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이 화목한 모녀상봉을 연기하려 한다면 나도 같이 연기하는 수밖에.’도예나는 서영옥에게 안긴 채로 가만히 서있다가 한참 뒤에야 상대를 밀어내고 서러운 듯 입을 열었다.“어머니, 저도 보고 싶었어요…… 지난 4년간 밖에서 이리저리 떠돌면서 집 없이 이리저리 전전할 때 어머니가 저한테 준 보살핌이 늘 생각났어요…… 이제 돌아왔으니 앞으로도 계속 저 사랑해 주실 거죠?”‘멍청한 계집 같으니라고. 역시나 4년 전처럼 관심만 가져주면 그게 자기를 해치는 함정인 줄도 몰고 뛰어드네. 이렇게 멍청해가지고 복수하겠다고? 흥! 어림도 없지!’서영옥은 모든 게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으쓱했다.하지만 표정으로는 더욱 자애로운 어머니를 연기하며 도예나의 손을 맞잡았다.“당연하지. 엄마는 널 언제나 친딸이라고 생각했어. 네가 무슨 잘못을 하든 사랑해 줄 거야.”그리고 곧바로 그녀의 손을 잡고 집안으로 들어갔다.집안에는 커다란 원형 밥상에는 벌써 몇몇 친척들이 앉아있었는데 도예나의 둘째 삼촌과 셋째 삼촌 그리고 도진호가 이미 도예나의 할머니의 오른쪽에 차례로 앉아있었다.서영옥은 도예나의 손을 잡고 어르신의 왼쪽에 자리 잡았다.오랜만에 보는 할머니의 모습에 도예나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꾹 억눌렀다. 그리고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할머니, 저 왔어요.”어르신은 감격에 겨워 손을 부들부들 떨더니 도예나의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잘 돌아왔어…… 잘 돌아왔어…….”오랜만에 만났지만 돌아오는 말은 이 한마디뿐이었다.순간 도예나의 마음은 차갑게 식었다.하지만 그녀는 할머니가 이러시는 게 이해됐다.그녀가 사라졌던 것도 벌써 4년 전 일이었고 그때 그렇게 잔인한 방법으로 도씨 가문을 나간 것도 모자라 그간 서영옥이 할머니 곁에서 이간질했을 걸 생각하면 백번 이해됐다.‘아마 할머니도 4년 전 집에 불을 낸 게 나라고 생각하시겠지? 게다가 혼전임신으로 가문의 명성에 먹칠했으니…….’만약 할머니가 그 사실을 그녀가 한
역시나 도설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친척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4년 전의 그 화재 때문에 도 씨 저택이 불탄 것도 모자라 몇백억을 호가하는 물건이 타버렸었다.그 피해로 인해 도씨 가문은 2년간 죽기 살기로 노력한 끝에 겨우 다시 회복했다. 심지어 그 사고로 인해 도씨 가문 모든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때문에 그때 도예나가 “죽은 사람”이었지만 친척들은 도예나를 입에 담을 때마다 이를 갈곤 했었다.그런데 그때 일을 다시 끄집어 내니 사람들의 표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도예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일일이 눈에 새겨두고는 입꼬리를 올렸다.“저도 계속 묻고 싶었는데요 어머니. 제가 18살 성인식을 치르던 날 저한테 대체 뭘 먹인 거예요? 왜 그날 어머니가 준 술을 마신 뒤로 쓰러져서 깨어보니 호텔 침대에 있었던 거죠?”그 말에 서영옥의 표정은 어두워졌다.“나나야, 너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니?”“할머니도 아시잖아요. 저 평소에 제멋대로이긴 해도 몸을 함부로 굴리는 애는 아니었다는걸.”도예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때를 떠올린 듯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저 아버지 때문에 창고에 갇혀 있는 8개월 동안 많은 걸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마지막 기억이 어머니가 준 그 술이었어요. 그 술을 마시고 난 뒤 제가 그런 일을 당했어요. 할머니 저 정말 일부러 그런 일을 벌인 게 아니에요…….”그 사이 서영옥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내가 그때 분명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았는데 저 년은 왜 자꾸 이 일을 입 밖에 꺼내는 거야? 이러면 노친네가 의심할 텐데. 내가 도씨 가문 사모님 자리에 어떻게 올랐는데? 게다가 곧 강현석 장모가 되어야 하는 몸인데 절대로 오점을 남기면 안 돼!’한참을 생각하던 서영옥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나나야. 너는 내가 가장 아끼는 딸인데 엄마가 어떻게 널 해치겠어? 그 일은 벌써 5년이나 지난 일이잖아. 우리 더 이상 떠올리지 말자. 너도 이제 돌아왔는데 앞으로가 중요하잖아. 앞
