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월과 진승연은 창백한 얼굴로 방에 들어왔다. 그녀들은 더는 배준우를 찾아갈 마음이 없어졌다.“어떻게 이럴 수 있지? 언니,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캐리어 때문에 그녀들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전부를 했었다.하지만 배준우가 이렇게까지 독하게 나오다니!이미월과 진승연은 창백한 안색으로 서로를 바라봤다.강성에 있을 때만 해도 배준우가 홧김에 그러는 줄 알았다.하지만 지금 보니 그건 절대 아니었다. 어쩌면 고은영이 정말 그녀들이 추측했던 것처럼 배준우가 수년간 찾았던 사람일 수도 있다.배준우가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르면서 그녀를 찾으려는 것은 그녀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언니, 고은영 그 여자 절대 가만두면 안 돼.”진승연은 이미월의 팔을 당기며 악랄하게 말했다.고은영에게 무릎까지 꿇었건만, 배준우는 전혀 봐 줄 생각이 없었기에 진승연은 크나큰 모욕감을 느꼈다.배준우가 어떻게......고은영의 얼굴을 떠올리니 진승연은 당장이라도 그녀의 얼굴을 망가뜨리고 싶었다.“어쩔 생각인데?”이미월은 진승연의 악랄한 말투에 저도 몰래 소름이 돋았다.한편 진승연이 무서운 일을 저지를까 봐 내심 걱정되기도 했다.진승연은 더 이상 참을 생각이 없었다.“무릎까지 꿇었으면 됐지, 뭘 어떻게 더 하라는 거야?”‘자존심까지 버렸는데 부족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왜 일이 이 지경으로 된 거야?’진승연은 도무지 화를 참을 수 없었다.이미월도 할 말을 잃었다.배준우는 도대체 뭘 원하는 거지?어떤 생각을 하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을 찾을 수 없었다. 설명도 했고 애원도 했지만 배준우는 놓아 줄 생각이 없었고 진영그룹을 이 지경으로 몰아붙였다.“언니, 나 오빠한테 한 번 더 다녀올게.”“가지 마.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어.”이미월은 진승연을 가로막았다.비록 인정하기 싫지만 지금 찾아가도 아무 소용이 없는건 맞다. 오히려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한 번 찾아갈 때마다 상황은 점점 더 불리하게
그래도 된다고?정책이 있으면 대책도 있다고, 안지영은 정말 잔머리 하나는 타고났다.고은영은 긴 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럼 나 실장님은? 4흘 준다고 했다면서?”비록 안지영이 자기를 배신하지 않을 건 알고 있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안지영이 말했다.“사직도 했겠다, 내가 왜 그 사람한테까지 대답해야 해?”안지영은 아주 당당하게 말했지만 사실 그녀도 현재 매우 불안한 상태이다.아무래도 나태웅과 배준우가 조사하는 일은 안지영의 사직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남성에서 CCTV 영상을 훼손한 주모자가 안지영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안씨 가문도 연루될 것이다.하지만 지금 안지영은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계속 동영 그룹에 있다가는 정신 분열이 올 것만 같았다. 하여 그녀는 고민끝에 사직을 결심했다.그녀는 고은영의 건투를 빌었고, 모든 희망을 고은영에게 걸었다.고은영은 안지영의 당당한 말투에 더욱 불안해졌다.“별일 없겠지?”안지영이 말했다.“은영아, 나 완전 미칠 것 같애.”“......”“네가 몰라서 그렇지 나 실장님 완전 악마야. 나한테 협박한 거 알아?”어떤 말은 비록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그 눈빛과 말투는 분명한 엄포이다.안지영은 누군가가 이토록 무서웠던 적이 없었다.하지만 나태웅의 날카로운 눈빛에 저도 몰래 위축되었다.고은영이 말했다.“그럼, 당연히 알지.”나태웅은 그녀에게도 협박한 적 있었다.역시 배준우의 사람이다. 가만히 보면 두 사람 닮은 곳이 한두 개가 아니다.“근데 아저씨는 어떻게 설득한 거야?”고은영은 의아했다.전에 안지영이 뭐라고 하든 안진섭은 절대 그녀의 사직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대체 무슨일 일까?“죽겠다고 했어!”안지영의 말에 고은영은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나태웅은 도대체 안지영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어쩌다 안지영이 죽음으로 몰아붙이는 수법까지 쓰게 되었을까?“은영아, 나 진짜 어쩔 수가 없었어.”안지영이 말했다.고은영이 대답을 하
