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듣는 순간 사그라졌던 강유리의 기세가 하늘로 다시 치솟기 시작했다.그녀는 고개를 돌리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옆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이렇게 독재적인 사람이었다고?내 기분도 내 마음대로 표현 못 해?내리라고?내가 못 내릴 줄 알고!내가 이번에도 화해하면 정말 사람도 아니야!강유리의 생각은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예쁜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고, 두 눈에서는 불씨가 번뜩이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차 손잡이에 올리더니 문을 열려고 했다.하지만 그때, 골격이 분명한 커다란 손 하나가 강유리의 손목을 낚아채며 그녀의 행동을 저지했다.그 행동에 강유리는 발끈하더니 마치 꼬리를 밟힌 고양이처럼 화를 내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누가 못 내릴 줄 알고? 누가 네 차에 타고 싶다고 했어? 누가 데리러 오라고 했어? 내가 뭐 엄청 너랑 같이 집에 가고 싶은 줄 알았나 봐?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수군대는 소리 들을 일…”그때 차 문이 열리더니 임강준이 도망치듯 차를 벗어났다.그렇게 미처 하지 다 끝내지 못한 말은 강유리의 입안에 남게 되었다.예상치 못한 상황에 강유리는 그만 머리가 하얘지고 말았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아마도, 어쩌면…내가 아니라 임강준보고 차에서 내리라고 한 건가?“나랑 집에 같이 가기 싫어서 그렇게 화가 난 거야?” 남자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차가웠다. 그의 말은 순식간의 차 안의 온도를 차갑게 만들었다.“…”강유리는 잡혀있는 손목을 빼려고 힘껏 발버둥을 쳤다.하지만 그녀의 그런 노력에도 육시준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깊은 눈동자로 강유리를 쳐다보았다. “말 똑바로 해.”“아니.” 강유리가 먹먹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녀의 고개는 아래를 향하고 있었고, 시선은 남자의 기다란 손가락에 머물러 있었다. 뭐라 말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던 그녀는 내내 입만 뻐금거릴 뿐이었다.강유리는 하루 종일 무척이나 화가 나 있었다.분명 머리로는 아주 잘 알
강유리는 멋쩍게 손을 거두더니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방금까지 가시 돋친 고슴도치처럼 신경을 곤두세우던 강유리는 지금 힘이 빠진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있었다. 무척이나 고분고분해 보였다.그녀의 모습에 육시준의 눈동자에 옅은 웃음기가 어렸다. 하지만 그 웃음기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말았다. 그는 이 모습이 단지 겉모습일 뿐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함께 지내온 시간이 얼만데, 그는 이미 그녀의 껄끄러운 성격을 다 알아차렸다.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대화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강유리는 오직 자기 생각만으로 사건의 자초지종을 판단하고 결국 마지막에는 옳고 그름을 따져보지도 않고 사람에게 모욕을 주는 그런 사람이다…“육씨 가문과 관련된 소문이라도 들은 거야? 그 사람들이 너한테 불친절할까 봐 걱정돼서 그래?” 남자는 탐색하듯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의혹이 가득했다.그의 말에 강유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그 말에 육시준은 다시 한번 자세히 생각했다. “그럼 나에 관한 소문이라도 들은 거야? 내가 널 속였다고 생각해서?”이번에 강유리는 침묵을 선택했다.묵인하는 그녀의 반응은 남자의 눈썹을 들썩이게 했다.마음이 조급했지만 그래도 그는 여유를 부리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남자는 자신의 앞에서 눈을 드리우며 앉아있는 여자의 모습을 흥미롭게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말해봐. 나에 대한 어떤 소문을 들었는지.”“사실 뭐 별건 없어. 나도 알아. 당신이 날 속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하지만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걸 참지 못하겠어. 이건 다 내 문제야.” 강유리는 갑자기 단정한 태도로 반성하기 시작했다.육시준은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말의 중점을 잡기 시작했다. “속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그의 말에 강유리는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그녀는 이내 방금 한 말을 보충했다. “날 속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지만.”육시준은 아무 말 없이 꼿꼿한 눈빛으
