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우는 금방 달라진 고은영의 모습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지금 설마 나를 무서워하는 거야?"방금 전, 진승연이 너무 화나게 해 참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확실히 눈앞의 배준우가 무서워졌다. 그녀는 뒤늦게 자신이 무서운 호랑이 한 마리를 앞에 두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이미월은 배준우의 첫사랑이었다. 그런데 고은영이 그런 그의 첫사랑을 난감하게 했으니 고은영은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사람은 충동적으로 굴지 말아야 한다. 배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고은영을 보다 다시 물었다."방금 말도 잘했잖아."고은영은 무섭지 않을 때에는 똑똑하게 말을 잘했다."죄.. 죄송합니다."또, 그놈의 사과."왜 사과하는 거야?""방금 그렇게 충동적으로 굴지 말았어야 했는데, 제가 이미월 씨를 너무 난감하게 한 것 같아서요."고은영은 진승연에게 화가 난 것이었지만 배준우가 혹시라도 자신이 이미월을 난감하게 하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을까 봐 걱정되었다.그 생각을 하던 고은영이 다시 한 마디 덧붙였다."저 방금 이미월씨한테 화난 거 아니에요.""응, 알아."고은영은 누군가를 난감하게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배준우는 잘 알고 있었다.고은영은 배준우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곤 한시름 놓았다."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배준우는 조금 홀가분해진 듯한 고은영을 보며 웃었다."이전에도 지금처럼 자기를 보호했나 봐?""억울한거 안 좋아해서요."자신과 자신에게 속하는 것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잘못이 없었다.고은영을 부동한 사람에게 부동한 방식을 사용할 뿐이었다.자신의 집을 위해 그녀가 배준우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방금 전, 진승연을 마주했을 때에도 고은영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애썼다."그래, 좋은 생각이네. 하지만 다음에는 혼자서 진승연 만나지 마. 만나도, 되도록이면 멀리 떨어져."배준우가 말했다, 오늘 배준우가 없었다면 진승연은 고은영에게 손찌검을 했을 지도 몰랐다.그녀는 유도를 배웠던 사람이었기에 고은영이 진승연
방금 전, 배준우의 태도를 생각하니 이미월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감을 느꼈다.그녀는 그저 그를 3년 동안 떠나있었을 뿐인데 그는 왜 그렇게 많이 바뀐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의 배준우만 보면 두 사람은 예전에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던 사람 같았다."언니는 화도 안 나?"진승연은 자신을 위로하는 이미월을 보며 물었다.3년 전의 이미월이었다면 그녀는 지금의 배준우 태도를 보며 화를 냈을 것이다."화내도 아무 소용 없잖아."이미월이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숙였다."준우 지금 나를 완전 낯선 이로 대하고 있어, 나를 신경 쓰는 사람 앞에서 화낼 자격이 있는 거야."지금의 그녀는 화를 낸다고 해도 아무 소용도 없었다.진승연은 무기력한 얼굴로 그런 말을 하는 이미월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배준우에 대한 불만이 늘어났다."준우 오빠는 언니 좋아했었어. 근데 지금은 오빠 옆에 언니가 아닌 고은영이 있어서 그래."진승연이 이를 물고 말했다.그녀는 배준우가 계속 이미월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고은영이 도대체 방법을 써서 배준우와 결혼한 건지 알 길이 없었다.3년 동안 배준우의 옆에 수많은 여자들이 맴돌았지만 그는 그녀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예전에 회사의 한 직원이 배준우의 동정을 받기 위해 사무실에서 운 적이 있었는데 배준우는 그 부서를 모두 해고했었다.그랬기에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배준우를 보며 진승연은 그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지금 고은영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이 변했다."언니, 준우 오빠 그 여자랑 반드시 이혼할 거야, 지금 우리는 오빠가 왜 그렇게 하고 있는 지 모르고 있을 뿐이라고. 어쩌면 지금도 언니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러고 있는 걸 수도 있잖아."진승연이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그녀의 기억속에서는 3년 전, 배준우와 이미월은 사이가 무척 좋았다.그런데 배준우가 갑자기 고은영과 결혼을 한 것도 모자라 이런 태도로 이미월을 대하고 있다니.