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지는 딱딱한 고은영의 말투를 듣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조보은과 서정우를 대할 때에만 이런 말투를 썼기 때문이다. "지금 엄마가 강성으로 가려고 하고 있어.""뭐?"조보은이 강성에는 무슨 일로 오려고 하는 것일까?그동안 고은지를 괴롭힌 걸로도 모자라 이제 고은영까지 괴롭히려고 드는 걸까?"은영아, 엄마가 그동안 너한테 미안한 일 많이 했다는 거 알아. 하지만 너도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조보은 같은 엄마를 둔 사실에 대해 고은지도 이제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고은지는 어렸을 때부터 조보은의 옆에서 자랐지만 할머니의 곁에서 자란 고은영보다도 못한 생활을 했다.할머니는 나이가 많아 생활이 고달팠지만 고은영에게는 다정하고 늘 사랑만 줬다.고은지는 강성으로 시집을 온 뒤에도 조보은에게 맞춰주기 위해 애썼다.사실 그녀가 강성으로 와 자신을 괴롭히지 않았으면 해서였다.그렇게 자기 뜻대로 살아온 조보은의 욕심은 날로 커졌다. 그리고 지금 고은영이 시집을 잘 갔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라도 놓치는 게 있을까 봐 강성으로 오려는 것이었다.하지만 고은영은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그녀는 이미 마음속으로 조보은과의 관계를 끊어버린지 오래였다. 그랬기에 조보은이 강성으로 오려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그녀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오라고 해, 내가 해결할테니."고은영이 눈을 감았다 뜨더니 깊게 숨을 들이켰다."하지만 배 대표님 그쪽…"고은지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배준우 얘기가 나오자 고은영도 머리가 아프긴 했다.배준우가 귀찮은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고은영과 결혼한 것도 귀찮은 일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그런데 지금…하지만 강성으로 오겠다고 하는 조보은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돈 몇백만 원을 보내는 것으로 조보은을 잠재울 수는 있었지만 그것도 소용은 없다.지금 이렇게 지나간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또 난리를 피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엄마
고은영이 고열 상태에서 얼마나 있었던 건지 몰라 배준우는 몇 번이나 그녀에게 약을 먹이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마지막에 약을 모두 그녀의 입에 넣었지만 고은영이 모두 토해내고 말았다.결국 배준우는 다시 의사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의사는 이런 상황에서 제일 좋은 방법은 물리적으로 열을 내리는 것이라고 했다.의사의 말을 들은 배준우가 열 때문에 빨개진 얼굴을 한 고은영을 보며 이마를 짚었다. 그는 고은영과 결혼한 것이 조금 후회되었다.예전의 그녀는 이렇게 허약해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왜 툭하면 병에 걸려 사람을 괴롭히는 것인지."제가 병원으로 데리고 갈까요?""열만 내리면 병원에 갈 필요 없습니다, 링거를 계속 맞아도 몸에 안 좋으니까요.""네, 알겠습니다."배준우가 짜증스레 전화를 끊고 약을 먹이느라 더러워진 고은영의 옷을 벗겼다. 하지만 전에 그녀의 열을 내려주겠답시고 나섰다가 오히려 감기에 걸리게 했던 것이 갑자기 생각나 다시 그녀를 안아 들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다시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준 그가 조금 뜨거운 물을 들고 왔다.뜨거운 수건이 지나간 피부의 온도가 순식간에 내려갔다.그리고 고은영의 아랫배를 스쳐 지나가던 배준우는 왠지 모르게 그녀의 배가 조금 나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은영도 살이 찌는 사람이었다니."악…"그때 고은영이 갑자기 고통스러운 소리를 냈다.배준우는 고은영이 깨어나려는 줄 알고 얼른 손을 거두었다.하지만 고은영은 열이 조금 내린 덕분에 편안해졌는지 자세를 바꿔 다시 자기 시작했다.밖으로 드러난 새하얀 그녀의 등을 본 배준우가 고은영을 욕하며 이불을 덮어줬지만 다음 순간, 고은영이 이불을 걷어찼다.그리곤 이불 위로 다리를 척 올려놓았다. 그 모습에 배준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하지만 곧 그가 다시 이불을 끌어와 고은영에게 덮어줬다.배준우가 고은영의 몸을 네 번이나 닦아주고 나서야 그녀의 체온이 조금 안정되었다.시간은 벌써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배준우도 참지 못하고 고은영 옆
