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월은 더는 얘기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다.그녀가 드디어 나갔다.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육명호가 그제서야 웃으며 말했다.“이 문제가 더 배 대표를 짜증 나게 하죠?”자기가 사랑하는 여자가 이렇게 행동하니 짜증 나지 않을 남자가 없었다.남자라면 자기 여자가 조금 순종적이길 바라니까.배준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흘겨보았다.“또 무슨 일?”“아니, 배 대표는 왜 갑자기 장서경이랑 손잡기로 한거죠?”육명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배준우를 쳐다보았다.어젯밤 분명히 얘기가 잘 끝났는데, 갑자기 장서경 쪽으로 돌아섰으니 말이다.장서경은? 북성의 원탑이자 육명호의 천적이다.두 사람은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라이벌 관계이다.그런데 배준우가 강서경을 택했으니, 육명호의 마음에 불을 지핀 셈이였다.배준우가 커피잔을 들며 대답했다.“일 처리가 깔끔하니까요.”그가 차갑게 한마디 던졌다.배준우의 말에 육명호의 얼굴이 굳어졌다.대체 무슨 뜻이지? 그의 일 처리는 깔끔하지 못하다는 뜻인가?그가 뭘 어쨌다고!어제 북성에 도착해서 같이 밥 한 끼 먹은 게 다인데, 어떻게 안다고 이렇게 말하는 거지?아무리 생각해도 배준우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배 대표, 무슨 뜻이에요?”육명호는 혼란스러운 듯 배준우에게 되물었다.오늘 이 얘기를 분명히 끝내 않으면 마음이 찝찝할 것 같았다.배준우가 대답했다.“말한 그대롭니다.”“.......”육명호는 더욱 멍해졌다.말한대로 라고? 그래서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장서경이랑은 밥 한 끼도 같이 먹지 않고 협업해 놓고.그걸 말하는 건가?그걸 원하면 직접말하든가......!육명호는 어리둥절한 듯한 얼굴로 고은영을 쳐다봤다. 고은영이라도 대신 설명해주길 바랐다.하지만 고은영은 얼굴을 한쪽으로 돌리고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육명호는 다급해졌다. 그는 다시 배준우를 쳐다보며 말했다.“내가 아니더라도 장서경을 선택하면 안 되죠. 배 대표는 나랑 장서경이 어떤 사이인지 잘 알잖아요......”
고은영과 배준우의 차가운 태도에 육명호는 서둘러 말을 고쳤다.“알았어, 고 비서!”지금은 호칭에 연연할때가 아니다.육명호는 생각에 잠긴 듯 고은영에게 물었다.“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나한테 말해줘. 배 대표가 왜 갑자기 장서경을 선택했는지.”장서걍을 생각하니 육명호는 화가 치밀었지만 화를 분출할 곳이 없었다.고은영이 대답했다.“일처리가 깔끔해서요.”배준우와 똑같이 대답했다.육명호가 다시 물었다.“내가 뭘 어쨌다고? 무슨 문제가 있는데 도대체?”일처리가 깔끔하다는 건 뭘 말하는 건지.잠깐, 어제 배 대표가 화내고 갔잖아. 혹시 이소원 때문인가?육명호는 요즘 이소원이 말을 듣지 않은 걸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올랐다.하지만 고은영 앞에서는 티를 내지 않았다.고은영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육명호는 가방에서 블랙카드를 꺼내 고은영의 손에 쥐어줬다.“고비서가 자세히 알려줘봐.”고은영은 손에 쥐어진 블랙카드를 보았다.육호명 사람을 매수하는 데 쓰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는다.저번에, 회사에 찾아갔을 때도 프론트 데스크 직원들에게 커피를 돌렸다.고은영은 블랙카드를 돌려주며 말했다.“육 대표님께서 저한테 이 카드를 준 걸 배 대표님께서 아시게 되면, 이번뿐만 아니라 영원히 협업할 기회를 잃으실 수도 있습니다.”배준우가 가장 혐오하는 짓이 이 짓이다.고은영이 블랙카드를 다시 돌려주자, 육명호는 깜짝 놀랐다.그러고는 역시 배준우의 사람이라고 감탄했다. 가난하긴 하지만 정의로우니 말이다. “그래. 그럼, 우리 친분을 봐서라도 배 대표한테 내 얘기 좀 잘해줘.”“변하는 건 없어요. 배 대표님은 한번 결정하시면 절대 번복하지 않으세요.”고은영은 더욱 단호하게 말했다.그런 방식은 배준우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이미월을 대해는 태도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 수 있다.그런 사람을, 누가 감히 설득하려 들까?완강한 두 사람의 태도에 육명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 질렀다.“좋아. 가서 배 대표한테 전해. 반드시 이번 선택의
