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리는 말하면서 힘겹게 몸을 일으켜 제자리에 앉았다.육시준은 곧바로 그녀를 부축하여 몸을 일으켜 세웠다.잠깐 힘겨운 기색을 보이더니 곧바로 다시 활기를 회복한 그녀를 보고 육시준도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날 칭찬해 주는 거야.. 아니면 자기를 칭찬하는 거야?”“당연히 널 칭찬하는 거지. 그런데 내가 이렇게 똑똑하니깐 이참에 나 자신까지 칭찬한 거야.”“…”육시준은 그녀의 말이 웃긴 듯이 웃어버리고는 다시 물어왔다.“ 이 시계, 진짜 네 친구가 디자인한 거야?”민감한 육시준을 탓할 것이 아니다. 확실히 이 디자인은 Seema의 느낌이랑 비슷했으니까.“ 그럼. kaylen이라고 하는데 해외에 있을 때 알고 지낸 한국인 친구야. 한국 이름은 도연.”강유리는 딱히 숨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서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전부 털어냈다.육시준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생각했다.이름을 들으니 여자애인 것 같네.Seema작업실에서 kaylen이라는 직원이름을 들어본 기억은 있었다. 사실 이라면, 전에 본 결혼반지도 이상하진 않았다.뭔가를 더 물으려고 했지만, 강유리의 잔뜩 피곤한 모습을 본 그는 그저 강유리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그녀를 침대에 다시 눕혔다.“ 됐으니까 먼저 쉬어.”강유리는 이불 안으로 쏙 들어가 예쁜 눈동자로 빤히 그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럼 넌, 집 갈 거야?”“ 내가 먼저 갔으면 하는 거야?”육시준은 되물었다.강유리는 눈을 깔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병원 환경도 별로고 너도 분명 여기 있는 게 불편할 테니깐 먼저 가도 돼.”육시준은 모자랄 것 없이 자란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결혼 초반에는 심지어 직설적으로 강유리한테 지금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이 너무 작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러모로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하지만 그때 당시에 온통 일 생각 뿐인 강유리라서 그가 이렇게 대단한 가문의 아들인지는 상상도 못 했었다.벙원 환경은 강유리 집보다도 못한데 육시준이 여기서 밤새 있는다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
임강준도 목소리를 깔고 그의 말에 대답했다. 하지만 임강준은 그 한테 밝히지 않은 일이 하나 있었다. 방금 셋째 도련님을 병원에 데리고 오라는 육 회장의 명령이 있었다는 걸. 그것도 콕 집어 송 의사의 개인병원으로 데리고 오라고 한 것이었다.송 의사의 소문은 이미 서울에 널리 알려졌다. 쓰레기같은 동생을 위해서 이 정도까지의 자원을 이용한다고?아무래도 뭔가 이상했다…육 씨 집안에서도 꽤 지위가 있는 몇 사람이 이미 여기 앉아있으니 그저 상황을 보고 대응할 수 밖에 없었다.이때 응급실 문이 열렸다.육 씨네 셋째 부부가 급하게 다가가 먼저 물었다.“선생님, 우리 아들 어떤가요? 괜찮은 거죠?”송이혁은 마스크를 벗고 침착하게 말했다.“ 왼쪽 견갑골에 금이 가고 신경조직이 괴사했습니다. 당분간 생명의 위협은 없지만, 너무 늦게 병원에 오셔서 한쪽 팔은 못 쓰게 되었습니다.”이 말을 들은 셋째 부인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휘청거리다 넘어질 뻔했다. 육청수도 믿기지 않는 얼굴로 다가가 물었다.“ 골절이라면서? 지금 왜 또 생명의 위험이 있다는 건가?”“누가 골절이라고 하셨어요?”송이혁은 웃으며 대답했다.육청수는 고개를 돌려서 시선을 임강준한테 고정했다. 임강준은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조금 멈칫하더니 차분하게 대답했다.“저는 단지 추측을 한 것일 뿐입니다.”그 사람들이 딱 골절이 될 정도까지만 때렸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육청수는 지팡이를 세게 내팽개치더니 화가 난 말투로 꾸짖었다.“ 똑바로 말해!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서울 한 복판에서 누가 감히 우리 육 씨네 손주를 건드려?”손주가 다친 것에 화가 난듯 했지만, 사실은 육 씨네 체면이 걸린 문제라서 화가 난 것 같아 보였다. 육 씨네 셋째 부부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원인을 물어보았다. 뭔가 잘못된 거 아니냐고. 멀쩡하던 아들이 갑자기 왜 이런 봉변을 당한 건지…임강준은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하다가 신중하게 말을 꺼냈다.“ 셋째 도련님은 평소에도 노시는걸 엄청 좋아하지만, 이번에는