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미월은 재빨리 배준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그에게서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배준우가 보지 못한 건지 아니면 메시지로 말하기에는 불편한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30분이 지나자 이미월은 다급해졌다."정말 승연이 네가 말한 대로 그런 걸까?"이미월이 의심하는 말투로 물었다.하지만 진승연의 말대로 배준우는 확실히 변덕이 심한 사람이 아니었다.이미월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당연하지, 아니면 그냥 찾아가서 물어."하지만 이미월은 방금 전 배준우의 태도를 생각하니 그를 다시 마주하기 싫었다.그 누구도 그녀가 돌아온 뒤로 매일 어떤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매번 배준우의 태도를 마주할 때마다 이미월은 숨이 막혔다.그때, 진승연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아빠."진승연이 심호흡하더니 전화를 받았다."너 또 사모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휴대폰 너머 진 회장의 화가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진승연은 그 목소리에 놀라 하마터면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왜.. 왜요?"진승연이 소심한 목소리로 물었다."왜냐고? 지금 배준우가 계약 해지로는 모자라서 모든 프로젝트를 멈추겠다고까지 했어!"배준우는 이런 강경한 수단으로 진영그룹을 파산으로 내몰려는 걸까?방금 전 진 회장은 어젯밤 그레이스호텔에서 발생한 모든 것들을 조사하라고 했다.그동안 진 회장은 이 쓸데없는 딸이 저지른 짓에 대해 못 본 척 넘어갔었다.그는 심지어 안진섭이 안지영에게 너무 각박하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이제 보니 안진섭의 행동이 맞는 것 같았다. 사람은 자기 사는데 바빠야 사고를 치지 않는 법이었다.진 회장은 지금 안지영의 목숨도 간당간당하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는 듯했다.진승연은 대놓고 사고를 쳤지만 안지영은 아무도 모르게 큰 사고를 저질렀다."그럴 리가?" 진승연이 넋이 나간 얼굴로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배준우가 이런 수단으로 진영그룹을 궁지로 몰 줄 몰랐다.의심하는 듯한 진
진승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미월이 그녀를 계속 재촉했다."우리 고은영한테도 사과하러 가야 해."방금 전, 배준우는 이미월의 체면을 전혀 봐 주지 않았다.그런데 진승연의 아버지는 이미월의 삼촌이었다.배준우는 그 관계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정말 고은영 때문에 그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다."승연아."진승연의 말을 들은 이미월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언니는 오빠랑 어떻게 얘기할지 잘 생각해 봐."진승연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배준우에게 확인을 받기 전까지 두 사람이 말한 모든 것은 그저 추측에 불과했다."응, 알고 있어."이미월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녀는 당연히 배준우와 잘 얘기해 볼 생각이었다.하지만 배준우는 지금 그녀와 단둘이 만나주지도 않았다."지금 언니랑 오빠 사이의 가장 큰 장애는 고은영이야."두 사람은 고은영이 그들의 길을 막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배준우가 지금 진영 그룹에게 하고 있는 모든 것은 고은영이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응, 알았어."이미월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그녀의 눈 밑을 스치고 지나간 날카로움을 진승연은 눈치채지 못했다.......진승연은 내키지 않았지만 회사에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결국 다시 배준우의 방을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이번에 그녀는 감히 수작질을 부리지 못했다."고은영 씨, 미안해요. 어제는 제가 너무 충동적으로 행동했어요. 어제 캐리어에 있던 물건 계산해 주면 내가 10배로 쳐서 갚아드릴게요."진승연은 성질을 죽이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녀는 진심을 담아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일이 이렇게까지 되었으니 더 이상 고은영을 무시할 수 없었다.특히 배준우의 앞에서는 더욱 그랬다.짧은 시간 안에 배준우는 강경한 수단으로 진영그룹을 파산의 지경까지 몰고 갔다.진승연도 그 짧은 시간 안에 배준우 앞에서의 자신의 지위를 알게 되었다.진 회장의 말처럼 그녀는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말았어야 했
