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영은 자기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왜 심상치 않은지 대략 짐작이 갔다.“잠시 앉아 계세요. 아마 두 게임 정도 더 할 것 같아요.”주연은 그녀에게 따뜻한 차 한잔을 건네주었다.고은영은 웃으며 차를 건네받았다.“고마워요.”주연이 고은영에게 물었다.“준우 오빠랑은 어떻게 만났어요?”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윤설과 진승연은 고은영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 갑작스러운 질문에 고은영은 배준우가 자신의 존재를 이미 공개했음을 깨달았다.그녀를 부르는 형수님이라는 호칭이 이미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자기 약혼자도 올 거라고 배준우가 이미 말했었을 것이다. 이 상황에 자기를 그의 비서라고 소개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건 그를 창피하게 하는 행동이다.고은영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주연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말하기 불편하신 건가요? 미안해요!”이 말은 들은 진승연이 하찮은 듯한 말투로 말했다.“준우 오빠가 어디서 주웠는지도 모르지.”“승연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해.”주연이 타이르듯 말했다.하지만 진승연은 여전히 하찮은 듯한 태도로 코웃음 쳤다.진씨 가문의 딸인 그녀의 눈엔 사촌 언니인 이미월과 배준우가 더 어울렸다. 그래서 고은영을 보니 여러모로 거슬렸다. 특히 고은영이 입은 옷이 그녀의 눈에는 형편없어 보였다.“내 비서야. 무슨 문제 있어?”배준우가 낮은 목소리로 고은영을 옹호하며 말했다.고은영은 깜짝 놀랐다.주연과 진승연의 표정도 굳어졌다.진승연은 배준우를 쳐다보며 불만스레 말했다.“오빠!”배준우가 고은영에게 말했다.“내 옆으로 안 올 거야?”배준우가 화난 모습에 진윤과 육범수, 장선명, 모두가 놀랐다.진승연의 한마디에 바로 화가 났다. 고은영을 얼마나 아끼면 이럴까.고은영은 배준우 쪽으로 걸어갔다.그녀가 다가가자마자 배준우는 그녀를 끌어당겨 무릎에 앉혔다.고은영이 소스라치게 놀랐다.“뭐, 뭐 하시는 거예요.”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런 행동을 하다니.고은영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배준
고은영은 원래 포커 게임을 할 줄 몰랐다. 하지만 배준우와 함께 자주 모임에 나가야 했기 때문에, 나 실장의 명령하에 포커 게임을 배우게 되었다. 하지만 전에 함께 게임을 했던 상대는 모두 고객이었기 때문에 거의 지는 게임만 했었다.즉, 게임을 배우고 지금까지 쭉 지기만 했다는 뜻이다.“응. 이겨도 돼!”배준우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귀엽다는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녀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모습에, 다들 다시 놀랐다.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이겨도 된다는 말에 고은영은 금세 흥미를 느꼈다.배준우는 피식 웃고는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고은영은 자기의 패를 살펴보았다.육범수가 고은영에게 물었다.“형수님,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나요?”그녀가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마치 마음만 먹으면 이길 수 있다는 듯 했다. 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한 번도 이긴 적 없어요.”사실이었다!이 말이 육범수와 장선명 귀에는 그녀가 초보라는 말로 들렸다.하지만 고영은 초보가 아니다! 한 판을 하고 난 후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육범수가 말을 더듬었다.“아니, 이게......”이게 무슨 상황인지. 한 번도 이긴적이 없다고 했는데?고은영은 배준우의 친구들 앞이라 더욱더 조심했다.하지만 배준우가 이겨도 된다고 했으니, 작정하고 해볼 생각이었다.이때 주연이 고은영의 뒤에 서서 말했다.