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이 화목한 모녀상봉을 연기하려 한다면 나도 같이 연기하는 수밖에.’도예나는 서영옥에게 안긴 채로 가만히 서있다가 한참 뒤에야 상대를 밀어내고 서러운 듯 입을 열었다.“어머니, 저도 보고 싶었어요…… 지난 4년간 밖에서 이리저리 떠돌면서 집 없이 이리저리 전전할 때 어머니가 저한테 준 보살핌이 늘 생각났어요…… 이제 돌아왔으니 앞으로도 계속 저 사랑해 주실 거죠?”‘멍청한 계집 같으니라고. 역시나 4년 전처럼 관심만 가져주면 그게 자기를 해치는 함정인 줄도 몰고 뛰어드네. 이렇게 멍청해가지고 복수하겠다고? 흥! 어림도 없지!’서영옥은 모든 게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으쓱했다.하지만 표정으로는 더욱 자애로운 어머니를 연기하며 도예나의 손을 맞잡았다.“당연하지. 엄마는 널 언제나 친딸이라고 생각했어. 네가 무슨 잘못을 하든 사랑해 줄 거야.”그리고 곧바로 그녀의 손을 잡고 집안으로 들어갔다.집안에는 커다란 원형 밥상에는 벌써 몇몇 친척들이 앉아있었는데 도예나의 둘째 삼촌과 셋째 삼촌 그리고 도진호가 이미 도예나의 할머니의 오른쪽에 차례로 앉아있었다.서영옥은 도예나의 손을 잡고 어르신의 왼쪽에 자리 잡았다.오랜만에 보는 할머니의 모습에 도예나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꾹 억눌렀다. 그리고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할머니, 저 왔어요.”어르신은 감격에 겨워 손을 부들부들 떨더니 도예나의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잘 돌아왔어…… 잘 돌아왔어…….”오랜만에 만났지만 돌아오는 말은 이 한마디뿐이었다.순간 도예나의 마음은 차갑게 식었다.하지만 그녀는 할머니가 이러시는 게 이해됐다.그녀가 사라졌던 것도 벌써 4년 전 일이었고 그때 그렇게 잔인한 방법으로 도씨 가문을 나간 것도 모자라 그간 서영옥이 할머니 곁에서 이간질했을 걸 생각하면 백번 이해됐다.‘아마 할머니도 4년 전 집에 불을 낸 게 나라고 생각하시겠지? 게다가 혼전임신으로 가문의 명성에 먹칠했으니…….’만약 할머니가 그 사실을 그녀가 한
역시나 도설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친척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4년 전의 그 화재 때문에 도 씨 저택이 불탄 것도 모자라 몇백억을 호가하는 물건이 타버렸었다.그 피해로 인해 도씨 가문은 2년간 죽기 살기로 노력한 끝에 겨우 다시 회복했다. 심지어 그 사고로 인해 도씨 가문 모든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때문에 그때 도예나가 “죽은 사람”이었지만 친척들은 도예나를 입에 담을 때마다 이를 갈곤 했었다.그런데 그때 일을 다시 끄집어 내니 사람들의 표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도예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일일이 눈에 새겨두고는 입꼬리를 올렸다.“저도 계속 묻고 싶었는데요 어머니. 제가 18살 성인식을 치르던 날 저한테 대체 뭘 먹인 거예요? 왜 그날 어머니가 준 술을 마신 뒤로 쓰러져서 깨어보니 호텔 침대에 있었던 거죠?”그 말에 서영옥의 표정은 어두워졌다.“나나야, 너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니?”“할머니도 아시잖아요. 저 평소에 제멋대로이긴 해도 몸을 함부로 굴리는 애는 아니었다는걸.”도예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때를 떠올린 듯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저 아버지 때문에 창고에 갇혀 있는 8개월 동안 많은 걸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마지막 기억이 어머니가 준 그 술이었어요. 그 술을 마시고 난 뒤 제가 그런 일을 당했어요. 할머니 저 정말 일부러 그런 일을 벌인 게 아니에요…….”그 사이 서영옥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내가 그때 분명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았는데 저 년은 왜 자꾸 이 일을 입 밖에 꺼내는 거야? 이러면 노친네가 의심할 텐데. 내가 도씨 가문 사모님 자리에 어떻게 올랐는데? 게다가 곧 강현석 장모가 되어야 하는 몸인데 절대로 오점을 남기면 안 돼!’한참을 생각하던 서영옥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나나야. 너는 내가 가장 아끼는 딸인데 엄마가 어떻게 널 해치겠어? 그 일은 벌써 5년이나 지난 일이잖아. 우리 더 이상 떠올리지 말자. 너도 이제 돌아왔는데 앞으로가 중요하잖아. 앞