배준우가 그딴 비서에게 월 400만 원이나 준다고?너무 많은 거 아닌가?하긴 항상 배준우옆에 붙어 있는 걸 보면 평범한 존재가 아닐지도.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럼 우리 회사로 이직하면 1000만 원 줄게!”고은영은 입술이 떨렸다.육명호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제안을 하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갑자기 왜 이러는지.만약 배준우를 화나게 하려고 이런 제안을 했다는 걸 알면, 분명 그의 얼굴에 커피를 뿌렸을 것이다.고은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육명호가 다시 이를 악물었다.“좋아. 적으면 2000만 원으로 하자!”자기 라이벌과 손을 잡은 배준우에게 복수 할수 있는 방법은 그가 가장 아끼는 비서를 채가는 것이다.육명호는 분노에 이성을 잃었다.고은영은 그에게 맞장구쳐 줄 생각이 없었다.“대표님, 죄송합니다. 저는 지금 이직할 생각이 없어요.”육명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비록 그의 제안이 유혹적이긴 했지만, 그를 보면 그다지 믿음이 가는 제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2000만 원을 줘도 이직을 안 한다고?”“저는 이미 강성에 집도 사고 해서, 강성을 떠날 생각이 없어요.”고은영이 단호하게 말했다.하긴 그녀의 말도 사실이었다.그렇게 힘들게 노력해서 겨우 집을 샀는데, 다른 곳에 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게다가 자기 능력이 한정적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으니 지금 회사에서 400만 원이라는 월급을 받는 것도 감지덕지하게 여겼다.배준우와의 협업이 물거품이 된 것도 화가 나 죽겠는데, 2000만 원을 주고도 그의 비서를 채갈 수 없다니 정말 화가나 미칠 지경이었다.고은영은 더는 얘기를 이어가지 않고 서둘러 호텔로 돌아갔다.방에 들어가니, 배준우는 통화 중이었다. 진영그룹의 일인듯 했다.고은영은 이미월이 찾아와서 그 정도 했으면 배준우도 적당히 하고 멈출 줄 알았다.하지만...... 아니었다.오히려 상황이 더 심각해진 것만 같았다.전에는 모든 프로젝트를 중단했던 상황이라면, 지금은 관련 프로젝트
고은영에게 사과했다는 사실에 억울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 당시 어떻게 분노를 억누르고 그녀에게 사과할 수 있었는지..분노 가득한 태도로 진심을 다해 사과했는데, 이게 무슨 경우인지 싶었다. 진 회장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사과를 했는데 왜 상황이 더 악화되니?!”“내가 어떻게 알아요?”진승연도 지금 울고 싶은 마음이다.이런 큰 사고를 칠 줄 알았으면 이미월과 함께 북성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그냥 아무것도 없는 고은영이 모든 걸 차지하는 게 꼴 보기 싫었던 것 뿐인데.진승연의 태도에 진 회장이 말했다.“이 문제 잘 처리하기 전에 집에 들어올 생각 하지도 마!”모든 카드를 정지시킨 것도 모자라 집에도 들어오지 말라고?“아빠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어떻게 이려나고? 네가 한 짓들을 봐봐. 도대체 무슨 짓거리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진 회장이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배준우 쪽에서 계속 압력을 가하고 있으니 진영그룹의 자금줄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지금 진 회장은 이런 딸을 둔걸 매우 후회했다.어릴 때부터 한 번도 제대로 된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사고뭉치니 말이다.“그럼 저 이제 어떡해요?”진승연은 전화기에 대고 마구 소리 질렀다.이미 사과도 했는데 어떻게 뭘 더 하라는 말인가!이미월도 진 회장의 말에 겁에 질려 있었다.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설마 아까 배준우를 찾아가서 그런 걸까?그 계집애....!이미월은 조금 전 고은영에게 소리를 질렀던 일이 떠올랐다.설마 그것 때문에?고작 그런 계집애를 보호하기 위해서 일을 이 지경에 이르게 한다고?이미월은 가슴이 저렸다.왜?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일이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사과할게요. 가서 무릎이라고 꿇으면 되잖아요!”진 회장이 뭐라고 했는지 진승연은 이성을 잃고 소리 질렀다.전화를 끊어도 계속 눈물이 흘렀다.그런 진승연의 모습에 이미월은 뭐라고 위로 하고 싶었지만, 지금 자기도 같은 처지니 할 말이 없었다.“
