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지를 신경 쓰지 않았다면 고은영은 아마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배준우가 말했다.“얼마 안 됐어. 얼른 밥 먹어.”“네.”고은영은 자리에 앉아 먼저 따뜻한 물을 마셨다.배준우는 고은영의 생활 습관이 아주 좋다는 걸 발견했다. 특히 아침에 물을 먼저 마시는 습관을 계속 유지했다.고은영은 반숙 달걀 후라이를 고희주의 밥그릇에 놓아주었다.이때 라 집사가 나태현과 진윤이 찾아왔다고 말했다.순간 고은영은 깜짝 놀랐다.나태현과 진윤이라니. 두 사람이 어떻게 함께 나타난 것일까? 하지만 이들 명문가의 자제들은 원래 서로 교류가 있다는 걸 알기에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라 집사의 말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태현과 진윤이 들어왔다.진윤은 집 안에 들어온 순간 시선이 본능적으로 고은영에게로 향했다. 고은영은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진윤과 시선이 마주쳤다.진윤은 항상 그녀에게 차가운 인상을 주었지만 이번에는 그의 눈빛에서 순간 부드러움이 스쳐 가는 것을 발견했다.하지만 진윤은 금방 시선을 거두며 배준우, 나태현과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고은영의 관심은 대부분 진윤에게 향해 있었기에 나태현이 들어오자마자 고희주에게 시선이 향했다는 것은 알아채지 못했다.사람들이 다 올라간 뒤 고은영은 다시 고희주가 밥 먹는 것을 챙겨주며 조용히 물었다.“이따가 이모하고 같이 병원에 엄마 보러 갈까?”고은영과 고은지는 비록 혈연관계는 없었지만 이 시간이 고은지에게는 아주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아이가 조영수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도 고은지는 바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었다.만약 고은영이 지금 고은지의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병원에 엄마를 보러 갈 수 있다는 말에 고희주는 두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좋아.”며칠 동안 병원에서의 일정이 바빠서 고은영은 고희주를 데려가지 않았었다.하지만 매일 병원에서 돌아오면 고희주는 자지 않고 고은영을 기다려 고은지에 대한 소식을 물었다. 그만큼 고희주는 마음속으로
아침 식사 후 고은영은 고희주를 데리고 떠났다. 배준우와 나태현, 그리고 진윤은 아직 위층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위층의 분위기는 많이 무거운 듯했다.진윤은 배준우에게 말했다.“진씨 가문 쪽은 곧 혼란에 빠질 거야. 이 일이 곧 사람들에게 알려질 거니까.”이 말에 배준우는 담배를 피우던 손을 잠시 멈췄다. 그리고서는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진윤을 바라보았다.진윤도 손에 든 담배를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정훈이가 모든 걸 알게 됐어. 어젯밤에 진씨 가문 사람들과 완전히 얼굴을 붉히고 싸웠거든.”“싸웠다고?”진정훈이 진씨 가문 사람들과 싸웠다는 말에 배준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진윤을 바라보았다.진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어. 싸웠어.”“싸울 일이 뭐가 있어?”배준우의 말투는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현재 량천옥과 진씨 가문의 상황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에 배준우는 이 시점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지 않길 바랐다. 그리고 싸울 일이 뭐가 있냐는 배준우의 말에 진윤은 미간을 더욱 찌푸리며 우울감을 드러냈다.진윤은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넌 이해하지 못해.”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한마디에 배준우와 나태현은 모두 의문이 담긴 눈빛으로 진윤을 바라보았다.그동안 진윤과 진씨 가문은 거의 단절된 상태였다.사람들은 진윤이 진씨 가문과 관계를 끊은 이유가 진유경을 진씨 가문에서 입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진윤이 입양한 진유경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 진윤은 진정훈도 가족들과 싸웠다고 말했다. 이 일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 같았다.진정훈은 줄곧 입양한 진유경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했었다.그동안 진정훈은 외국에 있으면서도 매번 국내에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진유경을 보고 싶어 했다.진정훈은 진유경에게 각종 선물을 사준 것도 모자라 진유경이 갖고 싶다는 건 뭐든지 들어줬다.그렇기에 진정훈이 진유경이 입양한 딸이라는 신분 때문에 가족들과 싸울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그렇다면 또 다
