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색하게 화제를 돌렸다. “출시 절차는 다 끝났고 이번 주에 축하 파티하려고 했었어요. 근데 본사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와 새로 계약하고 다음 주에 환영파티 하겠다고 하는데, 이렇게 일정이 겹치네요……”“우리한테 본사가 어디 있어요. ”강유리가 그의 말을 끊었다. 여한영이 해석했다. “유강엔터는 결국엔 유강그룹 소속이잖아요. 출시와 같은 큰일은 본사가 나서야 해요.”강유리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제가 유강엔터를 맡은 뒤로 우리 유강엔터는 더는 유강그룹 소속이 아니에요. 그러니 축하 파티는 계획대로 준비하고 본사랑 소통할 필요 없어요. ”여한영은 그녀의 말에 깜짝 놀랐다. 사실 그는 출시에 성공해서 엄청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본사에 보고하니 본사의 태도는 냉담했다. 보아하니 그룹에서는 유강엔터의 승승장구를 반가워하지 않는다.그는 마른침을 삼키고 나서야 강유리에게 차분히 보고했다. 만약에 강유리가 화를 낸다면 위로라도 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무덤덤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본사의 공지에 따르면 각 부문 책임자는 모두 환영회에 참석해 그 디자이너에 대한 중시를 보여주려고 했대요. 축하 파티를 계획대로 진행한다면 대표님은 본사에 안 가실 예정인가요?”“……”강유리는 이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여한영에게 유강엔터가 독립적인 존재라는 것을 전해주는 데만 집중하고 자기 스케줄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망설이는 그녀의 모습에 여한영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사실 축하 파티는 괜찮아요. 어차피 이미 출시했으니 파티는 언제라도 괜찮아요. 우선 본사를 우선으로 하고 나중에 다시 하는 거로 해요……”“본사 우선”이라는 말은 강유리의 반항심을 건드렸다.‘본사가 없다는데 농담인 줄 알아. ’“나 그 환영파티 안 가요. 우리 축하 파티는 계획대로 진행하세요. ”그녀는 맑은 목소리로 결정을 내렸다.여한영의 어두워진 눈빛은 순간 다시 밝아졌다. “진짜요? 진짜죠? 그럼 계획대로 준비할테니까 약속 꼭 지키셔야 해요! ”
5분 뒤,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신주리와 육경서가 나란히 사무실 문 앞에 나타났다. “형, 내가 먼저 왔으니까 먼저 들어갈게!”“넌 예의 밥 말아 먹었어? 내가 너보다 먼저 입사했으니 선배 아니겠어? 감히 선배한테 무슨 버릇이야? 왜 새치기 해? 매장당하고 싶어?”“아, 네. 그럼 네 친구한테 나 매장하라고 해! 해봐!”“당장 갈 거야! 비켜!”“내가 왜 비켜? 내가 먼저 왔으니 먼저 들어갈 거야”“내가 여기에 있는 한, 나보다 먼저 형수님의 사무실에 들어갈 수 있는 악당은 없어!”“……”문밖에서 들려오는 엉성한 대화에 강유리는 머리가 아팠다. 어쩐지 여한영도 손발을 다 들었다.“왜 이렇게 유치한데? 한 사람씩 들어오는 게 그렇게 힘든가?”그녀의 목소리에 두 사람의 논쟁이 끝났다.신주리는 당당하게 말했다. “네가 몰라서 그래! 이 자식이 유치하게 뭐든지 다 나와 비교하려고 하잖아! 한 번만 양보해 주면 내일은 내 머리 위에 올라탈 수도 있다고!”육경서는 화가 나서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유치해? 누가 먼저 유치하게 굴었는데? 내가 문 앞까지 왔는데 네가 잡아당겼잖아!”“그러니까 왜 그렇게 빨리 걸어? 네가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 내가 어떻게 알고?”“대표님이 오라는데 내가 무슨 악독한 마음을 품어?”“너 이상한 꿍꿍이가 없었다면 왜 날 막아서?”“내가 먼저 왔는데 왜 네가 먼저 들어가!”“……”그래, 또 시작이다. 강유리는 어이가 없어 말리기도 귀찮았다.그녀는 앞으로 몇 걸음 가서 둘이 동시에 들어올 수 있게끔 사무실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육경서와 신주리는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서로를 향해 동시에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반대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동시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발걸음을 옮겨 소파로 향해 걸어갔다. 강유리는 문을 닫고 따라 들어왔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커피를 내려주었다.신주리는 얼굴을 찌푸리고 불만스럽게 말했다. “왜 커피 줘? 나 얘랑 같