이미월의 말에 진승연도 얼굴이 창백해졌고, 고개를 애써 끄덕이며 말했다.“언니 말이 맞아. 준우 오빠한테는 특별한 사람일 수도 있어.”어쩌면 고은영이 배준우의 마음속에서 이미월보다 더 중요한 존재일 수도 있다.순간 진승연의 눈빛에 음산한 기운이 돌았다.만약 진짜로 그렇다면 더욱더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월의 같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어떻게?배준우의 마음속에 자기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있을 수 있는지.이미월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언니,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평생 고은영을 보호해 줄까? 언니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그들은 고은영이 왜 배준우에게 그토록 중요한 존재인지 알지 못했다.하지만 이미월이 이번에 돌아온 건 배준우 때문이었다.그러니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배준우를 차지하는 꼴은 절대 볼 수 없다.이미월은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알긴 알지만, 갑자기 알아버린 거라 여전히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배준우에게 자세히 물어봐야 했다.이미월의 단호한 태도를 보니 진승연의 마음이 조금 놓였다.전에는 정말 이대로 배준우를 놓칠까 봐 두려워 울기만 했으니 말이다.하지만 지금 배준우가 진가에게 하는 걸 생각하니진승연의 얼굴은 다시 굳어졌다.“언니, 그렇게 되면.. 나 더 이상 언니를 도와줄 수 없을 것 같아.”전에는 오로지 이미월과 함께 고은영을 몰아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지금 배준우가 하는 걸 보니 도저히 감당해 낼 자신이 없었다.진승연의 말에 이미월도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진승연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일단은 회사 일부터 해결하자.”고은영일은 잠시 미루는 걸로!진승연도 만약 이번 고은영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배준우가 더한 문제를 일으킬거 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지금 그녀에 대한 분노가 어느 정도이든 일단은 참을 수밖에 없다.한편 방에서, 배준우는 고은영 옆으로 다가갔다.고은영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
배준우는 육명호가 믿음이 안 간다는 고은영의 말이 살짝 놀라웠다.그리고 그녀가 자기를 남편이라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는 의미 모를 미소가 그의 얼굴에 번졌다.“너가 사람을 볼 줄도 아네?”그는 놀리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진 영그룹에서 고은영이 바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그녀가 무엇을 하든 절대 안심할 수 없었다.그런데 육명호가 미덥지 못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내다니......!그녀가 그 정도 판단은 할 수 있는 걸 보니 배준우는 시름이 놓였다. 그리고 자기를 속이지 않은 것에 대해 기분이 좋았다.육명호가 그런 제안을 한 건 배준우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다.그리고 육명호는 절대 고은영 같은 직원을 회사에 오래 두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첫 달 월급도 못 받고 해고될 수도 있다.“육 대표는 인성이 별로에요!”어제 고은영이 이 말을 했을 때 오히려 배준우에게 혼났었다. 하지만 오늘도 똑같은 말을 했지만, 그는 별로 뭐라 하지 않았다.오히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래, 사람을 볼 줄만 알면 돼.”사람을 볼 줄 알면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을게 아닌가.고은영이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룸서비스를 시킨 적이 없는데.육명호도 그렇게 화를 내며 갔으니 다시 돌아올 리가 없고.그렇다면......고은영과 배준우의 눈이 마주쳤다.배준우의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이미월아니면 진승연이 찾아온 게 분명했다.“보아하니 내가 손을 쓴 강도가 아직 살아있나 보네.”진영 그룹을 2년 동안 봐주고 있었는데 아직도 만족하지 못하니 말이다.차가운 그의 말에 고은영은 놀랐다.진영그룹과 얽혀서 좋을 게 없는데, 그들이 지금 배준우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고은영은 심호흡하고는 배준우에게 말했다.“제가 열게요.”배준우는 아무 말 없이 앞에 있는 커피들 한 모금 마셨고, 고은영은 서둘러 문을 열었다.문밖에는 역시나 이미월과 진승연이 와 있었다.고은영이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피했지만, 이번에는 멋대로