진윤이 말했다.“진유경은 진성택의 사생아야.”배준우와 나태현은 순간 사생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박경숙이 진유경을 진씨 가문으로 입양 보낸 것도 이 이후였기 때문이다.“그럼 너희 집에서는 알고 있는 거야? 넌 어떻게 알게 된 건데?”김씨 가문의 며느리가 사생아를 가졌다는 건 정말 엄청난 일이었다.지금까지 진윤이 말하지 않았기에 거의 아무도 이 사실을 몰랐다.진윤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묻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박경숙은 진성택의 첫사랑이었어. 내가 모를 리가 있겠어?”배준우와 나태현은 첫사랑의 사생아라는 말에 이 관계가 정말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그래도 배준우는 나름 이런 상황이 익숙했다. 이미 그에게는 배항준의 복잡한 관계로 인해 새엄마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나태현은 조금 달랐다.나씨 가문은 엄격한 집안 규율을 가지고 있었기에 부모님 세대는 지위와 신분에 걸맞게 행동했고 할아버지의 권위에 눌려 인생의 중요한 일에서는 감히 함부로 결정하지 못했다.지금 나태웅의 일을 아직 할아버지는 모르고 있었다.만약 할아버지가 알게 된다면 큰일 날 것이 분명했다.진유경에 관한 출생의 비밀을 들은 배준우와 나태현은 충격을 받았지만 동시에 진성택이 그동안 진유경을 왜 그토록 아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진유경은 첫사랑의 딸이었고 게다가 첫사랑은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진성택에게 있어 감정적으로 도리에 맞는 일이었다.이 순간 서재의 답답한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나태현은 눈살을 찌푸리고서는 진윤에게 말했다.“네 할머니는 그동안 진유경을 많이 예뻐하셨는데 당시에는 왜 박경숙과 너희 아버지가 만나는 걸 반대하신 거야?”이 사실은 나중에 상당 부분 밝혀지지 않았지만 당시 이 일을 아는 사람은 꽤 많았다.박경숙이 결국 진성택과 함께하지 못한 것은 완전히 김영희가 방해했기 때문이다.김영희에 대해서 말이 나오자 배준우도 진윤을 바라봤다.김영희가 그동안 진유경을
배준우도 오늘 나태현이 왜 진윤과 함께 자기를 찾아왔는지 몰랐다.진윤이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을 보고 배준우는 미간을 찌푸렸다.“태웅이 아직도 매하리에서 장선명과 안지영을 찾지 못했어요?”나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못 찾았어.”못 찾았기에 아직도 잠잠한 것이었다.매하리는 정말 넓고 광활한 지역이었다. 거기에 관광지도 엄청나게 많은 곳이다.나태웅이 드넓은 산속에서 장선명과 안지영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나태웅의 얘기를 꺼내자 배준우도 머리가 아팠다.“태웅이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감정적으로 변한 건지 모르겠네요.”전에 나태웅이 동영 그롭에서 일할 때는 아주 잘 지냈었다.예전 이야기가 나오자 나태현은 잠시 멈칫하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너한테서 배운 거겠지.”배준우는 나태현의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태현을 바라보았다.나태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컵을 들어 물 한 모금을 마시며 말했다.“확실해. 너한테서 배운 거야.”배준우는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나태웅이 자기를 보고 배웠을 가능성이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그와 고은영이 어떻게 지금까지 오게 됐는지 모든 과정을 나태웅이 전부 지켜봤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래도 배준우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은영이와 안지영은 다르죠. 태웅이가 정말 모든 걸 따라 배웠다고 생각해요?”배준우와 고은영 사이에는 꽤 많은 일이 있었지만 남성에서 있었던 일로 상황이 모호해졌었다.만약 배준우는 남성에서 그날 밤 함께 있었던 여자가 고은영이라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애를 먹지도 않았을 것이다.나태웅도 이 사실은 모두 알고 있었다.그렇기에 고은영과 안지영이 다른 성격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태웅은 같은 방법이 통할꺼라고 생각한 걸까?나태현은 손에 들고 있던 물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됐어. 태웅이 얘기는 그만하자. 머리만 아프지.”나태웅의 얘기가 나오자 나태현은 그 어느 때보다 머리가 아팠다.나태현은 나태웅의 형이 아니라 거의 아버지 같은 존재
