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리가 이렇게 깔끔하게 동의할 거라 상상도 못했다.흥분한 마음으로 몇 번이고 확인하고 나서 겨우 방에서 나갔다.하지만 내려가자마자 마주친 익숙한 얼굴을 보고 표정이 갑자기 굳어버렸다.지금 거실에 서 있는 사람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영원히 상종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한 그 인간 아닌가?그러기에 일부터 정략결혼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네가 왜 여기 있어.”조보희는 불만 섞인 소리로 물었다.“육 사모님께서 아프시다는 소식을 들어서 온 거야.”송이혁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강유리는 그런 그의 대답이 어이가 없었다.조보희도 이 말에 급히 고개를 돌려 강유리한테 물었다.“뭐야? 너 어디 아파?”이렇게 보니 얼굴이 창백해 보이기도 하고. 이런 사람을 대고 그런 말을 내뱉었다니!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어디 조용한 방 없어요? 제가 한번 봐 드릴게요.”송이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강유리한테 다가왔다.강유리는 어쩔 줄 몰라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 육시준한테 시선을 고정했다.하지만 육시준은 무덤덤하게 그들을 보다 피식 웃고는 강유리한테 긍정의 눈빛을 발사했다.강유리는 곧이어 송이혁을 따라 서재로 갔다. 객실에 남은 조보희와 육시준이다.조보희는 긴장했는지 자기 손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서재에서 강유리는 송이혁한테 불만을 터놓았다.“둘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은거예요? 보희가 보고싶어 오셨으면서 제 핑계를 대고. 누가 들으면 제가 죽을 병 걸린건 줄 알겠어요.”고작 감기 기운 있는걸 가지고.송이혁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보희가 요즘 날 엄청 싫어해요. 갑자기 나한테 짜증도 내고, 내가 뭘 해도 다 틀렸다고 생각해요.”“송일그룹 소식을 조금 전해 들은 것 같던데요? ”강유리는 힌트를 주었다.송이혁은 막연한 표정으로 강유리를 보고 있었다.그런 모습을 보니 완전히 모르는 것 같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송이혁은 바로 생각이라도 난 듯 강유리에게 대꾸했다.“저한테 이렇게 선심을 쓰셨으니 저도 좋은 소식 하나 알려줄게요.”“??
흠칫하던 조보희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돌아보았다.“이한 씨, 생각보다 뻔뻔한 사람이었네요. 뭘 더 쓸어갈 생각인데요?”조보희의 순수한 표정에 송이한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려왔다.“그러니까 내 말은... 매장에서 더 사자고요.”“네?”이에 조보희의 눈이 더 휘둥그레졌다.“지금 나랑 같이 쇼핑을 하겠다고요?”고개를 끄덕인 송이한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어머니, 아버지도 보희 씨 만나고 싶어 하세요. 이번 설에 우리 집에 놀러갈래요?”쿠궁!‘이번 설에... 이한 씨 집에?’갑작스러운 제안에 조보희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그냥 놀러가는 거라고? 지금 우리 사이에 그냥 단순히 놀러가는 거일 리가 없잖아!’이 상황을 겨우 인지한 조보희는 뭔가 생각난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혹시 이한 씨도... 제가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거예요?”그녀의 질문에 피식 웃던 송이한이 고개를 돌렸다.“그런 거 아니에요. 저번부터 커플룩 입고 싶다면서요.”“...”“내가 미안해요. 보희 씨 마음 헤아리지 못하고 유치하다고 말했네요. 이만 화 풀어요.”“솔직히 그거 말고 화난 이유 또 더 있는데.”고개를 푹 숙인 조보희가 괜히 손가락을 움직였다.고주영과 송이한이 정략결혼을 할 사이였다는 걸 안 뒤로 가슴에 가시가 콕 박힌 듯 답답했던 그녀다.그래도 송이한을 믿었기에 그가 먼저 해명을 해주길 바랐건만 아무리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라 꽤 불안해진 상태였다.아무렇지 않게 애매한 스킨십을 하는 건 참을만 했지만 그녀의 생각이나 제안에 자꾸만 태클을 거는 게 특히 마음에 안 들었다.“아버님 투자 안목이 안 좋으시다고 했던 것 때문에 그래요?”좋은 마음에서 조언을 한 것이지만 너무 직접적이었음을 송이한도 인지하고 있었다.“그, 그것 때문만은 아니에요.”“그럼 내가 보희 씨가 준 컵 깨트려서요?”“내가 준 선물을 그렇게 함부로 대해도 되는 거예요?”삐침의 근원을 찾은 송이한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평소에 작은 섭섭함이 쌓였던 데다 고주영과 정
