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망설이던 강유리가 물었다.“그게 성신영 말이야... 고정남 딸이 맞긴 한 걸까?”“하, 참나. 꾸물대더니 묻는 게 겨우 그거야?”소안영이 코웃음을 쳤다.“당연히 아니지. 정말 친딸이었으면 아무리 성신영이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이렇게 차갑게 내쳤겠어? 이젠 성홍주도 성신영을 구해 주긴 힘들 것 같고... 그냥 앞으로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 여기저기 눈치 보지 말고.”“그럼 고정남의 연인이었다는 그 여자에 대해서 조사해 본 적 있어?”“내가 그걸 왜 알아봐? 주태규랑 상관도 없는 일...”이때 잠깐 멈칫하던 소안영이 어색하게 말을 바꾸었다.“아, 그러니까 내 말은 딱히 내가 관심없는 일이라고.”평소라면 허점을 드러낸 소안영을 끈질기게 놀려댔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럴 겨를이 없는 강유리가 말을 이어갔다.“솔직히 말하면... 난 그 여자가 우리 엄마랑 상관이 있을 것 같아.”쿵!뭔가 떨어트린 듯한 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소안영의 목소리가 귀통을 때렸다.“뭐? 왜 그런 생각을 해? 증거라도 찾았어? 뭔데.”“증거 같은 거 없어. 그냥 감이랄까?”“이런...”입 주변까지 나온 욕을 억지로 삼킨 소안영이 질문을 이어갔다.“그럼 왜 갑자기 그런 감이 들었는데? 계기가 있을 거 아니야.”이에 강유리는 고정남과 함께 식사를 했을 때의 모습과 얼마 전 릴리에게 조사를 부탁했지만 결국 알아내는 것에 실패했던 일까지 모든 걸 털어놓았다.“이렇게까지 정보가 막혀있다는 건 이모가 이 일을 일부러 숨겼다고밖에 볼 수 없어.”“뭐 좀 이상하긴 하네. 그런데 날 너무 과대평가 한 거 아니야? 네 동생도 못 알아낸 걸 내가 알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차라리 남편한테 부탁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일 것 같은데.”“이런 뒷조사는 네가 더 잘할 것 같아서.”‘뭐야, 칭찬인 것 같은데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그리고 당분간은 남편 얼굴 보고 싶지 않아.”“왜? 어제 늦게 들어갔다고 싸웠어?”순수한 소안영의 질문에 강유리의 볼이 다시 화끈 달아
‘아니지. 내가 왜 가출을 해? 난 이미 이 호화로운 저택에 익숙해졌다고.’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강유리는 어느새 스르륵 잠이 들고 말았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누군가 몸을 꽁꽁 감고 있던 이불이 사라지고 그녀는 자연스레 탄탄한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었다.익숙한 시원한 바디워시 향이 강유리의 마음을 더 편학 만들어주었다.그의 허리를 끌어안은 강유리가 나지막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육시준...”“응.”가볍게 대답한 육시준이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나 때문에 깬 거야?”다시 잠이 든 건가 싶을 정도로 오랜 침묵 끝에 강유리가 입을 열었다.“다음에 일 때문에 바쁘면 나 서재로 부르지 마.”아직도 방금 전의 해프닝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강유리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미안, 내가 무심했네.”솔직히 처음엔 회의 중이라 말하려고 했으나 야심차게 꾸민 그녀의 모습에 홀려 하려던 말조차 잊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너무 쪽팔리잖아. 앞으로 사람들 얼굴 어떻게 봐.”육시준이 가벼운 목소리로 그녀를 위로했다.“아직 카메라는 켜기 전이라 네 얼굴은 못 봤을 거야.”“그래도! 내 목소리는 들었을 거 아니야.”“해외 바이어들이라 한국어는 못 알아들을 걸?”“...”고개를 번쩍 든 강유리의 두 눈이 반짝였다.“정말? 못 알아듣는 거 맞아?”“그럼.”‘뭐 임 비서는 들었겠지만.’마지막 한 마디는 생략한 육시준이었지만 유능한 비서인 임강준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이 사실을 유출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딱히 걱정이 되진 않았다.육시준의 단호한 말투에 강유리는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진작 말하지! 내내 우울했었잖아.”“말하려고 했는데 네가 도망쳐 버렸잖아.”“그럼 따라서 나오면 되지!”“아예 방문까지 걸어잠궜던데?”“...”‘큼, 그건 내가 잘못하긴 했지.’강유리의 작은 주먹이 육시준의 단단한 가슴을 콩콩 두드렸다.“그럼 내일 밤엔 당신이 내 서재로 와. 같이 일하자.”“그래.”육시준이 그녀의
