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말이었다.“남편 데리러 가는 데 뭐 이유가 필요해?”처음 육시준을 데리러 로열 엔터로 갔을 때, 그녀가 했던 말과 놀랍도록 비슷했으니까.“솔직하게 말해 봐. 내가 로열 엔터로 데리러 갔을 때, 그날 당신 거기 없었지? 장경호 대표가 꽃선물을 하네 뭐네 부산을 피웠던 것도 당신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끄느라 그랬던 거고?”날카로운 질문에 육시준은 침묵으로 답했다.가끔씩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바보 같다가도 또 이럴 때 보면 놀라울 정도로 똑똑한 것이 어느 쪽이 강유리의 진짜 모습인지 헷갈리는 육시준이었다.한참을 침묵으로 채운 육시준이 입을 열었다.“어차피 다 지난 일이잖아. 네가 괜히 오해해서 날 피했던 거 없었던 일로 할 테니까 너도 내가 너 속였던 거 없었던 일로 해.”“역시, 거래 하나는 끝내주게 하시네요, 육시준 대표님.”강유리가 그를 흘겨보았다.“육시준 대표님? 내가 원하는 호칭은 그게 아닐 텐데...”낮은 목소리로 강유리의 귓가에 속삭이는 육시준의 손가락이 그녀의 허리를 살짝 건드렸다.야릇한 손길에 움찔하던 강유리가 육시준의 손목을 덥썩 잡았다.“그만. 나 할 일 많단 말이야.”그러자 강유리를 번쩍 들어 두 다리에 제대로 앉힌 육시준이 그녀를 더 세게 껴안았다.“일해. 기다릴 테니까.”물론 말과 달리 그의 시선은 집요하게 강유리의 얼굴을 향해 있었지만 말이다.완벽한 예술작품으 감상하듯 흐뭇하던 눈빛이 점점 뜨거워지고 어느새 그의 손은 강유리의 옷 속을 탐색하기 시작했다.강유리가 잠깐 가만히 있나 싶더니 또 짓꿎은 유혹을 시작하는 육시준을 노려보았다.“아, 나 진짜 바쁘다고. 며칠 뒤면 촬영도 끝나. 홍보며 뭐며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고.”육시준은 넋을 잃고 일 얘기만 하면 유난히 반짝이는 강유리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할 수만 있다면 이 모습은 평생 혼자만 보고 싶은데...“내가 준 카드 말이야. 잔액 확인해 봤어?”육시준의 질문에 강유리가 흠칫했다.“해... 해봤지.”강유리의 고개
겨우 다시 이성을 되찾은 강유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내 성격 알지? 나 자존심 센 여자야. 다른 사람이 나 무시하는 거 못 견뎌. 그게 날 사랑하는 남자라면 더더욱. 알아, 당신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거. 그런데... 그냥 내가 싫어. 사회적 위치, 경제적 실력, 객관적으로 우리 두 사람 많이 차이 난다는 거 알아. 그래서 더 열심히 살려고. 항상 당신 뒤에 숨어서 보호받는 거 말고 언젠간 당신 옆에 서서 함께 비바람을 이겨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최대한 진지하게 말해 보고자 육시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던 강유리의 눈동자가 결국 살짝 흔들렸다.‘윽, 얼굴 하나는 진짜 끝내준단 말이야. 그리고... 너무 가까워.’행여나 터질 듯한 이 심장소리가 육시준한테 들리진 않을지 걱정이 될 무렵, 한참을 가만히 있던 육시준이 물었다.“그러는 넌?”앞뒤 다 자른 뜬금없는 질문에 강유리의 눈이 살짝 커졌다.“응?”육시준의 긴 손가락이 강유리의 가슴팍 위를 쓸어내렸다.“넌 날 어떻게 생각하는데?”그 와중에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아니라 날 사랑하는 남자라고 표현한 게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그의 질문에 눈을 깜박이던 강유리는 짐짓 깊은 고민에 잠긴 듯 한참을 낑낑댔다.“당신에 대한 생각이라... 음 스킬이 조금 부족하다?”하, 이 와중에도 장난이라니.뭐, 이런 그녀의 모습마저도 사랑하는 것이긴 하지만...육시준의 눈동자가 살짝 어두워졌다.“그래?”“아, 농담이야, 농담. 그게...”하지만 육시준은 더 이상 강유리에게 해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그녀를 번쩍 안아들어 책상 위에 앉힌 육시준이 말했다.“어젯밤은 별로 마음에 안 들었나 봐? 오늘은 더 잘해 볼게.”마치 업무적인 실수를 저지른 직원이 반성하 듯 가벼운 말투와 달리 육시준의 키스는 뜨거웠다.욕망의 불길이 책상을 따라 서재를 가득 채우고...육시준은 그의 거친 키스를 받아들이던 강유리의 손을 꼭 잡았다.별빛만 반짝이는 어두운 밤, 정원에 가득 핀 정열적인 색