이미월은 조심스레 방으로 들어갔다.진승연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전에 고은영을 밀치던 오만함은 온데간데없고 공손함만 있었다.고은영도 문을 닫고 뒤따라 갔다.“준우야.”이미월은 배준우 옆으로 다가가 낮고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다.고은영은 한쪽 편에 서 있는 진승연에게 조심스레 물었다.“진승연 씨, 뭐 마실래요?”“아니에요. 고마워요.”진승연은 고개를 저으며 부드러운 태도로 대답했다.이렇게 변할걸 보니 아주 급한 모양이다.그러니 고은영이 어떤 수단으로 배준우를 구워삶았는지 더 의문이었다.이 남자가 화를 내면 그 누구도 말릴 수가 없다.“준우야, 이 일 때문에 삼촌이 힘들어하셔. 어떻게 하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지 알려줘.”“오빠. 제발 부탁이야. 우리한테까지 이러지 마.”진승연도 한 마디 덧붙였다.당연히 아주 공손한 태도로 말이다.이전에 그녀가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건 배준우와 그나마 조금이라도 친분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은 아예 그런 생각 자체가 없었다.어젯밤 자신의 행동이 이렇게 심각한 결과를 불러올 줄 몰랐다.“오빠, 말 만해! 오빠가 하라는거 다 할테니까.”진승연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 상황을 수습하고 싶었다.자존심이고 뭐고 생각할 여우가 없었다.지금 그녀는 배준우가 하라는 건 다 할 생각이었다.배준우가 그녀를 쳐다봤다.“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하지만 날카로운 말투는 여전히 사람을 두렵게 했다.그의 이런 차가움이 이미월과 진승연에겐 익숙지 않았다. 왜냐면 이전의 배준우는 절대 이런 태도로 그들을 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진승연은 억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감히 티 내지 못하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말했다.“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지금 진영 그룹이 이런 위기에 처해있는데 손이나 놓고 있으라니! 집에도 못 들어가게 생겼는데 말이다. 배준우가 말했다.“아무것도 안 하면 지금 상태는 계속 유지할 수 있어.”지금 상태?지금 회사가
배준우는 완전히 화가 났기에 눈에는 그 누구보다 살기가 가득했다.“나가!”“오빠.”“배준우,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이미월은 완전히 무너졌다.어젯밤의 실수를 무릎까지 꿇으며 사과했는데 더 이상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배준우가 말했다.“나가.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아니면 지금 당장 거지가 되고 싶은 거야?”배준우의 태도는 완강한 나머지 조금의 여지가 없었다.진승연과 이미월은 일이 이 지경까지 심각해질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배준우의 태도는 차가웠다.아니, 차갑다는 말로도 다 표현이 안 될 정도다.이미월과 진승연도 배준우가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승연아......가자.”이미월은 눈빛으로 말했다.하지만 진승연은 이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슬픈 얼굴로 배준우를 바라보고 있었다.배준우가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할 거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오빠!”배준우의 얼굴에 한기가 가득했다.그의 한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들도 잘 알고 있었다.진승연은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바닥에서 일어나 이미월의 부축을 받으며 방에서 나갔다.곧, 방에는 배준우과 고은영 두 사람만 남았다. 방안의 모든 건 다 그대로였다. 배준우의 한기 가득한 표정만 빼면 이미월과 진승연이 온 적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였다.“하고 싶은 말 있어?”한참 동안 고요한 공기가 흘렀다.배준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고은영을 흘겨보았다.덩달아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그녀한테 그러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두려운지.배준우는 조금 전 자신의 태도가 얼마나 차가웠는지 모르는 듯했다.고은영이 왜 덩다라 겁에 질렸는지 알지 못했다.배준우의 질문에 고은영은 고민하다 한마디 던졌다.“이렇게 하시면 이미월씨가 대표님을 원망하지 않을까요?”사실 진영그룹에 대한 이런 조치는 일찌감치 결정된 일이었다. 아직 실행하지 않았을 뿐.
