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아주 탐정이 따로 없구만. 그래서 뭐 좀 알아냈어?”진지한 표정의 강유리와 도희를 지켜보던 강학도가 괜히 장난스레 말을 건넸다.“당연히 알아냈죠! 할아버지 안목이 끝내주신다는 거?”도희가 생긋 웃으며 엄지를 내밀었다.“허허, 나이 먹으니 식물이 그렇게 좋더라고. 시간 떼우기도 딱이고.”잠시 후, 집으로 들어선 강유리는 한참을 망설이다 성홍주가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강학도에게 알려주었다.‘다른 사람은 몰라도 할아버지는 아셔야 해. 피해자시니까.’하지만 강유리의 걱정과 달리 강학도는 그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을 뿐, 곧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인과응보구나, 인과응보.”“별로 안 놀라신 거 같네요?”눈을 동그랗게 뜬 강유리의 표정에 강학도가 피식 웃었다.“네 할아버지 늙기는 했지만 바보는 아니야. 민영이가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떴을 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어. 그리고 네 아버지의 처방에...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복용하자마자 효과가 나타나는 독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일단 장단을 맞춰주자는 목적이었는데 늙은 몸뚱아리가 생각보다 빨리 무너진 건 그의 예상 밖이었지만 말이다.별장으로 거처를 옮긴 뒤 여러 식물을 기르기 시작한 것도 어떻게든 성홍주의 음모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는데... 그의 조사 결론보다 업보가 먼저 올 줄은...“그나마 다행인 건 성홍주가 너한테만큼은 그러지 않았다는 거야. 뭐, 그것도 널 위해서라기보다 자기 체면을 위해서였겠지만.”강학도의 말을 듣고 있던 강유리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다.할아버지의 어깨에 기댄 강유리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왔다.“할아버지가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정말로...”강학도에게마저 무슨 일이 생겼다면 오늘 정말 성홍주를 죽여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강학도 역시 인자한 미소와 함께 손녀의 손등을 토닥였다.“괜찮아. 이제 다 괜찮아.”...식사를 마치고 강유리와 육시준은 2층 테라스로 올라왔다.조용히 별을 바라보던 강유
유강그룹 성홍주 이사가 긴급 체포되었다는 뉴스는 곧 포털사이트를 뜨겁게 달구었다.[유강그룹 성홍주 이사, 아내 살인, 장인어른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자극적인 기사 타이틀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그러니까 진짜 유강그룹 자산을 노리고 접근했다는 거잖아.”“그래서 결혼은 레벨이 맞는 사람들끼리 해야 해.”“하,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진짜 인간이 가장 무섭다니까.”“관상은 과학이다. 딱 봐도 비열하게 생겼어. 지금까지 좋은 아버지인 척 했던 게 그냥 다 연기였다는 거잖아. 진짜 소름 돋는다. 성신영한테는 신혼집으로 고급 빌라도 줬다고 하지 않았나?”“아, 그 자기 언니 애인 뺏은 애? 진짜 못 된 것만 물려받았네.”“쉿, 조심해. 그러다 바로 고소장 날아간다. 성신영 지금은 고성그룹 사람인 거 몰라?”댓글창에는 성홍주를 향한 비난과 욕설뿐, 그리고 성신영을 향한 비아냥거림도 간간히 보이곤 했다.이에 반해 강유리는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어떻게든 자기 힘을 키운 걸크러시의 표본으로 추앙받았다.원래 그녀의 팬이었던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고 딱히 별감정 없는 사람들마저 강유리의 안타까운 성장사에 동정을 던졌다.그 덕분인지 이사가 살인 혐의로 체포되는 상황에서도 유강그룹 주가는 오히려 상승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이했다.한편, 공항.VIP 통로로 나온 중년 남자가 자연스레 비서에게 캐리어를 건네곤 휴대폰 메시지를 확인했다.포털사이트 검색어를 확인한 남자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쓸모없는 자식. 몇 달 자리 비운 사이에 사업 다 말아먹은 것도 모자라서 뭐? 긴급 체포?”캐리어를 챙긴 비서가 빠르게 따라붙었다.“이번 사건 담당형사가 신한문이라고... 돈으로 매수하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누가 매수한대?”“네?”“애초에 성홍주를 남겨둔 건 강유리를 견제하기 위해서였어. 그런데... 자기 쓸모를 다하지 못하는 장기말을 굳이 남겨둘 이유가 있을까?”“네, 알겠습니다.”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음산한 목소리