필요 없긴?고은영은 지금 이 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안지영도 혼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라 고은영에게 물건을 다 가져오지도 못했다.안지영과의 통화를 끝낸 후, 고은영은 전에 지내던 곳에서 일부분의 물건을 하원 별장으로 옮겨왔다.그리고 고은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이미 퇴원했고 두 사람은 회사 근처의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고은영이 도착했을 때, 고은지는 창백한 얼굴로 혼자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이 고은지는 많이 헬쑥해졌다.그녀는 결혼 뒤에 한 번도 입지 않았던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비록 안색은 창백했지만 전보다 많이 밝아 보였다.“언니.”고은영은 고은지의 맞은편에 앉았다.고은지는 고은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왔어?”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고은지를 훑어보았다. 고은지는 오늘 옅은 메이크업을 해서 가정주부의 느낌을 완전히 벗어버렸다.사실 고은지는 얼굴이 예쁜 편인데 메이크업까지 더하니 더 정교해 보였다.갑작스러운 그녀의 변화에 고은영은 참지 못하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몸 상태는 어때?”그래도 과도가 목을 찔렀는데 고은지는 며칠도 안 쉬고 바로 퇴원했다.하여 고은영은 고은지의 건강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을까 봐 많이 걱정되었다.고은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젠 안 아파. 딱지 앉았어.”그제야 고은영은 시름을 놓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도 한동안 푹 쉬어야 해.”아무래도 큰 부상을 당했는데 회복을 잘 못하게 되면 몸에도 큰 피해가 생길 수 있다.고은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괜찮아. 내 걱정은 하지 마.”그녀는 더는 이 일을 언급하고 싶지 않아 이내 화제를 돌려 고은영에게 질문했다.“서정우 이젠 너한테 연락 안 하지?”“해. 매일 전화가 와!”서정우의 뻔뻔함에 고은영도 할 말을 잃었다.출장을 떠난 며칠 동안 서정우는 매일 전화나 메시지를 보내며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나약하게 고은영을 구워삶으려고 했다.하지만 그의 목적은 역시나 돈밖에 없었다.고은영도 더는 그런 이기
“그래, 이젠 절대 약해지지 말자.”“......”“그 여자는 우리 행복 파괴범이야!”고은영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몇 년 동안 조보은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두 사람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조보은이 교도소에 갇힌 요즘, 그녀들은 너무나 평온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비록 서정우가 귀찮게 군다지만, 조보은과 비교했을 때는 하늘과 땅 차이다.“그럼 형부랑은?”“이혼했지.”고은지는 쌀쌀하게 말했지만, 고은영은 그녀의 결혼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고은지의 결혼은 올가미다. 조보은이 그녀를 공제하기 위해 만들어 낸 올가미.이혼했다고 말하는 그녀의 말투는 유난히 가벼워 보였다.마치 조보은의 손바닥에서 이젠 완전히 벗어났다는 듯이.“그럼 희주는?”고은영이 또 물었다.“취직하고, 집 구하고, 어느정도 안정이 되면 그때 바로 데려올 거야.”이런 점에서 고은지는 진여옥이 아주 고마웠다.어쨌든 진여옥과의 갈등도 전부 조보은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지금은 모든 것이 끝났지만 진여옥은 여전히 자신의 손녀딸을 생각하고 있었다.“그래, 우선 안정되고 생각하자. 이력서는 뿌렸어?”“그럼, 근데 내가 아무리 대졸이라도 졸업하고 바로 결혼해가지고, 직장 경험이 하나도 없어.”하여 그녀는 취직이 쉽지 않았다.“천천히 하면 되.”이제부터가 시작이다.다시 시작하려는 용기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고, 충분하다!하지만 장기간 올가미에 묶였던 고은지는 시작할 용기조차 생기지 않았다.그런 고은지를 바라보며 고은영은 마음이 짠해졌다.“살 곳은 구했어? 없으면 동호구 집에서 살아. 비록 가구는 없지만 인테리어 끝난 지도 꽤 되니까 살 수 있어.”고은영은 어떻게든 고은지를 돕고 싶었다. 아무래도 몇 년간 오직 가정주부로 살았던 그녀가 갑자기 사회에 나가자니 아마 보통 사람들보다 어려운 것이 훨씬 많을 것이다.게다가 얼마 없는 그녀의 돈도 조보은이 모두 가져갔다.고은영이 보기에 고은지는 도움이 절실했다. 하지만 고은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야
하원 별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은영은 교도소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조보은이 그녀와의 만남을 요구했다고 한다.“전 만나고 싶지 않은데요.”“고은영 씨 어머니십니다. 그러니 한 번 만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상대는 아주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고은영은 굳이 상대하기 싫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언제부터인가 그녀는 누군가 조보은을 그녀의 어머니라고 칭하는 것이 소름 끼칠 정도로 싫어졌다.게다가 ‘만나야 할 필요가 있다’ 라는 말은 그녀의 신경을 더욱 자극했다.하여 그녀는 상대가 누구든 가차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서정우도 이젠 고은지를 설득하기 힘들었는지 고은영을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자꾸만 걸려 오는 전화에 고은영은 서정우의 번호를 아예 차단해 버렸지만 그러면 상대는 또 다른 번호로 연락했었다.