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전엔 꽤 멀리 떨어져있어서 제대로 실감이 안 났다면 바로 눈앞에서 귀티가 좔좔 흐르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태산 같은 부담이 가슴을 턱 막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어머, 쟤 지금 그 사람들 옆에 앉은 거야?”“학교 다닐 때부터 숙영이랑 친했잖아. 룸메이트였을걸.”“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아까 상황에서 곽민 쟤만 숙영이 편 들어서 저런 대접받는 거 아니야. 솔직히 나도 나서려고 했는데 휴... 타이밍을 놓쳤네.”같은 공간, 다른 동창들은 멀리서 이 광경을 바라보며 부러운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그냥 옆자리에 앉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평생 자랑할 만한 얘기거리였으니까.“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희보다 훨씬 더 어른이시잖아요. 모르는 사람들이야 저희더러 대표네, 도련님이네 하지만 어차피 아무 의미 없어요.”염구준의 부탁이니 한진 역시 곽민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사모님, 무슨 부탁이신지는 모르겠지만 뭐든 말씀하세요.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돕겠습니다.”“그... 그게...”살아생전 한진 대표에게서 사모님 소리를 들을 줄이야.다리에 힘이 풀리는 기분에 살짝 휘청이던 곽민은 진숙영과 손가을의 부축을 동시에 받고 나서야 겨우 안정을 되찾고 용기를 내 말했다.“별 건 아니고... 내가 사실은 일자리를 못 찾는 게 아니라 안 찾는 거예요. 나이도 많고 손주도 봐줘야 하는데 출근까지 하면 체력이 못 따라갈 것 같아서요. 사실 문제가 있는 쪽은 우리 남편이에요. 이제 겨우 51살에 의사로서 능력도 나쁘지 않은데 동네 진료소에서 일하는 모습만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안 좋아서요. 그래도 왕년에는 용두 의대까지 나온 수재였어요. 솔직히 용두 대학병원에서 일하려고 했었는데 그땐 용두에서 방 한 칸 얻기 힘들 정도로 집안 사정이 안 좋아서... 결국 현실 앞에서 꿈을 접은 거죠.”곽민의 설명에 한진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용하국의 중심 도시로서 용두는 땅 한 평이 곧 금싸라기 같은 곳, 게다가 대학병원이 있는 곳
“아, 원장님. 참... 무슨 말씀을 드려야지 할지... 정말, 정말 너무 고맙습니다.”휴대폰을 꼭 쥔 곽민은 어찌나 기쁜지 횡설수설을 이어갔다.“내일 바로 그이 대학병원으로 보내겠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참... 정말...”화상춘 역시 곽민의 감격스러운 감정을 그대로 느꼈는지 목소리가 한결 더 가벼워졌다.“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감사인사는 한 대표님, 아니 염 대표님과 진숙영 여사님께 하시죠.”‘아, 맞네.’순간 멍한 표정을 짓던 곽민은 전화를 끊지도 않고 염구준과 진숙영을 향해 눈시울을 붉혔다.“숙영아, 구준아...”“아니에요, 사모님. 남편분 실력이 워낙 뛰어나시니 이런 기회도 오는 거죠.”그리고 염구준은 옅은 미소를 띤 채 질투와 부러움으로 가득한 표정의 다른 동창들을 향해 말했다.“이건 하늘에서 뚝 떨어진 행운이 아니라 평소 덕을 쌓은 덕분이라고 보는 게 맞죠. 사모님처럼 언제 어디서든 불의에 맞서고 맞는 건 맞다, 아닌 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대단한 분이시니 이런 행운과 기회도 찾아오는 겁니다. 다른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시죠?”염구준의 말에 다른 동창들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어졌다.하늘에서 떨어진 행운이 아니라 평소 덕을 쌓은 덕분이라는 말이 왠지 무겁게 느껴져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미... 미안해, 숙영아.”잠깐의 침묵 끝에 누군가 먼저 입을 열었다.“솔직히 왕연이 한 말 다 거짓말이라는 거 알고 있었어. 그런데 아까 그 상황에서 괜히 나섰다가 보복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그게 무서워서 네 편 못 들어줬어...”“그래, 숙영아. 우리가 미안했어.”“숙영아, 아까 왕연이 그렇게 당할 때 솔직히 우리 다들 속이 시원했어. 그리고 네 덕분에 이렇게 높으신 분들과 같이 식사 자리도 함께 하고. 이런 영광을 어디서 누리나 그래.”“구준아, 우리가 원망스러운 마음은 알겠지만... 왕연 성격도 알잖아. 그래서 차마 말을 못 꺼냈어. 그런데 이번