한편, 자살 시동까지 벌였음에도 고씨 일가 사람들 중 그녀의 병문안을 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그나마 그녀를 측은하게 여기는 고우신마저 경찰서에 들어간 상태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그리고 그런 그녀를 찾아온 건 성홍주였다.그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온 왕소영이 성신영을 와락 끌어안았다.“불쌍한 내 딸... 이게 다 엄마 탓이야. 애초에 네 아빠 그 황당한 제안에 응하는 게 아니었어. 널 그 불구덩이에 집어넣는 게 아니었는데...”익숙한 부모님의 얼굴을 보니 서러움이 밀려온 성신영이 울먹이며 말했다.“괜찮아요, 엄마. 저 괜찮잖아요.”“괜찮긴 뭐가 괜찮아! 나쁜 자식들. 너 이용해 먹을 때는 언제고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널 버릴 수 있어. 엄마가 말했잖아. 그 사람들한테서 뭐가 얻을 게 있다고 기어코 거길 들어가!”그리고 고개를 돌린 왕소영의 표정이 표독스럽게 변했다.“여보. 우리 그냥 신영이 다시 집으로 데려가자.”“엄마, 제 걱정 많이 해주시는 건 알겠는데... 전 고씨 집안 사람이에요. 발표회도 엎어지고 상황이 좋게 흘러가는 건 아니지만 제 몸에 흐르는 건 분명 고씨 집안 피라고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두 분을 따라가요.”하지만 말과 달리 성신영의 속셈은 다른 곳에 있었다.뭐 하나 제대로 해본 거 없이 이렇게 쫓겨나자니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누가 뭐래도 난 고씨 집안 사람이야. 이 신분만 지키고 있으면 언젠가 다시 판을 뒤엎을 기회를 찾을 수 있어... 이게 다 강유리... 강유리 그 계집애 때문이야. 지금이야 나한테 실망해서 그런다지만 물보다 진한 게 피라고 했어. 결국 날 다시 원하게 될 테고 고성그룹의 힘이라면 지금 이 상황쯤은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어. 강유리, 두고 봐. 절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성신영의 말에 흠칫하던 왕소영이 말없이 성홍주를 돌아보았다.아직 신분에 대한 진실도, 이 사태의 심각성도 전혀 모르고 있는 딸이 안쓰럽게 느껴졌다.“신영아.”이때 가만히 있던 성홍주가 입을 열었다
왠지 불안한 예감이 엄습하고...역시나 성홍주는 말을 이어갔다.“우리 집안 사정에 고성그룹 사람들에게 줄을 댈 수 있을 거라 생각해?”“그럼요.”성신영이 애써 미소를 지었다.“전 고정남 대표 딸이고 두 분은 절 지금까지 키워주신 분들이잖아요.”“그게 아니라... 강유리가 너무 타이트하게 압박하는 바람에... 널 이용했던 거야.”“그러게 내가 그러지 말자고 했잖아. 아무리 급해도 자식을 이용하진 말자고! 그런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선... 나도 미쳤었지... 왜 당신 제안을 받아들여선. 지금 애 꼴을 봐. 어떻게 할 거야!”왕소영의 질타에 성홍주는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후우...”이때 성신영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니에요. 괜찮아요. 두 분께서 절 지금까지 키워주신 은혜가 있는데 마지막으로 두 분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전 기꺼이 이용당할 수 있어요.”정말 이해를 못한 건지 아니면 사실을 부정하는 건지 여전히 맥락을 짚지 못한 성신영을 바라보던 성홍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러니까 내 말은... 넌 우리 딸이야. 고정철 대표가 널 가짜 딸로 위장하자고 제안했던 거야...”“그만하세요!”성신영이 목소리를 높였다.애써 침착한 척하던 눈동자 역시 빨갛게 달아올랐다.“가짜 딸로 위장한다는 게 말이 돼요? 아버지가 바보도 아니고 그런 거짓말에 속을 리가 없잖아요! 그리고 친자검사도 했는데...”“신영아, 일단 진정 좀 해.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거 알아. 하지만 너에 대한 자료와 친자검사까지 전부 고정철 대표가 조작한 거야. 그리고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고정남 대표 역시... 애초에 널 딸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아.”‘그저 신영이를 욕받이로 사용한 것뿐이겠지. 그리고 이제 이용가치를 다했으니 매정하게 버린 것뿐이고.’“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그녀를 바라보던 고정남의 표정을 생각하며 성신영은 고개를 저었다.“우신 오빠가... 우신 오빠가 분명 그랬단 말이에요. 내가 동생이 맞다고. 날 처음 보는 순간
