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눈빛을 감지한 육경서는 그제야 자신이 경솔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머쓱해하며 손을 놓았다.“내가 거짓말한 거라고 생각할게요. 그러니 그만 말해요!”강유리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티슈로 입을 꼼꼼하게 닦았다. 그러고는 차가운 말투로 명령하듯이 말했다.“거짓말하고도 당당하다고요? 얼른 술 따라요!”육경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대체 당당한 척하는 게 누군데? 육경서는 화났지만 어쩔 수 없이 강유리한테 술을 따라주었다. 강유리가 술잔을 들고 사람들에게 술을 권하며 말했다.“‘마음의 문’이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수고 많으셨어요. 제가 국내 연예계에 돌아와서 처음 맡게 된 콘텐츠인데 저를 믿고 따라와 주셔서 고마워요…”주요 제작자들은 대부분 서로 잘 아는 사이라서 분위기는 엄청 화기애애하였다. 그래서 아주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낯선 직원들은 조금 어색한 기색이었다. 강유리는 자신이 그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인사치레가 끝나자마자 그곳을 떠났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다시 돌아와서 육경서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촬영팀 기숙사에서 자는 게 불편하면 집에 돌아가요. 내일 또 촬영장으로 돌아오면 되죠. 오 씨 아주머니한테 맛있는 걸 만들어달라고 부탁할게요.”마침 저녁에 육씨 가문에 두 사람이 함께 돌아갈 수도 있고 지인과 함께 있으면 긴장을 푸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답답해하던 육경서는 강유리의 말을 듣자 대뜸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유리 형수처럼 체면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 육경서를 어르다니! 게다가 함께 집에 돌아가자고 하다니! 역시 형수는 나를 신경 쓰고 있었어. 유리 형수가 최고야…’ 육경서의 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핑 돌았고 앞에 놓인 밥마저 꿀맛 같이 느껴졌다. 육경서는 강유리의 말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내일 휴가 낼게요! 꼭 돌아갈게요!”강유리가 육경서를 대견스레 바라보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우리 화해한 거예요. 그럼, 내일 봐요.”객실
고주영은 마치 사극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막강한 세력을 등에 업었지만, 왕의 사랑은 받지 못하는 왕비에 버금가는 인물처럼 느껴졌다.강유리가 공개하지 않는 이상, 절대 그 일이 먼저 밖으로 새어 나가게 하지 않을 것이다.고주영에 대한 인상에 관해 모처럼 신주리와 의견이 일치했던 육경서가 그녀를 향해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꽤 안목이 있는데?”천강 호텔은 연회장이 속해있는 건물과 투숙할 수 있는 건물이 따로 나누어져 있다.강유리가 연회장을 빠져나와 건물 밖으로 향했다. 그녀는 객실로 갈 생각이었다.구불구불한 호텔 정원 산책로는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만이 정원을 비추고 있었고 매우 고요해 어쩐지 오늘따라 길게 느껴졌다. 고요함 속에서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도 유달리 크게 느껴졌다.강유리는 순간 얼마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난번 육시준이 그녀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려고 했던 곳도 바로 이 호텔이었다. 그날, 그녀가 미리 그 일을 알아버린 탓에 그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오늘 두 사람은 서로가 그날과 반대되는 처지가 되어보았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이제 그녀는 그날, 그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역시 그녀와 마찬가지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때문에 오늘 밤, 그녀는 그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앞으로 두 사람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상대방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녀는 서로가 서로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후, 사이가 더욱 가까워졌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발견으로 서로에 대해 모르는 상태로 섣부른 결정을 하는 후회는 절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이 정리되자 그녀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그때, 등 뒤에서 웬 손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그녀의 입과 코를 막고 어둠 속으로 끌고 갔다.미처 방어할 새도 없었던 강유리의 눈에 충격과 공포가 일렁였다. 그녀가 힘껏 반항했다.하지만 상대의 힘이 어찌나 강한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거
