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녀는 겉으로 보기엔 매우 어려보였지만, 실제로는 스무살이 넘은 성인이었다. 이들이 대화하는 사이, 숲 속에서 인기척 여러 개가 느껴졌다. 바로 독산 일행이었다. 이들은 계속된 전투 상황에 많이 지쳐 있었다. 더군다나 불운을 불러오는 사내까지 뒤를 쫓고 있으니,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 “독매, 네가 왜 여기 있지?”독산은 좀 전까지 삼색꽃을 얻을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절명충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독매 일행에 얼굴이 어두워졌다. 상대가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든, 절대로 자신에게 유리한 이유는 아닐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뭘, 물어? 널 죽이러 왔지.”독매가 웃으며 대답했다.“동생아, 나 농담할 기분 아니다. 우리가 비록 같은 배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정이라는 게 있잖아.”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독산이 침착하게 독매를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살기를 내뿜기 시작한 독매의 얼굴을 보니, 자신의 말이 별로 설득력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오빠, 너도 나를 죽이려고 삼색꽃을 찾으려는 거잖아. 이제 와서 발뺌해도 의미 없다는 걸 알 텐데? 연기하려면 좀 그럴싸하게 해.”독매는 이미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구태여 흑충곡 같은 곳에 발을 들일 이유 없었다.“….”독산은 계획이 들통나자,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다물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면, 강경한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가자, 먼저 삼색꽃을 찾아야 한다!”독산이 지시를 내리며 절벽 너머 우뚝 솟아 있는 절명충 분지를 향해 몸을 날렸다.“아가씨, 저들을 막아야 하지 않나요?”독산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독매 옆에 있던 부하가 물었다. “그럴 필요 없어. 알아서 사지로 굴러 들어간 거나 마찬가지니까.”독매가 웃으며 조용히 독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삼색꽃을 채취한다는 것은 불나방이 불에 뛰어드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귀했고 전설처럼 전해지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이때, 수풀 사이에 또다른 존재가 나타났다. 바로
절벽 꼭대기와 가까워질수록 독충도 점점 많아졌다. 그만큼 위험부담도 더 커졌다. 동시에 연달아 폭발음이 들렸다. 염구준이 앞에서 날아오는 독충들을 모두 날려보내고 있었다. 그가 펼친 것은 바로 전신 영역이었다. 겨우 이 정도 공격에 반보천인의 힘은 사치였다. “전신 경지 강자다!”독산이 놀라 외쳤다. 그는 충격에 꽤 긴 시간 염구준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내가 그럼 좀 전에 전신 경지 강자랑 붙을 뻔한 거야? 죽을 뻔했는데?’소름이 전신에 돋았다. 녹독산장은 큰 세력에 속하지 않았다. 그만큼 인재들이 부족했고, 전신 경지 강자는 더더욱 만나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염구준은 순식간에 절벽 꼭대기에 도착해 삼색꽃을 채취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순조로웠다. 그런데 삼색꽃을 뜯은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모든 독충들이 빠르게 그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광경은 아무리 반보천인인 그에게도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일이었다. 어쩌면 저주의 여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샘색꽃은 어떻게 복용하지?”염구준이 아득한 눈빛으로 곤충 무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때, 밑에서 외치는 독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먹으면…!”거리도 멀고 곤충들이 만들어내는 소음 때문에 염구준은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삼색꽃은 아직 많았다. 방법이 무엇이든, 통할 때까지 시도하면 그만이었다. 그는 곧바로 삼색꽃을 입안으로 쑤셔 넣었다.‘이런, 독 있잖아?’삼색꽃을 입안에 넣고 씹자마자 그는 폭발적인 힘이 온몸에 퍼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오장육부가 뒤틀리며 모든 세포가 파괴되기 시작했다. 염구준은 급히 기운을 끌어 모아 장기들을 보호하며 최대한 독충들을 피해 한쪽 구석으로 몸을 날렸다. “미쳤나 봐. 삼색꽃을 그냥 먹다니!”현장에서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염구준을 바라봤다. “그냥 먹지 말고 목욕물에 풀어 몸에 흡수시키라고 했는데, 못 들었나?”독매는 어이가 없었다. 분명 방
