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궁 입구.누런색의 긴 도포를 입은 노인이 문 앞의 돌계단에 앉아 있었다.그 노인은 다름 아닌 백경재였다.윤구주가 백화궁을 떠난 뒤로 백경재는 온종일 문 앞에서 윤구주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오늘로 벌써 7일째였다.이때 위풍당당한 차량 행렬이 백화궁 앞에 멈춰 섰다.차량 행렬을 본 백경재는 서둘러 일어나 긴장한 얼굴로 차들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무슨 상황이지?”차 문이 열리더니 건장한 체구의 암부 구성원들이 하나둘 차에서 내렸다.그리고 곧 거인만큼 우람진 남자가 백경재의 앞에 나타났다.시괴 동산이었다.“어? 동산이잖아... 저하께서 돌아온 건가?”백경재가 놀라워하고 있는 와중에 윤구주의 잘생긴 얼굴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하하, 저하! 정말로 저하네요! 드디어 돌아오셨군요!”백경재는 윤구주를 보자 곧바로 기쁜 얼굴로 그에게 달려갔다.그리고 곧 윤구주를 따라 정태웅과 남궁서준도 차에서 내렸다.“정태웅 지휘사님도 계셨어요?”정태웅을 본 백경재는 깜짝 놀랐다.정태웅은 눈을 접어 웃으면서 말했다.“네! 전 저하를 보러 왔어요!”윤구주는 백경재를 보고 물었다.“백 선생, 채은이는?”“저하, 채은 씨는 잘 지내고 계십니다. 저하가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렸어요!”“그래, 얼른 채은이를 보러 가야겠어. 안내해.”“네!”백경재는 서둘러 윤구주를 소채은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었다.윤구주가 사람들을 잔뜩 데리고 오자 백화궁의 아름다운 여성들이 모두 밖으로 나왔다. 선두에 선 사람은 잔혹한 나찰 인해민이었다.풍만한 엉덩이에 희고 아름다운 다리를 가진 인해민은 푸른색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아주 섹시하고 요염했다.그녀는 밖으로 나온 뒤 곧바로 윤구주에게 말했다.“드디어 돌아오셨군요! 그거 알아요? 구주 오빠가 자리를 비운 동안 우리 궁주님과 채은 씨가 구주 오빠를 아주 보고 싶어 했어요.”윤구주는 인해민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그래서 지금 왔잖아.”“돌아왔으니 얼른 가서 채은 씨를 달
소채은의 방 안. 소채은은 여전히 윤구주를 그리워하고 있었다.그녀는 매일 윤구주가 당부했던 대로 먼저 윤구주가 그녀를 위해 제작했던 경체단을 먹은 뒤 홀로 묵묵히 그를 그리워했다.이때 누군가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누구예요?”소채은이 물었다.“나야!”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소채은은 흠칫했다.그녀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윤구주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구주야?”방문을 벌컥 열어보니 문 앞에 준수한 외모의 윤구주가 서 있었다.“채은아, 나 돌아왔어!”윤구주가 말을 마치자마자 소채은은 곧바로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갑작스러운 포옹에 윤구주는 웃는 얼굴로 그녀의 가는 허리를 끌어안았다.“구주야, 드디어 돌아왔구나! 내가 널 얼마나 그리워한 줄 알아?”소채은은 윤구주를 꼭 안은 채 원망스레 말했다.윤구주는 그녀를 위로했다.“미안해. 일이 좀 있어서 시간이 좀 지체됐어.”“그래? 앞으로는 절대 날 이렇게 오랫동안 혼자 내버려둬서는 안 돼. 널 다른 여자에게 빼앗긴다면 난 어떡해?”소채은의 바보 같은 말에 윤구주는 미소 띤 얼굴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바보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다른 여자에게 빼앗긴다니, 그럴 리가 있겠어?”“그럴 수도 있지! 우리 구주, 얼굴도 잘생기고 성격도 좋아서 다른 여자들이 분명 눈독을 들일 거란 말이야!”소채은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를 잃을까 봐 두렵다는 얼굴로 윤구주의 팔짱을 꼈다.소채은의 모습에 윤구주는 웃었다.“구주야, 얼른 얘기해 봐. 그동안 뭘 했던 거야?”소채은은 윤구주를 잡고서 오랜만에 만난 사이처럼 물었다.윤구주는 그녀에게 간단히 봉안보리구슬을 찾은 과정을 얘기했다.그리고 어떻게 고씨 일가를 상대했는지, 어떻게 서남을 주름잡았는지에 대해서는 한 글자도 언급하지 않았다.소채은은 그의 얘기를 듣더니 의아해하면서 말했다.“응? 그 봉안보리구슬이 그렇게 중요한 거야?”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아주 중요해.”소채은은 그렇냐고 짧게 대꾸했다.“나한테 보여줄 수 있어