마침 집에 도착한 성신영을 훑어보던 성한일이 눈을 반짝였다.“누나, 지금 정말 육경원 집에서 오는 거야?”코트 자락 아래로 드러난 슬립은 분명 기사 사진에 첨부된 그 옷이었다.‘요즘 파파라치들 진짜 빠르네...’“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팔과 다리에 상처가 너무 많이 남아 대충 코트를 걸친 것인데 그걸 어떻게 귀신 같이 알아차렸는지...성신영은 본능적으로 코트를 여미며 경계 어린 눈빛으로 남동생을 바라보았다.“누나랑 육경원 사귀는 거 이제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성한일이 건넨 휴대폰을 뒤적이던 성신영의 입가에 드디어 미소가 피어올랐다.젠틀한 외모와 달리 변태적인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는 육경원에게 며칠 동안 시달리던 성신영은 솔직히 차에서 내릴 때까지만 해도 이대로 이 관계를 지속하는 게 맞는지 회의감을 느꼈었는데...기사와 댓글을 보는 순간 그 생각은 찰나의 감정이 되어 연기처럼 사라졌다.‘그래.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거야.’“기자들도 참 짓궂다니까... 아무리 연예인이라도 사생활이라는 게 있는 건데...”성신영이 짐짓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왕소영이 그런 딸의 어깨를 토닥였다.“너도 육경원도 다 성인인데 뭐가 부끄러워. 나도 네 아빠도 다 이해하니까 괜찮아.”성홍주도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난 우리 딸이 해낼 줄 알았어. 강유리 그 계집애보다 네가 부족한 게 뭐니? 이제 우리 유강그룹은 잘될 일만 남은 거 맞지? 내가 저번에 물어보라던 건 어떻게 됐어?”“아빠, 우리 아직 서로 알아가는 단계예요. 어떻게 그런 걸 바로 물어요. 괜히 돈 보고 접근한 거 같잖아요.”“할 거 안 할 거 다 해놓고 알아가는 관계는 무슨. 미래의 장인어른 일인데 발 벗고 나서줘야지. 아, 누나. 누나가 좀 더 열심히 아양 좀 떨어봐. 이번 계약만 따내면 아빠가 나 차 바꿔주기로 했단 말이야.”저속한 성한일의 말에 성신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성한일, 너 말 조심해. 내가 창녀야? 뭐? 아양을 떨어?”“그래! 너 누나
적어도 소안영이 건넨 자료에선 분명 연애 경험은 없다고 적혀있었다.수많은 여자들이 온갖 방법으로 들이댔지만 눈빛 한번 주지 않았다고.어쩌면 게이라는 루머도 차가운 그에게 상처를 받은 여인들 중 한 명이 퍼트린 것일지도 모르겠다.“아니.”잠결이지만 단호한 목소리, 강유리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그래. 내가 처음이라니... 다행이네.’강유리의 시선이 다시 휴대폰으로 향하고 어젯밤 포털 사이트를 휩쓴 성신영, 육경원의 열애설이 눈에 들어왔다.‘여한영 본부장... 깔끔하게 잘 해줬네. 여자에 미쳐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으니 신중한 성격이라는 이미지에 금이 갔을 테고... LK그룹 이사들도 머리가 꽤 복잡하겠어. 육청수 회장한테는 어떻게 해명하려나...’이때, 그녀를 홱 돌려눕히는 육시준의 손길에 강유리는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어느새 잠에서 깬 듯 육시준의 눈동자는 여느때처럼 말끔했다.“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연애 같은 건 해본 적도 없고 사랑했던 사람은 더더욱 없었던 육시준이다.딱 한 번, 여자라는 존재에게 흥미를 가지게 만든 이가 있긴 했지만... 그가 가진 모든 정보력을 이용했음에도 이름 석자 알아내지 못했던 존재였다.그래서인지 육청수가 은근히 이어주려는 여자들이 더 역겹게 느껴지기도 했었고 말이다.그러다 강유리를 만나고 결혼까지 하고 나서야 그 정체 모를 여인의 존재는 차차 흐릿해졌었다.“그냥.”정말 별 생각없이 물은 것이었으므로 강유리는 바로 휴대폰을 들이밀었다.“지금 할아버지한테 살갑게 굴면 그분 마음을 다시 돌릴 수 있을지도 몰라.”육시준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 강유리의 이마를 살짝 튕겼다.“할아버지한테 아부할 생각없어. 아, 부모님은 너 보고 싶어 하시더라. 주말에 스케줄 없으면 본가로 가자.”“뭐?”‘이렇게 갑자기?’“스... 스케줄 있어. 오늘부터 이달 말까지 꽉 찼어, 아주!”강유리가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육시준의 정체에 대해 몰랐을 땐 그의 가족들이 궁금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대한
