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사람 함부로 건드리는 거 아니야.”염구준이 손바닥으로 남자의 얼굴을 내리치며 말했다. 남자는 이빨은 물론 얼굴이 피떡이 되어 정신을 잃었다. 염구준은 남자를 한쪽으로 걷어 찬 뒤, 고개를 들어 빌딩 가장 꼭대기에 있는 귀호를 향해 중지를 내밀어 보였다. 국적불문, 만국공통 욕이었다.“이놈이! 두고 봐, 손가락 잘라버리겠어!”건물 꼭대기 층에서 귀호가 손에 들고 있던 와인을 원샷하며 분노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말했다. 오늘 밤, 그는 제정도를 죽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귀호가 천천히 몸을 돌리며 뒤에 있던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건물 내부 장치들을 가동해. 일단 먼저 지치게 만든다.”“네!”그러자 그 즉시 누군가가 빠르게 답하며 문 밖으로 나갔다. 귀호는 전죽력이 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음모와 계략 측면에는 매우 뛰어났다. “우리까지 불러놓고서 이렇게까지 조심성 있게 해야겠어?”이때, 옆 소파에 앉은 채 여유롭게 와인을 마시던 두 사람 중 젊은 여자가 입을 열었다. “맞아. 제정도 하나 상대하는데 이렇게까지 큰 판을 벌릴 필요 있을까?”나머지 한 사람, 노인이 젊은 여자의 말에 동의하며 덧붙였다. 두 사람 모두 전신 경지에 오른 강자들이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쉽게 갈 수 있다면, 쉽게 가는 게 좋잖아. 그리고 걱정 마. 여기까지 온 이상, 이따가 두 사람이 나설 일이 생기던, 생기지 않던 약속된 보수는 줄테니.”귀호가 싱긋 두 사람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그렇다면 뭐, 마음대로 해.”젊은 여자가 계속해서 와인을 음미하며 가볍게 대답했다. 귀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계속해서 계획을 세워갔다. 아직 두 사람에겐 염구준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한편, 염구준과 제정도는 무사히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은 꼭대기 층과 엘리베이터를 제외하고 모두 불이 꺼진 채 매우 어두컴컴했다. 누가 봐도 이건 음모가 느껴졌다. “염 선생님, 계단으로 갈까요?”제정도가 조심스레 물었다. 대놓고 파
강한 유독물질, 염산!뿌려진 물체를 눈치챈 순간, 정제도는 망설임없이 전신 영역을 펼쳐 자신과 염구준을 감쌌다. 액체가 영역 외벽을 접촉하며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치직… 사방이 부식되어가는 소리. 산이 닿은 곳곳마다 녹이 쓰며 독성을 뿜어 댔다. 귀호는 이 함정을 위해 거액을 들였다. 하지만 염구준에겐 효과가 없었다. “불타올라라!”염구준이 외치자 몸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며 높은 온도로 인해 액체가 모두 증발했다. 거기에 스프링쿨러는 녹다 못해 모두 막혀 버렸다. 자연스레 뿜어져 나오던 액체도 멈췄다. 반보천인!제정도는 마음이 격하게 떨렸다. 좀 전에 염구준이 보여준 모습, 그건 가문의 고서에서나 본적 있었던 반보천인의 기술이었다. 그는 어리벙벙했다.“뭘 그렇게 쳐다봐요? 제가 아무리 잘생겼어도, 남자한테 그런 시선은 사양이에요. 얼른 계단이나 찾아요.”염구준이 장난스레 농담을 건네며 말했다. “아!”제정도는 순간 말문이 막혀 말 대신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계단 앞에 도착해보니, 입구가 무수히 많은 물건들로 꽉 막혀 있었다. 두 사람은 황당해 웃음이 나왔다. 겨우 이까짓 것으로 두 사람을 막으려 들다니, 너무 어이없었기 때문이다. 일반이었으면 몰라도 염구준에겐 이정도는 힘쓰는 것에도 속하지 않았다.“지루하네요.”염구준은 계단으로 가는 걸 포기하고, 그냥 바닥을 박차고 천장을 뚫었다. 마치 종잇장처럼 구멍 난 콘크리트, 제정도도 그 뒤를 따랐다. 다음 층에 도착하니, 이상한 냄새가 염구준의 코를 간지럽혔다. 잠시 고민하던 그의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하나.이건 인! 일정한 농도에 도달하면 폭발하는 가연물이었다!이때, 쾅하고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청난 화력이 담긴 불꽃이 피어나며 순식간에 그들을 덮쳤다. 그 위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잠시 건물이 흔들릴 정도였다. 참 대단한 시도였다. 정말 자칫했다가 건물이 날아갈 수도 있는 함정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염구준에겐 아무런 타격도 줄 수 없었다. 폭발이 일
