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정말 천생연분이라는 걸까?둘 다 험한 말을 내뱉으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은 나쁘다고 탓할 수 있는 걸까?진정훈은 고은영의 앞에서 배준우와 대면하고 싶었지만 지금 이 두 사람이 서로 말하는 것을 듣고 진정훈은 이곳으로 온 목적을 말할 수 없었다.고은영은 이 상황을 보자마자 두 아이를 데리고 서둘러 도망쳤다.“거기 서.”진정훈은 고은영이 도망치는 뒷모습을 보고 정말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은영이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배준우는 진정훈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진정훈 이제 그만해. 대체 어디까지 소란을 피울 거야?”진정훈은 바닥에 던져지며 순간적으로 멍해졌다.고은영이 떠나자 진정훈은 배준우를 바라보는 눈빛이 더욱 사나워졌다.진정훈은 바닥에서 일어나면서 서류 가방을 배준우의 머리 쪽으로 세게 던졌다.하지만 배준우는 그 서류 가방을 잡아챘다.이어서 진정훈는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량천옥의 딸이라고? 네가 직접 봐봐. 이게 무슨 량천옥의 딸이야?”배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진정훈은 지금 이미 이성을 잃었다.그는 이 검사 결과를 얻은 뒤 바로 배준우를 찾으러 왔다.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배준우가 자신들을 속였다는 생각뿐이었다.고은영은 애초에 량천옥의 딸이 아니었다.“배준우 넌 머릿속으로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생각을 해? 감히 보고서를 조작하다니. 넌 그렇게 고은영이 량천옥의 딸이길 바랐어?”배준우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량천옥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다시 상기시켜 줘야 해? 어?”진정훈은 말하면 할수록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전에 배준우와 량천옥이 서로 죽일 듯이 싸웠을 때 배준우가 량천옥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강성 전체가 다 알고 있을 정도였다.그런데도 배준우는 여전히 고은영이 량천옥의 딸이라고 믿는 걸까? 배준우는 정말 미친 것 같았다.배준우는 서류봉투 안에 들어 있는 검사 보고서를 꺼내 한 번 살펴봤다.그의 눈빛이 어둡게 빛났다.진정훈은 더 이상 배준우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엘리베이터 쪽으로
단지 검사 결과 하나로 배준우는 이제 진씨 가문 전체를 의심하고 있었다.배준우는 진정훈의 화가 잔딱 난 모습을 보면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가서 조사해 봐. 배후에 있는 사람은 샘플이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면서 결과를 조작했네. 정말 많이 당황했나 봐.”진정훈의 호흡이 거칠어졌다.배준우는 진정훈과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그냥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너무 아름다운 외모 아래에는 항상 날라 운 비밀이 숨겨져 있는 법이야.”배준우는 말을 마친 뒤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엘리베이터에 타면서 배준우는 잊지 않고 경비원에게 전화를 걸어 진정훈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했다.진정훈은 이 순간 더 이상 동영그룹 안으로 쫓아가서 고은영을 만날 생각은 하지 않았다.그는 배준우의 말을 듣고서는 온몸에 피가 거꾸로 흐르는 느낌이 들며 머릿속이 하얘졌다.진정훈은 누군가 조작을 했다는 것은 믿지 않았지만 그 샘플을 집으로 가져갔을 때 상황을 떠올려봤다.가장 처음 이 사실을 안 사람은 그의 할머니였다.당시 진정훈은 할머니에게 말했다.“여동생하고 관련된 샘플이에요. 만약 예상이 맞다면 이번에는 정말로 맞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샘플 결과만 일치하면 동생을 바로 찾을 수 있어요.”‘그때 할머니의 표정이 어땠지? 할머니가 뭐라고 했었는데?”할머니는 진정훈에게 말했었다.“그래? 정말 좋은 일이네.”할머니는 얼굴에 얕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당시 진정훈은 아무런 이상을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오랫동안 잃어버린 손녀에 대한 할머니의 반응이 너무 평온했다.진정훈은 누군가 조작을 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방금 배준우가 샘플이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고 누군가 당황해서 조작한 것 같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진정훈은 머리가 얼얼해지는 것 같았다.그는 호흡이 점점 불안해지더니 결국 온몸이 자기도 모르게 떨리기 시작했다.진정훈은 이런 결과가 아니길 바랐지만 지금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량천옥은 천천히 진정훈의 앞으로 다가갔다. 단발머리를 한 그녀는 여장부 특유의 기세를 뿜어냈다.량천옥은 진정훈의 차 상태를 살피더니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이건 확실히 내 책임이네요. 도련님 보상을 원하시면 청구서를 나한테 보내요.”“당신...”진정훈은 더욱 화가 났다.