진이훈은 자기 뺨을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나태웅은 안지영을 찾아가 머릿속을 열어보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저 여자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있는 거야.’“너무 화내지 마십쇼. 안지영 씨는 나 대표님을 만나지 않을 겁니다.”“장선명 때문에?”“...”진이훈은 할 말을 잃었다.정확하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나씨 가문은 장 씨 가문에게서 사과를 받아내야했디.하지만 나태웅의 충동적인 결정 때문에 그것마저도 거품으로 돌아갔다.진이훈은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나태웅은 화가 나면 그 감정에 휩쓸려 모든 것을 잊는 사람이었다.그 시각.안지영도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장선명은 저녁 열한 시에 들어왔다. 여덟 시에 나갔으니 총 세 시간 동안 밖에 있은 셈이었다.집에 돌아온 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물었다.“왜 화내고 있는 거야?”“나태웅 때문에요!”안지영이 이를 꽉 깨물고 대답했다.안지영의 화를 이만큼이나 돋울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나태웅이 유일할 것이다.이제야 회사 일 때문에 나태웅에게 제대로 복수도 하지 못했는데, 나태웅은 거의 매일 시비를 걸었다.게다가 가장 화가 나는 건, 나태웅 때문에 안지영의 아버지가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태웅은 사과 한마디 없었다는 것이다.안지영은 그런 나태웅을 무시하려고 했지만 나태웅이 매일 시비를 걸고 또 자기 아버지까지 끌어들였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신나나 씨는 어때요?”안지영은 나태웅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바로 화제를 돌렸다.나태웅 얘기를 듣던 장선명은 표정이 어두워졌다.신나나의 얘기를 꺼내자 장선명의 표정은 더욱 썩어들어갔다.“눈가를 3cm 정도 봉합했어. 지금은 병원에 있어.”“그렇게 심각한 일이었어요?”안지영은 아주 놀랐다.클럽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하지만 신나나는 매직 썬의 에이스로서 인기도 많고 돈벌이도 쏠쏠했다.기씨 가문은 요즘 들어 강성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가문이었지만 장씨 가문과
안지영은 화가 나서 이마의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였다.전화기 너머의 나태웅은 계속해서 이어 얘기했다.“안지영, 장선명은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본 남자야. 네가 그런 남자의 눈에 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아니면, 장선명이 정말 너랑 약혼할 거라고 생각해? 매하리에서 한번 은혜를 입었다고 정말 너를 데리고 일생을 살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지금도 봐, 장선명은 다른 여자를 위해 너를 버렸잖아!”안지영은 나태웅의 말투가 안지영의 불행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장선명에게 버려진 안지영을 보면서 축하 파티라도 열 사람 같았다.나태웅의 인성을 잘 아는 안지영은 나태웅의 생각도 쉽게 알 수 있었다.‘전에 동영 그룹에 있을 때는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하, 그렇게 말하면 본인이 장선명 씨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좋은 사람이라면 왜 나더러 하주원한테 가서 사과하라고 하는 거예요? 시비를 가리는 눈이 없나 봐요?”“그건 다른 일이잖아!”“뭐가 다른데요! 내로남불 같은 놈.”안지영이 중얼거리면서 말했다.지금의 안지영은 그저 나태웅을 욕할 기회만 있으면 서슴지 않고 욕설을 쏟아냈다.안지영은 전 세계의 욕설을 모아서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은 심정도 들었다.나태웅은 그럴만한 사람이니까 말이다.“안지영, 좋은 말로 할 때 입에서 걸레 빼.”“너나 입에서 걸레 빼세요.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내가 아무리 힘든 상황이어도 당신만큼은 죽어도 찾아가지 않을 테니까. 왜 계속 내 눈앞에서 걸리적거리는 거예요! 관종이에요?”“...”나태웅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확신했다.‘안지영,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선심을 써서 얘기해 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욕설뿐이었다.하지만 안지영은 쉬지 않고 이어서 얘기했다.“그리고, 선명 씨가 신나나 씨 때문에 매직 썬에 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굳이 와서 귀띔해 줄 필요 없어요.”“...”‘장선명이 알려줬다고? 이건...’“나태웅 씨, 당신은 장선명이랑 비교하
‘지금 벌인 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정말 미친 거 아니야?’안지영은 심호흡을 하면서 끓어오르는 화를 식히려고 노력했다.“안지영, 제발 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살아.”나태웅은 화가 나서 이를 꽉 깨물고 소리를 질렀다.그러자 안지영도 더는 참지 못하고 같이 화를 냈다.“내가 생각을 안 하는 사람처럼 보여요? 나태웅, 당신은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나태웅에게 괴롭힘당하는 요즘을 생각하면 안지영은 나태웅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강성의 사람들은 나태웅이 안지영 때문에 미치광이가 된 줄 안다.하지만 안지영은 나태웅의 정신병이 대대로 유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나태웅은 안지영을 강성에서 가장 잔인한 여자로 만들어 버렸다.그리고 이제는 안지영을 괴롭히는 데 그치지 않고 장선명까지 괴롭히려고 한다.나태웅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숨이 턱턱 막혔다.“내가 뭐 하는 거냐고? 뭐 같아 보이는데?”“내가 당신 같은 사람의 속셈을 어떻게 알겠어요! 궁금하지도 않아요!”안지영은 짜증이 확 몰려왔다.안지영은 나태웅 때문에 화가 나서 이성을 잃은 채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안지영, 장선명이 오늘 밤 왜 나갔는지 정말 모르겠어?”“당신이 일을 벌이니까 나간 거잖아요!”안지영이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지금 당장이라도 나태웅을 죽이고 싶었다.“신나나 때문에 킹덤 타운을 떠난 거야.”“...”두 사람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분노로 과열되었던 분위기가 조금 진정되었다.안지영은 숨이 점점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화가 난 나머지 제 자리에 서서 몇 바퀴나 돌았다.나태웅에게 뭐라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너무 화가 나서 아무 말도 나가지 않았다.아무 대답도 못 하는 안지영을 보면서 나태웅은 말투를 약간 누그러뜨렸다.“너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장선명은 신나나를 구하러 매직 썬에 간 거야.”나태웅은 일부러 신나나의 이름을 강하게 읽으며 얘기했다.마치 안지영에게, 장선명은 이미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 같았다.
