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홍주의 의자를 억지로 밀어내는 소리가 삐걱대며 울려 퍼졌다.조그마한 체구에서 어떻게 이런 힘이 나오는 건지 강유리의 힘에 밀린 성홍주는 하마터면 의자에서 떨어질 뻔하다 겨우 중심을 잡았다.“강유리!”불쾌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강유리가 어깨를 으쓱했다.“보다시피 병실이 많이 좁아요. 아버지까지 계시기엔 너무 답답하니 이만 나가주세요.”“...”말로는 강유리를 당해낼 자신이 없으니 성홍주는 강학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하지만 이번에 강학도는 강유리를 꾸짓기는커녕 호탕하게 웃어보였다.“넌 참... 어렸을 때 그대로구나. 조심해. 그러다 네가 다칠라.”“할아버지는 제가 애인 줄 아세요?”강유리가 싱긋 웃어보였다.한편, 사이좋은 두 사람을 바라보는 성홍주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졌다.‘이 익숙한 기분... 참 오랜만이군. 전에도 이런 식이었지. 강민영도, 강유리도 두 사람이 뭘 하겠다고 하면 뭐든 응원해 주면서 난... 수십 년이 지나도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 기분... 저 영감 눈치 보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해.’“유리야.”겨우 마음을 다잡은 성홍주가 다시 인자한 목소리로 강유리를 타이르기 시작했다.“아빠한테 섭섭한 거 많다는 거 알아. 하지만 그건... 너에 대한 시험 같은 거나 마찬가지였어. 이게 다 우리 유강그룹을 위해서였다고.”그제야 고개를 돌린 강유리는 또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나 들어나 보자라는 심정으로 성홍주를 훑어보기 시작했다.“네가 이렇게 훌륭하게 커서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 아까 할아버지한테도 말씀드렸지만 오늘 부로 유강그룹의 모든 업무를 네게 맡길 생각이다.”쿠궁!생각지 못한 전개에 당황한 강유리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강학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양도 계약서는 제가 작성해서 월요일까지 보내주실게요.”원하는 유강그룹을 쥐어주면 조금이라도 기뻐할 줄 알았것만 마치 빌려주었던 물건을 돌려받은 듯 너무나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는 그녀의 모습이 성홍주의 눈에는 너무 괘씸하게 보였다.“다음 주
성홍주가 병실을 나가자 성유리는 설득을 이어갔다.“왜 굳이 지분을 양도하려고 하시는 건데요. 저 혼자서도 유강그룹을 이끌어갈 수 있어요. 고마움의 의미요? 아버지가 그 동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다 아시잖아요. 도대체 뭐가 고마운데요. 비록 지금은 증거가 없어서 가만히 있지만 언젠가 아버지가 했떤 일들 다 까밝힐 거예요.”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있는 강학도는 여전히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왜 그 정도 지분에 그렇게 집착을 해? 어찌 어찌 해도 네 아버지야. 그냥 노후자금으로 줬다고 생각해.”“할아버지, 애초에 그 인간이 제 친아버지긴 해요?”강유리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살짝 흠칫하던 강학도가 헛웃음을 터트렸다.“그래. 아버지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한 사람이라는 거 나도 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버지야.”“...”더 이상 할아버지를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달은 강유리가 결국 잔뜩 주눅이 들어서 병실을 나서고... 병실 문이 닫히는 순간, 강학도의 자애로운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다.‘유리 말에도 일리가 있어. 한번 부탁을 들어주다 보면 결국 끌려다니게 될지도 몰라.”한편, 병실을 나선 강유리는 육시준이 복도 저끝에서 다가오는 걸 보고 의아한 듯 고개를 돌렸다.“왜 그쪽에서 와?”‘저긴 송이혁 씨 진료실이 있는 곳이잖아?’“아, 이혁이가 잠깐 얼굴 좀 보자길래. 별일 아니었어.”“아, 그래?”짧게 대답한 강유리가 육시준을 향해 손을 뻗었다.“나 기분 안 좋아. 와서 나 좀 안아줘.”이에 입꼬리를 씨익 올린 육시준이 그녀를 품에 안았다.“왜 그래? 할아버지랑 싸웠어?”그의 품에서 얼굴을 비비적거리던 강유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성홍주가 병실에 왔더라고.”“그 사람이 왜.”“다다음주 월요일 이사회에서 유강그룹을 나에게 물려주겠다고 발표하겠대. 지분도 나한테 양도하고.”“그럼 좋은 일 아니야?”“...”집 가는 내내 시무룩해 있던 강유리가 순간 눈을 반짝였다.“저기... vip 병실 cctv 영상 좀 확인할 수 있을까?”“환