그렇게 조보희는 그날 밤 있었던 일을 전부 털어놓았다.“시준 씨가... 커플 사이에 가장 중요한 건 소통과 신뢰라고 했는데... 난 이한 씨 믿어주지 못했어요. 미안해요, 진심으로.”말을 마친 조보희가 고개를 푹 떨구었다.실제로 어젯밤 죄책감으로 잠도 이루지 못한 그녀였기에 오히려 솔직하게 터놓고 나니 체기가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송이한이 화를 내진 않을까 초조하기도 했다.그리고 그 사이에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취합한 송이한이 물었다.“고주영 씨 친구랑 고우신 씨 전여친이 수영장에 빠지는 사고가 있었다던데. 혹시... 보희 시가 한 거예요? 유리 씨도 그래서 감기에 걸린 거고?”송씨 일가가 정략결혼을 제안하니 그쪽에서는 화가 잔뜩 나있었을 텐데 조보희의 등장은 고주영 패거리의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되었을 것이다.그런데 맹한 성격의 조보희가 당하긴커녕 오히려 상대방에게 한방 먹였다는 건... 기가 세기론 둘째 가라면 서러운 강유리의 일조가 있었으리라고 송이한은 확신했다.“그, 그렇게 튼튼한 애가 그거 조금 젖었다고 감기에 걸릴 줄 누가 알았나요...”조보희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보희 씨는 어디 다친 데 없어요? 어디 아픈 데는요?”송이한이 조보희의 몸 구석구석을 훑어보고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전 괜찮아요. 저야 뭐, 튼튼한 거 빼면 시체인데요 뭘.”“...”그렇게 한참을 침묵하던 송이한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안전벨트를 푼 그는 훅 다가가 조보희의 이마에 쪽 입을 맞추었다.쿠궁.당황한 조보희는 그대로 조수석에 굳어버리고 말았다.‘뭐야? 뭔데, 이거!’같은 시각, 경찰서.강유리가 조사를 마치고 나왔을 땐 이미 어두운 밤이었다.별 하나 보이지 않는 밤하늘, 경찰서 앞의 가로등이 어두운 골목을 비추고 있었다.문득 불어오는 찬 바람에 몸을 부르르 떨던 강유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역시 인과응보라는 말이 맞나 봐.”한편, 육시준과 신한문 역시 그녀의 뒤를 따라 경찰서를 나섰다
“한문 씨는 아직도 당신이 왜 그렇게 못 되게 구는지 모를걸? 아마 어리둥절할 거야.”“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는데?”전방을 주시하는 육시준이 여전히 감정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작은 손을 억지로 밀어넣어 끝내 육시준과 깍지까지 끼는 데 성공한 강유리가 애교를 부렸다.“나랑 한문 씨 저번에 얼굴 한 번 본 게 다야. 그전엔 서로 아예 모르는 사이였다고.”“...”“어른들이 별의미 없이 하신 말씀이야. 솔직히 한문 씨 탓도 아니잖아?”“지금 걔 편 드는 거야?”드디어 고개를 돌린 육시준이 그녀를 흘겨보고 강유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아니, 그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사실을 얘기하는 것뿐이야. 그리고, 이렇게 완벽한 남자가 이미 내 옆에 있는데 다른 남자들이 눈에 들어오겠어? 내가?”강유리의 아부 아닌 아부에 육시준의 표정은 조금 풀린 듯했다.“오늘 보희랑 같이 옷 피팅하면서 갑자기 생각난 건데 우리 웨딩사진, 전통 혼례 컨셉으로도 찍자. 어때?”“당연한 거 아니야? 이 세상 모든 컨셉으로 다 찍을 건데?”“참나. 어머님은 꽤 마음에 들어하시는 것 같았는데 아버님은 요즘 애들이 왜 고리타분하게 전통혼례냐며 하셔서. 두 분이 괜히 싸우실까 봐 내가 슬쩍 빼놨던 거거든.”“하여간, 쓸데없는 일에 간섭을 하신다니까.”‘하, 이 불속성 효자 좀 보소?’강유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일단 스튜디오 촬영부터 진행하고 야외 촬영은 설 지나고 날 좀 풀리면 여기저기 여행 다니면서 찍자.”바쁜 와중에도 결혼식 준비를 가장 중요한 스케줄로 생각하고 있는 육시준이 바로 계획을 제시했다.“그래. 당신 말대로 하자.”...그렇게 겨우 육시준의 마음을 달래고 마음을 놓으려던 그때,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강유리의 기분은 또 언짢아지고 만다.빌라로 향하는 길 앞에서 얼마나 오래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득달같이 달려온 왕소영이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너, 아무리 독하기로서니 네 아버지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정말 우리 가족 다 길바닥에 나앉아야 속