고은영은 가슴이 철렁해서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그러자 눈에 들어온 것은 쓰레기통 안에 가득 쌓인 피 묻은 휴지들이었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왜 갑자기 이렇게 많은 피를 토하는 것일까?고은영은 가슴이 심각하게 떨렸다.간호사 중 한 명은 계속해서 정리했고 다른 한 명은 고은지를 달래고 있었다.고희주는 옆에서 겁에 질린 채 울고 있었다.고은영은 그 모습을 보고 다급히 달려가 고희주를 품에 안았다. 병실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민초희는 와서 상황을 보고서는 다급하게 의사를 불러왔다.의사가 고은지를 검사할 때 고은영은 고희주를 안고 한 편에 서 있었다.고희주는 고은영의 목을 끌어안고서는 말했다.“이모. 엄마 죽는 거야?”“아니. 그럴 리 없어.”고은영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저었다.하지만 지금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조여드는지 아무도 몰랐다.고은지가 왜 이렇게 많은 피를 토했는지 알 수 없었고 지금 의사도 긴급하게 지혈 처치를 하고 있었다.그런데 고은지의 지혈 기능에 이미 큰 문제가 발생해서 의사가 거의 30분을 치료한 끝에야 완전히 지혈할 수 있었다.병실이 다시 조용해졌을 때 공기 중에는 여전히 진한 피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고은영은 앞으로 다가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언니.”고은지는 힘겹게 고은영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은영의 품에 안겨 있는 고희주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희주 놀랐지?”방금 고은지는 정말로 아이를 놀래지 않게 달래주고 싶었지만 아무리 입을 벌리지 않으려고 해도 피는 멈추지 않고 목구멍에서 뿜어져 나왔다.고은지의 부드러운 목소리에도 고희주의 불안한 감정은 달래지지 않았다.고희주는 고은영의 품에서 나와 작은 손으로 고은지의 깡마른 손을 잡았다.“엄마 나 얼른 집에 가고 싶어. 엄마하고 같이 가고 싶어.”병원은 너무 무서웠다.고희주는 병원이 너무 무서웠고 병원에 있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 무서웠다.고열 때문에 병원에 입원한 고은지가 이렇게 오랫동안 병원에서 나갈 수 없게 될 줄
고은지의 인생을 망친 그 남자가 없어도 그녀와 조영수는 이혼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희주는 절대로 그 후에 벌어진 일들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요즘 고희주의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고은지의 마음은 더욱 심란해졌다.그 남자와 관련된 일에 대해 고은영도 지금 어떻게 고은지를 위로해 줘야 할지 몰랐다.고은영은 그저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먼저 많은 생각하지 마.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언니 몸이야.”“그 남자를 찾는 건 어떻게 됐어?”고은지가 묻자 고은영이 대답했다.“준우 씨가 아직 아무 말도 없었어. 나도 진청아 씨를 만나지 못했고. 곧 소식이 있을 거야.”진청아는 이미 당시 호텔 CCTV를 찾아 화질 복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시간이 많이 지난 일이었기에 이것도 상당히 큰 진전이었다.고은지의 창백한 모습을 보고 고은영이 말했다.“언니 푹 쉬어. 복잡한 생각 하지 말고.”원래는 고희주를 데려오면 고은지가 좀 더 편안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누구도 이렇게 많은 불쾌한 기억을 불러일으킬 줄은 몰랐다.고은지는 고희주만 보면 이 아이가 받은 상처가 떠올랐고 이에 따라 두 사람에게 이 모든 고통을 가져온 남자를 떠올렸다.모든 고통의 근원은 바로 그 남자 때문이었다.고은지는 아픈 마음으로 말했다.“조영수와의 이혼은 해방이었어. 하지만 그 남자는 우리를 지옥으로 끌어들였지.”고은영은 이 말을 듣자 가슴이 더 아프게 찌릿했다.맞다. 조영수와 이혼하는 그 순간 고은지는 온통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그때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녀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그러나 결혼식 전날 밤 사건이 터지면서 고은지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져버렸다.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는 고은지에게 지옥 같은 심연을 안겨주었고 그녀의 모든 희망도 산산조각 났다.“누구든지 이 일은 언니가 나은 후에야 해결할 수 있는 일이야. 그렇지 않아?”“응.”고은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고민하더니 물었다.“희주 공부는 어떻게 됐어?”
