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사위 잘 둔 덕에 이제 재벌들과 한자리에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민아!”함께 학교를 다닐 때도 곽민과 친하게 지냈고 방금 전 왕연이 못 되게 굴 때도 진숙영의 편을 들어준 건 곽민뿐이었기에 진숙영은 다른 사람들은 깔끔하게 무시한 채 곽민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어보였다.“이리 와. 우리 사위는 저쪽에 앉았어. 내가 소개해 줄게. 다른 도련님들한테 얼굴 도장도 찍을겸.”한편, 그녀의 말에 곽민은 안색이 창백하게 질리고 진숙영의 팔을 잡은 손에도 힘이 꽉 들어갔다.다른 도련님들?‘동창들 중에서 나름 잘 나간다는 애들도 도련님들에 비할 바야 못 되지.’곽민을 제외한 다른 동창들 역시 산해진미를 앞에 두고도 젓가락질 한 번 못한 채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초특급 재벌들의 자제들, 그 수치를 헤아릴 수조차 없는 막대한 자산, 용하국 권력과 재력의 상징을 이렇게 직접 눈앞에서 본다는 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이라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워낙 강력한 포스에 다들 인사는커녕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한편, 손가을의 손을 꼭 잡은 염구준은 다른 사람들에겐 눈빛도 주지 않은 채 바로 곽민의 앞으로 다가갔다.“방금 전, 상황에서 장모님의 편을 들어주신 건 사모님뿐이셨습니다. 저희 장모님과 아주 돈독한 사이신가 보네요. 그리고 아까 애기를 들어보니 사모님 남편분은 의대 출신이고 지금 사모님은 가정주부시라죠?”한진을 힐끗 돌아본 염구준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그건 한진 씨한테 맡기시죠.”‘한진한테 맡긴다고? 그... 그게 무슨 소리인지...’“아, 아니 그게...”한진을 힐끗 바라보던 곽민이 다시 잔뜩 겁 먹은 얼굴로 염구준을 돌아보았다. 정말 기가 많이 죽었는지 목소리마저 살짝 떨리고 있었다.“난 그냥 평범한 사람이야. 포부 같은 것도 별로 없고. 한진 대표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내가 뭐라고 내 일자리까지 알아봐 주겠어.”이에 염구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살짝 웃었다.‘장모님 친구라는 것만으로도 그런 대접받으실 자격 충분한데.’“
방금 전엔 꽤 멀리 떨어져있어서 제대로 실감이 안 났다면 바로 눈앞에서 귀티가 좔좔 흐르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태산 같은 부담이 가슴을 턱 막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어머, 쟤 지금 그 사람들 옆에 앉은 거야?”“학교 다닐 때부터 숙영이랑 친했잖아. 룸메이트였을걸.”“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아까 상황에서 곽민 쟤만 숙영이 편 들어서 저런 대접받는 거 아니야. 솔직히 나도 나서려고 했는데 휴... 타이밍을 놓쳤네.”같은 공간, 다른 동창들은 멀리서 이 광경을 바라보며 부러운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그냥 옆자리에 앉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평생 자랑할 만한 얘기거리였으니까.“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희보다 훨씬 더 어른이시잖아요. 모르는 사람들이야 저희더러 대표네, 도련님이네 하지만 어차피 아무 의미 없어요.”염구준의 부탁이니 한진 역시 곽민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사모님, 무슨 부탁이신지는 모르겠지만 뭐든 말씀하세요.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돕겠습니다.”“그... 그게...”살아생전 한진 대표에게서 사모님 소리를 들을 줄이야.다리에 힘이 풀리는 기분에 살짝 휘청이던 곽민은 진숙영과 손가을의 부축을 동시에 받고 나서야 겨우 안정을 되찾고 용기를 내 말했다.“별 건 아니고... 내가 사실은 일자리를 못 찾는 게 아니라 안 찾는 거예요. 나이도 많고 손주도 봐줘야 하는데 출근까지 하면 체력이 못 따라갈 것 같아서요. 사실 문제가 있는 쪽은 우리 남편이에요. 이제 겨우 51살에 의사로서 능력도 나쁘지 않은데 동네 진료소에서 일하는 모습만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안 좋아서요. 그래도 왕년에는 용두 의대까지 나온 수재였어요. 솔직히 용두 대학병원에서 일하려고 했었는데 그땐 용두에서 방 한 칸 얻기 힘들 정도로 집안 사정이 안 좋아서... 결국 현실 앞에서 꿈을 접은 거죠.”곽민의 설명에 한진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용하국의 중심 도시로서 용두는 땅 한 평이 곧 금싸라기 같은 곳, 게다가 대학병원이 있는 곳