량천옥의 말을 들어보면 그녀도 자신의 책임인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당연히 일부러 그런 것이니 그녀의 책임이 맞았다.진정훈이 말하기도 전에 량천옥은 또 무심하게 덧붙였다.“보험 처리하지 마세요. 만약 도련님이 만족스럽지 않으시면 보상으로 차를 한 대 새로 뽑아드려도 돼요.”진정훈은 이미 너무 화가 나서 말을 할 수 없었다.상대가 남자였다면 진정훈은 망설임 없이 주먹을 날렸을 것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여자였다.진정훈이 말했다.“그럴 필요 없습니다. 진씨 가문 그 정도 돈은 필요 없어요.”“도련님 왜 그렇게 말하세요? 역시 부족함이 없어서 그렇게 거리낌 없이 뻔뻔하게 행동할 수 있는 건가요?”진정훈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이 여자가.’진정훈은 량천옥의 웃음기 어린 서신을 마주한 순간 큰형이 량천옥의 무서움에 대해 했던 말이 떠올랐다.이렇게 보니 량천옥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다.그가 말을 하기도 전에 량천옥은 무심하게 물었다.“진유경의 다리는 어때요?”진정훈이 말했다.“그쪽이야말로 너무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너무 욕심을 부리면 나중에 자기가 저지른 잘못의 대가를 치르게 될 테니까요.”“맞아요.”량천옥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내가 지금 자기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잖아?’량천옥은 지난번 자기가 저지른 일이 진씨 가문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씨 가문 사람들이 계속 배준우의 주위를 맴도는 것 같았다.진정훈은 더 이상 량천옥이 뭐라고 하는지 듣고 싶지 않아 차를 타려고 했다.그런데 몸을 돌리자마자 량천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도련님한테 솔직하게 말할게요. 배준우는 내 사위예요.”진정훈은 무의식
하지만 진정훈은 진유경이 그보다 먼저 동영그룹에 도착해서 이미 위층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진유경은 얼굴에 조롱이 가득 담긴 미소를 짓고서는 먼저 고은영에게 다가갔다.“사모님 본인 자리가 많이 걱정되시나 봐요? 애를 낳자마자 회사에 데리고 오셨어요? 이렇게 잘 지키면 사람이 자기 것이라도 되는 줄 아시나 봐요?”고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얼굴이 바로 어두워졌다.그녀는 아기를 뒤에 서 있는 도우미에게 건네준 뒤 고희주에게 말했다.“희주야 아줌마하고 동생 데리고 들어가 있어.”“응.”고희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도우미는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을 눈치채고서는 서둘러 두 아이를 데리고 들어갔다.멀지 않은 곳에 있던 진청아는 그 말을 듣고서는 바로 고은영의 뒤로 다가왔다.“저 아가씨는 누구시죠?”진청아는 진유경을 알아보지 못한 듯했다.아까 진유경은 위로 올라오기 위해 민초희를 찾으러 왔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진유경은 고은영을 보고서는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저희 얘기 좀 할까요?”하지만 진유경의 눈빛에는 조롱의 뜻이 가득 담겨 있었다.고은영도 당연히 진유경이 무슨 말을 하려고 찾아왔는지 알고 있었다. 고은여이 대답하기도 전에 진청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저 아가씨 지금 당장 나가주세요.’진유경은 진청아를 무시하고서는 고은영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사모님께서 대답이 없으시네요. 내가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무서워요? 고작 이런 걸로 겁을 먹으면서 자신이 준우 씨 옆에 있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마주해야 할 일들이 많을 텐데 해낼 수 있을까요?”진유경은 말하면 할수록 점점 더 조롱의 뜻이 깊어졌다. 진씨 가문 사람들은 그녀가 배준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안 뒤로 그녀가 배준우와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 진씨 가문에서는 진유경을 예뻐했기에 배준우가 진유경이 함께 할 때는 서로 깨끗하게 정리된 상태에서 만나길 바랐다.게다가 그때는 배준우의 마음속에 이미월이 있었고 옆에는 고은영이
갑자기 나타난 진유경을 보고 배준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온몸으로 차가운 분위기를 뿜어냈다. 진유경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큰오빠가 일이 있어서 나한테 직접 준오 오빠하고 얘기하라고 했어요.”고은영은 고개를 돌려 진유경이 의도적으로 배준우에게 달라붙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진유경하고 준우 씨는 도대체 친한 거야 안 친한 거야? 내가 준우 씨 옆에 이만큼 오랫동안 있었는데 왜 몰랐지?’지금 진유경의 이런 태도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뻔뻔함일까?고은영의 싸늘한 눈빛을 마주친 배준우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계집애 화 났네.’배준우는 바로 진유경의 팔을 풀어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무슨 말을 하든지 그만두고 당장 꺼져.”