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우야......”그녀는 또 한 번 배준우에게 아련한 눈빛을 보냈다.그녀는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마치 고은영이 대역무도한 말을 한 것처럼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진승연은 고은영이 이미월의 남자를 빼앗았다고 생각해 그녀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했다.게다가 이미월은 고은영의 말 때문에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화가 제대로 치밀어 오른 진승연은 손을 휘둘러 고은영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다.“이 파렴치한 내연녀, 네가 뭔데 감히 자격을 논해!”하지만 그녀의 손바닥이 고은영의 뺨에 닿기도 전에, 배준우가 먼저 낚아챘다.손목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그녀는 고개를 돌려 배준우를 바라봤다.“준우 오빠.”배준우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그만해!”“오빠나 그만 하세요! 언니가 사과도 했는데 어떻게 계속 이래요?”배준우의 안색은 이미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졌다.배준우는 더는 불필요한 말을 하기 싫어 나태웅에게 전화를 걸었다.나태웅이 이내 전화를 받았다.“준우야.”배준우가 말했다.“진영 그룹과의 모든 협력 다 종결시켜!”“갑자기 왜? 대체 무슨 일인데?”그 말에 나태웅은 어리둥절했다.동영그룹과 진영그룹은 이미 여러 해 동안 협력해 온 사이다.게다가 배준우와 이미월의 동창 관계 때문에 두 기업의 협력은 비교적 긴밀했다.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관계를 청산한다고? 게다가 협력을 전부 종결한다고?배준우는 더 길게 말하지 않았다.“당장 진영그룹에 계약 해지 통보해!”쌀쌀한 배준우의 목소리를 들으니 전혀 전환의 여지가 없었다.나태웅은 배준우의 확고한 말투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얼른 대답했다.“그래, 당장 통보할게.”진미월은 배준우의 차갑고 위협적인 말투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배준우가 드디어 전화를 끊었다.진승연은 굳은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준우 오빠, 오빠가 어떻게.”“준우야, 너가 어떻게 우리 외삼촌한테!”이미월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배준우를 쳐다보았다.설마 고은영을 위해서?고은영도 배준우의 갑작스러운 결정에
진승연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이 말을 내뱉었다. 사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회사에 누가 될까 꼬리를 내릴 수 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녀가 일어서는 그때, 배준우가 차갑게 말했다.“필요 없어.”“준우야..!“배준우의 필요 없다는 말에 이미월은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녀는 배준우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배준우가 필요 없다고 말하면 후과는 심각하다.배준우가 쌀쌀하게 계속 말했다.“난 아무에게나 기회를 주지 않아.”이미월과 진승연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두 여자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배준우,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아무나? 우리가 아무나야?’이미월은 멍한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았고 눈가에는 고통이 역력했다.“준우야, 너.”진승연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이게 대체 무슨 뜻이지? 지금 타협하고 고은영 그년의 캐리어를 도로 찾아와도 필요 없다는 뜻인가?’“오빠 정말 너무해!”진승연은 화가 난 듯 고함을 지르며 몸을 일으키더니 밖으로 뛰쳐나갔다.눈물을 머금고 배준우를 바라보자 이미월은 고통을 도저히 감출 수가 없었다.“준우야, 날 봐서라도 나 실장한테 전화 좀 해줘. 우리 외삼촌은 건드리지 말아줘.”이미월은 풀이 죽어 말했다.하지만 배준우는 그저 소파에 앉아 담배만 피울 뿐이다.이 상황을 지켜보는 고은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정말 난감했다.일이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마침 배준우는 오늘 밤 기분이 나빴고, 진승연은 하필 지금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배준우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이미월은 또 한 번 그를 불렀다.“준우야......”하지만 배준우는 그저 쌀쌀맞게 담배만 피울 뿐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그 쌀쌀한 모습에 이미월은 눈물이 차올랐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고은영을 향해 말했다.“고은영 씨, 정말 미안해요. 승연이가 성격이 워낙 날카로우니 마음에 두지 않길 바라요.”아까만 해도 진승연과 입씨름을 벌이던 고은영은 이미월의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어이가 없었다