"조금만 더 자자."배준우가 고은영을 다독이며 말했다.하지만 고은영은 배준우의 다정함에 더욱 혼란스러워졌다.배준우는 고은영이 몸을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열이 내린 그녀의 얼굴을 만지다 그녀를 놓아줬다."가서 옷 입어."배준우는 최대한 고은영을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고은영은 그런 배준우의 마음을 알 리가 없다.자유로움을 얻자마자 고은영이 미친 것처럼 침대에서 뛰어내리더니 재빨리 방을 나갔다.한편 거실을 치우고 있던 진 씨 아주머니께서는 방에서 나온 고은영을 마주치자마자 살짝 놀랐다.고은영도 아주머니께서 이렇게 일찍 올 줄은 몰랐기에 순식간에 얼굴을 붉히며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하고 자신의 방으로 도망쳤다.혼자가 되고 나서야 고은영은 날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한참을 진정시켰다.고은영이 옷을 다 입었을 때, 그녀의 휴대폰이 진동했고 배준우가 보낸 메시지가 도착했다."따뜻한 물로 샤워해. 옷 갈아입고, 아침도 꼭 먹고."명령과도 같은 메시지를 확인한 고은영이 엉뚱한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샤워를 하라니, 왜 자신에게 샤워를 하라고 하는 것일까? 배준우는 도대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수없이 이어지는 물음에 고은영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결국 화장실 안으로 들어선 고은영은 거울 앞에 서서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저번처럼 의심이 갈만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고은영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한 시간 뒤, 고은영은 다소 보수적인 옷을 입고 주방에 나타났다. 그 모습은 마치 누군가를 경계하고 있는 것 같았다.진 씨 아주머니는 이미 집을 전부 청소했다."왜 그렇게 멀리 앉은 거야?"배준우가 자신의 앞에 앉은 고은영을 보며 물었다.긴 식탁을 가운데 두고 맞은편에 앉아있으니 두 사람의 거리가 확실히 멀었다.고은영은 접시에 머리를 박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배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고은영을 보더니 표정이 굳었다."이리 와서 앉아.""배, 배 대표님.""이리 와."배준우가 조
배준우는 회사에 가기 전까지 고은영에게 계속 오늘 집에 있으라고 당부했다.고은영도 배준우의 말에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배준우가 나서자마자 본가의 집사님께서 하원 별장으로 왔다."회장님께서 도련님을 데리고 오지 못하면 고은영씨라도 데리고 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집사가 고은영에게 말했다.전에 배준우 본가의 사람들은 전부 고은영의 출신을 얕잡아 봤었지만 지금은 배준우가 두려워 고은영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배준우가 고은영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그들이 모두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그랬기에 집사도 고은영에게 공손하게 말했다.고은영은 배항준 회장님께서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얘기를 듣곤 고민에 빠졌다.그때, 진 씨 아주머니께서 집사에게 다가가 말했다."그건 조금 곤란할 것 같습니다. 사모님께서 어제 열이 나셔서 도련님께서 저한테 약을 달이라고 했거든요. 그리고 사모님께도 오늘 나가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그 말을 들은 집사가 조금 난감한 얼굴로 고은영을 바라봤다.그 표정을 보니 배항준이 집사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고은영을 데리고 오라고 한 것 같았다.배준우를 데리고 가든 고은영을 데리고 가든 집사는 둘 중 한 사람을 무조건 데리고 가야 했다.배준우가 어떤 성질인지 집사는 잘 알고 있었기에 차마 동영 그룹으로는 가지 못하고 하원 별장으로 와 고은영을 데려가려고 했다.그때 고은영은 배준우가 어제 말했던 상금이 생각났다."제가 갔다가 오기만 하면 되는 거죠?"집사는 그 말을 듣더니 웃으며 대답했다."당연하죠, 제가 직접 다시 여기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하지만 진 씨 아주머니께서 고은영을 막았다."안 돼요, 사모님. 병원은 바이러스가 많은 곳이에요. 어제 열도 나셨는데 도련님께서 이 사실을 알면 분명 화내실 겁니다."진 씨 아주머니도 배준우의 성질을 잘 알고 있었다.그랬기에 늘 그의 말을 따라줬다. 고은영이 배준우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아주머니까지 피곤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은영은 진 씨 아주머니의 만류에도
고은영은 다음부터 배준우의 말을 잘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돈도 못 벌고 억울함을 혼자 삼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정말 보너스 안 주는 거예요?"고은영이 전화를 끊기 전, 다시 물었다.배준우는 조심스러운 그녀의 목소리를 듣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렸다.이 여자, 돈을 참 잘 밝힌단 말이지.분명히 무서워하면서도 이런 말을 물어보고 있으니, 역시 그녀의 두려움을 치유할 수 있는 건 돈밖에 없다고 배준우는 다시 생각했다. "한 시간 뒤에 데리러 갈게."배준우가 한결 풀린 목소리로 말했다.상금에 대해서는 준다는 말도 안 준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고은영은 그 말을 듣더니 억울함에 눈시울을 붉혔다.