“염 선생님, 귀호가 지금 저희 힘 빼려고 이 짓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제정도가 이상함을 느끼고 말했다.“알고 있어요.”염구준이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는 진작에 귀호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제정도에겐 차이가 있었겠지만, 염구준에겐 이 정도는 힘쓴 축에도 속하지 않았다.“그럼 계속 위층으로 올라갈까요?”귀호의 의도를 알았다고 해서 제정도에게 달리 방법이 없었다.“물론 올라가야죠. 하지만 방법은 좀 바꾸도록 할까요?”염구준이 창 밖을 바라보며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창문 앞쪽으로 다가갔다. 제정도는 곧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가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정도는 당황스러웠다. 염구준이면 모를까, 그는 맨몸으로 벽을 타본 경험이 없었다.“잠시만 기다려요.”염구준은 발에 기를 모아 강한 흡입력을 만들었다. 그는 마치 평지를 걷듯 벽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보채성맹 빌딩 꼭대기 층.귀호는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의 불안의 가장 큰 원인은 함정이었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35층 함정을 마지막으로 염구준과 제정도의 움직임이 사라졌다. ‘설마 딸 구하는 걸 포기했나?’만약 진짜라면 함정을 꾸리기 위해 들인 그 많은 자본이 헛되게 된다. 거기에 상대는 전신 경지 강자, 원한을 품었으니 분명 추후에도 복수하려 들 것이다. 그럼 귀호는 앞으로 항상 주변을 경계하며 살아야 한다. 그건 정말 골치 아픈 것이었다. “거기 너, 지금 아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봐.”귀호가 옆에 서 있던 부하에게 명령했다. “그게… 놈들이 35층 함정에 걸려든 뒤로, 계속 잠잠합니다.”부하도 당혹스러웠다. 매층마다 감시 카메라가 있긴 했지만, 어디든 사각지대는 존재했다. 모든 것을 파악하긴 어려웠다.“무능한 놈들. 겨우 두 놈이다. 겨우 두 놈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하다니!”귀호가 분노를 표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죄, 죄송합니다. 그래
이것이 바로 실력 차이, 이들은 마치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절벽을 마주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쓸모 없는 것들!”귀호가 욕설을 내뱉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다 문득 뭔가 떠오른 듯, 다시 뒤로 물러나며 옆에 있던 두 강자를 향해 말했다. “당신들은 왜 움직이지 않지?”“우린 제정도 때문에 온 거지, 다른 사람 상대하라는 얘긴 없었잖아.”두 사람 중 여자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그러니까, 사람 추가할 거면 금액도 추가해야지!”나머지 한 사람도 맞장구 치며 교활한 표정을 지었다.“좋아. 두배 줄게.”귀호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하지만 속으론 둘이 염구준과 싸우다 죽길 바랐다. 그러면 한 푼도 주지 않고 끝낼 수 있을 테니까.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체된 사이, 제정도가 밧줄을 타고 슉하고 꼭대기 층에 나타났다. “귀호, 당장 내 딸 풀어!”원수가 눈앞에 있으니, 제정도의 눈빛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그는 당장이라도 귀호에게 달려갈 듯 온 몸에서 전신 영역을 끌어올렸다. 딸이 납치되어 있는 상황에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아버지가 과연 몇이나 될까?“당신들도 당장 움직여! 제정도 죽여야지!”귀호가 큰 목소리로 외치며 동시에 전신 영역을 펼쳤다. 사실 그도 얼마 전에 전신 경지를 돌파한 상태였다. 하지만 고수는 늘 삼할의 실력을 숨겨야 하는 법, 밝히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비장의 카드를 쓸 날이 왔다. 무슨 일이 있던 오늘 제정도는 이곳에서 살아서 나갈 수 없으리!“그래, 알겠어. 도와주지!”그 말과 함께 두 고수 중 노인이 기괴하게 웃으며 끔찍하게 생긴 붉은 두꺼비를 꺼내 공격 태세를 취했다. 함께 힘을 합친다면 제정도 정도는 손쉽게 제거할 수 있으리, 노인은 자신했다.“누굴 상대한다고?”염구준이 몸을 날려 그들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비켜, 난 네놈 따위와 놀 시간 없다.”노인이 몸을 비틀며 염구준을 지나치려 했다. 하지만 염구준이 더 빨리 그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다시 가로막았다. “수안, 너도 같이 도