육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육시준을 주시하고 있다. 강유리가 회사에 나타난 후 육청수한테 그녀의 신분이 노출된 것이 확실했다. 육청수는 육시준이 그렇게까지 안목이 없지는 않으리라 생각되어 그 모든 게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줄곧 입을 닫고 있었다.집으로 들이지 않는 한 그는 잠시 가만히 있을 생각이었는데, 완전히 그 집 사람이 되기도 전에 먼저 집을 이렇게 소란스럽게 만들 줄 어찌 알았으랴……“그 여자를 당장 내 앞에 데려 와! 지금 당장! 무릎 꿇고 내 손자한테 사과하게 만들 거야!”“사과하면 다예요? 이렇게 만들어 놓고 대가를 치루게 해야죠!”“맞아요. 셋째 형 아직 젊은데, 손을 못 쓴다니.. 절대 안 되죠!”“......”육청수와 육씨 집안 식구들은 분에 차서 일제히 강유리를 질책했다. 그들은 모든 것이 육경민의 자업자득이라는 것을 조금도 의식하지 못했다. 육경서는 화가 나서 할 말을 잃었다.임강준도 역시 눈썹을 찡그리면서 어떻게 하면 적당히 예의를 지키면서 그들을 반박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했다.송이혁은 쓴 웃음을 지면서 말했다.“그 여자도 저희 병원에 있어요.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마취 성분과 특수 비아그라 약물이 검출됐어요. 할아버지 생각이 틀리셨어요. 경민이가 가서 무릎 꿇고 사과해도 받아줄지 말지 걱정이에요.”육청수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뭐라고?!”“이제 환자가 깼으니 가족들은 좋을 대로 하세요.”송이혁은 한마디 말만 남긴 채 나가려고 하다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말했다.“아, 혹시 제 실력을 못 믿으시겠다면. 지금 당장 다른 병원으로 가셔도 됩니다.”어차피 독침은 이미 꺼낸 상태고 독성도 억제했으니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지금 다른 데 가서 검사를 해봤자 똑같을 게 뻔했다. 그리고 사실 그들이 가서 검사하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만약 정말 도씨 집안의 흔적을 찾아낸다면, 그들을 무릎을 꿇고 사과하게 하면 될 일 이었다. 이런 것들을 곰곰히 생각해보던 송이혁은 유감스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육경서는 놀란
‘얼굴이 너무 아파.. 아플 뿐이야? 불에 덴 느낌이야. 다들 정말 고마운데 창피해서 죽어버리고 싶어.’“괜찮은 거야?”소지석이 다정히 묻는 목소리에 강유리는 한숨을 내쉬며 현실을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입을 열었다.“뭐 큰일이라고 다들 모였어? 누가 말해준 거야?”강 감독은 불만스럽게 그녀를 쏘아보면서 말했다.“우리한테 말 안 할 작정이었어? 우리가 그럴 사이야?”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그게 아니라, 뭐 좋은 일이라고 창피하게 다 알려.”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해했다.소지석은 의자에 앉아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강유리의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리더니 입을 열었다.“뭐가 창피하다는 거야? 넌 피해자야. 창피해야 할 사람은 잘못을 저지른 쪽이라고!”3년 전에 나돌았던 음탕한 소문으로 인해 강유리의 평판이 아주 나빠졌었다. 그러나 그가 알고 있던 강유리는 종래로 명성 따위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터라 이런 상처를 창피하게 생각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소지석은 차가운 목소리로 또다시 입을 열었다.“육 씨 집안에서 말하지 못하게 막은 거야?”육경서는 손사래를 치며 생각을 말했다.“그럴리가요. 육 대표님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만약 명성을 그렇게까지 생각했다면, 어제 육경민한테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거예요!”소지석은 고개를 돌려 육경서를 바라보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그렇게 네 형을 잘 알아?”“……”육경서는 마음속으로는 형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소지석의 단호한 눈빛에 말문이 막혔다.숨 막힐 정도로 조용함이 감도는 가운데 소안영이 침묵을 깼다.“검사 결과 다 봤어. 호텔 CCTV도 다 확보했고. 네가 책임을 묻고 싶다고 하면, 내가 도와줄게.”신주리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우리 오빠 엄청 능력 있고 정직한 경찰이야. 그런 사람들은 콩밥 좀 먹어봐야 해. 아무 수도 쓸수 없게 해야 한다고!”조보희는 어떻게든 강유리를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에 말을 이어 나갔다. “나 간호사