비록 배준우 앞에라서 참고 있지만 그녀도 많이 화가 난 상태였다.그녀는 긴 숨을 내쉬며 물었다.“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만족하시겠어요?”‘어떻게 하면 만족하냐고? 지금 폭탄을 나한테 넘긴 거야? 내가 억지 부리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고은영은 팔짱을 끼고 말했다.“이미월씨, 그렇게 말씀하면 안 되죠. 진승연 씨한테 사과받겠다는 데 억지인가요?”‘지금 날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거야, 뭐야? 대표님은 어쩜 안목이 저렇게 없으셨대? 세상에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하필 이런 여자를. 분명 자기들이 잘못해 놓고 내가 억지 부리는 것처럼 구네?’아쉽게도 고은영은 이런 누명을 쓰고도 가만히 있는 성격이 아니다.이미월은 전에 병원에서 고은영의 매운맛을 한 번 본 적 있다. 하지만 그녀는 고은영이 배준우 앞에서도 똑같이 행동할 줄 상상도 못했다.이미월은 열불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상황에......하는 수 없이 그녀는 화를 꾹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고은영 씨 말이 맞아요. 승연이가 직접 사과하는 게 좋겠어요.”“됐거든요? 필요 없어요. 저 아주 잡아먹을 기세던데요?”고은영이 핀잔을 주었다.고은영은 이미월의 가식적인 얼굴에 구역질이 나서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더는 이미월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이미월의 눈에 비친 고은영은 오만하고 거만했다.당장 머리끄덩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다.아무리 화가 나도 참아야 했다.고은영이 방에 들어가자 이미월은 배준우 맞은편에 앉았다.“준우야!”“나 실장이 문 열어줬어?”배준우는 손님을 쫓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우리 얘기 좀 하자, 응?”“이미월, 나 너랑 할 말 없어.”‘이미월’이라는 호칭은 두 사람 사이를 완전히 갈라놓았다.배준우는 차갑고 낯선 말투로 말했다.그 말투에 이미월의 얼굴도 함께 굳어졌다.이 순간, 방에 들어간 고은영은 여전히 화가 내려가지 않았다.‘너무하네, 진짜! 어떻게 캐리어를 버릴 수 있지?’그녀는 갈아입을 옷도 없었다. 그러니 나가서 잠옷
고은영이 거절하자 배준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춥긴 왜 추워. 씻고 바로 침대로 올라가!”‘아무튼 이 여자. 절대 혼자 내보내면 안돼!’고은영은 서러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녀는 정말 면으로 된 잠옷을 입고 편하게 자고 싶었다.하지만 배준우는 전혀 그녀를 내보낼 생각이 없어 보인다.고은영은 배준우를 억울하게 쳐다보았다.이미월은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이 상황에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배준우는 손목시계를 힐끔 보더니 짜증 섞인 얼굴로 소파에서 일어서며 말했다.“가자!”고은영은 어리둥절했다.“네?”“잠옷 사겠다며? 더 늦으면 백화점 문 닫아.”“가.. 같이 가시게요?”고은영은 무의식적으로 이미월을 힐끔 쳐다봤다.배준우는 그녀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고은영은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그럼 지금 가요..”옷을 사도 된다는 배준우의 말에 고은영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녀는 배준우와의 이 그림이 이미월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이미월은 급히 몸을 일으켜 배준우를 불러 세우려고 했다.하지만 배준우가 먼저 고개를 돌려 차갑게 말했다.“다시 돌아왔을 땐 널 안 봤으면 좋겠다.”이미월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그녀는 자기의 안색을 볼 수 없다. 볼 수만 있다면 자기의 안색이 얼마나 어두운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그녀의 눈가에는 온통 슬픔으로 가득 찼다.배준우는 그 한마디만 내뱉고 이내 시선을 거두더니 고은영의 손목을 잡고 스위트룸을 떠났다.이미월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도무지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결국 그녀는 자기가 어떻게 스위트룸에서 나왔는지도 알 수 없었다.반나절이나 배준우를 기다렸건만, 결국 이런 결말이라니?어떻게 이럴 수가?3년 전 두 사람은 그렇게 좋았었는데, 배준우가 어떻게......머릿속에는 배준우가 고은영에 대한 다정함이 떠올라 열불이 터질 지경이었다.결국 그녀는 진승연에게 전화를 걸었고 진승연은 나태웅이 잡아 준 방에 있