“맞혀봐.”노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약 올렸다.“늙은이, 죽으려고 작정했구나.”염구준이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며 무섭도록 차가운 분위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기꺼이 죽이지 않고 봐줬더니, 상대는 고마운 줄도 모르고 그를 자극하고 있었다.“흥, 난 남북을 누비며 온갖 일들을 겪었다. 너의 공격 속도는 인정하지만, 그 뿐이다.”노인은 자신의 판단을 확신했다.“멍청하긴, 설마 진짜 내가 속도만 빠른 것 같아?”그 말을 끝으로 염구준의 모습이 갑자기 흐릿해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노인 앞까지 다가왔다. 전신 영역!노인은 당황하기도 잠시, 정면전이라면 아무리 염구준이라도 공격을 피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즉시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약 백여 마리 되는 두꺼비를 소환했다. 같은 전신 경지 고수라도 싸움에는 먼저 영역을 펼치는 사람이 승산이 더 높았다. 그는 자신의 승리를 자신했다. “하!”염구준이 기합 소리와 함께 오른손 주먹에 기를 모으며 정면으로 노인이 펼친 정신 영역에 내리쳤다.쾅!엄청난 굉음과 함께 노인이 피를 토하며 멀리 날아갔다. 상태를 보니, 뼈도 여러 개 부러진 것 같았다.“터져라!”이때, 노인이 미약한 소시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백여 마리가 되는 두꺼비들이 동시에 폭발하며 사방에 독액을 뿌렸다. 지독한 냄새가 온 공간을 지배했다. 전신 경지 중기나 되는 고수가 이토록 쉽게 패배할 줄이야!귀호는 제정도과 꽤나 호각으로 싸우고 있었는데, 염구준 쪽에 일어난 소란 때문에 잠시 집중력을 잃고 가슴에 한방 맞고 말았다.“크헉!”고통을 느낀 귀호가 황급히 몸을 뒤로 물렀으나, 이미 중상을 입은 상태,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다. 고수들의 대결에서 한눈을 판다는 것은 그만큼 치명적이었다. 귀호는 위기감을 느꼈다. “수안 문주, 이제 좀 도와주지!”귀호가 아직 움직이고 있지 않는 유일한 아군, 수안을 바라보며 외쳤다. 그는 수안이 나서면 그 틈을 타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내가 왜? 둘 다 당한
“좋아.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대신 먼저 사람부터 확인해야겠어.”염구준이 바로 대답했다. “제정도 문주도, 당신도 동의하지?”귀호가 다시 확인 사살했다.염구준은 잘 모르겠지만, 대염무관 문주는 이 지역에 명성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약속해준다면 귀호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염 선생님이 그러시겠다면, 나도 따르지.”제정도가 답했다.“좋아, 남자라면 한 입에 두말하지 않겠지.”귀호가 이 말을 끝으로 주머니에서 리모컨 하나를 꺼내 눌렀다.그러자 그림이 걸려 있던 벽 한쪽이 서서히 갈라지더니, 새로운 공간이 나타났다. 곧이어 작은 소녀가 조용히 한쪽 구석에 웅크려 누워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제주아였다.“주아야!”제정도가 다급히 딸의 이름을 외치며 안쪽으로 들어섰다. “계약서 내놔, 빨리.”귀호가 재촉했다. 비장의 카드까지 모두 보였으니, 얼른 원하는 것을 얻고 이곳을 떠나야 했다. 염구준은 망설임 없이 서류 봉투를 귀호에게 던졌다.“하하, 드디어 손에 들어왔군. 도박장은 여전히 내 거야!”귀호는 그렇게 말하며 곧바로 떠날 준비를 했다. 이곳은 보채성맹 본부이긴 했으나, 이미 염구준 때문에 함정들도 모두 엉망진창이 되었고, 지켜줄 사람도 없었다. 떠나야만 안전을 보장할 수 있었다.“거기 서. 왜 내 딸이 깨어나지 못하지?”제정도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보나마나 귀호가 또 무언가 했을 게 뻔했다.“워워, 흥분할 거 없어. 약간의 독을 썼을 뿐이야. 여기서 안전하게 떠나는 즉시 해독제를 보내줄게.”귀호가 사악하게 웃으며 당장이라도 떠날 듯 몸을 돌렸다. “이놈! 사람과 계약서를 교환하기로 했잖아! 이제 와서 감히 이런 더러운 수단을 쓰다니!”그 말을 들은 제정도는 주먹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강하게 쥐며 분노에 부들부들 떨었다. “에이, 나 약속은 지켰어. 사람은 넘겼잖아. 뭐가 불만이야?”귀호가 계약서를 품에 소중이 넣으며 문쪽으로 걸어갔다. “개소리 지껄이고 있네.”옆에서 듣고 있던 염구준이 차갑게 웃으
염구준의 말은 마치 비수처럼 귀호의 가슴을 꿰뚫었다.“죽어!”수안이 서서히 몸을 돌리며 황금색 등껍질을 가진 전갈을 어깨 위에 올리며 공격을 시작했다. 부상당한 귀호는 완전한 상태인 그녀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아악”!귀호는 절망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피투성이 된 채 바닥에 쓰러졌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 도시를 점령하던 거물이 저물어갔다. 수안은 귀호를 제거한 뒤, 제정도 쪽으로 걸어가 제주아의 독을 풀어주었다. 한편, 염구준은 아직 죽지 않은 부상당한 노인을 향해 걸어갔다.“오, 오지 마!”노인이 공포에 질린 눈으로 외쳤다. 그에게 염구준은 마치 저승사자 같았다.“옥패, 어디서 났지?”