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구주가 동산과 남궁서준, 정태웅을 데리고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건장한 체격의 암부 구성원들은 정중한 태도로 문 앞에 줄지어 서 있었다.그리고 그들의 뒤에는 비싼 차들이 길게 늘어져 서 있었다.암부 구성원들을 본 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렸다.“정태용, 서남의 암부 부하들에게 연락한 거야?”정태웅은 서둘러 달려가서 대답했다.“네! 저하께서 친히 서남까지 오셨는데 당연히 암부 구성원들이 저하를 맞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멍청하긴, 이러면 너무 눈에 띄잖아! 내 신분이 공개되면 안 된다는 걸 깜빡한 거야?”윤구주는 정태웅을 매섭게 노려보았다.정태웅은 억울한 얼굴이었지만 감히 대꾸하지는 못했다.“정태웅, 명심해. 절대 사람들 앞에서 내 정체를 알려서는 안 돼. 알겠어?”윤구주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정태웅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저하. 절대 티 내지 않겠습니다!”정태웅의 말을 들은 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윤구주는 아직 정체를 드러낼 수 없었다.암부 사람들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정체를 알릴 수 없었다.그의 신분이 너무 엄청났기 때문이다.그가 아직 살아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면 화진 전체가 순간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암부 쪽.윤구주와 정태웅, 남궁서준, 시괴 동산이 도착하자 건장한 체구의 중년 남성이 빠르게 그들에게로 다가갔다.“서남 암부, 제 39여단 여단장 원건우, 지휘사님을 뵙습니다.”자신을 사단장이라고 칭한 건장한 남자는 말을 마친 뒤 곧바로 정태웅을 향해 예를 갖췄다.다른 서남 암부 구성원들도 서둘러 경례했다.화진 암부에는 40만 명 가까이 되는 정예병들이 있었다.40만 명의 정예병 중 3대 지휘사 민규현, 정태웅, 천현수를 제외하고 68개의 사단으로 나뉜다.각 사단의 사단장들은 엄격한 기준으로 선정된 자들로 모두 대가 이상의 수준이었다.눈앞의 우람한 남자는 서남 39사단의 사단장이었다.“음? 처음 보는 얼굴인데?”정태웅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건장한 남자를 바라보았다.자신을 원건
...백화궁 입구.누런색의 긴 도포를 입은 노인이 문 앞의 돌계단에 앉아 있었다.그 노인은 다름 아닌 백경재였다.윤구주가 백화궁을 떠난 뒤로 백경재는 온종일 문 앞에서 윤구주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오늘로 벌써 7일째였다.이때 위풍당당한 차량 행렬이 백화궁 앞에 멈춰 섰다.차량 행렬을 본 백경재는 서둘러 일어나 긴장한 얼굴로 차들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무슨 상황이지?”차 문이 열리더니 건장한 체구의 암부 구성원들이 하나둘 차에서 내렸다.그리고 곧 거인만큼 우람진 남자가 백경재의 앞에 나타났다.시괴 동산이었다.“어? 동산이잖아... 저하께서 돌아온 건가?”백경재가 놀라워하고 있는 와중에 윤구주의 잘생긴 얼굴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하하, 저하! 정말로 저하네요! 드디어 돌아오셨군요!”백경재는 윤구주를 보자 곧바로 기쁜 얼굴로 그에게 달려갔다.그리고 곧 윤구주를 따라 정태웅과 남궁서준도 차에서 내렸다.“정태웅 지휘사님도 계셨어요?”정태웅을 본 백경재는 깜짝 놀랐다.정태웅은 눈을 접어 웃으면서 말했다.“네! 전 저하를 보러 왔어요!”윤구주는 백경재를 보고 물었다.“백 선생, 채은이는?”“저하, 채은 씨는 잘 지내고 계십니다. 저하가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렸어요!”“그래, 얼른 채은이를 보러 가야겠어. 안내해.”“네!”백경재는 서둘러 윤구주를 소채은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었다.윤구주가 사람들을 잔뜩 데리고 오자 백화궁의 아름다운 여성들이 모두 밖으로 나왔다. 선두에 선 사람은 잔혹한 나찰 인해민이었다.풍만한 엉덩이에 희고 아름다운 다리를 가진 인해민은 푸른색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아주 섹시하고 요염했다.그녀는 밖으로 나온 뒤 곧바로 윤구주에게 말했다.“드디어 돌아오셨군요! 그거 알아요? 구주 오빠가 자리를 비운 동안 우리 궁주님과 채은 씨가 구주 오빠를 아주 보고 싶어 했어요.”윤구주는 인해민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그래서 지금 왔잖아.”“돌아왔으니 얼른 가서 채은 씨를 달