배준우의 차가운 목소리가 진유경의 열정적인 태도와 강한 대립을 이뤘다. 진유경은 배준우가 이렇게 자기를 무례하게 대할 줄은 몰랐다.‘내가 아직은 그래도 진씨 가문의 딸인데도 이렇게 날 대하는데 만약 진씨 가문에서 친딸을 찾아서 데려오면 나와 준우 오빠는 더 기회가 없을 거야.’여기까지 생각한 진유경은 호흡이 불안정해졌지만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준우 오빠 왜 날 환영하지 않는 거예요? 근데 어떻게 해요? 큰오빠가 나한테 오빠를 찾아가라고 했는데. 오빠 내 말을 듣고 싶지 않더라도 큰오빠가 나한테 무슨 말을 전하라고 했는지 들어보지도 않을 거예요?’진유경은 진윤과 배준우의 관계가 좋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진윤의 핑계를 대고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이 순간 진유경이 아무리 진윤의 핑계를 대고 찾아왔다고 해도 배준우는 여전히 그녀를 별로 상대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배준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진청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어떻게 들어온 거야?”그 말투의 뜻은 명백했다.진유경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준오 오빠가 왜 이렇게...’진유경이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진청아가 먼저 말했다.“이분은 민초희 씨를 찾아왔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진유경을 알아보지 못한 건 진청
진유경은 진청아의 차가운 태도에 더욱 화가 나서 흥하고 콧방귀를 뀌며 떠났다.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마음속으로 진청아를 어떻게 혼내줄지 생각하고 있었다.진청아는 진유경의 뒷모습을 보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침부터 이런 미친 여자를 만난 것이 어이가 없었다. 그녀는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랐지만 결국 아침부터 운이 안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다.지하 주차장에서 량천옥은 진정훈이 부서진 차를 타고 떠나는 것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량천옥은 핸드폰을 꺼내 진유경에게 전화를 걸었다.마침 엘리베이터에 있던 진유경은 량천옥에서 온 전화를 보고 비웃음을 지었다.진유경은 전화를 받았지만 말투가 전보다 열정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조령 섞인 말투였다.“여사님 안녕하세요.”이제는 어머니라고 도 부르지 않았다. 이로써 진유경도 량천옥에게는 더 이상 어떤 지름길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량천옥은 진유경의 가식적인 모습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그리고 량천옥은 한 번도 유청과 자신을 비교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진유경은 자기가 유청에게 접근하면 량천옥이 불쾌해할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진유경의 조롱 섞인 말투를 들은 량천옥더 더 이상 예전처럼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비웃음을 날리며 말했다.“입양한 딸은 입양한 딸일 뿐이야. 아무리 수년 동안 귀하게 자라도 여전히 핏속에 흐르는 천박한 근성은 바뀔 수 없지.”전화를 받은 진유경은 량천옥의 명백한 욕을 듣고서는 그대로 얼어붙었다.‘이 여자가 정말.’진유경이 입을 열기도 전에 량천옥이 계속 말을 이었다.“배준우와 고은영은 이미 결혼했어. 너도 나처럼 세컨드가 돼서 욕먹고 싶지 않으면 더 이상 접근하지 마. 그래야 모두가 평화로워져.”세컨드라는 단어는 진유경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다음 순간 진유경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여사님 너무 하시네요.”‘감히 내가 자기 같은 세컨드라고? 뭐가 같아?’진유경은 분노를 참으며 계
진씨 가문과 배씨 가문의 혼인은 이전부터 량천옥이 주도했었다. 배준우와 진유경은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었다.진유경이 오늘 스스로 먼저 찾아온 것은 배준우도 의아했다.“흥.”고은영은 흥하고 콧방귀를 뀌며 여전히 배준우에게 삐져있었다. 비록 진유경과 배준우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방금 진유경이 배준우의 팔짱을 끼는 모습을 보고도 어떻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을까?배준우는 그녀의 작은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정말 화났어?”‘괜찮네. 이 계집애가 이제는 내 앞에서 다른 여자 때문에 화도 내고.’배준우는 비록 억울했지만 기분이 좋았다.그는 고은영의 입술에 키스하며 말했다.“화 안 내면 안 돼? 나하고 진유경은 아무런 관련도 없어.”“근데 진유경이 계속 준우 씨한테 질척거리는 게 화가 나요.”고은영은 투덜거렸다.그녀가 화가 난 이유를 직접적으로 말하자 배준우는 이상하게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배준우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나도 화가 나. 모르는 사이인데도 질척거리네.”“이런 여자들은 왜 이러는 거예요?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 있어요?”