염구준은 노인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가 알고 싶은 건 단 하나, 옥패뿐이었다.“주웠다!”노인이 다급히 외쳤다.“나 그렇게 인내심 많은 사람 아니야. 왜 자꾸 명을 재촉하는 말을 하지?”염구준이 온몸에서 기운을 끌어올리며 차갑게 말했다.“마, 말할게! 독무대회 초청장에 딸려왔어. 난 그냥 모양이 괜찮길래 목에 걸었을 뿐이야!”노인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해명했다.“정말?”염구준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다시 물었다.“염 선생님, 저 말은 사실일 겁니다. 저도 하나 받았거든요.”그 말과 함께 수안이 품에서 같은 모양을 가진 옥패를 꺼냈다. 그제야 염구준은 노인의 말을 믿었다. 누군가가 이것을 미끼로 옥패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유인하려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꺼져. 꼴도 보기 싫으니까.”원하는 것을 얻자, 염구준은 노인을 풀어주었다. 그는 비록 한번 마음먹으면 손에 자비가 없었지만, 살생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었다.“정말?”노인이 믿기 어려운 듯 반문했다.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음에도 놓아주려 하다니,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았다. “왜, 왜 풀어주는 건데? 이유라도 알려줘. 안 그럼 풀려나도 불안하잖아!”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그냥 마음에 들어서. 됐어?”염구준이 귀찮은 듯 대답하며 노인한테 신경 껐다. 사실 이유라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제주아가 눈을 비비며 깨어났다. 아이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주아야, 기억나는 거 없어?”제정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있어요. 언니랑 같이 놀이공원에 갔는데, 제가 깜빡 잠이 든 것 같아요. 맞죠? 그런데 저 왜 여기 있어요?”주아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데리러 왔는데 네가 너무 푹 자고 있길래, 이쪽으로 옮겼어. 좀 더 자. 아직 집에 도착하려면 조금 걸려.”제정도가 다시 딸을 재우기 위해 어설프게 변명했다. 그리고 시야를 가리며 피비린내 나는 현장을 볼 수 없게 했다. “네!”제주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잠에 들었다. 독은 거의 다 해독했지만, 아직 어린 제주아가 바로 컨디션을 회복하기엔 무리였다. 완쾌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수안은 제도주를 도와줄 이유가 없었지만, 염구준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에 귀한 가문의 약재도 내놓았다.“이 약, 하루에 한 알씩 복용하게 하세요. 그럼 열흘 정도면 말끔히 나을 겁니다.”“감사합니다.”제정독가 약을 받으며 미소 지었다. 해독제가 있으니, 이제 딸의 안전도 확실해졌다. 그는 이제야 안심이 되었다. 이후 제정도는 남은 귀호 부하들을 이끌고 대염구관으로 돌아왔다. 귀호가 죽었으니, 보채성맹도 지도자를 잃게 되었다. 제정도는 조만간 보채성맹을 인수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전에 염구준에게 했던 약속이었다.“염 선생님, 전에 부탁할 것이 있다고 하셨던 거, 지금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대염무관에 돌아오자 마자 제정도는 곧바로 용건을 꺼냈다.“별거 아니에요. 앞으로 용하국 사람들을 구하게 되면, 제 사람들을 보내 그들을 인수하도록 허락해 주셨으면 해서요. 가끔 힘들 땐 제가 직접 나설 때도 있을 거고요. 이게 답니다.”그 말을 들은 제정도는 얼굴이 환해졌다. 그도 염구준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염구준이 먼저 언급해 주다니, 그
상황을 정리한 염구준은 계속 지켜봤다.개방의 이방주가 이면인을 보더니 사악하게 웃었다.“가주가 왔으니 우리 시비를 따져보자고. 오늘 아침에 그쪽 사람이 우리 애들을 때렸어. 그래서 치료비라도 챙기려고 왔는데 이게 과분한 처사 아니지?”수백 명이 되는 개방 무리가 돈을 갈취하기 위해 온 것이다.“누가 누굴 때렸어?”이면인이 나지막하게 물었다.“몰라. 때렸으니 치료비를 줘.”이방주가 어깨를 으쓱하며 억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돈을 뜯어내겠다는 뜻이다.이런 일은 너무 익숙하니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퍽!이면인은 말을 하지 않고 손에 들었던 가방을 던져주면서 물러났다.“이 돈이면 충분해?”“부족해. 여기 땅을 줘.”이방주는 쳐다보지 않고 낡은 별장 구역을 가리켰다.가방에 고작 몇 백만원밖에 들어있지 않지만 땅은 가치가 어마어마했다.“그건 안 된다. 