“여한영 본부장님이 준 대본은 다 봤겠지?”“봤어. 근데 나 이 시끄러운 재벌 2세랑 같이 못해. 상의할 것도 없어. ”신주리는 아주 명쾌하게 강유리의 제안을 거절했다. 사실 육경서도 같은 생각이다.“같은 생각이에요. 저도 이 여자와는 일 못해요. ”강유리는 먼저 육경서에게 물어봤다. “이유는요?”육경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연기도 개떡같이 하면서 자꾸 저한테 뭐라고 하잖아요. 도 지석이 형 아니었으면 진작에 때려치웠을 거예요!”“너만 억울해? 난 안 힘들어? 네 그 자잘한 습관들 내가 얼마나 많이 참았었는데!”“좋아, 그럼 그만해!”“……”사무실은 침묵에 잠겼다. 강유리는 팔짱을 낀 채 맞은편에 앉은 두 원수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잔을 들어 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더니 다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진짜 같이하기 싫어?”“싫어. ”“싫어요!”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강유리는 머리를 끄덕이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스토리는 봤어? 추천할 만한 사람은 있어?”육경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대표님 지금 우희나 밀고 계시죠? 저 우희나랑 할게요. ”강유리가 입을 열기도 전에 신주리가 머리를 천천히 돌리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너 지금 사람 가리는 거야? 우희나는 괜찮고 난 안 돼?”육경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문제 있어?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신주리 “……”그녀는 한참 동안 그를 노려보더니 고개 돌려 강유리를 향해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다. “나도 이 대본 완전 맘에 들어. 그러니까 그냥 내가 할게! 파트너만 바꿔주면 돼. 봉한 씨로 하면 될 것 같아!”“야, 그건 너무한 거 아니야? 봉한 씨는 코미디언이잖아. 이건 로맨스라고!”육경서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신주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코미디언이 뭐? 코미디언은 로맨스 모른다는 법 있어? 아무튼 너랑 안 하면 누구든지 다 돼!”“너 나한테 편견 있어?”“그러는 넌?
그는 몇 초 동안 말문이 막혀 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강유리는 슬쩍 그의 표정을 살펴보더니 아쉬운 듯 보충했다.“제일 좋은 선택은 당연히 두 사람이 함께하는 거죠. 그리고 팬들도 두 사람이 함께 하길 기대하고 있어요! 근데 싫다는 사람들을 제가 강요할 수는 없잖아요!”육경서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렇게 소름 끼치게 싫은 건 아니긴 한데요…”“근데 주리가 싫다고 하잖아요!”“왜요?”“그러게요, 별로 친하지도 않은 봉한 씨와 하더라도 도련님과는 죽어라 하기 싫다는데, 도대체 두 사람 무슨 원수라도 졌어요?”“……”육경서는 입을 오므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유리는 계속 말했다. “봉한 씨는 주리때문에 우리 회사와 계약했어요. 제일 큰 소원이 주리와 한 작품에서 만나는 거라네요! 전에 산에서 촬영할 때도 봉한 씨가 기어코 촬영장까지 찾아와서 주리를 챙겼어요……”“안돼!”육경서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문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다. 강유리는 그를 불러세웠다. “잠깐만요, 할 얘기 아직 더 있단 말이에요!”육경서는 왠지 초조해 보였다. “대본 얘기에요? 다시 보니 대본이 아주 맘에 들어요, 그러니까 저도 쟁취할 거예요!”강유리는 고민 끝에 말했다.“그래요. 그러면 주리에게 양보하라고 할게요. 도련님이 우희나와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그게 아니라…… 에잇, 그냥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잘 해결하고 직접 여한영 본부장님에게 말할게요!”육경서는 머뭇거리더니 그냥 대화를 피해버렸다.강유리는 그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 더는 캐묻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됐어요. 더 물어볼 게 있으니 일단 앉아서 얘기해요.”육경서“……”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앉았다. 강유리는 가족 모임에 관해 물어보며 혹시라도 육씨 가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빙빙 에둘러 물었다.육경서는 최근에 집에 가지 않아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한참 생각하던 그는 이미 때가 지난 소식을 말했다. “육경원과 성신영의 결혼식?”
