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손가을은 입술을 가볍게 깨물고 고개를 돌려 염구준의 옆모습을 보며 착잡한 눈빛을 드러냈다.옆에 서 있는 이 남자는 자기 남편이지만 마치 베일에 싸인 사람처럼 가까이에 있어도 멀리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큰 문제라도 그는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문자 하나로 다섯 명의 도련님을 불러와 동창회에서 엄마의 체면을 세워주었다!‘구준 씨보다 더 훌륭한 사위가 또 있을까?’정답은 없을 것이다."한진 씨."외부인이 자리에 있으니, 한진에 대한 염구준의 호칭도 자연히 조금 달랐다. 그는 여가 부자와 왕연 모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오늘은 장모님의 동창회에요. 상황을 너무 보기 좋지 않게 하고 싶지 않네요. 상관없는 사람들은 모두 물러보내고 동창회를 계속 진행하는 게 어떨까요?"서로 의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진의 귀에는 다르게 들렸다.이것은 상의가 아니라 전신전 전주의 명령이다!"이리 와!"한진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손을 세게 흔들었다."여가 부자와 왕연 모녀를 전부 쫓아내고 지금부터 용두에 여가 쥬얼리는 더 이상 없을 거야! 바로 실행해!"연회장 밖에는 스프링 호텔에서 근무하는 50여 명의 경호원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와 여가 부자와 수행경호원을 모두 때려눕혀 발목을 잡아 연회장 밖으로 끌고 나갔다.그리고 왕연 모녀!이 악랄한 여인에게 경호원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방망이로 정면을 내리쳤다. 왕연은 울며불며 난리가 났고 결국 몽둥이에 맞아 기절해 발목을 잡힌 채 밖으로 끌려 나갔다.연회장이 조용해졌다!바깥 복도에서 여승지의 울부짖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한 도련님, 용서해 주세요... 이 녀석아, 진작 이혼하라고 했잖냐. 여가에는 이젠 너 같은 자식이 없다... 왕연, 우리 여가를 이렇게 만들었으니, 너도 잘 지낼 생각 하지 마! 여가를 위해 당신과 당신 딸을 죽일 거야..."소리가 점점 멀어지다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사위 잘 둔 덕에 이제 재벌들과 한자리에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민아!”함께 학교를 다닐 때도 곽민과 친하게 지냈고 방금 전 왕연이 못 되게 굴 때도 진숙영의 편을 들어준 건 곽민뿐이었기에 진숙영은 다른 사람들은 깔끔하게 무시한 채 곽민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어보였다.“이리 와. 우리 사위는 저쪽에 앉았어. 내가 소개해 줄게. 다른 도련님들한테 얼굴 도장도 찍을겸.”한편, 그녀의 말에 곽민은 안색이 창백하게 질리고 진숙영의 팔을 잡은 손에도 힘이 꽉 들어갔다.다른 도련님들?‘동창들 중에서 나름 잘 나간다는 애들도 도련님들에 비할 바야 못 되지.’곽민을 제외한 다른 동창들 역시 산해진미를 앞에 두고도 젓가락질 한 번 못한 채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초특급 재벌들의 자제들, 그 수치를 헤아릴 수조차 없는 막대한 자산, 용하국 권력과 재력의 상징을 이렇게 직접 눈앞에서 본다는 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이라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워낙 강력한 포스에 다들 인사는커녕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한편, 손가을의 손을 꼭 잡은 염구준은 다른 사람들에겐 눈빛도 주지 않은 채 바로 곽민의 앞으로 다가갔다.“방금 전, 상황에서 장모님의 편을 들어주신 건 사모님뿐이셨습니다. 저희 장모님과 아주 돈독한 사이신가 보네요. 그리고 아까 애기를 들어보니 사모님 남편분은 의대 출신이고 지금 사모님은 가정주부시라죠?”한진을 힐끗 돌아본 염구준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그건 한진 씨한테 맡기시죠.”‘한진한테 맡긴다고? 그... 그게 무슨 소리인지...’“아, 아니 그게...”한진을 힐끗 바라보던 곽민이 다시 잔뜩 겁 먹은 얼굴로 염구준을 돌아보았다. 정말 기가 많이 죽었는지 목소리마저 살짝 떨리고 있었다.“난 그냥 평범한 사람이야. 포부 같은 것도 별로 없고. 한진 대표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내가 뭐라고 내 일자리까지 알아봐 주겠어.”이에 염구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살짝 웃었다.‘장모님 친구라는 것만으로도 그런 대접받으실 자격 충분한데.’“