천시 고충!가장 무시무시한 건 그것의 시독이었다.시독이 심장을 공격하게 되면 오장육부가 괴사하고 사지가 마비된다.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사람은 안에서부터 천천히 썩어 들어가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몸 전체가 썩는다.그런 생각에 윤구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구주야, 나 상태가 많이 심각해?”윤구주의 표정이 확 어두워지자 소채은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냐, 아냐. 채은이 너는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이것만 기억해. 내가 있으니까 넌 무조건 나을 거야!”소채은은 별말 하지 않고 윤구주의 품에 고개를 기댄 채 말했다.“구주야, 사실 난 내 병이 무섭지 않아. 내가 두려운 건 내 인생에서 네가 사라지는 거야. 네가 없으면 난 어떡해?”소채은의 말에 윤구주는 마음이 저렸다. 그녀는 다시금 소채은을 품에 안았다.“채은아, 걱정하지 마.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반드시 널 치료할 거야. 내가 깨끗이 낫게 해줄게!”소채은은 말없이 윤구주의 품에 안긴 채로 이 순간을 즐겼다.한참 뒤에야 윤구주가 입을 열었다.“참, 채은아. 내 지인 두 명이 왔는데 나랑 같이 나가서 인사 나누자!”“응? 지인?”“응. 지금 밖에 있어. 가자, 내가 소개해 줄게.”윤구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소채은의 손을 잡고 정태웅과 남궁서준을 만나러 갔다.커다란 백화궁 대전 안, 가장 먼저 들려온 건 정태웅의 목소리였다.“세상에, 연규비 씨. 몇 년 못 본 사이에 더 아름다워지셨네요.”이내 아름다운 연규비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흰색 원피스를 입은 연규비는 여신처럼 안에서 나왔고, 정태웅의 목소리를 들었다.“정태웅, 너도 서남에 온 거야?”연규비는 살찌다 못해 공처럼 보이는 정태웅을 보며 말했다.“연규비 씨가 너무 보고 싶어서 왔죠!”정태웅이 웃으면서 대답했다.“그딴 소리 한 번만 더하면 가만 안 둘 줄 알아.”연규비가 말했다.말을 마친 뒤 연규비는 곁눈질로 옆을 보았다. 갑자기 엄청난 한기를 띤 검의가 느껴졌기 때문이다.아주 놀라운 검의였다.연규비는 그것을 느끼고
“연규비 씨는 저하를 이미 만나셨죠?”정태웅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연규비에게 물었다.“그럼, 당연하지.”연규비가 대답했다.“저하를 만났군요. 우리 저하 더 멋있어지고 훤칠해지지 않았어요?”연규비가 말했다.“이 자식, 할 말 있으면 그냥 해.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말고.”정태웅은 실실 웃으면서 얄밉게 말했다.“저하와 오랜만에 만나신 거잖아요. 게다가 연규비 씨는 예전에 전하를 아주 사랑했죠.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번 기회에 조금 더 진도를 나가야지 않겠어요?”정태웅의 말을 들은 연규비는 표정이 차갑게 굳으면서 화를 냈다.“이 자식, 한 번만 더 그딴 소리 하면 혀를 잘라버릴 줄 알아. 내가 못 할 것 같아?”정태웅은 서둘러 뒷걸음질 치면서 말했다.“전 그저 솔직히 말한 것뿐이에요.”콜록콜록.정태웅과 연규비가 장난을 치고 있을 때 콜록거리는 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정태웅은 기침 소리를 듣더니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고, 곧 윤구주가 소채은을 데리고 나오는 걸 보았다.“저하!”윤구주를 본 그는 서둘러 외쳤다.그리고 곧 불손한 시선이 소채은에게 닿았다.“왕비님, 드디어 깨셨군요!”갑자기 형수님이라고 불린 소채은은 어리둥절해졌다.“구주야, 저 사람은 누구야? 왜 날 왕비라고 부르는 거야?”윤구주는 정태웅을 매섭게 노려보았다.정태웅은 자신이 말실수했다는 걸 깨닫고 서둘러 말을 고쳤다.“퉤퉤퉤, 형수님! 죄송해요, 제가 말실수를 했네요. 절대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이번에는 형수님이라니, 소채은은 의아한 얼굴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내 지인이야. 정태웅이라고 부르면 돼.”소채은은 그 말을 듣더니 그제야 정태웅에게 말했다.“안녕하세요, 전 소채은이라고 해요.”“형수님, 저한테는 반말하셔도 돼요. 앞으로는 태웅이라고 부르시면 돼요.”정태웅이 서둘러 말했고 소채은은 미소를 지었다.“꼬맹아, 이리 와봐!”윤구주는 소채은을 소개한 뒤 옆에 서 있던 남궁서준을 불렀다.흰옷을 입은 소녀는 빠른 걸