도예나의 두 눈은 순간 차가워졌다.서영옥은 그나마 자애로운 어머니인 양 연기라도 하는데 아버지는 오히려 이렇게 본성을 드러내다니.그녀는 도 씨 그룹 지분을 그렇게 쉽게 가져오지 못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아니, 염치없는 도 씨 가문 사람들이라면 절대로 그녀에게 지분을 돌려주지 않을 거다.하지만 그녀는 그런 도 씨 가문 사람들을 위해 생각해 줄 여유도 마음도 없었기에 입술을 깨물더니 불쌍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아버지, 후계자 신분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그런데 제 지분만 다시 돌려주면 안 돼요? 그건 제 어머니가 저에게 남겨준 유산이잖아요. 제 주인한테 돌아와야 하는 게 맞잖아요…….”도진호의 표정은 순간 어두워졌다.솔직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예나를 포기하기 아까웠는데 이제 보니 더 이상 남겨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4년 전 가문의 이름에 먹칠했을 그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그때 그 불길 속에서 타죽었어야 했어. 돌아오자마자 분란을 일으키다니. 절대 곁에 남겨 둬서는 안돼……’“나나의 말이 맞아.”하지만 그때 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던 어르신이 입을 열었다.“그 지분은 나나 것이니 다시 돌려줘야지.”“어머니!”서영옥은 더 이상 표정을 연기할 수 없었다.“지난 4년간 설혜가 회사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공헌을 해왔는데 예나가 돌아오니 이제 설혜는 아무것도 아닌가요? 제가 설혜편을 드는 게 아니라 기회는 공평해야 하잖아요. 나나든 설혜든 모두 도 씨 가문 딸인데 한쪽으로만 사랑이 기울면 안 되잖아요.”도예나는 서영옥이 뭐라 지껄이든 상관없었다. 오직 할머니가 이때 나서서 자기편을 들어줬다는 생각만 계속 맴돌았다.사실 그녀는 오늘 지분을 돌려받을 생각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이미 손에 넣은 걸 다시 돌려주고 싶어 하는 이는 없다. 그게 누구든.하지만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으니 그녀는 서영옥이 지분을 뱉어내게 해야만 했다.“어머니 말이 맞아요. 뭐든 공평을 따져야 하죠. 그러면 이건 어때요? 제 어머니 유산이지만 제가 선심 써서
도예나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오늘 반갑지 않은 사람들 얼굴을 보는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절반이나 되는 지분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다니 헛걸음은 아니었다.게다가 나머지 절반도 곧 가져올 거라고 자신하며 작게 웃었다.“설혜는 나랑 친자매나 다름없으니 고맙다는 인사는 생략할게.”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어르신은 만족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원래도 몸이 편찮았는데 갑자기 모든 긴장이 풀리자 몸 이곳저곳이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집사, 지분 양도 협의서 작성해서 가져와. 지금 당장 사인하게.”어르신은 헛기침을 하더니 엄숙한 목소리로 명령했다.어르신도 사실 자기가 얼마 버티지 못할 거라는 걸 은연중 짐작했다. 때문에 떠날 때 떠나더라도 집안의 문제는 제대로 해결해놓은 뒤 가고 싶었다.“할머니, 이렇게 급할 필요 있어요?”하지만 그 결정에 도설혜가 조급했는지 입을 열었다.“내일 사인해도 되잖아요.”“맞아요, 어머니. 이렇게 급하게 처리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오늘 어머니의 생신이신데 지분 양도는 내일 해도 늦지 않아요.”서영옥도 다급히 나서서 어르신을 말렸다. 두 사람의 행동에 어르신이 뭐라 말하려고 하던 그때, 문 어구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얘기 중인데 이렇게 시끌벅적한가요?”그리고 곧바로 훤칠한 남자 하나가 안으로 들어섰다.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는 마치 제왕 같은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조각 같은 얼굴과 깊은 아이홀 그 밑에 난 매서운 눈매 그리고 높은 코…… 그야말로 하늘이 빚어낸 완벽한 예술품 같았다.그 남자를 보는 순간 도설혜의 눈빛은 반짝 빛나는 동시에 무척 놀라운 듯했다.‘현석 씨가 여길 오다니…….’오늘 할머니의 칠순 잔치라 예의상 전화로 초대했는데 이렇게 직접 행차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지난 4년간 도 씨 가문에서 열리는 각종 파티에 몇 번이고 초대했건만 매번 거절하던 그였기에 이번에도 솔직히 큰 희망은 품이 않았다.그런데 희망을 버리니 이렇게 나타나 주다니. 그 강현석이 와주다니!도설