방금 전엔 꽤 멀리 떨어져있어서 제대로 실감이 안 났다면 바로 눈앞에서 귀티가 좔좔 흐르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태산 같은 부담이 가슴을 턱 막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어머, 쟤 지금 그 사람들 옆에 앉은 거야?”“학교 다닐 때부터 숙영이랑 친했잖아. 룸메이트였을걸.”“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아까 상황에서 곽민 쟤만 숙영이 편 들어서 저런 대접받는 거 아니야. 솔직히 나도 나서려고 했는데 휴... 타이밍을 놓쳤네.”같은 공간, 다른 동창들은 멀리서 이 광경을 바라보며 부러운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그냥 옆자리에 앉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평생 자랑할 만한 얘기거리였으니까.“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희보다 훨씬 더 어른이시잖아요. 모르는 사람들이야 저희더러 대표네, 도련님이네 하지만 어차피 아무 의미 없어요.”염구준의 부탁이니 한진 역시 곽민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사모님, 무슨 부탁이신지는 모르겠지만 뭐든 말씀하세요.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돕겠습니다.”“그... 그게...”살아생전 한진 대표에게서 사모님 소리를 들을 줄이야.다리에 힘이 풀리는 기분에 살짝 휘청이던 곽민은 진숙영과 손가을의 부축을 동시에 받고 나서야 겨우 안정을 되찾고 용기를 내 말했다.“별 건 아니고... 내가 사실은 일자리를 못 찾는 게 아니라 안 찾는 거예요. 나이도 많고 손주도 봐줘야 하는데 출근까지 하면 체력이 못 따라갈 것 같아서요. 사실 문제가 있는 쪽은 우리 남편이에요. 이제 겨우 51살에 의사로서 능력도 나쁘지 않은데 동네 진료소에서 일하는 모습만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안 좋아서요. 그래도 왕년에는 용두 의대까지 나온 수재였어요. 솔직히 용두 대학병원에서 일하려고 했었는데 그땐 용두에서 방 한 칸 얻기 힘들 정도로 집안 사정이 안 좋아서... 결국 현실 앞에서 꿈을 접은 거죠.”곽민의 설명에 한진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용하국의 중심 도시로서 용두는 땅 한 평이 곧 금싸라기 같은 곳, 게다가 대학병원이 있는 곳
“아, 원장님. 참... 무슨 말씀을 드려야지 할지... 정말, 정말 너무 고맙습니다.”휴대폰을 꼭 쥔 곽민은 어찌나 기쁜지 횡설수설을 이어갔다.“내일 바로 그이 대학병원으로 보내겠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참... 정말...”화상춘 역시 곽민의 감격스러운 감정을 그대로 느꼈는지 목소리가 한결 더 가벼워졌다.“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감사인사는 한 대표님, 아니 염 대표님과 진숙영 여사님께 하시죠.”‘아, 맞네.’순간 멍한 표정을 짓던 곽민은 전화를 끊지도 않고 염구준과 진숙영을 향해 눈시울을 붉혔다.“숙영아, 구준아...”“아니에요, 사모님. 남편분 실력이 워낙 뛰어나시니 이런 기회도 오는 거죠.”그리고 염구준은 옅은 미소를 띤 채 질투와 부러움으로 가득한 표정의 다른 동창들을 향해 말했다.“이건 하늘에서 뚝 떨어진 행운이 아니라 평소 덕을 쌓은 덕분이라고 보는 게 맞죠. 사모님처럼 언제 어디서든 불의에 맞서고 맞는 건 맞다, 아닌 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대단한 분이시니 이런 행운과 기회도 찾아오는 겁니다. 다른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시죠?”염구준의 말에 다른 동창들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어졌다.하늘에서 떨어진 행운이 아니라 평소 덕을 쌓은 덕분이라는 말이 왠지 무겁게 느껴져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미... 미안해, 숙영아.”잠깐의 침묵 끝에 누군가 먼저 입을 열었다.“솔직히 왕연이 한 말 다 거짓말이라는 거 알고 있었어. 그런데 아까 그 상황에서 괜히 나섰다가 보복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그게 무서워서 네 편 못 들어줬어...”“그래, 숙영아. 우리가 미안했어.”“숙영아, 아까 왕연이 그렇게 당할 때 솔직히 우리 다들 속이 시원했어. 그리고 네 덕분에 이렇게 높으신 분들과 같이 식사 자리도 함께 하고. 이런 영광을 어디서 누리나 그래.”“구준아, 우리가 원망스러운 마음은 알겠지만... 왕연 성격도 알잖아. 그래서 차마 말을 못 꺼냈어. 그런데 이번
