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구준의 말은 마치 비수처럼 귀호의 가슴을 꿰뚫었다.“죽어!”수안이 서서히 몸을 돌리며 황금색 등껍질을 가진 전갈을 어깨 위에 올리며 공격을 시작했다. 부상당한 귀호는 완전한 상태인 그녀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아악”!귀호는 절망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피투성이 된 채 바닥에 쓰러졌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 도시를 점령하던 거물이 저물어갔다. 수안은 귀호를 제거한 뒤, 제정도 쪽으로 걸어가 제주아의 독을 풀어주었다. 한편, 염구준은 아직 죽지 않은 부상당한 노인을 향해 걸어갔다.“오, 오지 마!”노인이 공포에 질린 눈으로 외쳤다. 그에게 염구준은 마치 저승사자 같았다.“옥패, 어디서 났지?”염구준은 노인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가 알고 싶은 건 단 하나, 옥패뿐이었다.“주웠다!”노인이 다급히 외쳤다.“나 그렇게 인내심 많은 사람 아니야. 왜 자꾸 명을 재촉하는 말을 하지?”염구준이 온몸에서 기운을 끌어올리며 차갑게 말했다.“마, 말할게! 독무대회 초청장에 딸려왔어. 난 그냥 모양이 괜찮길래 목에 걸었을 뿐이야!”노인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해명했다.“정말?”염구준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다시 물었다.“염 선생님, 저 말은 사실일 겁니다. 저도 하나 받았거든요.”그 말과 함께 수안이 품에서 같은 모양을 가진 옥패를 꺼냈다. 그제야 염구준은 노인의 말을 믿었다. 누군가가 이것을 미끼로 옥패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유인하려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꺼져. 꼴도 보기 싫으니까.”원하는 것을 얻자, 염구준은 노인을 풀어주었다. 그는 비록 한번 마음먹으면 손에 자비가 없었지만, 살생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었다.“정말?”노인이 믿기 어려운 듯 반문했다.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음에도 놓아주려 하다니,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았다. “왜, 왜 풀어주는 건데? 이유라도 알려줘. 안 그럼 풀려나도 불안하잖아!”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그냥 마음에 들어서. 됐어?”염구준이 귀찮은 듯 대답하며 노인한테 신경 껐다. 사실 이유라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제주아가 눈을 비비며 깨어났다. 아이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주아야, 기억나는 거 없어?”제정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있어요. 언니랑 같이 놀이공원에 갔는데, 제가 깜빡 잠이 든 것 같아요. 맞죠? 그런데 저 왜 여기 있어요?”주아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데리러 왔는데 네가 너무 푹 자고 있길래, 이쪽으로 옮겼어. 좀 더 자. 아직 집에 도착하려면 조금 걸려.”제정도가 다시 딸을 재우기 위해 어설프게 변명했다. 그리고 시야를 가리며 피비린내 나는 현장을 볼 수 없게 했다. “네!”제주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잠에 들었다. 독은 거의 다 해독했지만, 아직 어린 제주아가 바로 컨디션을 회복하기엔 무리였다. 완쾌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수안은 제도주를 도와줄 이유가 없었지만, 염구준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에 귀한 가문의 약재도 내놓았다.“이 약, 하루에 한 알씩 복용하게 하세요. 그럼 열흘 정도면 말끔히 나을 겁니다.”“감사합니다.”제정독가 약을 받으며 미소 지었다. 해독제가 있으니, 이제 딸의 안전도 확실해졌다. 그는 이제야 안심이 되었다. 이후 제정도는 남은 귀호 부하들을 이끌고 대염구관으로 돌아왔다. 귀호가 죽었으니, 보채성맹도 지도자를 잃게 되었다. 제정도는 조만간 보채성맹을 인수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전에 염구준에게 했던 약속이었다.“염 선생님, 전에 부탁할 것이 있다고 하셨던 거, 지금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대염무관에 돌아오자 마자 제정도는 곧바로 용건을 꺼냈다.“별거 아니에요. 앞으로 용하국 사람들을 구하게 되면, 제 사람들을 보내 그들을 인수하도록 허락해 주셨으면 해서요. 가끔 힘들 땐 제가 직접 나설 때도 있을 거고요. 이게 답니다.”그 말을 들은 제정도는 얼굴이 환해졌다. 그도 염구준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염구준이 먼저 언급해 주다니, 그