배준우는 그 말을 듣곤 미간을 찌푸리며 진승연을 바라봤다."다음에도 그 말 기억해.""네, 알았어요."그 대답을 하는 진승연은 곧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았다.마치 지나가 버린 그들의 감정을 애도하기라도 하듯.예전의 진승연은 배준우와 친구 사이이기도 하고 이미월의 관계까지 겹쳐 두 사람이 친밀한 우정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보니 그건 진승연 혼자만의 생각인 듯했다."나가 봐."배준우는 더 이상 진승연과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손짓했다."그럼 진영 그룹은요?"진승연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배준우를 바라봤다.그녀가 고은영에게 사과를 한 것도 모두 진영 그룹을 위한 것이었다.그 말을 들은 배준우가 고은영을 힐끔 바라봤다. 그 눈빛을 마주한 고은영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배준우의 행동은 진승연이 고은영을 더욱 미워하게 하기에 충분했다.진승연은 원래 고은영을 미워하고 있었는데 배준우가 지금 이러면 모든 것이 그녀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다.진영그룹의 일부 상품이 시대에 뒤떨어져 배준우는 진작에 파트너를 바꾸고 싶어 했다.이번 일은 도화선에 불과했다."준우 오빠!배준우가 고은영을 바라보자 진승연은 더욱 다급해졌다.자신이 고은영에게 사과까지 했는데 배준우는 아직 자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걸까?설마 무릎이라도 꿇으라고 하려는 건 아니겠지?진승연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하지만 그녀는 미래를 위해 간신히 참아냈다.그때 배준우가 담배를 꺼내더니 불을 붙였다. "너희 아버지한테 전해, 일은 이미 일어났으니 돌이킬 수 없을 거라고. 네 사과로 일이 계속 악화되지 않은 거야.""준우 오빠…"배준우의 말을 들은 진승연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그러니까 그의 말대로라면 정지된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할 수 없다는 건가?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건지!고은영이 그에게 이렇게나 중요한 존재라고?"저 고은영씨한테 이미 사과했잖아요."진승연이 고
배준우가 이렇게까지 나오다니.고은영은 그동안 안지영과 한 짓을 그에게 들킨다면 안씨 집안도 진씨 집안과 같은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은영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의 집과 돈은 모두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그 생각을 하니 고은영의 안색이 창백해졌다.전에는 용기를 내어 모든 것을 인정할까도 생각했었지만 지금 배준우가 진승연을 대하는 것을 보니 고은영은 인정하려는 생각을 거두었다.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일을 무덤까지 끌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오빠,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가 있어? 나는 어제 오빠가 언니한테 그렇게 대하는 거 보고 화가 나서 고은영씨한테 무례하게 굴었던 거야. 그런데 진영 그룹이 파산하는 걸로 이 모든 걸 감당하라고? 대가가 너무 큰 거 아니야?!"진승연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고통과 분노가 섞인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모두 배준우의 무정함을 탓하고 있었다."그 일을 저지를 때 이런 대가까지도 생각했어야지. 네가 특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진승연은 그 말을 들으며 배준우와 이미월 사이가 좀 전에 방에서 말했던 것과 같은 사이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다시 분노한 눈으로 고은영을 바라봤다, 불만과 분노는 이미 최고점에 달했다."3초 줄 테니까 꺼져, 아니면 진영 그룹이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배준우가 하는 말을 들으니 진승연은 손이 떨렸다.왜? 배준우의 비서일 뿐인 여자가. 두 사람의 결혼은 협의 결혼일 뿐이었는데 일이 왜 지금처럼 된 건지.진승연은 왜 일이 이 지경까지 된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배준우의 차가운 눈빛이 마치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는 듯했다."오빠!""나가."진승연은 무언가 더 말하려고 했지만, 싸늘한 얼굴을 한 배준우는 그녀의 말을 들어줄 뜻이 없어 보였다.진승연은 그런 배준우를 보며 서운한 마음이 들어 눈물을 흘렸다.그러다가 결국 억울함만 잔뜩 안고 화가 난 얼굴로 방을 나섰다.고은영은 그런 독한 배준우를 보며