“아, 원장님. 참... 무슨 말씀을 드려야지 할지... 정말, 정말 너무 고맙습니다.”휴대폰을 꼭 쥔 곽민은 어찌나 기쁜지 횡설수설을 이어갔다.“내일 바로 그이 대학병원으로 보내겠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참... 정말...”화상춘 역시 곽민의 감격스러운 감정을 그대로 느꼈는지 목소리가 한결 더 가벼워졌다.“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감사인사는 한 대표님, 아니 염 대표님과 진숙영 여사님께 하시죠.”‘아, 맞네.’순간 멍한 표정을 짓던 곽민은 전화를 끊지도 않고 염구준과 진숙영을 향해 눈시울을 붉혔다.“숙영아, 구준아...”“아니에요, 사모님. 남편분 실력이 워낙 뛰어나시니 이런 기회도 오는 거죠.”그리고 염구준은 옅은 미소를 띤 채 질투와 부러움으로 가득한 표정의 다른 동창들을 향해 말했다.“이건 하늘에서 뚝 떨어진 행운이 아니라 평소 덕을 쌓은 덕분이라고 보는 게 맞죠. 사모님처럼 언제 어디서든 불의에 맞서고 맞는 건 맞다, 아닌 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대단한 분이시니 이런 행운과 기회도 찾아오는 겁니다. 다른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시죠?”염구준의 말에 다른 동창들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어졌다.하늘에서 떨어진 행운이 아니라 평소 덕을 쌓은 덕분이라는 말이 왠지 무겁게 느껴져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미... 미안해, 숙영아.”잠깐의 침묵 끝에 누군가 먼저 입을 열었다.“솔직히 왕연이 한 말 다 거짓말이라는 거 알고 있었어. 그런데 아까 그 상황에서 괜히 나섰다가 보복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그게 무서워서 네 편 못 들어줬어...”“그래, 숙영아. 우리가 미안했어.”“숙영아, 아까 왕연이 그렇게 당할 때 솔직히 우리 다들 속이 시원했어. 그리고 네 덕분에 이렇게 높으신 분들과 같이 식사 자리도 함께 하고. 이런 영광을 어디서 누리나 그래.”“구준아, 우리가 원망스러운 마음은 알겠지만... 왕연 성격도 알잖아. 그래서 차마 말을 못 꺼냈어. 그런데 이번
염풍도?진영주와 인사를 나눈 염구준은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손가을과 시선을 마주쳤다.얼마 전 주작호 사고가 있었을 때 염구준은 염풍도의 자기장을 뚫고 손가을을 구조하는 데 성공했었다.그때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있으니 지금까지도 공식적인 입장은 ‘염풍도의 천연 자기장이 갑자기 사라져 쌍둥이섬이라는 기묘한 자연경관을 만들어냈다’는 것뿐이었다.이런 뉴스가 자연스레 묻힐 수 있었던 건 뭐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이 세상 어느 한 곳에 그렇게 신기한 곳이 생겼구나라는 뉴스 한 줄로 넘겼던 무반응 덕분이었다.일일 소비금액만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럭셔리 휴가지를 갈 생각 자체를 아예 안 하고 있을 테니까.“글쎄 요즘 염풍도 모험이 그렇게 유행이라잖아.”향산 저택으로 향하는 길, 뒷자리에 앉은 진영주는 손가을과 진숙영의 팔을 번갈아 잡아당기며 재잘거림을 이어나갔다.“그런데 그 사람들이 뭘 발견했는지 알아? 글쎄 거기 화산이 있었대. 그 휴화산에서 특별한 자기장이 나왔던 건데 이젠 자기장이 거의 소모돼서 화산 온천만 남았대. 거기에 몸을 담그면 그렇게 편하다잖아.”“그래?”아무렇지 않은 척 되물었지만 손가을의 마음은 어느새 흔들리기 시작했다.자기장이 처음 사라졌을 때 손가을은 이미 염구준과 화산 모험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고 그 화산에서 옥패 하나를 발견했다. 지금까지 획득한 옥패는 총 3개, 옥패 하나, 하나마다 어마무시한 고대 비밀이 숨겨져있다고 하지만...손가을이 신경 쓰는 건 그게 아니었다.염구준과 결혼한 뒤로 제대로 된 웨딩촬영도, 신혼여행도 못 가본 터라 아쉬움이 많이 남은 그녀였다.“염풍도... 나도 가보고 싶어.”운전 중이던 염구준이 백미러로 손가을을 힐끗 바라보았다.“그래. 아, 물론 이번엔 제대로 준비하고 가자. 경호원들도 대동해서.”저번 납치사건이 깊은 트라우마로 남은 것도 있고 흑풍 조직까지 나타났으니 걱정이 앞서는 염구준이었다.정경림도, 용준영도 있고 뢰인과