차가운 표정의 성홍주가 왕소영의 손목을 낚아챘다.“그만 좀 해. 언제까지 네 마음대로 굴 거야.”순간 당황하던 왕소영은 곧 성홍주를 향해 비웃음을 날려준 뒤 그의 손을 뿌리쳤다.“하, 아직도 허세야? 고정철도 연락두절에 이제 유강그룹은 끝이야. 지금까지 당신이 장부를 조작해 왔던 거 내가 모를 줄 알아?”“닥쳐!”성홍주가 호통을 쳤다.“그래서 뭐? 그깟 푼돈으로 나한테 유세라도 부리고 싶어? 당신 전 재산 다 퍼부어도 지금 유강그룹의 문제를 해결한 순 없어.”LK그룹이 강유리의 편을 들기로 한 이상 유강그룹의 상황은 풍전등화 그 자체.‘이대로 과거의 찌질했던 모습으로 돌아갈 순 없어. 내가 지금의 입지를 어떻게 다졌는데. 방법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해.’생각이 여기까지 닿은 성홍주는 여전히 충격을 먹은 표정의 왕소영을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린 왕소영이 중얼거렸다.“찌질한 자식. 결국 제발 도와달라고 빌러 올 거면서...”금요일 오후.강유리는 평소처럼 병원으로 향했다.송이혁의 말에 따르면 1주일 정도만 더 입원한 뒤에는 퇴원을 해도 될만큼 강학도는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고 했다.‘퇴원하면 바로 우리 집으로 모셔야겠어. 할아버지가 아버지랑 다시 함께 살게 둘 순 없으니까...’이런 생각을 하면서 병실 앞에 도착한 강유리는 그 앞을 지키고 있는 송이혁을 발견하곤 고개를 갸웃했다.“왜 이제야 왔어요.”“왜요? 무슨 일 생겼어요?”자연스레 병실 안을 들여다 본 강유리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아버지?’“누가 들여보낸 거예요?”꽤 화목해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강유리는 저도 모르게 까칠한 목소리로 물었다.“할아버님께서요.”송이혁이 어깨를 으쓱했다.시간을 확인하던 송이혁이 말을 이어갔다.“시준이한테도 연락했으니까 아마 곧 도착할 거예요. 그럼 집안일은 당사자들끼리 해결하시고.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지금가지 기다려주서 고마워요.”강유리가
성홍주의 의자를 억지로 밀어내는 소리가 삐걱대며 울려 퍼졌다.조그마한 체구에서 어떻게 이런 힘이 나오는 건지 강유리의 힘에 밀린 성홍주는 하마터면 의자에서 떨어질 뻔하다 겨우 중심을 잡았다.“강유리!”불쾌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강유리가 어깨를 으쓱했다.“보다시피 병실이 많이 좁아요. 아버지까지 계시기엔 너무 답답하니 이만 나가주세요.”“...”말로는 강유리를 당해낼 자신이 없으니 성홍주는 강학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하지만 이번에 강학도는 강유리를 꾸짓기는커녕 호탕하게 웃어보였다.“넌 참... 어렸을 때 그대로구나. 조심해. 그러다 네가 다칠라.”“할아버지는 제가 애인 줄 아세요?”강유리가 싱긋 웃어보였다.한편, 사이좋은 두 사람을 바라보는 성홍주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졌다.‘이 익숙한 기분... 참 오랜만이군. 전에도 이런 식이었지. 강민영도, 강유리도 두 사람이 뭘 하겠다고 하면 뭐든 응원해 주면서 난... 수십 년이 지나도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 기분... 저 영감 눈치 보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해.’“유리야.”겨우 마음을 다잡은 성홍주가 다시 인자한 목소리로 강유리를 타이르기 시작했다.“아빠한테 섭섭한 거 많다는 거 알아. 하지만 그건... 너에 대한 시험 같은 거나 마찬가지였어. 이게 다 우리 유강그룹을 위해서였다고.”그제야 고개를 돌린 강유리는 또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나 들어나 보자라는 심정으로 성홍주를 훑어보기 시작했다.“네가 이렇게 훌륭하게 커서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 아까 할아버지한테도 말씀드렸지만 오늘 부로 유강그룹의 모든 업무를 네게 맡길 생각이다.”쿠궁!생각지 못한 전개에 당황한 강유리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강학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양도 계약서는 제가 작성해서 월요일까지 보내주실게요.”원하는 유강그룹을 쥐어주면 조금이라도 기뻐할 줄 알았것만 마치 빌려주었던 물건을 돌려받은 듯 너무나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는 그녀의 모습이 성홍주의 눈에는 너무 괘씸하게 보였다.“다음 주