염풍도?진영주와 인사를 나눈 염구준은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손가을과 시선을 마주쳤다.얼마 전 주작호 사고가 있었을 때 염구준은 염풍도의 자기장을 뚫고 손가을을 구조하는 데 성공했었다.그때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있으니 지금까지도 공식적인 입장은 ‘염풍도의 천연 자기장이 갑자기 사라져 쌍둥이섬이라는 기묘한 자연경관을 만들어냈다’는 것뿐이었다.이런 뉴스가 자연스레 묻힐 수 있었던 건 뭐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이 세상 어느 한 곳에 그렇게 신기한 곳이 생겼구나라는 뉴스 한 줄로 넘겼던 무반응 덕분이었다.일일 소비금액만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럭셔리 휴가지를 갈 생각 자체를 아예 안 하고 있을 테니까.“글쎄 요즘 염풍도 모험이 그렇게 유행이라잖아.”향산 저택으로 향하는 길, 뒷자리에 앉은 진영주는 손가을과 진숙영의 팔을 번갈아 잡아당기며 재잘거림을 이어나갔다.“그런데 그 사람들이 뭘 발견했는지 알아? 글쎄 거기 화산이 있었대. 그 휴화산에서 특별한 자기장이 나왔던 건데 이젠 자기장이 거의 소모돼서 화산 온천만 남았대. 거기에 몸을 담그면 그렇게 편하다잖아.”“그래?”아무렇지 않은 척 되물었지만 손가을의 마음은 어느새 흔들리기 시작했다.자기장이 처음 사라졌을 때 손가을은 이미 염구준과 화산 모험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고 그 화산에서 옥패 하나를 발견했다. 지금까지 획득한 옥패는 총 3개, 옥패 하나, 하나마다 어마무시한 고대 비밀이 숨겨져있다고 하지만...손가을이 신경 쓰는 건 그게 아니었다.염구준과 결혼한 뒤로 제대로 된 웨딩촬영도, 신혼여행도 못 가본 터라 아쉬움이 많이 남은 그녀였다.“염풍도... 나도 가보고 싶어.”운전 중이던 염구준이 백미러로 손가을을 힐끗 바라보았다.“그래. 아, 물론 이번엔 제대로 준비하고 가자. 경호원들도 대동해서.”저번 납치사건이 깊은 트라우마로 남은 것도 있고 흑풍 조직까지 나타났으니 걱정이 앞서는 염구준이었다.정경림도, 용준영도 있고 뢰인과
원씨 가문 가주 원종, 나름 강자니까 우리 경호를 맡기기엔 충분해. 우리가 염풍도로 가기 전까지 무조건 모시고 올게. 여기에 경림 아저씨까지 합류하면 나름 안전할 거야. 기다리고 있어.”그리고 염구준은 단 이틀만에 모든 협상을 끝냈다.염구준이 직접 나선 이상, 원씨 가문에서 부탁을 거절할 리가 없었고 가주인 원종이 직접 최정상 고수 2명과 함께 청해시로 향해 정경림과 각각 손씨 그룹 본부와 항산 별장의 경호를 맡게 되었다.그렇게 손태석, 손씨 그룹 임원진들의 안전까지 보장한 뒤...“여긴 걱정하지 말고 재미있게 놀다와.”빈해 공항.손태석과 진숙영은 흐뭇한 얼굴로 염구준 일행을 바라보았다.“염 서방이 있어서 마음이 놓여.”손태석이 염구준의 어깨를 토닥였다.“희주도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대. 경림이 형이 잘 지키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정경림, 용준영, 뢰인, 그리고 12명의 엘리트 경호원들이 학교 주위를 물 샐 틈 없이 지키고 있는 데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지하 벙커로 옮기기로 되어 있어 흑풍 존주가 직접 오지 않는 한, 위험할 상황은 벌어질 리 없었다.그리고 흑풍 존주는...염구준과의 결투에서 중상을 입은 터라 완치까지 적어도 1년은 걸릴 것이니 그 동안은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되었다.“장인어른, 장모님, 그럼 저희 가보겠습니다.”그렇게 부푼 가슴을 안고 염구준 일행은 염풍도로 향했다....한편, 염풍도.“염구준이 이미 옥패 3개를 손에 넣었다고 합니다.”거센 파도의 바다 위, 20여 명의 장정들이 대형 선박 갑판 위에 서있다.그들 중 검은색 망토를 두른 이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조직에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염구준이 염풍도로 향하고 있다고 한다.”이에 다른 남자들은 동시에 미간을 찌푸렸다.염구준이 자기장을 파괴하고 옥패까지 획득했다는 건 조직 내부에서 이미 공공연히 알고 있는 사실, 그런데...옥패까지 다 가져간 마당에 왜 다시 돌아온 걸까?“왜 다시 돌아온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어.”망토
“염구준이 다시 염풍도로 가는 건 분명 기회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걸 잊지 마라. 다들 우호법도 곧 도착할 때까지 기다린다.”우호법?이에 모인 이들 중 몇몇은 코웃음을 내쳤다.‘존주님한테 알랑대는 개 주제에...’오늘 자리에 모인 이들은 다들 흑풍 조직에서 내놓으라 하는 강자들, 리더인 흑풍 존주 앞에서도 기가 죽지 않는, 아니 심지어 농담마저 건넬 수 있는 일당백 고수들이었고 그만큼 자존심도 강했다.하지만 우호법 ‘도천연’은 달랐다. 전신 경지를 바로 코앞에 둔 고수임은 분명한데 흑풍 존주에 대한 충성심은 그야말로 병적이었고 그런 그의 충심은 콧대 높은 흑풍 조직원들 사이에서 오히려 독특하게 느껴졌다.철썩철썩...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저 멀리 파도가 이상하리만치 넘실대더니 작은 체구의 누군가가 해수면을 밟고 타다닥 달려왔다.