이후, 대염무관과 전신전 요원들은 서로의 협력 아래에 많은 용하국 사람을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드디어 정의가 실현되고 악이 모두 몰락한 밤이 찾아왔다. 어두웠던 도시에 한줄기 빛이 스며들었다.염구준은 임무를 마치고 멀어져가는 헬리콥터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앞으로 조심하셔들. 바보같이 속지 말고.”물론 이것으로 다 끝나다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무리안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도시였고, 언제 어디든 다시 비슷한 상황이 또 반복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염무관이 승세를 잡았으니, 같은 상황이 와도 이제 해결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터였다.이때, 옆에 있던 수안이 다가와 물었다.“염 선생님, 저희 거기로 갈 건가요?”“아직 시간 남아 있으니, 갈 때 들러 보지 뭐.”염구준이 손에 든 옥패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무리안, 폭홍구!이곳엔 다양한 미디어 회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평범한 영상 제작을 하는 곳도 있었지만, 좋지 않은 영상들을 제작하는 회사들도 있었다.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만큼, 폭흥구는 무리안 중심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매우 번화한 곳이었다. 그 시각, 폭홍구 밖 숲 속에 수백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잠복하고 있었다. 바로 염구준과 대염무관 사람들이었다.“염 선생님, 바로 움직일까요?”제정도가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듯 전투 태세를 취하며 물었다.“기다리세요. 제가 먼저 들어가서 상황을 살펴본 다음에 움직이죠.”염구준은 가능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않고 옥패의 단서를 알아보고 싶었다. 수안의 정보에 따르면, 오늘 대회에 참석하는 대부분이 그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옥패를 모조품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마치 대놓고 미끼를 흔들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수안만 날 따라와. 나머지 사람들은 여기서 일단 대기하고 있으세요.””여구문이 수안을 바라본 뒤, 대염무관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모두 긴장하지 말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세요. 준비되면 제가 바로 신호 보낼게요.”염구준이 조금도 긴장되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다음
문이 벌컥 열리더니, 검은 옷을 입은 남자 몇몇이 몰려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여자들이 놀라 비명을 지었다. 하지만 아무리 비명을 질러봤자, 여기엔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한편, 아바사는 명령을 내린 뒤 깊은 곳에 있는 지하실로 내려갔다.“무기, 얼마나 더 걸려?”“거의 다 됐습니다. 이제 마지막 단계만 마무리하면 곧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안에 분주하게 움직이던 한 남자가 앉은 자리에서 대답했다. 이 남자는 아바사가 세상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꽤나 능력 좋은 과학자였다. 그리고 그의 취미가 바로 다양하고 기괴한 것들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좋아!”답을 들은 아바사는 더 이상 방해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사실 그에겐 뒤에 꽤나 강한 주술사 조직이 배후로 있어 이런 무기 연구 따위 안 해도 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점차 몸집이 커지면서 남의 밑에서 빈껍데기로 일하는 것에 불만이 생겼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주술을 익힐 수는 없었기에, 과학 기술 쪽에 눈길을 돌렸다. 폭풍전야, 겉으론 고요하기만 폭홍구지만, 사실상 속엔 당장 터져도 이상할 것 없는 큰 혼란을 품고 있었다. 한편, 폭홍구로 무사히 들어온 염구준과 수안. 둘은 거리에서 삼삼오오 모여 핸드폰이나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지금 그들이 서 있는 거리에만 해도 촬영 팀들이 최소 수십은 즐비해 있었다. 그들 모두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이 익숙한 건지, 싸움이 나도 주변에 돌아다니는 그 누구도 제지하려 들지 않았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이들의 목에 모두 옥패가 걸려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규칙을 정한 듯이.“염 선생님, 저기 몇몇을 좀 잡아서 신문해볼까요?”수안은 혹시라도 자신이 함부로 움직였다가 염구준의 계획을 망치게 될까 매우 조심이 행동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저들한테 물어봤자, 딱히 쓸만한 내용이 나올 것 같지 않아.”염구준이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는 걸