“저 형수님이 이긴다는 것에 제 돈도 걸어요.”말하며 돈을 꺼내 고은영의 앞에 놓았다.고은영이 물었다.“제가 다 잃으면 어떡해요?”“그냥 즐겁게 놀아요. 괜찮아요.”“주연아, 나 아직 돈 다 안 잃었는데 이러기야?”육범수가 주연에게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주연이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지금 상황을 보면 진 거나 다름없잖아.”방금 그 한판의 게임에 다들 더 이상 고은영을 얕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속수무책으로 고은영에게 당하고 있었다.고은영이 포커를 배운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
고은영은 배준우가 오늘 왜 자기를 그의 친구들에게 소개했는지 몰랐다. 그 자리는 그냥 단순히 소개만 하는 자리가 아닌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점심 메뉴는 역시나 양고기구이 이다.고은영의 입에도 그럭저럭 잘 맞았다.배준우는 밥 먹는 내내 고은영에게 양갈비를 썰어주면서 그녀를 챙겼다.하지만, 그들이 반쯤 먹었을 때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들어왔다.이미월이다.“언니.”진승연이 이미월에게 손짓했다.이미월은 배준우를 힐끗 쳐다보고는 고은영에게 시선을 멈췄다.순간 고은영은 깨달았다. 진승연의 분노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녀와 진승연이 친한 사이였기 때문이라는 걸 말이다.이미월의 등장에 분위기가 어색해졌다.다들 그 들의 사연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이 정도면 돼?”배준우의 시선은 오로지 고은영에게만 머물러 있었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이거면 돼요. 대표님도 얼른 드세요.”구운 양고기는 뜨거울 때 바로 먹어야 제맛이다. 고은영도 양갈비 한 조각을 배준우의 그릇에 덜어 주었다.배준우는 미소를 지으며 휴지를 들어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이것 봐, 아직도 어린애처럼 입에 묻히면서 먹네.”고은영도 미소를 지었다. 조금 부끄러웠다.이 둘은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 자리가 매우 불편했지만 고은영은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 돈도 땄고 양고기도 맛있고 하니 말이다.두 사람의 모습에 이미월은 화가 치밀었다.“언니, 이것 좀 먹어봐, 여기는 양고기가 제일 맛있어.”진승연이 양갈비 한 조각을 이미월의 그릇에 덜어주며 말했다.이미월은 마치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듯 계속 배준우만 쳐다보았다.“언니, 언니?”진승연이 이미월을 불렀다.이미월은 잠시 멈칫하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이미 어색한 분위기를 더 어색하게 만들었다.“배준우, 나랑 얘기 좀 할 수 있어?”배준우가 시선 한번 주지 않자, 이미월은 견딜수가 없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배준우의 시선이 드디어 이미월에게로 옮겨졌다. 눈물을
배준우는 고은영을 데리고 떠났다.혼자 남은 이미월의 얼굴에는 난처함이 가득했다.진승연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언니, 마음에 두지 마. 저 여자 그냥 촌년이야. 형부와는 그저 연기하는 것뿐이라고!”진승연은 고은영의 뒤를 캔 적 있다. ‘오직 성적으로 시골에서 올라온 여자가 감히 재벌 사모님이 되려고? 꿈도 야무져!’이미월은 눈물을 꾹 참았다.배준우가 갑자기 떠나자 진윤과 육범수 그리고 장선명 등 사람도 난처해졌다.육범수는 주연에게 눈빛을 보냈다.“주연아, 미월 씨 좀 챙겨”“아.”주연은 재빠르게 이미월을 위해 양갈비를 썰었다.하지만 그녀는 갑자기 방문한 이미월의 행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두 사람에게 어떤 과거가 있든 지금 배준우는 이미 결혼했다.‘내가 진짜 우리 자기 때문에 봐주는 거야!’“미월 씨, 이것 좀 드세요!”주연은 양갈비를 이미월의 그릇에 담아주었다.하지만 이미월은 움직이지 않았다!그녀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문뜩 입을 열었다.“다들 저 여자 준우 와이프로 인정하는 거예요?”