소채은의 방 안. 소채은은 여전히 윤구주를 그리워하고 있었다.그녀는 매일 윤구주가 당부했던 대로 먼저 윤구주가 그녀를 위해 제작했던 경체단을 먹은 뒤 홀로 묵묵히 그를 그리워했다.이때 누군가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누구예요?”소채은이 물었다.“나야!”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소채은은 흠칫했다.그녀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윤구주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구주야?”방문을 벌컥 열어보니 문 앞에 준수한 외모의 윤구주가 서 있었다.“채은아, 나 돌아왔어!”윤구주가 말을 마치자마자 소채은은 곧바로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갑작스러운 포옹에 윤구주는 웃는 얼굴로 그녀의 가는 허리를 끌어안았다.“구주야, 드디어 돌아왔구나! 내가 널 얼마나 그리워한 줄 알아?”소채은은 윤구주를 꼭 안은 채 원망스레 말했다.윤구주는 그녀를 위로했다.“미안해. 일이 좀 있어서 시간이 좀 지체됐어.”“그래? 앞으로는 절대 날 이렇게 오랫동안 혼자 내버려둬서는 안 돼. 널 다른 여자에게 빼앗긴다면 난 어떡해?”소채은의 바보 같은 말에 윤구주는 미소 띤 얼굴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바보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다른 여자에게 빼앗긴다니, 그럴 리가 있겠어?”“그럴 수도 있지! 우리 구주, 얼굴도 잘생기고 성격도 좋아서 다른 여자들이 분명 눈독을 들일 거란 말이야!”소채은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를 잃을까 봐 두렵다는 얼굴로 윤구주의 팔짱을 꼈다.소채은의 모습에 윤구주는 웃었다.“구주야, 얼른 얘기해 봐. 그동안 뭘 했던 거야?”소채은은 윤구주를 잡고서 오랜만에 만난 사이처럼 물었다.윤구주는 그녀에게 간단히 봉안보리구슬을 찾은 과정을 얘기했다.그리고 어떻게 고씨 일가를 상대했는지, 어떻게 서남을 주름잡았는지에 대해서는 한 글자도 언급하지 않았다.소채은은 그의 얘기를 듣더니 의아해하면서 말했다.“응? 그 봉안보리구슬이 그렇게 중요한 거야?”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아주 중요해.”소채은은 그렇냐고 짧게 대꾸했다.“나한테 보여줄 수 있어
천시 고충!가장 무시무시한 건 그것의 시독이었다.시독이 심장을 공격하게 되면 오장육부가 괴사하고 사지가 마비된다.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사람은 안에서부터 천천히 썩어 들어가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몸 전체가 썩는다.그런 생각에 윤구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구주야, 나 상태가 많이 심각해?”윤구주의 표정이 확 어두워지자 소채은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냐, 아냐. 채은이 너는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이것만 기억해. 내가 있으니까 넌 무조건 나을 거야!”소채은은 별말 하지 않고 윤구주의 품에 고개를 기댄 채 말했다.“구주야, 사실 난 내 병이 무섭지 않아. 내가 두려운 건 내 인생에서 네가 사라지는 거야. 네가 없으면 난 어떡해?”소채은의 말에 윤구주는 마음이 저렸다. 그녀는 다시금 소채은을 품에 안았다.“채은아, 걱정하지 마.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반드시 널 치료할 거야. 내가 깨끗이 낫게 해줄게!”소채은은 말없이 윤구주의 품에 안긴 채로 이 순간을 즐겼다.한참 뒤에야 윤구주가 입을 열었다.“참, 채은아. 내 지인 두 명이 왔는데 나랑 같이 나가서 인사 나누자!”“응? 지인?”“응. 지금 밖에 있어. 가자, 내가 소개해 줄게.”윤구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소채은의 손을 잡고 정태웅과 남궁서준을 만나러 갔다.커다란 백화궁 대전 안, 가장 먼저 들려온 건 정태웅의 목소리였다.“세상에, 연규비 씨. 몇 년 못 본 사이에 더 아름다워지셨네요.”이내 아름다운 연규비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흰색 원피스를 입은 연규비는 여신처럼 안에서 나왔고, 정태웅의 목소리를 들었다.“정태웅, 너도 서남에 온 거야?”연규비는 살찌다 못해 공처럼 보이는 정태웅을 보며 말했다.“연규비 씨가 너무 보고 싶어서 왔죠!”정태웅이 웃으면서 대답했다.“그딴 소리 한 번만 더하면 가만 안 둘 줄 알아.”연규비가 말했다.말을 마친 뒤 연규비는 곁눈질로 옆을 보았다. 갑자기 엄청난 한기를 띤 검의가 느껴졌기 때문이다.아주 놀라운 검의였다.연규비는 그것을 느끼고