흑풍구에서 그녀를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바빌라는 항상 모두에게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며 함부로 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만난 상대는 수안과 염구준, 통할 리가 없었다.“쯧, 목소리 좀 낮춰. 나 일반인 아니야. 주술사야.”수안이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주의시켰다. 명색이 전갈문 문주, 연약한 여자 한 명 죽이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다. 최근 염구준이 그녀에게 살생을 좀 자제하라고 하지 않았다면, 바빌라는 진작에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뭐? 네가 주술사면 어쩔 건데?”바빌라가 수안을 위아래로 훑으며 비꼬았다.“이래서 머리 빈 것들은….”수안이 헛웃음 지으며 땀을 닦는 척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며 살짝 흔들었다. 그러자 손수건에 묻어 있던 미세한 가루가 흩날리며 바빌라에게 날아가 흡수되었다.“머리 빈, 뭐? 감히 날 욕해? 당장 사람을 불러 네 년의 사지를 절단하겠다!”든든한 뒷배가 생긴 뒤, 이런 모욕을 처음이었다. 바빌라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매일 공주처럼 떠받들어지다가 욕을 받자 충격이 컸다.“애송이, 뭘 그렇게 과하게 반응해? 혹시 지금 피부가 가렵지는 않아? 심장이 빨리 뛰거나.”수안이 요염하게 웃자 볼에 매력적인 보조개가 파였다. 그런 다음 염구준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염구준은 그 시선의 뜻을 알아차렸으나, 문득 장난기가 치밀어 올라 못 알아들은 척 시치미 뗐다.“그렇게 봐도 소용없어. 나 애까지 딸린 유부남이야.”의도와는 다른 반응이 돌아오자 수안은 잠시 당황했으나, 속으로는 왠지 모를 실망감이 몰려왔다. 그러다 이내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저 외모와 능력에 여자가 없는 것이 더 이상했기 때문이다. 한편, 바빌라는 어딘가 간지러운지 피가 베어 나올 정도로 온 몸을 긁기 시작했다. “허, 허세는… 아, 근데 왜 이렇게 가렵지?”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손톱은 온통 자신의 피와 살점들로 범벅 되었다. “바빌라 씨? 왜 그러시죠?”“더 긁지 마요. 더 긁으면 흉 질 거
수안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과연 혈혈단신으로 문주의 자리까지 오른 여자의 위력은 남달랐다.“빨리, 빨리 병원으로 옮겨!”바빌라 옆에 있던 스태프들이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바빌라는 온몸이 흙투성이인 데다가 여기저기 피까지 묻어 있어 전의 아름다움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누구야. 감히 이곳에서 소란을 피우다니.”어디선가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구릿빛 피부에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사탕수수를 뜯으며 나타났다. 그는 아바사의 부하로서, 폭홍구를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형님, 저 년이 바빌라를 이렇게 만들었어요!”비영이 나타나자 주변에 있던 바빌라의 스태프들이 황급히 다가가 상황을 꼰지르기 시작했다. 정말 얼마나 현실감 있게 설명하는지, 직접 보지 않았는데도 상황이 그려질 정도였다. 이때, 바빌라가 고통스럽게 몸을 일으키며 덧붙였다.“오빠, 저 대신 복수 좀 해줘요. 그러면 오늘 밤, 저를 줄게요.”“치료해서 데려가.”비영이 귀찮은 듯 손을 휘휘 저였다. 지금 바빌라의 모습은 전혀 그에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것이 더 그의 시선을 끌었다.“아가씨가 참 손이 맵네?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다니, 나랑 같이 좀 가줘야겠어.”비영이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수안을 위아래로 훑으며 입술을 핥았다.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전혀 숨기지 않는 모습이었다.“무, 무서워요. 다가오지 마세요.”수안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정말 겁먹은 것처럼 보였다.