“아니, 그게 아니라...”그리고 뭔가 말실수를 한 걸 인지한 왕소영이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그래서 뭐? 내가 알아봤는데 그게 뭐?”그 말에 급격히 이성을 잃은 강유리가 한 발 앞으로 다가서고... 행여나 또 그녀가 먼저 왕소영을 때리면 어쩌나 싶어 경비원들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강 대표님, 진정 좀 하십시오.”“몰라. 어쨌든 너 때문이야! 넌 그냥 우리가 잘 먹고 사는 게 꼴보기 싫었던 거야!”왕소영의 억지에 강유리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경고했다.“그래. 꼴보기 싫어. 할 수 있으면 정말 죽여버리고 싶어. 그리고 아버지가 그동안 해온 짓이 어디 한, 두개여야지. 제발 나한테 걸리지 말라고 해. 난 절대 안 봐줄 테니까.”“...”강유리의 엄포에 얼굴이 창백해진 왕소영은 두 사람을 태운 차량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소영아, 아까 쟤가 하는 말 들어보면 처남... 합의만 제대로 되면 나올 수 있는 거네?”포인트를 정확하게 잡은 왕정한이 물었다.“뭐, 그렇겠지. 아까 그 계집애 말하는 거 못 들었어. 하여간 언젠가는 제 아비 잡아먹을 애라니까.”“그럴 줄 알았어. 처남도 참... 그동안 친 사고가 왜 이렇게 많아.”일단 당분간은 지금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왕강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별일 없으면 됐어. 여기 다 모여서 뭐 하는 짓이야. 소영이 넌 신영이한테 전화 좀 넣어라. 애 괜히 걱정할라.”고성그룹 딸이 된 지금도 그들의 안위부터 생각하는 외손녀가 왕강태는 꽤 애틋했다.한편, 백미러로 왕소영 일행을 지켜보던 육시준이 방금 전 신한문과 했던 대화를 떠올리고 물었다.“너 설마... 제보자가 성신영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성홍주가 결국 무죄로 풀려날 거라고 말한 건 성신영이 제 손으로 증거를 내놓길 바라는 거고?”‘최대한 불구속 수사로 진행하고 대외적으론 증거 불충분으로 보이게 하라는 말이 어딘가 걸리긴 했었지...’아까부터 궁금했었지만 삐친 척을 하느라 묻지도 못한 육시준
성신영은 강유리가 분명 그녀의 계획을 눈치챈 것이라 확신했다.어렸을 때부터 두 사람은 모든 것에서 경쟁하는 앙숙 같은 관계였던 데다 3년 전에는 그녀의 음모로 강유리를 거의 3년간 외국으로 추방시키다시피 했었다.‘그러니 내가 밉겠지. 어떻게든 나한테 복수하고 싶겠지. 그렇다고 내가 겁 먹고 물러설 줄 알았어? 성홍주 그 인간이 얼마나 끔찍한 인간인지... 내가 보여줄게.”잠깐 고민하던 성신영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사람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네, 연락처만요.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요.”통화를 마친 성신영은 노트북을 켠 뒤 한참동안 메인 화면만 들여다보았다.‘아니야. 강유리의 일방적인 얘기만 듣고 섣불리 움직일 순 없어. 공식적인 보도를 기다릴 수밖에.’...성홍주 이사의 구속건으로 유강그룹의 여러 프로젝트가 난항을 겪자 강유리는 아예 모든 에너지를 결혼식 준비에 쏟기 시작했다.스타일리스트와 스냅 촬영과 결혼식 당일 착용할 액세서리에 대해 의논하고 있던 그때, 육시준이 2층에서 내려왔다.잔뜩 굳은 표정이 누가 봐도 새신랑의 얼굴은 아니었다.“왜 그래?”“좋은 소식이랑 나쁜 소식이 하나씩 있는데 어느 쪽 먼저 들을래?”“좋은 소식.”강유리가 망설임없이 대답했다.“한문이한테 또 누군가 익명으로 제보를 했대. 성홍주 이사가 살인미수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증거? 무슨 증거?”“그게... 조금 복잡해. 도희 씨 좀 집으로 불러줄래. 도희 씨 확인이 필요해.”‘도희? 여기서 도희가 왜 나와?’의아했지만 강유리는 별말없이 도희에게 전화를 걸었다.통화를 마치고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그때, 왠지 묘한 시선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에 고개를 돌린 강유리가 무릎을 탁 쳤다.“아, 아직 나쁜 소식 안 들었지?”“음... 지금은 이 일부터 먼저 처리하는 게 맞는 거 같아. 조금 있다가 다시 얘기해.”...잠시 후, 도희가 크고 작은 박스들을 잔뜩 끌어안고 발랄하게 현관을 들어섰다.“뭐야. 왜 갑자기 스케줄을 앞당겼어