그녀의 말에 배준우는 커피잔을 들다가 잠시 멈칫했다.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은영을 쳐다보자,그의 기분을 눈치챈 고은영이 재빨리 이어서 말했다.“저, 이간질하는 거 아니에요.”그녀는 순전히 자신의 안전이 걱정됐다.배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넌 그럴 능력이 없지.”하긴, 가끔 똑똑한 면이 있긴 하지만 이간질할 생각을 할 정도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지금도 진짜로 자기의 안전에 대해서만 걱정하고 있다.“진승연 씨가 진짜로 그렇게 할까요?”고은영이 또 물었다. 확실하게 물어보고 싶었다.이 일에서 그녀가 도화선 작용을 하긴했지 진승연의 태도를 보니 모든 잘못을 그녀의 탓으로 돌릴 게 뻔했다.배준우가 대답했다.“매일 나랑 함께 다니는데, 너한테 나쁜짓을 할 기회가 없어.”“저 혼자 있을 때도 있잖아요.”고은영은 중얼거렸다. 진심으로 걱정됐기 때문이다.자주 배준우와 함께 다니긴 하지만 매일 그런 아니었다.대부분 시간을 그와 함께 보냈지만 혼자 있는 시간도 분명히 있었다.배준우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그의 눈빛에 고은영은 움찔하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그냥 걱정돼서요.”자기의 걱정을 이렇게 솔직하게 숨김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아마 고은영뿐일 것이다.배준우는 피식 웃었다.“그럼, 나랑 붙어 다니든가!”지금 그는 진영그룹을 상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하지만 고은영의 마음속에는 그 잔인했던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아니 그 모습을 절대 잊을 수가 없었다.그녀가 이어서 말하려는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문, 제가 열게요!”배준우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고은영은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한편, 진승연은 얼굴이 창백한 채로 방으로 돌아왔다.그녀가 들어오자마자 이미월은 서둘러 물었다.“어떻게 됐어?”진승연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그녀는 공허함이 가득 찬 눈으로 이미월을 바라보았다. 진승연의 모습에 이미월은 조금 놀랐다.“준우가 뭐래?”설마?이번에는 진승연이 직접 사과하러 갔으
”준우야!”이미월이 찾아오자, 배준우는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불쾌해했다.이미월이 물었다.“내가 올 타이밍이 아니야?”육명호도 이 상황이 난처했기에 이미월을 보고 그도 멍해졌다.그는 아직 배준우와 고은영 사이를 모르고 있다. 너무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미처 알 기회가 없었다.하지만 배준우와 이미월의 사이는 알고 있다.전에 배준우가 이미월을 좋아하고 있을 때 그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당시 배준우를 다 완벽하지만, 안목은 별로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지금 이미월이 갑자기 이렇게 들이닥친 모습을 보니 육명호의 생각은 더 확실해졌다.배준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나가!”그는 차갑고 냉담한 말투로 말했다.고은영도 이미월이 갑자기 들이닥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배준우가 지금 바쁘다고 말하고 이미월을 돌려보낼 참이었는데 그럴 겨를도 없이 그녀가 들이닥쳤다.이미월의 이런 태도에 고은영은 어이가 없었고, 배준우의 행동에 이미월은 마음이 아팠다.“한마디만 하고 갈게.”“아니, 당장 나가!”배준우의 언성이 높아졌다.이미월의 선넘는 행동에 배준우의 인내심도 이미 바닥이 났다.배준우의 태도에 고은영이 서둘러 앞으로 나섰다.“이미월씨, 일단 방으로 돌아가세요.”그에게 이미월은 중요한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 그를 화나게 하는 사람도 그녀다.“네까짓 게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이미월이 분노했다.“......”이미월의 모습에 세 사람 다 할 말을 잃었다.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쳐다봤다.그녀도 스스로에게 놀랐다.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어쩌면 고은영에 대한 위기의식에 그녀의 목소리만 들어도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일 수도.배준우의 어두운 눈빛에 이미월도 이성을 되찾았다.“준우야, 나......”고은영의 표정도 어두워졌다.“이미월씨, 배 대표님은 지금 회의 중이십니다. 그러니 이만 나가주세요.”단호한 말투로 말했다.고은영은 병원에서 이미월을 봤을 때부터 그녀가 가식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배준우 앞에서만 온
전화를 끊은 진윤이 고은영을 보면서 물었다.“지금은 좀 속이 풀렸어?”“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이렇게 한 거예요?”“응.”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고은영은 약간 감동하긴 했지만 이루어 말하기 어려운 기분이 들었다.예전 같았으면 고은영의 곁에 무조건적인 자기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일이었다면 도움을 거절할 것이었지만 이번 일에서는 물러설 수 없었다.“지금 해외에서 난리가 났어. 이 시점에 나태현의 집중력을 흩트리는 것도 좋지.”량천옥도 나쁜 사람이긴 하지만 량천옥이 나태현과 싸우고 있는 건 고은지 때문이었다.그러니 지금 진윤이나 배준우가 나태현의 시선을 자꾸만 국내로 돌리게 해서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건 량천옥에게 좋은 일이다.“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진윤이 고은영에게 얘기해 주었다.