혹시 배준우 앞에서 서정우에게 연락이 올까 봐 고은영은 하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뭐 하는 짓이야?!”서정우가 말했다.“누나.”전화기 저편의 서정우는 전과 다른 애원하는 말투로 그녀를 불렀다.물론, 고은영이 그의 요구를 거절하면 그는 바로 얼굴을 바꿀 것이다.고은영이 말했다.“만약 조보은 그 여자나 돈 때문이라면 아예 말도 꺼내지 마!”“그게 아니라 누나. 엄마 정말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그런데 보증금을 내야 풀어 준다잖아.”서정우는 조보은을 만났었다.조보은은 당연히 고은지를 다치게 하지 않았다고 했다.하지만 조사를 기다리기엔 시간이 너무 걸려서 그녀는 하루라도 빨리 나오고 싶었다.고은영이 말했다.“그럼 네가 내면 되잖아.”“내가 돈이 어딨어? 200만 원이래..”“나도 없어.”“강성에 믿을 사람이 누나밖에 없어. 아빠도 왔는데 우리 지금 지하통로에서 지낸단 말이야. 살 곳도 없다고...”서준호가 왔다고?조보은이 서준호와 새로운 가정을 만든 뒤, 서준호는 한 번도 고은지와 고은영을 받아준 적이 없었다.그렇기에 고은지는 그들과 생활하면서 한 번도 서준호의 웃는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오히려 학생인 고은
‘엄마는 어쩌다 이런 딸을 둘이나 낳았대?’서정우의 질책에 고은영은 쌀쌀맞게 웃었다.“말 똑바로 해. 네 엄마고 네 아빠야!”“......”“사내자식이 부모가 필요한 돈도 못 내놓는 주제에 얻다 대고 이래라 저래라야? 뻔뻔스럽게.”고은영의 말투에는 온통 서정우에 대한 혐오감으로 가득 찼다.조보은은 고은영와 고은지에게 엄마도 아니다.하지만 조보은과 서준호는 서정우를 극진히 아끼며 부모의 책임을 다했다.“이젠 너 혼자 알아서 해.”고은영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고은영의 말에 전화기 저편의 서정우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고은영이 전화를 끊으려는데 서정우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아무리 그래도 나한테 시간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나 아직 학생이야.”“나 학생 때도 집에서 한 푼도 받아본 적 없어! 나한테는 시간 줬었어?”시간?서정우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고은영은 화를 내며 말했다.“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된 자식인지, 역겨워 죽겠네 진짜. 너 이제 철 들어야 할 때야. 제발 정신 좀 차려!”그러고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서준호가 내 아빠라고? 이 자식은 어떻게 이토록 뻔뻔스러운 말을 입에 올릴 수가 있지?!’그녀는 고은지도 더는 그들의 일에 손을 떼기로 했으니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니면 정말 골치 아파질 게 분명했다. 심지어 서준호도 돌아으니!만약 이 시기에 조보은이 보석되어 교도소에서 나온다면 두 자매를 어떻게 해칠지 아무도 모른다.그리고 조보은이 정말 고은지에게 칼을 휘둘렀는지 고은영은 아직도 사실을 알 수 없지만 고은지가 그렇다니 그렇게 믿기로 했다.하원 별장.진씨 아주머니는 이미 점심을 다 차려놓고 그녀를 기다렸다.그녀가 돌아오자 진씨 아주머니는 반갑게 맞이했다.“작은 사모님 오셨어요? 대표님은 서재에 계십니다.”“그러면 제가 불러올게요.”고은영은 슬리퍼를 갈아신고 몸을 소독한 후 손을 씻었다.진씨 아주머니는 두 사람의 사이가 이렇게 좋은 걸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진씨 아주
그의 따뜻한 숨결이 고은영의 차가운 볼에 닿았다. 이 긴장감이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웬지 모를 야릿한 기분이 솟아났다.배준우의 품에서 배준우의 예리한 눈빛을 마주 보자니, 고은영은 긴장감에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대, 대표님.”“너 혹시 어렸을 때부터 용산에서 살았어?”“네, 나 용산 사람이잖아요. 왜요?”“안 그래 보여.”배준우는 진지하게 말했다.용산이 얼마나 가난한 곳인지 배준우는 알고 있다. 용산은 황량하기 짝이 없는 산골이었기에 산은 높고 길은 먼데다가 산에는 풀 한 포기도 자라지 않았다.전에 어머니를 보러 한 번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만났던 그곳 사람들은 모두 피부색이 어두웠다.그런데 고은영은 왜 이렇게 하얗고 말랑한거지?“......”고은영은 배준우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더군다나 그녀는 배준우가 용산에 가본 적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다들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배준우는 그제야 그녀를 풀어줬다.고은영은 벌떡 일어나 말했다.“밥.. 밥 드세요.”“많이 배고파?”그 말을 할 때, 배준우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아랫배를 쳐다보았다.배준우의 다정한 눈빛에 고은영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다급히 몸을 움직이며 말했다.“네, 배고파요..!”말을 끝낸 그녀는 쪼르르 서재 밖으로 달려 나갔다.아래층에서 식사 준비를 하던 진씨 아주머니는 토끼처럼 뛰어다니는 고은영을 보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그 뒤로는 배준우가 따라 나오며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가는 고은영을 향해 말했다.“조심 좀 해!”엄숙한 그의 목소리에 고은영은 즉시 발걸음을 늦추었다.하지만 속도 차이가 갑자기 나다보니 그녀는 하마터면 계단을 구를뻔했다.진씨 아주머니와 배준우는 순간 깜짝 놀랐고 배준우는 더는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식탁에서.입덧이 지났는지 고은영은 식욕이 좋아졌다.게다가 그녀는 고기를 엄청 좋아한다.배준우는 고기를 우걱우걱 먹는 그녀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하지만