도설혜는 황급히 부인하며 도예나를 째려봤다. 이 시각 그녀는 도예나가 빨리 눈치껏 빠져줬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하지만 도예나의 행동은 그녀를 실망하게 했다.도예나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이제 보니 도 씨 가문이 강 씨 가문과 인연이 있는 건 확실하네. 그런데 강현석이 도설혜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단 말이지.’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강현석이 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 집까지 찾아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뭐 아무렴 어때? 도 씨 가문 사람들은 체면을 무엇보다 중요시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니 강현석 앞에서 제 얼굴에 먹칠하는 일은 하지 않겠지?’도예나는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강 대표님, 저희 방금 도 씨 그룹 지분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강 대표님도 오셨으니 마침 증인이 되어주면 되겠네요.”강현석은 흥미로운 듯 도예나를 바라봤다.“흠, 무슨 증인이요?”“나나야!”그때 서영옥이 약이 바싹 올라 도예나의 말을 가로챘다.“집안일을 남한테 말하면 비웃음 당해.”하지만 어르신이 갑자기 끼어들었다.“자네도 이제 우리 식구나 다름없는데 알 건 알아야지.”‘우리 식구나 다름없다고? 그게 무슨 뜻이지?’도예나는 이해하가 되지 않았다.그리고 고개를 드는 순간 도설혜가 멍하니 강현석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설마? 두 사람 약혼한 사이인가? 그래서 강 씨 그룹에서 얼마 전 도 씨 그룹을 도와줬던 거였어?’도예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눈을 내리깔더니 입을 열었다. “강 대표님이 도 씨 가문 사람이라면 이 증인은 할 수 없겠네요.”강현석이 도설혜의 약혼남이라면 당연히 도설혜의 편을 들게 뻔했다. 그러면 그녀도 입 아프게 그에게 시시비비를 가려달라고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하지만 강현석은 이 일에 흥미를 느꼈는지 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담담하게 말을 건넸다.“어르신,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저 강현석은 한 번도 도 씨 가문 사람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그건 도설혜 씨가 가장 잘 알 건데요.”도설혜는
도예나는 적절한 속도로 도 씨 그룹 지분 50퍼센트에 관한 일을 모두 얘기하고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강 대표님이 보시기에 제가 어머니의 유산인 지분을 돌려받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세요?”“아니요.”강현석은 덤덤하게 세 글자를 내뱉었다.그 말에 도설혜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현석 씨는 역시나 내 편이었어!’강현석의 이 말 한마디면 그녀는 지분 양도를 거절할 수 있었다. 아무리 할머니가 뭐라 하든 말이다.하지만 도예나의 낯빛은 반대로 어두워졌다.역시나 믿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하면서 반박하려고 하던 그때 강현석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도예나 씨, 제가 만약 당신이라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모든 지분을 가져왔을 겁니다. 어머니가 남긴 유산을 왜 남에게 반이나 나눠줘야 하죠?”남자의 말이 끝나자 도예나는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불합리하다는 게 이 뜻이었어? 그러면 내가 오해했잖아?’“현석 씨…….”하지만 그때 도설혜는 다른 의미로 놀랐다. 자기 편을 들 거라고 굳게 믿고 있던 사람의 싸늘한 대답에 도설혜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어떻게…….”그녀는 입을 뻐금 거리며 몇 번이고 말을 하려 했지만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내가 강 씨 가문을 위해 아들을 둘씩이나 낳아줬는데 어떻게 도예나 저년 앞에서 날 망신 줄 수가 있어?’강현석의 대답은 그녀의 기분을 하늘까지 솟게 했다가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하하!”그때 서영옥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분위기를 풀려고 애썼다.“강 서방, 자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데 우리 설혜와 예나가 얼마나 의좋은 자매라네. 그래서 예나가 반을 설혜한테 준 거고. 그러니 이건 두 자매 사이의 일이니 둘이서 해결하라고 하고 우리는 밥이나 먹자고. 몇 입 대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서 들게…….”여기서 계속 지분 얘기를 한다면 설혜 손에 있는 절반의 지분도 내놓아야 할 판국이었다.하지만 당황한 두 사람과는 다르게 어르신이 강현석에 대한 인상은 오히려 더 좋아졌다. “집사, 지분