“연규비 씨는 저하를 이미 만나셨죠?”정태웅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연규비에게 물었다.“그럼, 당연하지.”연규비가 대답했다.“저하를 만났군요. 우리 저하 더 멋있어지고 훤칠해지지 않았어요?”연규비가 말했다.“이 자식, 할 말 있으면 그냥 해.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말고.”정태웅은 실실 웃으면서 얄밉게 말했다.“저하와 오랜만에 만나신 거잖아요. 게다가 연규비 씨는 예전에 전하를 아주 사랑했죠.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번 기회에 조금 더 진도를 나가야지 않겠어요?”정태웅의 말을 들은 연규비는 표정이 차갑게 굳으면서 화를 냈다.“이 자식, 한 번만 더 그딴 소리 하면 혀를 잘라버릴 줄 알아. 내가 못 할 것 같아?”정태웅은 서둘러 뒷걸음질 치면서 말했다.“전 그저 솔직히 말한 것뿐이에요.”콜록콜록.정태웅과 연규비가 장난을 치고 있을 때 콜록거리는 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정태웅은 기침 소리를 듣더니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고, 곧 윤구주가 소채은을 데리고 나오는 걸 보았다.“저하!”윤구주를 본 그는 서둘러 외쳤다.그리고 곧 불손한 시선이 소채은에게 닿았다.“왕비님, 드디어 깨셨군요!”갑자기 형수님이라고 불린 소채은은 어리둥절해졌다.“구주야, 저 사람은 누구야? 왜 날 왕비라고 부르는 거야?”윤구주는 정태웅을 매섭게 노려보았다.정태웅은 자신이 말실수했다는 걸 깨닫고 서둘러 말을 고쳤다.“퉤퉤퉤, 형수님! 죄송해요, 제가 말실수를 했네요. 절대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이번에는 형수님이라니, 소채은은 의아한 얼굴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내 지인이야. 정태웅이라고 부르면 돼.”소채은은 그 말을 듣더니 그제야 정태웅에게 말했다.“안녕하세요, 전 소채은이라고 해요.”“형수님, 저한테는 반말하셔도 돼요. 앞으로는 태웅이라고 부르시면 돼요.”정태웅이 서둘러 말했고 소채은은 미소를 지었다.“꼬맹아, 이리 와봐!”윤구주는 소채은을 소개한 뒤 옆에 서 있던 남궁서준을 불렀다.흰옷을 입은 소녀는 빠른 걸
“다행이네.”윤구주가 소채은을 데리고 나와서 그녀에게 정태웅과 남궁서준을 간단히 소개해 준 뒤 소채은이 과로할까 봐 걱정되어 곧바로 그녀를 방으로 돌아갔다.방에 도착한 뒤 소채은이 갑자기 물었다.“구주야, 요즘에도 많이 바빠?”윤구주는 그 말을 듣더니 흠칫하며 말했다.“아니, 왜?”“헤헤, 안 바쁘면 나랑 같이 우리 친척 집에 갔다 오면 안 돼?”소채은은 윤구주의 팔을 잡고 말했다.“어? 친척?”“응, 우리 외당숙이 서남 고대 도시에 있거든. 내가 찾아봤는데 여기서 20km 정도 떨어져 있어. 그래서 네가 바쁘지 않다면 너랑 같이 우리 외당숙을 보러 가고 싶어.”소채은은 외당숙의 일을 간단히 얘기했다.윤구주는 소채은이 천시 고충에 당한 뒤로 줄곧 백화궁에만 있어서 무척 심심해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서 친척 집에 가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곧바로 동의했다.“그래, 그러면 내일 나랑 같이 가자.”“진짜? 동의한 거야?”“그럼.”“헤헤, 고마워.”소채은은 기쁜 얼굴로 윤구주의 품에 머리를 기대었다.다음 날, 윤구주는 정말로 소채은과 그녀의 외당숙 집에 방문할 준비를 했다.소채은은 아침 일찍 일어나 꾸몄다.예쁜 플라워 패턴의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검은색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풀어 헤쳐서 더욱더 아름다웠다.윤구주는 캐주얼한 차림으로 정태웅과 남궁서준 등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저하, 저희가 가지 않아도 괜찮나요?”정태웅은 윤구주가 소채은의 친척 집에 가려 한다는 걸 알고 물었다.“응. 너희는 일단 백화궁에 머물러. 아무래도 채은이 친척들은 일반인이라서 말이야.”윤구주가 말했다.그의 말에 정태웅과 남궁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채은아, 가자!”윤구주는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난 뒤 소채은을 데리고 그녀의 외당숙 집으로 향하려고 했다.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윤구주는 백화궁의 차를 타지 않고 큰길로 나가서 택시를 잡았다.그들이 차에 오르려고 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구주 오빠, 잠깐만요
가는 길에 소채은은 윤구주에게 자신의 외당숙을 간단히 소개했다.윤구주는 소채은을 통해 그녀의 외당숙이 건축 업계에 종사하고 있으며 작업반장 비스름한 일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그동안 서남에서 꽤 잘 지냈다고 한다.윤구주는 상황을 대충 파악하면서 소채은과 함께 그의 집으로 향했다.차는 막힘없이 달렸다.그러다 소채은이 갑자기 물었다.“구주야, 백화궁의 규비 씨 예전에 널 좋아했었던 거야?”소채은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윤구주는 잠깐 당황했다가 황급히 대답했다.“아니...”“나한테 거짓말하는 거야? 널 바라보는 규비 씨의 눈빛과 널 대하는 규비 씨의 태도에서부터 난 이미 느꼈어. 규비 씨는 틀림없이 널 좋아해! 심지어 오늘 우리 외당숙 집으로 가는데 널 챙겼잖아.”소채은의 말을 들은 윤구주는 서둘러 해명했다.“채은아, 네가 착각한 거야. 난...”“구주야, 괜찮아. 사실 난 규비 씨가 널 좋아해서 오히려 기쁜걸?”“기쁘다니?”“당연한 일 아니야? 생각해 봐. 규비 씨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워? 