저쪽에서 계속 제멋대로 군다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돌아가는 길.비서가 낮은 소리로 육경원한테 보고했다.“아직도 연관검색어에 떠 있는 거 보면 분명 배후에 누군가가 부추기고 있는 겁니다. 그 매체들을 검색해 보니 모두 유강엔터가 매수한거 였습니다.”육경원의 눈빛이 독기로 가득 찼다. “유강엔터? 내가 강유리를 너무 과소평가 했네.”‘여론 플레이에 능숙해. 스타인 엔터를 파산하게 만든 것도 이런 방법이었겠지. 그런데... 이제 나까지 건드려? 간이 아주 배 밖으로 나왔구만.’“도련님, 이 일은 신속하게 해결해야 합니다. 차라리 공개적으로 해명하는 게 어떠실지?”비서가 자기의 의견을 건네왔다. 이렇게 되면 성신영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긴 하지만 최선의 방법이었다.육경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알아서 처리해.”이 말을 하면서 양손은 핸드폰을 두드려 메시지를 보냈다.[20분후 별장 도착]잠깐 고민하던 육경원이 말했다. “경민이 형한테 강유리를 노출시켜. 형님 노리개 노릇을 하다 보면 잘 길들여질지도 모르겠어.”잠깐 멈칫하더니 비서가 말했다.“아시다시피 강유리, 보통 계집애가 아닙니다, 경민 도련님이 상대가 될까요?”“글쎄. 형은 나랑 갖고 싶은 건 뺏어서라도 가지고 마는 사람이라서 말이야.”육경원은 자신을 비웃듯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그리고 문제가 생겨도 할아버지가 수습까지 해줄 거니까.”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육경원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기도 했다.육청수에게 육경민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손자였지만 그에게만큼은 한없이 엄했으니까.“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육경원과 성신영의 열애설은 한동안 포털 사이트를 뜨겁게 달구었다.그런데, 처음엔 축하의 댓글을 달던 네티즌들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이렇게까지 기사가 퍼져나가고 있는데 육경원 측에서 인정 기사를 내지 않는 것이었다.“굳이 공식 입장이 필요한가? 이렇게까지 가만히 있는 건 그냥 묵인하는 거 아니야?”“못 봤을 수도 있잖아
“아!”채찍이 몸에 떨어지고 성신영은 고통으로 비명을 질렀다.하얀 피부에 여러개의 빨간 채찍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육경원은 이 흉터를 보고 더 흥분된다는 눈빛으로 채찍을 흔드는 손에 힘을 바짝 주었다.얼마나 지났는지 성신영이 오늘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던 참에 육경원은 행동을 멈췄다.부드럽게 그녀를 자기 품에 감싸 앉고 쓰다듬어 줬다. 아픔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모르게 성신영은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잘못했어. 나 진짜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그래 자기야, 무얼 잘못했는지 알면 됐어.”그는 손으로 그녀의 피부를 쓰다듬다가 치마를 위로 올렸다.“하지만 잘못을 저질렀으면 벌 받아야 하지. 지금 유강엔터를 사들이는 건 시기가 적절하지 않게 됐네.”소름이 돋더니 성신영은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너, 너 나랑 약속했었잖아!”그의 변태 같은 취미에 호응해 주는 건 오직 강유리한테 복수를 하고 유강엔터를 뺏어 오려고 한 건데. 이렇게 많은 걸 퍼부었는데 지금 와서 사들이지 못한다고?“당연히 약속은 했었지. 그런데 이런 꼼수를 부리는 건 진짜 별로야.”“나 고칠게! 나 진짜 고칠 테니까 너 지금 번복하면 안 돼….”“그럼 기회를 한 번 더 줄게.”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분명 웃고 있었지만 성신영은 그가 자신을 지옥 끝까지 나락 시키는 악마 같았다.“연예계 투자의 신인 신아람이 월말에 국내로 돌아온다며? 너한테 제일 큰 권리를 줄게. 신아람 모셔 와.”성신영은 그의 온화한 미소에 정신이 팔려 무의식적으로 다시 물어왔다.”“로열로 모셔?”육경원은 피식 비웃음을 날렸다.“육 씨네 엔터테인먼트는 로열만 있는 게 아니야. 라온으로 모셔.”라온 엔터는 근년 간 온정 된 발전을 이뤘다. 실력은 예전의 스타인이랑 막상막하였지만 조용하게 활동하는 편이라 주목을 많이 받지는 못했다.스타인이 로열과 같은 지위라고 홍보를 많이 하는 바람에 지금 사람들 마음속에 연예계 두 번째로 큰 엔터가 된 거였다.하지만 똑똑한 사