여기는 우리 집이란 말이다.”이면인은 궁지에 몰리자 더는 양보하지 않았다.뒤에 있던 가족들이 분노로 가득차서 씩씩거렸다.용하에서 쫓겨나 이곳까지 왔는데 땅을 내준다면 또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그렇다면 상의할 필요도 없겠네.”이방주가 손을 흔들자 부하들이 우르르 쓸어서 진씨 가문을 공격했다.이 부지를 무조건 손에 넣어야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죽기 살기로 싸우자!”이면인도 악을 쓰면서 기운을 발사했다.전신 경지였다.“진씨 가문이 정말 몰락했네.”멀리서 지켜보던 염구준이 혀를 찼다.은세가문에서 아무리 약해도 반보천인 가주가 있어야 가문을 유지할 수 있었다.가문이란 그랬다.일어서면 몰락하는 흥망성쇠를 반복해서 겪었다.천 년을 이어온 가문들은 대부분 기반이 든든하기 때문이다.싸움이 시작되자마자 벌써 한쪽 실력이 기울어졌다.진씨 가문은 개방의 상대가 아니었다.가장 실력이 있는 이면인이 같은 경지인 개방의 이방주에게 눌려서 얻어맞고 있었다.망기술은 독특한 술법이지만 싸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이렇게 내버려두다가 이면인이 곧 죽을 것 같았다.하지만 염구준은 아
“사람 찾는 건 일도 아닙니다. 용하 화폐로 200만 원입니다.”귀울진은 용하와 접해 있기에 용하 화폐를 사용했다.“용하에서 건너온 진씨 가문을 찾아주세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게요.”염구준이 통쾌하게 대답했다.지금은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니 돈은 얼마를 써도 상관없었다.“은세가문인가?”이면인의 안색이 굳어졌다.그 표정을 보니 진씨 가문의 소재를 아는 것 같았다.염구준이 그것을 눈치챘다.“알고 있으면 말씀하세요. 아니면 우려하는 거라도 있습니까?”“진씨 가문에서 돈을 주면서 그들의 정보를 말하지 말라고 했거든요.”이면인이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염구준의 눈치를 살폈다.“그럼 얼마나 원합니까?”염구준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1000만 원이요.”이면인은 열 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그렇게 많지 않아요. 갖고 온 돈은 전부 여기 있어요. 말하기 싫으면 그만두죠.”염구준은 가방을 앞으로 던져버렸다.그 말에 이면인은 가방을 들어 대충 훑어보았다.적어도 몇 백만 원은 들어 있는 것 같았다.“두 블록 가면 진씨네 국수집이 있는데 거기가 주둔지예요.”“거짓말은 아니겠죠?”염구준이 한마디 더 했다.“절대 거짓말이 아니에요. 제가 이 바닥에서 신용을 잘 지킨다고 소문이 났어요.”이면인은 가방을 챙기고 싱글벙글 웃더니 엄숙하게 대답했다.이 돈이면 3년을 문을 닫아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다.“알았어요. 돈은 받으세요.”염구준은 돌아서 잡화점에서 나갔다.10분 뒤, 이면인은 도둑처럼 가방을 들고 잡화점을 나오더니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빠르게 한 방향으로 달려갔다.이 사람 역시 문제가 있었다.염구준은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입꼬리를 올렸다.이렇게 쉽게 돈을 떼먹다니, 세상에 그렇게 좋은 일은 없다.옆에 진씨네 국수집은 이미 오기 전에 들러서 알고 있었다.모두 평범한 사람으로서 진씨 가문이 누군지조차 몰랐다.“마을 호텔에서 기다리세요. 처리하고 찾으러 갈게요.”염구준은 호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귀울진은 외진 곳에 있는 마을이라 현지 정부에서 아예 관리하지 않아 자치 행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그래서 죄를 지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피난하기 좋았다.점점 많은 범죄자들이 몰려들어 귀울진을 발전시킨 덕분에 마을 규모는 중등 도시 못지 않았다.하지만 법이 존재하지 않아 치안이 엉망이었다.“젊은이, 이곳에 별의별 놈들이 살아서 아주 위험한 곳이야. 백가, 개방, 목숨파를 조심해.”“네.”염구준은 고개를 끄덕일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진씨 가문도 은세가문인데 어떻게 이곳으로 쫓겨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한 가지 가능성은 진씨 가문에서 몰래 잠복해 있다면 찾기가 더 어려워진다.그는 과일 가게를 지나갈 때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사장님, 여쭤볼 게 있는데요.”“과일을 안 사면 아무것도 묻지 마.”사장님은 염구준을 쳐다보지도 않고 시큰둥하게 말했다.어쩔 수 없이 돈을 써야 했다.지폐 한 장을 건넸더니 사장님은 금세 미소를 지으며 공손하게 말했다.“손님, 저는 이 지역에서 유명한 소식통이에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세요.”“진씨 가문이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염구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몰라요. 