사실 고은영의 마음속에서는 진유경이든 이미월이든 모두 뻔뻔했다. 예전에는 이미월에 대해 고은영도 뭐라고 할 수 없었지만 진유경은 정말 역겨웠다. ‘진유경이 준우 씨하고 친해? 뭘 보자마자 친한 척이야? 그것도 내 앞에서 세컨드처럼 행동하는 거야?’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너무 뻔뻔해. 자기야 화내지 마. 응?”이 순간 배준우는 최대한 고은영을 달래려고 애썼다. 그녀는 성격이 좋았지만 일단 화가 나면 달래기 어려웠다. 배준우는 고은영과 다투고 싶지 않았다. 배준우는 마음속으로 진씨 가문 사람들에 대한 혐오가 더욱 커졌다.“그리고 진정훈도 말이에요. 진정훈도 봐요.”진정훈을 떠올리자 고은영은 더욱 화가 났다.‘뭐? 진유경은 오늘 진정훈이 준우 씨를 믿게 만들어서 나와 완전히 끝낼 거라고 생각했나? 그러면 자기한테도 기회가 생길 것 같아서? 이런 사람들
나 대표라는 말에 고은영은 자연스럽게 나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태현 얘기를 꺼내자 고은영은 나태웅을 떠올렸다.전에 화사에 있을 때 그녀는 성격이 악랄한 나태웅을 정말 싫어했었다.그 당시 고은영과 안지영은 나태웅 때문에 미쳐버릴 정도로 놀라는 일들이 많았었고 지금도 나태웅은 변함없이 짜증 나는 존재였다.하지만 나태현이 왔다는 말에 고은영은 궁금했다.“왜 왔어요?”진청아는 고개를 저었다.“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두 분이 사무실에서 얘기를 나누고 계십니다.”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고 하니 고은영도 방해가 되지 않도록 사무실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고은영은 마음속으로 고은지가 걱정되어 아기를 도우미에게 맡기고서는 고희주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방금 차에 탔을 때 안지영에게서 전화가 왔다.전화에서 안지영은 나태웅이 얼마나 악랄한지 얘기했다. 나태웅이 그녀를 고소하려 한다며 같이 맞서 싸우겠다고 말에 고은영은 머리가 아팠다.“너 그 사람하고 싸우지 마. 내 생각에는 끝이 없을 것 같아.”고은영은 나태웅을 아주 악랄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를 상대하면 할수록 그는 더욱 열광적으로 달려들 것 같았다.“은영아 내가 나태웅하고 싸우려는 게 아니라. 나태웅이 나한테 달려드는 거야.”안지영은 다급하게 얘기했다.‘내가 나태웅과 싸우는 거라고? 말도 안 돼. 그 개자식이 미친 것처럼 날 물고 늘어지는 건데.’어제 안열이 나태웅을 찾아가 얘기를 나눈 뒤 너무 화가 나서 얼굴이 어두워진 것을 보고 안지영은 더욱 조급해졌다.‘누구는 안 끝내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아?’이렇게 악랄한 남자를 그녀도 피해 가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너 어제 나태웅이 안열한테 어떤 욕을 했는지 몰라서 그래. 나태웅이 안열한테 개라고 했대. 남자가 말이야 여자한테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길거리 양아치하고 무슨 차이가 있는데?”고은영은 할 말이 없었다. 나태웅을 길거리 양아치라고 하는 건 정말 하나도 틀린
하지만 진성택은 다르다. 결국 그녀와 혈연관계가 있기 때문에 배준우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 시간 후, 배준우는 고은영을 밀크티 가게에 데려다주었다. “내가 같이 들어갈까?” 배준우가 물었다. “준우 씨는 그냥 기다려요. 당신을 보면 아마 바로 저세상으로 갈지도 몰라요.” ‘이 녀석 입이 참!’ 하지만 고은영이 말이 맞았다. 예전에 진성택과 량천옥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면 진성택은 항상 배준우에게 진유경을 미래의 아내로 삼으라고 했었고 그때 배준우는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은영과 결혼했다. 지금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진성택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운명의 미묘함을 탄식할 것인가? 아니면 진유경 때문에 속상해할 것인가? 고은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눈에 보였다. 작은 원탁 옆에 앉아 있는 진성택이. 그는 손에 밀크티를 들고 있었다. 고은영이 두 걸음 내딛자마자 진성택도 그녀를 보았다. “왔니?”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랜만에 본 그의 얼굴은 확실히 더 노화되어 보였고 얼굴색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히나 얼굴이 누렇게 변했고 예전만큼 눈빛도 밝지 않았다. 고은영은 이제 막 기운이 다 빠진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진성택은 확실히 지금 당장이라도 세상을 떠날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아마 이번이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은영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이거 마실 수 있어요?” 진성택은 손에 들고 있던 밀크티를 문득 깨닫고 곧바로 그녀에게 건넸다. “너를 위해 샀어. 여자애들은 다 밀크티 좋아하잖아. 너도 좋아하지?”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밀크티는 그녀의 가장 좋아하는 음료였다. 그런데 배준우와 결혼한 이후로 배준우는 그녀가 밀크티가 몸에 안 좋다며 못 마시게 했다. 진성택은 그녀가 음료를 마시지 않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사실 유경이에게 이런 걸 사준 적이 없었어. 진씨 가문의
