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저하께서 정체를 밝히는 걸 꺼리셔서 줄곧 숨겨왔습니다. 저하가 아니었다면 누가 소씨 가문과 조씨 가문, 그리고 강성에서의 문제를 해결해 줬겠습니까?”주세호가 호기롭게 말했다.그 말에 소청하 부부는 그제야 깨달았다.그들은 윤구주가 나타난 뒤로 왜 소씨 가문이 180도 달라졌는지 알게 되었다.SK 제약공장이 회복할 수 있었던 것도, 온갖 악행을 일삼던 소천홍 부자가 제재를 받은 것도, 조씨 가문과 다른 수많은 문제도 전부 윤구주가 해결해 줬던 것이다.전에 두 사람은 순진하게도 주세호가 소씨 가문을 도운 이유가 소채은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걸 떠올린 두 사람은 지금 당장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사실 윤구주가 왕이었다니, 그것도 화진 최고의 구주왕이었다니!’“하지만... 이상한데요? TV에서는 구주왕이 죽음의 바다에서 전사했다고 했는데요?”소청하 부부는 갑자기 떠올라서 말했다.“하하! 이 세상에 누가 우리 저하를 죽일 수 있겠습니까? 저하는 그 지독한 여자가 파놓은 함정 때문에 독에 당해서 죽음의 바다에 빠진 것뿐입니다. 그 일이 없었더라면 형수님과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정태웅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쿵!소청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바다에서 만났다고?’이때 소청하는 윤구주와 제일 처음 만났던 곳이 바닷가였음을 떠올렸다.동시에 그는 자기 딸이 윤구주를 바닷가에서 건져내 살려준 걸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소청하는 그제야 이해가 됐다.“알겠어요! 사실 우리 화진의 구주왕은 죽음의 바다에 빠진 것뿐이지 죽지는 않았던 거예요. 그리고 그 일로 구주왕은 우리 채은이를 만나게 된 거고요... 알겠어요! 이해했어요! 세상에, 우리 채은이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걸까요? 구주왕이 우리 채은이를 사랑하게 되다니, 정말 놀랍네요!”“하하하하! 이제 알겠죠?”정태웅은 웃으며 말했다.소청하 부부는 모든 게 이해가 됐다.그들은 소씨 가문이 이렇게 복이 많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화진 최고의 왕, 구주왕의 장인어
많이 먹은 뒤 소채은은 허기짐이 많이 줄어들었다.소채은은 배를 툭툭 두드리더니 윤구주의 손을 잡고 말했다.“침대에 오래 누워있었더니 몸이 찌뿌둥해. 구주야, 나랑 같이 밖에 나가서 걷자.”“그래!”두 사람은 손을 잡고 윈워터힐스 밖으로 나왔다.밖은 밤경치가 아름다웠다. 달빛이 환해서 그런지 별이 적었다.소채은은 밖으로 나오더니 의아한 얼굴로 낯선 주변 환경을 둘러보며 말했다.“어, 여기 용인 빌리지 아니었어?”“응. 여긴 주세호 씨의 거처야!”윤구주는 웃으며 말했다.“주 회장님?”“응!”“세상에, 내가 왜 주 회장님댁에 있는 거야? 이건 너무 실례 아냐?”“괜찮아. 주세호 씨는 우리 사람이야. 멋쩍어할 필요 없어.”윤구주가 그녀를 달랬다.그렇다고 해도 소채은은 조금 익숙하지 않았다.마당으로 나오자마자 줄지어 선 중무장한 사람들과 탱크들, 그리고 천하회, 백화궁 사람들이 소채은의 시야에 들어왔다.소채은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세상에... 여기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심지어 군인들과 탱크도 있네?”소채은은 아름다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오늘 밤 일이 조금 있었거든. 그래서 다들 온 거야.”윤구주는 별거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설명했다.“무슨 일이 있었길래 군인들까지 출동한 거야?”소채은은 눈을 깜빡이면서 물었다.윤구주는 당연히 자세히 설명할 생각이 없었다.그는 갑자기 소채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채은아, 너한테 얘기하고 싶은 일인데 들어줄래?”“뭔데?”소채은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나에 관한 일이야.”윤구주는 고개를 돌리더니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자신의 여자를 바라보았다.“너에 관한 일?”“그래. 난 줄곧 너에게 내가 누군지, 예전에 무슨 일을 했었는지 얘기하지 않았지. 하지만 오늘은 너에게 알려주고 싶어.”윤구주는 오늘이 말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일어날 일들은 어쩌면 화진 전체에 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그래서 소채은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소채은은 윤