그녀가 머릿속으로 미친 듯이 범인을 색출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예쁜아, 정신이 들어? 너희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한 거야! 내가 모시고 오라고 했지, 이렇게 거칠게 끌고 오라고 했어?”목소리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곧바로 강유리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생각해 냈다. 오늘 연회장 최고의 빌런 2인조였다.그녀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하필 이런 미친놈과 엮이다니.“셋째 도련님, 이 여자 실력이 보통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희도 이런 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함께 들어온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해명했다.“그래? 가시까지 품은 여자였어? 마침 내가 또 이렇게 까칠한 매력이 있는 여자를 좋아하거든!”육경민이 손을 휙휙 저으며 남자한테 나가라는 뜻을 전했다.방문이 또 한 번 열리더니 다시 굳게 닫혔다.방 안이 또다시 무서울 정도로 고요해졌다.강유리가 입술을 깨물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가 잔뜩 경계하며 입을 열었다. “누구세요?”육경민이 허무맹랑한 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여기까지 와서 웬 순진한 척이야? 지금 여기서 나랑 밀당이라도 하려고? 날 몰라도 너무 모르네.”오늘 밤 그는 술을 많이 마신 터라 인내심이 별로 없었다.특히 눈앞에 이토록 자극적인 장면이 펼쳐지고 있는데 참고 있을 여유가 남아있지 않았다.백옥같이 흰 피부의 여자가 몸에 달라붙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굴곡진 몸매를 드러내고 있었다. 드레스 아래로 희고 길쭉한 그녀의 다리가 보였다. 여자는 손과 발이 묶인 채 장미 꽃잎까지 흩뿌려진 침대 위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있었다.그가 그 장면에 매료된 듯 넋을 잃고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곧바로 거추장스러운 정장 외투를 벗어 옆으로 던져버렸다.“그래도 모처럼 이렇게 내 마음에 쏙 드는 여자를 만났으니까, 조금은 인내심 있게 대해 줄게.”그가 무릎을 꿇고 침대 위로 올라가 한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쓸어내렸다.낯선 이의
그 말을 마친 후 그는 더 이상 그녀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가 몸을 숙이며 그녀의 목에 얼굴을 파묻었다.강유리의 눈빛이 굳어지더니 그가 붙잡고 있는 팔목을 힘겹게 돌렸지만, 안 되자 그녀는 천천히 저항을 멈추었다. 마치 이 상황을 받아들인 것처럼 몸에 힘을 풀었다. 상대방이 단단히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놓아주자 그녀가 손을 뻗어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그녀의 손목시계에 톡 튀어나온 버튼을 누르자, 그 속에서 가느다란 바늘이 발사되었다.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육경민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바늘이 그의 머리가 아닌 어깨에 꽂혔다.살을 에는 듯한 고통에 결국 그가 폭발해 버렸다. 그녀에게 홀려있던 그의 눈동자에 어느새 독기가 가득 찼다. 그가 또 한 번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이게 예쁘다 예쁘다 하니까 진짜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꼭 독한 맛을 봐야겠어?”“쾅!”엄청난 굉음과 함께 문이 강제로 열렸다.육경민이 잔뜩 짜증을 내며 고개를 돌렸다.“누가 들어오라고 했어! 당장 나가지 못…”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웬 검은 그림자가 빠르게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의 정체를 확인한 육경민이 미처 놀라기도 전에, 그의 발에 차여 그대로 침대 아래로 굴러떨어졌다.침대 위에 누워있는 여자를 확인한 육시준은 순간 몇 초간 사고가 정지되었다.새하얀 침대 위에 마구잡이로 뜯겨나간 옷을 걸치고 있는 여자가 누워있었다. 검은색 드레스는 이미 찢겨 있었고 흐트러진 머리카락만이 겨우 그녀의 백옥 같은 피부를 어렴풋이 가려주고 있었다.너무나 갑작스러운 소란에 그녀 역시 놀란 듯해 보였다. 침대 위에 있던 몸이 흠칫거리더니 무의식적으로 무릎을 움츠리며 자기 몸을 감싸 안았다. 빨간 하이힐이 침대를 쓸자 반듯한 침대 커버 위에 주름이 생겼다.하얗게 질린 얼굴에, 빨갛게 부어오른 볼. 평소 도도했던 그녀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의 눈에는 경계와 독기가 가득했다. 마치 벼랑 끝까지 내몰린 작은 동물이, 목숨걸고 상대방