“미월 씨, 그렇게 말씀하면 안 되죠. 이건 우리의 인정이 필요 없어요!”참다못한 주연이 입을 열었다.이 자리에 있는 배준우의 친구들은 전에 배준우가 그녀와 함께 자주 만났던 친구들이다.그런데 오늘 배준우는 고은영과 함께 친구들을 만났고, 이것은 배준우가 고은영을 대하는 태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그리고 배준우는 그녀를 데리고 나갔다.이미월이 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따지려고 들자 주연은 상당히 불쾌했다!!그녀는 스스로 떠났으면서 마치 모두가 그녀에게 미안한 짓을 한 것처럼 굴었다.주연의 거침없는 말에 이미월은 안색이 창백해졌다.진승연이 주연을 힐끔 보며 말했다.“그 입 다물어!”“내가 왜 입 다물어야 해? 입 다물 사람은 따로 있구먼.”주연은 콧방귀를 뀌며 이미월을 힐끔거렸다.주연이 물러서려 하지 않으니 진승연은 버럭 화가 났다.“돈도 이기게 해줬는데 사람이 어쩜 저렇게 지조가 없대? 저
차가운 두 글자는 배준우가 이미월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고은영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많이 울던데요.”사실 고은영은 어떻게 이미월을 평가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그런 장소에 무턱대고 따라오더니 심지어 눈물까지 흘렸다. 이건......배준우는 그녀를 힐끗 보며 물었다.“그래서 내가 이미월을 위로해 줬으면 좋겠어?”이 말을 내뱉는 배준우의 목소리는 아주 차가웠고 고은영은 한기를 느꼈다.고은영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아니요. 그러니까 두 사람 사이 완전히 끝나건 아니네요? 이 말을 묻고 싶었어요.”“결혼이 그렇게 필요했는데, 왜 그 여자와 결혼하지 않았어요?”이미월의 태도로 보았을 때, 그녀는 전혀 배준우와 헤어지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였다.‘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래......’“그만해!”배준우의 말투는 더 차가워졌다.고은영은 배준우의 고함에 깜짝 놀랐다.‘사실대로 말했는데 왜 저렇게 화났대?’하지만 집 문제를 생각하니 그녀도 더는 배준우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됐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불쾌한 이 화제를 넘겨버리며 배준우를 위로했다.“그래요, 그만할게요. 화내지 마세요, 네?”배준우의 쌀쌀한 눈빛에 그녀는 움찔했다.‘그래, 굳이 가슴에 묻은 사람을 내가 꺼내서 뭐 하겠어. 괜히 심기나 건드렸지.’집에 돌아가는 길은 거의 저기압이었다.하원 별장에 거의 도착했을 때, 나태웅이 전화를 걸어 왔다. 배준우가 얼른 전화를 받았다.“말해.”“병원 쪽에 상황이 생겼어요!”배준우는 병원이라는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일인데?”고은영은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으나, 이내 가슴이 철렁했다.전화기 저편에서 나태웅이 말했다.“오진이 아니라 안지영 씨가 그렇게 요구했다고 합니다!”고은영은 얼핏 나태웅의 말을 들었다.“휴......”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이 순간 등줄기가 굳어지는 것 같았다.‘잠깐, 근데 병원 일은 왜 아직도 끝나지 않은 거지?’백 어르신의 말로는 배준우는 오진을 절대 용납
이 일은 갑자기 일어났다.백 어르신이 간 뒤로 고은영은 이 일이 이미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배준우가 진단서를 작성한 의사를 해고하라고 할 줄이야.나태웅이 곧 안지영을 찾을 거라는 생각에 고은영은 당장에라도 그녀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하지만 배준우의 아우라에 눌려 그녀는 찌그러진 깡통처럼 감히 움직일 수도 없었다.고은영이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배준우는 더 차갑게 다그쳤다.“말해!”“모, 몰라요!”고은영은 당장에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았다.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말이 뭐 있겠는가? 어떤 말을 해도 잘못이 될 텐데.그렇다면 유일한 방법은 바로...... 