그 사건은 확실히 육시준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가져다주었다.하지만 그 사건은 고주영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그녀는 단지 사건의 도화선일 뿐이었다. 나중에 일어난 일들은 모든 사람의 예상을 벗어나곤 했다.주위 사람들, 그리고 육경서까지도 고주영이 그에게 특별한 존재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행여나 그의 역린이라도 건드릴까 줄곧 조심스러워했다.그는 알고 있었다. 단지 해명하기 귀찮았을 뿐이었다.하지만 지금, 이 창피한 일이 강유리를 이상한 생각에 빠지게 했다. 그는 진지하게 해명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그랬구나!”그의 말에 강유리는 문득 깨닫게 되었다. “난 또…”육시준은 담담한 눈빛으로 강유리를 쳐다보았다. “또 뭐? 옛날에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줄 알았어? 지금도 뭔가 숨기는 게 있으면서도 염치없이 안 알려주고 있는 줄 알았어?”“어…”그렇게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솔직하게 입 밖으로 꺼내자 강유리는 무척이나 껄끄러워졌다.안 그래도 켕키는 마음에 양심의 가책까지 추가되자 여자는 그만 운명을 단념하며 의기양양한 머리를 수그렸다.딱히 뭐라 변명할 말이 없었다. 잘못한 게 있으면 인정하는 게 맞다. “미안해. 잘못했어. 다른 사람 말만 믿고 당신 말은 듣지도 않는 게 아니었어.”‘이게 다 육경서 그 자식 때문이야! 말하다 말아! 이상한 생각하게!’“잘못은 엄청 빨리 인정한단 말이지.” 육서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냉담했다. 그녀는 그의 기분을 가늠하기 어려웠다.화낼 생각이 없는 듯한 모습에 강유리는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남자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을 이어 나갔다. “태도도 좋지? 강약은 어때? 시원해? 오늘 하루 힘들었지? 우리 남편 수고했어, 쪽쪽…”여자는 과한 애교를 부리더니 입술을 내밀며 그에게 다가갔다.강유리는 생각했다. ‘이 남자, 화낼 때는 어떤 방법을 써도 소용이 없어.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았는데 밀쳐내잖아.’하지만 그녀의 입술이 그의 앞에 다가가고, 두 입술이 거의 닿을 뻔했
차창 밖에서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그 소리에 남자의 품속에 안겨있던 여자는 순간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그녀는 바로 문 쪽으로 몸을 피신했다.육시준은 잠깐 몸이 얼어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리더니 차창을 내리며 불쾌한 표정으로 사건의 주모자를 쳐다보았다.임강준은 아직도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있었다. 욕구불만인 대표님의 표정에 임강준의 심장은 쿵 내려앉고 말았다. 그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휴대폰을 가리켰다.“육 회장님, 빨리 오시라는 전화가 와서요.”“알겠어요. 얼른 가보세요.”강유리가 급히 그의 말에 대답했다.“…”가족 모임은 여느 때처럼 천강 호텔에서 열리게 되었다.강유리와 육시준이 룸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이미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두 사람이 제일 늦게 도착한 사람이 확실했다.“우리 오빠는 역시 신비로워요. 이렇게 많은 어른이 학수고대하고 기다렸는데! 드디어 이렇게 실물을 보게 되네요! 몇 시간 늦은 게 뭐 대수겠어요!”깔끔한 목소리가 사실을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목소리의 주인은 육미경이었다. 육경민 일 때문에 육미경은 줄곧 강유리를 증오하고 있었다.이렇게 실물을 보게 되었으니, 좋은 말이 나오지 않을 게 분명했다.강유리는 한쪽에 몰려있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일제히 자신을 향하고 있는 시선 속에서 그녀는 익숙한 얼굴들을 꽤 많이 발견하게 되었다. 육경민, 육경원 말고 성신영도 이 자리에 있었다.진도가 꽤 빠르네.강유리는 이내 시선을 거둔 후,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했다. “차가 좀 막혀서요. 오래 기다리셨죠? 죄송해요.”하지만 이 수법은 육미경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비꼬는 말투였다. “서울 전체의 차가 다 당신들 길을 막고 있었나 보지?”그 말에 강유리의 시선은 다시 육미경의 몸에 떨어지게 되었다. “죄송하지만, 누구시죠?”“나 육미경! 육 씨 집안의 유일한 아가씨!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무슨 염치로 우리 집안의 발을 들이는 거지?”여자는 교만하게 턱을 치켜들며 비꼬는