하석훈은 두 사람의 결혼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지만, 요즘 들어 사이가 좋아 보여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더 좋아졌다고 생각했기에 참다못해 강유리가 그렇게까지 인색하게 행동하지 않도록 일깨워줬다.강유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혹시나 저를 빌붙는 사람으로 생각할까 봐 걱정했어요.”하석훈은 그녀의 말을 듣고는 한참 침묵을 지켰다.“그의 건강을 위해서 도시락을 싸지 않는 게 좋겠어요. 하지만 당신 말도 일리가 있어요.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 같아요. 바로 갖다 줄게요.”‘뭐지? 정말 식사 한 끼 대접할 생각이 없는 건가?’열한 시반, 강유리는 준비한 도시락을 들고 회사를 나섰다. 오전 내내 정신없이 일한 여한영은 그녀를 찾으려고 사무실 문 앞에 서있었는데, 그녀는 이미 자리에 없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의아하게 하석훈에게 물었다.“어디 간 거예요?”하석훈은 입을 오므리더니 말했다.“아마 부부간의 정을 키울 겸 슈가 맘한테 감사인사를 드리러 갔을 겁니다.”여한영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두 일을 동시에 말입니까?”하석훈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답했다.“맞아요.”LK그룹.육시준이 회의를 마치고 나오자 임강준은 업무 회보를 마친 후 그를 따라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는 인터넷에서 나오는 여론에 대해 보고하고는 휴대전화를 건넸다.“사모님께서 30분 전에 전화를 거셨습니다. 아마 이 일 때문인 것 같습니다.”육시준은 전화를 받아 들고 한쪽으로 전화를 걸며 분부를 내렸다.“점심 식사는 가져올 필요 없어. 식당 예약해 놔. 유리 회사 근처로 예약하면 돼.”강유리는 바로 전화를 받았고, 그녀는 경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육 대표님, 좋은 점심입니다.”육시준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또 무슨 꿍꿍이야?”“나 지금 진지하게 할 말 있어. 진지하게 좀 받아들여.”“그래. 말해.”“고마워. 도와줘서.”육시준은 의자에 앉아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난 또 내가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한다고 탓할
5분 후.로비에 익숙한 실루엣이 등장했다. 훤칠한 키에 셔츠와 양복 바지의 조합이 매혹적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여기.”강유리는 도시락통을 들고 거만한 발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가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비서 보낸다고 하지 않았어? 대표님이 직접 내려오시다니 황송하네?”육시준은 눈을 내리깐 채 도시락을 훑어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그냥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며? 날 위해서 특별히 온 게 아니고? 그런데 왜 2인분이야?”“......” 그녀는 방금 사진 찍어 보낸 것이 도시락 2인분이었다는 것을 까먹고 있었다.‘정말 이 남자는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 하는구나?’그녀는 도시락을 그의 손에 쥐어 주고는 바로 돌아섰다.육시준은 체면을 차리는 그녀가 기분이 상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고, 돌아서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사모님이 오시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내려 보낼 수 있겠어?”강유리는 바로 기분이 풀려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는 못 이기는 척 그의 뒤를 따르며 말했다.“영광이지?”육시준은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말했다.“영광이지.”사실 방금 그는 확실히 몇 초 동안 망설였다. 만약 그녀가 오늘 본사에 나타난다면, 신분이 들통날 것이 뻔했고, 육씨 가문 가족들도 그녀를 알게 될 것이다.그러나 그는 이내 생각을 바꿨다. 그는 그녀의 신분을 공개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을 뿐더러 이 기회를 빌어 몇몇 사람들에게 그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으름장을 놓고 싶었다.그는 직접 그녀의 손을 잡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 소식은 몇 분내로 본사에 무섭게 퍼졌고, 사람들은 그 둘에 대해 토론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미쳤어! 육 대표님이 연애하는 건가 봐!”“대표님 눈빛 좀 봐. 너무 자상하고 따뜻해!”“대표님 여자친구 진짜 연예인 뺨 친다. 어쩜 저렇게 예쁘지?”“옆모습도 정말 인형 같아!”“저 여자 누군지 알아? 대표님이랑은 어떤 관계지?”“......”사람들은 육시준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