전화 너머의 진성택은 고은영의 말을 듣고 당황해서 말문이 막힌 듯했다.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 전에는 네 감정을 고려하지 못했어.” 그 순간, 진성택은 자신이 고은영에게 대했던 태도가 문제였음을 인정했다. 고은영이 말하기도 전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은영아,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야. 큰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반응이 무뎌지는 법이잖아. 나는 그동안 계속 너를 찾고 있었어. 그런데 네 소식을 듣고 나서 어떻게 너를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네가 이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거란 건 알지만 나도 그런 감정이 싫다.” 감정과 이해라. 처음에는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되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고 쳐도 그럼 그 후에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진짜 아이러니했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오늘 내가 너를 찾은 건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 “그게 진유경의 일 때문인가요?” 고은영은 본능적으로 날카롭게 반문했다. 무슨 일이든 그가 지금까지의 태도를 어떻게 설명하든 고은영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저 지금 그가 자신을 찾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니, 네 어머니 때문이야.” 이 말은 그가 어쩔 수 없이 털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전화상에서도 고은영은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죄책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될수록 그녀는 더 비웃었다. “내가 이 시간 동안 살 수 있는 건 모두 하늘이 준 기회야. 빼앗은 기회라고 해도 될 정도로. 내가 너를 만날 기회도 얼마 안 남았지.” 그는 매우 허약해 보였다. 고은영은 눈썹을 찌푸렸고 이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진성택이 마치 도덕적으로 자신을 억지로 끌어들여서 그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자신이 그를 만나지 않으면 너무 냉정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예요?” “병원 맞은편의 밀크티 가게에 있어.” 그는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의사들이
고은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태현 씨는 량천옥이 언니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지.” 이 일은 병원에서도 크게 떠들썩하게 된 사건이라 나태현 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배준우는 고은영을 쳐다보며 이어서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나태현과 고은지의 거래가 량천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맞아요. 언니가 천락 그룹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 량천옥이 아직도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그 말투에 분노가 가득했어요.” 고은영은 고은지의 분노에 대해 말을 꺼내면서 마음속이 더욱더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나태현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고은영은 머릿속이 완전히 엉켜버렸다. 그녀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배준우도 지금은 완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준우 씨가 나태현 씨에게 언니와 한 거래가 무엇인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그리고 희주가 본인 딸인 걸 알고 지신혜 씨와 약혼도 할 건데 왜 언니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지도 물어봐 줘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고은영은 공포감을 느꼈다. 그녀는 고은지에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량천옥에 대해 강한 증오를 느끼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가 나태현 형에게 물어볼게. 너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언니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안 돼. 내가 먼저 나태현이랑 얘기하고 나서 말해.”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고은영이 말한 대로 지금은 최소한 나태현이 고은지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만든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럼 빨리 물어봐요.” “응, 알았어.”