보아하니 이 사람, 날 보통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게 아니네.강유리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육씨 가문의 주인이 육미경 아가씨였나 보네요! 아까는 제가 경우가 없었어요. 대단하신 분이니 제 실수는 눈감아 주시는 거죠? 저랑 같은 사람 되실 필요가 있으세요?”“…”강유리의 태도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육미경은 조금 망연해졌다. 하지만 더 큰 감정은 조심스러움이었다.육미경은 조심스럽게 육청수의 눈치를 살핀 후에야 감히 큰 소리로 반박하기 시작했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강유리는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아닌가요? 방금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무슨 염치로 육씨 집안에 발을 들이냐고 하셨잖아요? 당신의 명성이 할아버님보다 더 높다는 말 아닌가요?”“가족 모임이란 모름지기 어르신들과 함께 얘기나 하고 밥이나 먹는 거 아니겠어요? 할아버님도 뭐라고 안 하시는데, 오히려 당신이 날 쫓아내지 못해서 안달이 나 있길래요!”“왜요? 주인이 아니라면, 무슨 권력으로 감히 할아버님보다 큰 소리를 내는 거예요?”“…”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뱉어내는 말이 육미경의 얼굴을 질리게 했다.권력과 존엄이 어르신에게 얼마 중요한지 육씨 가문 사람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이 집안에서 제일 중시를 받는 육시준도 그의 마음을 거슬렀을 때 찬밥 신세가 되곤 했다. 하마터면 집안에서 쫓겨날 뻔했다.육미경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긴장감에 말을 더듬거렸다. “너… 너… 헛소리하지 마! 그런 뜻은 전혀 없었어!”그 말에 강유리가 웃으며 대답했다. “무슨 뜻이요?”“너…!”“그만!”육청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하지만 그의 칼날은 강유리를 향하고 있었다. “역시 하늘 무서운지 모르는 미친 계집이구나. 언변이 남달라. 이간질하며 시비나 일으키고 말이야. 우리 육씨 가문은 너 같은 여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강유리의 눈동자가 그의 예리한 눈동자와 마주치게 되었다. 막 입을 열려는데 옆에서 가벼운 말투가 스쳐 지나갔다
“지금 소유하고 있는 스포츠카도 모두 회사 명의로 샀으니 도로 내놓는 게 좋을 거야.”“안 돼요! 오빠가 어떻게......”“난 육씨 가문의 집권자이니 내가 하는 말에는 무게가 실리는 법이지. 감히 내 사람에게 건방지게 굴었다는 건, 이미 각오했단 말이 아니겠어?”남자의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얼음처럼 차가웠다.육미경은 그의 쌀쌀한 눈빛에 심장이 떨려와 입만 뻥긋거릴 뿐 아무 반박도 하지 못했다.그녀는 육시준이 화나면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육경원이 나선다고 해도 소용없다.그녀는 강유리를 매섭게 노려보더니 자기의 부모님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그들 부부도 육시준의 말에 그대로 얼어붙어 육청수를 힐끗 쳐다봤다.육청수의 안색도 마찬가지로 어두웠다. 그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며 당장이라도 두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다.이 상황에 육씨 집안 셋째 사모님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려 했지만 육경원이 마침 입을 열었다.“가족끼리 이런 하찮은 일로 싸울 게 뭐 있어요.”육미경은 고개를 홱 돌리며 육경원을 노려보며 불만을 토로했다.“오빠!”‘어렵게 합류한 팀과 애써 모은 레이싱카가 한마디 때문에 날아가게 생겼는데 하찮은 일이라고? 저거 정말 내 친오빠 맞아?’“넌 너무 천방지축이야. 엄마 아빠가 응석받이로 키우니까 네가 이렇게 무법자가 된 거 아니겠어? 어떻게 형수님에게 이렇게 무례하게 굴어.”“나......”“할아버지가 미경이를 아끼고 형님이 형수님을 아끼는 건 아주 합리적인 일이죠. 하지만 가족끼리 이런 일로 감정 상할 거 뭐 있겠어요. 형님도 가족 모임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말은 홧김에라도 하지 마세요.”육경원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양쪽을 다독였다.마치 자기야말로 가장 큰 그릇을 소유한 사람처럼 말이다.이런 수단은 육청수에게 아주 잘 먹혔다. 육경원은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잡아 육청수의 체면을 세워주었다.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데 육시준이 기어코 육청수의 체
