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승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미월이 그녀를 계속 재촉했다."우리 고은영한테도 사과하러 가야 해."방금 전, 배준우는 이미월의 체면을 전혀 봐 주지 않았다.그런데 진승연의 아버지는 이미월의 삼촌이었다.배준우는 그 관계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정말 고은영 때문에 그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다."승연아."진승연의 말을 들은 이미월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언니는 오빠랑 어떻게 얘기할지 잘 생각해 봐."진승연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배준우에게 확인을 받기 전까지 두 사람이 말한 모든 것은 그저 추측에 불과했다."응, 알고 있어."이미월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녀는 당연히 배준우와 잘 얘기해 볼 생각이었다.하지만 배준우는 지금 그녀와 단둘이 만나주지도 않았다."지금 언니랑 오빠 사이의 가장 큰 장애는 고은영이야."두 사람은 고은영이 그들의 길을 막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배준우가 지금 진영 그룹에게 하고 있는 모든 것은 고은영이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응, 알았어."이미월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그녀의 눈 밑을 스치고 지나간 날카로움을 진승연은 눈치채지 못했다.......진승연은 내키지 않았지만 회사에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결국 다시 배준우의 방을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이번에 그녀는 감히 수작질을 부리지 못했다."고은영 씨, 미안해요. 어제는 제가 너무 충동적으로 행동했어요. 어제 캐리어에 있던 물건 계산해 주면 내가 10배로 쳐서 갚아드릴게요."진승연은 성질을 죽이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녀는 진심을 담아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일이 이렇게까지 되었으니 더 이상 고은영을 무시할 수 없었다.특히 배준우의 앞에서는 더욱 그랬다.짧은 시간 안에 배준우는 강경한 수단으로 진영그룹을 파산의 지경까지 몰고 갔다.진승연도 그 짧은 시간 안에 배준우 앞에서의 자신의 지위를 알게 되었다.진 회장의 말처럼 그녀는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말았어야 했
배준우는 그 말을 듣곤 미간을 찌푸리며 진승연을 바라봤다."다음에도 그 말 기억해.""네, 알았어요."그 대답을 하는 진승연은 곧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았다.마치 지나가 버린 그들의 감정을 애도하기라도 하듯.예전의 진승연은 배준우와 친구 사이이기도 하고 이미월의 관계까지 겹쳐 두 사람이 친밀한 우정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보니 그건 진승연 혼자만의 생각인 듯했다."나가 봐."배준우는 더 이상 진승연과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손짓했다."그럼 진영 그룹은요?"진승연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배준우를 바라봤다.그녀가 고은영에게 사과를 한 것도 모두 진영 그룹을 위한 것이었다.그 말을 들은 배준우가 고은영을 힐끔 바라봤다. 그 눈빛을 마주한 고은영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배준우의 행동은 진승연이 고은영을 더욱 미워하게 하기에 충분했다.진승연은 원래 고은영을 미워하고 있었는데 배준우가 지금 이러면 모든 것이 그녀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다.진영그룹의 일부 상품이 시대에 뒤떨어져 배준우는 진작에 파트너를 바꾸고 싶어 했다.이번 일은 도화선에 불과했다."준우 오빠!배준우가 고은영을 바라보자 진승연은 더욱 다급해졌다.자신이 고은영에게 사과까지 했는데 배준우는 아직 자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걸까?설마 무릎이라도 꿇으라고 하려는 건 아니겠지?진승연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하지만 그녀는 미래를 위해 간신히 참아냈다.그때 배준우가 담배를 꺼내더니 불을 붙였다. "너희 아버지한테 전해, 일은 이미 일어났으니 돌이킬 수 없을 거라고. 네 사과로 일이 계속 악화되지 않은 거야.""준우 오빠…"배준우의 말을 들은 진승연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그러니까 그의 말대로라면 정지된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할 수 없다는 건가?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건지!고은영이 그에게 이렇게나 중요한 존재라고?"저 고은영씨한테 이미 사과했잖아요."진승연이 고