염풍도?진영주와 인사를 나눈 염구준은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손가을과 시선을 마주쳤다.얼마 전 주작호 사고가 있었을 때 염구준은 염풍도의 자기장을 뚫고 손가을을 구조하는 데 성공했었다.그때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있으니 지금까지도 공식적인 입장은 ‘염풍도의 천연 자기장이 갑자기 사라져 쌍둥이섬이라는 기묘한 자연경관을 만들어냈다’는 것뿐이었다.이런 뉴스가 자연스레 묻힐 수 있었던 건 뭐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이 세상 어느 한 곳에 그렇게 신기한 곳이 생겼구나라는 뉴스 한 줄로 넘겼던 무반응 덕분이었다.일일 소비금액만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럭셔리 휴가지를 갈 생각 자체를 아예 안 하고 있을 테니까.“글쎄 요즘 염풍도 모험이 그렇게 유행이라잖아.”향산 저택으로 향하는 길, 뒷자리에 앉은 진영주는 손가을과 진숙영의 팔을 번갈아 잡아당기며 재잘거림을 이어나갔다.“그런데 그 사람들이 뭘 발견했는지 알아? 글쎄 거기 화산이 있었대. 그 휴화산에서 특별한 자기장이 나왔던 건데 이젠 자기장이 거의 소모돼서 화산 온천만 남았대. 거기에 몸을 담그면 그렇게 편하다잖아.”“그래?”아무렇지 않은 척 되물었지만 손가을의 마음은 어느새 흔들리기 시작했다.자기장이 처음 사라졌을 때 손가을은 이미 염구준과 화산 모험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고 그 화산에서 옥패 하나를 발견했다. 지금까지 획득한 옥패는 총 3개, 옥패 하나, 하나마다 어마무시한 고대 비밀이 숨겨져있다고 하지만...손가을이 신경 쓰는 건 그게 아니었다.염구준과 결혼한 뒤로 제대로 된 웨딩촬영도, 신혼여행도 못 가본 터라 아쉬움이 많이 남은 그녀였다.“염풍도... 나도 가보고 싶어.”운전 중이던 염구준이 백미러로 손가을을 힐끗 바라보았다.“그래. 아, 물론 이번엔 제대로 준비하고 가자. 경호원들도 대동해서.”저번 납치사건이 깊은 트라우마로 남은 것도 있고 흑풍 조직까지 나타났으니 걱정이 앞서는 염구준이었다.정경림도, 용준영도 있고 뢰인과
원씨 가문 가주 원종, 나름 강자니까 우리 경호를 맡기기엔 충분해. 우리가 염풍도로 가기 전까지 무조건 모시고 올게. 여기에 경림 아저씨까지 합류하면 나름 안전할 거야. 기다리고 있어.”그리고 염구준은 단 이틀만에 모든 협상을 끝냈다.염구준이 직접 나선 이상, 원씨 가문에서 부탁을 거절할 리가 없었고 가주인 원종이 직접 최정상 고수 2명과 함께 청해시로 향해 정경림과 각각 손씨 그룹 본부와 항산 별장의 경호를 맡게 되었다.그렇게 손태석, 손씨 그룹 임원진들의 안전까지 보장한 뒤...“여긴 걱정하지 말고 재미있게 놀다와.”빈해 공항.손태석과 진숙영은 흐뭇한 얼굴로 염구준 일행을 바라보았다.“염 서방이 있어서 마음이 놓여.”손태석이 염구준의 어깨를 토닥였다.“희주도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대. 경림이 형이 잘 지키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정경림, 용준영, 뢰인, 그리고 12명의 엘리트 경호원들이 학교 주위를 물 샐 틈 없이 지키고 있는 데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지하 벙커로 옮기기로 되어 있어 흑풍 존주가 직접 오지 않는 한, 위험할 상황은 벌어질 리 없었다.그리고 흑풍 존주는...염구준과의 결투에서 중상을 입은 터라 완치까지 적어도 1년은 걸릴 것이니 그 동안은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되었다.“장인어른, 장모님, 그럼 저희 가보겠습니다.”그렇게 부푼 가슴을 안고 염구준 일행은 염풍도로 향했다....한편, 염풍도.“염구준이 이미 옥패 3개를 손에 넣었다고 합니다.”거센 파도의 바다 위, 20여 명의 장정들이 대형 선박 갑판 위에 서있다.그들 중 검은색 망토를 두른 이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조직에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염구준이 염풍도로 향하고 있다고 한다.”이에 다른 남자들은 동시에 미간을 찌푸렸다.염구준이 자기장을 파괴하고 옥패까지 획득했다는 건 조직 내부에서 이미 공공연히 알고 있는 사실, 그런데...옥패까지 다 가져간 마당에 왜 다시 돌아온 걸까?“왜 다시 돌아온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어.”망토
“염구준이 다시 염풍도로 가는 건 분명 기회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걸 잊지 마라. 다들 우호법도 곧 도착할 때까지 기다린다.”우호법?이에 모인 이들 중 몇몇은 코웃음을 내쳤다.‘존주님한테 알랑대는 개 주제에...’오늘 자리에 모인 이들은 다들 흑풍 조직에서 내놓으라 하는 강자들, 리더인 흑풍 존주 앞에서도 기가 죽지 않는, 아니 심지어 농담마저 건넬 수 있는 일당백 고수들이었고 그만큼 자존심도 강했다.하지만 우호법 ‘도천연’은 달랐다. 전신 경지를 바로 코앞에 둔 고수임은 분명한데 흑풍 존주에 대한 충성심은 그야말로 병적이었고 그런 그의 충심은 콧대 높은 흑풍 조직원들 사이에서 오히려 독특하게 느껴졌다.철썩철썩...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저 멀리 파도가 이상하리만치 넘실대더니 작은 체구의 누군가가 해수면을 밟고 타다닥 달려왔다.“형님.”백 미터 넘는 거리를 훌쩍 점프한 도천연이 갑판에 발을 딛자 학신통이 먼저 다가갔다.“존주님 상태는 어떠십니까? 이번에 염구준이 다시 염풍도에 온다는데. 