“음침한 놈이, 평소대로 쥐새끼처럼 숨어있기나 할 것이지, 왜 나타났어?”염구준이 경멸이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는 흑풍존주를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상대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이 와중에 허세는! 이제 날 건드리지도 못할 놈이!”흑풍준주가 조롱하며 마음껏 지금 상황을 즐겼다. 그는 이 순간을 위해 정말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이 번져갔다.그런데 이때, 어디선가 비행선 엔진 소리가 들려오더니, 염구준 머리 위에 멈춰섰다. 막 업그레이드된, 7세대 전투 비행기였다. 그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기다리던 지원군이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인공지능으로 움직이는 전투기였다. 사람이 직접 조종하기엔 아직 숙련도가 부족했지만, 멈추고 세우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외부 지원?”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흑풍존주가 입가에 미소를 지우며 중얼거렸다.염구준은 다리에 힘을 주며 높이 뛰어올라 순식간에 비행기 조종석에 자리 잡았다. 그러자 목표물이 갑자기 사라진 것을 알아차린 독충들이 일제히 비행기를 향해 돌진했다. ‘멍청한 벌레들!’비행기에서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이 발생하더니, 도무지 벌레로는 쫓아올 수 없는 어마어마한 속도를 내며 빠르게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 여파로 공격하던 벌레들 모두 튕겨져나갔다.“존주님, 놈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흑풍존주의 부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흑풍존주는 이미 모습을 감추고 보이지 않았다. 염구준이 전투기에 탑승한 순간, 이미 도망친 것이다. 과연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전투기에 탑승한 염구준은 열감지 장치를 이용해 적을 감지한 뒤, 곧바로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눌렀다. 순식간에 몇몇 사람들이 저세상으로 갔다. 이후, 염구준은 전투기를 조정해 달아나고 있는 흑풍존주를 추격했다. 점점 가까워지는 비행기 소리를 들으며 흑풍존주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젖 먹던 힘까지 발휘해 어떻게든 염구준의 시야에서 사라지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눈앞이 흐
한 달 뒤, 5성급 호텔 최상층,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주인님, 찾으셨습니까?”선풍은 겉 보기에는 존경의 눈빛으로 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지만 사실 원망이 가득했다.“이제 돌아가셔야 합니다!”흑풍 존주는 그의 깍듯한 모습을 비웃듯 웃어 보였다. 그가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다 아는 듯하였다.그는 지난번 염구준에게 패한 이후 약 한 달간 훈련을 하며 마침내 부상에서 회복됐다.지금 흑풍 존주는 새로운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그의 목표는 엘 가문이었다!“내가 기필코 되돌려주마, 염구준은 손도 쓰지 못할 거야!”흑풍 존주는 입가에 냉소를 띄우며 선풍의 앞으로 서류를 던졌다. “네 다음 임무는 엘 가문을 공격하는 거다!”그 위에는 최근 엘 가문의 약점과 내부 스파이까지 적혀 있었다.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선풍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예!”선풍의 마음은 뜨겁게 불타올랐다. 오랜 시간이 흘러 마침내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서류를 집어든 그는 돌아서서 발걸음을 옮겨 다음 단계에 착수했다. “주인님, 저 자를 믿으십니까?”옆에 서 있던 남자는 조금 놀라며 의심스러운 듯이 물었다. 흑풍 존주는 차갑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며칠 뒤, 엘 가문이 파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가주님, 이제 어떡하죠? 벌써 문 앞에 돈 내놓으라는 사람들이 모였어요! 저희의 최저 입찰가도 알려졌습니다!"임원들이 앨리스의 앞으로 달려와 상기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앨리스는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두려움이 커져갔다.앨리스는 잠시 생각을 하다 무언가 결정을 내리고 전화기를 들었다. “무슨 일이시죠?”염구준은 하품을 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조금 피곤해했다.“염 선생,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엘 가문은 지난 이틀 동안 악의적인 공격을 받아 현재 파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두 개의 간단한 문장으로 현재 엘 가문의 모든 상황이 설명되었다. 염구준은 믿기 힘들다는 듯 눈을 크게 떴