어르신은 더 이상 앉아 있기 힘에 겨웠는지 집사의 손을 잡으며 일어섰다.그 모습을 본 도예나는 곧바로 함께 일어나 어르신의 손을 잡았다.“할머니, 제가 방까지 부축해 드릴게요.”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녀의 부축을 받으며 방으로 들어갔다.하지만 밖은 여전히 떠들썩했다.강현석이 처음 방문한 터라 식구들 모두 강현석과 도설혜의 혼인이 기정사실이라고 믿고 있었다.“요즘 영화가 상영됐다던데, 오후에 설혜와 함께 영화나 가보는 게 어떤가?”서영옥은 눈웃음을 치며 강현석에게 제안했다.“영화 한편 보고 나서 쇼핑도 좀 하고 시간 때맞춰 예쁜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 얼마나 좋아.”어머니의 부추김에 도설혜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현석 씨 오후에 바빠요. 영화 볼 시간이 어디 있다고 그래요.”“아무리 바빠도 여자친구와 데이트는 해야지.”둘째 숙모도 흥분해서 끼어들었다.“두 사람 벌써 연애한지도 4년이 되어가는데 결혼해야 하지 않겠어? 내가 말 많다고 귀찮아하지 말게. 설혜도 이제 혼기가 찼는데 더 미루다가 나이 들면 어떡하려고. 두 사람 결혼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하지만 한창 떠들던 그때 차가운 시선이 그녀를 스쳤다. 그 시선에 놀란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하려던 말을 도로 삼켰다.그 반응을 보고 나서야 강현석이 입꼬리를 올리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우선 저 여자친구 없고, 도설혜 씨와 결혼할 마음도 없어요. 그리고 도설혜 씨가 늙던 노처녀가 되던 저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그는 도설혜와 선을 그었다.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도설혜는 지금껏 강현석이 자기와 결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대놓고 말한 적은 없었다.게다가 사람들 앞에서 그녀를 무안하게 한 적도 없었다.그녀는 강 씨 가문 두 도련님의 어머니가 되면서 한순간 신분상승했고 그 명목으로 도 씨 가문에서 온갖 유세를 부리고 다녔는데 강현석의 말 한마디에 화려한 껍데기가 순간 벗겨진 기분이었다.분하고 쪽팔려 몸이
도예나가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려고 할 때, 조수석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강현석이 차에 올라탔다.마치 자기 차라는 듯 풀어진 모습으로 의자에 앉으며 제멋대로 구는 남자의 모습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강 대표님,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제 차가 고장 나서요. 바래다줘요. 어려운 일 아니잖아요.”의자에 기대 담담하게 말하는 강현석을 보자 도예나는 핸들에서 손을 뗐다.“도 씨 가문 사람 중에서 강 대표님을 바래다주고 싶어 하는 사람 많을 텐데요. 제가 도설혜한테 전화하도 해드려요?”“저랑 단둘이 있는 게 그렇게 두려워요?”순간 강현석은 갑자기 허리를 굽히며 다가왔다. 그 덕에 잘 생긴 얼굴은 도예나의 얼굴과 더욱 가까워졌고 두 사람의 호흡은 서로 섞이며 야릇한 분위기를 형성했다.요동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도예나는 담담한 척 고개를 돌리며 다시 핸들을 잡았다.“지난번 파티에서 강 대표님이 제 딸을 구해줬으니 이번엔 제가 보답하죠.”시동을 건 차는 이내 길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 시각 강현석의 눈은 오롯이 운전하는 도예나를 향해 있었다. 습관적으로 왼쪽으로 몸을 트는 여자를 보며 속으로 해외 생활을 한 게 사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순간 여자의 지난 4년이 궁금했지만 항상 그를 경계하는 여자가 그가 묻는 물음에 대답할 리가 없었다.이에 강현석은 의자에 기대앉으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제가 도예나 씨를 따라온 건 콜라보 제의를 하기 위해서였어요.”“어디 한번 들어나 보죠. 어떤 콜라보 말씀이시죠?”“강 씨 그룹이 여러 가지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건 예나 씨도 아마 알고 있겠죠? 요 몇 년간 자동차 사업도 시도해 보고 있거든요. 자율주행 자동차에 넣을 스마트 칩을 찾고 있는데 국내에는 그걸 개발하는 회사가 적어서요. 아이디어 구상은 벌써 2년 전에 마쳤지만 아직 실천에 옮기지 못해서 그러는데 예나 씨는 어때요? 흥미 있어요?”남자의 담담한 말에 도예나는 눈을 가늘게 접었다.“혹시 제 뒷조사했어요?”그녀가 자율주행 자동차의 칩을
온라인 댓글 창에도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네티즌들이 댓글을 쏟아냈다.빠르게 정신을 차린 진행자가 술렁이는 사람들의 반응에 말을 보탰다.“다들 잊으셨나요? 강연 님께서 또 좋은 소식도 전하겠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에 사람들이 다시 집중했다.이어 사람들은 숨소리를 가다듬었고 강연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저와 전서안 씨는 멀지 않아 곧 결혼할 예정입니다!”“!!!”[와아아아! 이날만을 기다렸다고!][엉엉 우리 강전 커플이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려.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고.][행복하세요! 두 사람 꼭 평생 행복해야 해요!]무대 아래 환호 소리가 이어지고 어느새 시상식 전체가 떠들썩하게 들려왔다.강연은 이 광경에 고개를 돌려 무대 뒤의 서안과 시선을 마주했다.드디어 결혼....9월 8일, 결혼에 적합한 어느 날.