우리도...”하지만 도천연은 무거운 얼굴로 자리에 모인 이들을 훑어보았다.“존주님의 상태는 조직 최대 기밀사항이니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마라. 그리고 내가 여기로 오기 전에 존주님께서 특별히 당부하셨다. 염구준의 손에서 옥패를 빼앗는 자, 그게 누구든 다음 존주로 추대하겠다고.”쿠궁!폭탄발언에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진 것도 잠시, 학신통을 포함해 모든 이들의 눈동자가 살기로 번뜩이기 시작했다.다음 존주?흑풍 조직원들이라면 누구든 갈망하는 자리, 수천, 수만 명의 강자들을 호령할 수 있는 절대 거부할 수 없는 권력의 징표를 물려준다는데 어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그게... 사실입니까?”가장 먼저 이성을 되찾은 학신통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그러니까 저희 타깃은 옥패고... 그럼 형님 타깃은 뭡니까?”“손가을.”한참을 침묵하던 도천연이 천천히 손가을의 이름을 내뱉었다.‘손가을?’순간 학신통의 눈동자가 살짝
한편, 염풍도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환고도’.공항이 없는 염풍도로 관광을 오는 사람들은 무조건 환고도에서 내려 2시간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비로소 섬의 유일한 항구에 도착할 수 있다.“진영주 씨 어디 계신가요?”염구준이 탄 배가 정박하자 부두에 나와있던 가이드가 팻말을 흔들며 소리쳤다.“여깁니다, 여기!”염풍도는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지만 럭셔리 관광지로 워낙 유명한 곳이라 20곳은 넘는 여행사가 주둔하고 있는 건 물론 섬 곳곳에 호텔, 리조트, 오락시설 등이 잘 구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장 매력적인 건 편리함을 추구하면서도 섬 본유의 신비로운 매력을 그대로 지켜냈다는 점이었다.그리고 그들을 맞이한 가이드는 진영주가 출발하기 전 예약해 둔 여행사의 직원이었다.“자, 얼른 오십시오. 버스 곧 출발합니다.”숨도 돌리기 전에 가이드의 말이 쉴새 없이 몰아쳤다.“자, 그럼 염풍제2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일단 기본적인 정보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염풍제2도는 비록 개발된 지 2개월밖에 되지 않은 곳이지만 관광시설은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습니다. 세계 각지의 여행객들을 맞이하기 위한 투어 타온도 마련되어 있죠. 관광하실 땐 최대한 제 근처에 꼭 붙어계십시오. 워낙 다양한 나라에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문화차이 등 여러 문제로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꽤 있거든요.”한편, 가이드의 얼굴을 힐끗 살피던 염구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너무 티나네...’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줄인다는 건 관광객들의 정보 루트를 차단한다는 것, 오로지 여행사의 계획에만 따르게 하는 건 딱 봐도 관광객들을 선동해 이상한 물건을 사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인센티브를 챙기려는 속셈이 분명했다.‘인기 여행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지.’“자, 휴식 지점 도착했습니다!”버스가 광장에 도착하자 가이드가 들고 있던 깃발을 흔들었다.“자, 다음 휴식 지점에 도착하려면 2시간은 걸릴 겁니다. 그 사이에는 슈퍼 같은 것도 없이 사실 거 있으면 여기서 미리 사두세
김대석이란 인물은 알고 있었다.손씨 그룹 산하 파트너인데 손가을의 눈치를 살피면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었다.“저기요. 여기 관장 있어요?”김영영이 큰소리로 물었다.“나다. 무슨 일이 있으면 말해.”원종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말했다.그들이 신위무관에 들어오자마자 언성을 높여서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왕자 경지 무술인과 연습하고 싶어요. 가격을 부르세요.”김영영은 바로 가격으로 해결하려 들었다.“하, 돈거래는 자발적으로 나서야지 난 절대 강요하지 않아.”나이 있는 원종은 말을 재치 있게 받아 치면서 뜻을 확실히 전달했다.“알았어요. 그럼 훈련장을 내주세요. 그래줄 수 있죠?”김영영은 억지를 부리지 않고 순순히 따랐다.“한 시간에 5만 원이야. 편한대로 해.”원종은 말을 끝내고 더는 상대하지 않았다.그런데 김영영도 조급하지 않았다.그녀는 일행과 무관 내부를 관람하듯 천천히 둘러보았다.한참 둘러보더니 발걸음을 멈추고 손가을이 있는 훈련장을 가리켰다.“저기 마음에 드네. 