배준우가 이렇게까지 나오다니.고은영은 그동안 안지영과 한 짓을 그에게 들킨다면 안씨 집안도 진씨 집안과 같은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은영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의 집과 돈은 모두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그 생각을 하니 고은영의 안색이 창백해졌다.전에는 용기를 내어 모든 것을 인정할까도 생각했었지만 지금 배준우가 진승연을 대하는 것을 보니 고은영은 인정하려는 생각을 거두었다.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일을 무덤까지 끌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오빠,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가 있어? 나는 어제 오빠가 언니한테 그렇게 대하는 거 보고 화가 나서 고은영씨한테 무례하게 굴었던 거야. 그런데 진영 그룹이 파산하는 걸로 이 모든 걸 감당하라고? 대가가 너무 큰 거 아니야?!"진승연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고통과 분노가 섞인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모두 배준우의 무정함을 탓하고 있었다."그 일을 저지를 때 이런 대가까지도 생각했어야지. 네가 특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진승연은 그 말을 들으며 배준우와 이미월 사이가 좀 전에 방에서 말했던 것과 같은 사이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다시 분노한 눈으로 고은영을 바라봤다, 불만과 분노는 이미 최고점에 달했다."3초 줄 테니까 꺼져, 아니면 진영 그룹이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배준우가 하는 말을 들으니 진승연은 손이 떨렸다.왜? 배준우의 비서일 뿐인 여자가. 두 사람의 결혼은 협의 결혼일 뿐이었는데 일이 왜 지금처럼 된 건지.진승연은 왜 일이 이 지경까지 된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배준우의 차가운 눈빛이 마치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는 듯했다."오빠!""나가."진승연은 무언가 더 말하려고 했지만, 싸늘한 얼굴을 한 배준우는 그녀의 말을 들어줄 뜻이 없어 보였다.진승연은 그런 배준우를 보며 서운한 마음이 들어 눈물을 흘렸다.그러다가 결국 억울함만 잔뜩 안고 화가 난 얼굴로 방을 나섰다.고은영은 그런 독한 배준우를 보며
그녀의 말에 배준우는 커피잔을 들다가 잠시 멈칫했다.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은영을 쳐다보자,그의 기분을 눈치챈 고은영이 재빨리 이어서 말했다.“저, 이간질하는 거 아니에요.”그녀는 순전히 자신의 안전이 걱정됐다.배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넌 그럴 능력이 없지.”하긴, 가끔 똑똑한 면이 있긴 하지만 이간질할 생각을 할 정도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지금도 진짜로 자기의 안전에 대해서만 걱정하고 있다.“진승연 씨가 진짜로 그렇게 할까요?”고은영이 또 물었다. 확실하게 물어보고 싶었다.이 일에서 그녀가 도화선 작용을 하긴했지 진승연의 태도를 보니 모든 잘못을 그녀의 탓으로 돌릴 게 뻔했다.배준우가 대답했다.“매일 나랑 함께 다니는데, 너한테 나쁜짓을 할 기회가 없어.”“저 혼자 있을 때도 있잖아요.”고은영은 중얼거렸다. 진심으로 걱정됐기 때문이다.자주 배준우와 함께 다니긴 하지만 매일 그런 아니었다.대부분 시간을 그와 함께 보냈지만 혼자 있는 시간도 분명히 있었다.배준우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그의 눈빛에 고은영은 움찔하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그냥 걱정돼서요.”자기의 걱정을 이렇게 솔직하게 숨김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아마 고은영뿐일 것이다.배준우는 피식 웃었다.“그럼, 나랑 붙어 다니든가!”지금 그는 진영그룹을 상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하지만 고은영의 마음속에는 그 잔인했던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아니 그 모습을 절대 잊을 수가 없었다.그녀가 이어서 말하려는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문, 제가 열게요!”배준우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고은영은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한편, 진승연은 얼굴이 창백한 채로 방으로 돌아왔다.그녀가 들어오자마자 이미월은 서둘러 물었다.“어떻게 됐어?”진승연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그녀는 공허함이 가득 찬 눈으로 이미월을 바라보았다. 진승연의 모습에 이미월은 조금 놀랐다.“준우가 뭐래?”설마?이번에는 진승연이 직접 사과하러 갔으