보아하니 육경민은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육시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유리가 손을 뻗어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그 동작이 어찌나 어리고 약했는지 새끼 고양이가 앞발로 장난치는 것처럼 느껴졌다.그가 곧바로 다시 자리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았다.“왜? 어디 불편해?”강유리가 고개를 저었다. 이제 제법 많이 진정된 상태였다. 그녀의 뺨은 여전히 살짝 부어오른 상태였다. 그녀가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여기서 데리고 나가 줘. 나 여기 조금도 더 있고 싶지 않아.”쉬어버린 목소리에서 고집이 느껴졌다. 그녀는 그에게 온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 행동에서 그녀가 그를 얼마나 믿고, 의지하고 있는지 느껴졌다.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육시준의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실렸다. 그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그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전혀 다른 물음을 물었다.“저놈이 어느 손으로 널 만졌어?”강유리는 그 일을 잊을 수 없다는 듯이 곧바로 대답했다.“왼손.”육시준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화장실을 지나치며 싸늘하게 한 마디 내뱉었다.“왼손 다시는 못쓰게 만들어버려.”임강준은 순간 대답하지 못했다.그는 원래 육시준을 말릴 생각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셋째를 가장 아꼈으니까. 만약 정말로 못쓰게 만들어 버린다면 그 뒷일이 제법 고단할 것이다.하지만 협상의 여지가 전혀 없어 보이는 육시준의 눈빛을 확인한 후 결국 입을 다물었다.육시준의 명령에 강유리마저 깜짝 놀랐다.방을 나선 순간, 맞은편에서 누군가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육시준이 무의식적으로 몸을 옆으로 피하며 거리를 두었다. 그가 강유리를 안고 있는 손에 온 힘을 실어 그녀를 더욱 자기 가슴 가까이로 끌어당겼다.달려온 사람은 육경서였다.그가 급브레이크를 밟아 육시준은 겨우 몸을 옆으로 틀어서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육경서의 시선이 마침 강유리의 부어오른 볼과 손바닥 자국에 향했
강유리는 무의식적으로 아이스팩을 부여잡았다.그가 하는 행동을 보고 다시 부끄러워진 강유리는 몸을 웅크리고 중얼거렸다.“ 나 혼자 할수 있는…”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끄러운 욕조 탓에 다시 물속으로 빠져 버렸다.그때 육시준은 큰 손으로 물속에서 강유리를 건져냈다. 강유리는 코에 물이 들어갔는지 격하게 기침하고 구명조끼를 본 듯 허둥지둥 그의 팔을 부여잡았다.땀 때문인지 물 때문인지 육시준의 옷이 온통 젖어버렸다.그는 눈을 꾹 감고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서 대충 강유리를 씻겨준 뒤 수건으로 닦아주려고 했지만, 강유리는 싫다는 듯 뒤로 몇 발짝 물러섰다.“ 나 컨디션이 안 좋아서 혼자 조금 더 있고 싶어.”그녀는 조금 떨린 목소리로 억울한 듯이 말했다.육시준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조금 아팠다. 그는 강유리를 한참 쳐다보고는 허리를 숙여 가볍게 그녀의 볼에 키스하고 나서 그 길로 목까지 다가가 몇초간 머무르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그리고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낮게 말했다.“미안해. 너의 신분을 일찍 밝혔더라면, 이런 오해는 없었을 텐데.”강유리가 가든에서 사라진 후 CCTV에서 정신을 잃은 채로 방에 옮겨지는 모습을 보고 그가 얼마나 긴장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그 순간, 그는 몇변밖에 본 적이 없는 동생을 처음으로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강유리는 멈칫하고는 자기의 목을 만지작거렸다, 부끄러운지 얼굴은 빨갛게 물 들었다.그의 입술이 머문 곳은 방금 그 쓰레기가 만졌던 곳인데 분명 육시준은 그 장면을 봤을 것이고 강유리가 신경이 쓰일 거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육시준은 강유리를 번쩍 들고는 욕실에서 나왔다.그는 강유리를 위해 젖은 머리를 닦아주고 망가지기 쉬운 인형을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잠옷 치마도 갈아입혀 줬다.무거운 분위기를 눈치 챈건지 육시준의 죄책감을 느낀 건지 강유리는 도리어 화가 사그라들었다.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위로했다.“ 네 탓이 아니야. 내가 경각심이 떨어져서 그래.