도예나의 두 눈은 순간 차가워졌다.서영옥은 그나마 자애로운 어머니인 양 연기라도 하는데 아버지는 오히려 이렇게 본성을 드러내다니.그녀는 도 씨 그룹 지분을 그렇게 쉽게 가져오지 못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아니, 염치없는 도 씨 가문 사람들이라면 절대로 그녀에게 지분을 돌려주지 않을 거다.하지만 그녀는 그런 도 씨 가문 사람들을 위해 생각해 줄 여유도 마음도 없었기에 입술을 깨물더니 불쌍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아버지, 후계자 신분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그런데 제 지분만 다시 돌려주면 안 돼요? 그건 제 어머니가 저에게 남겨준 유산이잖아요. 제 주인한테 돌아와야 하는 게 맞잖아요…….”도진호의 표정은 순간 어두워졌다.솔직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예나를 포기하기 아까웠는데 이제 보니 더 이상 남겨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4년 전 가문의 이름에 먹칠했을 그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그때 그 불길 속에서 타죽었어야 했어. 돌아오자마자 분란을 일으키다니. 절대 곁에 남겨 둬서는 안돼……’“나나의 말이 맞아.”하지만 그때 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던 어르신이 입을 열었다.“그 지분은 나나 것이니 다시 돌려줘야지.”“어머니!”서영옥은 더 이상 표정을 연기할 수 없었다.“지난 4년간 설혜가 회사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공헌을 해왔는데 예나가 돌아오니 이제 설혜는 아무것도 아닌가요? 제가 설혜편을 드는 게 아니라 기회는 공평해야 하잖아요. 나나든 설혜든 모두 도 씨 가문 딸인데 한쪽으로만 사랑이 기울면 안 되잖아요.”도예나는 서영옥이 뭐라 지껄이든 상관없었다. 오직 할머니가 이때 나서서 자기편을 들어줬다는 생각만 계속 맴돌았다.사실 그녀는 오늘 지분을 돌려받을 생각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이미 손에 넣은 걸 다시 돌려주고 싶어 하는 이는 없다. 그게 누구든.하지만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으니 그녀는 서영옥이 지분을 뱉어내게 해야만 했다.“어머니 말이 맞아요. 뭐든 공평을 따져야 하죠. 그러면 이건 어때요? 제 어머니 유산이지만 제가 선심 써서
도예나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오늘 반갑지 않은 사람들 얼굴을 보는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절반이나 되는 지분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다니 헛걸음은 아니었다.게다가 나머지 절반도 곧 가져올 거라고 자신하며 작게 웃었다.“설혜는 나랑 친자매나 다름없으니 고맙다는 인사는 생략할게.”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어르신은 만족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원래도 몸이 편찮았는데 갑자기 모든 긴장이 풀리자 몸 이곳저곳이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집사, 지분 양도 협의서 작성해서 가져와. 지금 당장 사인하게.”어르신은 헛기침을 하더니 엄숙한 목소리로 명령했다.어르신도 사실 자기가 얼마 버티지 못할 거라는 걸 은연중 짐작했다. 때문에 떠날 때 떠나더라도 집안의 문제는 제대로 해결해놓은 뒤 가고 싶었다.“할머니, 이렇게 급할 필요 있어요?”하지만 그 결정에 도설혜가 조급했는지 입을 열었다.“내일 사인해도 되잖아요.”“맞아요, 어머니. 이렇게 급하게 처리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오늘 어머니의 생신이신데 지분 양도는 내일 해도 늦지 않아요.”서영옥도 다급히 나서서 어르신을 말렸다. 두 사람의 행동에 어르신이 뭐라 말하려고 하던 그때, 문 어구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얘기 중인데 이렇게 시끌벅적한가요?”그리고 곧바로 훤칠한 남자 하나가 안으로 들어섰다.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는 마치 제왕 같은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조각 같은 얼굴과 깊은 아이홀 그 밑에 난 매서운 눈매 그리고 높은 코…… 그야말로 하늘이 빚어낸 완벽한 예술품 같았다.그 남자를 보는 순간 도설혜의 눈빛은 반짝 빛나는 동시에 무척 놀라운 듯했다.‘현석 씨가 여길 오다니…….’오늘 할머니의 칠순 잔치라 예의상 전화로 초대했는데 이렇게 직접 행차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지난 4년간 도 씨 가문에서 열리는 각종 파티에 몇 번이고 초대했건만 매번 거절하던 그였기에 이번에도 솔직히 큰 희망은 품이 않았다.그런데 희망을 버리니 이렇게 나타나 주다니. 그 강현석이 와주다니!도설