“뭐라고? 준우 오빠가 그년을 데리고 백화점에 갔다고?”순간 진승연은 머리 뚜껑이 열릴 뻔했다.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지!‘고은영 대체 정체가 뭐야? 종래로 백화점에 안 가는 준우 오빠가 고은영을 데리고 백화점으로 갔다고?’진승연은 화가 났지만, 또 믿을 수 없는 이 광경에 충격 받았다.이미월은 슬픔에 젖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진승연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이미월을 바라보며 말했다.“준우 오빠 일부러 언니 화나게 하려고 그러는 게 틀림없어. 신경 쓰지 마.”진승연은 이미월을 위로할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이 말은 진승연이 이미월을 위로하는 말인지, 아니면 자기를 위로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진승연은 배준우가 만약 이미월을 화나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정말 고은영을 위해 번했다면 너무 황당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다.이미월이 말했다.“정말 날 화나게 하려는 거라면, 성공했네.”만약 배준우가 정말 그녀를 화나게 하려는 게 목적이라면, 배준우의 마음속에 아직도 그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하지만 그녀는 두려웠다. 배준우가 진지할까 봐.그녀는 분명 배준우가 고은영에게 인내심은 없지만 결국 그녀를 데리고 옷을 사러 가는 모습을 보았다.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를 화나게 할 목적은 아닌 것 같았다.오히려 고은영의 멋대로인 성격에 두 손 두 발을 들고 타협한 것으로 보였다.진승연이 말했다.“그렇지 않으면 준우 오빠가 왜 그런 곳에 가겠냐고, 아니야?언니 절대 포기하지 마. 준우 오빠도 화나서 그러는 거야!”“화난 거 맞아?”이미월은 불확실한 표정으로 진승연에게 물었다.진승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확실해!”‘그게 아니라면 준우 오빠가 설마 정말 그 촌년 때문에 변했겠어? 언니한테 화나서 일부러 그러는 게 분명해.’같은 시각, 배준우는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배준우가 차에서 내렸지만 고은영은 아직도 멍해 있었다.배준우가 뒤돌아보았다.“안 내려?”“대표님도 같이 가시게요?”고은영은 그저 배준우가
백화점에서 다시 호텔로 돌아오니 진승연과 이미월은 보이지 않았다.아마 아까 이미월 앞에서 진영그룹에 손을 쓴 일은 그녀에게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똑똑히 깨닫게 했을 것이다.고은영은 조용한 방을 둘러보더니 배준우의 눈치를 살폈다.배준우가 말했다.“뭘 봐? 옷도 샀는데 안 씻을 거야?”배준우는 고은영의 이 문제에 정말 할 말을 잃었다.‘시골에서 온 여자가 뭐 이렇게 까다로운지.’그녀는 잠잘 때도 반드시 순면 재질의 잠옷을 입고 자야 한다.고은영은 백화점에서 이미 쾌속 드라이클리닝 한 잠옷을 집어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다 씻고 나왔을 때, 배준우는 이미 다른 욕실에서 씻고 나왔다.고은영은 오후에 자기가 잠을 잤던 방으로 향했다.이때 등 뒤에서 배준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거긴 왜 들어가?”고은영이 말했다.“자려고요!”하루 종일 피곤한 일만 겪었더니 그녀는 당장이라도 이불에 들어가고 싶었다.배준우가 말했다.“안방으로 가.”엥?설마.두 사람이 또 한방에서 잔다는 말인가?하지만 그녀는 자기의 고약한 잠버릇에 난처한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니에요!”그녀는 자기에게 심각한 몽유병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배준우는 어쨌든 혈기 왕성한 남자인데 하루를 참고 이틀을 참는다 해도 조만간 사고를 칠 것이다.그리고 그녀는 현재 임신 중이다. 고은영은 아직도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만약 이때 일이라도 생기면 그녀는 끝장이다.배준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그게, 저 잠버릇이 심해서 대표님이 불편하실 거에요.”배준우는 할 말을 잃었다.고은영의 잠버릇?그녀의 잠버릇은 마치 그녀의 요리 솜씨처럼 형편없었다. 이를 갈고 침을 흘리고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품에 껴안는다.하지만 그 중 어떤 요소도 배준우의 골치를 아프게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배준우는 그런척을 했다. “잘 아네?”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할 일도 많으실텐데 저 때문에 피곤해지면 어떡해요.”“네가 아픈데 내가 편히 잘 수