하지만 저기 구두가게 사장이 진씨입니다.”과일 가게 사장은 솔직하게 말했지만 쓸모 있는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알겠습니다.”염구준은 머리가 아팠다.이곳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돈만 밝히고 허풍만 떨어서 믿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전에도 몇몇 사람에게 물었지만 모두 돈만 받고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그에 비하면 안내자 노인은 성실한 편이었다.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고대영이 조사한 정보가 이것밖에 안 되니까.진씨 가문이 귀울진에만 있다는 것만 알아내서 나머지는 염구준이 발품을 팔아야 했다.그때 노인이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젊은이, 내가 귀울진의 정보왕을 알고 있는데 원하는 가격이 너무 사악하고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니야.”만약 염구준이 빨리 처리한다면 다른 일에 연루되지 않고 빨리 돌아갈 수 있다.귀울진
노인은 당황해하며 현금 몇 장을 더 놓았다.“전부 여기 두었어. 그러니까 보내줘.”오늘 변고가 생겨 톡톡히 손해를 보아 속으로 산적들에게 욕을 퍼부었다.하지만 산적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수레에 누운 염구준을 가리켰다.“저놈을 남기고 영감은 가면 돼. 소는 우리 형제들이 먹게 넘겨.”“안 돼. 우리도 소 덕에 먹고 사는데 넘기면 굶어 죽어.”노인은 애지중지하는 소를 끌고 되돌아가려고 했다.이 산적들은 강탈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피 말려 죽이려는 셈이다.예전에 길을 막던 산적들은 이 정도로 선을 넘지 않았다.그냥 돈만 조금 주면 알아서들 떠났다.만약 안내자를 전부 소멸하면 누구도 이 길을 지날 수 없고 그들은 산에서 굶어 죽어야 했다.“거기서. 죽고 싶어?”그들은 무기를 쳐들고 노인에게 돌진했다.우두머리는 손에 총까지 들고 있었다.‘젠장.’노인은 걸음을 멈추고 의기소침한 얼굴로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오늘 여기서 도망치지 못하고 죽게 생겼다.“여기 개판이네. 벌건 대낮에 길을 막고 강탈하냐?”그때 염구준이 수레에서 내리며 바닥에 있는 자갈들을 발로 차서 뿌렸다.파팟!자갈은 빠른 속도로 튕겨 달려오는 무리들에게 하나씩 명중했다.그리고 핏방울을 튕기며 전부 바닥에 쓰러트렸다.순식간에 발생하여 상대방은 준비할 시간도 없이 전멸한 것이다.그래도 산적들은 죽어 마땅했다.“어르신, 뭐 하세요? 갑시다.”염구준은 얼떨떨해 서 있는 노인을 향해 소리쳤다.가는 길에 도운 것뿐이니 별일도 아니었다.“어, 그래.”그제야 노인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방금 일어난 일은 정말로 충격적이었다.바로 그때 노인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조심해.”우두머리 산적이 죽지 않고 총을 들고 염구준을 향해 미친듯이 돌진하는 것이다.“개자식, 죽어라!”펑펑펑!산적은 방아쇠를 힘껏 당겨 총을 몇 발이나 쏘았다.노인은 너무 놀라 두 눈을 찔끔 감고 죽지 않기를 기도했다.그런데 모든 탄알을 사용했지만 염구준은 여전히 제 자리에 서 있었다
“서커스단 일 때문이야?”손가을이 눈살을 찌푸렸다.청해에서 최고 여성 사업가 신분으로 며칠 전에 있었던 서커스단의 사건에 대해 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맞아. 서커스단과 연관이 있어. 제때에 처리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빠질 거야.”염구준이 인정했다.“그럼 빨리 다녀와. 난 희주를 지키면서 집에서 기다릴게.”손가을은 서운했지만 억지로 웃었다.남편이 하려는 일에 그만큼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아내로서 가정과 손씨 그룹을 지켜서 남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지지나 다름없었다.하지만 다른 방면으로 말하면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했다.“가을아, 넌 정말 최고야.”염구준은 다가가 아내를 와락 끌어안았다.손가을은 마음이 너그러워서 염구준은 항상 고마워하고 있었다.“다들 보고 있어. 집에 가서 안아줘.”손가을이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누가 보는데?”염구준이 뒤돌아보았더니 들어올 때 문을 닫지 않아서 직원들이 목을 길게 빼고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다들 깨알 쏟아지는 장면을 보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흠흠.”염구준이 헛기침을 하자 다들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눈길을 돌려버렸다.