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그녀는 거대한 음모가 고은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윤은 밖에서 시간을 확인했고 배준우가 10분 내로 나오지 않으면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문득 고은영이 대문 쪽에서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에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진윤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은영이 가까워졌고 그녀는 진윤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큰오빠.” ‘큰오빠’라는 단 한 마디에 진윤의 마음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준우 찾으러 온 거야?” 고은영은 너무 오랫동안 뛰어왔는지 호흡이 가빠졌고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안에 있어요?” “응, 안에 있어. 지금은 들어가지 마.” “왜요?” 고은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진윤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나태웅이랑 얘기 중이야.” “네? 나태웅이요?” 그 이름이 나오자 고은영의 말투도 달라졌다. 그녀는 전에 나태웅과의 영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에게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가 최근 동안 안지영을 괴롭힌 일이 떠올랐다. 고은영과 안지영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안지영이 화가 나면 고은영도 같이 화를 내주었다. 진윤은 그녀가 나태웅을 언급할 때의 그 표정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나태웅을 싫어해?” “싫어해요!” 고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 전에 그녀가 배준우와의 일에 그렇게 괴로워했던 건 대부분 나태웅 탓이었다. 정말 그땐 너무 힘들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고은영은 그 당시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배준우는 이미 안에서 나왔다. 고은영을 보고 잠시 멈칫한 뒤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바로 왔어?” “준우 씨 찾으려고요. 급한 일이 있는데 전화도 안 받았잖아요.” 고은영은 불만을 섞어 말했다. 배준우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윤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나태웅이 혼자 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고요함은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그는 전화를 꺼내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전화는 바로 차단되었다. 그는 다시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사무실에서 안열은 겨우 안지영을 달래놓은 상태였다. 전화의 진동에 안열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안지영도 전화를 확인하고 또다시 통제불능이 되었다. 안열은 안지영이 또 움직일 것 같아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흥분하지 마요. 바로 차단할게요.” “받아요. 이 미친놈이 뭐라는지 봐야겠어요.” 안지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안열은 입꼬리를 떨구며 말했다. “그냥 받지 말죠?” 안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받아요!”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안지영의 말에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열은 안지영을 한 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지영 지금 옆에 있나요?” “없어요!” ‘없어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나태웅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뺏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욕하고 나씨 가문이 망하길 저주했다. 하지만 손을 뻗자마자 안열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한 마디만 전해줘요.” “말하세요.” “안지영은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 번째는 오늘 밤 킹덤 타운을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늘 밤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는 겁니다.” “이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마음을 바뀌었어요.” 