배준우는 몇 통의 전화를 받았는데, 그가 전화를 다 끊고 나왔을 때는 이미 룸서비스가 도착한 뒤였다.그리고 고은영이 다시 자기 방으로 들어갔는데, 배준우는 굳이 말리지 않았다.하지만 고은영은 자신의 몽유병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 같았다.분명 배준우와 방을 따로 쓰고 잤는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달랐다. 정말 큰일이 일어났다! 그녀는 또...... 배준우의 침대로 올라간 것이다. 그녀는 불안감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고은영의 시선이 무겁고 예리한 배준우의 눈빛과 마주치는 순간, 그녀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그녀는 깊은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대표님, 이거 오해라면 믿으시겠어요?”“네 생각엔?”배준우는 콧방귀를 뀌었다.고은영은 할 말이 없었다.‘내가 여길 어떻게 들어왔지?’하원 별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 그녀는 집안 곳곳의 배치에 익숙했고 게다가 배준우와 한방을 썼으니 말이다.하지만 여기에서 어떻게......그녀는 어젯밤에 잠이 든 후에 도대체 어떤 일이 일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배준우의 차가운 목소리에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며 또 말했다.“진짜 오해에요!”그녀는 혹시라도 배준우가 그녀를 믿지 않을까 봐 진지하게 말했다.“그렇게 생각해.”그 말은 좀 의미심장하게 들려왔고, 고은영은 그 말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아무튼 배준우가 그렇게 생각하라고 한 것만으로도 크나큰 은혜이다.이날 밤, 누군가는 편안한 잠을 잤고, 누군가는 괴로운 밤을 지냈다.다음날 육명호는 배준우가 장서경과 협력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그리고 진영 그룹에서도 계약 해지 통보까지 받았다.육명호는 아침부터 다급하게 그레이스호텔로 왔고 진영 그룹의 회장은 동영 그룹의 계약 해지 통보에 잠시 어리둥절했다.진 회장은 나태웅에게 상황을 물었고 그제야 이 모든 게 진승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진승연은 이미월과 함께 북성으로 왔고 배준우를 화나게 했다.그리고 배준우의 화는 두 기업의 협력에 영향을 주었다.분석을 마친 진
배준우는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은 아니었다.하지만 상대방이 그를 화나게 했을 때, 상대방에게 그를 화나게 만든 후과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이다. "그건 다른 사람이잖아!"진승연이 놀라 말했다."네 말은 네가 다른 사람이랑 다르다는 거야? 자신을 그렇게 과대평가하지 마."배준우를 오랫동안 봐왔지만 진 회장도 그가 누군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보지 못했다.배준우는 자신의 아버지인 배항준에게도 차가웠다.그런데 진승연은 자신이 배준우에게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자신이 배준우의 친구라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건 배준우가 그녀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었다.진승연은 화가 난 얼굴로 말하는 자신의 아버지를 보며 자신이 저지른 멍청한 짓 때문에 회사에 큰일이 났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네 사촌 언니도 간거야?"진승연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 진 회장이 다시 물었다.긍정적인 대답을 내놓는 진승연을 보며 진 회장은 자신의 딸이 어떻게 배준우를 화나게 한 건지 대충 알 수 있게 되었다.그녀는 다른 이를 대신해 억울함을 떠안게 되었던 것이었다.배준우와 고은영이 결혼한 사실은 강성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기에 그는 모를 리 없었다.이미월이 배준우를 떠날 때, 그는 그녀에게 이번에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고 했었다.그런데 배준우가 결혼까지 한 마당에 다시 돌아와 이런 짓을 하다니.진 회장이 다시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원하든 말든 지금 당장 배 대표 찾아가서 똑바로 말해. 사과할 거 사과하고!""아빠!""너 어제 배 대표 와이프한테 버릇없게 굴었지?"진 회장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배준우처럼 아량 넓고 드러내기 싫어하는 사람이 어제 그렇게 화를 낸 걸 보면 아마 문제가 그의 아내에게 있을 것이라고 진 회장은 생각했다.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진승연을 보며 진 회장은 더욱 확신했다."얼른 사모님 찾아가서 사과드리고 용서를 빌어.""싫어!"하지만 진승연은 고민도