“형님.”백 미터 넘는 거리를 훌쩍 점프한 도천연이 갑판에 발을 딛자 학신통이 먼저 다가갔다.“존주님 상태는 어떠십니까? 이번에 염구준이 다시 염풍도에 온다는데. 우리도...”하지만 도천연은 무거운 얼굴로 자리에 모인 이들을 훑어보았다.“존주님의 상태는 조직 최대 기밀사항이니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마라. 그리고 내가 여기로 오기 전에 존주님께서 특별히 당부하셨다. 염구준의 손에서 옥패를 빼앗는 자, 그게 누구든 다음 존주로 추대하겠다고.”쿠궁!폭탄발언에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진 것도 잠시, 학신통을 포함해 모든 이들의 눈동자가 살기로 번뜩이기 시작했다.다음 존주?흑풍 조직원들이라면 누구든 갈망하는 자리, 수천, 수만 명의 강자들을 호령할 수 있는 절대 거부할 수 없는 권력의 징표를 물려준다는데 어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그게... 사실입니까?”가장 먼저 이성을 되찾은 학신통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그러니까 저희 타깃은 옥패고... 그럼 형님 타깃은 뭡니까?”“손가을.”한참을 침묵하던 도천연이 천천히 손가을의 이름을 내뱉었다.‘손가을?’순간 학신통의 눈동자가 살짝
한편, 염풍도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환고도’.공항이 없는 염풍도로 관광을 오는 사람들은 무조건 환고도에서 내려 2시간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비로소 섬의 유일한 항구에 도착할 수 있다.“진영주 씨 어디 계신가요?”염구준이 탄 배가 정박하자 부두에 나와있던 가이드가 팻말을 흔들며 소리쳤다.“여깁니다, 여기!”염풍도는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지만 럭셔리 관광지로 워낙 유명한 곳이라 20곳은 넘는 여행사가 주둔하고 있는 건 물론 섬 곳곳에 호텔, 리조트, 오락시설 등이 잘 구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장 매력적인 건 편리함을 추구하면서도 섬 본유의 신비로운 매력을 그대로 지켜냈다는 점이었다.그리고 그들을 맞이한 가이드는 진영주가 출발하기 전 예약해 둔 여행사의 직원이었다.“자, 얼른 오십시오. 버스 곧 출발합니다.”숨도 돌리기 전에 가이드의 말이 쉴새 없이 몰아쳤다.“자, 그럼 염풍제2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일단 기본적인 정보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염풍제2도는 비록 개발된 지 2개월밖에 되지 않은 곳이지만 관광시설은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습니다. 세계 각지의 여행객들을 맞이하기 위한 투어 타온도 마련되어 있죠. 관광하실 땐 최대한 제 근처에 꼭 붙어계십시오. 워낙 다양한 나라에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문화차이 등 여러 문제로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꽤 있거든요.”한편, 가이드의 얼굴을 힐끗 살피던 염구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너무 티나네...’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줄인다는 건 관광객들의 정보 루트를 차단한다는 것, 오로지 여행사의 계획에만 따르게 하는 건 딱 봐도 관광객들을 선동해 이상한 물건을 사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인센티브를 챙기려는 속셈이 분명했다.‘인기 여행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지.’“자, 휴식 지점 도착했습니다!”버스가 광장에 도착하자 가이드가 들고 있던 깃발을 흔들었다.“자, 다음 휴식 지점에 도착하려면 2시간은 걸릴 겁니다. 그 사이에는 슈퍼 같은 것도 없이 사실 거 있으면 여기서 미리 사두세
‘관광에는 문제 없겠지만 내 실적에는 큰 문제가 생긴다고!’하지만 이런 말을 대놓고 할 순 없는 노릇.이성과는 버스 밖에 배치된 노점을 가리키며 어색하게 웃었다.“관광객 여러분들의 쇼핑 자유는 물론 보장해 드립니다. 하지만 다들 어떻게든 먹고 살자고 이렇게 힘들게 노점상으로 일하고 있는데 매출이라도 올려주시죠. 저 코코넛 좀 보세요. 저희 염풍도 특산품입니다. 신선하고 시원한 건 물론이고 여자분들 피부에도 그렇게 좋아요. 우리 여성분들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우시지만 자고로 미모도 다다익선 아니겠어요?”피부에 좋다고?순간 손가을의 눈빛이 번뜩였다.손씨 그룹이 청해시에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바로 뷰티 분야에서의 인지도 덕분이었다.‘그래. 저번에 왔을 때 코코넛 먹어 본 적 있었는데 맛은 확실히 좋았어. 퀄리티는 보장됐고... 여기 코코넛을 들여와서 성분을 추출하면...’“구준 씨, 우리 사자.”