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염구준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수안은 보기보다 참 엉뚱한 면이 있는 것 같았다. 충분히 혼자서 해결할 수 있음에도, 일부러 상대를 농락하려 연약한척 연기를 하고 있었다. “에이, 겁먹을 거 없어. 나랑 가자. 잘해 줄게.”비영이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토록 요염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가진 여자는 그도 처음이었다.“오빠, 도와줘요!”수안이 염구준 뒤로 숨으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찢어버려!”염구준이 자신의 기운을 금색 전갈에게 주입하며 외쳤다. 엄청난 에너지를 갖게 된 금색 전갈은 마치 흥분제를 맞은 듯 엄청난 기세를 뿜으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렇게 싸움이 시작되었고, 모두가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금색 전갈이 지네 뒤로 뛰어 노르더니, 단숨에 찢어발겼다. 지네는 전혀 전갈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와!”본명충이 죽자 비영은 그 반동으로 내상을 입고 피를 토했다. 뜻밖의 결과에 그의 일행들도 혼비백산하며 사방으로 도망쳤다.칙칙!하지만 금색 전갈은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는지, 여전히 꼬리를 휘두르며 비영을 향해 사나운 기세로 달려들었다.“돌아와!”수안이 지나치게 흥분한 전갈의 상태를 눈치채곤 소리쳤다. 그러나 전갈은 마치 이성을 잃은 듯,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사실 이건 모두 전갈이 감당하기에 지나치게 강한 염구준의 기운 때문이다. “그만!”염구준이 손가락을 튕기자, 금색 전갈이 뿜어내던 기운이 급속도로 수그러들었다.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전갈은 황급히 수안의 어깨로 올라가 얼굴을 비볐다.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부모에게 애교를 부리듯이.“멈춰, 내가 언데 가라고 했지?”비영이 그 틈을 타 도망치려던 순간, 염구준이 싸늘하게 말했다.“제, 제발 목숨만은! 제가 보는 눈이 없었어요! 잘못했습니다!”비영이 스스로 뺨을 때리며 용서를 빌었다.“네 목에 걸린 옥패, 어디서 났어?”염구준이 그의 돌발행동에도 눈 깜빡하지 않고 용건을 꺼냈다.“회사에서 받았습니다. 휘황그룹에서요.”비영이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겨우 옥패 하나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순 없었다.“그럼 이런 옥패, 전에도 본적 있어?”염구준이 품에서 자신의 신무 옥패를 꺼내 보여주며 물었다. 진짜 옥패였다. “본 적 없습니다!”비영이 얼른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이런 대단한 물건, 말단인 그가 봤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때, 상황을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이 탐스럽게 눈을 빛내며 염구준 손에 들려 있는 옥패를 바
그는 수안이 과거에 얽매여 자신을 갉아먹지 않길 바랐다.“네, 알겠어요.”수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답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건 어렵지만, 그의 말 대로 시도해 보고 싶었다. 상황이 마무리되자, 두 사람은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몇 명의 인물들….“염 선생님, 물고기가 미끼를 문 것 같네요.”수안이 뒤따라오는 인기척을 느끼며 나지막이 말했다.염구준이 신무 옥패를 꺼낸 순간, 그녀는 이미 이 순간을 짐작했다.“조급할 거 없어. 좀 더 기다렸다가 한 번에 잡자.”뒤도 돌아보지 않고 염구준이 대답했다. 신무 옥패에 눈이 멀어 여기까지 왔다면, 절대로 쉽게 물러서지는 않을 터! 이들은 자신들이 함정에 걸렸다는 것을 눈치채더라도 뛰어들 것이다. 잠시 뒤, 두 사람은 잡초가 무성하며 인적이 매우 드문 폐허 거리로 들어섰다.“움직여!”어둠속에서 한 남자가 외쳤다. 그러자 즉시 여러 인물들이 나타나 염구준과 수안을 둘러쌌다.총 인원수는 13명, 가장 약하다고 볼 수 있는 인물조차 최소 종사 경지, 가장 강한 사람은 무도 경지였다. 아니, 어쩌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전신 경지 강자도 주변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스스로 미끼를 자처하다니, 배짱 있네.”가장 강한, 서양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남자의 손엔 하얀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으며, 팔 근육이 발달되어 있었다. 딱 봐도 주먹을 주로 쓰는 강자였다.“쥐새끼들을 유인하려면, 이정도는 해야지.”염구준이 말하며 손에 든 신무 옥패를 내보였다. ‘진짜다!’사람들의 눈동자가 욕망과 광기로 차올랐다. 당장이라도 누가 튀어나가도 이상할 것이 없는 팽팽한 기류가 흘렀다.“내놔. 그러면 고통은 면할 수 있을 거야.”남자가 오른손을 내밀며 요구했다. 이렇게 노리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굳이 싸우고 싶지 않았다. “옥패는 하나인데, 누구한테 줄까?”염구준이 손에 들린 옥패를 여유롭게 손가락으로 가지고 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염