병실에서 일어난 일을 모두 육시준한테 알려주자, 육시준은 몇 분간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모두 이유가 있으셨겠지. 항상 할아버지 말씀 잘 들었잖아. 지금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강유리는 육시준을 의아한 눈빛으로 훑어보았다. 육시준의 그녀의 눈빛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물었다.“왜?”“지금 받아들여라고 말리는 거야?”육시준은 멈칫했다.“아니, 그저 궁금해서 그러는 거야. 네 성격에 이런 걸 신경 쓸 것 같지는 않아서 그래.”강유리는 말없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할아버지가 그녀의 태도를 이해 못 하는 건 짐작이 갔지만 육시준은 그러면 안 됐다. 할아버지가 드시던 약에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내가 성씨 가문에 불만이 많다는 것도 알고있는 육시준이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건, 항상 아무 말 없이 그녀의 결정을 존중해 왔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뭔가 암시하는 듯한 의견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둘 다 말없이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욕조 안으로 들어가니 온몸의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강유리는 팩 하나 얼굴에 부치고 나서 교외에 온천으로 유명한 호텔이 생각났다. 온천으로 유명해진 그 호텔에 겨울마다 찾아가는 유람객들이 끊이질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이랑 같이 가기로 약속했는데 유강그룹을 책임지고 나면 더 바빠질 것 같으니, 지금이 제일 좋은 기회다. 그녀는 수건으로 손의 물기를 닦아내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마침 소안영의 전화도 걸려들어 왔다.“여보세요?”“내가 사진 보낼 테니 한번 봐봐.”소안영은 흥분을 애써 가라앉히는 듯한 말투였다.강유리는 막연하게 채팅창을 열어보았는데 정교하게 디자인된 귀걸이의 사진이었다. “예쁘네. 이게 왜?”“너 전에 육시준이랑 고정남이 비밀리에 뭘 계획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잖아.”“응. 요즘엔 신경 안 쓰고 있는데.”고성그룹이 성신영을 버린 후에 육시준도 이 일에 관심을 끈 상태였다.“너 고정남이 같이 밥 먹자고 했다며? 게다가 강 씨네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묻고 알고 싶어했다
당연한 거 아니야?성신영의 신분에 문제가 있다면 그 전달된 자료도 빈틈이 없어야 했는데, 누군가가 일부러 한 것이 분명하다. 추측이 틀리지 않는다면 고정철이 한 것일 것이다. 고 씨네 일로 강 씨네 까지 휘말리다니. 이 정도는 새로운 정보도 아니었다.그녀는 흥미가 떨어지는 느낌에 팩을 뜯어버리고 뭐라고 말하려고 하는 찰나에 소안영이 말했다. “너 오늘 진짜 우울하구나!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거야?”“…”“이 귀걸이 뭔가 익숙하지 않아?”“???”“이거 네 것이잖아! 정확하게 말하면 민영 아주머니가 너한테 물려준 거!”강유리는 바로 앉아 방금 채팅창의 사진을 다시 열어 자세히 보았다. 소안영도 믿을 수가 없다는 듯 계속 말을 해왔다.“진짜 까먹은 거야? 나, 네 집 처음으로 놀러 갔을 때 이 귀걸이 예쁘다고 너한테 달라고도 했잖아!”“생각났어. 너 안 가져갔잖아.소안영은 액세서리 모으는 걸 좋아해서 그녀가 좋아하는 걸 보니까 선물로 주려고 했는데 엄마가 남긴 물건이란 걸 안 후에 그녀의 호의를 거절했었다.소안영이 이 귀걸이를 기억하고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네가 이렇게 신경 안 쓰는 줄 알았더라면 그때 가지는 거였는데.”“엄마가 준 액세서리가 많아서 너한테 준다고 한 거였는데.”게다가 강유리가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그래!”소안영은 비꼬는 듯 말했다.“그래 돈 많아서 좋겠다…”그녀가 대범한 척해서 아끼는 물건도 스스럼없이 주는 건 줄 알았었다. 제일 좋은 친구로서 이런 중요한 의미가 담긴 물건은 받기 이상하다고 생각한 소안영이다. 그녀를 거절하고 나서 소안영은 조금 아쉬웠지만 정확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유혹 앞에서 우정을 선택했다니!하지만 지금 보면 그럴 필요가 하나도 없었다.“이 귀걸이 성신영 스타일도 아닌데, 그날에 끼고 참석한 거지. 뭔가 일부러 그런 것 같지 않아?”강유리는 진지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고우신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네. 고우신의 눈에 띄어야 하는데 마침, 이 귀걸이도 특별한 의미가