소채은이 알기론 화진의 구주천왕은 나이가 아주 많은 대영웅이었다.윤구주처럼 젊고 잘생긴 청년일 수가 없었다.그건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소채은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자 윤구주는 답답했다.“채은아, 정말로 내가 화진의 구주천왕이라는 걸 믿지 않는 거야?”윤구주가 다시 말했다.“당연히 안 믿지!”그 말에 윤구주는 정말로 어이가 없었다.그는 오늘 소채은에게 자신의 진짜 신분을 알려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소채은은 알려줬는데도 전혀 믿지 않았다.윤구주가 서글퍼 하고 있을 때 소채은은 갑자기 윤구주의 팔에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바보야, 내가 말했었잖아. 네가 누구든 난 널 사랑할 거라고. 뭘 무서워하는 거야?”윤구주는 그녀가 해주는 말을 들으면서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그녀의 말대로였다.‘왜 굳이 채은이에게 신분을 밝히려고 한 걸까? 내가 화진의 구주천왕이 아니면 뭐 어때?’그런 생각이 들자 윤구주는 더는 말을 이어 나가지 않았다. 그는 품 안에 그녀를 안은 채 뭇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그날 밤 윤구주는 그렇게 줄곧 소채은과 함께 있었다.그러다 날이 밝기 시작할 때가 되자 그제야 소채은을 데리고 윈워터힐스로 돌아갔다.방문 앞에 도착하자 소청하 부부가 보였다.“아빠, 엄마.”부모님을 본 소채은은 서둘러 그들에게 인사했다.그러나 소청하와 천희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갑자기 윤구주를 향해 무릎을 털썩 꿇었다.“어? 아빠, 엄마. 뭐 하시는 거예요?”부모님이 갑자기 윤구주의 앞에 무릎을 꿇자 소채은은 넋이 나갔다.심지어 윤구주마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구주천왕을 뵙습니다! 저희가 안목이 없어서 저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부디 넓은 아량으로 저희를 용서해 주십시오!”소청하 부부는 윤구주를 향해 용서를 빌면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그 광경에 소채은은 어리둥절해졌다.“아빠, 엄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구주왕이라뇨?”천희수는 소채은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바보야, 아직도 모르겠어? 구주는 우리 화진
다음날, 윤구주는 아침 일찍 소채은의 방문 앞에 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채은은 여전히 자신을 방 안에 가둬놓고 있었다.윤구주는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다가 거실로 나왔다.거실로 나오자마자 정태웅이 문 앞에 나타났다.“저하! 형수님 이제 저하의 신분을 알게 된 거죠? 아주 들떠 하고 기뻐하지 않으셨나요?”윤구주가 말했다.“넌 그냥 입 다물고 있어.”“네? 왜 그러세요? 형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셨나요?”정태웅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그는 세상의 그 어떤 여자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천하무적의 왕인 걸 알게 되면 기뻐할 거로 생각했다.“기뻐하긴. 채은이는 아직도 방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어. 내 신분을 받아들이기가 힘든가 봐.”윤구주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정말요? 형수님은 기뻐서 환호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방 안에서 나오지 않는대요?”“그게 채은이가 다른 여자와 다른 점이 아닐까?”정태웅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휴, 여자 마음은 정말 모르겠네요.”“됐어. 이 일은 그만 얘기하고 현수와 창용 씨는?”윤구주는 자리에 앉은 뒤 말했다.정태웅이 말했다.“아까 밖에 나갔어요. 지금 불러올게요.”“그래.”잠시 뒤, 정태웅이 천현수와 박창용을 데리고 거실로 왔다. 윤구주를 본 그들은 곧바로 깍듯이 말했다.“저하!”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물었다.“현수야, 현재 암부원들 전부 연락이 닿지 않는 거야?”“네. 국방부는 저희를 공격하면서 암부의 모든 통신 수단을 마비시켰어요.”그 말을 듣자 윤구주의 얼굴에 살기가 드러났다.한때 윤구주의 친위대였던 그들이, 화진의 정보기관이었던 암부가 한 명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니.“창용 씨, 국방부의 장군들과 고위직 지휘관들 모두 문씨 일가 편에 선 건가?”윤구주는 박창용을 바라보았다.창용 부대의 총사령관인 박창용은 질문을 받고 서둘러 대답했다.“제가 알기론 대부분이 문씨 일가 편에 섰습니다. 그리고 저항한 사람들은 비밀리에 처형당했습니다.”“그런 일이 있다고?”