도피하는 것!하지만 배준우는 그녀에게 도피할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스륵!”성냥이 적린을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배준우는 지금 애써 화를 참고 있었고, 고은영은 당장에라도 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배준우가 물었다.“모른다고?”이 네 글자에 담긴 기세는 마치 지옥에서 온 사탄과 같아서 그녀는 저도 몰래 고개를 끄덕이려고 했다.하지만 배준우의 아우라에 눌린 그녀는 감히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고은영, 너 이렇게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었어?!”‘겁이 많은 데다가 거짓말까지?’배준우의 말투에 제대로 놀란 고은영은 울먹이며 말했다.“나 진짜 몰라요. 나 실장님 시켜서 지영이한테 물어보라고 하세요!”고은영은 머리가 복잡해졌다.하지만 확실한 건, 안지영이 그리 쉽게 인정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하여 그녀는 혹시라도 두 사람의 말이 달라질까 봐 말을 아꼈다. 그렇게 되면 정말 끝장이다.배준우는 예리하게 그녀를 노려봤다.고은영은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손을 서로 꼭 잡은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나 정말 모르는데.”차에는 온통 숨 막히는 압박감뿐이다.고은영은 더는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그녀를 바라보는 배준우의 눈빛은 점점 차가워졌으며, 고은영은 그 싸늘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은영은 배준우가 오늘은 쉽게 넘어가지 않을 거로 생각해 어떻게 안지영과
“배 안 불렀어요.”고은영은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단연 양고기 통구이였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불청객의 등장에 입맛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고은영의 말에 진씨 아주머니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럼, 대표님은요?”진씨 아주머니가 물었다.배준우의 말에 고은영은 머리를 쿠션에 박고 말했다.“안 와요.”‘옛사랑 찾으러 갔어요.’배준우의 옛사랑을 생각하면 고은영은 어이가 없었다.‘대표님의 안목으로 어떻게 이미월 같은 여자와 사랑했을까? 너무 질척대잖아!’진씨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국수 말아 드릴까요?”“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국수를 좋아한다. 게다가 국수도 맛있게 잘 말았다. 하지만 배준우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가장 자부했던 요리 솜씨를 배준우는 부인했다.진씨 아주머니는 부엌에 들어갔다.고은영은 얼른 휴대폰을 들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갑자기 나태웅의 말이 떠올랐다.안지영은 지금 아마 나태웅의 사무실에 있을 것이다.생각하던 그녀는 메시지를 보내보기로 했다.“지영아?”답장은 오지 않았다.안 봐도 훤했다, 지금 그녀는 나태웅의 사무실에 있다.지금 이 순간 동영그룹.안지영은 나태웅을 바라보며 저도 몰래 등을 곧추세웠다.“나 실장님 할 말이 뭐예요? 저 이렇게 나와 있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월급 차감 당해요.”말을 끝낸 안지영이 그제야 반응했다.‘내가 왜 나 실장님을 두려워해야지? 비록 나 실장님은 비서실 실장이지만 난 마케팅 부서잖아. 내 직속 상사도 아닌데.’나태웅은 안지영에게 쌀쌀한 눈빛을 보냈다.그녀는 비록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지만, 나태웅의 쌀쌀한 시선에 저도 몰래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퉁!”나태웅은 휴대폰을 사무용 책상에 던졌다.그러더니 음성 녹음을 들려주었다.“안지영 씨가 시켰습니다!”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자세히 들은 안지영은 등을 곧추세우더니 순간 온몸이 나른해졌다.‘아니지?