도설혜는 황급히 부인하며 도예나를 째려봤다. 이 시각 그녀는 도예나가 빨리 눈치껏 빠져줬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하지만 도예나의 행동은 그녀를 실망하게 했다.도예나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이제 보니 도 씨 가문이 강 씨 가문과 인연이 있는 건 확실하네. 그런데 강현석이 도설혜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단 말이지.’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강현석이 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 집까지 찾아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뭐 아무렴 어때? 도 씨 가문 사람들은 체면을 무엇보다 중요시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니 강현석 앞에서 제 얼굴에 먹칠하는 일은 하지 않겠지?’도예나는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강 대표님, 저희 방금 도 씨 그룹 지분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강 대표님도 오셨으니 마침 증인이 되어주면 되겠네요.”강현석은 흥미로운 듯 도예나를 바라봤다.“흠, 무슨 증인이요?”“나나야!”그때 서영옥이 약이 바싹 올라 도예나의 말을 가로챘다.“집안일을 남한테 말하면 비웃음 당해.”하지만 어르신이 갑자기 끼어들었다.“자네도 이제 우리 식구나 다름없는데 알 건 알아야지.”‘우리 식구나 다름없다고? 그게 무슨 뜻이지?’도예나는 이해하가 되지 않았다.그리고 고개를 드는 순간 도설혜가 멍하니 강현석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설마? 두 사람 약혼한 사이인가? 그래서 강 씨 그룹에서 얼마 전 도 씨 그룹을 도와줬던 거였어?’도예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눈을 내리깔더니 입을 열었다. “강 대표님이 도 씨 가문 사람이라면 이 증인은 할 수 없겠네요.”강현석이 도설혜의 약혼남이라면 당연히 도설혜의 편을 들게 뻔했다. 그러면 그녀도 입 아프게 그에게 시시비비를 가려달라고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하지만 강현석은 이 일에 흥미를 느꼈는지 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담담하게 말을 건넸다.“어르신,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저 강현석은 한 번도 도 씨 가문 사람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그건 도설혜 씨가 가장 잘 알 건데요.”도설혜는
도예나는 적절한 속도로 도 씨 그룹 지분 50퍼센트에 관한 일을 모두 얘기하고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강 대표님이 보시기에 제가 어머니의 유산인 지분을 돌려받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세요?”“아니요.”강현석은 덤덤하게 세 글자를 내뱉었다.그 말에 도설혜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현석 씨는 역시나 내 편이었어!’강현석의 이 말 한마디면 그녀는 지분 양도를 거절할 수 있었다. 아무리 할머니가 뭐라 하든 말이다.하지만 도예나의 낯빛은 반대로 어두워졌다.역시나 믿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하면서 반박하려고 하던 그때 강현석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도예나 씨, 제가 만약 당신이라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모든 지분을 가져왔을 겁니다. 어머니가 남긴 유산을 왜 남에게 반이나 나눠줘야 하죠?”남자의 말이 끝나자 도예나는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불합리하다는 게 이 뜻이었어? 그러면 내가 오해했잖아?’“현석 씨…….”하지만 그때 도설혜는 다른 의미로 놀랐다. 자기 편을 들 거라고 굳게 믿고 있던 사람의 싸늘한 대답에 도설혜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어떻게…….”그녀는 입을 뻐금 거리며 몇 번이고 말을 하려 했지만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내가 강 씨 가문을 위해 아들을 둘씩이나 낳아줬는데 어떻게 도예나 저년 앞에서 날 망신 줄 수가 있어?’강현석의 대답은 그녀의 기분을 하늘까지 솟게 했다가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하하!”그때 서영옥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분위기를 풀려고 애썼다.“강 서방, 자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데 우리 설혜와 예나가 얼마나 의좋은 자매라네. 그래서 예나가 반을 설혜한테 준 거고. 그러니 이건 두 자매 사이의 일이니 둘이서 해결하라고 하고 우리는 밥이나 먹자고. 몇 입 대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서 들게…….”여기서 계속 지분 얘기를 한다면 설혜 손에 있는 절반의 지분도 내놓아야 할 판국이었다.하지만 당황한 두 사람과는 다르게 어르신이 강현석에 대한 인상은 오히려 더 좋아졌다. “집사, 지분