“다행이네.”윤구주가 소채은을 데리고 나와서 그녀에게 정태웅과 남궁서준을 간단히 소개해 준 뒤 소채은이 과로할까 봐 걱정되어 곧바로 그녀를 방으로 돌아갔다.방에 도착한 뒤 소채은이 갑자기 물었다.“구주야, 요즘에도 많이 바빠?”윤구주는 그 말을 듣더니 흠칫하며 말했다.“아니, 왜?”“헤헤, 안 바쁘면 나랑 같이 우리 친척 집에 갔다 오면 안 돼?”소채은은 윤구주의 팔을 잡고 말했다.“어? 친척?”“응, 우리 외당숙이 서남 고대 도시에 있거든. 내가 찾아봤는데 여기서 20km 정도 떨어져 있어. 그래서 네가 바쁘지 않다면 너랑 같이 우리 외당숙을 보러 가고 싶어.”소채은은 외당숙의 일을 간단히 얘기했다.윤구주는 소채은이 천시 고충에 당한 뒤로 줄곧 백화궁에만 있어서 무척 심심해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서 친척 집에 가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곧바로 동의했다.“그래, 그러면 내일 나랑 같이 가자.”“진짜? 동의한 거야?”“그럼.”“헤헤, 고마워.”소채은은 기쁜 얼굴로 윤구주의 품에 머리를 기대었다.다음 날, 윤구주는 정말로 소채은과 그녀의 외당숙 집에 방문할 준비를 했다.소채은은 아침 일찍 일어나 꾸몄다.예쁜 플라워 패턴의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검은색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풀어 헤쳐서 더욱더 아름다웠다.윤구주는 캐주얼한 차림으로 정태웅과 남궁서준 등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저하, 저희가 가지 않아도 괜찮나요?”정태웅은 윤구주가 소채은의 친척 집에 가려 한다는 걸 알고 물었다.“응. 너희는 일단 백화궁에 머물러. 아무래도 채은이 친척들은 일반인이라서 말이야.”윤구주가 말했다.그의 말에 정태웅과 남궁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채은아, 가자!”윤구주는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난 뒤 소채은을 데리고 그녀의 외당숙 집으로 향하려고 했다.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윤구주는 백화궁의 차를 타지 않고 큰길로 나가서 택시를 잡았다.그들이 차에 오르려고 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구주 오빠, 잠깐만요
가는 길에 소채은은 윤구주에게 자신의 외당숙을 간단히 소개했다.윤구주는 소채은을 통해 그녀의 외당숙이 건축 업계에 종사하고 있으며 작업반장 비스름한 일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그동안 서남에서 꽤 잘 지냈다고 한다.윤구주는 상황을 대충 파악하면서 소채은과 함께 그의 집으로 향했다.차는 막힘없이 달렸다.그러다 소채은이 갑자기 물었다.“구주야, 백화궁의 규비 씨 예전에 널 좋아했었던 거야?”소채은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윤구주는 잠깐 당황했다가 황급히 대답했다.“아니...”“나한테 거짓말하는 거야? 널 바라보는 규비 씨의 눈빛과 널 대하는 규비 씨의 태도에서부터 난 이미 느꼈어. 규비 씨는 틀림없이 널 좋아해! 심지어 오늘 우리 외당숙 집으로 가는데 널 챙겼잖아.”소채은의 말을 들은 윤구주는 서둘러 해명했다.“채은아, 네가 착각한 거야. 난...”“구주야, 괜찮아. 사실 난 규비 씨가 널 좋아해서 오히려 기쁜걸?”“기쁘다니?”“당연한 일 아니야? 생각해 봐. 규비 씨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워? 규비 씨 같은 여자도 널 좋아한다는 건 그만큼 네가 훌륭하다는 의미잖아!”소채은이 웃으며 말했다.윤구주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그는 예상과는 다른 소채은의 반응이 참신하게 느껴졌다.“하지만 절대 나한테 미안할 짓을 해서는 안 돼. 혹시라도 나한테 미안할 짓을 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줄 알아!”소채은은 그렇게 말하면서 윤구주의 팔뚝을 꼬집었다.윤구주는 다정하게 소채은의 작은 손을 잡았다.“바보야, 걱정하지 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평생 너뿐이야.”소채은은 윤구주의 품에 기대어서 말했다.“구주야, 나 엄청 속 좁아 보이지?”“아니!”“사실 난 이따금 그런 생각을 해. 널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면 내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없을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견디기가 힘들 것 같아.”소채은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바보야, 괜한 생각 하지 마. 내가 그랬잖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평생 너뿐이라고.