염구준의 팔짱을 낀 손가을은 진영주와 함께 버스에서 내려 가장 가까운 노점 앞으로 다가갔다.“코코넛 가격이 어떻게 돼요, 사장님?”유창한 영어 실력에 아시아인으로 보이는 노점 사장은 흰 치아를 훤히 드러내며 웃었다.“한국어 하셔도 됩니다. 저도 다 알아들어요! 코코넛이요? 하나에 5만원입니다.”쿠궁!사장의 대답에 염구준은 물론 손가을의 표정도 싸늘하게 굳었다.평소 마트에서 사도 이 정도 가격은 아닌데 현지 특산품을 이렇게 비싸게 판다는 건 분명 비합리적이었다.“사장님, 5만원은 너무 비싼데요.”염구준이 최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관광지 물가가 비싼 거야 당연한 거지만 이 가격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저희가 이런 바가지를 쓸 것 같습니까?”“하이고, 비싸다고 생각되시면 안 사시면 되지요. 억지로 팔 수야 없으니까요.”이런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던 사장은 이성과와 시선을 맞추더니 피식 웃었다.“이 섬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잘 모르시는군요.”이 섬은 휴화산이 자리한 곳, 땅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인해 수분 소모가
말로는 아니라고 해도 결국 어떻게서든 코코넛을 팔게 만드려는 수작이잖아?5만원짜리 코코넛, 만원짜리 생수, 2만원짜리 요구르트...이 말도 안 되는 물가를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안 샀다가 정말 탈수증세라도 오면 어떡하지?관광객들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걱정이 앞섰다.“다들 계속 고집을 부리실 건가요...”이성과가 핸들에 기댄 버스 기사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기사님은 운전이 힘든 상황이고 언제 떠날지도 모르는데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전 책임... 아니,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염구준은 이성과의 외침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버스에 올라탔다.그리고 족히 100kg는 되어 보이는 거구의 운전기사를 한손으로 들어 짐짝처럼 뒷좌석에 던져버렸다.“가을아, 기사님 몸이 불편하시다니까 운전은 내가 할게. 다른 분들도 타시라고 말씀드려.”염구준의 말에 다른 관광객들은 굳이 손가을이 부를 필요도 없이 부랴부랴 버스에 올라탔다.“하,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잔뜩 겁에 질린 채 뒷좌석에 널브러진 운전기사를 바라보던 이성과는 염구준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하, 싸움 좀 한다 이거야? 여긴 너 같은 게 까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우리 사장님이 누군지 알...”“자, 다들 꽉 잡으십시오.”하지만 염구준은 아예 이성과를 투명인간 취급하곤 관광객들을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제가 사실 이번이 두 번째 여행이거든요. 그래서 이 섬에 대해선 나름 잘 알고 있습니다. 다음 포인트 화산구가 이 섬의 하이라이트니 바로 거기로 가시죠.”부웅.염구준이 엑셀을 밟음과 동시에 관성으로 인해 하마터면 뒤로 나자빠질 뻔한 이성과는 죽일 듯이 염구준을 노려보았다.‘이 개자식... 그래. 화산구로 간다 이거지? 두고 봐...’버스는 빠르게 도로를 달려 30분 뒤 염풍도의 자랑, 화산구에 도착했다.여전히 웅장한 경치, 저번에 왔을 때보다 달라진 점이라면 주변에 우뚝 선 빌딩들, 그리고 도처에 보이는 주얼리 가게들이 늘어났다는 점이었다.화산구 근처에서
"끄아악!"브루언은 아파서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에서 뒹굴며 겁에 질린 채로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사람이 아니라 악마야.""퉤, 별 것도 아닌게 까불고 있어." 백호는 침을 뱉으며 말했다. 브루언을 채 해결하기도 전에 동굴에서는 또다시 욕설이 들려왔는데, 목소리를 들어보니 달무 일행이었다."X발, 브루언 그 새끼가 사람이야? 오랫동안 함께 해온 사이에 배신을 때려?""그 새끼가 계획을 망치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지는 않았을 거야.""진짜 내 눈에 들키지만 마라. 보는 즉시 갈기갈기 찢어죽여버릴 테니까."말만 들어서는 쌓인 게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았다.이윽고 달무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들은 멀리서 서 있는 염구준 일행과 눈이 마주쳤다.지금 달무 쪽 일행은 총 여섯으로, 손실이 매우 막심했다. "살려줘!"그들의 모습을 본 브루언은 바닥에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아주 작은 소리로 도움을 구했다.'