그는 이 일을 무사히 넘긴다 하여도 자신에게 큰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다음날, 염구준이 직접 앨리스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무슨 일입니까?"그는 피곤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눈 밑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으며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한 것 같았다. "일단 좀 쉬시는 게 어떠십니까?"앨리스는 맞은편에 앉아 그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일인지 말하세요!”염구준은 그런 그의 걱정을 무시한 채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지금까지 주식시장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주식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온 것 같습니다. 구매자가 누구인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저희 입찰가도 함께 유출됐는데, 벌써 대금을 치른 사람들도 있습니다.”앨리스가 지금까지의 일들을 하나하나 염구준에게 말해주었다.“회장이라는 사람이 참 잘하고 계셨네요, 하!”얘기를 듣던 염구준은 비꼬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자기 사람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데,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그는 말과 함께 청룡으로부터 서류를 건네 받아 앨리스의 앞에 던졌다. “주식을 판 이사입니다. 처음부터 주식을 하고 있던 모양인데 설마 취임하기 전에 확인하지 않으신 겁니까?”청룡이 어젯밤 밤새 조사하여 알아낸 내용이었다. 앨리스는 범인의 정체를 알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리고 대금 관련해서도 초기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으셨습니까? 계약서를 보지도 않은 거라면 도대체 언제부터 대금이 시작된 겁니까?"염구준은 눈살을 찌푸린 채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앨리스를 바라보았다."저도 확인했습니다. 저를 저녁식사에 초대했고 술을 마시면서 계약서에 서명을 해서 제대로 보지는 못했습니다."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앨리스는 누군가가 생각난 듯 눈을 크게 떴다. 순간 누군가 그녀에게 계약서에 서명해 달라고 부탁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됐습니다.”그녀의 말을 들은 염구준은 조롱의 눈빛과 함께 차갑게 웃었다. "내일부터 엘 가문의 모든 활동은 물론 계
말을 마친 염구준은 주작이 엘 가문에 들어온 뒤 모든 행적들이 적힌 문서를 던졌다."이 문서에 따르면 주작을 일찍이 해외로 보내셨더군요."염구준은 어떠한 흔들림도 없이 냉정한 태도를 유지했다.“맞습니다.”앨리스는 매우 당황한 표정으로 옷깃을 붙잡은 채 고개를 숙였다.“도대체 뭘 그렇게 두려워하시는 겁니까? 제가 자리를 빼앗을까 봐 겁나십니까?”연속된 질문에 앨리스는 고개를 들기가 더욱 두려웠다. 그녀는 매우 불안했고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아닙니다.”애써 내뱉은 네 글자에 염구준은 피식 웃으며 비서에게로 향했다."재무 부서 부장 불러오세요."비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뒤돌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제가 당신의 자리를 빼앗을 수 있을지 없을지 오늘 확인해 드리죠.”앨리스는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었다.재무부장은 회장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약간의 비웃음을 보였다."지금 계좌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말해 보세요."염구준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 여유롭게 재무부장을 바라보았다. “백만 원가량 남아있습니다만 이 역시 유동자금입니다.”염구준은 보고서를 탁자 위에 올려두며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미소를 지었다. "한번 보시죠. 고작 돈 몇 푼가지고 저를 속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그는 보고서를 앨리스 앞에 던졌고, 경멸적인 눈빛으로 앨리스에게 다가갔다. "직접 당신을 승진시켜줬는데 이렇게 내 앞길을 막을 거라고는 생각치도 못했습니다." 약간의 떨림이 있긴 했지만 염구준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그렇다면 왜 주작을 보내 저를 감시하게 한 겁니까? 내가 당신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는 것이 두려워서 아닙니까!" 계속되는 질문에 앨리스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이내 옷깃을 붙잡고 소리를 질렀다. 얼굴이 붉어져 마치 화를 참는 어린아이 같았다."난 당신을 가르치려고 그를 보낸 겁니다. 당신이 어떤 짓을 하고 있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내