고은영은 진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나태현은 해외에 있고, 나태웅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고 있다.그렇다면 이제는 나태범이 움직일 것이다. 나태범 세대가 싸운다면 젊은 세대들은 감히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고은영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푹 쉬었다.“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나씨 가문보다 더욱 위태로운 건 우리 언니니까요.”희주가 죽었다.그걸 떠올리면 고은영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고은지는 지금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수 있었다. 그러니 나씨 가문 사람들을 신경 쓸 새가 없었다.이제는 이 지긋지긋한 악연을 갈라내고 싶었다.진윤은 고은영 눈에 비친 슬픔을 보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아직 희주가 정말 죽었는지 아닌지도 확인하지 않았잖아. 그러니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눈으로 본 것도 거짓일 수 있는데, 귀로 들은 것은 오죽하겠냐는 말이었다.진윤은 제삼자로서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을 딱 짚어 말할 수 없었기에 말을 아끼고 있었다.“그 소식이 가짜였으면 좋겠어요.”고은영은 고희주를 불쌍하게 여겼다. 조씨 가문 사람들은 희주가 조영수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
‘아까 왜 돈이 없다는 얘기를 해서는...’진윤은 고은영의 손을 잡고 쇼핑을 계속했다.점심쯤이 되자 진윤은 지친 고은영을 데리고 레스토랑으로 가서 식사했다.테이블 앞에 놓인 갖가지 음식을 보면서 고은영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두 사람이 먹기에는 너무 많지 않아요?”“안 많으니까 천천히 먹어.”진윤이 대답했다.진윤은 진정훈이 왜 그때 그렇게 심하게 날뛰었는지 이해가 갔다.진정훈은 고은영이 어릴 때 어떻게 살았는지 가장 먼저 조사한 사람이다.그래서 고은영의 아픔을 알고 그 상처를 치유해주기 위해 온 세상의 좋은 것들을 고은영에게 주려고 한 것이다.그러니 고은영의 몫이 진유경에게로 넘어간 걸 알고 미쳐버린 것이다.지금의 진윤도 마찬가지였다.“이거 먹어.”진윤은 양고기 스테이크를 썰어서 고은영의 그릇에 담아주었다.“고마워요, 오빠도 얼른 먹어요.”“우리 집에 자주 놀러와. 우리 아내가 또 요리를 잘하거든.”“그런데 지금 임신한 거 아니에요? 저까지 가면 민폐죠.”“그래도 요즘 매일 요리하고 있어.”“네?”고은영이 깜짝 놀랐다.“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고은영은 임신했을 때 만사가 귀찮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말린다고 말려지는 사람이 아니잖아. 원하는 건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하긴.게다가 임산부는 입맛이 까다로워서 다른 사람이 한 것을 잘 먹지 못할 때가 많았다.윤설이 본인이 먹고 싶은 걸 직접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 또한 나쁜 건 아니었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그럼 최대한 덜 힘들게 옆에서 보살펴줘요.”진윤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다.그건 나태현이 건 전화였다.“나태현이야.”“계약 해지 때문에 전화한 거겠죠?”고은영이 물었다.아까 차에서 진윤은 여러 번 전화를 걸어 나씨 가문과 연관된 프로젝트를 모두 취소하기로 했다. 배준우도 마찬가지였다.그러니 나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진윤이 고개를 끄덕인 후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형, 지금
진호영이 사람들 앞에서 진유경, 김영희와 싸울 줄은 전혀 몰랐다.진유경과 김영희는 이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기에 속수무책으로 말려들고 있었다.그 시각.진윤은 고은영을 데리고 쇼핑하러 다니고 있었다.김영희와 진유경은 진정훈과 진윤이 장례식 준비도 돕지 않고 서로 재산을 빼앗느라 바쁘다고 했지만 사실 진윤은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중이었다.진성택이 진유경에게 남겨준 물건은 많지 않았다. 차라리 진윤이 지금 고은영에게 쓰는 돈이 더욱 많을 것이다.“오빠, 너무 많이 산 거 아니에요?”명품을 너무 많이 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기다란 영수증 위의 숫자를 본 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배준우와 결혼한 후 돈이 모자랐던 적은 없지만 돈을 이렇게 많이 쓴 적도 거의 없었다.진윤은 경호원을 데리고 왔다. 네 명의 경호원 손에는 쇼핑백이 가득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일부는 란완 리조트로 배송시켰다.“괜찮아. 많이 사. 우리 아내 것도 골라줘야지.”진윤이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다.