태블릿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강유리의 주먹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장기간 흡입하면 정말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거 확실해?”“그럼.”도희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식물을 교묘하게 조합해 독약을 만드는 것은 도씨 가문 특유의 복수방식이기도 했다.“도희 씨 말이 사실이라면 할아버님 건강이 악화된 게 이해가 가네요.”육시준 역시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처음엔 그저 피곤함에 시달리다 잠에 빠지는 시간이 많아지고 오장육부에까지 독이 침투해 소리없이 사람을 말라죽이는 약물이라... 무섭네.’“그래서 이 일에 우리 집안까지 연루되어 있다고?”도희가 미간을 찌푸렸다.“네가 말한 것들 입증할 수 있는 실험 데이터 같은 거 없어?”강유리의 질문에 도희가 고개를 끄덕였다.“추출물을 일정 비율로 배합했을 때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독을 만들어낼 수 있긴 해.”“그래. 당신 신 형사님한테 우리 집으로 오라고 전화 좀 해줘.”이 말을 남긴 강유리가 성큼성큼 문을 나섰다.“문 팀장!”육시준의 목소리에 구석에서 존재감을 숨기고 있던 문기준이 빠르게 강유리의 뒤를 따랐다.“30분 뒤, 우리 집으로 와.”신한문에게 문자를 보낸 육시준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한편, 성신영의 집.문기준과 다른 경호원들의 매서운 포스에 왕씨 일가 사람들은 찍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그리고 2층 서재.인기척에 서재 문을 연 성홍주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한참을 비틀거렸다. 겨우 중심을 잡고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성홍주의 얼굴이 분노와 충격으로 일그러졌다.“강유리? 너 미쳤어? 네가 감히...”하지만 강유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발 앞으로 다가가 성홍주의 복에 킥을 날렸다.그리고 꼴사납게 쓰러진 성홍주의 머리를 꾹 짓밟았다.“너, 너 정말 미쳤어? 네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기나 해?”이 상황이 화가 나긴 했지만 솔직히 막무가내로 나오는 강유리의 모습에 성홍주는 솔직히 두려움이 더 앞섰다.그리고 천천히 무릎을 꿇은 강유리가 성홍주를 내
그 와중에 강유리의 말에서 뭔가 희망을 본 건지 성홍주는 다급하게 변명을 이어갔다.“유리야. 아, 아빠도 당한 거야. 우리 사이를 틀어지게 만들려고 누군가 일부러 이런 판을 벌인 거라고. 네가 형사들한테 얘기 좀 해주면 안 될까? 가족들끼리 오해가 있었고 원만하게 해결됐다고. 그렇게만 해주면 아빠가 어떻게든 보상해 줄게. 응?”“...”그의 애원에도 강유리는 그저 차가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그리고 그 한 서린 눈빛은 성홍주의 마지막 희망까지 잘라냈다.“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난 네 아버지야! 넌 내 핏줄이라고!”“핏줄? 당신이 정말 내 아버지인 건 맞아?”공포에 질린 성홍주의 눈을 바라보며 강유리는 말을 이어갔다.“혈연관계 같은 건 둘째 치더라도. 눈앞의 이익 때문에 와이프에 장인어른까지 죽이려 드는 게, 그게 인간이야? 짐승보다 못한 인간한테 자식 같은 게 필요할까?”“너, 너 정말 다 알게 된 거야? 그럴 리가 없어. 분, 분명 감쪽같을 거라고. 흔적 같은 건 찾을 수도 없을... 으악!”성홍주의 배를 다시 걷어찬 그녀가 물었다.“그 사람이 누군데?”“네, 네까짓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죽여! 차차리 날 죽이라고! 내가 죽으면 그 사람이 누군지는 영원히 못 알아낼 텐데 정말 괜찮겠어?”배째라는 듯한 성홍주의 태도에 강유리가 피식 웃었다.“당신은 참... 날 몰라. 내가 정말 못 알아낼 것 같아? 아직도 이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 있다고 믿어? 됐고. 당신은 좀... 맞아야겠다.”곧이어 일방적인 폭행이 이어졌다.짐승같은 목소리로 울부짖던 성홍주는 어차피 애원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한 건지 아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그래! 내가 했어! 강민영도, 강 회장도 다 내가 죽어버리려고 했어! 날 인간 취급도 안 하는 그 사람들 내가 다 죽이고 떵떵거리고 살고 싶었어! 네가 이렇게 미친 애인 줄 알았으면 널 외국으로 내쫓는 게 아니라 차라리 같이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고씨 집안에서 버림받은 더러운 씨인 주제에 감히 먹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