자신의 실체가 공개되었음에도 재무 부장은 어떠한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았다.오히려 그는 당당함과 도발 섞인 표정으로 앨리스를 바라보았다. “지금 당신의 꼴을 보세요. CEO로서 당신이 적합하다고 생각합니까?""당신은 그저 껍데기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죠."그의 눈빛에는 조롱이 담겨 있었다. 그는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앨리스를 바라보았다. 퍽!앨리스는 단 한 번의 펀치로 그를 땅에 쓰러뜨렸다. "나는 최선을 다했어! 내일부터 나올 필요 없어."그를 때린 뒤 앨리스는 조금 진정하고 바닥에 누워 있는 재무 부장을 바라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업계에서 쫓아 낼 거야. 당신이 어디서 일하든 당신을 고용할 회사는 없을 거라고 약속하지.” 앨리스는 재무 부장의 멱살을 잡고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앨리스는 입꼬리를 올린 채 거의 미친 사람처럼 말했다. “좋습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내버려 두세요.”등을 두드리며 위로하는 염구준의 목소리에 앨리스는 손을 놓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제가 왜 주작을 보냈는지 아시겠습니까? 당신 주변에는 쓸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염구준은 손을 닦은 후 앨리스에게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닦으세요. 이런 사람들에게는 화를 낼 가치도 없습니다."앨리스는 염구준에게 더욱 감사함을 느끼고 이전 일에 대해 더욱 죄책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염구준을 바라보는 앨리스의 눈빛에는 진심 어린 존경심이 담겨 있었다. “아닙니다. 앞으로 저를 억울하게 탓하지만 마세요."농담을 하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지만 염구준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잠시 뒤 대금을 지불하라고 독촉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갈 겁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일지도 몰라요."염구준의 눈빛은 더욱 싸늘해졌다. 그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들고 앨리스의 옆 자리에 앉았다. “염 대표님, 대금을 요구하는 사장님께서 오늘 오후 1시에 만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지금 출발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비서가 정장을
“가주님이 이곳에 나타나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앨리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앨리스는 이전에 가주가 도망갔다는 소식을 들은 적 있었다."세상 일은 예측할 수 없는 거죠. 저도 이렇게 빨리 여러분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앨리스의 말에 가주는 개의치 않고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염구준을 바라봤다. “전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화제는 그에게로 돌아갔고 염구준은 몇차례 손을 흔들었다."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가주님 같은 재능을 가진 분이라면 분명 필요한 사람이 있을 테니까요."상대가 패를 다 보여주지 않았으니 염구준은 섣불리 말하기 어려웠다. "본론으로 들어가죠. 여러분은 대금을 지불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이신 겁니다."그 역시 더 이상 염구준을 상대할 시간이 없었다. 가주는 표정을 바꿔 진지하게 말했다. "저 역시 계약서가 어떻게 체결된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상대가 솔직하게 나오는 것을 본 염구준 역시 본심을 숨기지 않고 다리를 꼰 채 굵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정도는 얼마든지 알아보실 수 있으실 텐데요. 오늘 제가 올 것이라는 것도 알고 계시지 않으셨습니까?”염구준에게 질문하는 가주의 눈에는 냉소와 원한이 가득했다.“이 모든 게 가주께서 놓은 덫 아닙니까. 오늘 일은 그저 제가 추측한 것뿐입니다.”두 사람은 몇 차례 대화를 나눴지만 앨리스는 옆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앨리스는 염구준을 유심히 바라보며 뭔가를 배워가려 하였다. “그럼 맞게 추측하셨군요. 다만 이것은 효력이 있는 계약입니다. 앨리스께서 직접 서명하셨으니 제가 속인 것도 아니지요.”그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그곳에는 앨리스의 서명이 적혀 있었다.그 모습을 본 앨리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분노와 욕설이 섞인 말과 함께 가주를 가리켰다. "정말이지 뻔뻔하네요! 