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공원묘지는 외진 교외에 위치해 있으며 강유리 외할아버지가 지내는 저택에서 몇십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강민영은 번화한 서울 거리에서 멀리 떨어진 조용한 곳에서 잠들고 싶다고 유언을 남기고 떠났다.육시준은 강미영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아 더는 견지하지 않고 차를 몰고 갔다.두 사람이 간 지 얼마 되지 않고 문기준이 도착했다.강미영은 제자리에서 서서 서둘러 차에 오르지 않았다.조금 전 자기 앞을 지나간 차가 눈에 훤히 보일 정도로 속도가 느려지자, 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눈빛도 한껏 냉랭해졌다.문기준은 차 문을 열어 주었고 이에 강미영도 차에 오르고 나서 고개를 살짝 들고 지시했다.“육 대표님께 전화하세요. 저 차 문제 있어요.”실은 이미 그 차를 주시한 지 한참 되었다.송씨 가문 별장을 나설 때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미행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리고 몇 분간 서서 기다리는 동안 강미영의 추측은 확신으로 변하게 되었다.그 차에 앉아 있는 사람은 강미영이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속도를 낮춘 것이었다.아마 계속 미행 해야 하는지 아니면 제자리에 서서 지켜봐야 하는지 망설였을 것이다……“네, 저도 발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처리하라고 지시 내렸습니다.”문기준은 차 시동을 걸며 공손하게 대답했다.“……”강미영은 자기와 거의 동시에 같은 문제를 발견한 문기준의 날카로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필경 강미영의 역정찰능력은 매번의 실천 속에서 훈련된 것이다.입꼬리를 올리며 문기준에게 칭찬하려고 하던 찰나에 멀지 않은 곳에서 차가 갑자기 비상등을 깜빡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가까이 다가가 보니 난간을 들이박은 차는 조금 전 강미영이 의심하던 그 차였다.이에 강미영은 진심으로 감탄하는 소리를 자아냈다.“늘 이렇게 추진력이 대단한 겁니까?”그러자 문기준은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대표님께서 재삼 부탁하신 바입니다. 두 분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며 착오가 생길지언정 절대 가만히 두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강미영은 고개를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이 차 말입니다, 혹시 차 번호가 육씨 가문 번호입니까?”강미영은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눈을 감고 차분해지게끔 자기를 강요했다.‘절대 육씨 가문까지 찾아오게 해서는 안 돼.’오늘 밤 강씨 가문과 송씨 가문이 함께 식사 자리를 한 건 숨길 일이 아니다.조금 전 쫓아 왔을 때도 분명히 강미영을 봤을 것이다.고정남은 그 사람이 강미영이 맞는지 아닌지 긴가민가했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마음속으로 의심이 우러난 것은 사실이다.만약 육씨 가문까지 찾아갔다면, 멀지 않아 강미연까지 찾아내게 될 것이다……문기준은 강미영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급히 설명해 주었다.“아닙니다. 육 대표님이 직접 사용하시는 차량 말고는 그동안 공작님과 사모님을 모실 때 사용한 차량에는 그 어떠한 개인 정보도 적혀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이에 강미영은 마침내 한숨을 깊이 내쉬고 무너지는 모양으로 좌석에 기대어 평소의 모든 우아함을 잃었다.문기준은 그런 강미영의 모습을 보고 의문이 두 눈에서 번쩍였다.하지만 더는 묻지 않고 동네를 에두르며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JL빌라로 데려다주었다.한편, 고정남은 차를 몰고 미친 것처럼 목적없이 대사관을 에두르며 몇 바퀴나 돌았다.그러다가 마지막에는 급 브레이크를 밟으며 길가에 차를 대고 분노한 나머지 핸들에 대고 주먹을 내리쳤다.마침 경적에 손이 닿아 귀를 찌르는 듯한 경적 소리가 울려 퍼졌다.고정남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끝이 보이지 않은 밤거리를 바라다보며 울다가 웃기도 했다.“살아 있었어! 살아 있을 줄 알았어!”강유리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고정남은 무척이나 슬펐지만 그사실을 받아들였었다.그렇게 몇 해 동안이나 찾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찾아내지 못했으니 이런 결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은 했었다.다만 오늘 밤에 그 익숙하기 짝이 없는 그림자를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오매불망