이 예리하고 쌀쌀맞은 반문은 안지영의 멘탈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애써 버티며 평온하게 말했다.“당연히 문제없죠.”“그래?”‘문제없다고? 말도 잘하네. 이 여자는 입이 무거운 거야, 아니면 사태의 엄중성을 모르는 거야?’“다시 한번 말하는데, 그 진단서의 확진자는 고은영 씨야.”나태웅은 아까보다 더 날카롭게 말했다.“은영이 맞아요. 근데 제가 잘못 적었어요.”나태웅은 안지영에게 예리한 눈빛을 보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그 눈빛에 안지영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 힘들었지만 애써 정신을 부여잡고 말했다.“우리 아빠가 그렇게 결혼을 강요하세요. 그래서 병원에 전화했는데, 이름을 잘못말했지 뭐예요? 의사 선생님이 아마 그래서 헷갈리셨나 봐요.”안지영은 진지하게 헛소리를 내뱉었다.나태웅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물잔을 들어 물을 마셨다.그의 시큰둥한 태도는 마치 안지영에게 ‘내가 그 개소리를 믿을 것 같아?’라는 말을 전하는 것 같았다.안지영은 제대로 놀랐다.아무리 나태웅은 그녀의 직속 상사가 아니니 두려워할 것 없다고 자기를 설득해 보지만 그다지 소용이 없는 것 같다.나태웅은 너무 철저한 사람이다. 그녀는 나태웅이 계속 이 일을 캐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결혼을 강요해서 암 진단을 받으려 했다가 거절당했다고?”“그러니까요. 암이라고 하면 결혼할 필요가 없잖아요.”안지영의 목소리는 점점 더 기어들어 갔다.거짓말을 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나태웅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런데도 회사는 계속 나오게 하시네?”“당연히 그만두라고 하시죠. 그런데 저한테 시간 많이 없으니 우리 아빠도 어쩔 수 없이 제 말 들어주시는 거예요.”나태웅은 어이가 없었다.안지영은 빨리 이 화제를 끝맺고 싶었지만 나태웅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차를 부순 건 이 이유 때문이야?”나태웅이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분명 질문인 것 같지만, 그의 어조는 이미 확신한 어조이다.그 말에 안지영은 더 놀랐다.그녀는 숨을 깊게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태현 씨는 량천옥이 언니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지.” 이 일은 병원에서도 크게 떠들썩하게 된 사건이라 나태현 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배준우는 고은영을 쳐다보며 이어서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나태현과 고은지의 거래가 량천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맞아요. 언니가 천락 그룹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 량천옥이 아직도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그 말투에 분노가 가득했어요.” 고은영은 고은지의 분노에 대해 말을 꺼내면서 마음속이 더욱더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나태현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고은영은 머릿속이 완전히 엉켜버렸다. 그녀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배준우도 지금은 완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준우 씨가 나태현 씨에게 언니와 한 거래가 무엇인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그리고 희주가 본인 딸인 걸 알고 지신혜 씨와 약혼도 할 건데 왜 언니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지도 물어봐 줘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고은영은 공포감을 느꼈다. 그녀는 고은지에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량천옥에 대해 강한 증오를 느끼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가 나태현 형에게 물어볼게. 너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언니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안 돼. 내가 먼저 나태현이랑 얘기하고 나서 말해.”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고은영이 말한 대로 지금은 최소한 나태현이 고은지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만든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럼 빨리 물어봐요.” “응, 알았어.”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그녀는 거대한 음모가 고은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윤은 밖에서 시간을 확인했고 배준우가 10분 내로 나오지 않으면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문득 고은영이 대문 쪽에서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에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진윤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은영이 가까워졌고 그녀는 진윤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큰오빠.” ‘큰오빠’라는 단 한 마디에 진윤의 마음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준우 찾으러 온 거야?” 고은영은 너무 오랫동안 뛰어왔는지 호흡이 가빠졌고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안에 있어요?” “응, 안에 있어. 지금은 들어가지 마.” “왜요?” 고은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진윤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나태웅이랑 얘기 중이야.” “네? 나태웅이요?” 그 이름이 나오자 고은영의 말투도 달라졌다. 그녀는 전에 나태웅과의 영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에게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가 최근 동안 안지영을 괴롭힌 일이 떠올랐다. 