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배항준이 전화가 와서 그녀에게 집으로 오라고 했을 때 그녀는 이미 마음속으로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그동안 그녀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아버지는 한 번도 간섭하지 않으셨고 전화를 하는 것은 더욱더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그런데 어젯밤 아버지가 먼저 전화하셨을 때 그녀는 량천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량천옥이 배씨 가문을 떠난 뒤에도 그렇게 능력이 대단할 줄은 몰랐다.배지영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본 유청의 얼굴도 더욱 어두워졌다. 그녀는 배지영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야? 설마 량천옥의 말이 사실이야?”배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흘렸다.그러면서 유청의 손을 잡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나 남정우하고 결혼하고 싶지 않아. 소문에 따르면 바보일 뿐만 아니라 장애인이래. 난 싫어. 너무 싫어.”그때는 량천옥이 말다툼에서 이기기 위해 그런 말을 하는 줄 알았는데 정말 량천옥의 말이 전부 사실이었을 줄은 몰랐다.배항준은 정말 배지영에게 이 혼사를 정해준 것일까? 배지영도 그의 딸인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아빠가 설마 치매가 왔나? 아니면.’하지만 배지영은 김다정이 지금 그녀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떠올라 더욱더 화가 났다.유청도 화를 내며 말했다.“어떻게 너한테 이럴 수 있어? 너도 딸인데.”“지금 아빠는 김다정 배 속에 있는 아이를 기대하고 있어요. 나 같은 딸은 어떻게 되든 안중에도 없어요.”배지영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실망감을 쏟아냈다.수년간의 계획 끝에 어머니가 배씨 가문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김다정이 배항준의 자식을 임신했을 줄 누가 상상이니 했을까?게다가 배항준은 그 사실을 꼭꼭 숨기기까지 했다.배지영은 량천옥이 배씨 가문에서 쫓겨나는 것을 보고 자기 친엄마를 모셔 오려고 했지만 김다정이 이미 배씨 저택에 들어왔다.유청의 얼굴은 더욱더 험악해졌다. 그녀는 자기가 돌아오면 배씨 저택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결국 이렇게 또 실망하게 되어버렸다.“내가 돌아오
진윤은 량천옥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여전히 핸드폰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이 미친 여자가.’진윤은 눈을 감고 잠시 고민하다가 배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배준우는 한 번도 짓지 않은 복잡한 표정으로 서재에서 나왔다.그는 진윤에게서 온 전화를 보고 바로 잡았다.“여보세요.”“넌 이미 다 알고 있지?”진윤은 직설적으로 물었고 배준우가 대답했다.“뭐?”배준우는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진윤은 불안정한 말투로 말했다.“넌 량천옥이라고 생각해?”배준우도 핸드폰을 통해 들려오는 진윤의 목소리에 압박감과 긴장감이 담겨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배준우는 눈썹을 추켜세웠다.“무슨 일 있어?”“준우야. 나한테 솔직하게 말해줘. 고은영이 정말 량천옥의 딸이야?”진윤은 다급하게 물었다.그는 배준우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믿지 않았다. 배준우 같은 사람이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 뭐가 있을까?배준우는 그들에게 검사를 받지 말라고 했지만 배준우는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배준우가 말했다.“도대체 무슨 일이야?”“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량천옥이 갑자기 진유경한테 손을 썼어. 내 생각에는 우리가 란완리조트에 다녀간 것과 관련 있는 것 같아.”“뭐?”배준우는 충격을 받았다.진윤이 말했다.“그리고 진유경이 요즘 너희 엄마 비위를 맞추고 다니는 데 그 행동이 량천옥을 화나게 했을 수도 있어.”진유경이 자주 가든 하우스에 드나든다는 걸 진윤도 알고 있었다.게다가 진유경이 왜 유청의 비위를 맞추는지 말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었고 량천옥이라는 여자도 절대 가만히 두고 볼 스타일이 아니었다.그녀는 이미 고은영을 자기 딸로 인정했기에 그 누구라도 고은영의 이익을 해치는 사람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이런 갈등이 생겼다.“난 지금 알아야겠어. 고은영이 도대체 량천옥의 딸이 맞는지.”진윤은 정말 미칠 것 같았다.배준우가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그 일은.”“나도 어느 정도 알고
