 이런 상황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본때를 보여주기는커녕 자신의 신분도 제대로 밝힐 수 없는 노릇이니 너무 분하기만 했다.하여 바론 공작은 지금, 이 상황에서 만나는 것을 싫어하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정원 안의 햇살은 더없이 푸근하고 아름답다.바론 공작은 불쾌한 기분으로 한창 바둑을 두고 있는 두 사람 곁에 이르렀다.정신을 가다듬고 바둑에 집중하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도 기분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아 휴대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며 밖으로 나갔다.본래 신체도 우람한 편이라 나타나기만 하면 카리스마가 넘치는데, 성을 내고 있을 때 그 분위기는 더더욱 장난이 아니다.육시준과 강학도는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바론 공작이 먼저 입을 열지 않자 선뜻 물어보지 않았다.바론 공작이 전화하며 밖으로 나가자, 강학도는 그제야 육시준과 눈을 마주치며 나지막이 물었다.“쟤 왜 저래?”그러자 육시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저도 잘 모르겠는데, 이제 막 이모님과 얘기를 끝낸 것 같습니다.”이에 강학도는 손동작을 멈추더니 안색도 살짝 변했다.“......”육시준은 고개를 들어 조용히 강학도를 훑어보며
‘그래. 뭔 일 당하고 싶지 않으면 도망가는 것도 좋은 생각이야.’고정남은 오늘 갑자기 성신영과 함께 뜬금없이 강씨 가문으로 가자고 했는데, 아마 강유리를 위해 온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성신영은 예전의 성신영이 아니기에 더 이상 강유리의 들러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왜 그래?”육경원은 고개를 돌려 성신영에게 물었다.그러자 성신여은 고개를 저으며 이와 함께 시선도 도로 거두었다.“아무것도 아니야. 얼른 들어가자. 외할아버지께서 기다리시겠어.”이에 육경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JL빌라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그러더니 주위를 살펴보면서 있는 듯 없는 듯 물었다.“근데 네 이 빌라 말이야, 듣기로는 성홍주가 돈을 냈다며?”“......”성신영은 순간 멈칫거리더니 육경원의 뜻을 헤아리며 조심스레 대답했다.“맞아. 나한테 선물로 준 빌라야. 내 이름으로 되어 있고 난 인제 고씨 가문 사람이라 이 빌라는 성홍주 자산 동결 범위에 속하지 않았어.”“네 이름으로 되어 있으면 너 스스로 처리할 권리도 있다는 말이네.”성신영은 그 말의 뜻을 조금씩 알아차리기 시작했다.“우린 부부니깐 함께 의논하고 결정해야지. 만약 무슨 생각이라도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네 생각부터 존중해줄게.”이러한 성신영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육경원은 성신영의 손을 잡았다.“신영아, 넌 늘 이렇게 배려심이 깊어.”그러자 성신영은 안절부절못하며 웃었다.“당연한 걸 그래.”앞을 바라보며 육경원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왕소영은 너를 키워준 어머니이기에 앞으로 연락을 유지해도 상관없어. 근데 왕씨 가문 사람들은 네가 돌봐줘야 할 의무 따위는 없어.”지난번 고성 그룹 주년 행사에서 육경원은 이미 성신영에게 경고하였었다.될 수 있는 한 빠른 시일 내에 “애물단지”를 해결하라고 했다.성신영의 손에는 성홍주의 약점이 있었기에 손쉽게 성홍주를 해결했었다.그리고 왕송영 측은 그나마 말도 잘 듣고 자기를 위해 생각도 많이 해준 이유로 지금까지 손을 대지 않았다.“아직 결혼식
한편, 검은색 승용차는 JL빌라에서 천천히 나가고 있다.뒷좌석에 앉은 고정남은 등을 지그시 기댄 채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오랫동안 참아 왔던 감정으로 오는 내내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이내 컸다.마치 천국에서 지옥으로 뚝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하지만 진정하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 이런 것이 오히려 더욱 합리적인 듯싶었다.만약 정말로 강미영을 만나게 된다면 사실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할 것만 같았다.지금껏 여러 해 동안 찾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떠한 소식도 알아내지 못했으며 강미영은 응당 자기를 피해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혹은 포기하지 않고 강미영을 찾아다닌 것처럼 강미영도 그만큼 자기를 쉽게 용서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다.이 순간이 오기를 여러 해 동안이나 기다렸는데, 며칠 늦어진다고 해서 조급하지는 않았다.강미영이 서울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 지금 같은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차 세워.”고정남은 차가운 목소리로 운전 기사에게 말했다.이곳은 별장 구역이라 대문을 나서더라도 내부 도로와 거리가 있다.그들은 지금 별장 구역과 주간 도로 중간에 차를 세운 채 절대 그만두지 않겠다는 자세를 드러내고 있다.운전기사는 잠시 망설이더니 나지막이 일깨워주었다.“고 대표님, 오늘 저녁에 댁으로 돌아가셔서 사모님 곁을 지켜줘야 합니다.”그러자 고정남은 보지도 않고 말했다.“밀어.”“……”이에 운전기사는 어안이 벙벙해졌다.그렇게 얼마나 지났는지, 고정남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고정남은 눈살을 찌푸리며 마냥 귀찮아한 채로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한 번 보고는 전화를 받았다.“고 대표님, 정철 어르신께서 조금 전에 나가셨습니다. 아마 박철순 씨와 약속을 잡은 것 같습니다.”그 소리를 듣고 고정남은 저도 모르게 허리를 곧게 펴고 물었다.“두 사람은 어쩌다가 약속까지 잡게 된 것이냐?”“박철순 씨께서 먼저 어르신께 연락을 드린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