고은영과 안지영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안지영이 화가 나면 고은영도 같이 화를 내주었다. 진윤은 그녀가 나태웅을 언급할 때의 그 표정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나태웅을 싫어해?” “싫어해요!” 고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 전에 그녀가 배준우와의 일에 그렇게 괴로워했던 건 대부분 나태웅 탓이었다. 정말 그땐 너무 힘들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고은영은 그 당시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배준우는 이미 안에서 나왔다. 고은영을 보고 잠시 멈칫한 뒤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바로 왔어?” “준우 씨 찾으려고요. 급한 일이 있는데 전화도 안 받았잖아요.” 고은영은 불만을 섞어 말했다. 배준우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윤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나태웅이 혼자 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고요함은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그는 전화를 꺼내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전화는 바로 차단되었다. 그는 다시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사무실에서 안열은 겨우 안지영을 달래놓은 상태였다. 전화의 진동에 안열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안지영도 전화를 확인하고 또다시 통제불능이 되었다. 안열은 안지영이 또 움직일 것 같아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흥분하지 마요. 바로 차단할게요.” “받아요. 이 미친놈이 뭐라는지 봐야겠어요.” 안지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안열은 입꼬리를 떨구며 말했다. “그냥 받지 말죠?” 안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받아요!”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안지영의 말에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열은 안지영을 한 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지영 지금 옆에 있나요?” “없어요!” ‘없어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나태웅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뺏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욕하고 나씨 가문이 망하길 저주했다. 하지만 손을 뻗자마자 안열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한 마디만 전해줘요.” “말하세요.” “안지영은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 번째는 오늘 밤 킹덤 타운을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늘 밤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는 겁니다.” “이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마음을 바뀌었어요.” 안열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안지영은 분노에 가득 찼고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안열의 손을 떼며 전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태웅, 너 이 미친놈! 꿈도 꾸지 마!” “그래, 그럼 하늘 그룹이 네 손에서 얼마나 있을지 지켜보자고!” “너 이 자식, 내가 너의 조상을 건드렸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네!” 안열은 안지영의 욕설을 듣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주원에게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고?’ 배준우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너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뭐냐고?” 항상 사고가 명확하던 배준우가 지금은 나태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한 나태웅인데 지금 그를 보니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안지영이 하주원에게 손을 댄 문제를 신경 써야 하는 걸까? 그와 안지영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아직 명확히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나태웅은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달라고만 말했다. 배준우는 담배 한 개비를 던져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태웅은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했다. 그는 아직까지 안지영과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이가 틀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리석은 여자...!’ 만약 그때, 그녀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했다면 그는 결코 그녀가 배준우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준우의 사람들에게 의지하려 했었다.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뒤 물었다. “너는 안지영과 장선명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하주원 문제에서는 하주원을 도와주고 있잖아?” 그가 잠시 고심한 끝에 결국 핵심을 짚어냈다. “그건 전혀 다른 얘기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배준우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르다고?’ 원래는 명확하게 사고하는 배준우였지만 나태웅의 말에 혼란스러워졌다. 나태웅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주원 문제에서 안지영이 반드시 사과해야 해.” 이 말을 듣고 배준우는 머리가 아팠다. 나태웅은 이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배준우는 담배를 다 피운 후 천천히 말했다. “너는 이걸 두 가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들 세계에서는 이것은 분명히 한 가지 문제야.” “안지영은 도
