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하고 새로 전화번호로 바꾼 뒤 그 번호를 알려준 사람이 몇 없었기에 도예나는 당연히 광고 전화일 거라는 생각에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상대는 끈질기게 또다시 전화해왔다.그제야 도예나는 앞치마에 손을 닦고 수신 버튼을 눌렀다.“예나니?”중후한 중년 남자의 음성에 도예나는 순간 얼굴이 구겨졌다.상대는 다름 아닌 그녀의 아버지 도진호였다.그녀가 귀국한지 벌써 며칠째인데 아버지라는 사람이 이제야 전화한 거다.‘참으로 자애로운 부친이 따로 없네.’도예나는 입꼬리를 비틀며 싸늘하게 말했다.“도 사장님, 그간 잘 지내셨어요?”거리감이 느껴지는 호칭에 도진호는 목이 메어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나서야 제 목소리를 찾았다.“예나야,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거 안다. 그런데 너도 이 아비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거다…… 그때 네가 집에 불을 지르고 간 것도 모자라 귀국하기 바쁘게 도 씨 가문과 전쟁을 선포했는데 내가 화나지 않고 배겨?”“그러니 도 사장님 말씀은 딸이 회사보다 못하다는 뜻이네요. 그렇다면 저한테는 뭣하러 전화하셨나요?”도예나의 목소리는 유독 싸늘했다.“우리가 그래도 피를 나눈 사이인데 언제까지고 이렇게 대립할 수만은 없잖니?”도진호가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는 게 전화 건너편에서도 느껴졌다.“예나야. 넌 내 친 딸이자 첫째 딸인데 내가 어떻게 걱정이 안 되겠니? 너 도 씨지 서 씨가 아니야. 제 집을 놔두고 외가에 가 있는 게 말이 돼? 내가 사람을 보낼 테니 집으로 돌아와.”하지만 그의 말을 듣는 도중 도예나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갑자기 잘해주는 건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다시 집으로 불러들여 도설혜에게 손쓸 기회를 주라고?’아쉽지만 도예나는 그렇게 바보가 아니었다.“됐어요. 저 그 집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도예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그 말에 도진호는 핸드폰을 내팽개치려는 욕구를 겨우겨우 눌러 참았다.‘고얀 것. 내가 먼저 머리를 숙였는데 거절해? 예전에는 귀엽고 말만 잘 듣던
전화가 끊긴지 한참이 지났지만 도예나는 여전히 핸드폰을 꼭 쥐고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겨우 다시 정신을 차린 그녀는 짤막한 한숨을 내쉬었다.따지고 보면 할머니를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게 맞았다. 실종된 4년을, 자기의 공백을 할머니에게만큼은 설명해야 했다.하지만 할머니가 아직도 그녀를 예전처럼 대해줄지가 걱정됐다. 두렵기도 했다…….한참 생각에 잠겨있을 그때.“엄마, 음식 다 타요.”도제훈이 코를 찡그리며 그녀를 일깨워줬다.그제야 도예나는 다급히 핸드폰을 내려놓고 요리에 다시 몰두했다.반 시간이 지났을 무렵 엄마표 밥상이 완성됐다.그때 수아가 음식 냄새를 맡았는지 부르지도 않았는데 쪼르르 달려와 걸상에 앉았다. 그러고는 당장 음식을 내놓으라는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에 도제훈은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엄마, 수아 좀 봐요. 엄청 귀여워요.”도예나는 장국 세 그릇을 들고 오면서 눈웃음을 쳤다.“우리 수아 얼른 먹어. 많이 먹어야 예뻐져.”수아는 아무 대답 없이 바로 고개를 숙이고는 밥을 한 술 크게 퍼서 작은 입안에 구겨 넣었다.작은 몸 안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음식이 들어가는지 얼마 안 되는 사이에 계눈감추듯 사라졌다.그 시각 강 씨 저택.최고급 셰프가 선보인 최고급 요리. 없는 것 없이 영양을 따져가며 골고루 넣어 만든 식단. 긴 식탁을 거의 메울 정도로 쫙 깔려있는 것과는 달리 그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오직 둘뿐이었다. 다름 아닌 강현석과 강세윤.하지만 산해진미를 앞에 놓고도 두 부자의 표정은 마치 늦겨울에 접어든 것처럼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강세윤은 끝내 그런 분위기를 참지 못했는지 젓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작은 입을 삐죽거렸다.“나 안 먹을래요.”그러고는 제멋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누가 너더러 가라고 했어?”역시나 강현석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우리 집에서는 반찬투정하는 거 용납 못해. 당장 앉아. 다 먹고 일어나.”“아빠. 저 이제 밥 마음대로 먹을 자유도 없어요?”강세윤은 허리를