지금 고은지와 매칭 검사를 한 것은 량천옥과 량일 뿐이었고 두 사람도 일치하지 않으면 고은영은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저희도 방법을 찾을 테니까 병원에서도...”“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어찌 됐든 고은지는 병원장도 특별히 신경을 쓰는 환자였고 전담 전문가팀에도 배정되었다.만약 맞는 골수가 있다면 당연히 고은지를 우선시할 것이다.하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적합한 골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최악의 상황이었다. 고은영도 머리가 아팠다.그녀는 의사 사무실에서 나왔을 때 량천옥이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량일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이 순간 량천옥은 고통이 가득한 눈빛으로 고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고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량천옥을 마주하자 원래도 머리가 아팠던 그녀는 이제 더욱 숨이 막히는 것처럼 답답했다.“몇 분이라도 시간을 좀 내줄 수 있을까?”량천옥이 앞으로 다가왔다.이 말을 할 때 그녀의 목소리에는 조심스러움이 가득 묻어 있었다.고은영이 말했다.“저기 저는.”“점심시간이니까 밥은 먹어야지.”량천옥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는 병원에 오자마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고은영의 모습을 보며 도와주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몰랐다.특히 고은영이 고은지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마음이 아팠다.량천옥은 고은영이 슬퍼하지 않길 바랐지만 이 일에서는 어떻게 고은영을 도와야 할지 알 수 없었다.고은영은 그 말을 듣고 핸드폰을 보니 이미 12시가 다 되어 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여기 온 이후로 쉬지 않고 움직인 것 같은데 정작 한 일은 별로 없었지만 시간은 이렇게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고은영은 본능적으로 거절하고 싶었다.그러나 량천옥의 슬픈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랑천옥은 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눈물이 흘러나왔다.그 눈물에는 기쁨도 있었고 고통스러움도 섞여 있었다.고은지가
고은영은 량천옥의 광기를 경험해 봤기에 이제 와서는 정말 어떻게 량천옥을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고은영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돼요.”“은영아 나는.”“그리고 저한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사실 저희 사이에는 그런 말을 하는 게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요.”량천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심호흡을 했다.‘나와 은영이 사이는 그런 말을 할 수 없는 관계일까? 그럼 우리 사이에는 어떤 말이 적합하지?”“나도 알아. 솔직히 말해서 내가 너의...”여기서 말을 멈춘 량천옥은 고은영을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나의 엄마라고? 내가 딸이라고? 량천옥이라는 사람이 엄마가 될 자격이 있나?’그동안 량천옥이 고은영에게 저질렀던 일들 때문에 고은영이 얼마나 상처받고 마음 아파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네 말이 맞아. 우리 지금은 이런 얘기하지 말자.”량천옥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고통스러운 가슴을 억눌렀다.그동안 그녀는 계속 이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했다.량천옥은 이 순간 고은영의 침착한 모습을 보니 지난 세월 동안 자신이 무엇을 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소위 말하는 덕을 쌓는 것이 예전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지금 이 순간 량천옥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량천옥이 그 많은 악행을 저지르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결국 자기 친딸을 힘들게 만들었다는 것을 말이다.결국 고은영은 고은지 때문에 입맛이 별로 없어 대충 음식을 먹었다. 고은영이 억지로 먹는 모습을 본 량천옥은 다시 걱정하며 물었다.“입맛에 안 맞니?”“아니에요.”고은영이 고개를 젓자 량천옥이 말했다.“고은지 때문에 그러니? 걱정하지 마. 매칭에 성공하면 내가 꼭 기증해 줄게. 그리고.”량천옥은 여기까지 말하고서는 다시 고은영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나도 고은지한테 맞는 골수를 찾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곧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 와서 매칭 검사를 받을 테니까 곧 일치하는 골수를 찾을 수 있을 거야.”량