그녀는 아련한 표정으로 배준우를 향해 물었다.“설마 지금 내가 많이 먹는다고 돈 아까워서 그래요..?”그녀의 물음에 배준우와 진 씨 아주머니는 모두 할 말을 잃었다.이건 대체 무슨 소리?진 씨 아주머니는 어이없다는 듯 고은영을 바라보았다.아무리 봐도 고은영은 먹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이 없어 보였다.배준우의 빛나는 비주얼 앞에서, 음식이 다 뭐란 말인가?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고은영은 냉큼 야채 한 젓가락을 집어 입에 넣으며 구시렁거렸다.“나 이제 야채도 먹어요!”배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갑게 그녀를 흘겨보았고 그 눈빛에 고은영은 더는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배준우는 얼마 먹지도 않고 배가 불렀다. 이때 마침 전화가 울렸고, 배준우는 전화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진 씨 아주머니는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아이고, 작은 사모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대표님이 설마 돈 아까워서 그러겠어요?”그깟 고깃값이 얼마나 든다고?그녀가 온 며칠 동안 진 씨 아주머니는 매일 장을 보며 고기도 많이 샀긴 했지만, 고작 20만 원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배준우는 20만원 이라는 작은 돈에는 아예 개념이 없을 정도로 부자다. 고은영은 입을 삐죽였다.“고기 먹는다고 뭐라 하잖아요.”그녀는 서러운 듯 말했다.워낙 고기를 좋아하지 않던 그녀는 어렵사리 고기에 맛을 들였는데 배준우에게 핀잔을 듣다니!진 씨 아주머니는 고은영의 말에 머리가 더 아팠다.“대표님은 작은 사모님 건강을 생각해서 그러시는 거에요.”“......”“고기와 야채 골고루 드셔야죠.”“정말 그럴까요?”고은영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진씨 아주머니를 바라보았고, 진 씨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작은 사모님을 속이기야 하겠어요?”“.. 알겠어요.”“보세요. 그 말에 대표님 화나셨잖아요. 이따가 대표님 좀 달래드리세요.”고은영이 자기의 잘못을 깨닫자 진 씨 아주머니는 얼른 그녀를 부추겼다.하지만 배준우를 달래라는 말에 고은영은 눈앞이 아찔해
진이훈은 자기 뺨을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나태웅은 안지영을 찾아가 머릿속을 열어보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저 여자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있는 거야.’“너무 화내지 마십쇼. 안지영 씨는 나 대표님을 만나지 않을 겁니다.”“장선명 때문에?”“...”진이훈은 할 말을 잃었다.정확하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나씨 가문은 장 씨 가문에게서 사과를 받아내야했디.하지만 나태웅의 충동적인 결정 때문에 그것마저도 거품으로 돌아갔다.진이훈은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나태웅은 화가 나면 그 감정에 휩쓸려 모든 것을 잊는 사람이었다.그 시각.안지영도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장선명은 저녁 열한 시에 들어왔다. 여덟 시에 나갔으니 총 세 시간 동안 밖에 있은 셈이었다.집에 돌아온 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물었다.“왜 화내고 있는 거야?”“나태웅 때문에요!”안지영이 이를 꽉 깨물고 대답했다.안지영의 화를 이만큼이나 돋울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나태웅이 유일할 것이다.이제야 회사 일 때문에 나태웅에게 제대로 복수도 하지 못했는데, 나태웅은 거의 매일 시비를 걸었다.게다가 가장 화가 나는 건, 나태웅 때문에 안지영의 아버지가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태웅은 사과 한마디 없었다는 것이다.안지영은 그런 나태웅을 무시하려고 했지만 나태웅이 매일 시비를 걸고 또 자기 아버지까지 끌어들였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신나나 씨는 어때요?”안지영은 나태웅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바로 화제를 돌렸다.나태웅 얘기를 듣던 장선명은 표정이 어두워졌다.신나나의 얘기를 꺼내자 장선명의 표정은 더욱 썩어들어갔다.“눈가를 3cm 정도 봉합했어. 지금은 병원에 있어.”“그렇게 심각한 일이었어요?”안지영은 아주 놀랐다.클럽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하지만 신나나는 매직 썬의 에이스로서 인기도 많고 돈벌이도 쏠쏠했다.기씨 가문은 요즘 들어 강성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가문이었지만 장씨 가문과