방금 안열이 장선명더러 처리하라고 했을 때의 그 걱정은 이제 안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든 말든 지금은 나태웅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한편, 캘리포니아 반도의 한 장소에서는 배준우와 나태웅이 함께 있었고 진윤과 육범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달 만에 다시 모인 이들이 장선명이 아닌 나태웅을 부른 이유는 사실 그들 모두 나태웅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태웅을 불러내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육범수가 패를 내자 나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패를 툭 치며 말했다. “난 끝났어.” 배준우는 그의 얼굴을 보고 찡그리며 물었다. “방금 그 전화, 안지영이었지?” 방금 나태웅은 나가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안지영이었다. 배준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응.” “너 또 안지영 건드린 거야?” 사실 오늘 배준우가 여기 온 이유는 장선명의 부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장선명은 나태웅과 장씨 가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태웅이 이렇게 계속 안지영을 괴롭힌다면 일이 커질 것이다. 장선명은 본래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태웅의 이 일에 대해서는 배준우를 생각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지금 하주원의 문제도 있고 나태웅의 행동이 점점 더 미쳐 가는 상황이라 걱정이 컸다. 나태웅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육범수에게 말했다. “너 나한테 만 이천 원 줘야 돼.” 배준우는 말문이 막혔다. 육범수도 나태웅이 안지영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진윤은 본래 남의 일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성격이다. 본인의 가문 일도 충분히 골치 아팠기에 그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형이 얘기하잖아. 말 좀 해봐. 대체 안지영에 대해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지만 육범수는 달랐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이기에
안지영은 화가 나서 전화를 부수고는 바로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안열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앞으로 나가서 잡았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나태웅을 죽여야겠어요!” ‘아, 진짜 더는 참을 수 없어.’ 나태웅은 정말 죽어 마땅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손으로 그를 찢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대표님은 아직 근육도 제대로 안 키우셨잖아요. 나태웅을 찢어낼 힘이 있을까요?” 원래도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안열의 말에 더 화가 나버렸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더는 못 참겠어!’ 안열은 안지영이 방향을 잃고 분노만 가득한 상태를 보고 바로 말했다. “이건 결국 넷째 도련님께 말씀드려야 할 문제예요.” “또 장선명 씨더러 처리하라고요?” 장선명의 수법은 이미 잘 봤다. 그는 가장 잔인한 방법을 써서 그녀조차도 반응할 틈 없이 모든 것을 정리해버린다. 그래서 만약 이 문제를 장선명이 처리하면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일들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건, 안돼요!” 안지영은 손을 휙휙 내저었다. 장선명은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조건 밀어붙일 것이다. 그건 안 된다. “왜요?” “그거 기억 안 나요? 지난번에 장선명 씨가 그렇게 처리했을 때 그 몇 억을 가지고 나태웅을 미쳐버리게 만들었잖아요. 이제 나태웅은 진짜 미친 사람이에요.” 특히 지금 그의 행동들은 안지영 마음속에 그가 정말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라, 이 이유가 참 적합하네.’ 안열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안지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번에도 강하게 나가면 그 사람은 진짜 미칠거예요. 그럼 우리 모두 큰일 난다니까요!” “혹시 대표님은 무서운 건가요?” “무섭지 않아요. 그런 문제는 제가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안지영은 화가 나서 말투가 거칠어졌다. 아까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태웅의 집안까지 욕을 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이미 화가 나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해봐, 정말이야?” 다시 입을 열었고 그의 말투에는 위험한 기운이 감돌았다. 전화가 아니라 만약 눈앞에 있었다면 안지영은 나태웅이 자신을 바로 목 졸라 죽일 것 같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안지영!” “난 장선명 씨와 약혼한 상태야.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너는 네 사촌 걱정이나 해. 내가 너희 나씨 가문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보네. 여자는 불여우처럼 순수한 척, 남자는 정신병자에 하나도 좋은 게 없어. 그 뿌리가 다 썩었어!” 그녀는 작은 입술로 욕을 퍼부었다. 안열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이 저절로 떨렸다. 