문을 닫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 같았다.염구준은 아내를 풀어주고 또 구경하러 몰려들까 봐 사무실 문을 닫으러 갔다.손가을은 이어서 업무를 보고 염구준은 옆에서 가끔 서류를 건네며 퇴근 시간까지 함께 있었다.부부는 학교에 들러 딸을 데리고 밖에서 저녁까지 먹고 집에 돌아왔다.이튿날 아침, 염구준은 미리 아침밥을 준비해 놓고 귀울진으로 향했다.빨리 처리하고 일찍 돌아올 생각이었다.용하와 접한 국경 도로에 소 수레 한 대가 여유 있게 가고 있다.수레에 앉은 사람이 바로 염구준이었다.귀울진은 외진 곳에 있어 도로는커녕 사람이 지날 수 있는 길조차 없었다.그는 안내원을 찾아 원시적인 교통 수단으로 이동하기로 했다.길에서 노인이 이곳의 풍습을 소개했다.하지만 진씨 가문을 들어본
망기술의 역할을 알고 있는 염구준은 문제점을 말했다.“진씨 가문은 어디 있어? 거록이 혹시 거기에 있나?”고대영은 숨기지 않고 염구준의 질문에 바로 답했다.“진씨 가문은 해외로 쫓겨나서 국경에 있는 귀울진에 있어. 거록이 거기 있는지는 나도 몰라.”염구준은 용하의 은세가문이 왜 해외로 쫓겨났는지 알 수 없었다.이런 상황은 정말 흔치 않았다.“수고했어. 약속대로 내가 수고비는 보내줄게.”염구준이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그가 원하는 정보는 이것밖에 없었다.“돈은 됐어. 우리 고씨 가문의 외가 가주 자리가…”고대영은 돈을 받는 대신 다른 말을 하려고 했는데 염구준이 끊어버렸다.“됐어. 이따가 계좌로 이체할게. 시간 되면 청해에 놀러와.”염구준은 상대방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끊어버렸다.계속 통화를 했다면 고대영이 또 이 말을 꺼낼 게 뻔했다.“모두 같은 핏줄이니 네가 고씨 외가의 가주가 되어라.”비록 염구준의 생모 고유란이 고씨 외가의 가주였지만 지금 그와 관련이 없으니 이어받을 의무도 없었다.지금도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염구준은 집으로 나가 주차장으로 갔다.손가을을 만나 자초지종을 말하고 귀울진에 갈 생각이었다.그런데 주자창에 갔을 때 살기를 느끼고 걸음을 멈추었다.“숨어 있지 말고 당장 나와.”아직 싸우기 전에 살기부터 흘리다니 정말 모자란 놈들이었다.스스슥!갑자기 나무 위, 관목 안, 하수도 뚜껑 아래서 그림자들이 뛰쳐나왔다.모두 복면을 써서 진짜 얼굴은 볼 수 없었다.“하, 실력이 제일 강한 놈이 정진왕자라니, 죽으러 왔어?”염구준이 그들을 훑어보았다.“거록 존주께서 말씀을 전달하라 하셨다. 청해에만 있어라. 밖으로 나가면 바로 죽는다!”일행은 먼저 협박 어린 말을 전달했다.“청해에서 나가겠다면 어떡할 건데?”염구준이 껄껄 웃으면서 되물었다.“그럼 죽인다!”한 사람이 싸늘하게 말하더니 일행이 동시에 염구준을 공격했다.아마도 그의 실력을 모르는 것 같았다.촤아악!염구준이 몸을 번쩍
“필요 없어. 겁 먹고 외국에 도망친 너랑 달라. 정말 창피해. 우리 떠돌이 7인조의 명성에 먹칠했어. 염구준 따위가 감히 내 대업에 끼어들었으니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역시 자극을 받은 거록 존주는 흑풍을 경멸하면서 말했다.지금 흑풍은 그가 말한 것처럼 염구준이 무서워서 정면으로 맞서지 못했다.지난번 윤씨 가문에서 염구준과 맞붙었을 때 한 손을 잃어버려서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았다.“넷째 형, 잘 생각해 봐. 그러다 훅 가는 수가 있어.”흑풍은 속으로 기뻤지만 겉으로 여전히 걱정하는 것처럼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늘어놓지 마. 그보다 네가 준 사술법으로 천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냐?”지금 거록의 관심사는 염구준보다 사술법이었다.천인 경지는 꿈에서도 도달하고 싶은 것이라 매우 유혹적이었다.“물론이지. 심혈주를 만들어서 삼키면 바로 천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어.”흑풍은 더는 설득하지 않고 확실하게 대답했다.거록이 단호하게 나오니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그렇다면 됐다. 내가 천인 경지를 돌파하면 너 대신 염구준 그놈을 죽여줄게.”거록은 자신있게 말했다.그 단계에 도달하는 순간, 그는 세상에서 최고 고수로 거듭나 누구도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고마워, 형. 만약 기회가 된다면 염구준의 손에 있는 옥패 4개도 챙겨줘.”흑풍은 공수하며 인사를 올렸다.그의 목표는 지금도 옥패였으니 천인 경지에 도달하는 사술법에 관심이 없었다.어쩌면 다른 방법을 알기에 사술법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걱정 마. 난 옥패에 관심이 없어. 만약 손에 넣으면 너한테 줄게.”거록도 승낙했다.옥패 8개에 심도 깊은 무학이 있어서 보물이라는 것은 다들 알지만 더 깊은 의미는 알지 못했다.“그럼 이만 끊을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흑풍은 말을 끝내고 통화를 끊어버렸다.지금 그가 있는 곳은 어두운 지하였다.그곳에 허약한 몸의 사내가 견갑골을 입고 있었다.“젠장.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 사술법을 알려주면 날 풀어준다고 했잖아.”사내는