”준우야!”이미월이 찾아오자, 배준우는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불쾌해했다.이미월이 물었다.“내가 올 타이밍이 아니야?”육명호도 이 상황이 난처했기에 이미월을 보고 그도 멍해졌다.그는 아직 배준우와 고은영 사이를 모르고 있다. 너무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미처 알 기회가 없었다.하지만 배준우와 이미월의 사이는 알고 있다.전에 배준우가 이미월을 좋아하고 있을 때 그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당시 배준우를 다 완벽하지만, 안목은 별로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지금 이미월이 갑자기 이렇게 들이닥친 모습을 보니 육명호의 생각은 더 확실해졌다.배준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나가!”그는 차갑고 냉담한 말투로 말했다.고은영도 이미월이 갑자기 들이닥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배준우가 지금 바쁘다고 말하고 이미월을 돌려보낼 참이었는데 그럴 겨를도 없이 그녀가 들이닥쳤다.이미월의 이런 태도에 고은영은 어이가 없었고, 배준우의 행동에 이미월은 마음이 아팠다.“한마디만 하고 갈게.”“아니, 당장 나가!”배준우의 언성이 높아졌다.이미월의 선넘는 행동에 배준우의 인내심도 이미 바닥이 났다.배준우의 태도에 고은영이 서둘러 앞으로 나섰다.“이미월씨, 일단 방으로 돌아가세요.”그에게 이미월은 중요한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 그를 화나게 하는 사람도 그녀다.“네까짓 게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이미월이 분노했다.“......”이미월의 모습에 세 사람 다 할 말을 잃었다.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쳐다봤다.그녀도 스스로에게 놀랐다.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어쩌면 고은영에 대한 위기의식에 그녀의 목소리만 들어도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일 수도.배준우의 어두운 눈빛에 이미월도 이성을 되찾았다.“준우야, 나......”고은영의 표정도 어두워졌다.“이미월씨, 배 대표님은 지금 회의 중이십니다. 그러니 이만 나가주세요.”단호한 말투로 말했다.고은영은 병원에서 이미월을 봤을 때부터 그녀가 가식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배준우 앞에서만 온
이미월은 더는 얘기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다.그녀가 드디어 나갔다.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육명호가 그제서야 웃으며 말했다.“이 문제가 더 배 대표를 짜증 나게 하죠?”자기가 사랑하는 여자가 이렇게 행동하니 짜증 나지 않을 남자가 없었다.남자라면 자기 여자가 조금 순종적이길 바라니까.배준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흘겨보았다.“또 무슨 일?”“아니, 배 대표는 왜 갑자기 장서경이랑 손잡기로 한거죠?”육명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배준우를 쳐다보았다.어젯밤 분명히 얘기가 잘 끝났는데, 갑자기 장서경 쪽으로 돌아섰으니 말이다.장서경은? 북성의 원탑이자 육명호의 천적이다.두 사람은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라이벌 관계이다.그런데 배준우가 강서경을 택했으니, 육명호의 마음에 불을 지핀 셈이였다.배준우가 커피잔을 들며 대답했다.“일 처리가 깔끔하니까요.”그가 차갑게 한마디 던졌다.배준우의 말에 육명호의 얼굴이 굳어졌다.대체 무슨 뜻이지? 그의 일 처리는 깔끔하지 못하다는 뜻인가?그가 뭘 어쨌다고!어제 북성에 도착해서 같이 밥 한 끼 먹은 게 다인데, 어떻게 안다고 이렇게 말하는 거지?아무리 생각해도 배준우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배 대표, 무슨 뜻이에요?”육명호는 혼란스러운 듯 배준우에게 되물었다.오늘 이 얘기를 분명히 끝내 않으면 마음이 찝찝할 것 같았다.배준우가 대답했다.“말한 그대롭니다.”“.......”육명호는 더욱 멍해졌다.말한대로 라고? 그래서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장서경이랑은 밥 한 끼도 같이 먹지 않고 협업해 놓고.그걸 말하는 건가?그걸 원하면 직접말하든가......!육명호는 어리둥절한 듯한 얼굴로 고은영을 쳐다봤다. 고은영이라도 대신 설명해주길 바랐다.하지만 고은영은 얼굴을 한쪽으로 돌리고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육명호는 다급해졌다. 그는 다시 배준우를 쳐다보며 말했다.“내가 아니더라도 장서경을 선택하면 안 되죠. 배 대표는 나랑 장서경이 어떤 사이인지 잘 알잖아요......”