안지영은 화가 나서 이마의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였다.전화기 너머의 나태웅은 계속해서 이어 얘기했다.“안지영, 장선명은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본 남자야. 네가 그런 남자의 눈에 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아니면, 장선명이 정말 너랑 약혼할 거라고 생각해? 매하리에서 한번 은혜를 입었다고 정말 너를 데리고 일생을 살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지금도 봐, 장선명은 다른 여자를 위해 너를 버렸잖아!”안지영은 나태웅의 말투가 안지영의 불행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장선명에게 버려진 안지영을 보면서 축하 파티라도 열 사람 같았다.나태웅의 인성을 잘 아는 안지영은 나태웅의 생각도 쉽게 알 수 있었다.‘전에 동영 그룹에 있을 때는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하, 그렇게 말하면 본인이 장선명 씨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좋은 사람이라면 왜 나더러 하주원한테 가서 사과하라고 하는 거예요? 시비를 가리는 눈이 없나 봐요?”“그건 다른 일이잖아!”“뭐가 다른데요! 내로남불 같은 놈.”안지영이 중얼거리면서 말했다.지금의 안지영은 그저 나태웅을 욕할 기회만 있으면 서슴지 않고 욕설을 쏟아냈다.안지영은 전 세계의 욕설을 모아서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은 심정도 들었다.나태웅은 그럴만한 사람이니까 말이다.“안지영, 좋은 말로 할 때 입에서 걸레 빼.”“너나 입에서 걸레 빼세요.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내가 아무리 힘든 상황이어도 당신만큼은 죽어도 찾아가지 않을 테니까. 왜 계속 내 눈앞에서 걸리적거리는 거예요! 관종이에요?”“...”나태웅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확신했다.‘안지영,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선심을 써서 얘기해 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욕설뿐이었다.하지만 안지영은 쉬지 않고 이어서 얘기했다.“그리고, 선명 씨가 신나나 씨 때문에 매직 썬에 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굳이 와서 귀띔해 줄 필요 없어요.”“...”‘장선명이 알려줬다고? 이건...’“나태웅 씨, 당신은 장선명이랑 비교하
‘지금 벌인 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정말 미친 거 아니야?’안지영은 심호흡을 하면서 끓어오르는 화를 식히려고 노력했다.“안지영, 제발 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살아.”나태웅은 화가 나서 이를 꽉 깨물고 소리를 질렀다.그러자 안지영도 더는 참지 못하고 같이 화를 냈다.“내가 생각을 안 하는 사람처럼 보여요? 나태웅, 당신은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나태웅에게 괴롭힘당하는 요즘을 생각하면 안지영은 나태웅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강성의 사람들은 나태웅이 안지영 때문에 미치광이가 된 줄 안다.하지만 안지영은 나태웅의 정신병이 대대로 유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나태웅은 안지영을 강성에서 가장 잔인한 여자로 만들어 버렸다.그리고 이제는 안지영을 괴롭히는 데 그치지 않고 장선명까지 괴롭히려고 한다.나태웅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숨이 턱턱 막혔다.“내가 뭐 하는 거냐고? 뭐 같아 보이는데?”“내가 당신 같은 사람의 속셈을 어떻게 알겠어요! 궁금하지도 않아요!”안지영은 짜증이 확 몰려왔다.안지영은 나태웅 때문에 화가 나서 이성을 잃은 채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안지영, 장선명이 오늘 밤 왜 나갔는지 정말 모르겠어?”“당신이 일을 벌이니까 나간 거잖아요!”안지영이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지금 당장이라도 나태웅을 죽이고 싶었다.“신나나 때문에 킹덤 타운을 떠난 거야.”“...”두 사람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분노로 과열되었던 분위기가 조금 진정되었다.안지영은 숨이 점점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화가 난 나머지 제 자리에 서서 몇 바퀴나 돌았다.나태웅에게 뭐라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너무 화가 나서 아무 말도 나가지 않았다.아무 대답도 못 하는 안지영을 보면서 나태웅은 말투를 약간 누그러뜨렸다.“너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장선명은 신나나를 구하러 매직 썬에 간 거야.”나태웅은 일부러 신나나의 이름을 강하게 읽으며 얘기했다.마치 안지영에게, 장선명은 이미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 같았다.