규비 씨 같은 여자도 널 좋아한다는 건 그만큼 네가 훌륭하다는 의미잖아!”소채은이 웃으며 말했다.윤구주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그는 예상과는 다른 소채은의 반응이 참신하게 느껴졌다.“하지만 절대 나한테 미안할 짓을 해서는 안 돼. 혹시라도 나한테 미안할 짓을 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줄 알아!”소채은은 그렇게 말하면서 윤구주의 팔뚝을 꼬집었다.윤구주는 다정하게 소채은의 작은 손을 잡았다.“바보야, 걱정하지 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평생 너뿐이야.”소채은은 윤구주의 품에 기대어서 말했다.“구주야, 나 엄청 속 좁아 보이지?”“아니!”“사실 난 이따금 그런 생각을 해. 널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면 내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없을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견디기가 힘들 것 같아.”소채은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바보야, 괜한 생각 하지 마. 내가 그랬잖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평생 너뿐이라고.
“혹시 이경 아저씨 집에 계셔?”천이경의 이름이 언급되자 소녀는 멈칫했다가 고개를 뒤로 돌리며 외쳤다.“아빠, 아빠 찾는데요?”그러자 집 안에서 휠체어에 앉은 남자가 나왔다.그가 나오자 소채은은 단번에 그를 알아보았다.“아저씨!”휠체어에 앉아 있는 푸근한 인상의 남자는 소채은을 보고 흠칫했다.“채은이니?”“네, 저예요.”“채은아, 우리 채은이가 웬일로 갑자기 서남에 왔대? 미리 나한테 얘기하지. 그랬으면 내가 마중 나갔을 텐데!”천이경이 기쁜 얼굴로 말했다.소채은이 대답했다.“저도 갑자기 오게 된 거라서 실례될까 봐 연락드리지 못했어요. 아저씨, 다리는 어떻게 된 거예요?”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에 소채은이 서둘러 물었다.천이경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얼마 전에 현장에서 떨어지는 바위에 맞아서 그래. 별거 아니야.”천이경은 그렇게 간단히 대답했고 소채은도 더는 캐묻지 않았다.“채은아, 어서 와. 못 본 사이에 아주 아가씨가 다 됐네!”천이경은 열정적으로 소채은과 윤구주를 맞이해줬다.“해윤아, 어서 채은 언니한테 인사해야지!”휠체어에 앉아 있는 천이경이 조금 전 문을 연 소녀에게 말했다.소녀는 소채은을 힐끗 보더니 덤덤한 말투로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채은 언니.”말을 마친 뒤 그녀는 방으로 들어갔다.“쟤도 참, 아직 철이 안 들었어. 채은아, 신경 쓰지 마.”천이경이 황급히 말했다.소채은은 웃으며 대답했다.“괜찮아요.”“채은아, 너희 부모님은 다 잘 지내셔? 그동안 강성에 너희 보러 가고 싶었는데 너무 바빴어.”천이경이 감개하며 말했다.소채은이 대답했다.“저희 부모님 다 잘 지내세요. 아저씨 얘기도 자주 하셨어요.”“그래? 고맙네. 참, 채은아. 이쪽은 누구야?”천이경의 시선이 갑자기 윤구주에게로 옮겨졌다.소채은은 서둘러 소개했다.“제 남자 친구예요. 이름은 윤구주예요.”“안녕하세요, 아저씨!”윤구주가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괜찮네. 인물도 훤칠하고 아주 점잖아 보여. 채은이가
요염한 여자는 윤구주가 검으로 자신의 주사기법을 파괴할 줄은 몰랐는지 눈에 띄게 당황하면서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단번에 제 주사기법을 파괴하다니, 실력이 정말 엄청나네요! 그러면 이번에도 한 번 막아봐요!”요염한 여자는 두 손을 움직였다. 곧 그녀의 미간에 있는 기호는 점점 더 반짝이기 시작했고 그녀의 몸 주변을 둘러싼 핑크색 기운도 점점 짙어졌다.그녀는 손을 움직였고 그 순간 검은색의 사슬이 나타났다.그 사슬은 아주 강렬한 살기 파동을 뿜어댔는데 나타나자마자 음기가 물씬 느껴졌다.“멋진 오빠, 조심해요!”요염한 여자는 매력적인 미소를 짓더니 손목을 움직였다. 검은색 사슬을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윤구주를 향해 날아들었다.눈보라 속에 서 있는 윤구주는 덤덤한 표정으로 꿈쩍하지 않았다.촤라락!살기가 넘실대는 사슬이 윤구주를 묶었다.“너무 방심한 거 아닌가요? 제 거혼사슬에 묶인다면 3품 절정 강자라고 해도 벗어날 수 없거든요!”요염한 여자는 사슬로 윤구주를 옭아맨 뒤 키득거리며 웃었다.옆에 있던 박천후는 요염한 여자가 사슬로 윤구주를 옭아매는 걸 보고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여자를 공격하려고 했다.“바보야, 뭘 하려는 거야?”염수천이 박천후를 말렸다.“뭘 하긴? 저하를 도와야지!”박천후가 대답했다.염수천은 코를 킁킁거리면서 말했다.“멍청하긴. 넌 가만히 있어. 저하가 어떤 분이신데? 네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하지만...”“하지만은 무슨 하지만이야! 넌 그냥 얌전히 있어!”염수천은 욕을 한 뒤 박천후를 무시했다.다른 한편, 요염한 여자는 거혼사슬로 윤구주를 속박한 뒤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러면 이제 순순히 따라오도록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 공격할 거니까요.”거혼사슬에 묶인 윤구주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겨우 이딴 걸로 날 잡으려고?”“흥, 말로 해서는 안 되겠네요! 이젠 절 탓하지 말아요!”요염한 여자는 표정이 차가워지더니 손을 움직여 수인을 맺어 거혼사슬을 가리켰다.“금법, 개시!”촤악!