나를 속여 이 계약서에 서명하게 해놓고 지금도 이 계약서를 이용해 나를 속이려고 하는군요!"앨리스는 와인잔을 들어 그를 향해 흩뿌렸다. 가주의 옷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 세력들은 세라와 관계가 좋았지만 지금은 그녀가 스텔라성과 엮여서 믿을 수가 없었다.베르가 말한 동맹도 결국은 이익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었다.“염병할 놈!”베르는 염구준이 사라진 곳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에취!”한편, 바다의 동굴을 지나던 염구준이 재치기를 하더니 귓구멍을 파며 중얼거렸다.“또 어떤 놈이 뒤에서 나를 욕하는 거야?”그는 이미 수백 미터 안으로 들어가면서 동굴을 살펴보았다.오래전에 인공으로 만들어진 동굴로서 지하수도로 사용했거나 육지에서 지각이 변화하여 이곳에 가라앉을 가능성도 있었다.이제 동굴 내부에 완전히 적응되어서 속도를 낼 때가 되었다슝!위험도 없고 갈림길도 없으니 팔다리를 빨리 저으며 앞으로 전진했다.동굴 끝에 무엇이 있는지 참 기대가 되었다.그것이 고대 옥패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이다.푸!가는 도중에 갑자기 장어 같은 바다 동물의 습격을 받았지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누가 있어.’얼마나 헤엄쳤는지 모르겠지만 눈앞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염구준은 그 사람의 생사를 알 수 없어 한 줄기 검기를 발사했다.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고 죽은 사람이라 생각했다.가까이 다가가 보니 잠수복을 입은 시체는 부패되지도 않고 마치 자는 것처럼 보였다.그 옆에 커다란 가방이 있었는데, 열어보니 황금, 비취. 진주 등 값나가는 보물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진짜 보물이 있었네. 고대 옥패도 있을까?”그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보물이 가득한 가방은 뒤로 한 채 계속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시체들이 점점 더 많이 나타났다.염구준은 궁금했다.왜 시체들이 하나 같이 상처도 입지 않고 평온한 표정으로 죽었는지 말이다.이상한 상황으로 하여금 점점 주변을 경계하게 만들었다.앞으로 더 나아갔을 때, 동굴은 사라지고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이곳이 바로 목적지인 것 같았다.그리고 내부를 살펴보려고 수십 발의 불꽃을 발사하던 염구준
찾겠다고 약속했던 보물이며 고대 옥패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그때 누군가 가슴이 벅차오르는 소식을 전했다.“절벽 위에 동굴이 있어요!”“여기에도 있어요. 불덩어리를 던졌는데 끝이 보이지 않아요!”“동굴에서 100그람되는 금덩어리를 발견했어요!”드디어 보물이 나타났다는 말에 다들 동료를 잃은 슬픔에서 금세 벗어났다.“일단 경거망동하지 말고 우리 대책부터 세웁시다.”중요한 순간에 베르가 나서서 대국을 주재하려 했다.염구준을 고립시키고는 각 세력들을 이용해 더 많은 것을 차지하려는 수작이었다.“부성주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합리적인 대안이라면 지시를 따를게요.”메노스가 환심을 사려고 스텔라성의 편에서 말했다.염구준의 실력이 너무 강해서 맞설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저들의 도움이 필요했다.나머지 가주들은 드디어 줄을 서야 하는 때가 온 것을 알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줄을 서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선택 문제였다.만약 잘못 선택하면 아무런 이득은 보지 않고 끝없는 재앙만 맞이할 것이다.…그 외에 무술인들은 가주들이 중요한 일을 논의하는 것을 알고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몇몇 사람들이 토론한 결과로 대다수 사람들의 생사를 결정할 것이다.“염 선생은 대책이 있습니까?”노신기가 긴장이 흐르는 분위기를 깨고 떠보듯 물었다.지금 염구준은 혼자서도 스텔라성를 상대하기 충분했다.다들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때 염구준이 한 동굴 입구에 서서 말했다.“상의할 게 뭐가 있어요? 보물이 보이면 능력에 따라서 챙기면 되죠. 실력이 있으면 많이 챙기고 없으면 바닷물이나 마시다 가면 되죠.”그 말 뜻은 물질적이지만 현실적이기도 했다.지금 각 세력들이 꿍꿍이를 세우고 있으니 아무리 상의를 해도 진심이 아닐 것이다.어차피 나중에 사이가 틀어질 텐데, 지금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말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염구준의 말을 들은 베르는 각 세력들의 마음이 돌아설까 봐 바로 안색이 어두워졌다.“염구준, 지금 분열을 일으키는 거야? 절대 용납할 수 없어.