같은 시각에 설씨 가문 주둔지는 모닥불 파티를 연 탓에 매우 떠들썩했다.이 자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은 당연히 설씨 가문의 은인인 주작과 백호였다."이 술을 빌어 은인님들께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청목의 앞잡이들을 물리칠 수 있었어요.""이건 남극 빙원의 특산물인 크릴새우입니다. 한번 드셔보세요.""설웅이 여러분들같은 고수를 만난 건 저희 가문의 복입니다."설씨 가문 사람들도 매우 맛나게 먹었다. 이 음식들은 평소에 감독관들이나 먹는 것들이었다.사람들은 불을 에워싸고 춤을 추며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감정을 풀고 한껏 웃었다.설씨 가문 사람들의 열정에 주작과 백호는 적응이 되지 않아 염구준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길을 보냈으나 염구준은 웃으며 술잔을 들었을 뿐, 딱히 다른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지금 속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어떤 일들은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해야한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있었다. 너무 성급하게 굴었다간 허점이 많아지게 될 테고 그럼 신분이 들키게 될 테니까 말이다.'그쪽에서 놀라서 도망치면 이 모든게 헛수고가 되버리니까 천천히 해야 해.'모두가 기뻐하고 있을 때, 오직 설씨 가문의 장로, 설구만이 염구준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앉아 슬픈 눈빛을 하고서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장로님, 나쁜 녀석들이 도망갔는데 왜 안 기뻐하세요?" 그의 이상함을 눈치 챈 설웅이 그의 옆으로 다가가서 물었다."에휴, 다시 돌아올 겁니다.""청목존주를 처리하지 않는 이상 다시 돌아올 거예요. 무엇보다 청목존주는 반보천인의 강자입니다. 누가 이길 수 있겠어요?"설구는 장로답게 다른 사람들보다 안목이 더 좋고 생각이 더 깊었다."가문 전체가 남극 빙원이 아닌 바깥으로 옮기는 건 어떨까요?" 그의 말을 들은 설웅은 공손한 태도로 물었다."바깥으로 갈 수 있었다면 이미 이사를 갔을 겁니다. 하지만 외부에는 강적이 있어요. 만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죠."상대방의 질문에 설구는 천천히
사람들이 옆에서 관전하고 있기 때문에 주작은 더 빠르게 공격해 몇 분만에 개조 로봇을 부숴버렸다.이런 공격이 몸에 부담이 크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괜찮아?"한편, 설웅은 감정을 더 이상 억제하지 못하고 자신의 가족들에게로 달려갔다."도련님, 저희를 구하러 오신 겁니까?"설씨 가문의 사람들은 설웅을 본 후 감동에 겨워 그를 에워싸고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설웅이 자신들을 도와줄 사람들을 데려온 걸 보니 그들은 최근에 고생한 게 모두 보람차게만 느껴졌다.곧바로 그는 가문의 사람들에게 주작과 백호를 소개해주었고, 설씨 가문의 사람들은 소개를 다 들은 후 진심으로 고마워했다.염구준 등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그저 탐험가라고 하며 이곳에 머물러야 할 것 같다고 한 뒤 설씨 가문의 주둔지에 머물렀다.진실한 신분을 밝히지 않은 이유는 설씨 가문의 사람들 중 혹여나 스톡홀름 증후군 환자가 고자질을 할까봐서였다. 오랫동안 예속되어 왔으니 그런 사람이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한편, 눈밭에서 풀려난 감독관은 다른 광산까지 미친듯이 달려갔다. "너희 우두머리를 만나야겠으니 빨리 소식을 알려!""백어, 뭘 이렇게 급해해? 도망온 사람처럼 말이야."그를 본 이곳의 감독관이 농담하듯 말했다. 두 광산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평소에 서로 왔다갔다하며 잘 알고 지냈다."백씨 가문의 주둔지에 있던 광산이 침략 당해서 보고해야 해. 너희 우두머리는 어디있지?" 백어는 벌벌 떨면서 큰 소리로 물었다.청목 조직은 등급이 삼엄해서 그의 신분으로는 본부와 연락할 수가 없었다."뭐라고?"이 말을 들은 몇몇 감독관들은 입꼬리가 내려가더니 크게 놀라했다.남극 빙원에서 감히 청목 조직과 맞서는 사람은 아주 적었다. 조직의 사람들을 죽이는 건 더더욱 상상치도 못할 일이었다."얼른 따라와!" 이곳의 감독관은 더 이상 질질 끌지 않고 서둘러 길을 안내했다.이렇게 큰 일을 지체해서는 안되었다.그 후 백어는 우두머리에게 보고했고, 우두머리는 본부에 보고했