고은영과 배준우의 차가운 태도에 육명호는 서둘러 말을 고쳤다.“알았어, 고 비서!”지금은 호칭에 연연할때가 아니다.육명호는 생각에 잠긴 듯 고은영에게 물었다.“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나한테 말해줘. 배 대표가 왜 갑자기 장서경을 선택했는지.”장서걍을 생각하니 육명호는 화가 치밀었지만 화를 분출할 곳이 없었다.고은영이 대답했다.“일처리가 깔끔해서요.”배준우와 똑같이 대답했다.육명호가 다시 물었다.“내가 뭘 어쨌다고? 무슨 문제가 있는데 도대체?”일처리가 깔끔하다는 건 뭘 말하는 건지.잠깐, 어제 배 대표가 화내고 갔잖아. 혹시 이소원 때문인가?육명호는 요즘 이소원이 말을 듣지 않은 걸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올랐다.하지만 고은영 앞에서는 티를 내지 않았다.고은영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육명호는 가방에서 블랙카드를 꺼내 고은영의 손에 쥐어줬다.“고비서가 자세히 알려줘봐.”고은영은 손에 쥐어진 블랙카드를 보았다.육호명 사람을 매수하는 데 쓰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는다.저번에, 회사에 찾아갔을 때도 프론트 데스크 직원들에게 커피를 돌렸다.고은영은 블랙카드를 돌려주며 말했다.“육 대표님께서 저한테 이 카드를 준 걸 배 대표님께서 아시게 되면, 이번뿐만 아니라 영원히 협업할 기회를 잃으실 수도 있습니다.”배준우가 가장 혐오하는 짓이 이 짓이다.고은영이 블랙카드를 다시 돌려주자, 육명호는 깜짝 놀랐다.그러고는 역시 배준우의 사람이라고 감탄했다. 가난하긴 하지만 정의로우니 말이다. “그래. 그럼, 우리 친분을 봐서라도 배 대표한테 내 얘기 좀 잘해줘.”“변하는 건 없어요. 배 대표님은 한번 결정하시면 절대 번복하지 않으세요.”고은영은 더욱 단호하게 말했다.그런 방식은 배준우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이미월을 대해는 태도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 수 있다.그런 사람을, 누가 감히 설득하려 들까?완강한 두 사람의 태도에 육명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 질렀다.“좋아. 가서 배 대표한테 전해. 반드시 이번 선택의
배준우가 그딴 비서에게 월 400만 원이나 준다고?너무 많은 거 아닌가?하긴 항상 배준우옆에 붙어 있는 걸 보면 평범한 존재가 아닐지도.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럼 우리 회사로 이직하면 1000만 원 줄게!”고은영은 입술이 떨렸다.육명호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제안을 하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갑자기 왜 이러는지.만약 배준우를 화나게 하려고 이런 제안을 했다는 걸 알면, 분명 그의 얼굴에 커피를 뿌렸을 것이다.고은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육명호가 다시 이를 악물었다.“좋아. 적으면 2000만 원으로 하자!”자기 라이벌과 손을 잡은 배준우에게 복수 할수 있는 방법은 그가 가장 아끼는 비서를 채가는 것이다.육명호는 분노에 이성을 잃었다.고은영은 그에게 맞장구쳐 줄 생각이 없었다.“대표님, 죄송합니다. 저는 지금 이직할 생각이 없어요.”육명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비록 그의 제안이 유혹적이긴 했지만, 그를 보면 그다지 믿음이 가는 제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2000만 원을 줘도 이직을 안 한다고?”“저는 이미 강성에 집도 사고 해서, 강성을 떠날 생각이 없어요.”고은영이 단호하게 말했다.하긴 그녀의 말도 사실이었다.그렇게 힘들게 노력해서 겨우 집을 샀는데, 다른 곳에 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게다가 자기 능력이 한정적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으니 지금 회사에서 400만 원이라는 월급을 받는 것도 감지덕지하게 여겼다.배준우와의 협업이 물거품이 된 것도 화가 나 죽겠는데, 2000만 원을 주고도 그의 비서를 채갈 수 없다니 정말 화가나 미칠 지경이었다.고은영은 더는 얘기를 이어가지 않고 서둘러 호텔로 돌아갔다.방에 들어가니, 배준우는 통화 중이었다. 진영그룹의 일인듯 했다.고은영은 이미월이 찾아와서 그 정도 했으면 배준우도 적당히 하고 멈출 줄 알았다.하지만...... 아니었다.오히려 상황이 더 심각해진 것만 같았다.전에는 모든 프로젝트를 중단했던 상황이라면, 지금은 관련 프로젝트
고은지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8시였다.어두운 복도를 따라 위로 올라가니 문 앞에는 량천옥이 서 있었다.그 옆에는 작은 캐리어까지 있었다.얼마나 기다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량천옥은 고은지를 보자마자 환히 웃으면서 얘기했다.“은지야, 나 너랑 같이 살려고 왔어.”“그러지 마세요. 당신은 배씨 가문의 사모님이잖아요. 배씨 가문을 떠난다고 해도 그 신분은 바뀌지 않아요.”고은지의 말투는 아주 평온했다.량천옥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먹먹해졌다.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량천옥은 모든 일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웃고 있던 눈에는 어느새 슬픔이 가득 차올랐다.