뻔뻔하면 무적이라더니.'탕!달무는 앞으로 걸어가 일격으로 그를 죽인 뒤 웃으면서 염구준 등을 바라보았다."저희 대신 배신자를 처리해주신 거, 감사합니다."그는 전에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던 것은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감사인사를 했다.상대방이 손을 쓸 생각이 없다는 걸 눈치챈 염구준은 그를 신경쓰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백호, 네 일이나 잘해. "이 말을 들은 백호는 대문 앞으로 다가가 두 손을 문에 대고 팔에 핏줄이 보일 정도로 힘을 주었다."하압!"이 거대한 힘에 문 위에 있던 얼음은 전부 갈라져 땅에 떨어졌고 얼음이 없어지자 두꺼운 대문 역시 반응을 보였다.끼익.대문은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양쪽으로 움직였다.이 두 문은 가볍지 않았다. 백호조차도 이마에서 땀이 나올 정도로 힘이 들었으니까 말이다."후!"문이 완전히 열리자 백호는 힘을 거두고 탁한 기운을 토해냈다.안에는 약간의 빛이 있었는데, 내부 장식은 고대의 궁전처럼 보였다. 비록 오랫동안 얼어붙어 있었던 장소지만 이곳은 사람들에게 위엄있
가족들은 모두 초조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건 모두 염구준을 너무 신경 써서 그런 거였다.이에 염구준은 속으로 감탄했다. '비록 행복하긴 하지만 이건 모두 환상이야. 그림의 떡과도 같은 거지. 현실이 잔혹하긴 하지만 그래도 현실에서 살아가야 해.'무척 뛰어난 환각술이고 모두 그가 바라던 모습이긴 했지만 마음이 굳건한 사람만이 반보천인이 될 수 있던 탓인지 그는 환각술에 깊이 빠지지 않았다."깨져라."염구준이 작게 읊조리자 몸에서 기운이 흘러나오며 눈앞의 화면을 지웠다."구준아, 꼭 앞을 보며 달려야 한다."고유연은 점차 사라지면서 웃으며 말했다."네, 그럴게요!"그는 텅 빈 대문을 향해 대답했다.비록 환각술 때문에 마음속의 상처가 더 깊어지긴 했지만 오래된 바람을 이루었으니 그다지 나쁘지도 않았다.그러나 그와는 달리 나머지 사람들은 확고한 마음이 없어 전부 혼잣말을 하며 동굴 안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제발 아빠를 죽이지 마세요, 제발요.""아, 계속 채굴할 테니까 때리지 마세요.""전주님, 영원히 당신을 따를 테니 저를 버리지 말아주세요."이렇게 보니 염구준의 환각술만 아름다운 화면이고 나머지는 모두 고통스러운 것 같았다.'계속 이대로 내버려두면 큰 일 나겠네.'"깨어나!"염구준이 크게 소리 지르자 체내의 진기들이 사람들을 뒤덮었고, 이에 사람들은 몸을 떨다가 곧바로 눈이 맑아졌다. 그들은 전부 망연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대단한 환각술이야."백호는 조금 두려워하며 먼저 입을 열었다. 전신 위 경지의 자신도 버티지 못한 걸 보아 방금 전의 환각술이 확실히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주작은 방금 전에 한 말들이 생각 나 조금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다. '전주께서 분명 다 들으셨을 거야. 아, 창피해.'"다들 빛을 보자마자 긴장이 풀어져서 환각술에 걸린 걸 거예요."염구준은 이렇게 설명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사실 빛은 커녕 그저 얼어버린 굳게 닫힌 문 밖에 보지 못했었다. 동굴 안에 들어온
'도안?'설씨 가문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눈을 똑바로 뜨고 다시 벽을 쳐다보았고 곧 정말로 얼음층 뒤의 돌멩이에 아주 옅은 색으로 새겨져 있는 도안을 발견했다.도안이 양 끝으로 뻗어진 걸 보면 그들이 발견하지 못했을 뿐, 들어올 때부터 옆에 있었던 것 같았다."뭐야?"도안을 보면 볼 수록 낯이 익어 염구준은 끊임없이 회상하기 시작했다.'옥패!'이 도안들은 전에 복제판 옥패에서 본 것과 매우 비슷했다.이곳에 정말 옥패의 단서가 있다는 것에 대해 염구준은 솔직히 조금 놀랐다.한참 동안 들여다 보아도 무언가 확실한 걸 보아낼 수가 없어 그는 결국 안에 더 깊이 들어가 탐색해보기로 마음 먹었다."가죠. 이건 이따가 다시 나와서 보고요."그의 말에 사람들은 전부 뒤를 따랐고 또 한참을 앞으로 걸어가서야 빛을 볼 수 있었다. 아마 목적지에 도착한 것 같았다."다왔어요, 바로 앞에 있습니다!" 설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이에 염구준 등은 크게 기뻐하며 발걸음을 재촉하여 바로 빛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바로 이때, 공간이 갑자기 변하더니 주위의 환경도 변했고, 같이 온 사람들도 전부 모습을 감추었다. '염씨 가문의 저택?'염구준은 주위의 환경을 보면서 곧바로 이곳이 그가 어릴 때 생활했던 곳이고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때까지는 그를 사랑하고 지켜주는 그의 어머니도 살아계셨다."구준아, 빨리 들어와서 밥 먹지 않고 뭘 멍 때리는 거니?"이때, 고유연이 안에서 나오며 자애로운 목소리로 외쳤다."엄마?"이에 염구준은 잠시 멍해져 있다가 곧 목이 멘 채로 입을 열었다. "너 요즘 업무 스트레스가 너무 큰 거 아니야? 왜 갑자기 말도 제대로 못해?"고유연은 관심 어린 어투로 말하면서 앞으로 나가 그의 손에 든 서류 가방을 가져갔다.염구준은 그제야 반응이 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옷을 쳐다보았다. 그는 가격이 만만치 않은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가슴에 있는 명찰에는 염호 그룹 회장이라고 적혀 있