펑! 펑!전신지상 고수의 공격은 강력했다.주작은 마치 썩어빠진 나무를 자르듯 개조 로봇들을 하나씩 물리쳤다.이 실력이라면 고철덩어리도 자를 것 같았다.상대방의 실력을 보고 담당자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개조 로봇에게 명령을 내렸다.“꺽다리. 저년을 죽여!”꺽다리는 최고 병기였다.“접수.”개조 로봇은 무뚝뚝하게 대답하고 주작과 주먹다짐을 벌였다.쿵!쌍방의 실력은 비슷해서 한 번 치고 뒤로 물러났다.전신지상의 개조 로봇이었다.개조 로봇은 잠시 부품들을 재정비하더니 다시 공격을 퍼부었다.목표가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기세였다.매서운 공격이 다가올 때마다 주작은 피할 수 없어서 끝까지 맞서는 수밖에 없었다.한동안 쌍방은 치고 박고 해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뭐 하는 거야? 가서 설웅을 죽여.”담당자가 다시 명령을 내렸다.개조 로봇은 맷집이 세고 마모에 강하며 보험도 들어줄 필요가 없어서 좋았지만 딱 한 가지 단점 융통성이 없었다.탁탁!명령이 떨어지자 나머지 개조 로봇들이 설웅을 향해 돌진했다.한 켠에서 주작이 우세를 차지했지만 그를 보호할 여력이 없었다.부릉부릉!위급한 순간, 마침 스노우모빌의 요란한 소리가 울리며 백호가 현장에 나타났다.그는 스노우모빌을 세우기 전에 몸을 날려 개조 로봇을 폐철로 만들었다.또 전신지상의 고수가 나타나자 담당자는 골치가 아팠다.조직에서 전신지상인 로봇을 한 대만 주어서 어떻게 막아내야 할지 속수무책이었다.5분도 안 되어서 개조 로봇들이 모두 부품이 되어 바닥에 흩어졌다.“이봐. 나랑 좀 놀자.”백호가 담당자에게 말을 건넸다.단진 무성의 실력이라면 어느 정도 싸울만했다.“다들 뛰어!”담장자가 말하는 동시에 부하들이 바로 도망쳤다.“컥!”그런데 얼마 뛰지 못하고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지고 눈앞이 아찔했다.고개를 숙여 보았더니 가슴에 피가 묻은 손바닥이 뚫고 나온 것이다.백호는 손칼 하나로 그를 황천길로 보냈다.휙!그는 손에 묻은 피를 휙휙 털어내고는 다
이번에 가족을 구하지 않으면 여기서 죽어야 할 것이다.“우리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어요.”주작이 보고했다.“알았어. 먼저 상황을 살펴보고 있어. 우리도 곧 도착해.”뒤에서 염구준이 지시를 내리고 위치를 파악했다.10 킬로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전속으로 달린다면 금방이면 도착한다.“일단 가서 보자.”주작도 스노우모빌에서 내렸다.두 사람은 눈 위에 엎드려 포복으로 가장 높은 곳으로 기어갔다.그리고 고개를 쏙 내밀어 전방을 살펴봤다.설웅이 말한 주둔지는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 광산 같았다.그가 집이 맞다고 우기지 않았다면 잘못 왔다고 착각했을 것이다.광활한 광산에서 욕소리가 유난히 똑똑히 들렸다.퍽!“당장 일어나, 아니면 때려죽인다.”“흑흑. 제발 그만하세요. 할아버지가 버티지 못해요.”한 소녀가 노인을 보호하며 애원했다.바닥에 엎드린 노인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방한복이 피에 흠뻑 젖었다.“차라리 잘 됐지. 버티지 못하면 바로 뒷산에 던져.”현장 감독 담당자가 채찍을 흔들며 쏘아붙였다.그들은 사람이 죽어도 신경 쓰지 않았다.“안 돼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소녀는 흐느끼면서 애원했다.퍽!“하하하. 꺼져! 일하는 데 방해하지 마.”담당자는 소녀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미친듯이 웃었다.그래도 소녀는 노인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멀리서 그 장면을 보던 설웅이 이를 갈며 눈물을 글썽이더니 벌떡 일어서서 소리질렀다.“때리지 마! 나한테 덤벼!”얻어 맞던 소녀는 바로 설웅의 친여동생이었다.갑작스러운 상황에 주작은 욕을 퍼붓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았다.“우리 들통났어요. 전방에서 몰려오고 있는데 어떡할까요?”주작이 바로 보고했다.“그럼 싸우는 수밖에 없지.”염구준이 지시를 내렸다.“백호 가서 지원해. 나머지는 나한테로 와.”전신지상 고수 두 명이 나서면 충분하니 반천인 고수가 나설 필요가 없었다.염구준은 일찍 정체가 드러나는 게 싫어서 모든 사람에게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설씨 가문 개똥에도 쓸모없는 도련