배준우는 아무 대답도 없는 그녀를 기다리다 다시 물었다."내가 데리러 가는데 싫어?"강성에서 배준우의 조수석에 앉고 싶어 하는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고은영은 배준우보다 1000만 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네, 그럼 빨리 오셔야 돼요."배항준 회장은 고은영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시간이 길어지면 그녀는 자신의 심장도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빨리 오라고 하는 고은영의 말을 들으니 배준우 마음속을 차지했던 불만이 조금 사라졌다."알았어."배준우와의 통화를 끝낸 고은영은 병원에 도착했다.그녀는 오는 길 내내 불안했다. 어제 배준우가 이 임무를 줬을 때, 그녀는 고액의 상금만 생각하고 자신이 배항준도 무척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었다.동영 그룹의 회장님이었던 배항준은 아직도 위엄이 가득했다.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이 임무를 받을 생각을 한 것인지 순간 후회스러웠다. 고은영은 생각할수록 긴장 되어 손에 땀이 찼다.그리고 VIP 병실이 있는 층에 도착했을 때, 집사가 고은영을 데리고 배항준의 병실로 들어갔다.병실에는 량천옥도 있었다. 그리고 나이가 이제 쉰이 되어 보이는 여자와 젊은 여자 하나도 있었다.량천옥은 고은영을 보자마자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전에 고은영을 만나 당했던 것들이 기억난 듯했다."사모님, 들어가
고은영을 바라보는 배항준의 눈빛도 더욱 날카로워졌다.그리고 콧방귀를 뀌더니 다시 말했다."눈치가 있으니 이제 네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겠지? 저 카드 가지고 꺼져."집사까지 보내 자신을 병원까지 데리고 온 이유가 배준우의 곁을 떠나게 하기 위해서였다니.배항준의 말을 들은 량천옥의 표정이 득의양양해졌다.전에 그렇게 당당하게 굴던 고은영이 배항준을 보자마자 고양이를 만난 쥐처럼 굴고 있었기 때문이다.동영 그룹은 지금 배준우의 것이지만 그 누구도 감히 배항준을 무시할 수 없다.배항준만 나선다면 그녀는 고은영이 얌전하게 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고은영은 자신을 협박하는 배항준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건 조금 힘들 것 같은데요."고은영의 말을 들은 량천옥과 배항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옆에 있던 젊은 여자도 놀란 눈으로 고은영을 바라봤다.고은영이 지금 배 회장님을 거절한 것인가?강성에서 그 누구도 배항준 회장님을 거절하지 못한다.그런데 고은영이 감히 그를 거절하다니?배항준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져 고은영에게 따져 물었다. "지금 감히 뭐라고 했어?"고은영은 그 기세에 눌려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제가 떠나게 하려면 일단 배준우한테 말씀해 보셔야 해요.""배준우한테 말했음 우리가 너한테까지 찾아왔겠어?"량천옥이 화가 나서 말했다.배항준은 입원을 한 뒤로 계속 배준우를 만나려고 했지만 배준우는 병원에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다.배항준은 다시 고은영을 바라봤다. 자신을 거절하는 고은영의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너, 너 정말…""어르신, 화내지 말고 진정하세요."배항준이 화가 나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것을 본 량천옥이 얼른 그를 다독였다.옆에 있던 젊은 여자도 배항준을 위로했다."아버님, 화내지 마세요. 몸 상해요.""지금 당장 배준우 그 자식 불러와!"배항준이 화가 나서 말했다.고은영은 그 말을 듣곤 놀라 몸을 떨었다. 그녀는 배항준이
이미월이 휴대폰을 들더니 다시 득의양양한 얼굴로 고은영을 바라봤다.그리고 속으로 이제 돌아왔으니 다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복도로 나와 배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고은영은 연애를 해본 적은 없었지만 자신에 대한 이미월의 적의와 배 씨 집사람들의 태도를 보며 은연중에 무언가를 깨달았다.머지않아, 복도에서 이미월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리고 휴대폰 너머의 사람이 뭐라고 했는지 모르지만 그녀가 다정하게 대답했다."응, 기다릴게.""준우 병원으로 온대?"이미월이 들어오자 량천옥이 물었다."네, 지금 병원으로 온대요."그 말을 들은 고은영은 생각에 잠겼다.배준우와 이 여자는 도대체 무슨 사이일까?설마 배준우의 첫사랑!? 그렇게 되면 200억이 금방 자신의 것이 되는 게 아닌가?그 생각을 하니 고은영은 기분이 좋아졌다.이미월이 다시 득의양양한 얼굴로 고은영을 바라봤지만 고은영은 그저 그녀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이미월이 고은영을 보던 시선을 거두더니 다시 배항준을 보며 말했다."아버님, 준우 이제 온다고 하니까 화내지 마세요. 네?""그래, 그래도 미월이가 철이 들었구나. 너도 그래, 왜 외국에 그렇게 오랫동안 있어서 준우가 다른 여자랑 결혼하게 만든 거야?!"고은영은 그 말을 듣자마자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미월이 정말 배준우의 첫사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곧 배준우가 이런 여자를 좋아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고은영은 처음으로 그의 안목에 의심을 품었다."아버님~"이미월이 애교 가득한 목소리로 배항준을 불렀다. 그녀는 배 씨 집안사람들의 인정을 받아 잔뜩 신이 난 듯했다."저는 이제 가봐도 될까요?"그때 고은영이 물었다.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그녀 때문에 사라졌다.고은영의 말을 들은 량천옥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쏘아보더니 다시 배항준에게 말했다."제가 고은영이랑 다시 얘기해 볼게요.""그래."배항준이 고은영을 보고 싶지 않다는 듯 그녀에게 등을