윤구주는 덤덤하게 말했지만 그 내용은 놀라웠다.화진의 6대종문 중 하나인 칠수방이라니!윤구주가 칠수방을 언급하자 박천후와 염수천의 안색이 순식간에 달라졌다.화진은 무공으로 나라를 세웠다.무도의 3대 서열은 화진에서 오랫동안 전승되었는데 3대 서열은 각기 문벌, 세가, 가장 강력한 종문이었다. 전에 윤구주는 서울에서 문벌과 세가를 처단했고 종문의 자제는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소문에 따르면 종문의 자제들은 아주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 했기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고 한다.그런데 놀랍게도 이 엄동설한에 종문 출신의 사람이 나타날 줄이야!게다가 다름 아닌 화진의 6대종문 중 하나인 칠수방 출신이라니.윤구주가 단번에 자신의 종문을 알아맞히자 요염한 여자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아름다운 눈을 깜빡이면서 놀란 표정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맞아요. 단번에 제 무공을 알아보고 제 신분을 알아맞히다니, 제가 기다리던 사람은 역시 당신이 맞네요!”윤구주는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소문에 따르면 칠수방은 아름다운 여자만 제자로 삼는다고 하지. 그리고 종문 중에 삼절칠금채가 있다고 하던데 넌 그중 누구지?”윤구주가 칠수방의 상황을 읊자 요염한 여자는 상당히 놀란 듯 보였다.그러나 그녀는 이내 감정을 추스르고 대답했다.“정말 대단하네요! 우리 칠수방에 대해 이렇게나 상세히 알고 있다니, 놀라워요. 저랑 같이 지금 바로 칠수방으로 가는 건 어때요? 그러면 제가 굳이 나설 필요도 없고 당신도 다칠 필요도 없으니까요.”윤구주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날 잡으려고?”요염한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네!”“말해봐. 누가 날 잡으라고 시킨 거야?”윤구주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요염한 여자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미안하지만 그건 알려줄 수 없어요. 대신 순순히 절 따라온다면 무사할 거라고 장담해요.”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가슴을 툭툭 쳤다.윤구주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칠수방 따위가
지면에 균열이 생겼고 곧 굉음과 함께 땅이 뒤흔들렸다.청색을 띤 무홍의 기운이 엄청난 기세와 함께 하늘로 솟구쳤다. 박천후의 두 주먹은 마치 용과 같았고 그의 주먹에 권의가 모이기 시작했다.“노용권!”마치 푸른 용 같은 권의가 나타나는 순간, 박천후는 마치 하늘까지 부술 듯한 기세로 요염한 여자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응? 정말로 진심을 다해서 싸우려 하네요? 그렇다면 저도 제대로 놀아주죠!”요염한 여자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녀의 미간에 붉은색의 룬 문자가 나타났다.그 룬 문자가 빛나기 시작하자 여자의 몸 주변에 옅은 핑크색의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곧이어 그녀는 손을 움직였고 거미줄 같아 보이는 기운으로 이루어진 실이 그녀의 손에 나타났다.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아주 많은 양의 실이 마치 거미줄처럼 박천후를 뒤덮었다.박천후는 비록 권법은 대단했지만 요염한 여자의 기괴한 공법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는 빠르게 몸을 뒤로 물렸지만 무시무시한 실들이 그의 두 팔을 꽁꽁 감쌌다.박천후는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그 실들은 마치 금강석처럼 더없이 단단해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박천후가 여자에게 당하자 검을 빼 드는 소리가 하늘을 갈랐다.“박천후, 조심해!”검을 빼든 사람은 다름 아닌 황성 금위군 통령 염수천이었다.마찬가지로 절정 삼중천의 실력을 갖춘 염수천이 검을 빼 들고 나서면서 박천후의 팔을 묶은 실을 베려고 했다.챙강!실은 염수천에 의해 잘리자 핑크빛 기운이 되어 요염한 여자의 곁으로 돌아갔다.“박천후, 괜찮아?”박천후가 거미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준 염수천은 서둘러 고개를 돌려 박천후를 바라보았다.박천후는 코웃음을 쳤다.“괜찮아. 조금 전에는 내가 적을 얕봤어.”그는 그렇게 말한 뒤 고개를 돌려 요염한 여자를 노려보았다.“거기 너, 다시 한번 붙어 보자!”맨발인 요염한 여자는 염수천이 나서자 싱긋 웃으며 말했다.“쯧쯧, 절정 실력의 두 사내들이 연약한 여자 한 명을 괴롭히려고 했으니, 소문이라도 나면 창피하