고은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태현 씨는 량천옥이 언니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지.” 이 일은 병원에서도 크게 떠들썩하게 된 사건이라 나태현 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배준우는 고은영을 쳐다보며 이어서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나태현과 고은지의 거래가 량천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맞아요. 언니가 천락 그룹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 량천옥이 아직도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그 말투에 분노가 가득했어요.” 고은영은 고은지의 분노에 대해 말을 꺼내면서 마음속이 더욱더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나태현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고은영은 머릿속이 완전히 엉켜버렸다. 그녀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배준우도 지금은 완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준우 씨가 나태현 씨에게 언니와 한 거래가 무엇인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그리고 희주가 본인 딸인 걸 알고 지신혜 씨와 약혼도 할 건데 왜 언니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지도 물어봐 줘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고은영은 공포감을 느꼈다. 그녀는 고은지에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량천옥에 대해 강한 증오를 느끼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가 나태현 형에게 물어볼게. 너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언니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안 돼. 내가 먼저 나태현이랑 얘기하고 나서 말해.”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고은영이 말한 대로 지금은 최소한 나태현이 고은지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만든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럼 빨리 물어봐요.” “응, 알았어.”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그녀는 거대한 음모가 고은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윤은 밖에서 시간을 확인했고 배준우가 10분 내로 나오지 않으면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문득 고은영이 대문 쪽에서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에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진윤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은영이 가까워졌고 그녀는 진윤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큰오빠.” ‘큰오빠’라는 단 한 마디에 진윤의 마음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준우 찾으러 온 거야?” 고은영은 너무 오랫동안 뛰어왔는지 호흡이 가빠졌고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안에 있어요?” “응, 안에 있어. 지금은 들어가지 마.” “왜요?” 고은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진윤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나태웅이랑 얘기 중이야.” “네? 나태웅이요?” 그 이름이 나오자 고은영의 말투도 달라졌다. 그녀는 전에 나태웅과의 영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에게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가 최근 동안 안지영을 괴롭힌 일이 떠올랐다. 고은영과 안지영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안지영이 화가 나면 고은영도 같이 화를 내주었다. 진윤은 그녀가 나태웅을 언급할 때의 그 표정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나태웅을 싫어해?” “싫어해요!” 고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 전에 그녀가 배준우와의 일에 그렇게 괴로워했던 건 대부분 나태웅 탓이었다. 정말 그땐 너무 힘들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고은영은 그 당시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배준우는 이미 안에서 나왔다. 고은영을 보고 잠시 멈칫한 뒤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바로 왔어?” “준우 씨 찾으려고요. 급한 일이 있는데 전화도 안 받았잖아요.” 고은영은 불만을 섞어 말했다. 배준우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윤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나태웅이 혼자 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고요함은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그는 전화를 꺼내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전화는 바로 차단되었다. 그는 다시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사무실에서 안열은 겨우 안지영을 달래놓은 상태였다. 전화의 진동에 안열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안지영도 전화를 확인하고 또다시 통제불능이 되었다. 안열은 안지영이 또 움직일 것 같아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흥분하지 마요. 바로 차단할게요.” “받아요. 이 미친놈이 뭐라는지 봐야겠어요.” 