어떤 무술인들은 적대 관계이고 위에서 아무런 태도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감사의 눈길을 보냈다.베르 일행은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침묵하고 있으니 염구준을 칭찬하는 것은 더 불가능했다.“이곳은 위험해서 항상 조심하세요. 그렇다고 매번 도와줄 수 없어요.”염구준은 무덤덤하게 말했다.어차피 이번만 도와줄 거라 뻔뻔하게 구는 사람이 있어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그때 통신기에서 당황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저기 모래벌레 무리가 오고 있어요!”그 말에 다들 다시 안절부절했다.염구준이 재빨리 통신기에 대고 모두를 진정시켰다.“당황하지 마세요. 대부분 바닥으로 들어가고 몇 마리만 뒤를 따라왔을 겁니다.”땅으로 돌아가지 않은 모래벌레들은 전부 그의 검에 잘렸기 때문이었다.다들 안심하고 싸울 준비를 할 때, 꽃무늬 셔츠를 입은 젊은이가 공을 들고 앞에 나섰다.이곳까지 오면서 나약한 실력 때문에 항상 타인의 보호를 받았는데, 왜 이제야 나서는지 다들 알지 못했다.“썩을 놈의 벌레야! 첨단 과학기술의 위력을 보여 줄게!”젊은이가 건방지게 말하며 손에 든 공을 힘껏 던져버렸다.“안 돼!”메노스가 나서서 말렸지만 공을 이미 던져서 늦어버렸다.갑작스러운 행동에 다들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방어!”염구준이 고함을 지르며 기운으로 호체 기운을 끌어냈다.반보천인인 염구준마저 긴장하게 만들다니, 모두 젊은이가 던진 공은 틀림없이 대단한 물건이라고 생각했다.펑!공이 수십 미터 떨어진 곳으로 흘러서 올라간 순간,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마침 달려오는 모래벌레들을 순식간에 폭발시켰다.물속에서도 이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다니, 보기만 해도 감탄이 흘렀다.“악!”그런데 에너지가 빠른 속도로 물속에서 퍼지더니 사람들의 몸에 부딪치며 오장육부에 침투되었다.순식간에 거대한 생물체를 몇 마리나 제거했으니 사람에 미치는 영향도 치명적이었다.실력이 약한 무술인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바로 죽었다.퍽!가장 먼저 공격받은 젊은이는 충격에 한참이나
“알겠습니다.”“네.”두 사람은 대답하자마자 각자 맡은 20명이 넘는 부하들을 이끌고 심해 모래벌레가 드문 변두리 지역으로 향했다.실력이 뛰어난 무술인 두 명이 앞장서서 길을 터주고 있으니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가장 중요한 것은 이로서 부하들의 사기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그 장면을 본 남은 세력들도 벗어날 방법을 생각했는지 부하들에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살고 싶으면 빨리 천기문의 뒤를 따라가!”지금 염구준이 뒤를 맡고 있었기에 그들도 벗어나기 훨씬 수월했다.베르가 떠날 때는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염구준의 뒤를 노려보면서 저렇게 싸우다 콱 죽으라고 저주까지 했다.결국은 살려고 바삐 피신하느라 누구도 염구준을 도와주지 않았다.혼자 남은 그는 결국 심해의 모래벌레에게 포위되었다.“에휴, 저럴 줄 알았어. 그동안 도와준 걸 봐서라도 우리도 도와줍시다.”염구준은 자신이 한 결정에 후회하지 않고 계속 검을 휘둘러 벌레를 살해했다.각 세력의 무술인들이 이미 멀리 떨어졌으니 지금은 이 무리를 뚫고 나가야 했다.촤아악!순식간에 수많은 검기가 주변에 발사하며 바다 밑을 들쑤시는 바람에 모래와 진흙이 시야를 가렸다.어렴풋이 보이는 것은 덩치가 큰 물체들이 하나둘씩 쓰러지는 것이었다.아무리 바다가 모래벌레의 구역이라 해도 염구준의 검을 막지 못했다.검망이 닿는 곳은 그들 시체로 널렸다.염구준이 뛰쳐나오려고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을 때 도망친 각 세력들은 균열 변두리에서 편하게 쉬고 있었다.“염 선생이 우리를 위해 혼자 희생하는데 우리도 소수 정예병을 조직해서 도와줍시다!”그레이가 통신기에 대호 한마디 제안했다.흔쾌히 나설 사람은 없겠지만 일단 말은 해봐야 알 수 있으니까.“하, 대단한 것처럼 건방지게 굴더니, 저런 놈은 죽어도 싸.”“그러게요. 저 악마의 생사는 우리랑 상관없어요.”베르와 세라가 시큰둥하게 자신들의 태도를 표명했다.“당신들…”그레이가 나서서 비판하려고 할 때 그들과 싸워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더는 말을 잇지 않
염구준이 수압의 영향을 받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베르는 당황했다.이제 손에 무기도 없어서 어떻게 막아야 할지 막막했다.“멈춰!”“당장 공격을 멈춰!”“부성주님, 조심하세요!”그 장면을 보던 반보천인 세 명은 막을 겨를도 없이 소리를 질렀다.바로 그때,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염구준은 공격을 멈추고 지하를 내려다보았다.푸!두 사람 사이에 있는 두터운 진흙 속에서 갑자기 무엇인가 모래를 사방에 뿌리면서 올라오는 것이었다.염구준이 재빨리 진흙의 가운데를 잘라버리자 생물체가 죽었는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마침 검기도 기운을 소진하여 공격을 멈추고 돌아서서 살펴보았다.“젠장, 그냥 지하에 처박혀 있을 것이지, 뭐 하러 죽으러 나왔어?”염구준이 불청객에게 짜증을 부렸다.만약 생물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 검에 죽을 사람은 베르였다.진흙과 모래가 가라앉자 다들 생물의 정체를 주시했다.굵기가 2미터나 되고 꼭대기에 날카로운 이빨이 수두룩하게 생긴 심해의 모래벌레였다.이 벌레는 성체가 되면 길이가 30미터에 달하고 풍부한 광물을 함유한 화산암을 먹고 살기에 이 구역에서 텃세가 특히 강했다.그리고 공격성은 형태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방어해! 이것들이 떼로 공격할 거야!”염구준은 통신기에 주의를 주고 잠시 베르를 살해하는 것을 뒤로 미루기로 했다.위험한 상황에 닥쳤으니 자기들끼리 싸운다면 사기를 떨어트리기 때문이었다.푸푸!말이 채 끝나기 전에 수많은 모래벌레들이 땅속에서 나와 무차별한 공격을 퍼부었다.일반 무술인이 한 입에 먹힌다면 바로 두 동강이 났다.반보천인 무술인들은 잠수 장비가 망가지면 심해의 수압을 견뎌야 하기에 역시 방심할 수 없었다.그러니 아무도 죽음을 무릅쓰고 공격하지 않았다.심해 모래벌레들이 신출귀몰하며 공격하자, 다들 혼란에 빠져 허둥지둥했다.그들에 비해 염구준은 다가오는 놈들을 가볍게 잘라냈다.이 벌레들은 사납지 않은데 갑자기 땅속에서 튀어나올 때 당황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염구준은 감지