아까는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더니 지금은 완전히 미친 듯이 말하고 있었다. 안지영은 정말로 미친 듯이 화가 난 상태였다. “사과하라고? 대체 누가 누구한테 사과해야 하는 건데! 내 아버지는 아직 병원에 누워 있고 네 사촌은 와서 날 때렸는데 나더러 사과하라고? 너희 나씨 가문 집안 교육이 이 모양이야? 다 멍청이들이야?” 이제는 나태웅의 조상까지 욕을 먹었다. 안지영의 이 폭발적인 성격에 안열은 이제야 제대로 실감했다. 안지영은 욕하는 건 진짜 잘했다. 이제는 나씨 가문이나 하씨 가문, 심지어 그들의 조상까지도 욕을 먹었다. 그녀의 거침없는 욕설을 들으며 나태웅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갔다. 그리고 안지영의 입은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폭풍처럼 계속 퍼부어졌다. 한참 동안 욕을 쏟아내고 겨우 숨을 골랐다. “더 욕할 거야?” 그의 말투는 안지영의 폭발적인 분노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차갑고 차분했다. “하, 왜? 더 듣고 싶은 거야? 너...” “더 욕할 거 없으면 내일 병원에 같이 가자.” 그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냉랭했다. ‘젠장, 이 사람은 정말 사람 말을 못 알아듣나?’ “나더러 사과하라고? 생각도 하지 마! 꿈도 꾸지 마!” 꿈속에서도 사과할 일 없을 것이다. “그럼, 한 가지 말할 게 있어.” “뭔데
안지영과의 대화를 끝낸 후 고은영은 마침내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더 이상 불안하게 이리저리 쫓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안지영은 여전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고은영을 달래고 나서도 심장이 가라앉을 틈도 없이 나태웅의 전화가 집 전화로 걸려왔다. 그녀는 번호를 볼 수 없어서 그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틀 남았어.” 그 한 마디에 안지영의 화가 폭발했다. “뭐라는 거야?” “주원이에게 사과해!” 안지영은 입을 다물었다. ‘이 미친놈! 끝까지 이러는 거야?’ 만약 예전 같았으면 안지영은 그에게 말도 안 되는 반격을 했겠지만 지금은 화가 나서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다. 안열이 들어왔을 때 안지영은 얼굴이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배씨 부인 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안열은 안지영이 이렇게 감정적으로 불안한 이유가 결국 고은영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감정은 조금 달랐다. 안지영은 고은영으로 인해 말문만 막힐 정도였고 다른 사람 때문이라면 분명 엄청 화를 낼 것이다. “아니에요!” 사실 고은영에게 생긴 일도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녀의 세상은 너무나 복잡했고 고은영이 또 울기 시작할지도 몰랐다. 안열은 안지영의 목소리에서 누그러지지 않는 화를 느끼며 궁금해했다. 고은영이 아니라면 또 누가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인지 궁금했다. “그럼 도대체 무슨 일이죠?” “나태웅이 나더러 하주원에게 사과하라고 했어요. 이틀밖에 안 남았다면서요.” ‘이 사람이...!’ 나태웅에게 욕을 할 만큼 다 했는데도 그를 물리칠 수 없었다. 지금 안지영은 연달아 욕할 힘조차 없었다. 그의 존재를 설명할 만한 적절한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미친놈? 병신?’ 안열은 놀라며 물었다. “뭐라고요? 사과요?” ‘정말 이 사람 끝까지 그러는 거야?’ 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제가 왜 사과를 해야 하죠?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얼마 전 나태웅의 집착과 하주원
안지영은 잠시 침묵했다. 이렇게 큰일이면 분석하는 데 얼마나 큰 두뇌 용량이 필요할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고은영이 울려고 할 정도로 급해진 게 이해가 갔다. 자신이라도 정말 울고 싶을 정도였다. ‘이게 도대체 뭐야, 진짜?’ “그럼 나태현은 량천옥이 너희 언니의 친엄마라는 걸 알아?” “그건 나도 몰라.” 상황이 이미 너무 복잡해서 이젠 고은영조차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나태현과 고은지가 거래를 했다는 것만 봐도 그의 동기는 좀 의심스럽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이제 지신혜와 결혼을 약속했고 고은지를 천락 그룹에 다시 데려가려 했다. 그동안 고은지가 천락 그룹에서 일했던 전력도 있으니 나태현의 속셈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게 분명했다. 안지영은 고민하다가 말했다. “음, 난 네가 차라리 네 언니에게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지금 말해?” “그럼, 무조건 말해야지! 량천옥이 아무리 미워도 네 언니의 친엄마잖아.” 진실을 알게 된 후 고은지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녀의 자유다. 하지만 지금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 계속 숨기면 만약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고은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태현이 구희주의 아빠라는 사실은?” “그건, 생각 좀 해볼게!” ‘이건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말하지 말아야 할까?’ 안지영은 바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지금 일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태현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역시 나씨 가문 사람이야. 어쩜 다들 이렇게 나쁜 자식이지?’ 전에는 나태현이 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 보니 하나같이 나쁜 자식들이었다. “그래도 얘기하는 게 좋겠어!” 이렇게 큰일을 말 안 하면 나중에 얼마나 큰일로 번질지 알 수 없었다. 안지영은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었다. 그래서 고은영더러 고은지에게 모든 일들을 잘 설명해 주라고 말했다. 어차피 고은지는 지금 모든 결정을 내린 상황이었고 아무런 일도 모르는 전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