“오빠는 정말 좋은 남자 같아요.”자세히 생각해보니 배준우는 직접 무언가를 사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대부분은 다 다른 사람을 시켜서 란완 리조트로 가져오게 했던 것 같다.그리고 고은영은 쇼핑을 좋아하는 편이니 직접 사는 편이 많았다.하지만 진윤은 쇼핑하면서도 자기 아내를 생각한다.진윤이 웃으면서 얘기했다.“배준우도 좋은 남자야. 그 사람이 있어서 우리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거야.”“그 사람이 전에 얼마나 나빴는지 몰라서 그래요.”진윤이 배준우를 좋은 남자라고 얘기하자 고은영이 입을 비죽거리면서 대답했다.배준우와 결혼하기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좋은 남자라는 말이 쏙 들어갈 정도였다.그때의 배준우는 정말... 악랄한...고은영은 그때 유산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그러다 고은영은 또 나태웅을 떠올렸다.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나태웅과 배준우가 같이 고은영을 위협했으니까 말이다.고은영은 나태웅이 안지영을
결국 진호영이 다가가서 말했다.“할머니, 지금 이 장소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진윤과 진정훈이 오늘 오지 않은 것에 대해 약간 실망하긴 했지만 두 사람이 오지 않은 이유도 명백했다.진성택이 두 사람을 너무 크게 실망시켰기 때문이다.진유경은 진호영이 진윤과 진정훈의 편을 들어주는 것을 보면서 더욱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호영 오빠, 진윤 오빠랑 정훈 오빠한테 연락해주면 안 돼요? 적어도 아버지 보내드리는 길은 보고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은영이도요... 아버지는 은영이를 가장 예뻐했잖아요.”“그만 떠들어.”진유경이 말을 마치자마자 진호영이 싸늘하게 얘기했다.다른 건 몰라도 이 상황에서 고은영의 얘기를 꺼내다니.진호영은 진유경에게서 이례 없는 메스꺼움을 느꼈다.진유경은 진호영의 반응에 멍해졌다.하지만 사람들의 화제는 이미 고은영으로 넘어가 버렸다.다들 고은영을 불효녀라고, 은혜도 모르는 매정한 여자라고 욕했다.진호영은 그 말을 들으면서 진유경을 노려보며 얘기했다.“너 때문에 은영이는 집에 돌아오지도 못했어. 아버지가 은영이를 가장 예뻐했다고? 도대체 뭘 보고 그렇게 생각한 거야? 네 눈은 장식이야?”예뻐한 적이 있었나?한 번도 없었다.진성택이 고은영에게 조금이라도 잘해줬다면 고은영이 진씨 가문 문턱을 넘어보지 못하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아니, 그게 아니라...”“아버지는 남은 주식을 모두 너한테 남겨줬어. 하지만 친딸인 은영이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잖아. 그런데 아버지가 은영이를 가장 예뻐하셨다고?”진호영이 모든 것을 까밝히자 진유경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호영 오빠, 도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진유경은 더욱 크게 울먹이면서 눈물을 흘렸다.진유경은 지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진호영은 진유경의 편이었는데 지금은 왜...‘이게 다 고은영 때문이야! 대체 무슨 수로 꼬드겼기에 오빠들이 다 고은영의 편을 들어주는 거냐고!’“왜 이러냐고? 우리 어머니가 은영이에게 남겨준
이윽고 고은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진호영이 전화를 건 것이었다.고은영이 진씨 가문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진 후 진호영과 고은영은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다.진호영은 보통 직접 찾아와서 문제를 얘기하는 편이기에 전화를 잘 걸지 않았다.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 진호영이 전화를 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고은영은 잘 알고 있었다.진윤에게 전화하자마자 또 고은영에게 전화하다니.고은영이 전화를 받기도 전에 진윤이 고은영의 전화를 빼앗아갔다.“오빠...”진윤은 바로 전화를 꺼버렸다.“꺼버리면 어떡해요. 혹시 언니가 전화라도 하면...”“걱정하지 마. 네 언니는 너한테 연락하지 않을 거야.”“...”그렇다고 해도 마음대로 핸드폰을 꺼버리는 건 좀...게다가 고은지가 정말 무슨 일이 생겨서 고은영을 찾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진윤은 자연스럽게 고은영의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으며 돌려주지 않았다.“오빠.”“오늘은 나한테 집중해.”그 말투는 아주 강압적이었다.“...”마치 그동안 진윤에게 신경 써주지 않아 삐진 것만 같았다.하지만 고은영도 어쩔 수 없었다.고희주와 고은지에게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으니까 말이다.사실 고은영도 알고 있었다. 고은지는 고은영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말이다.하지만 고희주의 일 때문에 고은지는 언제든지 화를 낼 수 있었다.“그래요.”“...”“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너한테 뭘 좀 사주려고.”“...”사준다고?고은영은 진윤의 목적을 알 수 없었다.진성택이 죽었다.장례식에 안 가는 건 이해가 되지만 굳이 고은영을 데리고 나와 쇼핑을 하는 목적은 뭘까.두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그때 윤설의 전화가 걸려왔다.진윤은 부드러운 목소리와 다정한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그런 진윤을 보면서 고은영은 진윤이 참 좋은 남자라고 생각했다.진윤과 비교하면 나태현은 정신병이 틀림없었다....진성택은 오늘 화장하게 된다.김영희, 진유경과 진호영은 검은색 상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진윤과 진정훈은 결국