염구준은 초상비 일행에게 철창에 갇힌 사람들을 구조해서 병원에 데려가라고 지시했다. 물론 치료비는 모두 그가 부담할 것이다.광대와 서커스단 관련자들은 경찰에 보내서 법으로 다스리도록 안배했다.서커스단의 동물들은 청해 동물원에 보내져서 적절하게 배치했다.그 바람에 동물원에서 땡잡았다.더는 허스키를 늑대라고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사람이 호랑이로 분장할 필요도 없었다.모든 후사를 처리한 후, 염구준은 공연장에서 나와 모녀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서 스트레스를 풀었다.그날 저녁, 염구준에게 전화가 왔었다.“염구준 씨.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서커스단은 원래 합법이었는데 단장이 살해된 후 나쁜 놈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파렴치한 짓을 했더군요.”“이들 우두머리는 코브라라 부르고 거대한 조직의 일원으로서 유사한 패거리가 더 있는 걸로 추측합니다. 구제척인 것은 아직 자백받지 못했어요.”경찰 측에서 조사한 것을 모두 염구준에게 알려줬다.“알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염구준이 대답했다.이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경찰에게 맡기면 되니 그가 나설 필요가 없었다.이어서 초상비에게서도 연락이 왔다.구출한 사람들이 모두 고비를 넘겼지만 치료비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치료비는 염구준이 모두 낼 테니 이 일에 대한 모든 권한을 초상비에게 맡겨서 처리하게끔 안배했다.심혈을 뽑으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었다.아무리 치료를 해도 수명이 최소한 10년은 줄어들 것이다.떠돌이 7인조에서 하는 짓들은 어느 하나 정당한 것이 없었다.이런 독종들은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염구준은 거록 존주의 소식을 얻지 못했지만 다른 방면으로 단서를 찾았다.망기술이라는 독특한 방법은 용하에서도 사용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그는 은세가족의 윤대약, 고대영에게 연락해 단서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동시에 직접 얼음 인간 즉 봉유곡의 초상화를 그려 전신전에서 행방을 찾으라 지시했다.모든 일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거록 존주가 사람의 심혈을 뽑았던
서커스단 공연은 염구준이 사라진 후로 잠시 중단되었다.손가을은 손씨 그룹에서 절반 넘는 경호원들을 불러 수색하기 시작했다.거기에 호찬, 초상비 등 고수들도 있고 신위무관의 원종과 정경림도 있었다.이 기세로 보아 은세가문과 전쟁을 치러도 충분할 것 같았다.용필은 신혼여행을 떠나서 연락하지 않았다.“당장 사람을 풀어줘!”손가을이 언성을 높이며 모처럼 화를 냈다.평소 그녀는 성격이 털털해서 어떤 일에 부딪쳐도 화를 내지 않았다.하지만 남편이 눈앞에서 사라졌으니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아무리 남편의 실력이 대단해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여사님, 저희 계약서까지 작성했어요.”광대가 계약서를 내밀며 말했다.촤아악!“부끄럽지 않아서 이런 불법 계약서를 꺼내?”손가을은 빼앗아와서 바로 찢어버리고 바닥에 내팽개쳤다.오늘 염구준을 찾지 못한다면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이다.“근데 마술사가 사라져서 저희도 찾을 수 없어요.”광대가 어깨를 으쓱하며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시큰둥하게 말했다.“땅을 파서라도 찾아내세요!”손가을이 뒤에 있는 경호원에게 지시했다.“아빠 예전처럼 사라지는 거예요?”깜짝 놀란 염희주가 울면서 물었다.지난 일은 어린 가슴속에 응어리가 되어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팠다.이번 일로 인해 아마 평생 서커스단에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았다.“아니야. 아빠는 우리랑 숨박꼭질하는 거야.”손가을은 애써 웃으면서 딸을 진정시켰다.지시를 받은 손씨 그룹 경호원은 이미 굴착기까지 불러서 땅을 팔 기세였다.서커스 경호원들은 아무리 말려도 역부족이었다.관중들은 그 장면을 보고 혹시나 불똥이 튈까 봐 뿔뿔이 사라졌다.“가자. 대표님 화 나셨어. 보통 일이 아니야.”“손 대표님 사람이 얼마나 좋은데, 부디 남편을 찾길 바라.”“이제 보니 서커스가 문제 있네. 방금 무대에 나가지 않아서 다행이야.”떠들썩하던 관중석은 텅텅 비어서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펑!경호원이 굴착기를 작동해 땅을 파려고 할 때 굉장한 소리가 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