두 사람의 촬영을 맡은 웨딩플래너 역시 지금까지 수많은 재벌가들의 결혼을 맡아왔지만 이토록 호화로운 웨딩사진은 처음이라 혀를 끌끌 찰 따름이었다.세마의 작품을 눈 앞에서 본다는 게 믿기지 않는지 웨딩플래너는 조심스레 손가락을 뻗어 액세서리 보석 부분을 톡 하고 건드리곤 감전이라도 당한 듯 손을 감추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유리가 싱긋 웃었다.“세마 작품 좋아하나 봐요?”이에 웨딩플래너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 세마 디자이너 작품은 뭔가 독특한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요. 그런데 작품들 전부 한정 판매라 전 구매는커녕 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는 것도 처음이네요.”“이건 소장용이라 저도 한 번도 안 해 본 건데 플래너님이 그렇게 마음에 드신다면 촬영 끝나고 선물로 드리고 싶네요. 괜찮을까요?”“네?”웨딩플래너는 물론이고 다른 직원들의 눈마저 휘둥그레졌다.‘세상에... 그냥 팬이라는 말 한 마디에 선물로 준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먼저 말할걸! 지금이라도 말할까?’한편, 겨우 충격에서 벗어난 플래너가 눈을 반짝였다.“주신다고요?”“네.”강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플래너님이 픽업해 주신 옷들 다 너무 마음에 들었거든요. 마침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기도 했고. 감사의 의미로 드리고 싶어요.”“아, 제 친구가 담당하는 브랜드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브랜드라... 무엇보다 신부님께 잘 어울리실 것 같아서 픽한 건데... 마음에 드셨다니 정말 다행이네요.”“덕분에 정말 완벽한 스냅촬영이 될 것 같아요.”“액세서리며 옷이며 그게 뭐가 중요할까요. 신부님 미모가 다 하신 거죠.”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탈의실에서 나온 육시준이 모습을 드러냈다.완벽한 역삼각형의 몸매 자체가 옷걸이라 완벽하다는 단어 말고는 달리 이 남자를 형용할 단어가 있을까 싶었다.“세상에. 누구 남편이 이렇게 잘생겼을까?”강유리의 눈동자가 하트로 반짝였다.“그러게? 누구 남편일까? 가까이에서 봐봐.”플래너를 비롯한 직원들이 눈치껏 자리를 뜨고 자리
프로페셔널한 촬영팀의 스킬에 웬만한 연예인은 저리 가라인 강유리, 육시준 두 사람의 완벽한 비주얼 덕분에 촬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포토그래퍼 역시 찍는 컷마다 A컷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몇 시간 후, 촬영을 마친 강유리가 스튜디오를 나서려던 그때, 웨딩플래너 Maureen이 조심스레 다가왔다.“저기, 신부님... 죄송한데... 제가 신부님에게서 세마 디자이너의 작품을 받았다는 걸 제 친구한테 얘기했더니 자기 브랜드 의상과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다면서 프로젝트 협력을 제안하더라고요. 지금 스튜디오 앞에 와있는데 일단 얘기 나누시고 신부님께서 세마 디자이너님께 언질 좀 넣어주시면 실례가 될까요?”살짝 던진 미끼를 이렇게 빨리 물 줄이야.강유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반면, Maureen은 강유리가 언짢은 거라 착각하고 다급하게 설명을 이어갔다.“지금 웨딩 스냅 촬영 중이신데 이런 말씀드리는 거 정말 실례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거절하겠습니다.”“아니에요.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돌려보내는 게 더 실례죠. 만나죠.”그렇게 두 사람의 긴급 미팅이 촬영장에서 시작되었다.추진력 갑인 두 사람이 모이니 단 몇 시간만에 계획서 초안까지 작성하는 기염을 토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저녁 식사라도 함께 하시죠?”Maureen의 제안에 강유리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제가 저녁에는 다른 약속이 있어서요. 식사는 다음 기회에 하죠.”멀어져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Maureen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야, 너 앞으로 이렇게 제멋대로 굴지 마. 강 대표님, 육 대표님 다 성격이 좋으신 분들이라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 실례가 될 뻔했어.”하지만 친구는 어깨를 으쓱했다.“코앞까지 떨어진 떡 안 줍는 게 바보지 뭐.”“그게 무슨 소리야?”“강 대표가 정말 아무 이유없이 세마의 작품을 선물로 줬다고 생각해? 그게 다 빌드업이었다고.”“그... 그런 거야?”방금 전 강유리와의 대화를 다시 떠올린 Maureen이 완전히 설득당한