“미안해.”지나간 과거에 대해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는 없겠지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사과뿐이었다.하지만 그 사과만으로 지난날 고은지가 받은 상처를 모두 치유해 줄 수는 없었다.지금 고은지와 나태현이 대치 상황에 놓인 것도 다 량천옥 때문이니까 말이다.만약 량천옥의 친딸이 아니었다면, 나태현이 고은지의 아이를 빼돌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난 사과를 원한 게 아니에요. 그저 날 찾아오지 않았으면 해요.”고은지가 똑똑히 얘기했다.그 차가운 말투를 들은 량천옥은 더욱 가슴이 아팠다.변명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널 방해하기 위한 게 아니야. 그냥 지금부터 내가 널 챙겨주고 싶어서 그래. 은지야, 제발 나한테 기회를 줘.”량천옥이 목이 메어 얘기했다.전에 고은지와 고은영을 짓밟고 무시하던 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그런 기도 앞에서 고은지는 차갑게 량천옥을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량천옥이 덧붙였다.“너랑 같이 살게만 해줘. 제발.”량천옥은 받아주지 않으면 가지 않으려는 태도로 얘기했다.고은지를 지켜주고 싶은 건 진심이다.량천옥은 나태범이 무슨 짓을 벌일지 너무 걱정되었다.나태범은 겉으로 봤을 때는 강경하고 무서운 사람이지만 실제로는 겁쟁이에 불과하다.나태범이 안지영에게 뭐라 하는 것도, 그저 나태웅
나씨 가문에서 나온 안지영은 바로 장선명의 회사로 갔다.안지영이 온다는 것을 안 장선명은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안지영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장선명을 본 안지영은 아이처럼 활짝 웃으면서 기뻐했다.“아까 나태범 어르신 표정이 어찌나 볼만하던지. 저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표정이었어요.”안지영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무섭지는 않았어?”장선명은 안지영의 손을 잡고 소파로 가서 앉았다.안지영은 가볍게 시선을 돌리다가 장선명 사무실 책상 위에 놓인 액자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이, 이거 언제 찍은 거예요!”안지영이 놀란 목소리로 장선명을 향해 물었다.이 사진은 전에 장선명이 물려서 입원해 있을 때, 안지영이 그를 간호해 줄 때의 사진이었다.사진 속의 안지영은 두 눈을 꼭 감고 잠에 빠져있었다.장선명은 얼른 그 액자를 빼앗아 갔다. 마치 비밀을 들킨 아이처럼 표정도 어색했다.“만지지 마.”“...”‘내 사진인데 보지 못하게 하는 거야? 게다가 왜 부끄러워하는 건데.’안지영은 장선명이 본인 사무실에 자기 사진을 둘 줄은 몰랐다. 장선명에게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은 몰랐다.“나태웅이 정말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 걱정되지도 않아?”장선명이 안지영을 품에 안아 물었다.누가 봐도 어색해서 화제를 돌리는 거였다.하지만 그 화제에 안지영은 바로 눈을 흘기면서 말했다.“나태웅이 죽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에요?”“...”장선명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나태웅과 안지영의 사이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안지영의 화를 사면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장선명은 안지영이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두 사람의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안지영은 상대를 믿고 상대에게 기대기도 한다.하지만 그 신뢰를 저버리는 순간, 안지영은 바로 상대방과 모든 것을 끊어버린다.나태웅이 어떤 실수를 해왔는지 알기에, 장선명은 그것들을 나쁜 예시로 삼으며 배워갔다.“그렇긴 하네.”엄밀히 얘기하
그리고 나태범은 그런 나태웅을 믿었다.하지만 안지영은 나태웅의 유서를 믿지 않았다. 그저 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나태웅이 전에 하던 짓을 보면 이런 쇼를 벌이는 것도 가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동영그룹에 있을 때는 멀쩡했던 사람이 왜 천락그룹에 오니 이렇게 된 것인지.안지영은 알 수가 없었다.나태범은 차갑고 예리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쏘아보면서 겨우 입 밖으로 말을 뱉어냈다.“먼저 들어가 봐.”“어르신, 안지영 씨를 지금 보내는 건...”“가라고 해!”옆에서 집사가 말리자 나태범이 단칼에 거절하면서 얘기했다.안지영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났다.“역시 어르신이 명쾌하시네요.”안지영의 말에 나태범은 더욱 화가 나서 차갑게 코웃음만 쳤다.‘모든 사람들이 다 본인처럼 교양 없이 사당이나 부수는 줄 알아?’안지영은 청첩장을 꺼내 나태범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가져가!”