강유리는 한참 말이 없더니 슬쩍 웃고는 다시 욕조에 기댔다.“나 뭔가 알 것 같아.”육시준이 고정남을 그렇게 싫어하는데 뭔가 같이 계획하고 있다고 해도 분명 그 일이 신경 쓰여서 그런거 일것 이다. 그는 고정남이 하는 일을 지지하고 고 씨네 발표회가 순조롭게 흘러가길 원한다. 분명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일인데. 이러면 가능성은 딱 한 가지 남았다. 이일이 그녀랑 연관이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도 성신영이 메꾸고 있는 그 자리가 사람들한테 공격받길 원하지 않는다.문기준은 그녀의 경호원이고 고정남을 지켜보고 그녀를 위해 모든 일을 하고 있지만 육시준은 나한테 모든 걸 알리지 말라고 그한테 부탁한 모양이다. 소안영처럼 그녀가 자신의 “혼외 딸” 신분을 받아들일 수 없을까 봐 근심한 것 같았다.심지어 전에 고정남이 찾고 있던 딸이 혼외 딸이 아니라고 강조도 한 적도 있었다.모든 퍼즐이 순식간에 맞춰지는 느낌이다. 소안영은 이해가 안 되는듯했다.“뭘 알았다는 거야?”“네 말이 맞아. 그럴 리가 없어.”“그니까! 아주머니를 믿으셔야지. 유부남을 좋아하는 그런 일을 할 분이 아니잖아!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고정남이 잘생긴 편도 아니고!”“객관적으로 봤을 때 괜찮게 생기셨지.”강유리는 이성적으로 그녀를 지적해 줬다. 소안영은 콧방귀를 꼈다.“얼굴에서 한 사람의 심성이 보인댔는데 딱 봐도 젊을 때 이리저리 여자만 꼬시고 다닌 것 같은 사람인데. 그리고! 지금 결혼도 했는데 옛 애인을 잊지 못하고 있는 건 나쁜 남자잖아!”소안영의 나쁜 남자 평가에 인정하려던 참에 그녀는 말을 바꾸었다.“안돼, 생각하면 할수록 짜증 난단 말이야! 나쁜 남자는 변하지 않는단 말이야!”“???”“안 되겠어. 온천 나 혼자 갈 거야.”“…”전에는 둘이 오려고 한거 였나?갑자기 어떤 분의 온천 체험 기회가 취소된 느낌이다. 불쌍하군.소안영과의 통화로 강유리의 궁금증이 해결된 느낌이다. 샤워를 끝내고 나서 강유리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말리고
눈이 마주쳤다.덤덤한 강유리와는 비교되게 육시준의 눈가는 한순간의 당황함이 스쳐 지나갔다.그러고는 웃더니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유리가 이렇게 똑똑한데 내가 너한테 털어놓지 않은 일은 다 좋은 일이 아니라서 그런 거라는 걸 알잖아? 좋은 일이 아니면 왜 알려고 하는데?”강유리는 그의 손을 톡톡 쳤다.“뭐, 도리가 있는 말이지만, 내가 꼭 알고 싶다면?”“…”육시준이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려고 하던 순간, 강유리는 한숨을 쉬고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품속에 안겼다.“자기 나한테 너무 잘해주는 거 아니야?”육시준은 그녀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나 그런 나약한 사람 아니야. 생각보다 강하다고. 그러니까 이런 일로 제약받지 마.”육시준도 그렇고, 할아버지도 그렇고.그녀가 상처받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 한 일이라는 걸 알고있다.아무리 생각해도 할아버지가 성홍주한테 타협하고 10퍼센트의 주식을 내어줄 수 있게 하는 건 나에 연관된 일밖에 없다. 그녀와 가까운 사람들이면 모두 그녀가 자존심이 강하고 성신영 모녀가 다른 사람의 감정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혐오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성신영을 싫어하는 이유는 단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더 정확하게 말하면 성신영이란 사람 자체가 별로이다.게다가 고성그룹에 관한 일은 육시준이 이미 그녀한테 말해줬다. 모두 고정남의 잘못이고 그가 애인이랑 딸을 배신한 거라고. 이게 그녀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육시준은 멈칫하더니 의아하듯 그녀를 보았다.“이미 알고 있었어?”강유리는 화가 난 나머지 웃음밖에 안 나왔다.우리 사이에 이 정도 신임이 있지 않나?강유리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걸 말하고 마지막에 결론을 낸 후 그의 가슴팍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물었다.“내가 사기 칠까 무서운 거야? 네 맘속엔 내가 그런 사람밖에 안 되는 거였어?”“자기가 너무 똑똑해서 조심 안 하면 안 돼.”육시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입가에 뽀뽀했다.따뜻한 촉감이 손끝으로부터 온몸으로 퍼져왔다. 강유리는 애써