숨을 깊게 내쉰 나태현이 얘기했다.“량천옥이 나씨 가문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서 지금...”“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죠.”배준우가 나태현의 말을 끊었다.그때 나씨 가문 내부는 부글부글 끓었었다. 게다가 량천옥을 죽이려는 사람도 있었다.나태현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갔고 나태현의 어머니도 그 시기에 돌아갔다.그 모든 모순의 시작은 량천옥이었다.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씨 가문은 여전히 량천옥과 원한이 있었다.다들 그저 그 원함을 꾹 참고 있었는데 고은지가 나타났다.량천옥의 딸이면서 나태현의 딸 엄마인 고은지 때문에 나씨 가문과 량천옥의 전쟁이 다시금 시작되었다.“이번에는... 어쩔 수 없어요.”우정과 사랑 중에서 배준우는 당연히 사랑이었다.게다가 이번 일에는 나씨 가문에서 숨기는 것이 너무 많았다.또 나태현이 회사의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 보니 프로젝트가 위험했다.나태현은 화가 나서 바로 전화를 끊었다.“...”그 소리를 들은 배준우는 핸드폰을 소파에 툭 던졌다....다른 한편.고은영과 진윤은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진윤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나씨 가문과 엮인 프로젝트를 모두 엎어버리라고 명령했다.옆에 있는 고은영은 그 말을 들으면서 걱정했다. 진윤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화하려고 할 때 고은영이 진윤의 손을 잡았다.“오빠,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나씨 가문이 밉긴 하지만 진윤의 일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다.진윤이 계약을 많이 해지할수록 진윤에게 영향이 더 클 테니까 말이다.진윤은 본인을 걱정해주는 고은영을 보면서 마음이 누그러졌다.부드러운 고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은 진윤이 얘기했다.“다 필요 없는 것들이야. 나태현은 지금 당장 귀국해야 해.”그 말을 들은 고은영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머릿속에는 병원에 있는 고은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은지는 나태현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진윤은 그런 고은영의 생각을 눈치채고 얘기했다.“지금 나태현과 량천옥이 해외에서 서로 죽이고 난리가 났어. 만
화가 난 나태범을 보면서 집사는 안절부절못했다.“지금 상황이 조금 복잡합니다.”생각하던 집사가 말을 이었다.“게다가 진씨 가문 쪽도 걱정해야 합니다.”“진씨 가문? 거기는 왜.”나태현과 량천옥이 싸우는 것만으로도 나태범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이러다가는 정말 창피해서 죽을 것 같았다.게다가 배씨 가문에서 계약까지 해지했지...이러다가는 그룹이 파산될지도 몰랐다.“배준우 씨 아내가 진윤 씨와 진정훈 씨의 친여동생입니다. 그러니 이 세 사람 다 그 고은지 씨의 동생을 위해 움직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나태범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저 진씨 가문에서 친딸을 찾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진성택이 친딸보다 양딸을 더욱 아낀다는 것까지 말이다.배준우가 고은영과 결혼할 때 강성의 사람들은 배준우가 많이 아깝다고 생각했다.일반적인 신분으로는 배준우의 옆에 설 수 없으니까 말이다.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고은영이 진짜 진씨 가문의 친딸이었다.나태범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이튿날 아침.고은영이 아침을 다 먹자마자 진윤이 도착했다.그리고 조카를 위한 선물도 가득 가져왔다.고용인들이 진윤이 가져온 물건을 보관해주었다.약간 붉어진 고은영의 눈가를 보면서, 진윤이 배준우한테 물었다.“어젯밤 계속 운 거예요?”배준우도 머리가 약간 아팠다.“제대로 자지 못했어요.”진윤이 다가가서 고은영을 마주 보더니 고은영이 입고 있는 귀여운 잠옷으로 눈을 돌렸다.배준우는 정말 딸을 키우는 것처럼 고은영을 보호해주는 것만 같았다.고은영은 원래도 키가 작은 편이어서 배준우와 함께 있을 때면 아주 작아보였다.“옷 갈아입고 나갈 준비 하자.”“정말 나가야 해요?”고은영이 올망졸망한 눈으로 진윤을 쳐다보았다.고은영은 병원에 가서 고은지를 보고 싶었다.고은지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되었다.진윤은 그런 고은영의 생각을 진작 알아차렸다는 듯이 얘기했다.“병원 쪽에는 내가 사람들을 깔아놨어. 무슨 일 없을 거야. 가자.”진윤의 말을 들은