고은영은 몸을 돌려 계속 자려고 했다.그녀가 아무런 걱정도 없이 평안하게 자는 모습을 바라보는 배준우의 눈빛에는 애정이 넘쳐 흘렀다.그는 몸을 굽혀 그녀의 볼에 키스했다.그 순간 배준우의 눈빛은 위험하고 날카롭게 빛났다.한편 병원.진정훈은 소식을 듣고 다급하게 병원에 도착했고 진유경이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녀의 다리와 얼굴에는 붕대가 두껍게 감겨 있었다.진유경은 진정훈을 보고 울음을 터트렸다.“오빠.”그렇게 소리를 지르자 얼굴에 통증이 느껴졌다.진정훈은 재빨리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 어딜 다친 거야?”진유경은 아파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의사는 진정훈에게 말했다.“환자분은 다리 한쪽이 부러졌고 얼굴에 긁힌 상처가 좀 크게 있습니다.”얼굴에 긁힌 상처가 크다는 말에 진유경은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진정훈도 깜짝 놀라며 물었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크게 다친 거야?”“저희는 차 사고가 났다는 신고 전화를 받고 출발했습니다.”간호사가 말했다.진유경은 지금 얼굴에 붕대를 두껍게 감고 있어 조금만 말해도 고통이 느껴졌다.진정훈의 질문에 모두 간호사가 진유경을 도와 대신 대답했다.의사의 말을 들은 진유경은 웅얼거리며 진정훈을 끌어당겼다.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제대로 알아듣게 높은 목소리로 말할 수 없었지만 꾸역꾸역 말했다.“량천옥. 량천옥이 그랬어. 그 여자가 날 차로 밀어버렸어. 정말 미친 여자야.”그녀는 고통을 참으며 어눌한 발음으로 말했지만 진정훈은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다.그는 진유경의 가냘픈 손목을 잡으며 숨결이 거칠어졌다.“네 말은 량천옥이 널 차로 쳤다고?”진유경은 분노의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눈물이 볼을 타고 붕대 안으로 스며들어 얼굴에 통증이 더욱 심해졌다.그녀는 마음속으로 량천옥을 원망했다.‘량천옥 이 여자가 정말 미친 거야? 왜 날 차로 친 거지?’진유경도 바보가 아니었기에 당시 사고 현장을 떠올려보면 량천옥이 일부러 사고를 냈
‘이제 배씨 가문에 여주인이 바뀌었는데 량천옥의 이런 미친 여자 같은 행동이 배씨 가문을 망하게 하려는 거 아니면 뭐야?’량천옥이 전에 배씨 가문에 한 복수를 생각하며 진유경은 마음속으로 자신의 추측을 확신했다.두 사람이 뭔가를 더 얘기하려고 할 때 진호영이 도착했다.진유경이 유령처럼 참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항상 장난기가 넘쳤던 진호영은 마음 아픈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유경아 왜 조심하지 않았어? 많이 다친 거야? 아프지?”진호영은 진유경에 대한 걱정과 관심을 담아 연달아 질문을 던졌다.진유경은 원래도 차 사고 때문에 놀라서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는데 지금 진호영이 이렇게 걱정해 주니 더욱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끊임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얼굴에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호영 오빠. 나 아파. 너무 아파.”“울지 마. 상처 벌어지겠어.”진호영은 마음 아파하며 말했다.그는 계속 위로했지만 위로하면 할수록 진유경은 더 심하게 울었다.진정훈은 진호영이 온 것을 보고 안 좋은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여기서 유경이 좀 보고 있어. 나 좀 나갔다 올게.”“지금 어딜 가는 거야? 유경이가 이렇게 심하게 다쳤는데.”딱 봐도 가벼운 상처가 아니었다.진정훈은 눈살을 찌푸리며 진유경을 바라보았고 눈치를 보던 진유경은 진호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오빠. 정훈 오빠 그냥 가 보라고 해.”진정훈이 다녀오겠다는 말에 진유경은 그가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지 바로 눈치챘다.‘그 미친 여자를 제대로 찢어버려 줬으면 좋겠는데.’진유경은 배씨 가문의 든든한 백도 사라졌는데 아직도 감히 자기 앞에서 센척하는 량천옥을 이번 기회에 주제 파악을 제대로 시켜주길 바랐다. 이 순간 진유경은 량천옥이 너무 원망스러워 마음속으로 그녀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진유경은 그 순간 량천옥의 눈빛을 제대로 봤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진정훈은 이미 몸을 돌려 병실을 나갔다.진호영은 붕대에 고정된 진유경의 다리를 보고 그제야 다리도 골절되었다는 것을