잘생긴 얼굴이 갑자기 훅 들어오니 머릿속이 웅웅대는 기분이 들었다.‘처음 했을 때는 도대체 어떤 모습인데.’“그땐 날 되게 좋아했었지. 내 빚을 갚아주겠다고 주식도 다 팔아버리고.”“에이, 남편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쯤이야. 너무 감동하진 마...”“그런데 겨우 계약서 하나 때문에 날 이런 일까지 시키고 말이야. 사랑이 식은 거야?”“겨우 계약서 하나라니...”하지만 곧 포인트를 잘못 잡았음을 깨달은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마음이 식을 리가 있겠어? 오히려 결혼했을 때보다 훨씬 더 사랑하는걸.”장난기로 반짝이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육시준이 더 가까이 다가갔다.“그래? 그럼 한번 증명해 봐.”“...”‘어떻게 된 게 매일 증명 릴레이냐. 내 마음을 까뒤집어서 보여줄 수도 없고.’불평은 불평이고 진지하게 몇 초 고민하던 그녀가 대답했다.“SNS에 우리가 결혼한다고 업로드할게. 이러면 증명이 되겠어?”“뭐?”파격적인 제안에 육시준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두 사람의 사이가 밝혀지면 행여나 유강그룹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진 않을까 걱정하며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건 피하고 또 피하던 사람이 갑자기 두 사람의 결혼사실을 인정하겠다니 놀라울만도 했다.“이렇게 예쁜 사진들 우리끼리만 보는 건 너무 아깝잖아. 그리고 어차피 곧 결혼식도 올릴 텐데 뭘.”하지만 육시준은 그녀의 손에서 휴대폰을 쏙 빼앗아갔다.“정말 괜찮겠어?”“당연하지. 당신도 친구들한테 우리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아?”“...”한참이 지나도 시원한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강유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 왜 싫어?”“아니, 싫은 게 아니야.”육시준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하지만 난 다른 방식으로 증명해 줬으면 하는데.”“무슨? 읍...”곧이어 뜨거운 키스가 시작되고 강유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아니, 머릿속에 설마 그 생각뿐인 거야?’하지만 스킨십이 더 깊어지며 사진이고 계약서고 결국 뒷전에 버려버린 그녀다....샤워를 마친 강유리가 편안한 표정으
“...”그의 질문에 강유리는 침묵으로 답했다.“설마 통장 비밀번호일까 봐?”“쿠울...쿠울...”일부러 코 고는 척을 해보아도 어느새 빨갛게 달아오른 귓볼이 그녀의 당혹스러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어이없다는 얼굴로 웃던 육시준이 강유리의 엉덩이를 톡 건드렸다.“아주 그냥 돈돈돈, 돈 밖에 모르지?”깊은 밤.수술을 마친 송이혁과 조서 작성을 마친 신한문이 끝없이 윙윙 울려대는 휴대폰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송이혁, 신한문, 육시준 세 사람이 함께인 단체 채팅방이 육시준의 웨딩사진으로 어느새 도배되고 있었다.“뭐야? 미친 건가?”“가족들 채팅방에 보내려다 잘못 보낸 거겠지.”이렇게 생각하고 대충 무시하려던 그때, 육시준이 문자 하나를 더 보내왔다.[우리 와이프 이쁘지?][...][팔불출 노릇은 제발 다른 사람 앞에서나 해.]한편 육씨 일가 단체 채팅방 역시 이미지 폭격을 맞은 건 마찬가지였다.물론 부모님의 리액션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송미연- [어머, 우리 며느리 너무 예쁘다. 두 사람 선남선녀네.]육지원- [전통 혼례 컨셉은 별로라니까 왜 이렇게 많이 찍었어?]송미연- [당신도 참. 애들 하고 싶은대로 하게 두라니까. 유리 한복 입은 거 너무 이쁘지 않아요?]육지원- [하여간 여자들 취향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육경서- [형수님 액세사리 전부 세마 작품이네. 나, 나도 할래.]육지원- [???]송미연- [이거 여성용 액세서리잖아.]육경서- [아는데요? 마음에 쏙 들어요.]찡긋 하는 이모티콘까지 보내는 육경서의 답장에 두 부부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깊은 심호흡과 함께 먼저 정신을 차린 송미연이 입을 열었다.“설마... 우리 아들 정말 그쪽일까요?”“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저번에 어떤 남자연예이랑 스캔들 났었잖아. 아주 아니라고 펄쩍 뛰더니. 정말이었나 봐.”송미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설마... 지금 좋아하는 여자 있다는 것도 위장이었어?”“에이, 설마.”이에 육지원이 손사