저분한테 자리 비켜달라고 해.”저분이라고 말했지만 강도 짓이나 다름없었다.둘러보면 빈 훈련장이 많았는데 굳이 다른 사람 것을 빼앗으려고 했다.심보가 나쁘거나 시비를 거는 것이 틀림없었다.“알겠습니다. 성녀님.”김영영 곁에 서 있던 중년 남자가 대답하더니 번쩍 뛰어서 손가을에게 돌진했다.전신 경지 고수였다.쿵!남자가 허공에 떴을 때 예상치 못한 한 줄기 검기에 휩쓸려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바닥에 떨어진 후 아예 일어나지 못했다.“감히 내 아내를 건드려? 죽고 싶어?”반보천인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지자 곁에 사람들은 숨을 쉬기 힘들었다.염구준은 엄청 화가 났다.“선배님, 일부러 그런 게 아닙니다. 부디 용서해 주세요.”당황한 남자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이런 고수에게 함부로 대항할 수 없었다.하지만 김영영은 주제를 모르고 반보천인 고수 앞에서 당당하게 굴었다.“선배님, 저희 해치지도 않았는데 왜 이러는 겁니까? 게다가 저희 가문
눈만 마주쳤을 뿐인데 염구준은 아내가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알고 피식 웃었다.“당신은 운기만 해. 내가 인도할게.”염구준은 한 손을 손가을의 머리 위에 올리고 기운을 조금씩 주입하면서 운기하는 규칙을 가르쳤다.운기하는 회수가 늘어날수록 손가을은 자신의 운기에 점점 익숙해졌다.반보천인 고수가 직접 가르치니 옆에서 지켜보는 무술인들은 정말 부럽기 그지없었다.한 시간 뒤 손가을이 눈을 떴다.그녀는 피곤해 보였지만 그래도 환한 미소를 지었다.“구준 씨, 이제 혼자 할 수 있어.”염구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욕심내면 안 돼.”기운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며칠을 배워야 할 것이다.염구준은 옆에 있는 원종과 정경림에게 다가갔다.“혹시 강호에서 이런 문자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그는 본인의 휴대폰에서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어제 민씨 가문에서 가져온 서책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었다.그중에서 한 글자만 염구준이 직접 쓴 것이다.“못 봤어. 아마도 용하의 문자와 같은 맥락일 거야.”두 사람은 고개를 흔들었다.서책에 관한 옥패의 정보를 수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이 일은 조급해 말고 천천히 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어차피 지금 한가하니 염구준은 두 사람과 무술에 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얼마나 습득할지는 본인에게 달려 있다.무관 내에서 모두 화기애애한 분이기에 각자 무술을 연습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바로 그때 한 여자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렸다.“실력이 좋은 무술인을 찾아서 연습해야 돼. 평범한 무술인은 일방적으로 맞는다니까.”“그럼요. 신위무관은 청해에서 가장 큰 무관이라서 다양한 무술인들이 있어요. 분명 적합한 상대를 찾을 겁니다.”한 남자가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열 명 정도 되는 일행이 위풍당당하게 신위무관에 들어섰다.“당신들 관장은 어디 있어? 나와보라고 해.”남자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건방지게 말했다.그 말에 무관에서 연습하던 무술인들이 동작을 멈추고 입구 쪽을 쳐
“그럼 됐어. 전부 가르쳐줘.”손가을은 기뻤지만 아직 어떤 것들을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그게… 가장 효율적인 것은 실전이야. 근데 쉽게 다칠 수 있어.”염구준은 약간 말을 더듬었지만 솔직하게 말했다.아내를 아껴줘도 부족한데 정말 손을 대기가 어려웠다.“괜찮아. 나 약하지 않아.”손가을은 남편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오히려 설득했다.잠깐 생각에 잠긴 염구준이 아내의 눈빛을 보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일단 시험해 보자.”그는 경계를 낮춰 똑같은 정진왕자 초기 단계로 맞추었다.이런 상황에서 봐줄 수도 없고 너무 경지를 낮춘다면 아내가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알았어.”손가을은 공격 자세를 취했다.전에 염구준이 권법을 가르쳤지만 한번도 실전으로 사용한 적이 없었다.“가을아, 준비됐으면 자유롭게 공격해.”염구준이 말했다.“조심해.”손가을은 주의를 주면서 작은 주먹을 앞으로 무찔렀다.염구준은 두통이 지끈 아팠다.아내의 동작에 허점이 가득하고 보조와 자세가 너무나 엉성했다.하지만 같은 경지에서 기운은 약하지 않아 거칠게 사용했다.탁!