량천옥은 정말이지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이게 도대체 무슨 반응인지. 남편인 배준우의 첫 여자가 이미월이라는 얘기를 듣고도 고작 저런 반응밖에 안 보이다니.량천옥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렇게 상대하기 힘든 사람은 고은영이 처음이었다.고은영은 그녀와 상극인 듯했다."물어볼 필요 있어? 그럴 마음이 없었다면, 방금 전 미월이가 전화했을 때 바로 오겠다고 했겠어?""그렇긴 하네요, 그럼 저는 배준우의 말에 따를게요."배준우에게 묻겠다니, 고은영은 모든 것을 배준우에게 선택권을 줬다. 그녀는 정말 배준우의 마음속에 누가 있든지 상관없는 걸까?량천옥은 이것을 계기로 고은영을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고은영에게 하나도 먹히지 않았다.그녀를 상대하기엔 정말 너무 힘들었다.이미월이 무언가를 더 말하려던 찰나, 병실 안에서 시끄러운 경고음이 들려왔다.그리고 량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항준아, 항준아! 의사, 어서 의사 불러와!"그 목소리를 들은 량천옥이 병실로 뛰어 들어갔다.의사들도 병실로 모여들어 순간, 병실은 어지러워졌다."어르신, 어르신 왜 그래요? 정신 차려봐요, 제발!! 나 혼자 버려두고 떠나지 마."량천옥이 소리쳤다.몇 분 뒤, 배항준을 실은 침대가 응급실로 옮겨졌다.고은영은 그 모습을 보곤 차가운 벽에 몸을 기대었고 배준우는 도착하자마자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그리고 고은영이 반응하기도 전에 량일이 화가 난 얼굴로 고은영을 욕하기 시작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 아무리 불만이어도 그렇지 항준이한테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아직 아픈 사람한테 그런 말을 하면 어쩌자는 거야?!""제가 뭐라고 했는데요?"고은영도 갑자기 화가 났다.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그녀는 배준우가 한 말을 따랐을 뿐인데 왜 이렇게 된 건지? 그녀는 자기 탓을 하는 눈앞의 이들이 이해되지 않았다.하지만 량일은 고은영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항준이가 너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해도 지금 이렇게 화가 나게 해서는 안 되지, 그래도 준우 아빠
방금 안열이 장선명더러 처리하라고 했을 때의 그 걱정은 이제 안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든 말든 지금은 나태웅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한편, 캘리포니아 반도의 한 장소에서는 배준우와 나태웅이 함께 있었고 진윤과 육범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달 만에 다시 모인 이들이 장선명이 아닌 나태웅을 부른 이유는 사실 그들 모두 나태웅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태웅을 불러내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육범수가 패를 내자 나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패를 툭 치며 말했다. “난 끝났어.” 배준우는 그의 얼굴을 보고 찡그리며 물었다. “방금 그 전화, 안지영이었지?” 방금 나태웅은 나가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안지영이었다. 배준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응.” “너 또 안지영 건드린 거야?” 사실 오늘 배준우가 여기 온 이유는 장선명의 부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장선명은 나태웅과 장씨 가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태웅이 이렇게 계속 안지영을 괴롭힌다면 일이 커질 것이다. 장선명은 본래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태웅의 이 일에 대해서는 배준우를 생각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지금 하주원의 문제도 있고 나태웅의 행동이 점점 더 미쳐 가는 상황이라 걱정이 컸다. 나태웅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육범수에게 말했다. “너 나한테 만 이천 원 줘야 돼.” 배준우는 말문이 막혔다. 육범수도 나태웅이 안지영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진윤은 본래 남의 일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성격이다. 본인의 가문 일도 충분히 골치 아팠기에 그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형이 얘기하잖아. 말 좀 해봐. 대체 안지영에 대해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지만 육범수는 달랐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이기에