나태범과 집사는 서로를 마주 보더니 의아한 눈빛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 눈빛에는 의아함과 불안함이 섞여 있었다.안지영은 마른침을 삼키고 이어서 얘기했다.“그렇게 보지 말아주세요.”“너 아직 장선명과 결혼한 것도 아니면서, 왜 유부녀라고 하는 거야.”나태범이 정신을 차리고 화를 냈다.“...”나태범의 얼굴을 마주한 안지영은 천천히 가방에서 혼인 관계 증명서와 청첩장을 꺼내 집사에게 건네주었다.집사는 그것을 받고 확인해 보더니 깜짝 놀랐다. 그리고 바로 나태범에게 달려가 건네주었다.나태범은 안지영과 장선명의 혼인 관계 증명서를 확인하고는 표정이 굳어버렸다.게다가 혼인신고를 한 날짜가 오늘이라니.그 순간 나태범은 호흡이 거칠어졌다.나태범이 안지영을 노려보면서 얘기했다.“너, 너 아까 전화를 받고 나서 장선명과 결혼하러 간 거야?”나태범은 이를 꽉 깨물고 겨우 얘기했다.혼인 관계 증명서에 적힌 시간을 보니 집사와 전화한 후였다.그러니까, 안지영은 나태웅이 유서를 남기고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도 바로 달려오지 않고 먼저 가서 혼인신고를 했다는 것이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나태범은 흉악한 시선 속에서 안지영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보면서 나태범은 화가 나서 당장 폭발할 것만 같았다.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오늘 같은 날 결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나태범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집사도 좋지 않은 표정으로 안지영을 보면서 말했다.“안지영 씨, 이건 선을 넘으신 겁니다.”마치 안지영이 혼인신고를 하러 간 게 큰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 사람은 너나 할 거 없이 안지영에게 비난을 쏟아냈다.안지영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이건 나와 선명 씨의 선약이었어요. 우리의 결혼식이 나태웅 씨 때문에 자꾸만 미뤄졌으니까요. 그래서 혼인신고부터 하겠다고 한 건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안지영이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설마 혼인신고를 하기 전에 통보라도 해주길 바란 건가?나씨 가문이 뭔 대
“난 결정을 번복하지 않아요.”안지영이 중얼거리면서 얘기했다.안지영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태웅의 죽음에 왜 본인이 결혼을 취소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장선명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그래, 그건 나도 잘 알고 있어.”장선명은 안지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나태웅이 무슨 생각을 하고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안지영의 태도는 명확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장선명은 안지영과 함께 가지 않았다. 나씨 가문에 도착한 안지영은 이곳의 분위기가 아주 음산해진 것을 느꼈다.안으로 들어가니 나태범이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면서 안지영을 찢어버릴 듯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집사의 태도도 좋지 않았다.“이거 보세요.”집사는 나태웅의 유서를 안지영에게 건네주었다.안지영은 그 유서를 받지 않고 집사를 보면서 물었다.“제가 볼 필요가 있나요?”안지영은 본인과 나태웅의 사이를 완전히 끊어버리고 싶었다.안지영의 차가운 태도에 집사와 나태범은 마음이 아팠다.나태웅이 안지영 때문에 무슨 짓까지 했는데, 안지영의 태도는 여전하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지금 나태웅은 유서를 쓰고 사라진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도 안지영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는다.안지영은 집사와 나태범의 시선 아래서 대답했다.“저랑 나태웅 씨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안지영이 직설적으로 얘기하자 나태범이 불만스럽게 말했다.“태웅이가 지금 사라진 건 다 너 때문이야!”“왜 저 때문이죠”“지금까지 태웅이한테 전화라도 해 봤어? 태웅이 비서랑은 연락해 봤어?”“지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제가 왜 나태웅 씨한테 전화하고 나태웅 씨 비서한테 연락을 해야죠?”마치 나태웅이 사라져서 안지영이 안달 난 것처럼 말이다.두 사람이 무슨 관계인지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나태범의 질문에 안지영은 어이가 없었다.나태범은 무표정한 안지영을 보면서 화를 뿜어냈다.“태웅이는 너 때문에 사라진 거라니까!”“어르신 때문이잖아요!”안지영이 물러서지 않고 반박했다
안지영은 아까까지만 해도 아주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나씨 가문을 떠올리니 다시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그리고 아까 오는 길에 나씨 가문 집사와 통화했던 내용을 장선명에게 다시 한번 얘기해 주었다.끝까지 들은 장선명은 입가를 매만지며 물었다.“유서만 남기고 사라졌다고?”“그래요. 이건 또 뭐 하려는 수작인지...”안지영은 이미 나태웅에 대한 호감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 유서를 남기고 사라진 것도 그저 쇼하는 거라고 생각했다.정말... 어떻게 보면 표도 안 사고 나태웅의 일인극을 보는 것만 같았다. 너무도 대단한 쇼라서 안지영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몰랐다.