안열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안지영은 분노에 가득 찼고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안열의 손을 떼며 전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태웅, 너 이 미친놈! 꿈도 꾸지 마!” “그래, 그럼 하늘 그룹이 네 손에서 얼마나 있을지 지켜보자고!” “너 이 자식, 내가 너의 조상을 건드렸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네!” 안열은 안지영의 욕설을 듣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주원에게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고?’ 배준우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너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뭐냐고?” 항상 사고가 명확하던 배준우가 지금은 나태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한 나태웅인데 지금 그를 보니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안지영이 하주원에게 손을 댄 문제를 신경 써야 하는 걸까? 그와 안지영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아직 명확히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나태웅은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달라고만 말했다. 배준우는 담배 한 개비를 던져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태웅은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했다. 그는 아직까지 안지영과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이가 틀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리석은 여자...!’ 만약 그때, 그녀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했다면 그는 결코 그녀가 배준우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준우의 사람들에게 의지하려 했었다.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뒤 물었다. “너는 안지영과 장선명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하주원 문제에서는 하주원을 도와주고 있잖아?” 그가 잠시 고심한 끝에 결국 핵심을 짚어냈다. “그건 전혀 다른 얘기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배준우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르다고?’ 원래는 명확하게 사고하는 배준우였지만 나태웅의 말에 혼란스러워졌다. 나태웅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주원 문제에서 안지영이 반드시 사과해야 해.” 이 말을 듣고 배준우는 머리가 아팠다. 나태웅은 이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배준우는 담배를 다 피운 후 천천히 말했다. “너는 이걸 두 가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들 세계에서는 이것은 분명히 한 가지 문제야.” “안지영은 도
방금 안열이 장선명더러 처리하라고 했을 때의 그 걱정은 이제 안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든 말든 지금은 나태웅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한편, 캘리포니아 반도의 한 장소에서는 배준우와 나태웅이 함께 있었고 진윤과 육범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달 만에 다시 모인 이들이 장선명이 아닌 나태웅을 부른 이유는 사실 그들 모두 나태웅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태웅을 불러내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육범수가 패를 내자 나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패를 툭 치며 말했다. “난 끝났어.” 배준우는 그의 얼굴을 보고 찡그리며 물었다. “방금 그 전화, 안지영이었지?” 방금 나태웅은 나가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안지영이었다. 배준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응.” “너 또 안지영 건드린 거야?” 사실 오늘 배준우가 여기 온 이유는 장선명의 부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장선명은 나태웅과 장씨 가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태웅이 이렇게 계속 안지영을 괴롭힌다면 일이 커질 것이다. 장선명은 본래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태웅의 이 일에 대해서는 배준우를 생각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지금 하주원의 문제도 있고 나태웅의 행동이 점점 더 미쳐 가는 상황이라 걱정이 컸다. 나태웅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육범수에게 말했다. “너 나한테 만 이천 원 줘야 돼.” 배준우는 말문이 막혔다. 육범수도 나태웅이 안지영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진윤은 본래 남의 일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성격이다. 본인의 가문 일도 충분히 골치 아팠기에 그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형이 얘기하잖아. 말 좀 해봐. 대체 안지영에 대해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지만 육범수는 달랐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이기에