원씨 가문 가주 원종, 나름 강자니까 우리 경호를 맡기기엔 충분해. 우리가 염풍도로 가기 전까지 무조건 모시고 올게. 여기에 경림 아저씨까지 합류하면 나름 안전할 거야. 기다리고 있어.”그리고 염구준은 단 이틀만에 모든 협상을 끝냈다.염구준이 직접 나선 이상, 원씨 가문에서 부탁을 거절할 리가 없었고 가주인 원종이 직접 최정상 고수 2명과 함께 청해시로 향해 정경림과 각각 손씨 그룹 본부와 항산 별장의 경호를 맡게 되었다.그렇게 손태석, 손씨 그룹 임원진들의 안전까지 보장한 뒤...“여긴 걱정하지 말고 재미있게 놀다와.”빈해 공항.손태석과 진숙영은 흐뭇한 얼굴로 염구준 일행을 바라보았다.“염 서방이 있어서 마음이 놓여.”손태석이 염구준의 어깨를 토닥였다.“희주도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대. 경림이 형이 잘 지키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정경림, 용준영, 뢰인, 그리고 12명의 엘리트 경호원들이 학교 주위를 물 샐 틈 없이 지키고 있는 데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지하 벙커로 옮기기로 되어 있어 흑풍 존주가 직접 오지 않는 한, 위험할 상황은 벌어질 리 없었다.그리고 흑풍 존주는...염구준과의 결투에서 중상을 입은 터라 완치까지 적어도 1년은 걸릴 것이니 그 동안은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되었다.“장인어른, 장모님, 그럼 저희 가보겠습니다.”그렇게 부푼 가슴을 안고 염구준 일행은 염풍도로 향했다....한편, 염풍도.“염구준이 이미 옥패 3개를 손에 넣었다고 합니다.”거센 파도의 바다 위, 20여 명의 장정들이 대형 선박 갑판 위에 서있다.그들 중 검은색 망토를 두른 이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조직에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염구준이 염풍도로 향하고 있다고 한다.”이에 다른 남자들은 동시에 미간을 찌푸렸다.염구준이 자기장을 파괴하고 옥패까지 획득했다는 건 조직 내부에서 이미 공공연히 알고 있는 사실, 그런데...옥패까지 다 가져간 마당에 왜 다시 돌아온 걸까?“왜 다시 돌아온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어.”망토
“염구준이 다시 염풍도로 가는 건 분명 기회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걸 잊지 마라. 다들 우호법도 곧 도착할 때까지 기다린다.”우호법?이에 모인 이들 중 몇몇은 코웃음을 내쳤다.‘존주님한테 알랑대는 개 주제에...’오늘 자리에 모인 이들은 다들 흑풍 조직에서 내놓으라 하는 강자들, 리더인 흑풍 존주 앞에서도 기가 죽지 않는, 아니 심지어 농담마저 건넬 수 있는 일당백 고수들이었고 그만큼 자존심도 강했다.하지만 우호법 ‘도천연’은 달랐다. 전신 경지를 바로 코앞에 둔 고수임은 분명한데 흑풍 존주에 대한 충성심은 그야말로 병적이었고 그런 그의 충심은 콧대 높은 흑풍 조직원들 사이에서 오히려 독특하게 느껴졌다.철썩철썩...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저 멀리 파도가 이상하리만치 넘실대더니 작은 체구의 누군가가 해수면을 밟고 타다닥 달려왔다.“형님.”백 미터 넘는 거리를 훌쩍 점프한 도천연이 갑판에 발을 딛자 학신통이 먼저 다가갔다.“존주님 상태는 어떠십니까? 이번에 염구준이 다시 염풍도에 온다는데. 우리도...”하지만 도천연은 무거운 얼굴로 자리에 모인 이들을 훑어보았다.“존주님의 상태는 조직 최대 기밀사항이니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마라. 그리고 내가 여기로 오기 전에 존주님께서 특별히 당부하셨다. 염구준의 손에서 옥패를 빼앗는 자, 그게 누구든 다음 존주로 추대하겠다고.”쿠궁!폭탄발언에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진 것도 잠시, 학신통을 포함해 모든 이들의 눈동자가 살기로 번뜩이기 시작했다.다음 존주?흑풍 조직원들이라면 누구든 갈망하는 자리, 수천, 수만 명의 강자들을 호령할 수 있는 절대 거부할 수 없는 권력의 징표를 물려준다는데 어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그게... 사실입니까?”가장 먼저 이성을 되찾은 학신통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그러니까 저희 타깃은 옥패고... 그럼 형님 타깃은 뭡니까?”“손가을.”한참을 침묵하던 도천연이 천천히 손가을의 이름을 내뱉었다.‘손가을?’순간 학신통의 눈동자가 살짝
한편, 염풍도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환고도’.공항이 없는 염풍도로 관광을 오는 사람들은 무조건 환고도에서 내려 2시간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비로소 섬의 유일한 항구에 도착할 수 있다.“진영주 씨 어디 계신가요?”염구준이 탄 배가 정박하자 부두에 나와있던 가이드가 팻말을 흔들며 소리쳤다.“여깁니다, 여기!”염풍도는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지만 럭셔리 관광지로 워낙 유명한 곳이라 20곳은 넘는 여행사가 주둔하고 있는 건 물론 섬 곳곳에 호텔, 리조트, 오락시설 등이 잘 구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장 매력적인 건 편리함을 추구하면서도 섬 본유의 신비로운 매력을 그대로 지켜냈다는 점이었다.그리고 그들을 맞이한 가이드는 진영주가 출발하기 전 예약해 둔 여행사의 직원이었다.“자, 얼른 오십시오. 버스 곧 출발합니다.”숨도 돌리기 전에 가이드의 말이 쉴새 없이 몰아쳤다.