안지영뿐만이 아니라 장선명도 지금 이 상황에 약간 놀랐다.“그럼 지금 나씨 가문에 가려는 거야?”“가야죠. 그리고 나씨 가문 사람들한테도 알려줘야죠. 나는 이미 유부녀라고. 그러니 날 어쩌지 못한다는 걸요.”나씨 가문을 떠올리면 안지영은 그들은 뻔뻔함 빼면 시체라고 생각했다.“그럼 같이 가.”“괜찮아요. 설마 날 잡아먹기라도 하겠어요?”안지영이 손을 저으면서 얘기했다.장선명도 바쁜 몸이었다. 하지만 나씨 가문 일 때문에 안지영과 함께 다녔던 것이다.장선명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얘기했다.“그러면 하나만 더 가져가.”“뭐요?”“일단 차에 타서 얘기해.”말을 마친 장선명은 외투를 안지영 몸에 걸어주었다.장선명의 온도가 안지영을 품에 안는 것만 같았다.걱정했던 안지영은 그 덕분에 안심되었다.두 사람은 차에 올랐다.장선명은 안지영의 혼인 관계 증명서를 건네주면서 청첩장을 건네주었다.이 청첩장은 전부터 준비한 것이다.하지만 나씨 가문 사람들 때문에 날짜를 연거푸 몇 번이나 고쳤다.“청첩장이요?”“어쩌다가 나씨 가문에 가는 건데 청첩장도 돌려야지.”“...”나태웅이 유서를 남긴 이 시점에, 나태범에게 청첩장을 돌리라니.장선명의 수단은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안지영이 청첩장의 날짜를 확인하기 위해 청첩장을 펼쳤다.결혼 날짜는 보름 뒤였다.“이 날짜... 더
안지영은 나태웅의 고집스러움이 누구를 닮은 것인지 알 것 같았다.정말 피는 못 속인다고.안지영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또 전화가 걸려 왔다.안지영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화를 내지 않기로 했다.‘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니까.’안지영은 결국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안지영 씨. 나씨 가문 저택에 한 번만 와주십쇼.”“또 뭘 하려는 거예요.”화를 내지 않으려던 안지영의 결심은 1초 만에 사라졌다.“작은 도련님께서 유서를 남기셨습니다.”“...”‘유서? 나태웅이 유서를 남겼다고? 또 무슨 연극을 하려는 거야!’나태범이 약혼 기사를 발표하자마자 1시간도 되지 않아서 유서를 남기다니.“나태웅 씨는 그럼 어디 있는데요.”안지영이 눈썹을 꿈틀거렸다.너무 빨리 일어난 사건에 안지영은 약간 혼란스러웠다.하긴 나태웅은 생각보다 행동이 더욱 빠른 사람이었으니까.“사라졌습니다.”“그게... 무슨 뜻이에요?”나태웅이 사라졌는데 안지영을 나씨 가문으로 부른다니. 안지영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겨우 나씨 가문과 멀어진다고 생각했는데 나태웅은 또 안지영을 골치 아프게 만들고 있었다.“우선 와주세요.”집사의 말투와 태도는 썩 좋지 않았다.안지영은 화가 나서 물었다.“안 가겠다고 하면요?”겨우 나태웅을 다른 사람과 약혼하게 만들었는데, 안지영을 부르다니.안지영은 죽어도 가고 싶지 않았다.오늘 그렇게 많은 일이 일어났으니 쉬고 싶을 법도 했다.게다가 안지영은 지금 당장 구청에 가서 장선명과 혼인신고를 해야 한다. 나씨 가문에 들릴 시간 따위는 전혀 없었다.집사는 강경한 안지영의 태도를 들으면서 대답했다.“그렇다면 안진섭 씨를 병원으로 돌려보내 드릴 수는 없을 것 같군요.”“...”안지영은 그 순간 숨도 쉬지 못했다.나씨 가문의 사람들을 언젠가는 다 죽여버리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나태웅이 왜 갑자기 유서를 남기고 사라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안지영이 전화를 끊었을 때는 이미 구청에 도착한 때였다.그래서 안지영은 바로 고민하지
안지영은 금고를 열고 한숨을 돌렸다.안진섭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으면 혼인신고를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안열이 전화를 걸자 안지영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네. 무슨 일이에요?”“나태웅 씨가 약혼했다고 합니다.”“네?”안지영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안열도 놀란 듯했다.“아마도 나태범 어르신이 안 대표님을 정말 싫어하게 되었나 봐요. 우리가 움직이기 전에 이미 나태웅 씨와 허영지 씨의 약혼을 발표한 걸 보면요.”“허영지 씨요?”안지영은 또 깜짝 놀랐다.안지영 쪽에서는 오늘에야 나태웅을 좋아하는 사람을 알아냈다. 그래서 두 사람을 가깝게 만들어주려고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나태범이 먼저 움직이다니.이렇게 보면 나태범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있어도 사실은 모든 걸 꿰뚫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안지영은 그제야 걱정을 덜었다. 만약 나태범이 계속 안지영을 며느리로 들이겠다고 한다면 그것보다 더욱 골치 아픈 일은 없을 것이다.“맞아요. 허씨 가문의 허영지 씨요.”안열이 대답했다.“잘됐네요. 약혼하게 되었다니, 정말 잘 됐어요.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하는 건 뭐 없죠?”확실히 장선명의 말을 들으니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해결되는 것 같았다.“아니요. 있어요!”“?”뭘 더 해야 한다는 거지?나태범은 이미 안지영이 하려던 일을 대신 해주었다. 