육경서는 난처하여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남의 일에 관심조차 없던 그녀가 이토록 민감한 사람인지 처음 알았다. 그가 머리를 쥐어짜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를 때, 마침 강유리가 잽싸게 감사함을 전하고 사람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다.“다 바쁘지? 나 신경 쓸 필요 없어. 내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그때 꼭 연락할게!”강유리의 말에 육경서는 그 기회를 빌려 맞장구를 쳤다.“그래. 우리 다 먼저 나가요. 좀 쉬게 하는 게 좋겠어요.”모든 사람이 나가고 육경서가 맨 뒤에 섰다. 그는 감히 신주리의 눈동자를 쳐다보지 못하고 도망치려는데, 강유리가 그를 불러 세웠다.“도련님, 잠시만요. 물어볼 게 있어요.”“……”‘역시 우리 형수님이야!’육경서는 재빨리 문을 닫고 그녀의 앞에 섰다.굳게 닫힌 방문을 보며 신주리는 의문이 들어 엘리베이터 안에서 작은 소리로 소안영한테 말을 건다.“육경서 이상하지 않아?”“뭐가?” 신주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유리랑 그렇게 사이가 좋았었나? 엄청나게 보호하는 느낌이던데? 방금 육 씨 집안 경호원들도 물리쳤잖아. 무엇보다 아까 유리를 형수님이라고 부른 게 정말 이상해……”“육 대표 친동생이잖아. 형수님이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그 말을 듣고 신주리는 깜짝 놀라 사색이 되었고, 옆에 있던 소지석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래서 방금 육 대표 편을 그렇게 들었구나……’신주리는 그 말을 듣고도 믿을 수가 없어 다시 물었다.“그럴 리가? 어떻게 알았어?” 소안영은 은근히 자랑하며 말했다.“유리 남편이 누군지 알고 나서 바로 육 씨 집안에 대해 알아봤지? 그때 알아냈구나.”“……”‘의리도 없이 우리한테 말도 안 하고……”그들은 아래층에 내려긴 뒤 각자 흩어져 제 갈길 갔다. 소지석이 떠나기 전에 소안영을 불러 육 씨 집안 자료를 보내달라고 하자 그녀는 이해 못 하겠다는 듯 갸우뚱하더니 입을 열었다.“육 씨 집안 상황은 왜 알고 싶은 거야?”소지석은 평온한 얼굴로 대답했다.“
육경서가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형이 무슨 일이 있을 리가요. 육경민 그 개새끼가 일이 있어야죠! 아버지가 다 가족이니까 일 키우지 말자고 저녁에 집에서 다시 얘기하자고 하셨어요.”“오늘 집에 간다고요?”“네. 형이 얘기 안 했어요?”육경서는 실언했다고 생각하고는 황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이 빌어먹을 익숨함. 데자뷰 인가? 저번에도 내가 함부로 말해버렸는데 이번에도 형이 먼저 말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말했어요. 그런데 이 상황에서 집에 간다고요?”그녀의 말에 육경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말했다.“지금 상황이 뭐 문제 있어요? 왜 집에 가면 안 되는 건가요?”“……”저녁 무렵, 노을이 천천히 하늘을 물들이고, 색이 깊고도 옅어 부드러운 느낌이 든다.검은색 롤스로이스 자동차가 정원에 들어섰다.강유리는 아직 망연한 표정으로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남의 집안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그녀가 아무리 대담한 사람이라고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갑자기 몸이 안 좋아. 아무래도 다른 날로 잡는 게 좋겠어.”육시준은 어쩔 수 없이 손을 뻗어 그녀의 차디찬 손을 잡고 말했다.“내가 말했다시피 우리 집은 그 집이랑 아무런 관계도 없고, 왕래도 없어. 우리 부모님께 밉보이지 말자. 응?”“……”강유리의 눈이 파르르 떨렸지만, 육시준의 큰 손을 잡자,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말투는 자상하고 상냥했으며, 마치 아이를 달래는 듯한 말투였다.그녀는 얇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이 일로 여보가 형제들이랑 등을 지면, 부모님은 나한테 화풀이 할 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 없어?”강유리는 종래로 자신만만한 사람이었고, 절대 자기 자신을 비천한 위치에 놓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육시준에 대한 일에서는 예외였다. 그가 별일 없을 거라고 말해도 그녀는 각별히 조심했다. 그가 존경하는 어른들 앞에서 그녀는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를 더욱 걱정했다. “화풀이하면 나한테 하시겠지. 그