염구준은 아내가 날린 주먹을 피해 옆으로 비키고 한쪽 발을 휘두른 것만으로 쉽게 넘어트릴 수 있었다.두 사람은 같은 경지지만 실전 경험이나 기술 차이가 천차만별이었다.염구준은 쏜살같이 달려가 두 손으로 아내의 허리를 감쌌다.“와우, 우리 실력 차이가 너무 나. 당신 기운을 전혀 느끼지 못 했어.”손가을은 충격을 먹었다.“아니면 실전 말고 노하우 몇 개를 알려 줄게.”염구준은 감히 손을 대지 못했다.눈앞에 있는 사람은 부하가 아니라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아내이기 때문이었다.“알았어. 당신 말 들을게.”손가을은 남편이 난감해하자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앉아.”염구준은 작은 칠판을 가져와 현장에서 가르치려 했다.반보천인 고수의 수업은 흔히 들을 수 없으니 이미 전신 경지를 돌파한 원종과 정경림도 작은 공책을 들고 다가왔다.두 사람은 나이가 많아서 기회가 없다면 아마도 계속
“여보, 고마워. 내일 업무까지 끝내서 내일 시간 있어.”“무슨 말인지 알았어.”두 사람은 말을 마치고 이불속에서 밤 늦게까지 사랑을 속삭였다.이른 아침, 손가을은 잠옷을 입고 남편의 가슴에 엎드렸다.“구준 씨, 어제 사무실에서 갑자기 정진왕자 경지에 도달했어. 근데 아직도 기운을 사용하는데 서툴러. 당신이 가르쳐줄 수 있어?”용의 기운은 정말 대단했다.경지가 낮은 무술인에게 주입했더니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실력이 강해졌다.하지만 기운만 있고 싸울 줄 모른다면 같은 경지라도 최하 실력에 속했다.지금 손가을의 상황이 그랬다.만약 부부가 한 사람은 같은 경지에서 무적이고 다른 사람은 가장 실력이 약하다면 즐거운 일들이 수두룩할 것이다.“알았어. 이따가 무관에 가서 가르쳐줄게.”염구준은 거절하지 않았다.오늘 하늘이 무너져도 아내와 함께 있을 것이다.“당신이 최고야!”손가을은 남편에게 달콤한 키스를 하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아침을 먹고 집안일을 마친 후, 부부는 제이든을 데리고 신위무관으로 향했다.탐문하러 간 초상비는 연락이 두절된 상태라 더는 소식이 없었다.염구준은 며칠 더 기다렸다가 정 안 되면 직접 오스타국에 찾아갈 생각이었다.“귀한 손님이 오셨네. 염 선생, 손 대표님. 어떻게 왔어?”입구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던 원종과 정경림이 일어서서 반갑게 맞이했다.이 무관도 염구준이 세운 거지만 바지사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그러나 지금 무관의 수익은 따지지 않고 두 사람에게 맡긴 것 같았다.“그냥 보러 왔어요. 조용한 훈련장 있으면 빌려주세요. 아내랑 연습하고 싶어요.”염구준은 별생각 없이 두 사람에게 부탁했다.‘연습? 애정행각하는 건 아니고?’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마주치고 각자 다른 생각을 했지만 염구준에게 대놓고 말하지 못했다.“안으로 들어가. 연습할 공간은 얼마든지 있어.”두 사람 안내를 따라 염구준 부부는 무관으로 들어갔다.먼저 도착해서 무술을 연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신위무관은 청해에서 가장 큰
“사양하지 말고 가져가세요. 중요한 문서들은 복사본이 있습니다.”민현은 딴 소리하지 않고 흔쾌히 허락했다.“감사합니다. 그럼 갈게요. 시간이 되시면 청해에 놀러오세요”염구준은 나온 지 하루 만에 모든 일을 해결했으니 집에 돌아갈 때가 되었다.그의 태도가 단호하여 민현은 억지로 남기지 않았다.이번에 민씨 가문에 오면서 거록 존주의 행적을 찾지 못했지만 사술을 수련한 민씨 가문의 대장로를 처단하고 옥패에 관한 서책도 얻었으니 꽤 수확이 큰 편이었다.염구준은 민현과 작별 인사를 하고 가파른 길을 스쳐지나 주차한 곳에 도착했다.그리고 빠른 속도로 청해를 향해 달렸다.이 속도로 질주한다면 저녁에 도착할 것 같았다.바로 그때 붉은 장미에게서 연락이 왔다.“염 선생님, 좋은 소식입니다.”휴대폰 너머로 붉은 장미가 마치 경품에 당첨된 것처럼 격동하며 말했다.“무슨 일이예요? 거록 존주가 죽었습니까?”염구준은 추측한 것을 말했다.그러자 붉은 장미가 침묵하며 더는 흥분하지 않았다.“그놈이 쉽게 죽을 리가 없죠. 하지만 전국이 연합하여 거록 존주에게 현상금을 내렸어요. 그때면 어디도 도망칠 수 없어요.”“어쩌면 효과가 있겠죠.”염구준은 이런 방식은 별로 찬성하지 않았다.왜냐면 어떤 일은 돈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말투를 들으니까 별로 찬성하지 않네요.”붉은 장미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꼭 그렇지는 않아요. 다만 그럴 가치가 있나 싶네요. 거록 존주를 찾으려면 상대방이 흘리고 다녔는지 따져봐야 하거든요.”염구준은 공동 현상금이라는 것이 우스웠다.“그렇군요. 제가 오늘 한 가지 발견한 것이 있는데 현상금 차트 1위가 누군지 아세요?”붉은 장미는 재미있는 일이 생각났는지 웃으면서 물었다.“내가 아닌가요? 내가 전신전의 주상이 될 때 현상금이 탑이었어요.”염구준은 어떤 감정 기복도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1위를 차지한 지 오래되어서 이미 습관이 되었다.“알면서 왜 철회하지 않아요?”붉은 장미는 의아했다.염구준이 세상에