안지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안열은 입꼬리를 떨구며 말했다. “그냥 받지 말죠?” 안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받아요!”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안지영의 말에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열은 안지영을 한 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지영 지금 옆에 있나요?” “없어요!” ‘없어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나태웅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뺏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욕하고 나씨 가문이 망하길 저주했다. 하지만 손을 뻗자마자 안열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한 마디만 전해줘요.” “말하세요.” “안지영은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 번째는 오늘 밤 킹덤 타운을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늘 밤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는 겁니다.” “이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마음을 바뀌었어요.” 안열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안지영은 분노에 가득 찼고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안열의 손을 떼며 전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태웅, 너 이 미친놈! 꿈도 꾸지 마!” “그래, 그럼 하늘 그룹이 네 손에서 얼마나 있을지 지켜보자고!” “너 이 자식, 내가 너의 조상을 건드렸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네!” 안열은 안지영의 욕설을 듣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주원에게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고?’ 배준우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너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뭐냐고?” 항상 사고가 명확하던 배준우가 지금은 나태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한 나태웅인데 지금 그를 보니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안지영이 하주원에게 손을 댄 문제를 신경 써야 하는 걸까? 그와 안지영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아직 명확히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나태웅은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달라고만 말했다. 배준우는 담배 한 개비를 던져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태웅은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했다. 그는 아직까지 안지영과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이가 틀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리석은 여자...!’ 만약 그때, 그녀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했다면 그는 결코 그녀가 배준우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준우의 사람들에게 의지하려 했었다.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뒤 물었다. “너는 안지영과 장선명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하주원 문제에서는 하주원을 도와주고 있잖아?” 그가 잠시 고심한 끝에 결국 핵심을 짚어냈다. “그건 전혀 다른 얘기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배준우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르다고?’ 원래는 명확하게 사고하는 배준우였지만 나태웅의 말에 혼란스러워졌다. 나태웅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주원 문제에서 안지영이 반드시 사과해야 해.” 이 말을 듣고 배준우는 머리가 아팠다. 나태웅은 이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배준우는 담배를 다 피운 후 천천히 말했다. “너는 이걸 두 가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들 세계에서는 이것은 분명히 한 가지 문제야.” “안지영은 도
방금 안열이 장선명더러 처리하라고 했을 때의 그 걱정은 이제 안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든 말든 지금은 나태웅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한편, 캘리포니아 반도의 한 장소에서는 배준우와 나태웅이 함께 있었고 진윤과 육범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달 만에 다시 모인 이들이 장선명이 아닌 나태웅을 부른 이유는 사실 그들 모두 나태웅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태웅을 불러내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육범수가 패를 내자 나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패를 툭 치며 말했다. “난 끝났어.” 배준우는 그의 얼굴을 보고 찡그리며 물었다. “방금 그 전화, 안지영이었지?” 