강유리는 자리에 앉았다가 그 소리를 듣고 반사적으로 일어났다.육시준도 그녀를 따라 일어나 그녀의 손을 잡고 가볍게 다독여 안심하라는 표시를 했다. 육시준의 어머니는 다가와서 앉으려고 할 때 그 둘의 행동을 힐끗 보고는 의외라는 생각을 했지만, 얼굴에 드러내지 않고 입을 열었다.“어제 저녁 인터넷에서 뉴스를 보지 않았다면, 내 며느리가 누구인지도 몰랐을 거야.”육시준의 부모님은 육시준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또 육경서가 한 말도 있었기에 그 둘이 협력 관계 이상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강유리가 진심으로 사과했다.“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더 일찍 찾아 뵈었어야 했는데……”“생각이 짧은 걸 알기는 하네?”“……”강유리는 고개를 푹 숙였고, 육시준이 그녀의 편을 들어줬다.“엄마, 유리 금방 퇴원했어요. 놀래키지 말아요.” 육시준의 말은 쓸모가 있었다. 육시준 어머니는 잠시 멈칫하더니 강유리한테 손짓하면서 말했다.“이리 와. 내 옆에 앉아.” 강유리는 그녀의 안색이 여전히 언짢고 기세가 강한 것을 보고는 육시준을 힐끗 보았고, 육시준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천천히 걸어가서 그녀의 옆에 앉았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강유리의 옷차림을 살펴 보았다. 강유리는 꽃무늬 치마에 플랫슈즈를 신고 매우 예쁘게 치장을 했다. 그녀가 자신의 차림을 살펴보는 것을 발견하고 강유리는 자세를 바로잡고 두 손을 무릎에 올려놓은 채 더욱 조심스럽게 앉았다.“어디서 새댁 코스프레야? 내가 너에 대해 조사하지 않은 줄 알아?” 강유리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초 동안 빤히 쳐다보다가 대답했다.“그렇다면, 내숭 따위는 부리지 않겠습니다.”강유리는 다리를 꼬고는 소파에 기대 앉아 턱을 괴고 말했다.“이 일이 모두 제 탓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이이가 못 오게 한 거예요.”“……”육시준의 어머니는 갑자기 변해버린 강유리의 태도에 당황한 듯 했고, 순식간에 얼굴이 굳어졌다.지켜보는 세 남자의 얼굴 표정도 제각각이었는데, 오직 육시준만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한미연이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분명 경민이가...”“사과는 이미 했습니다.”육시준이 불쑥 끼어들었다.물론 오늘 점심 아버지 육지원이 노발대발하지 않았다면, 병실 문 앞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뭐?”시원스러운 대답에 한미연은 오히려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고집이라면 세계 1위인 아들이 사과라니...이제라도 철이 든 건가 싶었지만... 바로 이어지는 한 마디에 그녀의 환상은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사과하러 간 건데... 자꾸 화를 돋구길래 몇 대 더 때려주긴 했지만요. 사실 오늘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었는데 아쉽게 됐네요.”뻔뻔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는 육시준의 모습에 육지원도 한미연도 할 말을 잃고 말았다.“그러니까 더 이상 사과하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하루라도 더 빨리 퇴원하길 바라신다면요.”“너...!”참다 못한 육지원이 찻잔을 쾅 하고 내려놓자 한미연이 어떻게든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화제를 돌렸다.“일, 일단 밥부터 먹자. 유리야, 요즘 많이 바빴나 봐? 다들 살 빠진 것 좀 봐.”육경서도 거들었다.“엄마도 참. 오늘 형수 처음 보시는 거잖아요. 살 빠진 건 또 어떻게 아셨대?”“어머, 얘 좀 봐. 사진으로 다 봤지. 해외에서 지내느라 밥도 제대로 못 챙겨먹은 거 아니야?”하지만 이어지는 한 마디에 식탁 분위기는 또 무겁게 가라앉고 말았다.한편, 식사 내내 어두운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는 육지원을 바라보며 강유리는 몰래 혀를 찼다.다들 행복한 결혼생활의 최대의 적은 고부갈등이라고 하기에 어떻게든 한미연의 마음을 사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거늘...가장 큰 복병이 육지원일 줄이야.‘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하지 않았나?’식사 후, 육시준은 아버지의 호출에 서재로 향하고 육경서는 전화 통화를 위해 베란다로 나간 터라 강유리 혼자 덩그러니 거실에 남게 되었다.그리고 잠시 후 나타난 한미연의 손에는 봉투 같은 것이 들려있었다.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앉은 그녀가 강유리에게 봉투를 건넸다.흠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