귀청을 찢는 듯한 목소리에도 맨발로 서 있는 여자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매혹적인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전 이곳에서 인연이 있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에요. 그것도 안 되나요?”‘뭐?’“인연이 있는 사람을 기다린다고? 이렇게 추운 날씨에?”박천후는 점점 더 이상함을 느꼈다.맨발의 여성은 계속 웃으면서 윤구주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럼요. 그거 알아요? 제가 기다리고 있는 그 사람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영웅이에요! 게다가 우리 화진의 왕이라고 해요.”그 말에 박천후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여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람은 누가 봐도 윤구주였기 때문이다.“당신은 대체 누구지? 어떤 저의로 이곳에서 우리 저하를 기다린 거야?”박천후의 목소리는 우레와도 같았다.강한 현기가 음파를 통해 맨발의 여자에게 전해졌다.그러나 여자는 박천후의 음파 앞에서 꿈쩍하지 않고 킥킥 웃으며 말했다.“저의라뇨? 솔직하게 얘기해도 믿지를 않네요. 연약한 제가 인연이 있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데 무슨 저의가 있겠어요? 전 그저 단순히 얘기를 나누고 싶을 뿐이에요.”“헛소리! 마지막으로 물을게. 당신은 대체 누구야?”박천후는 화가 난 상태였다.요염한 여자가 말했다.“제 이름을 알고 싶은 건가요? 안타깝게도 당신은 그럴 자격이 없어요. 저와 인연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아무도 제 이름을 알 자격이 없죠!”“건방지군! 그렇다면 어디 한 번 시험해 봐야겠어!”박천후는 그렇게 말하자마자 곧바로 움직였다.윤구주가 아끼는 10대 장수 중 한 명이었던 박천후는 절정 강자였다.게다가 그는 무려 절정 삼중천이었다.박천후는 여자를 향해 다가가며 주먹을 쥐었다.무시무시한 권의가 강렬한 강풍을 띤 채 여자를 습격했다.박천후의 권법을 본 요염한 여자는 입꼬리를 올리며 하늘로 훌쩍 날아올랐다.그녀는 아주 빠르게 움직였는데 마치 연기 같았다.“제가 당신을 두려워할 것 같나요?”말하는 사이, 요염한 여자는 빠르게 움직이면서 손을 움직였고 곧 그녀의 부드러워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세상에... 정말 여자가 있는데요? 이렇게 추운 곳에 왜 여자가 있는 걸까요?”옆에 있던 염수천은 호기심이 들었다.윤구주는 사실 일찌감치 눈보라 속 그녀를 발견했다. 다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뿐이다.그는 덤덤히 고개를 들어 눈보라 속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신경 쓰지 말고 계속 행군해.”“네, 저하!”그렇게 병사들은 계속해 움직였다.대군이 앞에 있는 여자와 점점 가까워지자 드디어 여자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여자는 청색의 긴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예스러운 느낌이 났다.그녀는 폭포수와도 같은 머리를 높이 묶고 있었는데 이목구비는 정교했고 피부는 눈처럼 하얬다. 그녀는 비록 긴 치마를 입고 있었지만 몸 선이 예뻐서 아주 매력적이었다.하지만 이상한 점은 그녀가 눈으로 뒤덮인 이곳에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맨발로 서서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점이었다.예스러운 느낌의 옷을 입고 있는 미녀가 맨발로 인적 드문 곳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라니, 누가 봐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대군은 여자의 곁을 지나치면서 저도 모르게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박천후, 염수천도 마찬가지였다.얼굴을 보니 화진 사람 같아 보였다.그런데 왜 이 추운 곳에서 이러고 있는 걸까?이곳은 화진과 설국의 접경지역으로 인적이 아주 드문 곳이었다.기괴한 여자는 위풍당당한 대군이 지나가는데도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계속해 눈사람을 높이 쌓으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녀는 마치 화진의 대군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저 여자 정말 너무 이상하지 않아? 이렇게 추운 날에 맨발로 이곳에서 눈사람을 만들다니.”박천후는 궁금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러게. 어디서 온 여자지? 왜 이곳에 잇는 걸까?염수천 또한 궁금했다.오직 윤구주만이 덤덤한 눈빛으로 눈사람을 만드는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손님이면 대접해 주고 적이라면 내쫓으면 그만이지.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움직이도록 해.”윤구주의 말에 염수천과 박천후는 더