강유리는 이해가 안 갔다. “할아버지가 소개팅 주선해 주셨는데 왜 직접 가지 않고 대타를 찾았던 거죠?”육경서는 흥분해서 말했다. “우리 형한테 그런 미안한 짓을 해놓고 무슨 면목으로 우리 형을 만나요!”“어떤 짓이요?”“……”그 의문의 눈동자와 눈을 마주친 육경서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아직 이 얘기는 하지 않은 것 같은데? 괜히 말한 거 아니야?’ 강유리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누군가에게 미안한 짓을 했다는 건 서로 감정이 있는 두 사람에게만 해당한 단어겠죠? 만약 시준이와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면 굳이 미안할 일은 없었겠죠? 만약 두 사람에게 감정이 있었다면 어떤 감정이었을까요? 그렇다고 남매의 정일 수는 없잖아요?”“아니, 아니. 형수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거 아니에요. 엄밀히 말하면 그 여자도 피해자이긴 해요……”육경서는 해명하고 싶었지만 어떤 말은 또 하기가 어려웠다. 한참 우물쭈물하던 육경서는 얼굴까지 새빨개졌다. 그는 결국 도망가기로 했다. “에잇, 나도 몰라요! 일단 남주부터 내 거로 만들게요!”사무실은 순간 조용해졌다. 강유리는 물잔을 든 채 소파에 기댔다. 그녀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다 피해자라고? 그럼 내가 가해자라는 거네? 만약 우리 둘이 얼떨결에 결혼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다시 인연을 이어갈 수 있었다는 건가? 집안 배경도 비슷하네……’“쾅!”그녀는 물잔을 힘껏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오후 여섯 시. 눈에 띄는 롤스로이스 한대가 길가에 서 있었다. 요염하고 날씬한 몸매에 캐주얼한 옷차림, 선글라스와 모자로 완정 무장한 여자가 날렵하게 차에 올라탔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임강준도 놀랄 정도였다. 백미러로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벗는 여인을 보며 그는 눈가를 실룩였다. “사모님, 이 옷차림은 저도 못 알아볼 정도였어요. ”강유리는 담담하고 예의 있게 설명했다. “주리한테서 빌렸어요. 효과가 좋은 모양이네요.”육시준은 향기로운 바람이 부는 것을 느꼈고, 이내 차에 사람 한 명이 늘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사그라졌던 강유리의 기세가 하늘로 다시 치솟기 시작했다.그녀는 고개를 돌리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옆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이렇게 독재적인 사람이었다고?내 기분도 내 마음대로 표현 못 해?내리라고?내가 못 내릴 줄 알고!내가 이번에도 화해하면 정말 사람도 아니야!강유리의 생각은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예쁜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고, 두 눈에서는 불씨가 번뜩이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차 손잡이에 올리더니 문을 열려고 했다.하지만 그때, 골격이 분명한 커다란 손 하나가 강유리의 손목을 낚아채며 그녀의 행동을 저지했다.그 행동에 강유리는 발끈하더니 마치 꼬리를 밟힌 고양이처럼 화를 내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누가 못 내릴 줄 알고? 누가 네 차에 타고 싶다고 했어? 누가 데리러 오라고 했어? 내가 뭐 엄청 너랑 같이 집에 가고 싶은 줄 알았나 봐?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수군대는 소리 들을 일…”그때 차 문이 열리더니 임강준이 도망치듯 차를 벗어났다.그렇게 미처 하지 다 끝내지 못한 말은 강유리의 입안에 남게 되었다.예상치 못한 상황에 강유리는 그만 머리가 하얘지고 말았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아마도, 어쩌면…내가 아니라 임강준보고 차에서 내리라고 한 건가?“나랑 집에 같이 가기 싫어서 그렇게 화가 난 거야?” 남자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차가웠다. 그의 말은 순식간의 차 안의 온도를 차갑게 만들었다.“…”강유리는 잡혀있는 손목을 빼려고 힘껏 발버둥을 쳤다.하지만 그녀의 그런 노력에도 육시준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깊은 눈동자로 강유리를 쳐다보았다. “말 똑바로 해.”“아니.” 강유리가 먹먹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녀의 고개는 아래를 향하고 있었고, 시선은 남자의 기다란 손가락에 머물러 있었다. 뭐라 말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던 그녀는 내내 입만 뻐금거릴 뿐이었다.강유리는 하루 종일 무척이나 화가 나 있었다.분명 머리로는 아주 잘 알