사회부, 경제부 기자는 물론 연예 기자까지 총출동했다.각종 포털에서 수아와 안택, 그리고 강연과 서안의 성대한 결혼식에 대한 기사를 앞다투어 보도했다.최고 재벌가인 강씨 가문의 두 공주님이 결혼하는 날, 더구나 결혼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대단한 청년. 한국에 있어 수백 년 가도 한번 볼까 말까 한 성대한 구경거리였다.커다란 식장에 손님들로 붐비고 컬러 풍선이 이곳저곳에 날아다녔다. 꽃으로 뒤덮인 예식장과 레드카펫은 식장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졌다.강씨 가문, 전씨 가문, 그리고 안택의 가족 모두 유명한 가문이었으므로 상업게, 정치계의 유명 인사들이 대거 출동했다.그렇다 보니 경찰 인력도 많이 투입되어 치안을 유지했다.이번 결혼식에는 그 어떤 매체도 초대하지 않았고, 다만 직접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했다. 그리고 주요 매체들과 협력해 다들 생중계를 퍼 나를 수 있도록 했다.그렇게 만인의 주목 아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수아와 강연의 드레스는 F 국왕실 전용 재단사가 시간과 심혈을 기울여 한땀 한땀 수놓은 것이었다.두 사람이 개인 헬기에서 내리고 결혼식장에 모습을
강씨 가문은 또 한 번 침묵에 빠졌다.세 언니 중 나이란은 이미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청아와 예은은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다.그러자 감동에 젖어있던 강씨 세 형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지금 다른 남자 때문에 우는 거야? 날 앞에 두고?’그러나 세 형제가 화를 낼 차례는 주어지지 않았다. 강현석이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강현석은 앞으로 다가가 훌륭한 두 청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몇 년 사이 조금 늙어버린 강현석은 어느새 상권을 주름잡던 그 모습이 사라졌다.“앞으로, 내 보배 딸을 잘 부탁하네.”안택과 서안의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두 사람이 반응하기도 전에 강현석은 이미 자리를 벗어났고, 어느새 도예나가 강현석의 옆자리를 지켰다.도예나는 고개를 돌려 어느새 다 큰 자식들과, 대단한 두 사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축하하네.”그리고 도예나는 강현석의 손을 잡고 거실을 벗어나 자리를 비켜줬다.거실은 잠시 침묵하다가 격동의 비명이 들려왔다.“아아아 드디어 성공했어!”“축하해! 드디어 결혼하네.”“두 공주님이 왕자님을 찾아가는 것 같아 너무 보기 좋아.”강씨 가문에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2층 베란다에서.강현석은 집 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도예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우리 아이들이 이제 다 컸네요.”...그리고 시상식은 예정대로 거행되었다.강연의 “아기” 사건으로 대부분의 매체가 시상식 앞을 채웠다. 게다가 인원을 계속 보충해 이 파격 소식을 맞을 준비를 했다.무대 위 강연이 트로피를 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그리고, 아주 중요한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그 말이 들리고 인터넷은 아예 서버가 막혀버렸다.무대 아래 모든 배우와 매체, 그리고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소식을 들으려고 했다.“강연 님! 드디어 전서안 씨와의 결혼 사식을 밝히려는 겁니까?”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의 기자가 앞으로 달려가지 못해 안달인 듯 외쳤다.“다들 급해
“아버님, 안녕하세요!”안택과 전서안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나이가 많은 안택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아버님, 이건 제가 3년 전부터 준비해 온 겁니다. 제 명하의 모든 재산, 가족 기업 주식, 부동산, 땅, 주식 등 모든 걸 수아의 이름으로 전환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서 제가 가진 모든 것, 제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은 수아의 소유입니다.”그 말을 들은 수아가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렸다.모든 재산을 본인의 이름으로 돌리다니. 안택은 수아에게 단 한 번도 이 사실을 밝힌 적이 없었다. 다만 묵묵히 행동으로 움직였다.“아버지...”수아가 강현석을 바라보는 눈빛은 어느새 촉촉해졌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가족을 제외하고 수아를 위해 이렇게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오직 안택일 것이다.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겉이 아닌 깊숙이까지 수아를 사랑했다.