“...”요리 실력이 없다고 해도...“아무리 그래도 처음부터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장선명이 의아해하면서 얘기했다.“하지만 이건 재능이 필요한 영역이에요!”안지영은 무슨 일을 하든지 재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요리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똑같은 식재료와 똑같은 양념으로도 다른 맛이 나는 것은 재능의 문제가 아니겠는가.구이준은 그들에게로 다가오다가 안지영과 장선명이 요리 재능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대표님이 언제부터 요리를 좋아하게 된 거지? 아니면 안지영 씨 때문에 그렇게 된 건가?’구이준을 본 장선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여기는 무슨 일로.”구이준이 앞으로 다가가서 얘기했다.“도련님, 매직 썬에 일이 생겨서 다녀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매직 썬.그 말을 들은 안지영은 저도 모르게 장선명을 쳐다보았다.안지영은 매직 썬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거기의 언니들이 예쁘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돈 많은 유부녀들이 자주 가는 곳인데, 그곳의 남자들이 잘생겨서였다.매직 썬에 일이 생겼다는 것을 들은 장선명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안지영에게 보여줬던 부드러움과 온화함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차가운 기운만이 남아있었다.장선명이 중저음으로 물었다.“무슨 일이지?”“기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이 꼭 나나 님을 데려가겠다고 하셔서요.”나나는 매직 썬에서 예쁘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안지영도 들어본 적이 있는 정도니까 말이다.그리고 기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이라면... 양아치가 틀림없었다.대충 알 것 같았다.나나는 그래도 자존심이 있는 여자였다. 그런 나나에게 기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은 양아치나 다름없는 사람일 것이다.그러니까 거기서 모순이 생긴 것이다.그 말을 들은 장선명은 안지영을 보면서 얘기했다.“다녀올게.”안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가요.”장선명은 몸을 일으킨 후 핸드폰을 챙겼다. 안지영 앞에 남은 피자 반 판을 보던 장선명이 말을 덧붙였다.“적당히 먹는 게 좋을 것 같아. 살
“먼저 돌아가.”“그럼 안지영이 날 때린 건...”거기까지 말한 하주원은 말을 멈추고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그리고 입을 열었다가 다시 숨을 고르며 눈물을 쏟았다.하주원은 본인을 가녀린 피해자로 만들어 놓았다.하주원이 안지영과의 사건을 꺼내자 나태웅의 표정이 또다시 어두워졌다.“네가 먼저 찾아가서 안지영을 때린 거잖아. 아니야?”“아니야. 난 그저 오빠가 마음에 들어 하는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보려고...”“...”“대화 좀 나누다가 안지영이 갑자기 나를 때린 거야!”하주원이 울면서 얘기했다.눈물을 흘리면서 하는 말은 거짓말 같지 않았다. 하주원의 모습을 본다면 모두가 그걸 진짜라고 믿을 것이다.나태웅이 미간을 찌푸렸다.“안지영이 먼저 때린 거야?”하주원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안지영이 먼저 나를 때린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나도 반격하지 않았을 거야.”나태웅은 속에 화가 부글부글 끓었다.안지영이 먼저 손을 올린 것이라면...안지영의 성질을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안지영은 조금이라도 심기가 불편하면 성질을 부리니까 말이다.전형적인 강약약강이 아닌가.전에는 배준우가 복수할까 봐 두려워하더니, 하주원한테는 함부로 대하다니. 나태웅에게 있어서 안지영은 충분히 그럴 사람이었다.참지 않는 것도, 참지 못하고 폭발하는 것도 다 안지영이다.“먼저 돌아가.”“이모가 있을 때는 이런 일을 겪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어. 이모가 보고 싶어. 엉엉...”하주원은 또 나태웅의 어머니를 언급하면서 눈물을 흘렸다.나태웅은 머리가 아파서 한숨을 푹 쉬고 이마를 매만졌다.“먼저 돌아가. 안지영이 곧 사과할 거야.”“정말? 정말이야?”하주원이 울면서 물었다.“그래.”다 성인이니 본인이 한 짓에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특히 안지영은 제대로 혼내주지 않으면 앞으로도 더 막 나갈 것이다.나태웅의 대답을 들은 하주원은 만족했다.하주원은 아까 나태범과 나태웅의 대화를 다 엿들었다.하지만 그래도 하주원