두 사람이 마지막에 폭발한 기운은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큰 소동을 일으켰다.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기운을 겨루다 갑작스럽게 거둔다면 오히려 반격하게 되니 힘을 발사해야 했다.한편 민현은 난감했다.염구준이 관문을 통과하러 들어간 것을 알고 있지만 다른 족인들은 모르고 있으니 가서 해명해야 했다.지하에서 두 사람은 기운을 거둔 후, 다시 공격하지 않았다.“어르신 기운은 나보다 순수하네요. 혹시 어르신의 기운이 이미 극치에 도달했습니까?”염구준이 공수하며 물었다.극한 반보천인에 도달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신체와 기운 그리고 의경 세 가지에서 한 가지라도 극치에 도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하하하, 극한은 그렇게 쉽게 도달할 수 없어. 아직 갈 길이 멀어. 그보다 자네 기운이 참 독특하구먼.”민철은 손을 흔들며 방금 염구준이 보여준 옅은 황금색 기운을 회상하며 칭찬을 늘어놓았다.“용의 기운을 융합하여 독특할 뿐입니다. 하지만 순도는 조금 떨어지죠.”염구준이 설명했다.두 사람의 기운은 막상막하라 같은 수준에 놓여 있었다.그러나 염구준의 수단은 워낙 많아서 전력으로 임한다면 민철을 쉽게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역시 대단해. 그럼 편한대로 둘러보고 난 계속 폐관하러 가겠네. 참, 나를 만난 일을 누구한테도 말하지 마.”민철은 말을 마치고 휠체어에 앉아 나왔던 곳으로 돌아갔다.만약 그의 측근이 염구준의 실력이 강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면 나와서 겨루지도 않았을 것이다.“어르신, 옥패 8개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염구준이 기회를 잡고 바로 물었다.“내가 아는 것은 전부 서책에 있어. 자네가 모르는 것은 나도 모르네.”제꺼덕, 제꺼덕.민철이 동굴안으로 들어가자 벽이 천천히 닫히며 마치 나타나지 않은 것처럼 사라졌다.그제야 깨달았다.방금 체스를 통과한 다음 기관은 민철이 제거한 것이었다.염구준의 실력으로 그 기관들은 장식물에 불과하니 파괴하면 다시 고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지하 공간이 다시 조용해지고 염구준 혼자 남아
염구준은 추측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그러다 민씨 가문에서 서적을 보관한 곳에 도착했다.한눈에 봐도 만 권, 적어도 팔천 권은 되는 것 같았다.그러나 모두 가지런히 진열되어서 별로 눈에 띄는 책은 없었다.오기 전에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고 민현도 특별히 주의할 점을 설명하지 않았다.“찾아보지 뭐.”그는 방향 없이 마구잡이로 찾기 시작했다.민씨 가문에서 보관한 책들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의학, 별자리, 지리에 관련된 책들도 있어서 아무 책이나 들고 나가서 팔아도 큰 돈을 받을 수 있었다.하지만 염구준은 돈이 부족하지 않아 그런 비열한 짓은 하지 않았다.“뭐야?”그때 책을 펼쳐보던 염구준은 이상한 낌새를 발견하고 돌아서서 벽을 바라보았다.끼익!벽 너머로 기척이 들리더니 천천히 열렸다.거기서 백발의 노인이 휠체어에 앉아 나타난 것이다.기운을 감지하니 절대 고수 틀림없었다.노인을 보는 염구준의 안색이 굳어졌다.여기에 사람이 숨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하지만 이렇게 큰일을 민현은 언급하지도 않았다.어쩌면 그도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노인은 가까이 오더니 해맑게 웃으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하하하, 자네 염구준 맞지? 난 민천이야. 악의는 없어. 이미 민씨 가문의 일에 손을 뗀 지 오래되었어.”염구준은 지하에 내려오기 전에 위패에 적혔던 ‘민철’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민철은 죽은 척하고 여기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어르신, 왜 지금 나타나는 겁니까?”염구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민씨 가문의 위협을 제거해줘서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자네가 원하는 물건을 가져왔어.”민철의 말에서, 비록 민씨 가문의 일에 간섭하지 않지만 항상 주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민씨 가문이 멸망할 위기에 처했다면 당연히 나서서 도와줄 것이다.“당연한 일입니다. 게다가 대장로를 살해한 것은 민씨 가문을 위해서가 아니라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기 때문이지요.”염구준은 태연하게 대답했다.원래 사실이니 굳이 노인에게 거짓말할 필요가 없