"미친."염구준은 감탄하고는 미친 듯이 달려드는 펭귄들을 막으면서 제때에 도와주기 위해 대오 쪽으로 붙었다.'여기가 펭귄 집이야 뭐야. 끝도 없네. 무엇보다 이 펭귄들 너무 괴상해. 피냄새만 맡으면 포악해지면서 미친듯이 달려들잖아.'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와중 그는 바닥에 뿌려진 피들이 피안개로 변하며 동굴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안에 대단한 게 있는 게 분명해.'염구준은 더 많은 생각을 할 시간이 없어 사람들을 지키면서 달려오는 펭귄들을 물리쳤다."아악, 난 죽고 싶지 않아!"그러나 이때 설씨 가문의 사람 중 한 명이 겁에 질려 갑자기 진형 밖으로 돌진했다.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싸우고 있었던 터라 막지도 못하고 그저 그 사람이 뛰쳐나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X발, 괜히 말썽만 피우기는." 백호는 욕을 읊조리고는 도망친 사람을 구하러 가려고 했다."내가 갈 테니까 진형을 유지해."염구준은 큰 소리로 외치며 바로 앞으로 돌진해 방금 뛰쳐나간 사람을 공격하는 펭귄들을 물리쳤다.겨우 잠깐 사이에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걸 보면 펭귄들의 공격력이 매우 강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가!"염구준은 뛰쳐나간 사람의 옷깃을 잡고는 팔을 휘둘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동굴 입구에 던졌다.'이상해. 이 펭귄들 피냄새를 맡고 동굴 입구까지 쫓아갔으면서 정작 도착한 뒤에는 한 눈 보고 다시 돌아가잖아. 안에 있는 걸 이 펭귄들이 꺼리는 건가 보군.'염구준은 사람을 구하고 나서 다시 대오의 앞부분으로 돌아간 후 길을 열어 사람들이 성공적으로 동굴 입구쪽에 도착하게 도와주었다.동굴 안으로 들어갔으니 이제 그들은 안전한 셈이었다."너 이 자식, 네가 무모하게 뛰어다닌 바람에 하마터면 진형이 무너질 뻔 했잖아. 진형이 무너지면 다들 죽을 수도 있었어!"설구는 방금 전에 도망친 사람을 보자마자 발로 차버렸다.이미 오기 전부터 그는 말을 했었었다. 죽어도 다른 사람들까지 위험에 빠뜨리지 말라고 말이다. 하지만 방금 전 도망친 사람
펭귄의 몸에 있는 문양이 좀 익숙하긴 했지만 어디서 봤던 건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그럼 계속 가나요?"설씨 가문의 사람들이 물었다.달무 등이 공격당하는 모습을 본 그들은 매우 겁에 질린 상태였다. 그들은 달무 일행처럼 펭귄에게 공격 당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의 질문에 설구는 매우 난감해 했다. 그 역시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쩔 방법이 없어 강자인 주작과 백호를 바라보았지만 그들의 시선은 모두 염구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상대방이 명령을 내리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이정도면 됐어."염구준은 달무 등이 포악한 펭귄들의 시선을 대부분 잡아둔 것을 보고 낮은 소리로 말한 뒤 주변의 몇 사람들을 바라보았다."내가 길을 열 테니까 백호가 뒤를 끊고 현무는 왼쪽을 책임지고 주작은 오른쪽을 책임져. 너희 셋은 설웅 일행을 지켜.""알겠어?""네!"정예 부대의 대원들은 이구동성으로 큰 소리로 대답했다. "자, 그럼 움직이자!"염구준이 말을 마치자마자 그들은 진형을 바꾸어 설씨 가문의 사람들을 가운데에 에워쌌다.설구는 이제서야 염구준이야말로 이 무리의 핵심이라는 것과 설웅이 그들과 이미 아는 사이라는 것을 눈치챘지만 상대방이 지금 신분을 숨긴 상태이기 때문에 딱히 말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자신들을 도와주기만 하면 상관없었다.전부 진형대로 선 뒤, 그들은 동굴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다들 조심해요. 이 펭귄들은 피를 좋아하기 때문에 죽이지 말고 그냥 쫓아내요."염구준은 주위를 떠도는 펭귄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앞에서 지금 겨우 저 펭귄들의 시선을 끌어주고 있는데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지.'"대장, 저 녀석들이 들어가려고 하는 것 같은데?" 브루언은 바쁜 상황에서도 주변의 상황을 한 눈 보았다.지금 그들은 다른 사람의 앞길을 터준 셈이었다. 달무가 처음에 세웠던 계획과 완전히 반대라는 말이다."화기를 써!"달무는 끝내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가방에서 새 총을 꺼내