밖에서 금방 돌아온 진이훈은 나태웅이 온 힘을 다해 핸드폰을 탁상 위로 던지는 것을 보았다. 핸드폰 액정은 마치 거미줄처럼 금이 가 있었다.진이훈은 속으로 핸드폰 수리점에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했다.“하주원 씨가 오셨습니다. 만나보실 겁니까?”진이훈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하주원이라는 이름을 들은 나태웅은 그저 머리가 아팠다.미간을 누른 나태웅이 얘기했다.“들어오라고 해.”“네.”진이훈이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손잡이를 돌리려던 순간, 진이훈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물었다.“아까 어르신께서 꽃을 주문하라고 하셨습니다.”“무슨 꽃?”“장미꽃이요. 내일 대표님 이름으로 안지영 씨한테 보낼 예정입니다.“...”그 말을 들은 나태웅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그년한테 꽃을 보낸다고? 이게 무슨 수단이지?’안지영이 다른 여자와 다르다는 것을 떠올린 나태웅은 숨을 깊이 들이쉬더니 얘기했다.“다른 방법을 알아보라고 해. 그년은 꽃을 좋아하지 않으니까.”진이훈은 그 말을 듣고 입꼬리를 억누르려고 애썼다.‘이런 상황에서도 그년이라고 부르시니...’“네.”진이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원수 같은 두 사람을 보면서, 진이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지금은 나태범까지 끼어들었으니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진이훈이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하주원이 눈물을 닦으면서 들어왔다.표정이 좋지 않은 나태웅을 본 하주원이 억울한 듯 속삭였다.“태웅 오빠.”나태웅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하주원을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눈빛을 마주한 하주원은 저도 모르게 겁을 먹었다.하지만 당당하게 얘기했다.“안지영과 헤어지면 안 돼? 안지영은 오빠한테 부족한 여자야.”“그럼 누가 나한테 어울리는데. 네가?”“태웅 오빠...”그 말을 들은 하주원은 얼굴을 붉혔다.그리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주원에게 있어서는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 대답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이모님이 얘기했었잖아
장선명은 바로 전화를 받아서 스피커폰으로 돌려놓았다.“나태웅, 설마 나한테 사과하라고 할 건 아니지?”장선명은 ‘사과’라는 두 글자에 힘을 주어 얘기했다.안지영은 그 두 글자를 듣고 표정이 굳어버렸다.나씨 가문은 사과를 받아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지 않나.나태웅이 요즘 안지영더러 계속해서 하주원에게 사과하라고 한 걸 떠올리니 안지영은 화가 치밀었다.전에는 나태웅이 이렇게 막무가내인 사람인 줄 몰랐지만 이제야 알게 되었다.정말 솔로인 것이 당연한 사람이다.“오늘 나씨 가문에서 일어난 일에 관해서 설명을 해줬으면 하는데.”안지영은 장선명 옆에 앉아 있다가 그 말을 듣고 하마터면 욕할 뻔했다.하지만 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품에 안고 따뜻한 손으로 안지영의 입을 막은 후 고개 숙여 웃으며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쳐다보면서도 나태웅을 향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장선명은 가볍게 웃었다.“나태웅 씨가 원하는 게 어떤 걸까? 내 약혼녀랑 같이 너네 가문 경호원한테 가서 사과라도 해야하나?”“...”“...”장선명이 오늘 나씨 가문에서 사람을 때렸으니 사과를 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하지만 지금 장선명의 태도에서는 사과하려는 마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장선명이 약혼녀를 데리고 나씨 가문의 경호원한테 사과하러 간다니.“장선명,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아니면 경호원은 사람으로 보지도 않는다는 건가?”“하.”장선명이 크게 웃었다.“반응은 빠르네. 여태까지 네가 바보인 줄 알았는데.”‘바보’라는 단어에 전화기 너머의 나태웅이 턱에 힘을 꽉 주었다.숨소리마저 기분 나빠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장선명, 선 넘지 마.”나태웅이 이를 꽉 깨물고 장선명을 찢어 죽일 것처럼 말했다.“왜, 이 뜻이 아니었나?”틀린 건 아니었다.하지만 나태웅이 장선명더러 경호원을 찾아와 사과하라고 할 수도 없는 짓이었다.