건조한 손바닥으로 따뜻한 느낌이 밀려오자, 강유리는 온몸이 푸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고개를 돌려 육시준에게 환하게 웃으며 강한 모습을 보였다.“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미 지나간 일이고 난 괜찮아. 그 후로는 외할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씀만 기억하고 살았어. 외할아버지께서는 내가 크면 강씨 가문 전체가 내 것이라고 하셨거든.”그들이 한 가족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때가 되면 강씨 가문에서 나가기만 하면 그만이다.그러나 그전에 강유리는 성홍주에게 늘 기회를 주고 있었다.명의상으로는 아버지인 성홍주에게 일말의 환상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3년 전 어느 날, 성홍주는 성신영의 말만 듣고 매몰차게 강유리를 외국으로 버렸었다.“근데, 참 이상해. 그 사람들하고 관계를 끊은 후부터 엄마에 관한 기억이 점점 또렷해지기 시작했어.”“마음속에 너무 많은 사람을 품고 있으면 안 된다는 뜻일 거야.”육시준은 덤덤하게 결론을 내리고 강유리는 이에 찬성했다.“맞아, 마음이 가는 사람만 담으면 돼.”더없이 차가운 밤바람에 나뭇가지는 찰칵찰칵 소리를 내고 있다.고즈넉한 공원묘지에는 사람도 얼마 없고 조명에 비친 두 사람의 그림자는 아주 길었다.강유리는 육시준의 손을 잡고 기억으로 들어갔다.이때 육시준은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는지 문득 입을 열었다.“장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이모님들은 돌아오신 적 있어?”강유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해 보더니 답했다.“아니, 이모는 돌아오지 않았어. 근데 우리 그 아빠는 돌아오긴 했어. 그 일로 여러 해 동안 이모와 연락도 하지 않았었어.”그때의 강유리는 엄마도 이모도 모두 자기를 버린 것으로 생각했었다.그래서 성홍주에게 모든 기탁을 몰아 부은 것이다.그렇게 지내다가 몇 해 전에 이모는 돌아오기 싫어서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올 수 없어서 오지 못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강유리 아버지는 아내인 강민영을 보내고 나서 다시 돌아갔었는데, 그때 그쪽은 이미 뒤죽박죽이 되었고 강미영도 모함받아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육시준은 강유리의 옆에 앉아 다시 손을 꼭 잡았다.“행복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돌려 강민영의 사진을 보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정중하게 승낙했다.“어머님께서 이렇게 이어 주신만큼 저를 마음에 드셨으리라 믿습니다. 앞으로 절대 어머님을 실망하게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강유리는 육시준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이어 주긴 뭘 이어 줘. 그냥 하는 소리였는데, 정말로 믿은 거야?”그러자 육시준을 고개를 돌려 강유리를 바라보았다.“모든 만남에는 운명이 뒤따르는 법이야. 너에 관한 것이라면 모든 걸 진지하게 사실로 받아들일 거야.”그러자 강유리는 웃음을 거두었다. 아마 육시준의 진심을 느꼈는지, 순간 밤바람이 그렇게 차갑지도 않았다.강민영을 보러 올 때마다 강유리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있곤 했다.그럴 때마다 가장 깊게 남은 기억은 추위와 고독함 뿐이었다.한여름 밤의 바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리 따뜻하지 않았었다.음산한 온도에 수시로 자기는 외로운 사람임을 일깨워 주는 것만 같았다.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두 사람은 묘비 앞에 앉아 한참 동안이나 이야기했다.그중 대부분은 강유리가 말한 것인데, 지난 3년 동안 외국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했다.덤덤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말투는 마치 남 일을 말하고 있는 듯했다.듣고 있던 육시준은 그 말들 속에서 강유리가 그동안 겪었던 무력함과 간난신고를 느꼈다.강미영과 함께 있었기에 지난 3년 동안 비교적 편안한 생황을 보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캐번디시 가문의 인맥과 자원으로 오늘의 강유리가 있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단지 육시준의 추측에 불과한 것이었다.강유리는 3년 동안 그들과 겉으로 가깝게 지내지 않았고 릴리 하고 만 사이가 그나마 좀 좋았던 것이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밖의 재난에 당하게 되었었다.“지금 그거 무슨 눈빛이야?”강유리는 무심결에 고개를 돌렸는데, 마침 육시준이 안타까워하는 눈빛으로 자기를 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육시준은 미처 시선