성홍주가 병실을 나가자 성유리는 설득을 이어갔다.“왜 굳이 지분을 양도하려고 하시는 건데요. 저 혼자서도 유강그룹을 이끌어갈 수 있어요. 고마움의 의미요? 아버지가 그 동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다 아시잖아요. 도대체 뭐가 고마운데요. 비록 지금은 증거가 없어서 가만히 있지만 언젠가 아버지가 했떤 일들 다 까밝힐 거예요.”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있는 강학도는 여전히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왜 그 정도 지분에 그렇게 집착을 해? 어찌 어찌 해도 네 아버지야. 그냥 노후자금으로 줬다고 생각해.”“할아버지, 애초에 그 인간이 제 친아버지긴 해요?”강유리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살짝 흠칫하던 강학도가 헛웃음을 터트렸다.“그래. 아버지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한 사람이라는 거 나도 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버지야.”“...”더 이상 할아버지를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달은 강유리가 결국 잔뜩 주눅이 들어서 병실을 나서고... 병실 문이 닫히는 순간, 강학도의 자애로운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다.‘유리 말에도 일리가 있어. 한번 부탁을 들어주다 보면 결국 끌려다니게 될지도 몰라.”한편, 병실을 나선 강유리는 육시준이 복도 저끝에서 다가오는 걸 보고 의아한 듯 고개를 돌렸다.“왜 그쪽에서 와?”‘저긴 송이혁 씨 진료실이 있는 곳이잖아?’“아, 이혁이가 잠깐 얼굴 좀 보자길래. 별일 아니었어.”“아, 그래?”짧게 대답한 강유리가 육시준을 향해 손을 뻗었다.“나 기분 안 좋아. 와서 나 좀 안아줘.”이에 입꼬리를 씨익 올린 육시준이 그녀를 품에 안았다.“왜 그래? 할아버지랑 싸웠어?”그의 품에서 얼굴을 비비적거리던 강유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성홍주가 병실에 왔더라고.”“그 사람이 왜.”“다다음주 월요일 이사회에서 유강그룹을 나에게 물려주겠다고 발표하겠대. 지분도 나한테 양도하고.”“그럼 좋은 일 아니야?”“...”집 가는 내내 시무룩해 있던 강유리가 순간 눈을 반짝였다.“저기... vip 병실 cctv 영상 좀 확인할 수 있을까?”“환
병실에서 일어난 일을 모두 육시준한테 알려주자, 육시준은 몇 분간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모두 이유가 있으셨겠지. 항상 할아버지 말씀 잘 들었잖아. 지금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강유리는 육시준을 의아한 눈빛으로 훑어보았다. 육시준의 그녀의 눈빛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물었다.“왜?”“지금 받아들여라고 말리는 거야?”육시준은 멈칫했다.“아니, 그저 궁금해서 그러는 거야. 네 성격에 이런 걸 신경 쓸 것 같지는 않아서 그래.”강유리는 말없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할아버지가 그녀의 태도를 이해 못 하는 건 짐작이 갔지만 육시준은 그러면 안 됐다. 할아버지가 드시던 약에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내가 성씨 가문에 불만이 많다는 것도 알고있는 육시준이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건, 항상 아무 말 없이 그녀의 결정을 존중해 왔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뭔가 암시하는 듯한 의견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둘 다 말없이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욕조 안으로 들어가니 온몸의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강유리는 팩 하나 얼굴에 부치고 나서 교외에 온천으로 유명한 호텔이 생각났다. 온천으로 유명해진 그 호텔에 겨울마다 찾아가는 유람객들이 끊이질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이랑 같이 가기로 약속했는데 유강그룹을 책임지고 나면 더 바빠질 것 같으니, 지금이 제일 좋은 기회다. 그녀는 수건으로 손의 물기를 닦아내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마침 소안영의 전화도 걸려들어 왔다.“여보세요?”“내가 사진 보낼 테니 한번 봐봐.”소안영은 흥분을 애써 가라앉히는 듯한 말투였다.강유리는 막연하게 채팅창을 열어보았는데 정교하게 디자인된 귀걸이의 사진이었다. “예쁘네. 이게 왜?”“너 전에 육시준이랑 고정남이 비밀리에 뭘 계획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잖아.”“응. 요즘엔 신경 안 쓰고 있는데.”고성그룹이 성신영을 버린 후에 육시준도 이 일에 관심을 끈 상태였다.“너 고정남이 같이 밥 먹자고 했다며? 게다가 강 씨네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묻고 알고 싶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