“자, 그럼 염풍제2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일단 기본적인 정보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염풍제2도는 비록 개발된 지 2개월밖에 되지 않은 곳이지만 관광시설은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습니다. 세계 각지의 여행객들을 맞이하기 위한 투어 타온도 마련되어 있죠. 관광하실 땐 최대한 제 근처에 꼭 붙어계십시오. 워낙 다양한 나라에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문화차이 등 여러 문제로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꽤 있거든요.”한편, 가이드의 얼굴을 힐끗 살피던 염구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너무 티나네...’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줄인다는 건 관광객들의 정보 루트를 차단한다는 것, 오로지 여행사의 계획에만 따르게 하는 건 딱 봐도 관광객들을 선동해 이상한 물건을 사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인센티브를 챙기려는 속셈이 분명했다.‘인기 여행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지.’“자, 휴식 지점 도착했습니다!”버스가 광장에 도착하자 가이드가 들고 있던 깃발을 흔들었다.“자, 다음 휴식 지점에 도착하려면 2시간은 걸릴 겁니다. 그 사이에는 슈퍼 같은 것도 없이 사실 거 있으면 여기서 미리 사두세
‘관광에는 문제 없겠지만 내 실적에는 큰 문제가 생긴다고!’하지만 이런 말을 대놓고 할 순 없는 노릇.이성과는 버스 밖에 배치된 노점을 가리키며 어색하게 웃었다.“관광객 여러분들의 쇼핑 자유는 물론 보장해 드립니다. 하지만 다들 어떻게든 먹고 살자고 이렇게 힘들게 노점상으로 일하고 있는데 매출이라도 올려주시죠. 저 코코넛 좀 보세요. 저희 염풍도 특산품입니다. 신선하고 시원한 건 물론이고 여자분들 피부에도 그렇게 좋아요. 우리 여성분들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우시지만 자고로 미모도 다다익선 아니겠어요?”피부에 좋다고?순간 손가을의 눈빛이 번뜩였다.손씨 그룹이 청해시에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바로 뷰티 분야에서의 인지도 덕분이었다.‘그래. 저번에 왔을 때 코코넛 먹어 본 적 있었는데 맛은 확실히 좋았어. 퀄리티는 보장됐고... 여기 코코넛을 들여와서 성분을 추출하면...’“구준 씨, 우리 사자.”염구준의 팔짱을 낀 손가을은 진영주와 함께 버스에서 내려 가장 가까운 노점 앞으로 다가갔다.“코코넛 가격이 어떻게 돼요, 사장님?”유창한 영어 실력에 아시아인으로 보이는 노점 사장은 흰 치아를 훤히 드러내며 웃었다.“한국어 하셔도 됩니다. 저도 다 알아들어요! 코코넛이요? 하나에 5만원입니다.”쿠궁!사장의 대답에 염구준은 물론 손가을의 표정도 싸늘하게 굳었다.평소 마트에서 사도 이 정도 가격은 아닌데 현지 특산품을 이렇게 비싸게 판다는 건 분명 비합리적이었다.“사장님, 5만원은 너무 비싼데요.”염구준이 최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관광지 물가가 비싼 거야 당연한 거지만 이 가격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저희가 이런 바가지를 쓸 것 같습니까?”“하이고, 비싸다고 생각되시면 안 사시면 되지요. 억지로 팔 수야 없으니까요.”이런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던 사장은 이성과와 시선을 맞추더니 피식 웃었다.“이 섬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잘 모르시는군요.”이 섬은 휴화산이 자리한 곳, 땅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인해 수분 소모가
상황을 정리한 염구준은 계속 지켜봤다.개방의 이방주가 이면인을 보더니 사악하게 웃었다.“가주가 왔으니 우리 시비를 따져보자고. 오늘 아침에 그쪽 사람이 우리 애들을 때렸어. 그래서 치료비라도 챙기려고 왔는데 이게 과분한 처사 아니지?”수백 명이 되는 개방 무리가 돈을 갈취하기 위해 온 것이다.“누가 누굴 때렸어?”이면인이 나지막하게 물었다.“몰라. 때렸으니 치료비를 줘.”이방주가 어깨를 으쓱하며 억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돈을 뜯어내겠다는 뜻이다.이런 일은 너무 익숙하니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퍽!이면인은 말을 하지 않고 손에 들었던 가방을 던져주면서 물러났다.“이 돈이면 충분해?”“부족해. 여기 땅을 줘.”이방주는 쳐다보지 않고 낡은 별장 구역을 가리켰다.가방에 고작 몇 백만원밖에 들어있지 않지만 땅은 가치가 어마어마했다.“그건 안 된다. 여기는 우리 집이란 말이다.”이면인은 궁지에 몰리자 더는 양보하지 않았다.뒤에 있던 가족들이 분노로 가득차서 씩씩거렸다.용하에서 쫓겨나 이곳까지 왔는데 땅을 내준다면 또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그렇다면 상의할 필요도 없겠네.”