“네.”양 집사는 바로 대답했다.강현석이 평소에 차갑고 엄격하지만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두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누군가 아버지의 사랑은 산과 같다고 했지만 그는 오히려 바다에 비유하고 싶었다. 바다처럼 깊고 알 수 없으며 모든 걸 다 포용할 수 있기에.그 시각 2층 테라스에 앉아 있는 강세윤의 눈에는 이미 뿌연 눈물이 맺혀있었다.하지만 그건 배가 너무 고파 가방에 있던 과자를 먹다 목에 걸리는 바람에 생겨난 거였다.“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미워…….”강세윤은 눈물을 훔치며 꽥 소리쳤다.‘아빠 나빠. 맨날 나한테만 못되게 굴고 이제는 집에 가둬놓기까지 하고. 집에서 재미없는 공부나 하게 하고. 나가고 싶은데, 예나 이모도 보고 수아 얼굴도 만지고 싶은데…….’그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지금 상황이 답답하고 괴롭기만 했다.그러던 그때 스마트워치가 갑자기 울렸다.힐끗 확인해 보니 전화 온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형이었다. 강세윤은 놀라 다급하게 눈물을 닦고 아무 일 없는 듯 수신 버튼을 눌렀다.“강세윤. 너 하다 하다 이제는 혼자 숨어 울기까지 하냐?”강세윤은 형의 말에 흠칫 놀랐다.“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너 잊었어? 우리 쌍둥이야. 텔레파시가 통한다고. 네가 울 때마다 알았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슬퍼하는 거 같길래 전화했어. 말해 봐. 왜 우는데?”강세훈의 덤덤한 물음에 강세윤은 순간 난처했다.“넘어져서 무릎이 까졌어. 그래서 아파서 울었어.”“그래? 그러면 집사 할아버지 불러줄까?”“아니야!”강세윤은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형, 그렇게 총명하지 않으면 어디 덧나? 왜 남의 일에 참견이야? 그냥 기분 나빠서 울었어. 나 이제 혼자 숨어서 울 자유도 없어?”“내가 언제 울지 말랬냐? 그저 누구 때문에 우는지 궁금하단 뜻이지. 네가 말하기 싫다면 말하지 마. 나 끊는다.”“아, 잠깐만.”관심을 보이던 강세훈이 갑자기 관심 없다는 듯 덤덤하게 말하자 강세윤은 오히려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서 저도 모르
강세윤은 버럭 화를 냈다.“형. 내가 기분 좋게 말하고 있는데 꼭 그렇게 찬물을 끼얹어야겠어? 이제 형이랑도 말 섞지 않을 거야. 흥!”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전화도 뚝 끊어버렸다. 순간 맛있기만 하던 과자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하지만 그 시각, 강세훈은 심각한 얼굴로 옆에 있는 비서를 바라봤다.“저 내일 성남으로 돌아가야겠어요. 가장 빠른 티켓으로 끊어줘요.”“큰 도련님. 내일 계열사로 가봐야 해요. 모레는 해외 투자 미팅도 있고요. 강 대표님께서 친히 명령하신 거라서…….”“그러면 3일 뒤로 예약해 줘요.”강세훈은 뚱한 얼굴로 비서의 말을 잘랐다.도예나라는 여자가 갑자기 나타나 어머니의 가문을 공격했는데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게다가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강세윤한테 접근했는지 모르겠지만 바보 같은 동생이 그 여자한테 홀랑 넘어가는 걸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했다.…….친 할머니의 칠순 잔치는 날. 도예나는 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뒤 곧바로 도 씨 저택으로 향했다.얼마 전 있었던 일들 때문에 도씨 가문은 아직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기에 집안 어르신 칠순인데도 성대하게 치를 수 없었다.때문에 오늘 칠순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은 도씨 가문의 가장 친한 친척들뿐이었다.그리고 도예나가 나타나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그녀에게로 집중됐다.“정말 나나구나. 나나가 정말 살아돌아왔네.”“나나야, 4년 전보다 더 예뻐졌네. 이리 가까이 와봐. 우리 나나 얼굴 좀 보자.”예나의 둘째 숙모와 셋째 숙모가 가장 먼저 도예나에게 다가와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궁금한 게 어찌나 많았는지 지난 몇 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부터 시작해 여러 가지 질문을 쏟아부었다.차가운 아버지보다 두 숙모의 물음이 도예나의 마음을 따스히 녹여주었다. 도예나는 두 사람을 보며 싱긋 미소 지었다.“둘째 숙모, 셋째 숙모도 더 젊어졌는데요?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어요. 어쩜 나이를 거꾸로 먹어요?”누가 봐도 사랑받는 사람처럼 미소를