이런 상황에 청첩장을 돌리다니. 나태범은 기가 차서 화병으로 죽을 것만 같았다.만약 나태웅이 있었다면 안지영은 나태웅에게도 청첩장을 줬을 것이다.나태범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를 꽉 깨물었다.안지영은 소리를 지르는 나태범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바로 떠날 준비를 했다.“그러면 이만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나태범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집사는 그런 안지영의 뒷모습을 보면서 걱정스레 나태범을 쳐다보았다.“어르신,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나태범과 집사는 지금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다.나태범은 숨을 몰아쉬면서 얘기했다.“얼른 사람을 풀어 찾아봐!”“이미 사람을 풀었습니다.”사람을 풀어 나태웅을 찾은 지는 한참이나 되었다.“이 유서를 누가 보낸 것인지는 알아봤어?”나태범이 힘이 다 풀린 채 물어봤다.나태범은 너무 걱정되었다.본인 아들이 이런 짓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나태범은 허씨 가문과의 약혼이 나태웅을 이렇게 벼랑 끝으로 내몰게 될 줄은 몰
나태범과 집사는 서로를 마주 보더니 의아한 눈빛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 눈빛에는 의아함과 불안함이 섞여 있었다.안지영은 마른침을 삼키고 이어서 얘기했다.“그렇게 보지 말아주세요.”“너 아직 장선명과 결혼한 것도 아니면서, 왜 유부녀라고 하는 거야.”나태범이 정신을 차리고 화를 냈다.“...”나태범의 얼굴을 마주한 안지영은 천천히 가방에서 혼인 관계 증명서와 청첩장을 꺼내 집사에게 건네주었다.집사는 그것을 받고 확인해 보더니 깜짝 놀랐다. 그리고 바로 나태범에게 달려가 건네주었다.나태범은 안지영과 장선명의 혼인 관계 증명서를 확인하고는 표정이 굳어버렸다.게다가 혼인신고를 한 날짜가 오늘이라니.그 순간 나태범은 호흡이 거칠어졌다.나태범이 안지영을 노려보면서 얘기했다.“너, 너 아까 전화를 받고 나서 장선명과 결혼하러 간 거야?”나태범은 이를 꽉 깨물고 겨우 얘기했다.혼인 관계 증명서에 적힌 시간을 보니 집사와 전화한 후였다.그러니까, 안지영은 나태웅이 유서를 남기고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도 바로 달려오지 않고 먼저 가서 혼인신고를 했다는 것이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나태범은 흉악한 시선 속에서 안지영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보면서 나태범은 화가 나서 당장 폭발할 것만 같았다.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오늘 같은 날 결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나태범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집사도 좋지 않은 표정으로 안지영을 보면서 말했다.“안지영 씨, 이건 선을 넘으신 겁니다.”마치 안지영이 혼인신고를 하러 간 게 큰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 사람은 너나 할 거 없이 안지영에게 비난을 쏟아냈다.안지영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이건 나와 선명 씨의 선약이었어요. 우리의 결혼식이 나태웅 씨 때문에 자꾸만 미뤄졌으니까요. 그래서 혼인신고부터 하겠다고 한 건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안지영이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설마 혼인신고를 하기 전에 통보라도 해주길 바란 건가?나씨 가문이 뭔 대
“난 결정을 번복하지 않아요.”안지영이 중얼거리면서 얘기했다.안지영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태웅의 죽음에 왜 본인이 결혼을 취소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장선명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그래, 그건 나도 잘 알고 있어.”장선명은 안지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나태웅이 무슨 생각을 하고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안지영의 태도는 명확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장선명은 안지영과 함께 가지 않았다. 나씨 가문에 도착한 안지영은 이곳의 분위기가 아주 음산해진 것을 느꼈다.안으로 들어가니 나태범이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면서 안지영을 찢어버릴 듯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집사의 태도도 좋지 않았다.“이거 보세요.”집사는 나태웅의 유서를 안지영에게 건네주었다.안지영은 그 유서를 받지 않고 집사를 보면서 물었다.“제가 볼 필요가 있나요?”안지영은 본인과 나태웅의 사이를 완전히 끊어버리고 싶었다.안지영의 차가운 태도에 집사와 나태범은 마음이 아팠다.