이방주가 손을 흔들자 부하들이 우르르 쓸어서 진씨 가문을 공격했다.이 부지를 무조건 손에 넣어야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죽기 살기로 싸우자!”이면인도 악을 쓰면서 기운을 발사했다.전신 경지였다.“진씨 가문이 정말 몰락했네.”멀리서 지켜보던 염구준이 혀를 찼다.은세가문에서 아무리 약해도 반보천인 가주가 있어야 가문을 유지할 수 있었다.가문이란 그랬다.일어서면 몰락하는 흥망성쇠를 반복해서 겪었다.천 년을 이어온 가문들은 대부분 기반이 든든하기 때문이다.싸움이 시작되자마자 벌써 한쪽 실력이 기울어졌다.진씨 가문은 개방의 상대가 아니었다.가장 실력이 있는 이면인이 같은 경지인 개방의 이방주에게 눌려서 얻어맞고 있었다.망기술은 독특한 술법이지만 싸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이렇게 내버려두다가 이면인이 곧 죽을 것 같았다.하지만 염구준은 아
“사람 찾는 건 일도 아닙니다. 용하 화폐로 200만 원입니다.”귀울진은 용하와 접해 있기에 용하 화폐를 사용했다.“용하에서 건너온 진씨 가문을 찾아주세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게요.”염구준이 통쾌하게 대답했다.지금은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니 돈은 얼마를 써도 상관없었다.“은세가문인가?”이면인의 안색이 굳어졌다.그 표정을 보니 진씨 가문의 소재를 아는 것 같았다.염구준이 그것을 눈치챘다.“알고 있으면 말씀하세요. 아니면 우려하는 거라도 있습니까?”“진씨 가문에서 돈을 주면서 그들의 정보를 말하지 말라고 했거든요.”이면인이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염구준의 눈치를 살폈다.“그럼 얼마나 원합니까?”염구준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1000만 원이요.”이면인은 열 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그렇게 많지 않아요. 갖고 온 돈은 전부 여기 있어요. 말하기 싫으면 그만두죠.”염구준은 가방을 앞으로 던져버렸다.그 말에 이면인은 가방을 들어 대충 훑어보았다.적어도 몇 백만 원은 들어 있는 것 같았다.“두 블록 가면 진씨네 국수집이 있는데 거기가 주둔지예요.”“거짓말은 아니겠죠?”염구준이 한마디 더 했다.“절대 거짓말이 아니에요. 제가 이 바닥에서 신용을 잘 지킨다고 소문이 났어요.”이면인은 가방을 챙기고 싱글벙글 웃더니 엄숙하게 대답했다.이 돈이면 3년을 문을 닫아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다.“알았어요. 돈은 받으세요.”염구준은 돌아서 잡화점에서 나갔다.10분 뒤, 이면인은 도둑처럼 가방을 들고 잡화점을 나오더니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빠르게 한 방향으로 달려갔다.이 사람 역시 문제가 있었다.염구준은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입꼬리를 올렸다.이렇게 쉽게 돈을 떼먹다니, 세상에 그렇게 좋은 일은 없다.옆에 진씨네 국수집은 이미 오기 전에 들러서 알고 있었다.모두 평범한 사람으로서 진씨 가문이 누군지조차 몰랐다.“마을 호텔에서 기다리세요. 처리하고 찾으러 갈게요.”염구준은 호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귀울진은 외진 곳에 있는 마을이라 현지 정부에서 아예 관리하지 않아 자치 행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그래서 죄를 지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피난하기 좋았다.점점 많은 범죄자들이 몰려들어 귀울진을 발전시킨 덕분에 마을 규모는 중등 도시 못지 않았다.하지만 법이 존재하지 않아 치안이 엉망이었다.“젊은이, 이곳에 별의별 놈들이 살아서 아주 위험한 곳이야. 백가, 개방, 목숨파를 조심해.”“네.”염구준은 고개를 끄덕일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진씨 가문도 은세가문인데 어떻게 이곳으로 쫓겨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한 가지 가능성은 진씨 가문에서 몰래 잠복해 있다면 찾기가 더 어려워진다.그는 과일 가게를 지나갈 때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사장님, 여쭤볼 게 있는데요.”“과일을 안 사면 아무것도 묻지 마.”사장님은 염구준을 쳐다보지도 않고 시큰둥하게 말했다.어쩔 수 없이 돈을 써야 했다.지폐 한 장을 건넸더니 사장님은 금세 미소를 지으며 공손하게 말했다.“손님, 저는 이 지역에서 유명한 소식통이에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세요.”“진씨 가문이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염구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몰라요. 하지만 저기 구두가게 사장이 진씨입니다.”과일 가게 사장은 솔직하게 말했지만 쓸모 있는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알겠습니다.”