강유리는 멋쩍게 손을 거두더니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방금까지 가시 돋친 고슴도치처럼 신경을 곤두세우던 강유리는 지금 힘이 빠진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있었다. 무척이나 고분고분해 보였다.그녀의 모습에 육시준의 눈동자에 옅은 웃음기가 어렸다. 하지만 그 웃음기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말았다. 그는 이 모습이 단지 겉모습일 뿐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함께 지내온 시간이 얼만데, 그는 이미 그녀의 껄끄러운 성격을 다 알아차렸다.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대화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강유리는 오직 자기 생각만으로 사건의 자초지종을 판단하고 결국 마지막에는 옳고 그름을 따져보지도 않고 사람에게 모욕을 주는 그런 사람이다…“육씨 가문과 관련된 소문이라도 들은 거야? 그 사람들이 너한테 불친절할까 봐 걱정돼서 그래?” 남자는 탐색하듯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의혹이 가득했다.그의 말에 강유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그 말에 육시준은 다시 한번 자세히 생각했다. “그럼 나에 관한 소문이라도 들은 거야? 내가 널 속였다고 생각해서?”이번에 강유리는 침묵을 선택했다.묵인하는 그녀의 반응은 남자의 눈썹을 들썩이게 했다.마음이 조급했지만 그래도 그는 여유를 부리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남자는 자신의 앞에서 눈을 드리우며 앉아있는 여자의 모습을 흥미롭게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말해봐. 나에 대한 어떤 소문을 들었는지.”“사실 뭐 별건 없어. 나도 알아. 당신이 날 속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하지만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걸 참지 못하겠어. 이건 다 내 문제야.” 강유리는 갑자기 단정한 태도로 반성하기 시작했다.육시준은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말의 중점을 잡기 시작했다. “속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그의 말에 강유리는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그녀는 이내 방금 한 말을 보충했다. “날 속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지만.”육시준은 아무 말 없이 꼿꼿한 눈빛으
그 사건은 확실히 육시준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가져다주었다.하지만 그 사건은 고주영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그녀는 단지 사건의 도화선일 뿐이었다. 나중에 일어난 일들은 모든 사람의 예상을 벗어나곤 했다.주위 사람들, 그리고 육경서까지도 고주영이 그에게 특별한 존재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행여나 그의 역린이라도 건드릴까 줄곧 조심스러워했다.그는 알고 있었다. 단지 해명하기 귀찮았을 뿐이었다.하지만 지금, 이 창피한 일이 강유리를 이상한 생각에 빠지게 했다. 그는 진지하게 해명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그랬구나!”그의 말에 강유리는 문득 깨닫게 되었다. “난 또…”육시준은 담담한 눈빛으로 강유리를 쳐다보았다. “또 뭐? 옛날에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줄 알았어? 지금도 뭔가 숨기는 게 있으면서도 염치없이 안 알려주고 있는 줄 알았어?”“어…”그렇게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솔직하게 입 밖으로 꺼내자 강유리는 무척이나 껄끄러워졌다.안 그래도 켕키는 마음에 양심의 가책까지 추가되자 여자는 그만 운명을 단념하며 의기양양한 머리를 수그렸다.딱히 뭐라 변명할 말이 없었다. 잘못한 게 있으면 인정하는 게 맞다. “미안해. 잘못했어. 다른 사람 말만 믿고 당신 말은 듣지도 않는 게 아니었어.”‘이게 다 육경서 그 자식 때문이야! 말하다 말아! 이상한 생각하게!’“잘못은 엄청 빨리 인정한단 말이지.” 육서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냉담했다. 그녀는 그의 기분을 가늠하기 어려웠다.화낼 생각이 없는 듯한 모습에 강유리는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남자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을 이어 나갔다. “태도도 좋지? 강약은 어때? 시원해? 오늘 하루 힘들었지? 우리 남편 수고했어, 쪽쪽…”여자는 과한 애교를 부리더니 입술을 내밀며 그에게 다가갔다.강유리는 생각했다. ‘이 남자, 화낼 때는 어떤 방법을 써도 소용이 없어.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았는데 밀쳐내잖아.’하지만 그녀의 입술이 그의 앞에 다가가고, 두 입술이 거의 닿을 뻔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