나태웅이 안지영 때문에 무슨 짓까지 했는데, 안지영의 태도는 여전하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지금 나태웅은 유서를 쓰고 사라진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도 안지영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는다.안지영은 집사와 나태범의 시선 아래서 대답했다.“저랑 나태웅 씨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안지영이 직설적으로 얘기하자 나태범이 불만스럽게 말했다.“태웅이가 지금 사라진 건 다 너 때문이야!”“왜 저 때문이죠”“지금까지 태웅이한테 전화라도 해 봤어? 태웅이 비서랑은 연락해 봤어?”“지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제가 왜 나태웅 씨한테 전화하고 나태웅 씨 비서한테 연락을 해야죠?”마치 나태웅이 사라져서 안지영이 안달 난 것처럼 말이다.두 사람이 무슨 관계인지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나태범의 질문에 안지영은 어이가 없었다.나태범은 무표정한 안지영을 보면서 화를 뿜어냈다.“태웅이는 너 때문에 사라진 거라니까!”“어르신 때문이잖아요!”안지영이 물러서지 않고 반박했다
안지영은 아까까지만 해도 아주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나씨 가문을 떠올리니 다시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그리고 아까 오는 길에 나씨 가문 집사와 통화했던 내용을 장선명에게 다시 한번 얘기해 주었다.끝까지 들은 장선명은 입가를 매만지며 물었다.“유서만 남기고 사라졌다고?”“그래요. 이건 또 뭐 하려는 수작인지...”안지영은 이미 나태웅에 대한 호감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 유서를 남기고 사라진 것도 그저 쇼하는 거라고 생각했다.정말... 어떻게 보면 표도 안 사고 나태웅의 일인극을 보는 것만 같았다. 너무도 대단한 쇼라서 안지영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몰랐다.안지영뿐만이 아니라 장선명도 지금 이 상황에 약간 놀랐다.“그럼 지금 나씨 가문에 가려는 거야?”“가야죠. 그리고 나씨 가문 사람들한테도 알려줘야죠. 나는 이미 유부녀라고. 그러니 날 어쩌지 못한다는 걸요.”나씨 가문을 떠올리면 안지영은 그들은 뻔뻔함 빼면 시체라고 생각했다.“그럼 같이 가.”“괜찮아요. 설마 날 잡아먹기라도 하겠어요?”안지영이 손을 저으면서 얘기했다.장선명도 바쁜 몸이었다. 하지만 나씨 가문 일 때문에 안지영과 함께 다녔던 것이다.장선명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얘기했다.“그러면 하나만 더 가져가.”“뭐요?”“일단 차에 타서 얘기해.”말을 마친 장선명은 외투를 안지영 몸에 걸어주었다.장선명의 온도가 안지영을 품에 안는 것만 같았다.걱정했던 안지영은 그 덕분에 안심되었다.두 사람은 차에 올랐다.장선명은 안지영의 혼인 관계 증명서를 건네주면서 청첩장을 건네주었다.이 청첩장은 전부터 준비한 것이다.하지만 나씨 가문 사람들 때문에 날짜를 연거푸 몇 번이나 고쳤다.“청첩장이요?”“어쩌다가 나씨 가문에 가는 건데 청첩장도 돌려야지.”“...”나태웅이 유서를 남긴 이 시점에, 나태범에게 청첩장을 돌리라니.장선명의 수단은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안지영이 청첩장의 날짜를 확인하기 위해 청첩장을 펼쳤다.결혼 날짜는 보름 뒤였다.“이 날짜... 더
안지영은 나태웅의 고집스러움이 누구를 닮은 것인지 알 것 같았다.정말 피는 못 속인다고.안지영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또 전화가 걸려 왔다.안지영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화를 내지 않기로 했다.‘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니까.’안지영은 결국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안지영 씨. 나씨 가문 저택에 한 번만 와주십쇼.”“또 뭘 하려는 거예요.”화를 내지 않으려던 안지영의 결심은 1초 만에 사라졌다.“작은 도련님께서 유서를 남기셨습니다.”“...”‘유서? 나태웅이 유서를 남겼다고? 또 무슨 연극을 하려는 거야!’나태범이 약혼 기사를 발표하자마자 1시간도 되지 않아서 유서를 남기다니.“나태웅 씨는 그럼 어디 있는데요.”안지영이 눈썹을 꿈틀거렸다.너무 빨리 일어난 사건에 안지영은 약간 혼란스러웠다.하긴 나태웅은 생각보다 행동이 더욱 빠른 사람이었으니까.“사라졌습니다.”“그게... 무슨 뜻이에요?”나태웅이 사라졌는데 안지영을 나씨 가문으로 부른다니. 안지영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겨우 나씨 가문과 멀어진다고 생각했는데 나태웅은 또 안지영을 골치 아프게 만들고 있었다.“우선 와주세요.”집사의 말투와 태도는 썩 좋지 않았다.안지영은 화가 나서 물었다.“안 가겠다고 하면요?”겨우 나태웅을 다른 사람과 약혼하게 만들었는데, 안지영을 부르다니.안지영은 죽어도 가고 싶지 않았다.오늘 그렇게 많은 일이 일어났으니 쉬고 싶을 법도 했다.게다가 안지영은 지금 당장 구청에 가서 장선명과 혼인신고를 해야 한다. 나씨 가문에 들릴 시간 따위는 전혀 없었다.집사는 강경한 안지영의 태도를 들으면서 대답했다.“그렇다면 안진섭 씨를 병원으로 돌려보내 드릴 수는 없을 것 같군요.”“...”안지영은 그 순간 숨도 쉬지 못했다.나씨 가문의 사람들을 언젠가는 다 죽여버리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나태웅이 왜 갑자기 유서를 남기고 사라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안지영이 전화를 끊었을 때는 이미 구청에 도착한 때였다.그래서 안지영은 바로 고민하지