“…”우두머리는 너무 아파 소리도 못내고 두 손으로 소중이를 감쌌다. 어엿한 무성지상 고수가 이렇게 망가지다니 정말 안타깝지 그지없었다.그것도 여자에게 홀려서 소중이까지 망가져버렸다.“저년을 쳐라!”나머지 부하들은 그제야 반응하고 우르르 쓸어왔다.방심한 탓에 이런 꼴을 당한 것이다.“하. 다 쓸어와도 소용없어.”주작은 가볍게 웃음을 치며 전력으로 맞섰다.“젠장, 저년 실력을 감추고 있었어. 적어도 전신 경지야. 얼른 튀어!”누가 소리를 지르자 일행들은 바로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하지만 이미 늦었다.주작은 그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전에 전부 쓰러트렸다.염구준이 한 놈이라도 살려두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전부 죽였을 것이다.“말해. 누가 너희들을 보냈어? 본거지는 어디야?”주작은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않고 은밀하게 말을 돌렸다.첫 번째 질문은 가짜이고 두 번째가 진짜 목적이었다.“청…”펑펑!잔뜩 겁을 먹은 부하가 말하려고 할 때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했다.총소리가 연달아 울리더니 미행하던 일행이 전부 죽었다.주작은 경계심을 놓치지 않고 설웅 곁으로 다가가 전신 영역으로 총알을 받아냈다.이 정도 공격으로 그녀의 방어를 뚫을 수 없었다.“저격수가 1킬로미터 밖에 있습니다.”설웅을 보호해야 해서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도착했어.”마침 염구준이 저격수 뒤에 나타났다.첫 총성을 들었을 때 상대방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곳에 간 것이다.“언제 왔어?”저격수는 뒤에서 말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퍽!염구준은 기운으로 저격수를 밀쳐내고 평가를 내렸다.“방금 도착했지. 사격은 봐줄만했는데 자아 보호 실력은 엉망이네.”“아악!”저격수는 중상을 입고 피를 토하더니 비틀거리면서 비수를 꺼냈다.“넌 뭐야?”염구준이 사악하게 웃으면서 천천히 다가갔다.“협조하지 않으면 바로 네 목숨을 앗아갈 사람이지.”“꿈 깨!”저격수는 비수를 들고 죽을 각오로 공격했다.“죽고 싶어서 환장했네.”염구준은 허공에 주먹을 날려 그 자리에서
“고객님, 안목이 있으시네. 우리 가게에서 성능이 최고로 좋은 놈이라 1억만 주세요.”사장은 두 손바닥을 비비며 교활하게 웃었다.‘돈에 환장했나.’염구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사장이 계속 설명했다.“비싸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희들도 여기까지 끌고 오느라 운비만 해도 꽤 돈이 들었어요. 우리 집 물건은 이 바닥에서 제일 싼 편이라고 장담할 수 있어요.”염구준은 개떡 같은 이유를 듣지 않고 스노우모빌에 올라타 연료 탱크를 점검했다.그리고 아무런 표정도 없이 한마디 던졌다.“이체할게요.”휘발유는 그래도 얼지 않는 것으로 사용했다.“네.”거래가 성사되자 사장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은행 계좌를 알려줬다.이것만 팔아도 이번 달은 장사를 접어도 되었다.염구준은 추가로 휘발유 두 통을 샀다.“고객님, 어디 멀리 가십니까?”사장은 염구준이 산 물건들을 보며 물었다.휘발유 두 통에 연료 탱크에 있는 휘발유까지 하면 수백 킬로는 족히 달릴 수 있다.“여행하러 왔으니 멀리는 못 가고 주변만 돌아보려고요.”염구준은 그럴싸하게 대답했다.사장의 손등에 있는 나뭇잎 문신을 보고 이미 신분을 알아챈 것이다.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남극 빙원에서 청목 조직의 세력은 각 업계로 뻗은 것 같았다.“그렇군요.”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때 이어폰에서 주작의 목소리가 들렸다.“부두 3시 방향 설산 뒤에서 미행자들이 공격할 것 같습니다.”염구준은 고개를 돌려 5킬로미터 떨어진 곳을 바라봤다.잡것들이 고새를 참지 못하고 움직인 것이다.부릉부릉!염구준은 스노우모빌 시동을 걸고 주작이 알려준 방향으로 달렸다.부두를 나서며 그가 주작에게 지시를 내렸다.“한 명 정도는 살려둬, 물어볼 게 있어.”남은 일행도 스노우모빌을 사고 각자 출발했다.부두 근처에는 워낙 스노우모밀을 대여하는 유람객들이 많아서 이상한 티가 나지 않았다.설산 반대편에서 주작과 설웅은 각자 스노우모빌을 타고 천천히 달렸다.그때 뒤에서 모터가 몇 대 따라오
“알았어. 함께 청목을 처단하자.”“작전에 참여한 걸 환영해. 그럼 너와 청목 사이의 원한과 그놈의 행방을 말해 봐.”염구준이 이어폰을 하나 건넸다.이번 작전에서 조력자 한 명이 늘었다.설웅은 유골을 품에 안고 가족들의 사연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우리 설씨 가문은 적을 피하려고 남극 빙원에 도피했어. 그곳에서 일찍 정착한 편이었어. 빙원에서 생활은 무료했지만 가족들은 서로 아끼고 보살펴서 그럭저럭 살만했는데 청목이 나타난 거야. 우리를 자신의 노예로 삼겠다고 해서 아버지가 따르지 않자 바로 주먹을 휘두르더라고. 참지 못한 사람들은 반항하다가 죽고 나머지 가족과 노비들은 끌려가서 생체실험을 당했어. 그놈은 완전히 미친놈이야!”설웅은 서러움에 북받쳐 마지막에 고함을 질렀다.“청목의 전력과 부하들의 실력, 그리고 본거지가 어딘지 알아?”설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몰라. 아버지는 전신 경지에 도달한 고수지만 한 주먹도 받아내지 못했어.”반천인 경지는 전신 경지 고수를 한 주먹에 죽일 수 있지만 반대로 전신 경지는 그럴 수 없다.“됐어. 쉬고 있어. 함부로 밖에 나가지 마.”염구준은 본인들 객실로 돌아가 짧게 회의를 열었다.지금 흑풍이 청목과 손을 잡아 반천인 경지 고수가 두 명이나 되어서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았다.그동안 염구준이 옥패의 무술비법을 베껴서 전신전의 부하들에게 보여준 덕에 전체적으로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했다.백호, 주작, 현무는 전신지상 경지에 도달하고 나머지 전왕들은 전신 경지에 도달해 반천인 경지에 도달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이어서 며칠은 의외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유람선을 내릴 때 설웅은 주작과 한 팀으로 움직이고 나머지 일행은 신분을 감추려고 캐리어를 든 유람객으로 분장했다.주작은 여자라 염구준을 연상시키지 못하게 일부러 안배한 것이다.“존경하는 유람객들 주의하십시오. 남극 빙원에 도착했으니 여기서 이틀 정착하겠습니다. 이곳의 치안이 복잡하여 가이드가 없거나 강력한 실력이