[애인은 개뿔. 차 둬서 뭐 해. 우리 와이프 기사로 둘 거면 차 다 팔어버리는 게 낫지.]‘허, 뭐야? 얼마 전에 형수님이 나 데리러 온 것 때문에 삐쳐서 내 차를 팔았다고? 이거 완전 미친 자식 아니야.’송미연- [얘 웬만하면 다시 하나 뽑아줘.]육지원- [그래. 이건 시준이 네가 잘못했다.]한편 극장 앞에서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는 육경서는 오랜만에 두 사람이 자기 편을 들어줘서 꽤 들뜬 상태였다.‘그럼 이 기세를 몰아서... 목걸이 선물해 달라고 해야겠다. 우리 주리 줘야지.’[아니. 차는 됐고 저 목걸이면 돼. 공짜로 주는 게 싫으면 내가 살게.]같은 시각, 한바탕 친구, 가족들에게 문자 폭탄을 보낸 육시준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이때, 누군가 강유리의 카톡에 말을 걸어왔다.[릴리랑 이번 설은 한국에서 보내기로 했다면서? 그런데 릴리한테 갑자기 일이 생겨서... 내가 전세기 보낼 테니까 할아버지랑 영국으로 건너오는 게 어때?]“이모”라고 적힌 이의 문자를 바라보던 육시준이 대신 답장했다.[이모, 죄송한데 이번 설은 양쪽 집안에서 같이 보내기로 했어요.]최대한 강유리다운 말투로 답장을 보낸 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그때, 이모에게서 곧바로 답장이 도착했다.[양쪽 집안? 어머, 그럼 우리도 가야지! 우리도 조카사위 얼굴 볼래.]문자를 확인한 육시준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그냥 출국하는 걸 거절하기 위해 던진 핑계인데 바로 대어를 낚게 될 줄이야.‘뭐, 나한테는 나쁠 게 없지만.’이미 깊게 잠든 강유리를 바라보던 육시준은 다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남은 건 유리가 알아서 하겠지.’다음 날, 점심이 다 되어서야 눈을 뜬 강유리가 찌뿌둥한 몸을 움직여보았다.‘연예인들도 힘들겠네. 그냥 입혀주는대로 입고 사진 찍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그나마 요즘 유강그룹에 별일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강유리는 거실로 내려갔다.그녀가 텅 빈 거실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아주머니가 부랴부랴 달려왔다.“대표님 서재에 계
그들 사이의 연락 방식이다. 급한 일이 있으면 바로 전화하고 메세지는 늦잠 자고 깨난 후에야 답장하기 일쑤다.“걔 어제 너한테 연락이 왔던데 내가 답장했어.”“???”강유리는 문을 닫고 도로 위층으로 올라가 핸드폰을 찾아 채팅앱을 열었다.대화 내용을 보고 나서 깜짝 놀란 그녀였다.이 남자, 말이 어지간히 많은 게 아니었다.신주리랑 소안영이 있는 채팅방에는 안 읽은 메시지 99+가 있었고 Seema업무채팅방에도 안 읽은 메시지가 99+가 있었다.할아버지와의 채팅창도 당연히 그 정도였고.심지어 조보희와 아저씨도 그의 메시지 폭격을 당했다.모두 답장을 해줬지만 육시준은 그 답장들을 전혀 확인하지 않았고. 유일하게 답장이 없는 사람이라곤 이모였다.[이모, 이번 설에 우리 다 돌아올 거니까 같이 쇠요!][우리 같이 돌아갈 거예요!]이 대화 기록을 보고 강유리는 막연해졌다.분명 이모라고 닉네임도 고치지 않았는데 육시준은 어떻게 알고 사진을 보낸 거지?이 두 마디 위엔 보이스톡 초대가 있었지만, 상대방이 거절했었다.강유리는 그 전의 대화 기록을 뒤지기 시작했다.엄청나게 길었지만 거의 육시준 혼자 사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맨 처음으로 올려보니 이모가 먼저 톡을 보내왔었다.할아버지랑 나를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가겠다고?“우리 엄마랑 올해는 같이 설을 보내기로 했잖아. 난 이모님이 오래 기다리실까 봐 먼저 답장한 거야.”머리 위에서 육시준의 당당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유리가 목소리를 따라 위로 올려보니 당당한 그의 말투와는 달리 눈빛에는 불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부자도 자기가 잘못한 일이 있다고 생각하나 봐?대신 답장하는 건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강유리도 기회를 찾아 이모한테 정식으로 육시준을 소개시켜 주려고 했으니까. 그런데 이런 육시준의 태도를 보니 강유리는 갑자기 그를 한번 놀려보고 싶어졌다…“왜 함부로 내 핸드폰으로 답장한 거야?”강유리는 일부러 정색하며 말했다.“네가 먼저 공개하자고 했잖아.”“공개하는 것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