“...”요리 실력이 없다고 해도...“아무리 그래도 처음부터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장선명이 의아해하면서 얘기했다.“하지만 이건 재능이 필요한 영역이에요!”안지영은 무슨 일을 하든지 재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요리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똑같은 식재료와 똑같은 양념으로도 다른 맛이 나는 것은 재능의 문제가 아니겠는가.구이준은 그들에게로 다가오다가 안지영과 장선명이 요리 재능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대표님이 언제부터 요리를 좋아하게 된 거지? 아니면 안지영 씨 때문에 그렇게 된 건가?’구이준을 본 장선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여기는 무슨 일로.”구이준이 앞으로 다가가서 얘기했다.“도련님, 매직 썬에 일이 생겨서 다녀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매직 썬.그 말을 들은 안지영은 저도 모르게 장선명을 쳐다보았다.안지영은 매직 썬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거기의 언니들이 예쁘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돈 많은 유부녀들이 자주 가는 곳인데, 그곳의 남자들이 잘생겨서였다.매직 썬에 일이 생겼다는 것을 들은 장선명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안지영에게 보여줬던 부드러움과 온화함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차가운 기운만이 남아있었다.장선명이 중저음으로 물었다.“무슨 일이지?”“기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이 꼭 나나 님을 데려가겠다고 하셔서요.”나나는 매직 썬에서 예쁘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안지영도 들어본 적이 있는 정도니까 말이다.그리고 기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이라면... 양아치가 틀림없었다.대충 알 것 같았다.나나는 그래도 자존심이 있는 여자였다. 그런 나나에게 기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은 양아치나 다름없는 사람일 것이다.그러니까 거기서 모순이 생긴 것이다.그 말을 들은 장선명은 안지영을 보면서 얘기했다.“다녀올게.”안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가요.”장선명은 몸을 일으킨 후 핸드폰을 챙겼다. 안지영 앞에 남은 피자 반 판을 보던 장선명이 말을 덧붙였다.“적당히 먹는 게 좋을 것 같아. 살
“먼저 돌아가.”“그럼 안지영이 날 때린 건...”거기까지 말한 하주원은 말을 멈추고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그리고 입을 열었다가 다시 숨을 고르며 눈물을 쏟았다.하주원은 본인을 가녀린 피해자로 만들어 놓았다.하주원이 안지영과의 사건을 꺼내자 나태웅의 표정이 또다시 어두워졌다.“네가 먼저 찾아가서 안지영을 때린 거잖아. 아니야?”“아니야. 난 그저 오빠가 마음에 들어 하는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보려고...”“...”“대화 좀 나누다가 안지영이 갑자기 나를 때린 거야!”하주원이 울면서 얘기했다.눈물을 흘리면서 하는 말은 거짓말 같지 않았다. 하주원의 모습을 본다면 모두가 그걸 진짜라고 믿을 것이다.나태웅이 미간을 찌푸렸다.“안지영이 먼저 때린 거야?”하주원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안지영이 먼저 나를 때린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나도 반격하지 않았을 거야.”나태웅은 속에 화가 부글부글 끓었다.안지영이 먼저 손을 올린 것이라면...안지영의 성질을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안지영은 조금이라도 심기가 불편하면 성질을 부리니까 말이다.전형적인 강약약강이 아닌가.전에는 배준우가 복수할까 봐 두려워하더니, 하주원한테는 함부로 대하다니. 나태웅에게 있어서 안지영은 충분히 그럴 사람이었다.참지 않는 것도, 참지 못하고 폭발하는 것도 다 안지영이다.“먼저 돌아가.”“이모가 있을 때는 이런 일을 겪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어. 이모가 보고 싶어. 엉엉...”하주원은 또 나태웅의 어머니를 언급하면서 눈물을 흘렸다.나태웅은 머리가 아파서 한숨을 푹 쉬고 이마를 매만졌다.“먼저 돌아가. 안지영이 곧 사과할 거야.”“정말? 정말이야?”하주원이 울면서 물었다.“그래.”다 성인이니 본인이 한 짓에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특히 안지영은 제대로 혼내주지 않으면 앞으로도 더 막 나갈 것이다.나태웅의 대답을 들은 하주원은 만족했다.하주원은 아까 나태범과 나태웅의 대화를 다 엿들었다.하지만 그래도 하주원