안지영은 화가 나서 전화를 부수고는 바로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안열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앞으로 나가서 잡았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나태웅을 죽여야겠어요!” ‘아, 진짜 더는 참을 수 없어.’ 나태웅은 정말 죽어 마땅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손으로 그를 찢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대표님은 아직 근육도 제대로 안 키우셨잖아요. 나태웅을 찢어낼 힘이 있을까요?” 원래도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안열의 말에 더 화가 나버렸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더는 못 참겠어!’ 안열은 안지영이 방향을 잃고 분노만 가득한 상태를 보고 바로 말했다. “이건 결국 넷째 도련님께 말씀드려야 할 문제예요.” “또 장선명 씨더러 처리하라고요?” 장선명의 수법은 이미 잘 봤다. 그는 가장 잔인한 방법을 써서 그녀조차도 반응할 틈 없이 모든 것을 정리해버린다. 그래서 만약 이 문제를 장선명이 처리하면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일들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건, 안돼요!” 안지영은 손을 휙휙 내저었다. 장선명은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조건 밀어붙일 것이다. 그건 안 된다. “왜요?” “그거 기억 안 나요? 지난번에 장선명 씨가 그렇게 처리했을 때 그 몇 억을 가지고 나태웅을 미쳐버리게 만들었잖아요. 이제 나태웅은 진짜 미친 사람이에요.” 특히 지금 그의 행동들은 안지영 마음속에 그가 정말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라, 이 이유가 참 적합하네.’ 안열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안지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번에도 강하게 나가면 그 사람은 진짜 미칠거예요. 그럼 우리 모두 큰일 난다니까요!” “혹시 대표님은 무서운 건가요?” “무섭지 않아요. 그런 문제는 제가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안지영은 화가 나서 말투가 거칠어졌다. 아까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태웅의 집안까지 욕을 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이미 화가 나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해봐, 정말이야?” 다시 입을 열었고 그의 말투에는 위험한 기운이 감돌았다. 전화가 아니라 만약 눈앞에 있었다면 안지영은 나태웅이 자신을 바로 목 졸라 죽일 것 같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안지영!” “난 장선명 씨와 약혼한 상태야.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너는 네 사촌 걱정이나 해. 내가 너희 나씨 가문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보네. 여자는 불여우처럼 순수한 척, 남자는 정신병자에 하나도 좋은 게 없어. 그 뿌리가 다 썩었어!” 그녀는 작은 입술로 욕을 퍼부었다. 안열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이 저절로 떨렸다. 아까는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더니 지금은 완전히 미친 듯이 말하고 있었다. 안지영은 정말로 미친 듯이 화가 난 상태였다. “사과하라고? 대체 누가 누구한테 사과해야 하는 건데! 내 아버지는 아직 병원에 누워 있고 네 사촌은 와서 날 때렸는데 나더러 사과하라고? 너희 나씨 가문 집안 교육이 이 모양이야? 다 멍청이들이야?” 이제는 나태웅의 조상까지 욕을 먹었다. 안지영의 이 폭발적인 성격에 안열은 이제야 제대로 실감했다. 안지영은 욕하는 건 진짜 잘했다. 이제는 나씨 가문이나 하씨 가문, 심지어 그들의 조상까지도 욕을 먹었다. 그녀의 거침없는 욕설을 들으며 나태웅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갔다. 그리고 안지영의 입은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폭풍처럼 계속 퍼부어졌다. 한참 동안 욕을 쏟아내고 겨우 숨을 골랐다. “더 욕할 거야?” 그의 말투는 안지영의 폭발적인 분노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차갑고 차분했다. “하, 왜? 더 듣고 싶은 거야? 너...” “더 욕할 거 없으면 내일 병원에 같이 가자.” 그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냉랭했다. ‘젠장, 이 사람은 정말 사람 말을 못 알아듣나?’ “나더러 사과하라고? 생각도 하지 마! 꿈도 꾸지 마!” 꿈속에서도 사과할 일 없을 것이다. “그럼, 한 가지 말할 게 있어.” “뭔데