“깨어났네.”그때 청년의 손가락이 움직였다.방금 그를 구할 때 반항할까 봐 염구준이 손으로 기절시켰다.“윽!”청년은 몸을 비틀며 일어서더니 뒷목을 문지르며 눈을 떴다.“당신들 뭐야?”정신이 들자마자 일행을 본 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계했다.오랫동안 도피 생활을 해서 신경질적으로 예민해졌다.“널 구한 사람이다.”염구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청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얼굴을 본 기억이 없었다.“왜 나를 구했어?”“난 청목의 적이니까. 아까 보니까 너도 청목한테 원한이 있는 거 같은데 우리 손을 잡는 게 어때?”“그런 당신은 무슨 원한이 있지?”그 말에 염구준은 인상을 찌푸렸다.“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질문이 끊기지 않아 짜증이 밀려왔다.“알았어. 묻지 않을게.”청년은 흠칫 놀랐다.그가 묻지 않으니 이번에 염구준이 질문했다.“이름이 뭐야?”“설웅이야. 남극 빙원 설씨 가문의 소주다.”설웅은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하지만 염구준이 원하는 정보는 아니었다.“난 청목을 죽이려고 남극에 가는 중이야. 나랑 같이 가지 않겠나?”만약 상대방이 원하지 않으면 다른 얘기를 해도 의미가 없었다.“그건…”설웅은 망설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솔직하게 말해서 꿈에서도 청목을 죽이고 싶었지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염구준의 말에 구미가 당겼지만 현실적이지 못해서 허풍이라 여겼다.“참, 아저씨는 어디 있어?”설웅이 흥분하며 물었다.사람은 죽었지만 여태 그를 돌보았으니 제사라도 치러주고 싶었다.“책상 위 함에 있어. 내가 이미 화장하고 유골을 유골함에 넣었어.”염구준이 대답했다.사람도 구했는데 시신을 거두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고마워. 이 은혜는 죽지 않는 한 꼭 갚을게.”설웅은 유골함을 끌어안고 슬픈 표정으로 객실에서 나갔다.그동안 온갖 고초를 겪었더니 사람을 쉽게 믿지 못했다.“이 문을 나서면 더는 널 도와주지 않겠다. 너도 곧 죽음을 당하겠지.”염구준은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그는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잔뜩 겁에 질린 매니저는 찍 소리도 못하고 부랴부랴 도망쳤다.지금 이 순간만큼은 사람이 죽은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그때 청년이 일어서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너희들 저주할 거야. 청목 존주도 저주할 것이다.”청목 존주의 적이라는 것을 확인한 염구준은 가슴이 벌렁거리고 뇌가 빠르게 돌아가더니 계략을 짜기 시작했다.친구의 친구는 반드시 친구가 될 수 없지만 적의 적은 또 말이 달랐다.염구준 일행은 남극 빙원에 있는 청목의 행적을 모르고 있으니 안내자가 있다면 일이 수월하게 될 것이다.그가 작은 소리로 부하들에게 임무를 맡겼다.“시간 됐다. 죽어!”우두머리는 1초도 지체하지 않고 칼을 높이 들었다.바로 그때 모든 전등이 꺼졌다.갑자기 어두워지자 홀에 비명이 쏟아지고 서로 밀치고 도망치느라 난장판이 되었다.“도망쳐! 살인이야!”누가 고함을 지르자 현장은 더 혼란스러워졌다.“아아악!”여러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더니 바로 피바다에 쓰러졌다.그들은 죽을 때까지 누가 자신을 죽였는지 몰랐다.옆 사람들도 모두 자신을 보호하느라 정신없어서 누가 죽었는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염구준 일행은 야간 투시경을 끼고 혼란스러운 틈을 타 홀에서 나왔다.계획은 차질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백호는 어깨에 청년을 메고 도망쳤다.“CCTV를 피해서 객실로 돌아가자.”염구준이 지시를 내렸다.사람을 구한 것을 반드시 비밀로 해야 했다.아니면 저들이 쫓아오는 날에 일이 더 귀찮아질 것이다.“네.”백호는 혹시나 들통날까 봐 커다란 캐리어를 찾아 젊은이를 집어넣었다.객실에 돌아온 후, 염구준은 잠든 청년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이 녀석이 있으면 남극 빙원에서 길을 헤매고 다니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