밖에서 금방 돌아온 진이훈은 나태웅이 온 힘을 다해 핸드폰을 탁상 위로 던지는 것을 보았다. 핸드폰 액정은 마치 거미줄처럼 금이 가 있었다.진이훈은 속으로 핸드폰 수리점에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했다.“하주원 씨가 오셨습니다. 만나보실 겁니까?”진이훈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하주원이라는 이름을 들은 나태웅은 그저 머리가 아팠다.미간을 누른 나태웅이 얘기했다.“들어오라고 해.”“네.”진이훈이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손잡이를 돌리려던 순간, 진이훈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물었다.“아까 어르신께서 꽃을 주문하라고 하셨습니다.”“무슨 꽃?”“장미꽃이요. 내일 대표님 이름으로 안지영 씨한테 보낼 예정입니다.“...”그 말을 들은 나태웅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그년한테 꽃을 보낸다고? 이게 무슨 수단이지?’안지영이 다른 여자와 다르다는 것을 떠올린 나태웅은 숨을 깊이 들이쉬더니 얘기했다.“다른 방법을 알아보라고 해. 그년은 꽃을 좋아하지 않으니까.”진이훈은 그 말을 듣고 입꼬리를 억누르려고 애썼다.‘이런 상황에서도 그년이라고 부르시니...’“네.”진이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원수 같은 두 사람을 보면서, 진이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지금은 나태범까지 끼어들었으니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진이훈이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하주원이 눈물을 닦으면서 들어왔다.표정이 좋지 않은 나태웅을 본 하주원이 억울한 듯 속삭였다.“태웅 오빠.”나태웅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하주원을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눈빛을 마주한 하주원은 저도 모르게 겁을 먹었다.하지만 당당하게 얘기했다.“안지영과 헤어지면 안 돼? 안지영은 오빠한테 부족한 여자야.”“그럼 누가 나한테 어울리는데. 네가?”“태웅 오빠...”그 말을 들은 하주원은 얼굴을 붉혔다.그리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주원에게 있어서는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 대답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이모님이 얘기했었잖아
장선명은 바로 전화를 받아서 스피커폰으로 돌려놓았다.“나태웅, 설마 나한테 사과하라고 할 건 아니지?”장선명은 ‘사과’라는 두 글자에 힘을 주어 얘기했다.안지영은 그 두 글자를 듣고 표정이 굳어버렸다.나씨 가문은 사과를 받아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지 않나.나태웅이 요즘 안지영더러 계속해서 하주원에게 사과하라고 한 걸 떠올리니 안지영은 화가 치밀었다.전에는 나태웅이 이렇게 막무가내인 사람인 줄 몰랐지만 이제야 알게 되었다.정말 솔로인 것이 당연한 사람이다.“오늘 나씨 가문에서 일어난 일에 관해서 설명을 해줬으면 하는데.”안지영은 장선명 옆에 앉아 있다가 그 말을 듣고 하마터면 욕할 뻔했다.하지만 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품에 안고 따뜻한 손으로 안지영의 입을 막은 후 고개 숙여 웃으며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쳐다보면서도 나태웅을 향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장선명은 가볍게 웃었다.“나태웅 씨가 원하는 게 어떤 걸까? 내 약혼녀랑 같이 너네 가문 경호원한테 가서 사과라도 해야하나?”“...”“...”장선명이 오늘 나씨 가문에서 사람을 때렸으니 사과를 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하지만 지금 장선명의 태도에서는 사과하려는 마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장선명이 약혼녀를 데리고 나씨 가문의 경호원한테 사과하러 간다니.“장선명,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아니면 경호원은 사람으로 보지도 않는다는 건가?”“하.”장선명이 크게 웃었다.“반응은 빠르네. 여태까지 네가 바보인 줄 알았는데.”‘바보’라는 단어에 전화기 너머의 나태웅이 턱에 힘을 꽉 주었다.숨소리마저 기분 나빠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장선명, 선 넘지 마.”나태웅이 이를 꽉 깨물고 장선명을 찢어 죽일 것처럼 말했다.“왜, 이 뜻이 아니었나?”틀린 건 아니었다.하지만 나태웅이 장선명더러 경호원을 찾아와 사과하라고 할 수도 없는 짓이었다.