싸움은 잠시 한 단락 끝났다.베르가 씩씩거리며 통신기에 대고 고막이 터질 듯 소리를 질렀다. “염구준, 왜 우릴 도와주지 않아?!”“당신들도 날 도와주지 않았잖아요.”염구준은 어처구니없는 가스라이팅을 무시하고 반문했다.베르는 이런 말로서 염구준을 각 세력의 반대편에 세워 고립시키려는 수작이었다.이제 막 대군을 지휘할 수 있는 임시 사령관을 담당하게 되었으니 위세를 떨칠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웃기지 마. 우리는 반보천인 무술인이라 다른 무술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어. 그런데 넌 한심하게 지켜만 보고 있었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베르는 정의로운 척 그의 영혼까지 고문하며 계속 나무랐다.눈치가 없는 무술인들은 정말 베르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하하하. 방금 수십 명이 넘게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는데도 당신은 구하러 가지 않고 도망가느라 바쁘던데요? 그 말을 하고도 양심에 찔리지 않습니까?”염구준은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이기적인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지,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또 염구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이렇게 분석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리기 십상이었다.“흥, 따박따박 말대꾸는. 누가 너 같은 놈을 낳았는지 그 어미가 궁금하다.”베르는 솔선수범하지 않으면서 말로도 밀리게 되자 인신공격을 하기 시작했다.“죽고 싶어?”그러자 염구준이 버럭 화를 내며 베르에게 검을 겨주었다.상대방이 시비를 건다면 원하는 대로 한바탕 싸워줄 기세였다.“내가 무서워할 줄 알아?”베르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커다란 방패를 들고 맞섰다.이번 행차에 스텔라성에서 실력이 있는 반보천인 네 명을 파견했기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쿵!염구준의 검이 방패에 닿은 순간 둔탁한 소리가 나며 베르가 뒤로 몇 발치 물러갔다.“물에서 방패를 쓰다니, 죽으려고 작정했군.”물속에서 방패의 부력이 커서 오히려 싸움에 방해가 되었다.그는 계속 검으로 공격하며 가볍게 제압했고, 뒤로
그 생물의 정체는 대왕 오징어였다.이 생물은 빛을 두려워해서 항상 심연에 숨어 있기에 과학자들은 파도에 밀려온 시체들만 주워서 연구했었다.대왕 오징어는 가장 긴 것은 40미터 이상에 달했다.염구준은 지금 상황을 보고 속으로 탄성이 흘러나왔다.“젠장, 오징어 소굴을 건드렸나?”심지어 그중에서 덩치가 큰 오징어는 전신 경지에 도달했다.마침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와서 다행이지, 염구준이 혼자 싸운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염 선생님, 이제 어떡해요?”통신기에서 초조한 노신기의 목소리가 들렸다.그 말 뜻은 그가 나서서 천기문의 부하들을 지켜달라는 의미였다.솔직히 그들 실력으로 이렇게 많은 대왕 오징어를 상대하기 버거웠다.“살아남아서 바다 밑 끝까지 오세요.”염구준은 한마디만 남기고 검을 휘두르며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지금은 사방이 어두워서 대체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는 것조차 어려웠고, 모두 자원해서 온 거라 그들을 책임질 의무가 없었다.“다들 최선을 다해 바다 밑으로 내려가자!”노신기는 목숨을 걸 각오로 모두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순식간에 각 세력은 대왕 오징어와 무차별적인 싸움을 벌였다.하지만 캄캄한 물속은 대왕 오징어들에게 유리한 곳이라 인간들은 1대1 싸움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참담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위기가 닥치자 베르가 긴급 공공 통신 채널을 열고 이런 제안을 했다.“이러다 다 죽습니다. 우리 모두 협력하여 살길을 열어야 합니다. 바다 밑에 도착하면 지금처럼 힘들지 않을 겁니다.”솔직히 베르도 염구준처럼 대놓고 아래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그런 실력이 되지 못했다.“찬성합니다.”“협공합시다!”각자 싸우다가 자칫하면 전멸할 수 있으니 다른 세력들도 이 제안에 동의했다.