세훈은 안택이 건넨 문서를 읽더니 다시 강현석에게 넘겼다.강현석은 몇 장 넘기다가 깊은 고민에 잠겼다.그리고 아무 말없이 수아를 다독이다가 안택을 향해 말했다.“물어보고 싶은 게 세 가지가 있다네.”안택이 바로 대답했다.“편하게 말씀하세요.”“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자네의 사업과 내 딸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질문을 들은 안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고민하지도 않고 답했다.“제 사업이 아니라, 제 목숨으로 수아의 목숨을 구한다고 해도 수아를 선택할 겁니다.”“그렇다면 자네 가문과 내 딸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강현석이 계속해서 물었다.“그래도 수아를 선택하겠습니다. 제 가문은 이미 수백 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충분히 많은 우수한 자녀가 가문을 이어받을 수 있고 제가 굳이 나설 일은 없습니다.”안택이 대답했다.“그렇다면, 자네 부모님과 가족은?”강현석이 안택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천천히 물었다.“자네 부모, 가족들과 수아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그 물음에 안택이 잠시 침묵했다.진
동시에 제훈도 수아에게 문자를 보냈다.[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 건 바로 옆 동네야. 2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계셨던거야.]...‘역시!’차가운 인상의 수아가 살기를 드러냈다.‘그래요, 아버지. 이번에는 어디로 숨을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요!’스타일링을 마친 강연이 시간을 확인하자 시상식과 2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30분 정도 남겼다.그리고 수아는 몰래 서안과 안택을 불러 아버지 강현석이 들어오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그 옆에는 흥미진진해 보이는 얼굴을 하는 세훈 부부, 세윤 부부, 그리고 제훈 부부가 있었다.강씨 두 자매의 노력 아래 세 언니는 이미 제 편으로 만들었고 두 사람의 결혼을 응원했다.이어 세 언니를 편에 끌어들이고 나니 세 오빠도 한 편으로 되었다.강씨 자매는 정말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그러자 강현석과 도예나가 대문을 넘어서는 즉시 “포위” 당해버렸다.세 언니는 도예나를 이끌고 거실로 들어갔고, 강현석은 두 딸에 의해 양팔이 포위당한 채로 소파에 앉았다.세 아들은 각각 다른 퇴로를 맡고 강현석이 도망갈 수 없게 했다.이어지는 건 두 자매의 맹공격!“아버지! 우리 이제 다 컸으니 제발 각자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해주세요!”“그래요. 아버지! 우리가 보아 같은 귀여운 아이를 낳아 아이들이 외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듣고 싶지 않으세요?”“아버지, 계속 미루다가는 보배 딸들 다 늙어요!”두 딸의 이어지는 애교 세례에 강현석은 정신이 혼미해졌다.“잠, 잠깐만!”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강현석이 물었다.“송이가 임신해 아기가 있다는 말은 대체 뭐냐?”수아와 강연이 눈을 마주했고 강연이 머리를 쳐들며 말했다.“지금은 없지만, 원하면 언제든지 생길 거예요!”강현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을 꺼낸 강현석이 기침을 연신 해댔다.“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수아는 미소를 지으며 위로했다.“이건 시작일뿐이에요. 동생에게 생길 거면 나도
직원의 목소리는 생방송을 타고 큰 파동을 일으켰다.[강연 여신님에게 아기가?][전서안이 아버지가 되는 거야?][거봐, 내 말이 맞잖아. 두 사람이 몰래 결혼했다니까?][두 사람의 결혼을 왜 생방송으로 틀지 않은 거야!!!]생방송 댓글이 뒤집어지고 있는 걸 강연은 전혀 알지 못했다.“우리 집 보배 아기니까 잘 부탁드려요.”댓글은 더 난리가 벌어졌다.[????][!!!!]각종 의문 기호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강연과의 통화가 끝난 뒤에도 댓글은 끝나지 않았다.네티즌들은 감동에 북받쳐했다.시상식 관계자가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이미 실시간 검색어가 초고속도로 상승 중이었다.클릭하면 팬들이 꺅 꺅-하며 환호하는 댓글이 넘쳤다.두 사람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좋은 감정을 이어가자,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팬들도 서서히 인정했다.그사이 강연의 성장은 아주 놀라웠다. “그 시절,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여자 신인상을 받더니 “스파이”를 통해 여우주연상까지 차지했다.그 이후로 찍었던 영화도 모두 훌륭한 성적을 받아냈다.오늘 밤 시상식에서도 그중 한 영화로 상을 받기로 되어있었다.