나태웅은 원래 장선명이 이렇게 하도록 할 생각이 없었지만 장선명이 그렇게 얘기하자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의 눈빛을 바라보면서 약간 난감해했다.“정말 못 맡은 거예요?”“맡았어.”장선명이 당당하게 얘기했다.하지만 장선명은 그게 썩은 냄새인 줄 몰랐다. 그저 날계란의 냄새인 줄로만 알았다. “...”안지영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도대체 요리할 줄 아는 거 맞아요?”“너무 잘하는 건 아닌데, 너한테 만들어주고 싶었으니까.”장선명이 당당하게 얘기했다.안지영은 자기 귀를 의심할 뻔했다.‘요리를 해주고 싶은 게 아니라 죽이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앞으로 요리하지 말아요.”안지영이 얼른 말했다.‘난 아직 오래 살고 싶어. 아니, 저번에도 요리하지 않았던가? 그때는 이 정도 실력이 아니었는데, 왜 이번에는 계란이 썩은 것도 몰랐지?’하지만 안지영은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아까 먹은 계란말이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었다. 앞으로는 절대 장선명의 요리를 먹지 않을 것이다.“알겠어. 안 할게.”“앞으로는 고용인들께 부탁드려요.”안지영은 얼른 장선명을 끌고 주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집사에게 눈치를 줬다.고용인들은 얼른 주방에서 요리를 시작했다.안지영은 주방 쪽을 향해 외쳤다.“주방용품 여러 번 씻어주세요. 아니면 그냥 버려주세요.”고용인들은 안지영을 쳐다보면서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사모님.”“...”‘이런 오해를...’표정이 좋지 않던 장선명은 고용인의 말을 듣고 금세 미소를 지었다.안지영이 반박하려는데, 장선명이 안지영을 품에 그러안고 집사를 보며 얘기했다.“저 사람은 월급을 올려줘.”“네.”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그 고용인은 약간 멈칫했다가 장선명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감사합니다!”기뻐하는 장선명의 표정을 본 안지영은 장선명의 허리를 확 꼬집었다.장선명은 아파서 ‘습’하고 숨을 들이켰다.“이 여자 봐라? 남편을 죽이려고?”“우리 아직...”“어차피 곧 결혼할 거잖아. 웨딩드레스도 이미 정했는데.”장선명이 얘기했다.“...”웨딩드레스를 떠올린 안지영은 아무 말
장선명은 계속 토하는 안지영을 보고 다시 계란말이를 쳐다보더니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렇게 맛없는 거야? 토할 만큼?’흐뭇한 분위기는 얼마 가지 못했다.집사와 고용인들은 서로 난감해하면서 시선을 피했다.장선명은 안지영에게 물을 건네주었다. 안지영은 입을 헹구었지만 여전히 입에서 그 맛이 나는 것만 같았다.“우웩.”“...”‘또 토한다고? 그렇게나 맛이 없었어?’장선명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계란말이를 입에 넣었다. 도대체 얼마나 맛이 없기에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계란말이를 씹는 그 순간, 장선명은 그대로 굳어버렸다.이건 맛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장선명도 쓰레기통 옆에서 연신 구역질을 했다.“우웩.”주방 밖에 서 있던 집사와 고용인들은 그 모습을 보고 서로 눈치를 보았다.자기가 만든 것을 먹고 토하는 경우라니... 얼마나 맛이 없길래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5분 정도 지난 후, 안지영은 입가를 닦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장선명은 여전히 입을 헹구고 있었다. 입에 여전히 그 맛이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장선명은 안지영을 보면서 얘기했다.“미안해.”“그건 대체 뭐였어요?”안지영이 물었다. 이윽고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뭘 넣은 거예요?”“소금만 넣었을 뿐이야.”“그럴 리가요.”안지영이 바로 대답했다.소금을 많이 넣었으면 그저 짤 것이다. 하지만 계란말이에서는 아주 더러운 냄새가 났다.“...”장선명은 정말 소금만 넣었기에 억울했다.“그럼 계란이 썩은 건가?”장선명이 의아해하면서 중얼거렸다.“당연하죠. 계란이 썩은 건지도 몰라요?”아까 먹은 계란말이가 썩은 계란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메스꺼웠다. 장선명은 아까 계란말이를 할 때부터 냄새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게 정상인 줄 알고 그대로 진행해 버렸다.그런데... 냉장고에 썩은 계란이 있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안 집사.”“네, 도련님.”안 집사가 바로 앞으로 나와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