하지만 진윤이 내일 고은영을 데리고 나가는 것의 목적을 떠올리면 고은영은 어쩔 수 없었다.“당연한 거 아닌가요?”진윤이 당당하게 얘기한 후 전화를 끊었다.배준우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더니 고은영을 쳐다보았다.“이미 다 들었지?”“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진성택은 사망했다.진정훈은 고은영이 장례식에 올 것인지 안 올 것인지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하지만 진윤은 장례식에 가지 말고 나가서 쇼핑하자고 했다.그것도 웃으면서 말이다.“넌 어떻게 하고 싶어?”“안 가도 돼요?”고은영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웃으면서 쇼핑해야 한다니. 고은영에게 있어서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배준우도 짐작하고 있었다.고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은 배준우가 얘기했다.“아마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아. 쇼핑이 최종 목적이 아닐 거야.”“위로하는 거예요?”진윤은 배준우더러 고은영을 잘 위로해주라고 했다.“위로하는 게 아니라 그저 네 큰형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하는 말이야. 단순하게 쇼핑하는 게 목적일 리 없어.”배준우가 확신하면서 얘기했다.그 말을 들은 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배준우는 허락하는 고은영을 보면서 한숨을 돌렸다.그리고 고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얘기했다.“걱정하지 마. 다 지나갈 거야.”“나씨 가문 쪽은...”거기까지 말한 고은영은 고개를 들고 배준우를 쳐다보았다.고희주의 일로 마음 아팠지만 배준우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배준우는 고은영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고은영에게 짧게 키스한 배준우가 이어서 얘기했다.“나씨 가문과 협업하는 프로젝트 두 개가 있었는데 이미 계약을 해지했어.”“주주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요?”고은영이 걱정하면서 물었다.“그 두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겨서 다들 발을 빼는 분위기야. 아마도 량천옥 씨가 한 일 같은데.”그래서 배준우도 큰 문제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다.지나간 일에 대해 배준우는 뭐라고 할 수 없
진정훈이 전화를 건 것은 진정훈에게도 계획이 있어서였다.“진유경을 조심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진유경에게 남긴 주식이 있는데 꼭 되찾아올 겁니다.”진유경이라...진정훈은 진유경이 왜 계속 고은영을 끌어내리려는지 깨달았다.그건 바로 진유경이 아직 자기 위치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러니 이제라도 제대로 알게 해줘야 했다.배준우는 진정훈의 말을 알아듣고 얘기했다.“네. 알겠습니다.”“장례식은 와도 되고 안 와도 괜찮다고 전해줘요.”“네.”진정훈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은영의 뜻을 존중해주었다.하지만 장례식에 고은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수군거릴 것이 뻔했다.“장례식은 언제입니까.”“이틀 뒤입니다.”“알겠습니다.”이틀 뒤라니. 생각보다 장례를 서두르는 모습에 배준우는 약간 의아했다.진정훈은 그저 이 일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그래서 그동안 배준우가 고은영을 잘 지켜줄 수 있도록 전화를 건 것이다....진정훈과의 통화를 마치고 배준우가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는데 핸드폰이 또다시 울렸다.이번에는 진정훈이 아닌 진윤이 걸어온 전화였다.배준우는 고은영을 안고 소파에 앉았다. 영원히 고은영과 떨어지기 싫어하는 것처럼 고은영을 꼭 안고 있었다.“여보세요.”배준우는 진윤을 존경하는 편이었다.진윤은 정말 가문의 도움 없이 지금 그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다.“은영이는요? 연락이 안 돼서.”“기분이 안 좋아요. 무슨 일이죠?”“왜 기분이 안 좋은 거죠?”“고은지 씨한테 일이 좀 생겨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요.”고은지의 상황을 전해 들은 진윤은 머리가 아팠다.지금 고은영에게는 모든 일이 설상가상이었다.“내일 오전 아홉 시에 내가 데리러 간다고 전해줘요.”“내일이요?”“네.”진윤이 대답했다.배준우는 진윤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렸다.진윤은 모든 사람들에게 진씨 가문이 얼마나 엉망인지 광고할 셈이었다.진윤이 진성택의 장례식에도 나서지 않고 친여동생인 고은영을 데리고 밖에서 돌아다닌다면...“어디로 갈 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