“반보천인이 앞장서고 전신 경지, 전신지상 무술인이 그 다음, 나머지는 뒤를 따라갑니다!”베르는 정예병을 살리고 나머지는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을 생각으로 배치하기 시작했다.“공격합시다!”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다른 사람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모두가 슬픔과 공포에 빠져 있을 때 염구준이 두터운 잠수복을 입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간밤에 가볍게 생물을 절단하면서 그의 단전은 이미 기운으로 꽉 찼다.“염 선생이 바다에 들어갔어요.”모든 사람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으니 작은 동작이라도 이내 알아챘다.그가 갑작스럽게 뛰어드는 바람에 노신기 일행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대체 왜 저러는 거야?”“내가 앞장 설게요. 촉각이 있는 생물일 뿐, 두렵지 않습니다.”일부 반보천인은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서둘러 잠수복을 입고 바다에 뛰어들었다.염구준의 손에 완벽한 해도가 있으니 그가 정보를 어느 정도 장악하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그래서 먼저 보물을 찾아낼까 봐 조바심이 났던 것이다.어떤 사람들은 말로는 보물을 찾으러 왔다고 하지만 솔직히 고대 옥패를 노리고 왔다.일단 옥패에 있는 무공을 연마하면 자신의 실력을 제고할 수 있으니 나중에 재물을 손에 넣어도 늦지 않거니와 그때는 더 쉬울 거라 생각했다.염구준은 바다 밑에 있는 균열을 향해 가다가 가끔씩 방향을 조절했다.아직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가장 힘이 덜 드는 방법을 사용했다.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물고기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점점 어두워져 앞이 보이지 않았다.염구준은 길이가 석 자가 되는 청봉을 잡고는 언제든 적을 무찌를 준비를 했다.방금 잘린 촉각의 길이를 볼 때, 본체에 비해 너무 짧아서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만약 덩치가 어마어마한 팔조괴물이라면 아직도 어두운 곳에 숨어 있는 게 틀림없다.촤아아! 촤아아!그때 물살이 바뀌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더니 수백 개의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각 세력의 정예병이 움직인 것이다.어떤 무술인은 일정한 거리에 도착한 후 빠르지도 늦지도 않는 속도로 염구준의 뒤를 따랐다.그가 앞장서서 길을 터달라는 뜻이었다.염구준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아래 균열이 빨아들이는 대로 끌려갔다.‘얼마든지 따라와 봐.’지금 상황으로 말하자면 누가 누구의 총받이가 될지
선박 위의 사람들이 절박하게 울부짖었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자 각 세력들이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분위기를 보아 곧 위험이 닥칠 것 같았다.촤아아악!“엄청난 것이 몰려오고 있어! 빨리 위로 올라가!”나중에 물에 들어간 무술인들이 제일 먼저 해수면으로 올라와 보고했다.이어서 대다수 무술인들은 통신기에 비명소리만 남기고 사라졌다.각 세력이 어쩔 바를 몰라 혼란에 빠졌을 때, 노신기는 염구준의 옆얼굴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그의 말이 옳았다.“다들 맞서서 싸웁시다!”염구준은 어마어마한 기운이 몰려오는 것을 감지하고 우렁차게 소리쳤다.그게 무엇이든 이미 상대방을 건드린 이상 맞서서 싸워야 했다.정신을 차린 각 세력들은 갑자기 조상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무기를 집어 들었다.촤아아!다시 몇몇 사람이 수면위로 올라오더니 놀라운 속도로 선박을 행해 헤엄쳤다.“저게 다 뭐야?”누군가 겁에 질려 비명소리를 질렀다.“나도 몰… 악!”같이 헤엄치던 일행이 말하다 바다 밑에 있는 물건에 잡혀 끌려가고 말았다.그리고 밧줄처럼 생긴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선박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악!”“살려줘!”순식간에 비명소리와 경악 소리가 섞여서 현장이 아수라장이 되었다.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체에 다들 지레 겁을 먹었다.윙!그때 누군가 열 줄기 검기를 발사해 밧줄처럼 생긴 생물을 잘라버렸다.“저건 또 뭐야? 엄청 단단하네.”제일 처음으로 공격한 사람은 역시 염구준이었다.“끼익!”바다 밑에서 공격을 당한 생물은 날카로운 이명소리를 내며 위로 올라왔다.생각보다 쉽게 잘리자 각 세력들은 용기를 내서 공격을 퍼부었다.“별거 아니네. 단번에 잘려지잖아.”자신감이 생긴 그들은 필사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본래 각 세력의 실력으로 쉽게 생물을 잘라낼 수 있는데, 이 생물이 모두가 혼란에 빠진 틈을 이용해 습격할까 봐 진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물론 염구준도 모든 사람을 책임질 의무가 없으니 주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