안지영과의 대화를 끝낸 후 고은영은 마침내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더 이상 불안하게 이리저리 쫓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안지영은 여전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고은영을 달래고 나서도 심장이 가라앉을 틈도 없이 나태웅의 전화가 집 전화로 걸려왔다. 그녀는 번호를 볼 수 없어서 그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틀 남았어.” 그 한 마디에 안지영의 화가 폭발했다. “뭐라는 거야?” “주원이에게 사과해!” 안지영은 입을 다물었다. ‘이 미친놈! 끝까지 이러는 거야?’ 만약 예전 같았으면 안지영은 그에게 말도 안 되는 반격을 했겠지만 지금은 화가 나서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다. 안열이 들어왔을 때 안지영은 얼굴이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배씨 부인 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안열은 안지영이 이렇게 감정적으로 불안한 이유가 결국 고은영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감정은 조금 달랐다. 안지영은 고은영으로 인해 말문만 막힐 정도였고 다른 사람 때문이라면 분명 엄청 화를 낼 것이다. “아니에요!” 사실 고은영에게 생긴 일도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녀의 세상은 너무나 복잡했고 고은영이 또 울기 시작할지도 몰랐다. 안열은 안지영의 목소리에서 누그러지지 않는 화를 느끼며 궁금해했다. 고은영이 아니라면 또 누가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인지 궁금했다. “그럼 도대체 무슨 일이죠?” “나태웅이 나더러 하주원에게 사과하라고 했어요. 이틀밖에 안 남았다면서요.” ‘이 사람이...!’ 나태웅에게 욕을 할 만큼 다 했는데도 그를 물리칠 수 없었다. 지금 안지영은 연달아 욕할 힘조차 없었다. 그의 존재를 설명할 만한 적절한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미친놈? 병신?’ 안열은 놀라며 물었다. “뭐라고요? 사과요?” ‘정말 이 사람 끝까지 그러는 거야?’ 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제가 왜 사과를 해야 하죠?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얼마 전 나태웅의 집착과 하주원
안지영은 잠시 침묵했다. 이렇게 큰일이면 분석하는 데 얼마나 큰 두뇌 용량이 필요할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고은영이 울려고 할 정도로 급해진 게 이해가 갔다. 자신이라도 정말 울고 싶을 정도였다. ‘이게 도대체 뭐야, 진짜?’ “그럼 나태현은 량천옥이 너희 언니의 친엄마라는 걸 알아?” “그건 나도 몰라.” 상황이 이미 너무 복잡해서 이젠 고은영조차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나태현과 고은지가 거래를 했다는 것만 봐도 그의 동기는 좀 의심스럽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이제 지신혜와 결혼을 약속했고 고은지를 천락 그룹에 다시 데려가려 했다. 그동안 고은지가 천락 그룹에서 일했던 전력도 있으니 나태현의 속셈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게 분명했다. 안지영은 고민하다가 말했다. “음, 난 네가 차라리 네 언니에게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지금 말해?” “그럼, 무조건 말해야지! 량천옥이 아무리 미워도 네 언니의 친엄마잖아.” 진실을 알게 된 후 고은지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녀의 자유다. 하지만 지금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 계속 숨기면 만약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고은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태현이 구희주의 아빠라는 사실은?” “그건, 생각 좀 해볼게!” ‘이건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말하지 말아야 할까?’ 안지영은 바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지금 일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태현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역시 나씨 가문 사람이야. 어쩜 다들 이렇게 나쁜 자식이지?’ 전에는 나태현이 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 보니 하나같이 나쁜 자식들이었다. “그래도 얘기하는 게 좋겠어!” 이렇게 큰일을 말 안 하면 나중에 얼마나 큰일로 번질지 알 수 없었다. 안지영은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었다. 그래서 고은영더러 고은지에게 모든 일들을 잘 설명해 주라고 말했다. 어차피 고은지는 지금 모든 결정을 내린 상황이었고 아무런 일도 모르는 전제