염구준은 머리가 아팠다.이곳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돈만 밝히고 허풍만 떨어서 믿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전에도 몇몇 사람에게 물었지만 모두 돈만 받고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그에 비하면 안내자 노인은 성실한 편이었다.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고대영이 조사한 정보가 이것밖에 안 되니까.진씨 가문이 귀울진에만 있다는 것만 알아내서 나머지는 염구준이 발품을 팔아야 했다.그때 노인이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젊은이, 내가 귀울진의 정보왕을 알고 있는데 원하는 가격이 너무 사악하고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니야.”만약 염구준이 빨리 처리한다면 다른 일에 연루되지 않고 빨리 돌아갈 수 있다.귀울진
노인은 당황해하며 현금 몇 장을 더 놓았다.“전부 여기 두었어. 그러니까 보내줘.”오늘 변고가 생겨 톡톡히 손해를 보아 속으로 산적들에게 욕을 퍼부었다.하지만 산적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수레에 누운 염구준을 가리켰다.“저놈을 남기고 영감은 가면 돼. 소는 우리 형제들이 먹게 넘겨.”“안 돼. 우리도 소 덕에 먹고 사는데 넘기면 굶어 죽어.”노인은 애지중지하는 소를 끌고 되돌아가려고 했다.이 산적들은 강탈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피 말려 죽이려는 셈이다.예전에 길을 막던 산적들은 이 정도로 선을 넘지 않았다.그냥 돈만 조금 주면 알아서들 떠났다.만약 안내자를 전부 소멸하면 누구도 이 길을 지날 수 없고 그들은 산에서 굶어 죽어야 했다.“거기서. 죽고 싶어?”그들은 무기를 쳐들고 노인에게 돌진했다.우두머리는 손에 총까지 들고 있었다.‘젠장.’노인은 걸음을 멈추고 의기소침한 얼굴로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오늘 여기서 도망치지 못하고 죽게 생겼다.“여기 개판이네. 벌건 대낮에 길을 막고 강탈하냐?”그때 염구준이 수레에서 내리며 바닥에 있는 자갈들을 발로 차서 뿌렸다.파팟!자갈은 빠른 속도로 튕겨 달려오는 무리들에게 하나씩 명중했다.그리고 핏방울을 튕기며 전부 바닥에 쓰러트렸다.순식간에 발생하여 상대방은 준비할 시간도 없이 전멸한 것이다.그래도 산적들은 죽어 마땅했다.“어르신, 뭐 하세요? 갑시다.”염구준은 얼떨떨해 서 있는 노인을 향해 소리쳤다.가는 길에 도운 것뿐이니 별일도 아니었다.“어, 그래.”그제야 노인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방금 일어난 일은 정말로 충격적이었다.바로 그때 노인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조심해.”우두머리 산적이 죽지 않고 총을 들고 염구준을 향해 미친듯이 돌진하는 것이다.“개자식, 죽어라!”펑펑펑!산적은 방아쇠를 힘껏 당겨 총을 몇 발이나 쏘았다.노인은 너무 놀라 두 눈을 찔끔 감고 죽지 않기를 기도했다.그런데 모든 탄알을 사용했지만 염구준은 여전히 제 자리에 서 있었다
“서커스단 일 때문이야?”손가을이 눈살을 찌푸렸다.청해에서 최고 여성 사업가 신분으로 며칠 전에 있었던 서커스단의 사건에 대해 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맞아. 서커스단과 연관이 있어. 제때에 처리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빠질 거야.”염구준이 인정했다.“그럼 빨리 다녀와. 난 희주를 지키면서 집에서 기다릴게.”손가을은 서운했지만 억지로 웃었다.남편이 하려는 일에 그만큼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아내로서 가정과 손씨 그룹을 지켜서 남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지지나 다름없었다.하지만 다른 방면으로 말하면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했다.“가을아, 넌 정말 최고야.”염구준은 다가가 아내를 와락 끌어안았다.손가을은 마음이 너그러워서 염구준은 항상 고마워하고 있었다.“다들 보고 있어. 집에 가서 안아줘.”손가을이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누가 보는데?”염구준이 뒤돌아보았더니 들어올 때 문을 닫지 않아서 직원들이 목을 길게 빼고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다들 깨알 쏟아지는 장면을 보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흠흠.”염구준이 헛기침을 하자 다들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눈길을 돌려버렸다.문을 닫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 같았다.염구준은 아내를 풀어주고 또 구경하러 몰려들까 봐 사무실 문을 닫으러 갔다.손가을은 이어서 업무를 보고 염구준은 옆에서 가끔 서류를 건네며 퇴근 시간까지 함께 있었다.부부는 학교에 들러 딸을 데리고 밖에서 저녁까지 먹고 집에 돌아왔다.이튿날 아침, 염구준은 미리 아침밥을 준비해 놓고 귀울진으로 향했다.빨리 처리하고 일찍 돌아올 생각이었다.용하와 접한 국경 도로에 소 수레 한 대가 여유 있게 가고 있다.수레에 앉은 사람이 바로 염구준이었다.귀울진은 외진 곳에 있어 도로는커녕 사람이 지날 수 있는 길조차 없었다.그는 안내원을 찾아 원시적인 교통 수단으로 이동하기로 했다.길에서 노인이 이곳의 풍습을 소개했다.하지만 진씨 가문을 들어본