이에 강유리는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어렸을 때 성신영을 도와준답시고 도씨 가문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게 되게 눈에 찍히게 된 것이라고.그러다가 아주 우연의 기회로 도씨 가문 어르신은 강유리의 천부적인 재능이 마음에 들어 제자로 들이겠다고 했었다.“너도 말했듯이 성신영을 도와준 이유는 그 여자가 강씨 가문의 간판이라 그런 거라고 했잖아. 그리고 그 후로 성신영은 이 점을 이용하여 널 함정에 빠뜨린 거지? 3년 전 술집에서 있었던 그 일이 전형적인 사례로 될 수 있잖아. 그럼, 그전에는?”“잠깐, 그럼, 네 말은 도씨 가문 사람에게 미움을 당한 것도 성신영이 일부러 꾸민 일이라는 거야?”강유리는 의문이 들었다.그러자 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결론으로 그 과정을 추려 보자. 만약, 어머님의 사인도 중독이라고 확정할 수 있다면, 그 전부터 성씨 가문과 도씨 가문은 알고 있었을 거야. 그 후로 네가 도씨 가문 사람에게 미움을 사게 된 건 우연이 아닐지도 몰라.”더 앞서 나가서 만약 도씨 가문 어르신이 아니었다면 강유리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성홍주는 경찰차에 끌려 가면서도 강유리에게 이미 죽었어야 할 목숨이라고 끔찍한 저주를 남겼었다.이는 강유리를 죽일 생각이 있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강유리는 아주 똑똑한 사람이라 곧바로 육시준의 뜻을 알아차렸다.다만 두 눈에 냉랭한 빛이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그래서 도씨 가문과 강씨 가문은 예전부터 쭉 원한이 있었다는 말이네? 내가 도씨 가문 어르신을 알기 전부터? 그럼, 독을 탄 도씨 가문 사람은 성홍주를 먼저 찾아왔었던 거였어. 그리고 어르신께서 직접 나설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고.”“맞아.”“근데 우리 엄마는 왜 도씨 가문과 얽히게 된 걸까? 위로 아무리 따져봐도 도씨 가문과 얽힐 사람이 없어.”“……”육시준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실은 처음에 육시준도 이에 대해 영문을 알 수 없었다.게다가 강민영을 조사하기도 했었는데, 외국에서 정보 미상이라는 것 외에는 국내에서 별다른 복잡한 경
그 말에 육시준은 할 말을 잃었다.“……”그냥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 왜 갑자기 도발적인 말로 바뀌게 되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강유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고 고양이처럼 문지르고 있다.어리숙하고 귀여운 모습은 평소에 차갑고 도도한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다.지금, 이 모습은 오로지 육시준에게만 한정되어 있다.여기까지 생각하게 되자 육시준은 마음이 간질간질하여 확 덮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도발한 사람은 육시준이 아니라 강유리이다.육시준은 팔을 도로 빼며 제자리로 돌려보내고 서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운전 중이야. 집에 가서 봐.”“……”이에 강유리는 또 말 문이 막혔다.‘집에 가서 뭘 봐?’무거웠던 화제가 이로써 뚝 잘리게 되자 한껏 홀가분해졌다.육시준은 더 이상 릴리와 강씨 가문에 대해서 묻지 않았고 어느 정도 속으로 짐작이 가는 일들도 있었다.하지만 강유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해 낼 수 없었다.단지 나쁜 짓을 했다면 반드시 실마리를 남기게 될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배후의 범인을 찾아내는 것도 언젠가는 이뤄질 것이다.돌아가는 길에 차가 별로 없어 한 시간 만에 도착했고 마침 0시에 맞춰 들어왔다.그러나 문에 들어서자마자 강유리는 예민하게 분위기 이상함을 감지했다.릴리는 지금 외할아버지와 연말 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그 분위기는 화목하면서도 따뜻하다.그러나 한편, 혼자 1인용 소파에 앉아 있는 이모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자꾸 딴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강유리는 넋이 나간 듯한 강미영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다.두 사람이 집에 들어온 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말이다.강유리는 외투를 벗고 신발까지 갈아신고, 릴리에게 눈짓을 보냈다.“너 엄마 왜 저래?”그러자 릴리는 고개를 저었다.“저도 몰라요. 근데 일이 좀 심각해 보여요.”“이모?”강유리는 탐색하듯이 강미영을 불렀다.그러자 강미영은 고개를 돌려 웃음을 자아내며 대답했다.“왔어? 잘 다녀왔어?”강유리는 이에 망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잘 다