어떤 실수는 한 번 저지르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예전에 량천옥은 악행을 저지르며 두려움 없이 살아왔고 아무런 후회도 없었다. 그 누구도 그녀에게 아무런 방법을 쓰지 못했으며 그녀는 자신이 어떤 대가를 치를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그때는 아무도 그녀에게 손을 쓸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런 강력한 여자가 자발적으로 모든 심판을 받겠다고 결심했다. “나태현이 구희주가 자신의 딸인 걸 알았다고 했지?” 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량천옥은 눈을 떴고 그녀의 눈빛은 이제 완전히 맑아졌다. 그리고 그 안에는 강한 분노와 증오가 서려 있었다. 구희주가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약속하고 자신과 고은지를 거래로 고은지를 자신의 곁에 두려고 하다니. 도대체 그는 무엇을 하려는 걸까? 이 모든 상황은 나태현의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량천옥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알았다. 이 일은 내가 처리할게.” 그녀는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자신의 딸, 고은지는 여전히 그녀를 증오하고 있으며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온몸에서 풍기는 슬픔은 과거 그녀의 손에 고통받았던 고은영조차도 압도할 정도였다. 결국, 두 사람은 어떻게 헤어졌는지 모르겠다. 고은영은 원래 배준우를 만나러 가려고 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안지영을 찾게 되었다. 안지영은 본래 회의를 가려고 했지만 고은영이 찾아오자 30분을 미뤘다. “왜 이렇게 걱정이 많아 보여? 배준우가 너 괴롭혔어?” 고은영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지영아, 내 뇌가 부족한 것 같아.” 안지영은 웃으며 말했다. “너 뇌가 부족한 건 항상 있는 일 아니었어?” 그녀는 장난스럽게 고은영을 놀리며 말했다. 하루 이틀 있는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죽상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고은영이 이 말을 듣고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 순간, 고은지는 예전과는 다른 집요함을 보였다. 나태현이 그녀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그것이 그녀를 이렇게 단단히 만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량천옥은 계속해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은영이 차에 올라타자마자 량천옥은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됐어? 은지가 왜 일을 하겠다고 했지? 돈은 줬어?” 량천옥은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고은지가 돈 때문에 일을 하러 간다고 믿고 있었다. 돈만 주면 고은지가 편안하게 몸을 회복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고은영은 그녀를 바라보며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언니가 천락 그룹에서 일하겠다고 했어요.” “뭐?” 고은지가 천락 그룹에서 일한다는 말을 들은 순간 량천옥은 숨이 막힐 정도로 놀랐다. 고은지가 예전에 천락 그룹에서 일했던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나태현이 고희주의 아버지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량천옥은 고은영을 바라보았다. “안 가면 안 돼?” “나태현이 언니와 거래를 한 것 같아요!” “무슨 거래?” 거래라는 말에 량천옥은 갑자기 경계심을 드러냈다. 남자와 여자가 거래를 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일까? 그녀는 몇 년 동안 배씨 가문에서 여러 가지 남자의 모습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속에 숨겨진 더러운 진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나태현이 지씨 가문과의 결혼 소식이 보도되었음을 알았다. ‘약혼도 한 마당에 고은지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오게 한다는 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결혼도 하기 전에 외도를 하겠다는 건가?’ 량천옥은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고은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결국엔 말을 꺼냈다. “나태현이 구희주의 아빠예요.” “뭐?” 량천옥은 고은영의 말을 듣고 잠시 말문이 막혔다. 구희주의 아빠라니, 그 말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구희주가 우울증에 걸린 이유는 자신이 조영수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학교의 아이들은 그녀를 그 문제로 계속해서 괴롭혔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나태현이.