‘서영옥이 화목한 모녀상봉을 연기하려 한다면 나도 같이 연기하는 수밖에.’도예나는 서영옥에게 안긴 채로 가만히 서있다가 한참 뒤에야 상대를 밀어내고 서러운 듯 입을 열었다.“어머니, 저도 보고 싶었어요…… 지난 4년간 밖에서 이리저리 떠돌면서 집 없이 이리저리 전전할 때 어머니가 저한테 준 보살핌이 늘 생각났어요…… 이제 돌아왔으니 앞으로도 계속 저 사랑해 주실 거죠?”‘멍청한 계집 같으니라고. 역시나 4년 전처럼 관심만 가져주면 그게 자기를 해치는 함정인 줄도 몰고 뛰어드네. 이렇게 멍청해가지고 복수하겠다고? 흥! 어림도 없지!’서영옥은 모든 게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으쓱했다.하지만 표정으로는 더욱 자애로운 어머니를 연기하며 도예나의 손을 맞잡았다.“당연하지. 엄마는 널 언제나 친딸이라고 생각했어. 네가 무슨 잘못을 하든 사랑해 줄 거야.”그리고 곧바로 그녀의 손을 잡고 집안으로 들어갔다.집안에는 커다란 원형 밥상에는 벌써 몇몇 친척들이 앉아있었는데 도예나의 둘째 삼촌과 셋째 삼촌 그리고 도진호가 이미 도예나의 할머니의 오른쪽에 차례로 앉아있었다.서영옥은 도예나의 손을 잡고 어르신의 왼쪽에 자리 잡았다.오랜만에 보는 할머니의 모습에 도예나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꾹 억눌렀다. 그리고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할머니, 저 왔어요.”어르신은 감격에 겨워 손을 부들부들 떨더니 도예나의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잘 돌아왔어…… 잘 돌아왔어…….”오랜만에 만났지만 돌아오는 말은 이 한마디뿐이었다.순간 도예나의 마음은 차갑게 식었다.하지만 그녀는 할머니가 이러시는 게 이해됐다.그녀가 사라졌던 것도 벌써 4년 전 일이었고 그때 그렇게 잔인한 방법으로 도씨 가문을 나간 것도 모자라 그간 서영옥이 할머니 곁에서 이간질했을 걸 생각하면 백번 이해됐다.‘아마 할머니도 4년 전 집에 불을 낸 게 나라고 생각하시겠지? 게다가 혼전임신으로 가문의 명성에 먹칠했으니…….’만약 할머니가 그 사실을 그녀가 한
역시나 도설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친척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4년 전의 그 화재 때문에 도 씨 저택이 불탄 것도 모자라 몇백억을 호가하는 물건이 타버렸었다.그 피해로 인해 도씨 가문은 2년간 죽기 살기로 노력한 끝에 겨우 다시 회복했다. 심지어 그 사고로 인해 도씨 가문 모든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때문에 그때 도예나가 “죽은 사람”이었지만 친척들은 도예나를 입에 담을 때마다 이를 갈곤 했었다.그런데 그때 일을 다시 끄집어 내니 사람들의 표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도예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일일이 눈에 새겨두고는 입꼬리를 올렸다.“저도 계속 묻고 싶었는데요 어머니. 제가 18살 성인식을 치르던 날 저한테 대체 뭘 먹인 거예요? 왜 그날 어머니가 준 술을 마신 뒤로 쓰러져서 깨어보니 호텔 침대에 있었던 거죠?”그 말에 서영옥의 표정은 어두워졌다.“나나야, 너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니?”“할머니도 아시잖아요. 저 평소에 제멋대로이긴 해도 몸을 함부로 굴리는 애는 아니었다는걸.”도예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때를 떠올린 듯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저 아버지 때문에 창고에 갇혀 있는 8개월 동안 많은 걸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마지막 기억이 어머니가 준 그 술이었어요. 그 술을 마시고 난 뒤 제가 그런 일을 당했어요. 할머니 저 정말 일부러 그런 일을 벌인 게 아니에요…….”그 사이 서영옥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내가 그때 분명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았는데 저 년은 왜 자꾸 이 일을 입 밖에 꺼내는 거야? 이러면 노친네가 의심할 텐데. 내가 도씨 가문 사모님 자리에 어떻게 올랐는데? 게다가 곧 강현석 장모가 되어야 하는 몸인데 절대로 오점을 남기면 안 돼!’한참을 생각하던 서영옥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나나야. 너는 내가 가장 아끼는 딸인데 엄마가 어떻게 널 해치겠어? 그 일은 벌써 5년이나 지난 일이잖아. 우리 더 이상 떠올리지 말자. 너도 이제 돌아왔는데 앞으로가 중요하잖아. 앞