“세가, 종문, 국방부, 문벌, 4대 서열. 돌아가면 내가 전부 후회하게 해주겠어!”...소채은은 윤구주가 천하를 뒤흔든 구주천왕이라는 걸 알게 된 뒤로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그녀는 도저히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구주왕은 화진 백성들 마음속의 신화나 전설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그런데 그 신화가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라니.다른 사람이었어도 당황스러웠을 것이다.“채은아,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자 화진의 왕이야. 그런데 왜 전혀 기뻐하지 않는 거야?”방 안에서 소청하와 천희수는 멍한 표정의 딸을 바라보다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그래, 채은아. 구주는 우리 화진의 신이야. 네가 구주를 만난 건 우리 소씨 가문의 엄청난 영광이자 복이라고!”소청하도 말했다.그러나 소채은은 여전히 침묵하며 넋을 놓고 있었다.그녀는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아빠, 엄마. 그만 말해요. 사실 전 기쁘지 않은 게 아니에요. 전 그저... 그저 구주가 우리 화진의 신화와도 같은 존재, 구주왕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해서 그러는 것뿐이에요.”소청하는 웃으며 말했다.“바보야, 그건 우리 집안이 운이 좋다는 걸 증명하는 거야.”“맞아, 맞아. 예전에는 내가 안목이 없어서 구주를 얕봤어. 그런데 지금 보니 정말 그러지 말아야 했어.”천희수는 후회하며 말했다.“하지만 지금은 잘 됐지. 우리 딸은 천하무적의 구주왕과 만나고 있으니 우리 소씨 일가는 평생 영광을 누리게 될 거야. 아니, 앞으로 대대로 영광을 누리게 될 거야.”부모님의 말씀을 들은 소채은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아빠, 엄마. 구주가 정말로 우리 화진의 구주왕이라면... 저랑 구주가 만나는 건, 제게 너무 과분한 일 아닐까요?”소채은은 갑자기 예쁘장한 얼굴을 들고 말했다.‘응?’“그게 무슨 말이야?”천희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예전에 그러셨잖아요. 결혼하려면 집안이 비슷해야 한다고. 그런데 아빠, 엄마도 보셨다시피 구주는... 우리 화진의 구주
점심때가 되자 윤구주는 소채은을 보러 왔다.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소청하 부부가 보였다.“아버님, 어머님. 채은이 안에 있나요?”소청하는 서둘러 대답했다.“그래.”“그러면 저 들어가 볼게요.”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방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그런데 그가 문을 열기 직전, 소청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구주야... 너 혹시 우리를 원망하니?”“원망이요?”윤구주는 당황했다.“그래. 우리가 예전에 어리석고 안목이 없어서 널 무시했었잖아. 그래서...”천희수는 용기를 내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구주야, 우리를 원망해도 괜찮아. 우리를 때려도 좋고 욕해도 좋아. 하지만 절대 채은이를 힘들게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채은이는 진심으로 널 사랑하니까!”천희수가 말했다.두 사람의 말을 들은 윤구주는 말문이 막혔다.“아버님, 어머님.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전 단 한 번도 두 분을 원망한 적이 없어요.”“정말?”천희수가 말했다.“그럼요.”“구주야, 고마워. 예전에는 우리가 어리석었어. 우리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어떤 상황이 생기든 절대 우리 채은이를 원망하지는 말아 줘. 너희 지금처럼 잘 만나기까지 쉽지 않았잖아. 만약 우리 둘 때문에 너희 사이가 멀어진다면 우리가 너무 미안할 것 같아서 그래.”천희수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윤구주는 똑똑했기에 그들의 말을 듣고 대충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그는 웃으며 말했다.“아버님, 어머님. 그런 생각하지 않으셔도 돼요. 전 단 한 번도 제 신분 때문에 누군가를 싫어한 적이 없어요. 게다가 전 채은이를 무척 사랑하는걸요.”그 말을 듣자 소청하 부부는 그제야 마음이 한결 놓였다.“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우리도 마음이 놓인다.”윤구주는 소청하 부부와 간단히 대화를 나눈 뒤 문을 열고 소채은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방 안에서 소채은은 혼자 멍하니 창가 옆에 앉아 있었다.미풍이 불어와 그녀의 아름다운 뺨을 쓸었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채은아,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윤구주는