한때, 고은지는 딸과 함께 평범한 삶을 살기를 바랐다. 평온한 삶을 원했기 때문에 이혼 후에는 열심히 일하고 아이와 함께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짧은 평화는 결국 깨지고 말았다. 구희주는 조영수의 딸이 아니었고 그로 인해 일련의 문제가 발생했다. 사회적 편견에 의해 아이는 우울증에 시달렸고 결국 식물인간이 되어 이곳에 누워 있다. 그런 간단한 소망들이 결국은 격렬한 증오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언니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뭐야? 언니 소원이 뭔지 말해봐. 내가 도와줄게...” “은영아!” 고은영의 말을 끝내기도 전에 고은지는 차갑게 소리쳤다. 고은영은 잠시 말을 멈추고 고은지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고은영에게는 고은지의 눈에서 날카로운 분노가 드러나는 것을 보았다. 한때, 고은지의 눈에는 세상의 고단함과 부드러움만이 담겨 있었지만 지금은 그 속에서 마치 늑대처럼 야수적인 기운이 풍기고 있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변화에 고은영은 숨이 막혔다. “나태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태현이 언니에게 무슨 말을 했어?” 고은영은 궁금해했다. 왜 고은지가 이렇게 갑자기 변했는지, 왜 이렇게 두려운 변화가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고은지는 대답하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희주의 일, 정말 량천옥에 대한 아무런 증거도 없어?” 고은영은 순간 숨을 멈췄다. 고은지의 차가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가 여전히 자유롭게 돌아다니더라고?” 고은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고은지의 말속에서 느껴지는 분노가 너무 강해서 고은영은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다. 량천옥이 아직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어떻게 분노를 참을 수 있겠는가? 고은지의 마음속에서 량천옥은 분명히 지옥에서 천 갈래로 찢겨야 할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만약 그들 사이에 그런 관계가 없었다면 아마 고은영은 고은지에게 증거를 찾아준다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량천옥과 고은지 사이의 관계를 알게 된 후 고은영은 더 이
량천옥은 생각을 거듭한 끝에 결국 가방에서 카드를 꺼내 고은영에게 건넸다. “이게 뭐죠?” 고은영은 물었다. “안에 2억 원이 들어있어. 고은지에게 전해줘.” 결국 그녀는 조금씩 무심해졌다. 고은지는 지난 몇 년 동안 조영수와 결혼한 뒤 좋은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이혼한 후에도 제대로 된 직장이 없었고 지금은 구희주를 돌봐야 하니까 돈이 얼마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은영은 찡그린 채로 카드를 바라보았다. 량천옥은 그것을 고은영의 손에 강제로 쥐여주었다. “너는 똑똑한 아이니까 분명히 은지에게 잘 전달할 방법이 있을 거야.” 고은영은 카드를 잠시 들고 있던 손으로 다시 한번 확인한 뒤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요.” 량천옥의 돈을 받는 것에 대해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는 고은지를 보상해야 했기 때문이다. 고은영이 카드를 받은 것을 본 량천옥은 약간 마음이 놓였다. 그동안 량천옥이 어떻게 지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병원에서 고은지가 고통받는 모습을 볼 때마다 량천옥은 그 자리에 자신이 누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함께 란완리조트에 도착했다. 고은영이 차에서 내릴 때 량천옥은 차 안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고은영은 고개를 돌려 바라봤고 량천옥은 입가에 쓴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나는 안 올라갈 거야.” 지금 그녀가 올라가면 모든 일이 설명이 안 될 것 같았다. 고은지가 자신을 보고 화를 내고 미워할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두려웠다. 자신의 딸의 눈에서 자신을 향한 증오를 보고 싶지 않았다. 고은영은 량천옥의 뜻을 이해하고 더 이상 강요하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혜나는 고은영이 돌아오자 정중히 다가가며 말했다. “사모님.” “언니는요?” “희주 아가씨의 병실에 있어요.” 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구희주의 병실에 도착했을 때 문을 열자마자 고은지가 혼자 병상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어제와 똑같은 자세로 조용히 구희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