안지영은 화가 나서 전화를 부수고는 바로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안열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앞으로 나가서 잡았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나태웅을 죽여야겠어요!” ‘아, 진짜 더는 참을 수 없어.’ 나태웅은 정말 죽어 마땅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손으로 그를 찢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대표님은 아직 근육도 제대로 안 키우셨잖아요. 나태웅을 찢어낼 힘이 있을까요?” 원래도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안열의 말에 더 화가 나버렸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더는 못 참겠어!’ 안열은 안지영이 방향을 잃고 분노만 가득한 상태를 보고 바로 말했다. “이건 결국 넷째 도련님께 말씀드려야 할 문제예요.” “또 장선명 씨더러 처리하라고요?” 장선명의 수법은 이미 잘 봤다. 그는 가장 잔인한 방법을 써서 그녀조차도 반응할 틈 없이 모든 것을 정리해버린다. 그래서 만약 이 문제를 장선명이 처리하면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일들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건, 안돼요!” 안지영은 손을 휙휙 내저었다. 장선명은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조건 밀어붙일 것이다. 그건 안 된다. “왜요?” “그거 기억 안 나요? 지난번에 장선명 씨가 그렇게 처리했을 때 그 몇 억을 가지고 나태웅을 미쳐버리게 만들었잖아요. 이제 나태웅은 진짜 미친 사람이에요.” 특히 지금 그의 행동들은 안지영 마음속에 그가 정말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라, 이 이유가 참 적합하네.’ 안열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안지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번에도 강하게 나가면 그 사람은 진짜 미칠거예요. 그럼 우리 모두 큰일 난다니까요!” “혹시 대표님은 무서운 건가요?” “무섭지 않아요. 그런 문제는 제가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안지영은 화가 나서 말투가 거칠어졌다. 아까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태웅의 집안까지 욕을 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이미 화가 나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해봐, 정말이야?” 다시 입을 열었고 그의 말투에는 위험한 기운이 감돌았다. 전화가 아니라 만약 눈앞에 있었다면 안지영은 나태웅이 자신을 바로 목 졸라 죽일 것 같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안지영!” “난 장선명 씨와 약혼한 상태야.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너는 네 사촌 걱정이나 해. 내가 너희 나씨 가문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보네. 여자는 불여우처럼 순수한 척, 남자는 정신병자에 하나도 좋은 게 없어. 그 뿌리가 다 썩었어!” 그녀는 작은 입술로 욕을 퍼부었다. 안열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이 저절로 떨렸다. 아까는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더니 지금은 완전히 미친 듯이 말하고 있었다. 안지영은 정말로 미친 듯이 화가 난 상태였다. “사과하라고? 대체 누가 누구한테 사과해야 하는 건데! 내 아버지는 아직 병원에 누워 있고 네 사촌은 와서 날 때렸는데 나더러 사과하라고? 너희 나씨 가문 집안 교육이 이 모양이야? 다 멍청이들이야?” 이제는 나태웅의 조상까지 욕을 먹었다. 안지영의 이 폭발적인 성격에 안열은 이제야 제대로 실감했다. 안지영은 욕하는 건 진짜 잘했다. 이제는 나씨 가문이나 하씨 가문, 심지어 그들의 조상까지도 욕을 먹었다. 그녀의 거침없는 욕설을 들으며 나태웅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갔다. 그리고 안지영의 입은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폭풍처럼 계속 퍼부어졌다. 한참 동안 욕을 쏟아내고 겨우 숨을 골랐다. “더 욕할 거야?” 그의 말투는 안지영의 폭발적인 분노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차갑고 차분했다. “하, 왜? 더 듣고 싶은 거야? 너...” “더 욕할 거 없으면 내일 병원에 같이 가자.” 그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냉랭했다. ‘젠장, 이 사람은 정말 사람 말을 못 알아듣나?’ “나더러 사과하라고? 생각도 하지 마! 꿈도 꾸지 마!” 꿈속에서도 사과할 일 없을 것이다. “그럼, 한 가지 말할 게 있어.”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