윤구주가 손을 뻗자마자 소채은은 감전되기라도 한 듯 황급히 몸을 움츠렸다.윤구주는 무서워하는 그녀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소채은은 몸을 움츠리고 말했다.“미안해. 지금은 너무 충격이 커서 당장은 받아들이기 힘들어.”“내 신분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거야? 아니면 그냥 나라는 사람을 받아들이기 힘든 거야?”소채은은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나도 모르겠어. 그냥 내가 지금의 너에게는 안 어울리는 것 같아.”“바보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윤구주는 그 말을 듣고 서둘러 말했다.“진짜야. 넌 화진의 왕이지만 난 그냥 평범한 여자일 뿐이잖아. 내가 어떻게 너처럼 대단한 영웅과 어울리겠어?”소채은이 말했다.“채은아, 이러지 마. 네가 그랬잖아. 내가 예전에 누구였든 우리 둘이 만나는 것엔 영향이 없을 거라고 말이야.”“그... 그거랑은 달라. 난 네가 예전에 좀 남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 네가 우리 화진의 왕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고.”소채은의 말은 사실이었다.구주왕은 화진의 영웅이었다.그는 한때 신화였고 전설이었다.그런데 그런 신화 같은 인물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애인이라는데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채은아, 이러지 마. 우리 지금처럼 만나는 거 쉽지 않았잖아. 난 내 신분 때문에 우리 사이에 벽이 생기는 걸 원하지 않아.”윤구주는 중얼거리면서 말한 뒤 소채은의 떨리는 손을 살짝 잡았다.“채은아, 내가 그랬었잖아.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걸 다 너에게 주겠다고. 이젠 그 약속을 지키고 싶어. 지금부터 넌 내 여자야. 평생토록 말이야.”윤구주는 애절하게 말한 뒤 소채은을 품에 안았다.품 안의 소채은은 여전히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그녀는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그녀조차 믿기 어려운 그런 꿈을 꾸는 것 같았다.‘내가 구주왕의 여자라고?’그건 수많은 여자가 꿈에도 바라던 일이었다. 그리고 윤구주는 화진의 수많은 소녀들이 사랑하는 엄청난 영웅이었다.그런데 그녀가 구주왕의 여자가 되었다.이 순간, 소채은
소채은은 강제로 하려는 듯한 기세로 달려들었다.소채은이 먼저 적극적으로 리드했다.윤구주를 안은 소채은은 호흡이 눈에 띄게 가빠지기 시작했다.소채은의 흰 다리가 윤구주의 허리에 감겼다. 그녀는 마치 뱀처럼 윤구주의 몸 위에 앉았다.“채은아, 정말이야?”윤구주는 소채은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자 참지 못하고 물었다.소채은은 짧게 대답했다. 곧 그녀의 어깨에서 끈이 흘러내렸다.옥처럼 흰 그녀의 어깨에서 소녀의 체향이 느껴졌다.게다가 소채은은 눈빛이 매혹적이었고 옅은 향기도 났다. 그래서 참기가 힘들었다.그렇게 방 안에서 두 사람은 뜨겁게 불타올랐다.방 밖에서는 소청하 부부가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그들은 바보 같은 소채은이 정말로 구주왕을 거절할까 봐 걱정되었다. 만약 구주왕을 거절한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그런데 두 사람은 곧 이상함을 느꼈다.방안에서 들려오는 야릇한 목소리와 가쁜 숨소리는 아주 이상하게 들렸다.“여보... 우리 딸 구주랑 뭐 하는 거래요? 우리 딸 이상한 소리를 내는데요?”이상함을 감지한 천희수는 서둘러 소청하에게 말했다.소청하는 문에 귀를 붙였다가 천희수를 끌고 가면서 히죽 웃으며 말했다.“바보 같긴, 눈치 못 챈 거야?”“네? 뭐가요?”천희수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소청하는 천희수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고 천희수는 곧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뭐라고요? 진짜요? 우리 딸이 구주랑...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요?”“그게 아니면 뭐겠어?”소청하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하지만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관계를 가지면 우리 딸이 너무 손해잖아요!”천희수가 말했다.“왜 이렇게 바보 같아? 화진의 구주왕과 하는 건데 우리 딸이 손해 볼 게 뭐가 있어? 잊지 마. 구주는 화진의 구주왕이야!”그 말에 천희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윤구주가 구주천왕이라는 걸 떠올린 천희수는 순간 자기가 어리석게 느껴졌다.이 세상에 구주왕을 만나고 싶어 하는 여자가 얼마나 많겠는가?황실도, 10개국의 공주들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