안지영은 금고를 열고 한숨을 돌렸다.안진섭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으면 혼인신고를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안열이 전화를 걸자 안지영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네. 무슨 일이에요?”“나태웅 씨가 약혼했다고 합니다.”“네?”안지영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안열도 놀란 듯했다.“아마도 나태범 어르신이 안 대표님을 정말 싫어하게 되었나 봐요. 우리가 움직이기 전에 이미 나태웅 씨와 허영지 씨의 약혼을 발표한 걸 보면요.”“허영지 씨요?”안지영은 또 깜짝 놀랐다.안지영 쪽에서는 오늘에야 나태웅을 좋아하는 사람을 알아냈다. 그래서 두 사람을 가깝게 만들어주려고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나태범이 먼저 움직이다니.이렇게 보면 나태범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있어도 사실은 모든 걸 꿰뚫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안지영은 그제야 걱정을 덜었다. 만약 나태범이 계속 안지영을 며느리로 들이겠다고 한다면 그것보다 더욱 골치 아픈 일은 없을 것이다.“맞아요. 허씨 가문의 허영지 씨요.”안열이 대답했다.“잘됐네요. 약혼하게 되었다니, 정말 잘 됐어요.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하는 건 뭐 없죠?”확실히 장선명의 말을 들으니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해결되는 것 같았다.“아니요. 있어요!”“?”뭘 더 해야 한다는 거지?나태범은 이미 안지영이 하려던 일을 대신 해주었다. 그래서 안지영은 너무나도 편했다.하지만 안열이 얘기했다.“낙장불입이 되게 도장을 찍어야죠.”지금 기사화된 약혼을 사실화되게 만들어야 한다.그래야만 나태웅을 고분고분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안지영은 안열의 말을 들으면서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나태웅을 아내 바보로 만들어야겠네요.”만약 정말 허영지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면 나태웅은 어쩔 수 없이 나태범의 말을 들어야 할 것이다.“어차피 안 대표님한테 피해가 가는 일도 아닌데요, 뭘.”“하긴, 틀린 말은 아니네요.”안열의 말에 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어차피 나씨 가문에서 약혼 기사를 발표했으니 나태웅과 허
“그래, 그래, 이놈아!”나태범은 화가 확 올라왔다.‘전에는 애가 이렇게 극단적인 줄 몰랐는데, 왜 이렇게 된 거지?’너무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나태범은 나태웅을 쏘아보더니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뜬 후 얘기했다.“너랑 안지영의 혼사는 반대다. 이건 진심이야.”나태범은 몇 번 생각한 후 결국 결정을 내렸다. 이제 이 결정은 그 누구도 꺾지 못할 것이다.하지만 그 말을 들은 나태웅은 차갑게 대답했다.“제 혼사는 아버님이 정하는 게 아닙니다.”“너...”가뜩이나 화가 나 있던 나태범은 나태웅의 말을 듣고 혈압이 올라서 손에 쥐고 있던 찻잔을 꽉 쥐었다.나태범은 정말 울화통이 터져서 지금 당장 나태웅을 때려죽이고 싶었다.“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넌 오늘부터 허영지와 약혼 준비나 해.”나태범이 이토록 나태웅을 엄격하게 대하는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지금은 나태웅의 의견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니 나태범은 통보하는 식으로 나태웅에게 얘기하고 있었다.나태범은 죽어도 안지영을 며느리로 들이지 않을 것이다.나태웅은 굳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싫습니다.”같은 피가 아니랄까 봐. 나태웅의 태도 또한 나태범만큼 강경했다.나태범은 더 따지고 싶지 않았다.“네가 허락하든 말든 넌 허영지와 약혼하게 되어있어!”“아니...”“기사는 오늘 보도될 거다.”“...”나태웅이 차가운 시선으로 나태범을 쳐다보았다.‘그러니까 얘기를 하려고 부른 게 아니라 통보를 하기 위해 부른 거란 말이지?’“결혼하지 않을 겁니다.”“너, 이 자식!”나태범이 목덜미를 잡고 얘기했다.나태범은 나태웅을 항상 아껴주고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게 해줬다.하지만 이번만큼은 물러설 수 없었다.안씨 가문과 나씨 가문은 같은 급은 아니지만 나태웅이 좋아하는 사람이니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안지영의 행동을 보니 나태범은 더 이상 안지영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굽혀지지 않는 나태범의 태도에 나태웅은 그저 자리를 뜰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