서안과 강연은 이제 신분이면 신분, 외모면 외모, 인품이면 인품, 경력이면 경력, 모든 게 어울리는 한 쌍이 되었다.두 사람의 성장을 지켜보고 과거 이야기까지 전해 들은 후로는 두 커플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과반수를 이뤘다.그러니 오늘 이 깜짝 뉴스에 다들 격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었다.유독 전서안 본인과 강씨 가문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심정이었다.수아 때문에 도피 중이었던 강현석이 가장 먼저 가족 톡방에 모습을 드러내며 질문을 쏟아냈다. 강현석도 적지 않게 놀란 모습이었다.[그 자식이 내 보배 딸을 임신시켜?][정말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한 일이지!]스타일링을 받던 강연은 미처 소식을 전해 받지 못했고 수아가 답장했다.[아빠, 휴가 중 아니었어요? 신호가 나빠서 연락
강현석은 여자는 안정된 직장이 있거나, 든든한 가족이 있다면 한평생 행복할 것이다, 라는 말을 자주 했다.더구나 강현석은 절대 자신의 아이디가 아닌 아내 도예나의 핸드폰으로 그러한 글을 남겼다.그래서 초반에는 강씨 형제들이 어머니마저 결혼을 반대하는 게 아닐까 싶어 두려움에 떨었었다.하지만 제훈이 아버지의 계정을 해킹해 글을 어머니의 아이디에 옮겨 전송한 것임을 알아냈다. 그제야 강씨 형제는 안심했다.장인어른이 사위를 어려워하는 건 당연했다. 그건 시어머니와 며느리와 같은 이치였다.하지만, 이 집안에서는 아버지와 딸들의 투쟁으로 조금 바뀌었다.두 사람의 투쟁은 어느새 3년 가까이 이어졌다.눈 깜짝할 사이에 18살 소녀 강연은 21살 아리따운 여인이 되었다.아버지와의 오랜 투쟁 끝에 강연과 서안은 약혼식을 마쳤고 연예계 공식 커플이 되었다.그리고 세훈, 세윤, 제훈은 모두 결혼을 마쳤고 단란한 가정을 차렸다.세훈에게는 두 살배기 귀여운 아기도 생겼다.나이란도 임신했다. 어느새 막달에 진입한 나이란은 동그랗게 나온 배를 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좋아했고 세윤이 깜짝 놀라며 옆에 바짝 붙어 곁을 지켰다.제훈과 예은은 신혼여행을 떠났다. 예은은 아이보다는 사업에 더 비중을 둘 생각이었다. 제훈도 아기 욕심이 급하지 않았으므로 두 사람은 다행히 의견 차이 없이 합의를 보았다.이제 수아만 남겨졌는데, 매일 오빠들과 동생을 보는 눈빛에 큰 원망이 담겨있었다.세 오빠는 결혼하고 동생도 약혼식을 올렸는데, 안택과 저만 덩그러니 남겨져 버렸다. 가장 빨리 청혼하고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았으나 결혼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수아도 강연처럼 투쟁을 거쳐 약혼하려고 했으나 한번 당한 강현석이 또 당할 리가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다시 세계 여행을 떠난 뒤로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그래서 매번 오늘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연주회 준비 때문에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괜찮아요. 전 늘 여기 있을 거예요.”안택이 수아를 다독였다. 수
이연수의 미소는 진심을 담았다.강연을 돕기로 마음먹었던 건, 강연이 실제로 좋은 사람이었던 이유가 있었고, 오디션 현장에서 자신의 실력으로 배역을 따내겠다는 그 모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자신이 건넨 도움이 기회가 되어 돌아와 이연수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이연수의 말을 들은 강연도 마음이 따뜻해졌다.다들 연예계는 신경전이라 모두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할 것이다.하지만 이곳에는 꿈을 좇는 이를 응원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결국 모든 건 사람이 하기 나름이며 사람이 있는 곳에는 따뜻함과 진심이 있기 마련이었다.강연은 차근차근 촬영을 해나갔다.강씨 형제들의 연애도 순항 중이었다.세훈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송청아 역시 적극적으로 자기 뜻을 보이며 함께 상의하며 결정했다.둘의 공통된 의견은 결혼식은 성대할 필요가 없으며 따뜻하고 오래 기억에 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둘째 세윤은 아직 결혼할 “자격”이 없었으므로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그래서 요즘 새로운 취미인 맛집 탐방을 시작했다.나이란 역시 먹짱이었는데 세윤이 앞서 맛집을 개발하면 나이란과 함께 찾아 음식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짧은 보름 안에 살이 3킬로나 쪄버리고 말았다.그러자 강연과 통화를 하거나 만날 때면 나이란은 항상 30분 동안 찡찡거렸다.“강연아!! 나 3킬로가 쪘다고! 다이어트 할 거야. 다시 안 먹어! 엉엉!”강연은 나이란의 다부진 몸매를 보며 웃음을 참았다.“아니야 어디 뺄 데가 있다고 그래? 우리 세윤 오빠는 딱 너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고.”“정말?”나이란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드러냈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그렇게 강연은 드디어 조용한 대기실을 되찾을 수 있었고 대본을 읽으며 다음 촬영을 준비할 수 있었다.셋째 제훈은 열애 중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송예은을 찾아 데이트했다.송예은이 촬영이 있는 날이면 촬영 장소를 찾아갔고, 선남선녀가 나란히 있는 모습은 시선을 끌었다.그러자 평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제