그래서 안지영은 너무나도 편했다.하지만 안열이 얘기했다.“낙장불입이 되게 도장을 찍어야죠.”지금 기사화된 약혼을 사실화되게 만들어야 한다.그래야만 나태웅을 고분고분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안지영은 안열의 말을 들으면서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나태웅을 아내 바보로 만들어야겠네요.”만약 정말 허영지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면 나태웅은 어쩔 수 없이 나태범의 말을 들어야 할 것이다.“어차피 안 대표님한테 피해가 가는 일도 아닌데요, 뭘.”“하긴, 틀린 말은 아니네요.”안열의 말에 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어차피 나씨 가문에서 약혼 기사를 발표했으니 나태웅과 허
“그래, 그래, 이놈아!”나태범은 화가 확 올라왔다.‘전에는 애가 이렇게 극단적인 줄 몰랐는데, 왜 이렇게 된 거지?’너무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나태범은 나태웅을 쏘아보더니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뜬 후 얘기했다.“너랑 안지영의 혼사는 반대다. 이건 진심이야.”나태범은 몇 번 생각한 후 결국 결정을 내렸다. 이제 이 결정은 그 누구도 꺾지 못할 것이다.하지만 그 말을 들은 나태웅은 차갑게 대답했다.“제 혼사는 아버님이 정하는 게 아닙니다.”“너...”가뜩이나 화가 나 있던 나태범은 나태웅의 말을 듣고 혈압이 올라서 손에 쥐고 있던 찻잔을 꽉 쥐었다.나태범은 정말 울화통이 터져서 지금 당장 나태웅을 때려죽이고 싶었다.“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넌 오늘부터 허영지와 약혼 준비나 해.”나태범이 이토록 나태웅을 엄격하게 대하는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지금은 나태웅의 의견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니 나태범은 통보하는 식으로 나태웅에게 얘기하고 있었다.나태범은 죽어도 안지영을 며느리로 들이지 않을 것이다.나태웅은 굳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싫습니다.”같은 피가 아니랄까 봐. 나태웅의 태도 또한 나태범만큼 강경했다.나태범은 더 따지고 싶지 않았다.“네가 허락하든 말든 넌 허영지와 약혼하게 되어있어!”“아니...”“기사는 오늘 보도될 거다.”“...”나태웅이 차가운 시선으로 나태범을 쳐다보았다.‘그러니까 얘기를 하려고 부른 게 아니라 통보를 하기 위해 부른 거란 말이지?’“결혼하지 않을 겁니다.”“너, 이 자식!”나태범이 목덜미를 잡고 얘기했다.나태범은 나태웅을 항상 아껴주고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게 해줬다.하지만 이번만큼은 물러설 수 없었다.안씨 가문과 나씨 가문은 같은 급은 아니지만 나태웅이 좋아하는 사람이니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안지영의 행동을 보니 나태범은 더 이상 안지영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굽혀지지 않는 나태범의 태도에 나태웅은 그저 자리를 뜰 수밖에
고은영은 아무것도 모른 채 차에 탔다. 고은지가 문을 닫아주었다. 고은영은 창문을 내리고 고은지를 향해 말했다.“언니, 시간 되면 저녁에 밥이라도 같이 먹자.”저녁을 같이 먹자는 고은영의 말에 고은지가 머뭇거렸다.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이따가 얘기해. 전화할게.”고은지는 아주 바빠서 말도 길게 하지 않았다.고은영은 걱정스레 고은지를 쳐다보았다.고은지는 차 문을 닫고 손을 흔들고는 하늘 그룹으로 들어갔다.‘누구를 만나러 왔길래 저렇게 급해하는 거지?’차가 출발했다.고은영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고은지와 육명호가 나란히 같이 걷는 모습을 본 고은영은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잘못 본 게 아닌가 다시 확인하고 싶었지만 차는 이미 코너를 돌았다.‘언니가 육명호를 만나러 왔다고? 육명호랑 아는 사이인가? 왜 육명호를 만나러 왔지?’수많은 질문이 고은영의 머릿속에서 떠올랐다....안지영은 고은영을 떠나보낸 후 바로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장선명은 바로 전화를 받고 능청스럽게 얘기했다.“떨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내가 보고 싶은 거야?”“우리 혼인 신고해요.”안지영이 전화기 너머의 장선명에게 얘기했다.“...”갑작스러운 안지영의 말에 장선명은 그대로 굳어버렸다.“혼인 신고?”“네. 빨리요.”나태웅이 방해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많은 것을 하지 못했다.그러니 지금 당장 혼인신고부터 하려는 것이다.“알겠어. 당장 준비해서 갈게.”“저도요.”“그럼 한 시간 뒤에 사무소에서 만나.”“네.”안지영이 대답했다.전화를 끊으니 온 세상이 조용해졌다.고은영은 평소에는 귀엽고 약간 바보 같아 보이지만 가끔 새로운 발상으로 주변인을 놀라게 한다.안열은 나태웅의 일을 처리하러 나가 있었기에 안지영은 비서실에 얘기를 해둔 후 회사에서 나갔다.나태웅은 안지영과 장선명이 지금 갑자기 혼인 신고를 하리라 생각지도 못할 것이다.하늘 그룹에서 나온 나태웅은 바로 나태범에게로 갔다.나태범은 차갑게 나태웅을 쏘아보았다.안지