달무는 상대방의 태도에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저희 모두 안에 있는 보물을 위해 온 것 같으니 손을 잡는 게 어때요? 보물을 가진 뒤 절반씩 나누는 걸로 하죠."'보물?'설씨 가문 사람들은 상대방의 말에 의문이 어렸다. 분명 얼음에 봉인된 사람을 깨우려고 왔다고 들었는데 상대방이 보물 이야기를 꺼내니까 말이다."보물에는 딱히 관심이 없습니다. 저희는 한 물건만 가지러 온 거라서요."설구는 과감하게 거절했다.'신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데 손을 잡기는 개뿔.'만약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방이 뒷통수를 때리면 어떡하나. 그땐 후회를 해도, 울어도 소용없을 게 뻔한데 말이다."늙은이, 좋게 말할 때 듣지 그래?" 브루언은 좋지 않은 말투로 말하며 상대방을 손 봐주기 위해 앞으로 걸어갔다.이에 달무는 그를 막으면서 웃으며 말했다."그럼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각자의 능력에 맡기는 걸로 하죠."말을 마친 후 그는 사람들을 이끌고 동굴 입구로 걸어갔다.달무가 만만한 사람이라 브루언을 말린 것이 아니라 보물의 그림자도 보지 못한 상황에서 상대방과 싸우는 게 수지에 맞지 않다고 여겨서 그렇게 행동한 것 뿐이었다."우리도 가자!"설구는 늦게 가면 계획에 영향을 미칠까봐 얼른 앞으로 가려고 했다."잠시만요, 우선 저 펭귄들의 반응을 보죠."이에 염구준은 재빨리 제지했다. 이 말을 들은 설구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번에 대오를 이끄는 사람은 그인데, 옆에서 이래라저래라 하니 말이다. 그가 막 말을 하려고 할 때, 설웅이 서둘러 나섰다."저도 이 분의 말에 동의합니다. 이 시간을 아낀다고 해서 크게 변하는 것도 없으니 한 번 기다려보죠."미래 가주이자 족장이 하는 말이니 설구는 말을 억지로 삼키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제자리에 서서 달무 등이 펭귄 무리에게 점점 다가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길 막지 말고 저리 꺼져!" 브루언은 펭귄 한 마리를 발로 차면서 방금 전의 불만을 털어놓았다.솔직히 말해서 그는 방금 전
출발하기 전에 달무 등을 한 눈 더 쳐다본 염구준은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 그들이 일반인도, 탐험가도 아니라는 걸 바로 눈치챘다.달무는 기름을 들고 돌아가며 웃으면서 말했다."운이 좋네. 기름 몇 통을 챙겼으니까 말이야."사실은 아직 기름이 부족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한 이유는 누군가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이 기회를 틈타 물재를 가져오기 위해서였다."굳이 이렇게 귀찮게 할 필요 있어? 그냥 다 죽이고 빼앗아 오면 되잖아."브루언은 독한 술을 마시며 대부분이 쓰는 일반적인 수법을 말했다.이에 달무는 고개를 저으며 엄숙하게 대답했다."안 돼, 방금 전 일행은 인원수가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겉모습이랑 챙긴 장비만 봐도 만만한 사람이 아닌 것 같으니까 말이야.""게다가 우리가 이번에 여기까지 온 건 임무가 있어서야. 겨우 이딴 일로 큰 일을 그르쳐서는 안 되지."말을 마친 뒤 그는 지도를 꺼내 위치를 보고 노선을 살펴보기 시작했다.자신들의 대장이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나머지도 더 이상 뭐라고 하지 못하고 그저 입을 다물었다. "자, 다들 충분히 쉰 것 같으니까 계속 전진하자."달무의 명령에 20여 명의 일행들이 스노모빌을 타고 끝없이 펼쳐진 눈길로 향했다.그들이 달리는 방향은 바로 설구 등이 떠난 방향이었다.계속해서 앞으로 달리고 있던 설구 등은 곧바로 뒤에서 울리는 엔진 소리를 들었다."장로님, 누군가가 따라옵니다. 방금 전에 만난 달무 일행이에요."설웅은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비록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제일 앞에 있는 사람의 방한복을 보면 달무임이 틀림없었다.'음?'상대방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설구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우선 멈추고 휴식하자. 다들 경계태세에 돌입해. 저들이 뭘 하려는 건지 잘 지켜보고."누군가가 뒤를 따라잡은 이상, 우선 상대방이 무엇을 하려는 건지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일행은 곧바로 멈추었고, 뒤에 있던 달무 등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을 따라