“그럼 앞장서세요.”민현은 설득하지 못하자 어쩔 수 없이 길을 안내했다.두 사람은 어느덧 민씨 가문의 종묘 사당에 도착했다.민현이 기관을 돌리자 위패가 놓인 선반이 서서히 움직이면서 지하 통로가 나타났다.“가주님은 부상을 입었으니까 여기서 기다려요.”염구준은 한마디하고 혼자 지하로 내려갔다.아래에서 어떤 위험이 닥친다 해도 맞서야 했다.“네. 염 선생님, 조심하세요.”민현은 따라가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 여기서 기다리려 했다.가는 길에 염구준은 작은 기관들을 가볍게 해결하고 곧바로 지하에 도착했다.펑!그는 전방을 보다 손바닥에 작은 불꽃을 피워 주변을 비추었다.지하공간은 민가진의 절반만큼 크고 금속으로 만든 체스들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이것들 중 하나가 기관일 것이다.“민현도 참 어이가 없네. 어떻게 해야 통관하는지 알려주지도 않고.”염구준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그때 붉은 체스 장군 위치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가볍게 그 자리에 발을 딛었다.그러자 기관을 건드렸는지 모든 체스판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폭탄.”그가 다음 수를 놓으려고 할 때 양쪽으로 사병이 이상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공격해 왔다.쿵!염구준은 두 손바닥을 벌여 다가오는 체스를 움직이지 못하게 억눌렀다.그 힘을 통해 그들의 충격력을 판단했다.제꺼덕, 제꺼덕.지하의 톱니바퀴가 계속 움직이자 쌍사의 힘도 따라서 증가하며 가운데 있는 염구준을 제압했다.“아직 힘이 남아 있네.”그는 어느 정도 힘을 모아 버텼지만 아무런 압력도 가하지 못했다.이러고 보니 민씨 가문의 기관은 참 엉터리였다.자기 주인을 치는 사병이 어디 있는가, 체스를 둘 줄 아는지 의심될 정도였다.바로 그때 중병마저 움직이더니 발바닥에 불꽃을 튕기며 염구준을 향해 돌진했다.세 체스가 공격해도 염구준은 힘만 더 사용했을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제꺼덕, 제꺼덕.장애물이 나타나자 체스는 미친듯이 톱니바퀴를 돌리며 염구준을 고기 전병으로 만들 기세로 돌진했다.“이제 한계에 도달했을
“미친, 철기둥 미궁이 이지경이 됐다고?”민씨 가문의 사람들은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철기둥들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철기둥 미궁은 대장로의 비장의 카드로, 가문의 최강자인 민현조차도 이 미궁 안에서는 한 번도 승리한 적이 없었다.다만 단점이 있다면 너무 무거워서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없다는 것이었다.“염 선생님, 혹시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민현은 서둘러 염구준에게 다가갔다.“별일 없습니다. 다만 민씨 가문의 이런 별난 수법들이 꽤 성가시더군요.”염구준은 진기를 풀며 담담하게 대답했다.만약 마술과 기문술이 아니었다면 대장로의 실력으로는 그와 이렇게 오랫동안 싸울 수 없었을 것이다.“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민가진 내의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습니다. 모두 염 선생님 덕분입니다.”“염 선생님께서 민가진에 방문해 주신다면, 감사의 뜻을 제대로 전하고 싶습니다.”민현은 염구준의 실력을 완전히 인정했기 때문에 진심 어린 태도로 말했다.“그러죠. 마침 저도 물어볼 일이 좀 있습니다.”염구준은 말하며 앞으로 걸어갔다.옥패에 관한 일을 그는 계속 신경 쓰고 있었다.‘물어볼 일이 있다고?’이 말을 들은 민현은 순간 어리둥절했다. 일이 다 해결됐는데, 물어볼게 남았다고 하니까 말이다.그러나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일족에게 대장로의 시신을 수습하라고 지시한 뒤 염구준을 따라갔다.대장로라는 악성 종양이 제거되어 민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기뻐했지만, 대장로파에 있던 사람들은 풀이 죽어 있었다.물론 대장로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못된 편에 섰다는 사실이 후회되었기 때문이었다.악마 같은 대장로를 맹목적으로 따르다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던 걸 떠올리면 그들은 등골이 오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대장로가 사라지자, 가문의 유일한 반보천인인 민현이 자연스럽게 새로운 가주가 되었다.염구준과 민현은 저녁 연회 후 밀실에서 중요한 대화를 나누었다.“이 물건, 본 적 있으시죠?”염구준은 손을 들어 네 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