“그러면 법적 부부가 되어서 나태웅한테 서류증명을 딱 보여주면 되잖아.”“...”나태웅에게 서류증명을 보여주라고?고은영의 말을 들은 안지영은 웃으면서 고은영을 바라보았다.확실한 방법이긴했다.“그러게, 왜 이 생각을 못했지? 바로 선명 씨랑 결혼하면 되네?”굳이 이렇게 애쓸 필요 없었다.하지만 나태범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다.“그러게. 두 사람이 결혼하면 아무도 어쩔 수 없을 거잖아.”“...”이론상으로는 맞는 말이었다.전에는 결혼하려고 하면 나태범이 자꾸만 방해했다.하지만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그래, 결혼! 나 결혼할 거야!”안지영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결혼하는 것이야말로 최적의 시기다.“응, 결혼!”고은영도 이 방법이 더욱 좋다고 생각했다. 장선명의 평판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지만 안지영에게는 잘해주니까 말이다.나태웅은 딱 그 반대였다. 나태웅의 행동은 그 뜻을 알 수 없을 만큼 괴이했다.나중에 봤을 때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너도 장선명 씨가 더 좋다고 생각하지?”안지영이 고은영에게 물었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히 장선명 씨가 좋지.”고은영이 바로 대답했다.안씨 가문에 문제가 생긴 후, 장선명은 끝까지 안지영의 뒤를 지키며 수도 없이 많은 일을 해치웠다.하지만 나태웅은 돕지도 않고 방해만 했다.게다가 본인이 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았다.“우리가 전에는 몰라서 그렇지, 나태웅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고은영이 고민하다가 진지하게 얘기했다.안지영도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렇게 생각해. 일 처리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해!”나태웅때문에 안지영은 화병으로 죽을 것만 같았다.싸울 때마다 나태웅이 하는 어이없는 말에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게다가 오늘은 안지영이 원해도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그러면서도 안지영에게 집착하고 있으니.‘사양은 이쪽이 먼저야!’두 사람은 계속해서 수다를 떨었다.고은영은 안지영에게 큰
두 시쯤 되었을 때 고은영이 찾아왔다.오늘 일어난 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통화도 했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안지영은 환한 표정으로 고은영을 안심시키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아무 일도 없으니까!”고은영은 나씨 가문이 화가 나서 안지영에게 몹쓸 짓을 했을까 봐 걱정했다.안지영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고은영은 약간 못 믿겠다는 듯 물었다.“정, 정말 괜찮은 거야? 나태범 어르신이...”고은영이 중얼거렸다.“나도 알아. 하지만 내가 그런 일을 한 건 다 나태범 어르신이 나를 싫어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야. 이제 만족해.”장선명과 안열이 말한 것처럼, 나태범이 안지영을 싫어하면 나태웅과 안지영은 절대 결혼할 수 없다. 고은영은 약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물었다.“어르신이 널 싫어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거야?”“당연히 있지. 이번에는 우리 아빠를 납치해서 날 협박했잖아.”“협박했다고?”고은영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나태웅이 안지영을 꼬시지 못해서 나태범까지 끌어들이다니.거기까지 말한 안지영은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이런 아들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게다가 나태웅이 몇 살인데, 아직도 아버지의 힘을 빌려야 한다니.고은영은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웃었다.나태웅은 정말 어이없는 사람이다.안지영을 꼬시지 못해서 나태범이 나서게 하다니.나태범은 또 안지영을 협박해서 나태웅과 사귀게 하다니.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그렇게 말하니까 나태웅이 멍청해 보이네!”안지영이 웃으면서 고은영을 보고 얘기했다.“네 말이 딱 맞아!”나태웅은 멍청한 게 맞았다. 연애도 제대로 못 해서 웃어른의 힘을 빌려야 하니까 말이다.인연이 아니면 갈라지면 되지, 웃어른까지 나와서 부추기는 꼴이라니.“그럼 오늘 한 모든 일이 나태범 어르신의 미움을 받기 위해서인 거야? 그렇게 나태웅 씨와 너를 반대하게 만들려고?”“그래.”안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나태범이 안지영을 싫어하기만 하면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이다.안지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