육시준은 상상외로 침착한 모습 이었다. 단지 눈살을 찌푸린 채로 그녀를 살펴보았을 뿐이다. “ 어디 다친 곳은 없어? 아니다, 그래도 병원은 가자.”그녀가 금방 깨어나 기운이 없어서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지금 이 말을 들으니, 저도 모르게 몸이 바짝 긴장했다. .그는 일초도 기다릴 수가 없어 그녀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바로 그녀를 안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강유리의 얼굴에는 온통 싫은 기색이었지만, 몸에는 힘이 빠져서 전혀 반항할 수가 없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나 괜찮아. 그냥 마취약 조금 들이켜서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뿐이야. 이 정도로 병원까지 가는 거 너무 쪽팔려!”방금 육경서 앞에서 한번 쪽팔려 봤으니 이런 초라한 모습을 다른 사람한테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육시준은 그녀의 거절을 무시해 버렸다.“다른 사람들은 모를 거야.”“…”밤길에 빠른속도로 롤스로이스를 몰아 개인병원에 도착했다.소식을 들은 송이혁은 급하게 병원으로 돌아와 직접 강유리한테 검사를 해주었다.검사 결과를 보고 송이혁은 다행이라는 듯 말했다.“마취약 빼고는 다른 물질이 몸에 남아 있지는 않은 것 같으니까, 하룻밤만 쉬면 괜찮아질 거야.”그의 시선은 다시 강유리한테로 돌려 웃음기가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 “육경민이 그런 거야? 너같이 받은 대로 갚아야 하는 놈이 이번엔 어떻게 복수하려고?”그는 사태가 더 재미있어지기를 원하는 말투였다.육경민은 육 씨네 가족이기도 하고 육청주가 아끼는 손주이니까 육시준을 빼고 그를 뭐라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강유리 정도의 꾐수로는 조보희 정도만 대처할 수 있지, 이 상황에서는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복수를 할 길이 없다.하지만 그의 말에 강유리는 예전에 까먹었었던 일이 떠올랐고 바로 육시준을 바라보았다.육시준은 멈칫하더니 뭔가를 알았다는 듯 말했다.“ 지금 임강준한테 연락할 거니까 걱정 하지마.”육시준이 밖으로 나가 전화를 거는 사이에 송이혁은 놀리는 듯한 말투로 계속 도발해 왔다.“남
이렇게 정교한 무기를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곤 도 씨네 사람들밖에 없다.도 씨네는 독을 잘 쓰고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겁이 나는지 그녀한테 도발을 멈추고 진지하게 물어보는 송이혁이다.“너 그러다 병원이 만약 원인을 알아내면 어쩌려고? 진짜 그 자식이 죽어버린다면, 어떻게 할지는 생각해 봤어?”“과잉방위가 되는 거지 뭐. 남편이 알아서 처리해 줄 거야.”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밖에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육시준이 보였다.“ 사람을 여기에 보내면, 다른 병원이 곤란해져.”송이혁은 재빨리 육시준을 일깨워 줬지만, 그는 아주 무덤덤했다.“알았으니까 조금 있다 보낼게.”“….”그래, 너희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하는 수 없이 손을 흔들고는 자각적으로 그 자리를 뜨는 것처럼 보였지만, 느릿느릿하면서 전혀 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송이혁의 시선은 움직이면서도 계속 강유리의 손목에 고정했다.“ 시계 멋있네. 나 하나 사줘.”너무 뻔뻔하게 육시준한테 말했다.굳이 생각을 하지 않아도 이 손목시계는 육시준이 강유리한테 선물해 준 것이 분명했다. 육시준은 아는 사람도 많고 이용할 수 있는 자원도 많아 유명한 당 씨네 가문과 인연이 있는 것도 놀랄만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하지만 육시준의 대답은 의외였다.“왜 나한테 달라고 하는데.”“!!!”송이혁은 육시준 앞으로 다가와 그를 한창 쳐다보다가 다시 강유리를 바라보았다.강유리는 피식 웃었다.“ 이 디자인은 너랑 안 어울리니까 할아버지 몸 상태가 괜찮아지신 후에 친구한테 너랑 어울리는 걸로 디자인 해달라고 부탁할게.”“!!!”강유리의 대답을 듣고는 빠른 걸음으로 다시 강유리 앞으로 다가가서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뭔가를 물으려고 했으나 육시준의 날카로운 눈빛 때문에 결국 아무말도 꺼내지 못했다.“유리 휴식해야 해.”그를 내쫓는 육시준이였다. 송이혁은 불만스럽다는 듯이 입을 삐죽거리고는 육시준을 노려보다 곧바로 웃는 얼굴로 강유리를 바라보았다.“강 할아버지의 컨디션에 관해서는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