고수들을 데리고 가문의 주둔지로 와 적들을 물리친 그는 지금 현재 암묵적인 가주였기 때문에 설구도 뭐라고 반박할 수가 없어 동의하고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요, 그럼 같이 가죠. 하지만 저희는 당신들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합니다.""괜찮습니다. 저희의 몸은 저희가 잘 챙길 테니 걱정 마세요."염구준은 웃으며 대답했다.'가는 도중에 날 힘들게 하지만 않으면 다행이지.'이번에 임무를 맡은 정예 부대는 가장 약한 사람도 전신경지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그들은 장비를 점검하고는 스노모빌을 타고 설구의 인솔하에 그 신비한 곳으로 출발했다."다들 무사히 돌아와야 해요!"그들의 뒤에서 설씨 가문의 사람들이 크게 외쳤다.이번 임무에서 흑풍과 청목을 동시에 상대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염구준은 큰 가방 안에 구자검을 넣고 출발했다.어느 정도의 경지에 도달했는지 알 수 없는 반보 천인 앞에서 여유를 부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청목존주의 일은 그리 급하지 않았다. 미끼는 이미 던졌으니 상대방이 물기만을 기다리면 되었다.낚시를 하려면 인내심을 가져야 했다.넓은 눈밭에서 사람들은 거의 모두 최대시속으로 스노모빌을 탔다.제일 앞에서 달리는 설구가 마음이 급해서 빠르게 몰아서였다.그들이 달리던 중 대오에서 눈이 가장 좋은 염구준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앞에 사람이 있어요!"그의 말을 들은 설구는 집중해서 눈을 똑바로 뜨고 앞을 보았고 정말 누군가가 서 있는 걸 보았다. 그는 곧바로 경계심이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정신 차려. 일 벌이지 말고."이 지역은 무인 구역이기 때문에 사람이 나타난다는 것 자체가 매우 비정상적인 일이었다.설구는 먼저 방향을 약간 바꿔서 돌아가려고 했으나 곧바로 가로막혔다."안녕하세요,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그의 길을 막은 사람이 말했다.염구준은 앞에 있는 사람들을 한번 훑어보았는데, 금발에 푸른 눈, 그리고 오똑한 코를 가지고 있는 걸 보아 서양인 같아 보였다.심지어 그들 중 한 명은 전에 천랑성호에서 한
같은 시각에 설씨 가문 주둔지는 모닥불 파티를 연 탓에 매우 떠들썩했다.이 자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은 당연히 설씨 가문의 은인인 주작과 백호였다."이 술을 빌어 은인님들께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청목의 앞잡이들을 물리칠 수 있었어요.""이건 남극 빙원의 특산물인 크릴새우입니다. 한번 드셔보세요.""설웅이 여러분들같은 고수를 만난 건 저희 가문의 복입니다."설씨 가문 사람들도 매우 맛나게 먹었다. 이 음식들은 평소에 감독관들이나 먹는 것들이었다.사람들은 불을 에워싸고 춤을 추며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감정을 풀고 한껏 웃었다.설씨 가문 사람들의 열정에 주작과 백호는 적응이 되지 않아 염구준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길을 보냈으나 염구준은 웃으며 술잔을 들었을 뿐, 딱히 다른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지금 속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어떤 일들은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해야한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있었다. 너무 성급하게 굴었다간 허점이 많아지게 될 테고 그럼 신분이 들키게 될 테니까 말이다.'그쪽에서 놀라서 도망치면 이 모든게 헛수고가 되버리니까 천천히 해야 해.'모두가 기뻐하고 있을 때, 오직 설씨 가문의 장로, 설구만이 염구준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앉아 슬픈 눈빛을 하고서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장로님, 나쁜 녀석들이 도망갔는데 왜 안 기뻐하세요?" 그의 이상함을 눈치 챈 설웅이 그의 옆으로 다가가서 물었다."에휴, 다시 돌아올 겁니다.""청목존주를 처리하지 않는 이상 다시 돌아올 거예요. 무엇보다 청목존주는 반보천인의 강자입니다. 누가 이길 수 있겠어요?"설구는 장로답게 다른 사람들보다 안목이 더 좋고 생각이 더 깊었다."가문 전체가 남극 빙원이 아닌 바깥으로 옮기는 건 어떨까요?" 그의 말을 들은 설웅은 공손한 태도로 물었다."바깥으로 갈 수 있었다면 이미 이사를 갔을 겁니다. 하지만 외부에는 강적이 있어요. 만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죠."상대방의 질문에 설구는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