문기준은 이미 아주 상세하게 보고를 올렸었다.고씨 가문의 차라고 할 때도 강미영의 반응은 매우 컸고 평소에 보였던 냉정한 모습은 하나도 없었다.게다가 고씨 가문과 강유리 사이에 문제가 있다고 한들 강미영이 긴장할 리는 없다.강미영은 고개를 들어 이미 진정을 되찾은 모습을 보였다.육시준이 건넨 질문에 의외라는 느낌도 하나도 없었다.“이제 곧 시기가 적절하면 알려줄게.”육시준은 몇 초 동안 지그시 바라보고는 대답했다.“네.”강학도는 육시준을 바라보다가 정원에서 놀고 있는 두 자매를 바라보았는데,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그러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서서 위층으로 올라갔다.“난 나이도 많지 해서 밤을 새울 수가 없다. 너희들 재미있게 놀거라.”육시준은 본래 일어서서 위층까지 모셔다드리려고 했지만, 강학도가 갑자기 몸을 돌렸다.그러더니 어디서 갑자기 봉투 세 개를 꺼내며 말했다.“자, 세뱃돈이다. 너희 어린애 셋이 나눠 가져라.”“…….”이에 육시준은 몇 초간 멍해 있다가 손을 내밀어 받았다.참, 묘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기억이 있고 난 뒤로부터 육시준은 세뱃돈을 받은 기억이 없다.어린아이들만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결혼 첫해에 아이가 될 줄은 몰랐다.“매년 있는데, 이미 3년 동안 함께 했으니, 3년 동안의 세뱃돈을 넣었다.”강학도는 웃으며 육시준의 손등을 토닥거렸다.순간 육시준은 마음이 따듯해졌다.“고맙습니다, 외할아버지. 릴리 대신 인사드릴게요.”그러자 강학도는 손을 흔들며 위로 올라갔다.“가서 같이 놀아줘라.”등불이 환히 밝혀지고 새해의 기쁨이 어두운 장막을 몰아치고 서늘한 밤도 몰아쳤다.폭죽이 밤하늘을 밝게 비춰주지 않는다고 해도 올해는 유난히 떠들썩하다.다만 강유리 집안만 이런 분위기이다.한편, 왕소영 집은 그리 좋지만은 않다.마찬가지로 JL빌라에 살고 있지만, 성홍주가 감옥에 들어가면서 전에 불법 경영까지 파급되어 계좌는 사용 중지되었다.성홍주의 말대로 왕소영의 손에 있는 돈도 모두 성
“강유리 네 누나잖아. 언젠가는 육씨 가문으로 시집갈 건데, 그때 유강 그룹은 어떻게 할 거 같아? 육씨 가문에서 아마 유강 그룹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야. 그때 우리가 나서서도와주면, 강유리 걔도 영광으로 받아들여야 할 거야.”“……”순간 성한일의 두 눈에 탐욕의 빛이 번쩍였다.왕소영을 바라보고 있는 두 눈은 더없이 반짝거렸다.이때 왕소영이 덧붙였다.“내일 준비하고 있어. 네 외할아버지하고 누나한테 설 인사 하러 가야겠어.”성한일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다.“엄마, 강유리가 우리하고 상대하려고 하지 않는 한 유강 그룹을 되찾는 건 장기적인 문제야. 지금 가장 급한 건 돈인데, 누나한테 찾아가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그러자 왕소영은 한숨을 내쉬었다.“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네 누나가 아직 고씨 가문에서 자기 위치가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했어. 그래서 좀 더 기다리라고 그랬어.”그러자 성한일은 다소 불쾌해했다.“또 기다리라고 했다고? 우리한테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공개 결혼하고 나서 고씨 가문에서도 누나한테 잘해주고 있잖아. 그 한마디에 강유리도 고씨 가문만 한 가문을 골라 시집 보낸 거잖아.”이에 왕소영은 몇 초 동안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강유리가 고씨 가문의 덕도 봤으니, 내일 눈치껏 우리한테 살갑게 대해야 할 거야.”성한일은 이 말을 듣고 일리가 있다가 생각했다.하여 성신영에게 빌어 붙자는 건의를 아예 접어 버렸다.성신영은 친누나이니 언제든지 빌어 붙어도 된다고 생각했다.그러나 강유리 같은 외부인은 기회가 있을 때 한푼이라도 더 떼야 한다.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보나 다름없다.다음날.새해 첫날이어서 그런지 날씨가 유난히 좋았다.둥근 해가 동쪽에서 서서히 떠오르고 햇살이 대지를 내리 쏘자 칼바람이 부는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푸근하기 그지없었다.강유리는 세안을 마치고 새해 새 옷으로 갈아입고 똥머리 헤어 스타일을 하고 내려왔다.청순이라는 단어에 이미지가 있으면 딱 지금 강유리의 모습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