진윤은 배준우가 진씨 가문이 더 이상 이 문제를 조사하는 걸 막았지만 그 자신은 반드시 이 문제를 똑똑히 조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배준우는 어떤 것도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도록 두지 않는 성격이었다.게다가 이 문제는 고은영과 관련된 일이니 더욱 그럴 것이다.하지만 지금 배준우도 어떻게 이 두 보고서의 결과가 같을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량천옥과 진씨 가문은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진청아는 이 결과가 고은영과 량천옥 그리고 진씨 가문의 친자 확인 검사라는 걸 알고 첫 반응은 실수라고 생각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 조작했을 수도 있었다.아니면 검사 시스템이 고장 난 것일까?진청아는 배준우가 아무 말도 없는 것을 보고 심각하게 말했다.“가서 알아볼까요?”그녀가 보기에는 누군가 조작했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았다.하지만 누가 그렇게 겁도 없이 감히 배준우의 앞에서 그런 조작을 할 수 있을까?배준우는 차가운 눈빛을 빛내며 다시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피우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량천옥하고 진씨 가문의 과거에 관해 모든 걸 조사해.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누군가 조작을 한 것인지 아니면 오류가 발생한 것인지 모두 가능성이 있었기에 당연히 조사를 해 봐야 했다.진청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네.”배준우가 말했다.“어떻게 조사해야 하는지 알지?”진청아가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어디서부터 조사해야 할지 알고 있습니다.”배준우의 옆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왔기에 진청아는 배준우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그리고 대표님을 서포트하는 일이었기에 모든 면에서 실수를 제거하는 것은 비서의 필수 업무 능력이었다.이제 친자 검사 결과에 오류가 있는지는 그리고 량천옥과 진씨 가문이 과거에 연관성이 있었는지까지 확인해야 했다.“가 봐.”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진청아는 검사 보고서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뒤 서재를 나갔다. 이런 물건은 함부로 밖에 갖고 나갔다가 만약 어떤 사고가 생긴다면 당연히 결과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비밀리에 조사하라는
이제 그녀는 예전처럼 배준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예전에 배준우가 했던 일들을 떠올리면 여전히 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그는 분명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그녀를 그렇게 대했고 그녀는 그때 겁에 질려 있었다.배준우는 삐져서 말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바로 반박했다.“그건 안 돼.”장난을 치지 말라니 인생이 이렇게 긴데 그가 어떻게 참을 수 있을까? 고은영을 데리고 방에 돌아온 그는 그녀를 침대 위에 내려놓고서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고은영이 너무 작고 부드러웠기에 이렇게 아껴주는 걸로도 항상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은영이 말했다.“하지 마요.”배준우가 혹시라도 이성을 잃고 달려들까 봐 고은영은 그의 가슴팍에 손을 올리고 밀어냈다.배준우는 안절부절못하는 그녀의 작은 손을 잡으며 싱긋 웃었다.“무서워? 내가 또 널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예전에는 항상 그랬잖아요.”고은영은 억울한 듯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배준우의 장난스러운 미소가 더욱 깊어졌다.‘예전에?’과거에 관해 이야기하면 그는 당시 고은영이 그를 바라보던 두려운 눈빛을 보면 괴롭히지 않을 수 없었다.“됐어요. 방금 준우 씨 여동생한테서 전화 왔었어요.”고은영은 더 이상 그가 마음대로 움직이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다.그녀의 한마디에 웃고 있던 배준우의 얼굴이 굳어졌다.“배지영?”“네.”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배지영의 말을 꺼내자 그녀의 얼굴도 좋지 않았다.배준우는 순간 고은영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침대 옆에 앉아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말 했어?”고은영은 작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아이를 가든 하우스에서 키우라고 하더라고요. 미리 말하는데 난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그 말에 억울함이 가득 담겨 있었고 고은영은 뒤에 말에 더욱 힘을 주어 강조했다.배준우는 눈썹을 추켜세웠다.고은영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어차피 난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보기 드물게 그녀가