육청수가 더는 따지지 않자 한미연은 화기애애하게 육시준과 강유리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한바탕 풍파가 지나갔다.육청수는 오늘 제대로 위엄을 세우라고 했는데 오히려 체면을 잃고 말았다.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육청수가 입을 열었다.“미경아, 경원이 말로는 너 며칠 전에 점 찍어둔 차가 있는데 국내에 아직 입고되지 않았다고?”심술로 가득 찼던 육미경은 갑자기 던져진 질문에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맞아요.”육청수는 육시준을 힐끔 보더니 입을 열었다.“어떤 차야? 이 할아버지가 네 앞에 가져다줄게.”육미경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할아버지, 정말요?”“그럼! 너도 성인이 되었으니 회사 명의가 아닌 네 명의로 차 하나 뽑아야지!”“......”육미경은 너무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녀가 수집한 차는 전부 한정판 고급 차이다. 최저 20억부터 시작된다.그녀의 용돈으로는 절대 그렇게 많이 살 수 없다. 기껏해야 육경원을 구슬려 회사 명의로 사고 실질적인 소유주가 되었을 뿐이다.‘셋째 오빠도 공금으로 애인한테 선물 사주는데, 나라고 왜 못 사? 전에는 큰오빠가 눈감아 주고 추궁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갑자기 왜 저래......’다행히 진청조가 그녀의 정서를 보듬어주었으니 주제를 알고 여기서 멈춰야 한다.그녀는 기분 좋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고마워요, 할아버지! 알겠어요!”육청수는 만족스러운 듯 오만한 표정으로 육시준을 흘겨보았다.하지만 육시준은 육청수를 신경도 쓰지 않았다.육시준은 아주 자연스럽게 강유리에게 반찬을 집어주었고, 강유리는 고개를 살짝 돌려 육시준에게 귓속말했으며 육시준은 그녀의 말을 진지하게 들으며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그 모습에 육청수는 멍해졌다.몇 년 동안 육청수는 오직 육시준이 일에 있어 임격하고 진지한 모습만 봐왔지 이렇게 생기 넘치는 모습을 본 적 없었다.마치 손에 꼭 쥐고 있던 꼭두각시의 실이 끊어지고 자주 의식이 생긴 것 같았다.육청수는 마음이 가라앉더니 망설이고 있던 생각이 이 순간 더
이에 비해 셋째 부부의 표정은 아주 밝았고, 기쁨을 억지로 참으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육청수를 바라봤다.역시나 육청수는 그녀를 실망하게 하지 않았다. 그는 먼저 육경원의 공로를 세어 칭찬했다.그리고 선포했다.“난 경원이에게 그의 할머니가 남긴 주식을 상속할 것이다!”육씨 집안 셋째 사모님은 너무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우리 경원이는 늘 성실하고 겸손하여 손해만 볼 줄 알았는데 제 생각이 틀렸어요. 우리 경원이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고마워요, 아버님. 경원이는 반드시 잘 해낼 거예요!”“아버지가 우리 경원이를 믿어주셔서 영광입니다! 빨리 할아버지한테 인사드려.”육경원의 아버지가 재촉했다.“경원이가 기업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 우리 모두 잘 알잖아요!”육경민도 의기양양한 말투로 말했다.“그러니까요, 넷째 오빠가 안성맞춤이에요!”육미경도 흥분했다.“......”그들은 즐거움에 젖어있었다.하지만 정작 육경원은 침착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육청수에게 술을 따르며 예의 있게 말했다.“할아버지, 이 손주 반드시 잘 해낼 겁니다.”육청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성신영을 바라봤다.“네가 데려온 이 손주며느리 아직 제대로 보지도 못했어. 이리와, 어디 자세히 좀 보자꾸나.”그 말에 성신영은 깜짝 놀라 어쩔 바를 몰랐다.육씨 가문처럼 대단한 집안은 절대 성씨 가문을 안중에 두지 않는다.하여 그녀는 육경원 부모님의 태도를 예상했지만 그저 육경원만이 그녀를 잘해준다면 그녀는 그거로 충분했다.그런데 이런 권력자가 그녀에게 이렇게도 상냥하다니?게다가 강유리에게는 아주 야박하게 대했다.그녀는 갑자기 어질어질해지며 온몸이 붕붕 뜨는 것 같았다. 그녀는 천천히 육청수 가까이 다가갔다.“할아버지.”육청수는 집사에게서 작은 케이스 하나를 건네받고 말했다.“이건 애들 할미가 자기 손주며느리에게 주라고 남긴 물건이야. 이젠 너한테 물려준다. 두 사람 행복하길 기원할게.”성신영은 감정을 억누르며 마다했다.“이렇게 귀한 물건을 받을 수 없어요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