방금 나태웅은 나가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안지영이었다. 배준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응.” “너 또 안지영 건드린 거야?” 사실 오늘 배준우가 여기 온 이유는 장선명의 부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장선명은 나태웅과 장씨 가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태웅이 이렇게 계속 안지영을 괴롭힌다면 일이 커질 것이다. 장선명은 본래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태웅의 이 일에 대해서는 배준우를 생각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지금 하주원의 문제도 있고 나태웅의 행동이 점점 더 미쳐 가는 상황이라 걱정이 컸다. 나태웅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육범수에게 말했다. “너 나한테 만 이천 원 줘야 돼.” 배준우는 말문이 막혔다. 육범수도 나태웅이 안지영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진윤은 본래 남의 일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성격이다. 본인의 가문 일도 충분히 골치 아팠기에 그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형이 얘기하잖아. 말 좀 해봐. 대체 안지영에 대해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지만 육범수는 달랐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이기에
안지영은 화가 나서 전화를 부수고는 바로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안열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앞으로 나가서 잡았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나태웅을 죽여야겠어요!” ‘아, 진짜 더는 참을 수 없어.’ 나태웅은 정말 죽어 마땅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손으로 그를 찢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대표님은 아직 근육도 제대로 안 키우셨잖아요. 나태웅을 찢어낼 힘이 있을까요?” 원래도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안열의 말에 더 화가 나버렸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더는 못 참겠어!’ 안열은 안지영이 방향을 잃고 분노만 가득한 상태를 보고 바로 말했다. “이건 결국 넷째 도련님께 말씀드려야 할 문제예요.” “또 장선명 씨더러 처리하라고요?” 장선명의 수법은 이미 잘 봤다. 그는 가장 잔인한 방법을 써서 그녀조차도 반응할 틈 없이 모든 것을 정리해버린다. 그래서 만약 이 문제를 장선명이 처리하면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일들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건, 안돼요!” 안지영은 손을 휙휙 내저었다. 장선명은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조건 밀어붙일 것이다. 그건 안 된다. “왜요?” “그거 기억 안 나요? 지난번에 장선명 씨가 그렇게 처리했을 때 그 몇 억을 가지고 나태웅을 미쳐버리게 만들었잖아요. 이제 나태웅은 진짜 미친 사람이에요.” 특히 지금 그의 행동들은 안지영 마음속에 그가 정말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라, 이 이유가 참 적합하네.’ 안열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안지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번에도 강하게 나가면 그 사람은 진짜 미칠거예요. 그럼 우리 모두 큰일 난다니까요!” “혹시 대표님은 무서운 건가요?” “무섭지 않아요. 그런 문제는 제가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안지영은 화가 나서 말투가 거칠어졌다. 아까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태웅의 집안까지 욕을 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이미 화가 나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해봐, 정말이야?” 다시 입을 열었고 그의 말투에는 위험한 기운이 감돌았다. 전화가 아니라 만약 눈앞에 있었다면 안지영은 나태웅이 자신을 바로 목 졸라 죽일 것 같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안지영!” “난 장선명 씨와 약혼한 상태야.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너는 네 사촌 걱정이나 해. 내가 너희 나씨 가문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보네. 여자는 불여우처럼 순수한 척, 남자는 정신병자에 하나도 좋은 게 없어. 그 뿌리가 다 썩었어!” 그녀는 작은 입술로 욕을 퍼부었다. 안열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이 저절로 떨렸다. 아까는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더니 지금은 완전히 미친 듯이 말하고 있었다. 안지영은 정말로 미친 듯이 화가 난 상태였다. “사과하라고? 대체 누가 누구한테 사과해야 하는 건데! 내 아버지는 아직 병원에 누워 있고 네 사촌은 와서 날 때렸는데 나더러 사과하라고? 너희 나씨 가문 집안 교육이 이 모양이야? 다 멍청이들이야?” 이제는 나태웅의 조상까지 욕을 먹었다. 안지영의 이 폭발적인 성격에 안열은 이제야 제대로 실감했다. 안지영은 욕하는 건 진짜 잘했다. 이제는 나씨 가문이나 하씨 가문, 심지어 그들의 조상까지도 욕을 먹었다. 그녀의 거침없는 욕설을 들으며 나태웅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갔다. 그리고 안지영의 입은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폭풍처럼 계속 퍼부어졌다. 한참 동안 욕을 쏟아내고 겨우 숨을 골랐다. “더 욕할 거야?” 그의 말투는 안지영의 폭발적인 분노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차갑고 차분했다. “하, 왜? 더 듣고 싶은 거야? 너...” “더 욕할 거 없으면 내일 병원에 같이 가자.” 그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냉랭했다. ‘젠장, 이 사람은 정말 사람 말을 못 알아듣나?’ “나더러 사과하라고? 생각도 하지 마! 꿈도 꾸지 마!” 꿈속에서도 사과할 일 없을 것이다. “그럼, 한 가지 말할 게 있어.” “뭔데