도예나의 두 눈은 순간 차가워졌다.서영옥은 그나마 자애로운 어머니인 양 연기라도 하는데 아버지는 오히려 이렇게 본성을 드러내다니.그녀는 도 씨 그룹 지분을 그렇게 쉽게 가져오지 못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아니, 염치없는 도 씨 가문 사람들이라면 절대로 그녀에게 지분을 돌려주지 않을 거다.하지만 그녀는 그런 도 씨 가문 사람들을 위해 생각해 줄 여유도 마음도 없었기에 입술을 깨물더니 불쌍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아버지, 후계자 신분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그런데 제 지분만 다시 돌려주면 안 돼요? 그건 제 어머니가 저에게 남겨준 유산이잖아요. 제 주인한테 돌아와야 하는 게 맞잖아요…….”도진호의 표정은 순간 어두워졌다.솔직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예나를 포기하기 아까웠는데 이제 보니 더 이상 남겨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4년 전 가문의 이름에 먹칠했을 그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그때 그 불길 속에서 타죽었어야 했어. 돌아오자마자 분란을 일으키다니. 절대 곁에 남겨 둬서는 안돼……’“나나의 말이 맞아.”하지만 그때 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던 어르신이 입을 열었다.“그 지분은 나나 것이니 다시 돌려줘야지.”“어머니!”서영옥은 더 이상 표정을 연기할 수 없었다.“지난 4년간 설혜가 회사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공헌을 해왔는데 예나가 돌아오니 이제 설혜는 아무것도 아닌가요? 제가 설혜편을 드는 게 아니라 기회는 공평해야 하잖아요. 나나든 설혜든 모두 도 씨 가문 딸인데 한쪽으로만 사랑이 기울면 안 되잖아요.”도예나는 서영옥이 뭐라 지껄이든 상관없었다. 오직 할머니가 이때 나서서 자기편을 들어줬다는 생각만 계속 맴돌았다.사실 그녀는 오늘 지분을 돌려받을 생각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이미 손에 넣은 걸 다시 돌려주고 싶어 하는 이는 없다. 그게 누구든.하지만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으니 그녀는 서영옥이 지분을 뱉어내게 해야만 했다.“어머니 말이 맞아요. 뭐든 공평을 따져야 하죠. 그러면 이건 어때요? 제 어머니 유산이지만 제가 선심 써서
도예나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오늘 반갑지 않은 사람들 얼굴을 보는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절반이나 되는 지분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다니 헛걸음은 아니었다.게다가 나머지 절반도 곧 가져올 거라고 자신하며 작게 웃었다.“설혜는 나랑 친자매나 다름없으니 고맙다는 인사는 생략할게.”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어르신은 만족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원래도 몸이 편찮았는데 갑자기 모든 긴장이 풀리자 몸 이곳저곳이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집사, 지분 양도 협의서 작성해서 가져와. 지금 당장 사인하게.”어르신은 헛기침을 하더니 엄숙한 목소리로 명령했다.어르신도 사실 자기가 얼마 버티지 못할 거라는 걸 은연중 짐작했다. 때문에 떠날 때 떠나더라도 집안의 문제는 제대로 해결해놓은 뒤 가고 싶었다.“할머니, 이렇게 급할 필요 있어요?”하지만 그 결정에 도설혜가 조급했는지 입을 열었다.“내일 사인해도 되잖아요.”“맞아요, 어머니. 이렇게 급하게 처리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오늘 어머니의 생신이신데 지분 양도는 내일 해도 늦지 않아요.”서영옥도 다급히 나서서 어르신을 말렸다. 두 사람의 행동에 어르신이 뭐라 말하려고 하던 그때, 문 어구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얘기 중인데 이렇게 시끌벅적한가요?”그리고 곧바로 훤칠한 남자 하나가 안으로 들어섰다.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는 마치 제왕 같은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조각 같은 얼굴과 깊은 아이홀 그 밑에 난 매서운 눈매 그리고 높은 코…… 그야말로 하늘이 빚어낸 완벽한 예술품 같았다.그 남자를 보는 순간 도설혜의 눈빛은 반짝 빛나는 동시에 무척 놀라운 듯했다.‘현석 씨가 여길 오다니…….’오늘 할머니의 칠순 잔치라 예의상 전화로 초대했는데 이렇게 직접 행차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지난 4년간 도 씨 가문에서 열리는 각종 파티에 몇 번이고 초대했건만 매번 거절하던 그였기에 이번에도 솔직히 큰 희망은 품이 않았다.그런데 희망을 버리니 이렇게 나타나 주다니. 그 강현석이 와주다니!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