량천옥이 집에 돌아왔을 때 량일은 아기에게 선물하기 위해 만든 신발과 장갑을 손에 들고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량일은 돋보기를 쓰고 있었다.지난 몇 년 동안 그녀는 편하게 마음 놓고 한 번도 이런 일을 한 적이 없었다.하지만 지금은 앉아서 예전에 만지기 싫어하던 바늘과 실을 손에 들고 있어도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했다.“너무 작은데 아기가 신을 수 있어요?”량천옥은 량일에게 물었고 량일이 대답했다.“아기가 아직 작으니까 당연히 신을 수 있지.”량천옥은 아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당시 량천옥이 고은영을 낳았을 때 그녀가 안아볼 시간도 없이 다른 사람이 바로 데려갔었다.배씨 가문에 들어간 뒤로 량천옥은 모든 정력을 권력을 잡는 것에 썼다.배윤을 낳았을 때도 그녀는 돌봐줄 시간이 없었고 배윤이 한 달이 되자마자 바로 산후 도우미에게 맡겼다.지금 생각하면 량천옥이 옆에 있든 없든 아이들은 모두 그녀의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량일은 아무 말도 없는 량천옥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직도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지?”량천옥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떻게 얘기를 해요. 난 은영이를 쳐다보지도 못하겠어요.”그녀는 눈을 감으며 고통스러운 눈빛을 숨겼다.량일이 말했다.“차리라 기회를 잡아서.”“안 돼요.”량천옥은 고민도 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배씨 가문에 있는 수년 동안 그녀는 두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지만 고은영의 일에 관해서는 정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량일은 그런 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했다.그녀가 말을 하기도 전에 량천옥이 이어서 말했다.“사실을 모를 때는 우리가 보낸 아기용품들을 쓸 수도 있겠지만 만약 사실을 알게 된다면.”만약 고은영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그녀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나약해 보여도 성질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현재 량천옥은 자기가 보낸 물건을 외손주가 쓰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그 외에는 감히 더 바랄 수
이 강성에서 량천옥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엇이든 할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지금까지 친자 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량천옥이 그만큼 고은영이 본인의 딸이라고 확신한다는 의미였다.그리고 진유경과 배준우의 일을 이제 진씨 가문에서도 반대하는데 량천옥이 이렇게 잔인한 방법까지 써가며 고은영을 보호할 필요가 있을까?량천옥의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점점 더 차가워졌다.“미안하지만 도련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말 못 알아듣겠는데요? 도련님 무슨 뜻이에요?”“당신.”진정훈은 화가 나서 무의식적으로 두 손에 주먹을 꽉 쥐었다.량천옥은 일어나서 진정훈의 앞으로 다가가 고개를 들었다.“그 계집애가 내가 일부러 차로 쳤다고 하던가요?”“그럼 아닙니까?”진정훈은 차갑게 비웃음을 날렸다.량천옥도 비웃음을 날렸고 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무거우면서도 서로를 조롱하는 분위기로 가득 찼다.이어서 량천옥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진유경이 이 정도 이해력은 있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이 차 사고로 진유경이 제대로 교훈을 얻는다면 더욱 좋을 것 같고요.”“인정하는 건가요?”진정훈의 말투가 위험하게 울려 퍼졌다.량천옥이 말했다.“뭘 인정해요? 진유경이 차를 너무 빨리 몰아서 난 실수로 부딪혔어요. 게다가 난 제일 먼저 경찰에 신고해서 진유경을 병원에 데려다줬어요. 난 모든 절차를 합법적으로 진행했고 도덕적으로도 사고가 난 진유경을 그저 지켜보고 있지만 않았어요.”순간 진정훈은 할 말을 잃었다.‘이 여자가 정말.’량천옥은 몸을 돌려 다시 소파에 가서 앉았다. 그녀는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며 더욱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교통경찰이 확인하더니 양측 모두 책임이 있다고 하던데 그래도 진유경이 다쳤으니까 난 더 이상 진유경에게 책임을 묻지도 않았고 진유경의 병원비 전부를 부담했어요. 그런데도 도련님은 만족하지 못하는 건가요?”진정훈은 말문이 막힌 채 빨갛게 달아오른 눈으로 량천옥을 바라보았다.량천옥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