안지영과의 대화를 끝낸 후 고은영은 마침내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더 이상 불안하게 이리저리 쫓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안지영은 여전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고은영을 달래고 나서도 심장이 가라앉을 틈도 없이 나태웅의 전화가 집 전화로 걸려왔다. 그녀는 번호를 볼 수 없어서 그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틀 남았어.” 그 한 마디에 안지영의 화가 폭발했다. “뭐라는 거야?” “주원이에게 사과해!” 안지영은 입을 다물었다. ‘이 미친놈! 끝까지 이러는 거야?’ 만약 예전 같았으면 안지영은 그에게 말도 안 되는 반격을 했겠지만 지금은 화가 나서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다. 안열이 들어왔을 때 안지영은 얼굴이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배씨 부인 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안열은 안지영이 이렇게 감정적으로 불안한 이유가 결국 고은영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감정은 조금 달랐다. 안지영은 고은영으로 인해 말문만 막힐 정도였고 다른 사람 때문이라면 분명 엄청 화를 낼 것이다. “아니에요!” 사실 고은영에게 생긴 일도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녀의 세상은 너무나 복잡했고 고은영이 또 울기 시작할지도 몰랐다. 안열은 안지영의 목소리에서 누그러지지 않는 화를 느끼며 궁금해했다. 고은영이 아니라면 또 누가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인지 궁금했다. “그럼 도대체 무슨 일이죠?” “나태웅이 나더러 하주원에게 사과하라고 했어요. 이틀밖에 안 남았다면서요.” ‘이 사람이...!’ 나태웅에게 욕을 할 만큼 다 했는데도 그를 물리칠 수 없었다. 지금 안지영은 연달아 욕할 힘조차 없었다. 그의 존재를 설명할 만한 적절한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미친놈? 병신?’ 안열은 놀라며 물었다. “뭐라고요? 사과요?” ‘정말 이 사람 끝까지 그러는 거야?’ 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제가 왜 사과를 해야 하죠?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얼마 전 나태웅의 집착과 하주원
안지영은 잠시 침묵했다. 이렇게 큰일이면 분석하는 데 얼마나 큰 두뇌 용량이 필요할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고은영이 울려고 할 정도로 급해진 게 이해가 갔다. 자신이라도 정말 울고 싶을 정도였다. ‘이게 도대체 뭐야, 진짜?’ “그럼 나태현은 량천옥이 너희 언니의 친엄마라는 걸 알아?” “그건 나도 몰라.” 상황이 이미 너무 복잡해서 이젠 고은영조차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나태현과 고은지가 거래를 했다는 것만 봐도 그의 동기는 좀 의심스럽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이제 지신혜와 결혼을 약속했고 고은지를 천락 그룹에 다시 데려가려 했다. 그동안 고은지가 천락 그룹에서 일했던 전력도 있으니 나태현의 속셈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게 분명했다. 안지영은 고민하다가 말했다. “음, 난 네가 차라리 네 언니에게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지금 말해?” “그럼, 무조건 말해야지! 량천옥이 아무리 미워도 네 언니의 친엄마잖아.” 진실을 알게 된 후 고은지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녀의 자유다. 하지만 지금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 계속 숨기면 만약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고은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태현이 구희주의 아빠라는 사실은?” “그건, 생각 좀 해볼게!” ‘이건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말하지 말아야 할까?’ 안지영은 바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지금 일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태현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역시 나씨 가문 사람이야. 어쩜 다들 이렇게 나쁜 자식이지?’ 전에는 나태현이 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 보니 하나같이 나쁜 자식들이었다. “그래도 얘기하는 게 좋겠어!” 이렇게 큰일을 말 안 하면 나중에 얼마나 큰일로 번질지 알 수 없었다. 안지영은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었다. 그래서 고은영더러 고은지에게 모든 일들을 잘 설명해 주라고 말했다. 어차피 고은지는 지금 모든 결정을 내린 상황이었고 아무런 일도 모르는 전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