망기술의 역할을 알고 있는 염구준은 문제점을 말했다.“진씨 가문은 어디 있어? 거록이 혹시 거기에 있나?”고대영은 숨기지 않고 염구준의 질문에 바로 답했다.“진씨 가문은 해외로 쫓겨나서 국경에 있는 귀울진에 있어. 거록이 거기 있는지는 나도 몰라.”염구준은 용하의 은세가문이 왜 해외로 쫓겨났는지 알 수 없었다.이런 상황은 정말 흔치 않았다.“수고했어. 약속대로 내가 수고비는 보내줄게.”염구준이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그가 원하는 정보는 이것밖에 없었다.“돈은 됐어. 우리 고씨 가문의 외가 가주 자리가…”고대영은 돈을 받는 대신 다른 말을 하려고 했는데 염구준이 끊어버렸다.“됐어. 이따가 계좌로 이체할게. 시간 되면 청해에 놀러와.”염구준은 상대방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끊어버렸다.계속 통화를 했다면 고대영이 또 이 말을 꺼낼 게 뻔했다.“모두 같은 핏줄이니 네가 고씨 외가의 가주가 되어라.”비록 염구준의 생모 고유란이 고씨 외가의 가주였지만 지금 그와 관련이 없으니 이어받을 의무도 없었다.지금도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염구준은 집으로 나가 주차장으로 갔다.손가을을 만나 자초지종을 말하고 귀울진에 갈 생각이었다.그런데 주자창에 갔을 때 살기를 느끼고 걸음을 멈추었다.“숨어 있지 말고 당장 나와.”아직 싸우기 전에 살기부터 흘리다니 정말 모자란 놈들이었다.스스슥!갑자기 나무 위, 관목 안, 하수도 뚜껑 아래서 그림자들이 뛰쳐나왔다.모두 복면을 써서 진짜 얼굴은 볼 수 없었다.“하, 실력이 제일 강한 놈이 정진왕자라니, 죽으러 왔어?”염구준이 그들을 훑어보았다.“거록 존주께서 말씀을 전달하라 하셨다. 청해에만 있어라. 밖으로 나가면 바로 죽는다!”일행은 먼저 협박 어린 말을 전달했다.“청해에서 나가겠다면 어떡할 건데?”염구준이 껄껄 웃으면서 되물었다.“그럼 죽인다!”한 사람이 싸늘하게 말하더니 일행이 동시에 염구준을 공격했다.아마도 그의 실력을 모르는 것 같았다.촤아악!염구준이 몸을 번쩍
“필요 없어. 겁 먹고 외국에 도망친 너랑 달라. 정말 창피해. 우리 떠돌이 7인조의 명성에 먹칠했어. 염구준 따위가 감히 내 대업에 끼어들었으니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역시 자극을 받은 거록 존주는 흑풍을 경멸하면서 말했다.지금 흑풍은 그가 말한 것처럼 염구준이 무서워서 정면으로 맞서지 못했다.지난번 윤씨 가문에서 염구준과 맞붙었을 때 한 손을 잃어버려서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았다.“넷째 형, 잘 생각해 봐. 그러다 훅 가는 수가 있어.”흑풍은 속으로 기뻤지만 겉으로 여전히 걱정하는 것처럼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늘어놓지 마. 그보다 네가 준 사술법으로 천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냐?”지금 거록의 관심사는 염구준보다 사술법이었다.천인 경지는 꿈에서도 도달하고 싶은 것이라 매우 유혹적이었다.“물론이지. 심혈주를 만들어서 삼키면 바로 천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어.”흑풍은 더는 설득하지 않고 확실하게 대답했다.거록이 단호하게 나오니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그렇다면 됐다. 내가 천인 경지를 돌파하면 너 대신 염구준 그놈을 죽여줄게.”거록은 자신있게 말했다.그 단계에 도달하는 순간, 그는 세상에서 최고 고수로 거듭나 누구도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고마워, 형. 만약 기회가 된다면 염구준의 손에 있는 옥패 4개도 챙겨줘.”흑풍은 공수하며 인사를 올렸다.그의 목표는 지금도 옥패였으니 천인 경지에 도달하는 사술법에 관심이 없었다.어쩌면 다른 방법을 알기에 사술법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걱정 마. 난 옥패에 관심이 없어. 만약 손에 넣으면 너한테 줄게.”거록도 승낙했다.옥패 8개에 심도 깊은 무학이 있어서 보물이라는 것은 다들 알지만 더 깊은 의미는 알지 못했다.“그럼 이만 끊을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흑풍은 말을 끝내고 통화를 끊어버렸다.지금 그가 있는 곳은 어두운 지하였다.그곳에 허약한 몸의 사내가 견갑골을 입고 있었다.“젠장.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 사술법을 알려주면 날 풀어준다고 했잖아.”사내는