“혹시 이경 아저씨 집에 계셔?”천이경의 이름이 언급되자 소녀는 멈칫했다가 고개를 뒤로 돌리며 외쳤다.“아빠, 아빠 찾는데요?”그러자 집 안에서 휠체어에 앉은 남자가 나왔다.그가 나오자 소채은은 단번에 그를 알아보았다.“아저씨!”휠체어에 앉아 있는 푸근한 인상의 남자는 소채은을 보고 흠칫했다.“채은이니?”“네, 저예요.”“채은아, 우리 채은이가 웬일로 갑자기 서남에 왔대? 미리 나한테 얘기하지. 그랬으면 내가 마중 나갔을 텐데!”천이경이 기쁜 얼굴로 말했다.소채은이 대답했다.“저도 갑자기 오게 된 거라서 실례될까 봐 연락드리지 못했어요. 아저씨, 다리는 어떻게 된 거예요?”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에 소채은이 서둘러 물었다.천이경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얼마 전에 현장에서 떨어지는 바위에 맞아서 그래. 별거 아니야.”천이경은 그렇게 간단히 대답했고 소채은도 더는 캐묻지 않았다.“채은아, 어서 와. 못 본 사이에 아주 아가씨가 다 됐네!”천이경은 열정적으로 소채은과 윤구주를 맞이해줬다.“해윤아, 어서 채은 언니한테 인사해야지!”휠체어에 앉아 있는 천이경이 조금 전 문을 연 소녀에게 말했다.소녀는 소채은을 힐끗 보더니 덤덤한 말투로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채은 언니.”말을 마친 뒤 그녀는 방으로 들어갔다.“쟤도 참, 아직 철이 안 들었어. 채은아, 신경 쓰지 마.”천이경이 황급히 말했다.소채은은 웃으며 대답했다.“괜찮아요.”“채은아, 너희 부모님은 다 잘 지내셔? 그동안 강성에 너희 보러 가고 싶었는데 너무 바빴어.”천이경이 감개하며 말했다.소채은이 대답했다.“저희 부모님 다 잘 지내세요. 아저씨 얘기도 자주 하셨어요.”“그래? 고맙네. 참, 채은아. 이쪽은 누구야?”천이경의 시선이 갑자기 윤구주에게로 옮겨졌다.소채은은 서둘러 소개했다.“제 남자 친구예요. 이름은 윤구주예요.”“안녕하세요, 아저씨!”윤구주가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괜찮네. 인물도 훤칠하고 아주 점잖아 보여. 채은이가
주세영의 냉담한 태도에 천이경은 서둘러 말했다.“채은아, 신경 쓰지 마. 원래 저런 성격이거든. 그것보다 아저씨 집에 오는데 무슨 선물을 챙겨 오니?”“아저씨, 당연히 챙겨와야죠.”소채은이 서둘러 말했다.옆에 있던 윤구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처음 집 안에 들어왔을 때부터 그는 천이경이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다.그러나 주세영과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그의 딸은 소채은을 깔보고 있었다.“채은아, 너희 회사 경영은 잘되고 있는 거지?”천이경이 화제를 돌렸다.“네.”“그러면 다행이네. 참, 채은아. 네 남자 친구는 직업이 뭐니?”천이경이 다시 물었다.그가 윤구주의 직업을 묻자 소채은은 조금 난감했다. 그러나 그녀는 잠깐 고민한 뒤 솔직히 대답했다.“지금은 무직이에요.”“그래. 젊어서 괜찮아. 일자리를 꼭 찾을 수 있을 거야.”“아저씨는요? 아직도 현장에서 일하세요?”소채은이 물었다.“그래. 그런데 요즘은 불경기라서 상황이 좋지는 않아.”천이경은 탄식하며 말했다.“다리는 괜찮으세요?”소채은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를 걱정스레 바라보며 물었다.“괜찮아. 살짝 다친 것뿐이거든. 경험 많은 의사 선생님에게 몇 번 진료를 받았었는데 곧 나을 거야.”천이경이 말했다.소채은이 외당숙인 천이경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방 안에서 주세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 무슨 얘기 하고 있어? 여기 와서 내 머리 좀 만져줘!”안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자 천이경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그래, 지금 갈게.”말을 마친 뒤 그는 서둘러 소채은과 윤구주에게 말했다.“채은아, 구주야. 먼저 앉아 있어. 금방 갔다 올게.”착한 천이경은 휠체어에 앉은 채로 힘겹게 안으로 들어갔다.안에서 주세영의 원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 많대? 별 볼 일 없는 친척일 뿐인데. 뭐 귀한 손님이라고.”안에서 들리는 경멸 어린 목소리에 소채은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 윤구주를 바라보았다.“구주야, 우리 이만 가자.”