왜 알고 있냐 물은 게 아니라 알고 있으면서 왜 알려주지 않았냐 묻는것이다. 차 안에 있을 때부터 VIP 병실의 CCTV에 관해 물었는데 모조리 대답해주지 않았었다.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준답시고…그래!나도 결정했다. 온천에 남자 따위는 데리고 가지 않는다고.강지남이 깨어나면서 유강그룹의 대리 회장이 그만두고 그룹 내부의 모든 사무를 강 씨 아가씨가 맡게 된다는 소식이 업계 내에서 퍼졌다.월요일 아침, 주주대회에서.웬일로 분위기가 심각했다. 다들 강유리에 대한 칭찬으로 끝이 없었다.이 모든 원인은 무대 위에 앉아있는 이 노인 때문이다. 몇 년간 투병하고 있어도 강지남은 여전히 그룹 내부에서 위망이 가득했다. 그룹의 관리자들도 그에 대해 경건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마음 졸이고 있는 건 강유리한테 공격을 해오던 사람일 것이다. 강지남이 강유리한테 자리를 물려준 일이 너무 갑자기 일어난 건 사실이니까. 모든 절차는 순조로웠고 반대의견을 내놓는 사람도 없었다.싸인이 끝나고 강유리의 자신만만한 모습을 본 성홍주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 덧붙였다.“그룹 상황이 네가 상상한 것처럼 좋은 건 아니야.”“성 주주님이 그룹 운영을 책임진 몇 년간 그룹 상황이 좋을 것이라고 상상한 적은 없습니다.”강유리는 덤덤하게 얄미운 말을 내뱉었다. 성홍주의 얼굴색은 더 안 좋게 변했다.그는 인정하고 있었다. 자기가 맡은 몇 년간은 확실히 강지남과 강민영이 맡고 있을 때보다 못하다는걸. 하지만 항상 흑자 상태라 주얼리 업계에서도 명성이 자자하다. 그렇지만 이번엔…“주얼리는 유강그룹의 주요 업무입니다. 하지만 이번 시합은 다른 사람을 위해 홍보한 셈이네요.”성홍주는 정색했다.“이익 앞에선 순진한 우정이 존재하지 않죠. Seema는 눈이 높기로 유명한데 이번엔 추연화마저도 밟아 버렸으니 우리 유강그룹이랑 협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경고의 말투로 강유리한테 사실을 알려줬다. 이 말이 끝나자 다른 주주들의 안색도 안 좋게 변해버렸다.유강그룹이
성홍주는 그녀의 오만한 태도가 불만스러운 모양이었다.하지만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홀린 듯이 강유리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입가에 귀를 기울였다.“제가 Seema니까요.”성홍주느 눈을 둥그렇게 뜨고 의아함을 들어냈다.“!!!”돌아가는 차 안에서 피곤한 강학도은 눈을 질끈 감고 쉬고 있었다. 하지만 곧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 옆에 앉아있는 강유리를 보고 물었다.“방금 네 아빠랑 뭐라고 했는데? 나 몰래 귓속말도 하고.”강유리는 문자를 보내고 강학도한테 팔짱을 끼고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할아버지고 저한테 알려주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잖아요.”강학도은 그녀의 애교에 즐거운 모양인지 연신 웃어댔다.“아직도 이 일 때문에 뾰로통하고 있는 거야?”“당연하죠! 아니면 제가 기회 한 번 드릴 테니까, 우리 비밀 교환해 볼까요?”“별로네. 난 비밀이 없으니까, 너도 이상한 생각하지 마!”“…”할아버지는 고집도 세셔서 여지를 하나도 남겨주지 않는다. 하지만 육시준이랑은 다른 분이다. 강유리를 예뻐해 주셔서 그녀가 자존심이 강한 것도 알고 있어서 혼외 딸이라는 사실도 몇십 년간 잘 숨기고 계셨다. 지금 이렇게 묻고 있어도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하지만 육시준은 모든 자초지종을 알고 난 후 그녀가 받아들일 수 있나 생각하고 알려준 것이다. 할아버지가 이렇게 신경을 써주는데 강유리도 모르는 척하고 즐거운 강 씨네 아가씨 역할만 잘하면 되는 법이다. “할아버지.”그녀는 가볍게 강학도을 불렀다.“저 다 컸어요. 할아버지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라고요. 그러니까 제 근심하지 마시고 나쁜 사람들의 속임수에 걸려들면 안 돼요.”강학도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진짜 할아버지가 늙은 줄 알아?”“아니에요…”“그런 거지~ 할아버지가 뭐든 알아서 잘 처리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유리는 몇 살이 되든 할아버지가 제일 아끼는 공주님인데! 누구든 유리 건드리면 할아버지는 참지 않을 거야.”“…”강학도의 말에 울컥한 듯한 강유리다. 그녀는 더 이상 뭐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