염구준은 초상비 일행에게 철창에 갇힌 사람들을 구조해서 병원에 데려가라고 지시했다. 물론 치료비는 모두 그가 부담할 것이다.광대와 서커스단 관련자들은 경찰에 보내서 법으로 다스리도록 안배했다.서커스단의 동물들은 청해 동물원에 보내져서 적절하게 배치했다.그 바람에 동물원에서 땡잡았다.더는 허스키를 늑대라고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사람이 호랑이로 분장할 필요도 없었다.모든 후사를 처리한 후, 염구준은 공연장에서 나와 모녀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서 스트레스를 풀었다.그날 저녁, 염구준에게 전화가 왔었다.“염구준 씨.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서커스단은 원래 합법이었는데 단장이 살해된 후 나쁜 놈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파렴치한 짓을 했더군요.”“이들 우두머리는 코브라라 부르고 거대한 조직의 일원으로서 유사한 패거리가 더 있는 걸로 추측합니다. 구제척인 것은 아직 자백받지 못했어요.”경찰 측에서 조사한 것을 모두 염구준에게 알려줬다.“알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염구준이 대답했다.이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경찰에게 맡기면 되니 그가 나설 필요가 없었다.이어서 초상비에게서도 연락이 왔다.구출한 사람들이 모두 고비를 넘겼지만 치료비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치료비는 염구준이 모두 낼 테니 이 일에 대한 모든 권한을 초상비에게 맡겨서 처리하게끔 안배했다.심혈을 뽑으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었다.아무리 치료를 해도 수명이 최소한 10년은 줄어들 것이다.떠돌이 7인조에서 하는 짓들은 어느 하나 정당한 것이 없었다.이런 독종들은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염구준은 거록 존주의 소식을 얻지 못했지만 다른 방면으로 단서를 찾았다.망기술이라는 독특한 방법은 용하에서도 사용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그는 은세가족의 윤대약, 고대영에게 연락해 단서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동시에 직접 얼음 인간 즉 봉유곡의 초상화를 그려 전신전에서 행방을 찾으라 지시했다.모든 일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거록 존주가 사람의 심혈을 뽑았던
서커스단 공연은 염구준이 사라진 후로 잠시 중단되었다.손가을은 손씨 그룹에서 절반 넘는 경호원들을 불러 수색하기 시작했다.거기에 호찬, 초상비 등 고수들도 있고 신위무관의 원종과 정경림도 있었다.이 기세로 보아 은세가문과 전쟁을 치러도 충분할 것 같았다.용필은 신혼여행을 떠나서 연락하지 않았다.“당장 사람을 풀어줘!”손가을이 언성을 높이며 모처럼 화를 냈다.평소 그녀는 성격이 털털해서 어떤 일에 부딪쳐도 화를 내지 않았다.하지만 남편이 눈앞에서 사라졌으니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아무리 남편의 실력이 대단해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여사님, 저희 계약서까지 작성했어요.”광대가 계약서를 내밀며 말했다.촤아악!“부끄럽지 않아서 이런 불법 계약서를 꺼내?”손가을은 빼앗아와서 바로 찢어버리고 바닥에 내팽개쳤다.오늘 염구준을 찾지 못한다면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이다.“근데 마술사가 사라져서 저희도 찾을 수 없어요.”광대가 어깨를 으쓱하며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시큰둥하게 말했다.“땅을 파서라도 찾아내세요!”손가을이 뒤에 있는 경호원에게 지시했다.“아빠 예전처럼 사라지는 거예요?”깜짝 놀란 염희주가 울면서 물었다.지난 일은 어린 가슴속에 응어리가 되어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팠다.이번 일로 인해 아마 평생 서커스단에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았다.“아니야. 아빠는 우리랑 숨박꼭질하는 거야.”손가을은 애써 웃으면서 딸을 진정시켰다.지시를 받은 손씨 그룹 경호원은 이미 굴착기까지 불러서 땅을 팔 기세였다.서커스 경호원들은 아무리 말려도 역부족이었다.관중들은 그 장면을 보고 혹시나 불똥이 튈까 봐 뿔뿔이 사라졌다.“가자. 대표님 화 나셨어. 보통 일이 아니야.”“손 대표님 사람이 얼마나 좋은데, 부디 남편을 찾길 바라.”“이제 보니 서커스가 문제 있네. 방금 무대에 나가지 않아서 다행이야.”떠들썩하던 관중석은 텅텅 비어서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펑!경호원이 굴착기를 작동해 땅을 파려고 할 때 굉장한 소리가 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