안티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신인 배우 강연의 연기는 정말 그 캐릭터 본연의 매력을 연출했다. 자본을 쏟아부어 배역을 따내는 연기가 아닌 캐릭터 스스로가 된 듯한 연기였다.초반에는 학생들과 두루 어울리는 부드럽지만 강인한 소녀였지만, 적군에게 잡혀 처형장으로 나갈 때의 강렬한 정신과 격앙된 태도는 반전을 자아냈다. 백연주의 경험과 강연의 연기는 수많은 애국열사를 대표했다.강연은 선인들의 정신을 캐릭터에 쏟아부어 어리지만 용감하게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연기를 녹여냈다.처형장으로 가는 길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옅게 지어내는 미소... 그리고 총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쓰러져도 여전히 높은 위치에서 자리를 지키는 태양.그 장면 속 강연의 미소는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냈다.예고편을 모두 보고 나서야 사람들은 이 대단한 “백연주” 역을 강씨 가문 “공주님”인 강연이 맡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처음에는 경악하다가 이어 찬사가 이어졌다.강연은 정말 실력이 있는 배우였다. 이연수를 비롯한 배우들의 글도 모두 사실이었다.그들은 그제야 안티팬들의 선동에 넘어갔던 걸 깨달았다.진실이 드러나고 사람들은 강연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호감도 생겼다.[언니 연기는 정말 대단해요. 영원히 함께할게요!][언니 힘내세요! 차세대 연기 대상은 언니꺼에요!]...강연을 향한 찬사 목소리가 높아지고 송 감독은 때를 놓치지 않고 마지막 한 발을 발사했다.“스파이” 공식 홈페이지에 오디션에서 “이가을” 연기한 강연의 촬영분이 공개되었다.이 오디션 영상의 공개는 온라인을 또 한 번 들끓게 했다.“백연주”를 통해 강연의 연기 재능을 미리 맛볼 수 있었는데 “이가을”처럼 복잡한 캐릭터에 대한 연기도 완벽하게 소화를 하자 네티즌들은 두손 두발을 모두 들게 되었다.[정말 무서운 연기 괴물이야!][역시 연기의 신 전서안이 마음에 둔 여자는 달라도 달라.]그렇게 온라인 소동은 막을 내렸다. 강연은 사람들의 호감도 사고 차세대 연기의 신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강연은 빠르게 “스파
“뭔데? 무슨 반전?”송 감독이 재빠르게 물었다.“우리에게 편이 생겼어요!”“무슨 편? 지금이 언젠데 아직도 네 편 내 편을 나눌 여유가 있는 거야?”송 감독이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아니요! 이걸 좀 보세요!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강연 씨를 위해 해명하고 있어요! 우리가 섭외한 것도 아닌데 먼저 나선 거라고요!”“뭐라고?”송 감독이 바로 몸을 일으켰다.“줘 봐.”그러자 스태프가 빠르게 핸드폰을 건넸고 홈페이지의 댓글이 순식간에 늘어나고 있었다.[배우 이연수: 저는 강연 씨와 함께 촬영했었습니다. 강연 씨는 정말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에요. 절대 갑질한 적도 없으며 연기를 묵묵히 소화해 내는 천생 배우였어요. 이런 재능을 저희는 아주 부러워했는걸요.]그리고 이연수는 짧은 동영상을 함께 게재했는데 “그 시절, 우리는” 작품에서 강연의 촬영분이었다.“감독님, 이 여배우는 ‘그 시절, 우리는’ 작품의 배우인데요, 강연 씨와 사이가 좋은가 봐요. 이분이 직접 나서자 적지 않은 배우들이 함께 참여했어요. 조연 배우들이라 주연 배우들만큼 임팩트가 큰 건 아니지만 오히려 더 진실성 있게 다가간 것 같아요.”그건 사실이었다.요즘 사람들은 여론에 빨라 어느 유명한 배우가 이런 글을 남겼다면, 오히려 소속사에서 지시한 것이겠니 하고 생각했다.하지만 조연 배우, 스태프, 그리고 촬영 알바생들과 같은 사람들이 남긴 글은 진정성이 넘쳤다.더 중요한 건 그들이 던진 작은 돌멩이는 잔잔한 파도에 티 나지 않는 파울을 남겼고, 이는 사람들의 반감을 사지 않았다.배우가 네티즌들의 호감을 어느 정도 산 다음, 이제 주연 배우와 촬영팀이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모든 건 걸쳐야 할 과정이 있는 법이었다.빠르게 읽어 내려간 송 감독의 표정이 밝아졌다.“휴, 드디어 목숨은 유지할 수 있게 되었어. 전서안 그 자식이 두려워서 어디 살 수 있겠나, 참.”“송 감독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이해가 되지 않은 스태프가 되물었으나 송 감독은 수염을 내리쓰며 덤덤하게 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