“저하, 설국 쪽은 처리하실 겁니까? 젠장, 그 빌어먹을 자식들! 당시 낭파산 전투에서 전부 죽여버려야 했어요!”박천후가 사나운 목소리로 말했다.이번에 설국이 저지른 일로 화진인들은 모두 분통을 터뜨렸다.수십만 명에 달하는 북방군들은 언제든 설국을 쳐들어갈 수 있게 이미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됐어. 설태현의 목도 베었고 설국의 만 명에 달하는 정예군도 전부 죽였거든. 앞으로 설국은 절대 허튼짓을 하지 못할 거야.”윤구주가 천천히 말했다.“하지만 설국과 다른 아홉 나라들은 아주 탐욕스러운 자들입니다. 이번에 완전히 없애버리지 않는다면 그 빌어먹을 놈들이 또 언제 우리 화진을 건드릴지 모르는 일입니다.”박천후는 설국을 아예 없애버릴 생각인 듯했다.“걱정하지 마. 앞으로는 절대 그럴 일이 없을 테니까. 오늘부터 설국은 우리 화진의 속국이거든.”윤구주가 말했다.‘뭐?’그 말에 박천후는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염수천 또한 깜짝 놀랐다.“저하, 저하 말씀은 설국이 우리 화진에 굴복했단 말입니까?”박천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속국이 되는 건 절대 흔한 일이 아니었다.속국이 되었다는 건 앞으로 설국이 화진의 일부라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그래.”윤구주의 말을 들은 박천후는 순간 흥분했다.“역시 저하는 대단하십니다! 당시 10국도 설국을 점령하지 못했는데 겨우 며칠 사이 저하께서는 설국을 화진의 속국으로 만드셨군요. 하하하하, 그러면 앞으로 화진인들은 설국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겠네요. 여권도 필요가 없겠어요.”박천후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저하, 대단하십니다. 정말 훌륭하세요! 저하께서는 우리 화진인들이 줄곧 바라왔던 일을 현실로 만드셨어요!”염수천 또한 옆에서 감탄했다.그렇게 큰 설국이 화진의 속국이 되다니, 평범한 사람들은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심지어 다른 아홉 나라도 마찬가지였다.그러나 윤구주는 겨우 며칠 사이 설국을 화진의 속국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엉엉 우는 박천후를 바라보던 윤구주는 웃으며 말했다.“왜 북방군에 남아있지 않고 이곳으로 온 거야?”“저하, 사실은... 국주님께서 절 보내셨습니다!”박천후는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국주가 박천후를 파견했다고 하자 윤구주는 별말 하지 않았다.“저하, 그런데 왜 이곳에 계시는 겁니까? 왜 저하께서 살아계시는데 다들 저하가 돌아가셨다고 한 겁니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박천후는 눈물을 흘리면서 물었다.“얘기하자면 길어. 앞으로 천천히 얘기해줄게.”윤구주는 덤덤히 말했다.그러나 박천후는 여전히 울먹거리면서 여자처럼 울었다.“그만해. 총사령관이 그렇게 훌쩍거리면서 울면 보기 안 좋아.”윤구주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한때 자신이 아꼈던 박천후를 바라보며 그를 나무랐다.“하하하하, 이 바보야. 아까는 안 운다면서? 그런데 왜 질질 짜는 거야?”염수천은 박천후의 우는 모습을 보면서 비아냥댔다.박천후는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넌 꺼져. 이 빌어먹을 자식, 저하께서 살아계신다는 걸 알면서 우리에게 얘기해 주지도 않고. 양심 없는 놈!”박천후가 욕을 하자 염수천이 말했다.“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 저하께서 비밀로 하라고 하셨다고!”“헛소리하지 마. 네가 얘기 안 한 거잖아!”한때 형제들이었던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에 윤구주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전우란 무엇인가?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자, 외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지키는 자, 정과 의리를 중시하고 목숨을 걸 수 있는 자들이 전우였다.윤구주가 아끼던 장수들은 하나같이 전쟁의 불길 속에서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함께 성장한 형제들이었다.그들의 감정은 이미 모든 걸 초월했다.그래서 윤구주는 그들이 싸우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윤구주는 박천후에게 말했다.“남태혁, 주인철, 안경식 그 자식들은?”윤구주가 얘기한 사람들은 화진 군대에서 엄청난 지위를 가진 자들이었다.그들 모두 과거 윤구주가 아꼈던 장수들이었다.남태혁은 서부 부대의 일인자이고 주인철과 안경식