어르신은 더 이상 앉아 있기 힘에 겨웠는지 집사의 손을 잡으며 일어섰다.그 모습을 본 도예나는 곧바로 함께 일어나 어르신의 손을 잡았다.“할머니, 제가 방까지 부축해 드릴게요.”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녀의 부축을 받으며 방으로 들어갔다.하지만 밖은 여전히 떠들썩했다.강현석이 처음 방문한 터라 식구들 모두 강현석과 도설혜의 혼인이 기정사실이라고 믿고 있었다.“요즘 영화가 상영됐다던데, 오후에 설혜와 함께 영화나 가보는 게 어떤가?”서영옥은 눈웃음을 치며 강현석에게 제안했다.“영화 한편 보고 나서 쇼핑도 좀 하고 시간 때맞춰 예쁜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 얼마나 좋아.”어머니의 부추김에 도설혜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현석 씨 오후에 바빠요. 영화 볼 시간이 어디 있다고 그래요.”“아무리 바빠도 여자친구와 데이트는 해야지.”둘째 숙모도 흥분해서 끼어들었다.“두 사람 벌써 연애한지도 4년이 되어가는데 결혼해야 하지 않겠어? 내가 말 많다고 귀찮아하지 말게. 설혜도 이제 혼기가 찼는데 더 미루다가 나이 들면 어떡하려고. 두 사람 결혼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하지만 한창 떠들던 그때 차가운 시선이 그녀를 스쳤다. 그 시선에 놀란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하려던 말을 도로 삼켰다.그 반응을 보고 나서야 강현석이 입꼬리를 올리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우선 저 여자친구 없고, 도설혜 씨와 결혼할 마음도 없어요. 그리고 도설혜 씨가 늙던 노처녀가 되던 저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그는 도설혜와 선을 그었다.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도설혜는 지금껏 강현석이 자기와 결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대놓고 말한 적은 없었다.게다가 사람들 앞에서 그녀를 무안하게 한 적도 없었다.그녀는 강 씨 가문 두 도련님의 어머니가 되면서 한순간 신분상승했고 그 명목으로 도 씨 가문에서 온갖 유세를 부리고 다녔는데 강현석의 말 한마디에 화려한 껍데기가 순간 벗겨진 기분이었다.분하고 쪽팔려 몸이
도예나가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려고 할 때, 조수석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강현석이 차에 올라탔다.마치 자기 차라는 듯 풀어진 모습으로 의자에 앉으며 제멋대로 구는 남자의 모습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강 대표님,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제 차가 고장 나서요. 바래다줘요. 어려운 일 아니잖아요.”의자에 기대 담담하게 말하는 강현석을 보자 도예나는 핸들에서 손을 뗐다.“도 씨 가문 사람 중에서 강 대표님을 바래다주고 싶어 하는 사람 많을 텐데요. 제가 도설혜한테 전화하도 해드려요?”“저랑 단둘이 있는 게 그렇게 두려워요?”순간 강현석은 갑자기 허리를 굽히며 다가왔다. 그 덕에 잘 생긴 얼굴은 도예나의 얼굴과 더욱 가까워졌고 두 사람의 호흡은 서로 섞이며 야릇한 분위기를 형성했다.요동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도예나는 담담한 척 고개를 돌리며 다시 핸들을 잡았다.“지난번 파티에서 강 대표님이 제 딸을 구해줬으니 이번엔 제가 보답하죠.”시동을 건 차는 이내 길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 시각 강현석의 눈은 오롯이 운전하는 도예나를 향해 있었다. 습관적으로 왼쪽으로 몸을 트는 여자를 보며 속으로 해외 생활을 한 게 사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순간 여자의 지난 4년이 궁금했지만 항상 그를 경계하는 여자가 그가 묻는 물음에 대답할 리가 없었다.이에 강현석은 의자에 기대앉으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제가 도예나 씨를 따라온 건 콜라보 제의를 하기 위해서였어요.”“어디 한번 들어나 보죠. 어떤 콜라보 말씀이시죠?”“강 씨 그룹이 여러 가지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건 예나 씨도 아마 알고 있겠죠? 요 몇 년간 자동차 사업도 시도해 보고 있거든요. 자율주행 자동차에 넣을 스마트 칩을 찾고 있는데 국내에는 그걸 개발하는 회사가 적어서요. 아이디어 구상은 벌써 2년 전에 마쳤지만 아직 실천에 옮기지 못해서 그러는데 예나 씨는 어때요? 흥미 있어요?”남자의 담담한 말에 도예나는 눈을 가늘게 접었다.“혹시 제 뒷조사했어요?”그녀가 자율주행 자동차의 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