나태웅은 원래 장선명이 이렇게 하도록 할 생각이 없었지만 장선명이 그렇게 얘기하자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의 눈빛을 바라보면서 약간 난감해했다.“정말 못 맡은 거예요?”“맡았어.”장선명이 당당하게 얘기했다.하지만 장선명은 그게 썩은 냄새인 줄 몰랐다. 그저 날계란의 냄새인 줄로만 알았다. “...”안지영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도대체 요리할 줄 아는 거 맞아요?”“너무 잘하는 건 아닌데, 너한테 만들어주고 싶었으니까.”장선명이 당당하게 얘기했다.안지영은 자기 귀를 의심할 뻔했다.‘요리를 해주고 싶은 게 아니라 죽이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앞으로 요리하지 말아요.”안지영이 얼른 말했다.‘난 아직 오래 살고 싶어. 아니, 저번에도 요리하지 않았던가? 그때는 이 정도 실력이 아니었는데, 왜 이번에는 계란이 썩은 것도 몰랐지?’하지만 안지영은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아까 먹은 계란말이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었다. 앞으로는 절대 장선명의 요리를 먹지 않을 것이다.“알겠어. 안 할게.”“앞으로는 고용인들께 부탁드려요.”안지영은 얼른 장선명을 끌고 주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집사에게 눈치를 줬다.고용인들은 얼른 주방에서 요리를 시작했다.안지영은 주방 쪽을 향해 외쳤다.“주방용품 여러 번 씻어주세요. 아니면 그냥 버려주세요.”고용인들은 안지영을 쳐다보면서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사모님.”“...”‘이런 오해를...’표정이 좋지 않던 장선명은 고용인의 말을 듣고 금세 미소를 지었다.안지영이 반박하려는데, 장선명이 안지영을 품에 그러안고 집사를 보며 얘기했다.“저 사람은 월급을 올려줘.”“네.”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그 고용인은 약간 멈칫했다가 장선명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감사합니다!”기뻐하는 장선명의 표정을 본 안지영은 장선명의 허리를 확 꼬집었다.장선명은 아파서 ‘습’하고 숨을 들이켰다.“이 여자 봐라? 남편을 죽이려고?”“우리 아직...”“어차피 곧 결혼할 거잖아. 웨딩드레스도 이미 정했는데.”장선명이 얘기했다.“...”웨딩드레스를 떠올린 안지영은 아무 말
장선명은 계속 토하는 안지영을 보고 다시 계란말이를 쳐다보더니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렇게 맛없는 거야? 토할 만큼?’흐뭇한 분위기는 얼마 가지 못했다.집사와 고용인들은 서로 난감해하면서 시선을 피했다.장선명은 안지영에게 물을 건네주었다. 안지영은 입을 헹구었지만 여전히 입에서 그 맛이 나는 것만 같았다.“우웩.”“...”‘또 토한다고? 그렇게나 맛이 없었어?’장선명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계란말이를 입에 넣었다. 도대체 얼마나 맛이 없기에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계란말이를 씹는 그 순간, 장선명은 그대로 굳어버렸다.이건 맛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장선명도 쓰레기통 옆에서 연신 구역질을 했다.“우웩.”주방 밖에 서 있던 집사와 고용인들은 그 모습을 보고 서로 눈치를 보았다.자기가 만든 것을 먹고 토하는 경우라니... 얼마나 맛이 없길래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5분 정도 지난 후, 안지영은 입가를 닦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장선명은 여전히 입을 헹구고 있었다. 입에 여전히 그 맛이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장선명은 안지영을 보면서 얘기했다.“미안해.”“그건 대체 뭐였어요?”안지영이 물었다. 이윽고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뭘 넣은 거예요?”“소금만 넣었을 뿐이야.”“그럴 리가요.”안지영이 바로 대답했다.소금을 많이 넣었으면 그저 짤 것이다. 하지만 계란말이에서는 아주 더러운 냄새가 났다.“...”장선명은 정말 소금만 넣었기에 억울했다.“그럼 계란이 썩은 건가?”장선명이 의아해하면서 중얼거렸다.“당연하죠. 계란이 썩은 건지도 몰라요?”아까 먹은 계란말이가 썩은 계란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메스꺼웠다. 장선명은 아까 계란말이를 할 때부터 냄새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게 정상인 줄 알고 그대로 진행해 버렸다.그런데... 냉장고에 썩은 계란이 있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안 집사.”“네, 도련님.”안 집사가 바로 앞으로 나와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