세나미의 말에 윤구주는 웃었다.그것은 그가 항상 기다리던 말이었다.설국을 속국으로 만들려면 반드시 세나미를 설득해야 했다.그렇게 해야만 설국은 영원히 화진의 속국이 될 수 있었다.“약속했으니 난 이만 가볼게. 명심해. 지금 이 순간부터 설국은 우리 화진의 속국이야.”윤구주는 우렁찬 목소리로 말을 마친 뒤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그는 곧바로 떠났다.빨간 머리카락의 세나미는 황급히 고개를 들어 윤구주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아쉽게도 윤구주는 아주 빠르게 움직여 눈 깜짝할 사이에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사라졌다.윤구주가 정말로 설국을 떠났다.“저 악마... 드디어 떠났네.”세나미가 중얼거렸다.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세나미는 본인이 기쁜 건지, 실망스러운 건지 알지도 못한 채 계속 눈을 맞으며 그곳에 서 있었다.바람은 점점 강하게 불었고 시야도 점점 흐려졌다.온통 흰 눈으로 뒤덮인 곳에서 새로운 설국의 국주는 그렇게 눈보라 속에 서 있었다....낙일성에서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화진의 병사들이 질서 있게 주둔하고 있었다.그들은 박천후가 이끄는 북방군과 염수천이 이끄는 10만 금위군이었다.눈보라 속에서 갑자기 누군가 하늘에서 날아왔다.“강자가 다가오고 있다. 다들 경계해!”하늘 위 강자가 가까워지는 순간, 염수천과 박천후 모두 그의 존재를 감지했다.두 사람은 빠르게 기운을 사용하며 싸늘한 두 눈으로 상공을 바라보았다.하늘 위 그 사람은 아주 빠르게 날았다.쿵!그의 두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대지가 뒤흔들리면서 눈이 사방으로 흩날렸다.윤구주가 온 것이다.“어?”“저하께서 돌아오셨어!”염수천은 눈앞의 남자를 본 순간 곧바로 흥분해서 빠르게 그에게로 달려가며 큰 소리로 외쳤다.“저하!”박천후는 윤구주의 모습을 제대로 보았다. 상대가 자신이 늘 그리워하던 구주왕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는 목이 메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저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염수천은 빠르
“당, 당신 언제쯤 떠날 생각이야?”세나미가 갑자기 용기를 내서 물었다.“왜? 벌써 날 쫓아내고 싶은 거야?”윤구주는 고개를 들더니 미소 띤 얼굴로 세나미를 바라보았다.“쫓아내려는 게 아니라... 당신이 여기 있으면 우리 설국인들이 두려워해서 그래.”세나미는 솔직히 말했다.윤구주는 그 말을 듣더니 크게 웃었다.“걱정하지 마. 난 이미 내 것을 손에 넣었으니 이만 가볼 거야.”손에 넣었다고?세나미는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러나 윤구주의 떠나겠다는 말에 세나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파란 눈동자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왠지는 모르겠지만 윤구주가 떠나겠다고 하는 순간 그녀는 조금 실망스러우면서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젠장, 나 왜 이러는 거지? 왜 난 이 악마가 이곳에 남아있길 바라는 거야? 저 사람은 악마라고! 우리 설국인들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데! 심지어 우리 아버지도 저 사람에게 살해당했다고!’세나미는 서둘러 기분을 다스리면서 끊임없이 자신에게 경고를 했다.“난 떠날 거야. 대신 내게 약속 하나 해줘.”윤구주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면서 별처럼 빛나는 두 눈으로 세나미를 바라보았다.“말해.”세나미도 고개를 들었다.“앞으로 설국은 우리 화진의 속국이고 100년간 그걸 유지해야 해.”윤구주가 충격적인 말을 했다.‘뭐라고?’윤구주가 설국이 화진의 속국이라고 하자마자 세나미는 표정이 굳었다.속국이 된다면 설국은 앞으로 화진에 의해 통제당한다는 걸 의미했다.그것은 한 나라에 있어서 엄청난 치욕이었다.“놀랄 필요 없어. 이건 설국을 위한 결정이니까. 설국은 땅도 작고 자원도 적어. 이 일이 있은 뒤로 나머지 아홉 개의 나라에서 과연 설국을 받아줄 것 같아?”윤구주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고 세나미는 침묵했다.나약한 나라에는 외교가 없었다. 그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였다.게다가 이번 일로 설국은 큰 타격을 받았고 아마 다른 아홉 개의 나라에서는 설국을 깔볼 것이다.그래서 다른 아홉 개의 나라에서 설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