안열은 본능적으로 나태웅의 얼굴을 발로 차버리려고 했다.하지만 발을 드는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안열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다리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너 이 새끼...”나태웅에게 욕을 퍼부어주려는데 나태웅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 있었다.나태웅은 아까 안열의 발을 부숴버리려고 했다.화가 치밀어오른 안열이 나태웅을 잡으려고 했지만 결국 발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발등은 지방이 적어서 아주 취약한 부분이다. 나태웅은 바로 그 부분을 노린 것이다.확인해보니 발등에는 이미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안열은 표정이 어두워져서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가 얘기했다.“나태웅은 정말 악질이에요. 반드시 고소해서 승소하고 감옥에 처넣으세요!”안열이 씩씩대면서 얘기했지만 안지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이상함을 눈치챈 안열이 안지영을 쳐다보았다. 안지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무언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왜 그래요?”안열이 다가가서 물었다.안지영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안열을 바라보았다.그러다가 안열의 발등이 퍼렇게 멍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누가 때렸어요?”“나태웅이요! 그 개같은 자식...”안열이 울분에 받쳐서 얘기했다.안지영은 약간 놀랐다.“나태웅이 때렸다고요? 안열 씨, 나태웅이랑 싸우면 못 이겨요?”“못 이겨요.”안지영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저번에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반드시 나태범을 감옥에 넣어주세요.”안열이 이를 꽉 깨물었다.안지영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의 안열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나태웅을 감옥에 넣으라고요?”“네! 살인미수잖아요. 꼭 승소하고 콩밥을 먹게 해야 해요!”안열은 여전히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마치 지금 당장 나태웅을 끌고 교도소에 갈 사람 같았다.“...”나태웅을 감옥에 보낸다니.그것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을
마주한 시선 속에서 안지영은 나태웅에게서 위험을 느꼈다.숨을 깊게 들이쉰 안지영이 시선을 돌리고 얘기했다.“난 너랑 죽도록 싸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너도 그렇고, 너희 가문도 그렇고, 정말 선을 넘었어.”그 말에 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졌다.나태범이 한 짓들은 자꾸만 안지영을 화나게 했다.나태웅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알려줬던 거 같은데. 장선명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장선명이 왜 너랑 결혼하려고 하는 것 같아?”“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곧 결혼한다는 사실이야.”안지영은 나태웅 같은 사람 앞에서 더욱 굳건해졌다.안지영은 애매모호한 사람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한쪽에 올인하는 쪽이다.그러니 지금 본인이 누구를 원하고 누구를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장선명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그리고 성격상으로도 동시에 두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처음부터 장선명과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했고 선을 넘지 않고 거리를 잘 유지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안지영은 장선명과 정말 한 쌍의 부부가 될 것이다.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나태웅이 차갑게 웃었다.“하,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도대체 뭐라는 거야.”안지영은 본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태웅이 너무 싫었다. 분명 중요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또 물으니 말이다.나태웅은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사무실 위에 올려놓더니 안지영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안지영은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이게 뭔데...”“직접 확인해봐.”“...”“잘 확인해.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가 정말 너만의 것인지.”“...”안지영은 호흡마저 거칠어졌다.“지금 이간질하려는 거야? 하지만 이제 쓸모없어!”“두려워?”나태웅이 눈썹을 까딱이면서 물었다.안지영은 나태웅을 당장이라 씹어먹을 듯한 눈빛으로 나태웅을 노려보았다.나태웅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진을 향해 눈짓했다. 안지영은 이를 꽉 깨물고 사진을 들어 확인했다.그 사진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